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510
2부 28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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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비가 그쳤다. 그래서 전 병력을 진영 앞으로 불러내서 행사를 치를 수 있게 되었다. 북방군과 도감군 전군이 도열해서 용전분투 중 전사한 신립에게 경의를 표하는 자리 말이다.
북방군이야 당연히 자기들과 한때 같이 싸웠던 신립의 죽음을 크게 애도하겠지. 도감군 쪽 병사들은 오위와 신립에 대해 쌓인 감정이 좀 있기는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런 옛 원한을 가지고 옹졸하게 구는 놈은 없으리라.
모두 내보내고 잠시 신립 옆에 혼자 남았다. 장막 안에서 못질한 관을 어루만지고 있으려니 나도 모르게 눈물 두 줄기가 뺨 위로 흘렀다. 눈물과 함께 갖가지 추억이 떠올랐다. 도성에서, 부여주에서, 속말주에서 있었던 사건들이. 그리고 신립이 했던 행동, 나와 주고받은 대화가.
“미안하오. 미안하오, 평양군….”
신립에게 하고 싶은 말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눈물은 멈추지 않고 흘렀고 목소리는 어느새 흐느낌이 되었다. 하지만 소리 내서 통곡할 수는 없다. 그대로 관뚜껑 위에 두 손을 얹고 선 채 한참을 소리죽여 울었다.
“저…전하, 군사들이 모두 도열하였사옵니다.”
“알겠다.”
목에서 나던 끅끅 소리가 잦아들 때쯤 선전관 류형이 조심스럽게 장막 안으로 들어왔다. 그 보고를 받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신립의 관을 단상 위로 옮기게 했다. 오늘 경인년 6월 3일 계유일, 이제 신립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 군무를 수행하도록 내가 도울 참이었다.
“그대들 모두 하남벌에서 벌어진 참극에 대해 들었을 것이다!”
신립이 오위군을 거느리고 싸운 벌판의 정확한 이름은 하남벌이라고 했다. 하긴 삼랑진은 그 옆에 있는 나루터 이름이니, 삼랑진 싸움이라 부르는 건 정확한 호칭은 아니었다.
“오위 군사들은 적괴 신장의 군세를 부수기 직전까지 갔으나, 그만 적에게 포위되어 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오위를 이끄는 도총관, 평양군은 신장을 보고 그 어깨에 화살을 박아넣기까지 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그만 붙잡히고 말았다!”
임금이 유생들이라면 모를까 일반 군사들 앞에서 연설하다니, 조선 역사상 단 한 번이라도 유례가 있었을까 싶다. 내가 무종 때도 지금처럼 전군을 모아놓고 진두 연설 같은 걸 시도한 적은 없었던 듯하다. 처음에 놀라 웅성거리던 군사들도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이 갑옷을 보라. 평양군이 입었던 이 갑옷은 본래 내가 입은 이 수은갑처럼 빛났다. 허나 지금 이 갑옷은 왜병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 평양군은 적에게 포위되어 빠져나갈 길이 없음을 알고서도 이만큼 용전하였다. 그리고 잡혀서도 적의 꼬임에 넘어가지 않고 당당하게 죽었다!”
병사들 사이에서 탄식과 분노가 흘러나왔다. 나는 최대한 병사들이 알아듣기 쉬운 단어를 골라 가며 신립의 용전을 칭찬하고 모두가 그 뒤를 따라야 할 당위성을 설파했다.
“그대들은 잊어서는 안 된다. 하남벌에서 쓰러진 오위 군사들이 어찌 쓰러졌는지를! 혹여 왜적에게 패한다면, 하남벌에서 있었던 참극이 사방에서 되풀이되리라. 단연코 그런 사태가 있어서는 안 된다! 너희는 너희의 모든 것을 지켜야 한다.”
목이 아프다. 제발 몇 분만 더 버텨라. 지금 이 자리에서만 내 목이 버텨 준다면, 오늘 종일 한마디도 말을 할 수 없게 된다고 하더라도 견딜 수 있다.
“이 전쟁은 그저 종묘사직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 아니다. 너희 가족을, 집을, 농토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다! 진다면 이 모든 것을 왜적에게 빼앗기게 되리라! 너희 후손의 장래가 오로지 왜적을 물리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도다!”
지면 만사 끝이다. 개처럼 부려지면서 중국 침략에 방패로 앞세워질 뿐이다.
“과인이 너희와 함께하겠노라! 왜적들을 모조리 몰아내기까지, 죽을힘을 다해 싸우라! 나의 영용한 군사들이여, 오위를 기억하라! 하남벌을 기억하라!”
“주상전하 천세!”
“천세!”
7만 군사가 발을 구르며 천세를 연호했다. 함성이 장호원 앞 벌판을 채웠다.
“도순찰사는 선발대를 이끌고 앞서 나가는 편이 좋겠다.”
비가 그쳤으니 다시 이동해야 한다. 그러기 전에 앞서서 몇 가지 방침을 결정했다.
“척후가 앞서 나가고는 있으나, 그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병력도 다소 앞서 나감이 좋겠다. 도순찰사는 기동력이 빠른 휘하 기병을 중심으로 일군을 편성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라. 혹시 대구를 우회하여 다른 길로 파고드는 적이 있을 수 있으니 세심히 살피라.”
“예, 전하.”
이쪽 세계 권율은 일찌감치 군 경험을 시작했으니 기병도 얼마든지 활용할 수가 있다. 균형 잡힌 병력 운용으로 좋은 성과를 내주었으면 좋겠다.
– 27 –
“우리는 두 방향에서 적에게 몰리고 있다.”
군의 분위기는 암담했다. 어제저녁에 간신히 합류에 성공한 후쿠시마 마사노리도 거의 말이 없었다. 자신을 따라온 조선 노부시 수천 명을 어찌 쫓아낼지 고민하는 모양이었다.
지금 남원 일대에는 세 무리나 되는 조선군이 있었다. 하나는 전주에서부터 따라온 정예병 1만 명, 다른 하나는 곡성 방면에서 후쿠시마를 따라온 2천 명, 그리고 교룡산성에 박혀 있는 한 무리였다. 이 패거리는 정확한 숫자를 알 수 없다.
이에 반해 일본군은 2만이 넘었다. 전주에서 돌아온 히데요시 휘하 병력이 1만 7천, 남원에 남아 있던 병력이 4천, 후쿠시마 마사노리가 데려온 병력이 3천이다. 물론 여기서 절반가량은 정규 병사가 아니라 일꾼이지만, 일꾼이라고 해서 싸움에서 빼기에는 상황이 너무 나빴다.
“정면으로 결전하기만 하면 분명히 우리가 이길 겁니다. 하지만 그게 너무 어렵습니다.”
구로다 나가마사가 조용히 보고했다.
“산성에 있는 적은 그렇다 치더라도, 나머지 두 조선군도 전혀 우리와 결전을 벌일 눈치가 없습니다. 우리 군사들이 잡으려 쫓아가면 후퇴하고, 대신 숲과 산에 의지해서 화살과 철포를 쏴대니 끝까지 쫓아갈 수도 없어서 환장할 노릇입니다.”
그나마 두려움의 대상인 전주 보병들은 일본군이 원기를 회복했음을 알고 진격을 멈췄다. 하지만 거기 딸린 기병들은 달랐다. 전주 인근에서 식량수집부대를 상대로 해서 발휘하던 그 기마술과 사격술을 여기 남원에서도 한껏 발휘했다. 정말이지 악몽 같은 존재였다.
조선 국왕이 얼마나 돈이 많기에 그게 가능한지는 몰라도, 이 기병들은 기마철포대다. 말을 달리며 철포를 쏘는데 백발백중이고, 철포도 두 자루씩 들었다. 몸을 가린 갑옷은 또 전신을 덮는 남만갑이었다. 조선이 저런 기병을 가졌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부러웠다.
“적을 확실히 쳐부순 다음에 후퇴하는 편이 가장 좋겠지만 어쩔 수 없다. 섣불리 후퇴하다 적이 협공을 가해오면 포위당해 괴멸할 수도 있다. 그러니 적을 속이고 빠져나간다.”
“어떻게 말입니까?”
“일단은 적이 공격해 오는 대로 맞아 싸운다. 그러다가 비가 많이 내려 적이 싸움을 멈추고 물러나면 동쪽으로 탈출한다.”
히데요시가 결론을 내자 몇몇 장수들이 의아해하며 반론을 제기했다. 의문을 제기한 이들은 대개 노부나가의 명령으로 배속된 요리키(파견무장)들이었다.
“하시바 공, 철수해야 하는 사정은 충분히 알겠습니다만, 그것이 왜 하필 비가 오는 날이냐 이 말입니다. 비가 오면 행군하기도 어렵습니다. 꼭 적의 눈을 피해야겠다면 야간에 움직이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비가 와야 적이 활과 철포를 제대로 쓰지 못하오. 더구나 우리는 이곳 길에 어두워 캄캄한 밤에 움직이면 자칫 엉뚱한 길로 가버릴 공산도 크단 말이오. 꼭 동쪽, 경상도로 가야 하오.”
낮이라면 웬만해서는 방향을 구분할 수 있을 만큼 밝다. 비가 오더라도 말이다. 히데요시는 그 점을 강조했다.
“군량과 화약을 각자 나눠서 지고 갈 수 있도록 몫을 나누고, 젖지 않도록 잘 싸두게 하라. 다음번에 비가 내릴 때 남원을 빠져나간다.”
“사또! 전주에서 내려온 훈련도감군 1만과 연락이 드디어 닿았습니다. 사자가 말한 바로는, 우별장 영감께서 ‘남쪽에 광주 향군장 고경명의 군사 2천도 있으니, 왜적을 3면에서 포위하고 협격하자’고 하셨다 합니다.”
“드디어 때가 왔도다!”
남원성에 처음 왜적이 나타난 지 거의 40일이 되었다. 조헌은 이제야 적을 완전히 몰아낼 수 있다는 기쁨에 성을 나가 싸울 군사들을 추렸다. 남원성과 주변 고을에서 온 군사 중에서 건장한 병사 4천 명 정도는 뽑아낼 수 있을 듯했다.
“이 정도면 도감군이 적과 맞붙을 때 뒤를 치는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으리라.”
조헌이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제 어깨도 다 나았으니 도끼도 다시 잡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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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명이나 되는 군사들이 저마다 상을 앞에 놓고 신나게 술잔을 기울이며 고기를 뜯었다. 비록 제대로 된 소반이 아니라 널빤지에 다리 네 개만 대충 붙인 수준이 태반이었지만 그게 뭐가 중요하겠는가. 모두 상을 받았다는 게 중요한 것이지.
본래 조선에서 잔치라고 하면 사람 하나당 상 하나씩 나오는 게 원칙이다. 그동안 몰려오는 적과 싸우느라 힘든 시간을 보낸 전라도와 경상도 군사들, 그리고 먼 길을 온 경기도 군사들 모두 앉아 모처럼 푸짐한 자리를 즐겼다. 준비한 술과 떡과 고기는 넉넉했다.
다만 손님인 전라도와 경기도 군사들은 모두 여기 한산도에 모였지만, 경상우수영 군사들은 절반밖에 모이지 않았다. 거제도에 소재한 각 진포와 가덕도, 통영 등지에 나가서 행여 적이 나타나지 않을까 지키는 군사의 수가 적잖기 때문이다. 물론 그쪽에도 따로 안배가 있다.
“두 수사를 진심으로 환영하오. 그동안 호남에 들어온 왜적을 맞아 정말 고생이 크셨소.”
“저희는 적 별군을 상대했고, 게다가 적이 곧 물러나면서 그 뒤로는 흥양을 포위하고 적이 나오기를 기다렸을 뿐입니다. 어찌 적의 본대를 상대로 분투하신 통상께 비하리이까.”
정걸과 이억기가 이순신이 그동안 거둔 전과를 칭송했다. 정걸이 이끄는 전라좌수영 함대는 이레 전, 이억기가 이끄는 전라우수영 함대는 사흘 전에 한산도에 도착했다. 충청수군이 와서 지켜야 할 담당구역을 인수하기까지 기다린 탓이다.
“통제사께서 불태우고 빼앗으신 적선만 이미 540여 척이나 되지 않습니까. 저희 두 수영이 잡은 적선 숫자를 모두 합쳐도 360척이 되지 않습니다. 더구나 저희 좌수영은 적에게 흥양을 통째로 빼앗기기까지 했고 말입니다.”
정걸이 한숨을 쉬었다.
“그나마 제대로 싸움을 시작한 뒤로는 피해가 크지 않았습니다만, 왜적이 흥양을 통해 계속 증병(增兵)하는데도 이를 막지 못했습니다. 실로 장수로서 부끄러울 뿐입니다.”
정걸은 자신이 제대로 책무를 수행하지 못한 탓으로 흥양이 적에게 넘어갔다 하여, 자신을 전라좌수사에서 해임하고 이 임무를 더 잘 수행할 수 있는 젊고 현명한 장수를 후임으로 보내 달라고 청한 바 있었다. 하지만 임금은 정걸을 유임시키면서 이를 이순신에게도 알렸다.
“그런 말 마시오. 전하께서 그대를 용서하시고, 앞으로 공을 세워 갚으라 하시지 않았소? 적이 호남으로 오지 않으리라고 정 수사께 이른 것도 조정 의견이었지, 정 수사께서 독단으로 판단한 게 아니라 하시면서 말이오. 앞으로 공을 세울 생각만 하시오.”
“알겠습니다, 통제사.”
오늘은 그동안 저지른 잘못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는 자리가 아니다. 여기 모인 이들은 죄를 캐는 대간이 아니라 일선에 설 장수와 병사들이었다. 그동안 치러온 힘든 싸움을 치하하러, 그리고 이제 앞으로 남은 싸움을 위해 서로를 격려하고자 모인 자리다.
수사들은 연달아 술잔을 나누었다. 이들 앞에 놓인 상에는 심지어 임금께서 내리신 고기와 설고, 어사주도 있었다. 이번에 경기수영 배들이 가져온 물건인데, 이순신은 혼자서 독점하지 않고 휘하 수사들과 나누었다. 두 수사 모두 이 술과 음식을 보고 임금의 은혜에 감읍했다.
술이 몇 순배 더 돌고 나자 거나해진 이억기가 분통을 터뜨렸다.
“그때 눈 딱 감고 역도 이진 놈을 처단했으면 오늘날에 와서 이런 망측한 꼴을 보지 않아도 되었을 겁니다. 실로 아쉽습니다.”
해서부가 난리를 일으켰을 때, 이순신은 적습을 받고 박살난 족친위를 재편성하고 이억기로 하여금 지휘하게 했었다. 그때 이억기는 비위를 저지르다 적발된 임해군을 군졸로 강등시키는 선에서 처벌을 끝냈다. 그 신분, 임금과 가까운 종친이라는 신분 때문에 말이다.
이억기는 이순신과 더불어 지난번 난리 때도 착실하게 공을 쌓았다. 심지어 이순신 휘하에 배치된 직속 장수였다. 그만큼 서로를 잘 알고 유대감도 깊었다. 술기운이라고는 해도, 이순신 앞에서 이억기가 이렇게 분통을 터트릴 수 있는 것도 두 사람의 친분 덕분이다.
“내 이미 말했지만, 지나간 일로 후회해야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전하께서 내리신 이 술을 한 잔 더 들고, 다음 싸움에서 더욱 분투하기 바라네.”
어사주를 받아 마신 이억기가 눈을 빛냈다. 그리고 들뜬 목소리에 한층 더 열기를 얹었다.
“이제 왜란은 끝입니다! 이미 육지에 오른 적이 수십만이라고는 하나, 수로를 끊어 본국과 연결하지 못하게 하면 저들이 어찌 오래 버티겠습니까? 또한, 우리 땅에 들어온 자들을 모두 없앤 뒤에는 지난 난리 때 북변에서 그랬듯이 그 소굴도 쳐부숴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이순신도 웃으면서 이억기의 호언장담을 수긍했다.
“발본색원, 독사를 잡으려거든 그 둥지까지 짓밟아야 한다고 했었지. 하지만 이 수사, 먼저 우리 땅에 들어온 왜적부터 소탕한 연후에야 저들의 소굴을 쳐부술 수 있네. 바다 건너 멀리 군사를 내는 일은 매우 어렵기도 하니, 전하께서 결단하셔야만 하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북변에서는 우리 땅에서 조금만 더 나가면 해서를 칠 수 있었지만, 왜국을 치려면 바다를 건너야 하니까 말입니다.”
정걸도 조심스럽게 이순신의 편을 들었다. 그는 연륜이 있는 만큼이나 신중했다.
“이제 경기수영 전선들까지 합류했으니, 이제 우리 전선 수는 2백여 척에 가까워졌습니다. 그만하면 수전에서 적을 쳐부수기에는 충분하나, 바다 건너 왜국을 직접 치기에는 역시 배가 모자랍니다. 수전으로 끝내지 않고 육군도 보내려면 이보다 훨씬 많이 필요합니다.”
지금 이순신 휘하에 집결한 전선은 총 182척에 달한다. 경상우수영이 전선 100척에 거북선 3척, 전라우수영이 전선 50척에 거북선 2척, 전라좌수영이 전선 19척에 거북선 1척이다. 여기 더해질 전력으로 경기수영 거북선 3척과 대전선 4척이 화약과 철환을 실은 배들과 함께 왔다.
“그래도 대마도 정도는 칠 수 있을 거요. 마침 전하께서 대마도를 쳐서 적의 양도(糧道)를 끊으라는 명까지 내리셨으니, 그 계획도 세워봅시다.”
“대마도 공격이라…경상좌수군이 있으면 좋았겠군요. 아쉽습니다.”
대마도는 경상좌수영이 맡아 지키는 구역이었다. 대마도에는 진포가 없어서 전선을 상설로 배치하지는 않았지만, 각 진포가 돌아가면서 수졸과 전선을 파견해서 방어 임무를 맡았다.
“그 점이라면 다행스럽게도, 서평포 군사들을 구출해 놓았소. 서평포는 경상좌수영에 속한 진포라서 장수와 수졸들이 다 대마도를 오간 경험이 있으니, 우리 전선들이 대마도에 간다고 하면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거요.”
“그럼 충분합니다. 날씨를 살펴 바다를 건너기 좋은 날짜를 잡아야겠습니다.”
“날씨도 날씨지만, 어명이 내린 이상은 되도록 빨리 가는 편이 좋겠소.”
이순신이 서두르고 싶다 해도 오늘 당장은 안 된다. 특히 경기수영에서부터 계속 배를 저어 온 경기도 수졸들은 지쳐 있어서 적어도 며칠은 쉬어야 했다. 그 점을 잊지 않은 세 수사는 계획만 먼저 짜두기로 했다. 대략적인 계획을 수립하자 이순신이 잠시 다른 이야기를 했다.
“전선 2백여 척이라 하니 생각이 났는데…그러고 보니 내가 어제 아침에 꿈을 꾸었소.”
“어떤 꿈이십니까?”
정걸이 물었다. 이억기도 눈을 빛냈다.
“꿈에서도 왜적이 쳐들어왔소. 헌데 나는 전라좌수사였고, 경상우수사를 맡은 이가 글쎄 전 아산보만호 원균이 아니겠소.”
“예에에에?”
두 사람의 눈이 동그래졌다. 원균은 임해군의 적당에 참가한 혐의로 삼남 전역에 추포령이 내려진 상태였다. 다만 동생 원전이 흥양에서 용전하다 전사했음이 뒤늦게 알려져, 원씨 일가 전체가 역당으로 몰리는 위기는 면했다.
“원균이 경상우수군을 다 흩어버리고 도망가고, 그 뒤에 몇 년에 걸쳐서 전쟁이 계속되다가 이런저런 안 좋은 일이 겹쳐서 삼도수군통제사인 내 밑에 전선 단 13척밖에는 남지 않았소. 그 전선들을 거느리고 울돌목 앞에서 밀려오는 왜선 5백 척을 노려보다 잠이 깨었소.”
정걸은 잠시 이순신이 꾼 꿈의 의미를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알큰하게 취해 있던 이억기는 웃음보부터 터트렸다.
“이제 전선 2백여 척을 거느리실 분께서 겨우 13척이라니요! 그건 그저 개꿈입니다. 한 번 크게 웃고 잊어버리십시오.”
“그게 좋겠지?”
이순신이 웃자 정걸도 따라 웃었다. 77세, 46세, 30세인 세 수사가 즐겁게 웃었다. 드디어 수군이 본격적으로 적을 응징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