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519
2부 297화
– 11 –
황진이 이끄는 기병대가 마침내 가림막 노릇을 하던 언덕 그늘을 벗어나 왜군을 바로 보는 측면으로 나왔다. 잠시 발을 멈췄던 왜적은 사격전을 벌여서는 승산이 없음을 깨달았는지, 곧 진군을 재개하여 아군 진영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아직 이쪽은 눈치채지 못했다.
“왜장이 바보는 아니로군. 왜조총이나 왜궁이나, 모두 우리 흑각궁보다 유효사거리가 짧은 것 정도는 아는 모양이니.”
왜조총은 50보 정도, 왜궁은 30보 정도까지 다가가야 제대로 적을 노려 쏠 수 있다. 하지만 흑각궁은 130보 떨어져 있는 사람 정도는 우습게 맞힐 수 있다. 심지어 조총도 조선제 조총은 활강조총도 80보 정도 떨어진 사람을 노려 쏠 수 있으니, 왜조총보다 훨씬 우월하다.
왜장도 그 사실을 알기 때문인지 조란환과 화살 세례를 받으면서도 계속 군사들을 전면으로 내몰았다. 휘하 각 제대에 돌격하기 전에 대열을 다시 한번 정비하라는 지시를 전달한 부장이 당연한 질문을 던졌다.
“자기가 예상한 것보다 우리 군사가 훨씬 강력하다는 걸 이제 알았을 텐데 적장이 왜 계속 공세를 계속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러나서 군사를 재편하는 게 옳지 않은지요. 야인들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합니다.”
부장은 오랫동안 복무한 노련한 무인이기는 해도, 왜군과 접해본 경험은 없는 평범한 북변 출신 무관이다. 부여주 판관으로 재임할 때부터 왜별기와 접촉이 있었던 황진과 경험한 바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야인들이야 노략질이 목적이니 불리하다 싶으면 바로 도망치지. 하지만 지금 저 왜병들은 우리 땅을 빼앗으러 왔으니 우리 군세를 정면으로 쳐부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지금 물러나면 다음번에는 아군 진영에 저만큼 접근하려면 더 큰 손해를 입어야 하리라는 걸 아는 거지.”
이번에는 적을 가까이 끌어들이려고 일부러 최대사거리에서 포를 쏘지 않았다. 하지만 적이 아군의 존재를 알고 싸움을 시작한다면 최대사거리에서부터 모든 화력을 퍼붓는 게 당연하다. 이미 일차 피해를 본 적이 그 손해를 감당할 수 있을까?
“지금 저들은 한 발자국만 더 나가면, 단병접전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이긴다고 계속 되뇌고 있을 걸세. 창칼로 우리 궁수들을 쳐 죽이고 포를 빼앗을 궁리를 하고 있겠지. 북방 병사들이 활과 창을 모두 귀신같이 다룬다는 점은 까맣게 모르고.”
북병이 쓰는 창은 6척(1.8m), 왜장창보다 훨씬 짧다. 하지만 이들은 창을 휘둘러 적을 찌를 뿐 아니라, 적의 창이 닿지 않는 10보 거리에서 던져서 적을 꿰뚫는 재주도 익히고 있었다. 이것 역시 사냥이 생활의 일부인 북병이니 가능한 솜씨다.
“도순찰사께서 조총을 쏘라 명하셨습니다!”
천 자루나 되는 조총이 일시에 불을 뿜자 왜병 수백 명이 일시에 바닥에 쓰러졌다. 화살과 조란환에 맞아 이미 듬성듬성해진 왜군 선두 대열이 괴멸되었다.
“그래도 응사를 시도하지 않고 계속 전진만 하는군요. 역시 자기들이 가진 총과 활은 아직 쏘려면 멀었다는 걸 아는 모양입니다.”
“왜장이 바보가 아니라는 증거지.”
왜장을 칭찬하는 건지, 비꼬는 건지 모호한 평가였다. 부장이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사이 황진이 자신의 기다란 환도를 뽑아 들었다.
“자, 대열 정비는 다 마쳤으렷다! 모두 고삐를 잡아라! 말을 후려쳐라! 왜적을 쓸어내자!”
폭풍 같은 함성이 벌판을 진동시켰다. 곧이어 천둥소리 같은 말발굽 소리가 지금 싸우고 있는 양측 군사들의 귀를 울렸다. 한편에는 환희를, 다른 편에는 절망을 주는 소리였다.
– 12 –
적 전열 선두는 이쪽에서 쏘아대는 포화에 맞아 거의 녹아내렸다. 20문이나 되는 대포에서 쏘는 조란환, 2천 5백이나 되는 궁수, 1천 명이나 되는 조총수가 퍼붓는 사격이다. 승병들은 여기 가담하지 않고 적이 근접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적은 이런 엄청난 불벼락을 뒤집어쓰면서도 계속 다가왔다. 마침내 왜병들이 50보 거리까지 접근하자 지뢰도 터졌다. 다만 적 대열 선두가 아니라 대열 한가운데, 아군 진영에서는 2백 보쯤 떨어진 자리였다. 왜병들이 비명을 지르며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보습이 보였다.
“이제야 터졌군요. 저놈의 촛불신관은 정말 언제 터질지 알 수가 없습니다.”
부장이 혀를 찼다. 역시 지뢰는 삼성부에서 써먹었을 때처럼 도화선으로 바로 점화하는 게 가장 확실했다. 여섯 개나 묻어두었는데 이제 겨우 하나 터졌다.
“어허, 그래도 좋은 점도 있지 않나? 자기들은 나중 차례라고 안심하고 있었을 뒤쪽 놈들이 날아갔으니, 이제 혼란이 더 커질 걸세.”
권율은 여유만만했다. 이제 곧 황진의 기병들이 측면에서 적을 들이친다. 그러면 적 대열은 붕괴할 것이고 적은 장기로 삼는 단병접전을 시도하지도 못할 것이다. 설사 때를 놓쳐 왜적이 아군 진영으로 뛰어드는 데 성공하더라도 대처할 방안은 준비되어 있었다.
“기름통과 짚더미를 적절히 배치해두라는 내 지시는 이행했는가?”
“물론입니다, 대감.”
적이 뛰어들면 군사들을 구릉 위로 불러올린 뒤 마을에 불을 지른다. 화약도 적당히 남겨서 화염지옥을 맛보여준다. 그리고 불로 쌓은 장벽 뒤편에서 계속 적에게 포환과 화살을 퍼부어 피해를 준다. 불을 우회할 여유까지는 적에게 없을 터였다.
“대감! 조방장이 별군을 끌고 나왔습니다!”
“오, 그럼 불은 안 질러도 되겠군.”
붉고 푸른 두정갑으로 무장하고 기창(騎槍)과 편곤을 소지한 철기 1천 기, 각자 좋을 대로 걸쳐 입고 왜도를 찬 왜인여진 1천 기가 좌측 언덕 사이에서 쏟아져 나왔다. 적 우익을 향해 쇄도하는 그 선두에 빛나는 남만갑을 입고 장검을 높이 쳐든 황진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조방장의 칼은 확실히 왜도를 닮았단 말이야.”
황진이 쓰는 칼은 전란 전에 황진이 군기시에 따로 주문해서 만든 물건이다. 천축산 강철로 만들어 물결무늬가 있다고 했던 말이 분명히 기억났다. 참 인상적인 특징이다.
황진은 말 위에서 휘두르기에는 저 칼이 보통 환도보다 훨씬 좋다고 했다. 왜인여진이 쓰는 왜도도 황진의 칼과 꽤 흡사한 것을 보면, 기병이 쓰기에 좋은 칼은 어디든 비슷한 모양이다.
“그래도 창이 더 길고, 편곤이 더 배우기 편하지 않습니까?”
칼은 제대로 베어야 적을 죽일 수 있지만, 편곤은 방향에 상관없이 휘두를 수 있다. 갑옷을 입어서 칼날이 들어가지 않는 상대라고 해도 후려쳐 넘어뜨릴 수 있다. 게다가 휘둘러서 닿는 범위도 더 넓다. 권율은 의문을 표하는 부장에게 선선히 답했다.
“하지만 군사들을 지휘하는 장수에게는 칼이 더 어울리기는 하지. 눈에 띄니까.”
장수가 휘두르는 칼은, 특히 그 번쩍이는 날은 실제로 적을 얼마나 베는가와 상관없이 주위 군사들의 시선을 끌면서 우리 편의 사기를 높이는 역할도 한다. 황진이 도감군에서 남만갑을 일부러 한 벌 빌린 이유도 거기 있었다. 군사들이 자신을 주목하게 만들기 위한 수단이었다.
“보게, 적이 무너지네!”
황진이 이끄는 2천 기병들은 모두 활을 가지고 있었다. 적진을 2백 보 앞에 두고 군사들이 일제히 시위를 놓았다. 깃털을 펄럭이며 바람을 가른 화살들이, 연달아 적진에 떨어져 왜병의 몸통과 팔다리를 꿰었다. 곧 두 번째 화살비가 쏟아졌다.
전면에 있는 권율의 위장진영을 몰아치는데 모든 관심을 집중하던 왜병들은 갑자기 화살을 퍼부으며 달려드는 조선 기병을 보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대열 우측에 있던 왜병 일부가 급히 방향을 돌려 방어진을 펴려 했지만, 화살 세례에 곧바로 무너졌다.
그리고 그 혼란 속으로 황진을 필두로 한 1천 기에 달하는 철기가 뛰어들었다. 9척(2.7m)에 달하는 기창이 적의 가슴을 찌르고, 내장을 후벼팠다. 편곤을 휘둘러 나무막대에 쇠를 씌운 자편(子鞭, 도리깨의 짧은 쪽)으로 왜병의 머리를 후려치자 골통과 투구가 함께 으스러졌다.
철기가 꿰뚫고 지나가며 적진을 헤집어놓은 뒤로 왜인여진들이 괴성을 지르며 뛰어들었다. 기다란 왜도가 번쩍이며 빛날 때마다 왜병들의 머리가, 팔다리가 떨어져 땅바닥을 굴렀다. 그 뒤에서 잇달아 터지는 지뢰들이 적진에 혼란을 더했다. 사이사이에 총성도 섞여 있었다.
“지뢰가 늦게 터지는 덕을 보는군. 역시 세상만사는 새옹지마야.”
“혹시 우리 군사들이 말려들지는 않겠습니까, 대감?”
“황 조방장이 지뢰 위치를 다 알고 있으니 괜찮네. 보게나, 잘 피해서 가고 있지 않나.”
황진은 이미 권율 휘하 군사들이 쏘는 화살과 탄환을 뒤집어쓰고 만신창이가 된 적 전열은 건드리지 않았다. 대열을 아직 유지하면서 전방에 있는 우군을 지원할 준비를 하고 있던 왜군 후열을 쳤다. 아직 터지지 않은 지뢰가 있는 위치는 절묘하게 피하며 적을 짓밟았다.
왜군 조총수나 궁수들은 대열을 무너뜨리며 도주하는 자기편 병사들에게 밀려나서 황진을 겨누지 못했다. 기병 2천 기는 어느새 적 우군 후열을 완전히 무너뜨렸고, 이제는 좌군까지 짓밟으려는 참이었다.
“좋아, 황 조방장이 아주 잘 해치우는데? 마치 체사르의 기병대장 안토니우스 같군!”
권율이 껄껄거리며 웃었다.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자, 우리도 맡은 몫을 해야겠지. 어서 쏘아라! 적도들을 모조리 쓰러트려라!”
권율의 호령이 떨어지자 별군의 활약을 보느라고 넋이 나갔던 군사들이 황급히 조총과 활을 고쳐잡았다. 총탄과 화살이 수없이 날아가 적을 맞춰 쓰러트렸다. 별군 기병들은 충분히 멀리 떨어져 있고 왜군은 많으니, 유시(流矢)나 유탄(流彈)이 아군을 다치게 할 염려는 없었다.
전면에서는 시석이 계속 쏟아지고 후방은 기병이 휩쓸자, 마침내 적 전열이 붕괴하고 적이 물러나기 시작했다. 권율이 쉼 없이 다음 지시를 내렸다.
“중대별로 전진하며 계속 총과 활을 쏘아라! 유독 돌출하는 왜적이 있으면 그쪽으로 사격을 집중하라! 승병들은 창을 들고 단병접전에 대비하고, 혼전이 벌어지면 북병도 가세하라!”
아직은 보병들까지 창을 들고 돌진할 시점은 아니었다. 적 대열이 완전히 무너지면 기회를 노려서 한 번에 몰아쳐 끝장을 낸다. 얼마 안 남았다.
– 13 –
싸움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국면으로 전개되었다. 적이 버리고 달아나는 진영에 화포 몇 문 남아 있는 정도야 이해할 만했다. 포수들은 정예병이라 싸울 의사가 남았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바로 그 직후에 일어난 일부터는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존재를 드러낸 화포 4문을 포획하려고 서둘러 달려가니, 20문 가까운 포가 더 있었다. 게다가 수천 명이나 되는 궁수가 매복하고 있다가 화살을 퍼부었다. 천 명 가까운 철포병까지 있었다.
그것까지만 해도 감당할 만했다. 분명 교스케 놈은 저항이 강할 거라고 하지는 않았어도 적 5천 명이 있을 거라고는 했으니까. 전진하면서 사격을 받아 피해를 보더라도, 5천 명 정도는 근접전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이길 수 있었다. 이것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땅속에서 터지는 지뢰는 완전히 날벼락이었다. 게다가 측면을 강타한 조선 기병 2천 기는 도저히 감당이 불가능했다. 적에게 저런 대규모 기병이 있다는 이야기조차 듣지 못하고 싸움을 시작했는데, 무슨 수로 대비를 하겠는가.
“교스케! 교스케, 이 자식 어디에 있나!”
토다 카츠타카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놈은 분명히 옆에 서 있었다. 호소카와, 하치스카 양 군이 순조롭게 진격할 때는 분명히 자신의 오른편에 서서 그것 보라며, 자기가 말한 대로 전부 들어맞지 않냐며 한껏 뽐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잘난척쟁이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놈은 간자가 분명합니다! 제가 믿지 마시라고 그렇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전군이 무너질 판이건만, 이 상황에서도 국경인이라는 놈은 자기가 옳았다는 점만 계속해서 강조했다. 그것도 카츠타카의 판단을 깎아내리면서,
“시끄럽다, 꺼져버려!”
카츠타카는 병사들을 시켜서 국경인을 진영 뒤쪽으로 끌고 가게 했다. 그새 조선 기병들은 좌군과 우군 후열에 있는 병력 5천을 완전히 짓밟아버리고 강가까지 가서 반전하고 있었다.
“혹시 앞에 있는 우군을 뒤에서 치려는가?”
호소카와군과 하치스카군은 뒤쪽 절반이 완전히 박살 났다. 적이 지금 후방에서 공격한다면 두 군 모두 완전히 붕괴한다. 하지만 적은 오른쪽이 아닌 왼쪽으로 반전했다. 즉, 카츠타카가 있는 본진을 노리고 있었다. 위험을 깨달은 군사들이 웅성거렸다.
“전군은 방어태세를 취하라! 짐꾼들도 짐 따위는 던져버리고 싸울 준비를 해라! 공을 세운 자는 그게 누구건 무사로 신분을 올려주겠다!”
놀란 중신 한 명이 말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주군, 짐꾼들은….”
“지금 그걸 가릴 처지냐! 전군이 무너질 판이다!”
철포병이나 궁병은 모조리 공격부대로 보내버렸다. 지금 본대에 남은 병력은 창병 2천밖에 없고, 적을 막을 장애물도 없다. 하다못해 임시 장벽으로 삼을만한 짐수레도 부족했다. 그런데 6천이나 되는 인력을 그대로 놓아두란 말인가?
“우리가 버티면, 그 사이 호소카와군과 하치스카군이 적 본진을 격멸할 수 있다. 어떻게든 견뎌야 한다. 우리는 상주를 함락해야 한단 말이다!”
“하지만, 적에게는 우리 예상보다 훨씬 강한 병력이 있었습니다! 지금 억지로 저들과 싸워 이긴다 한들, 또 다른 강군이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나이든 중신들이 필사적으로 카츠타카를 말렸다. 물러나라고 말이다.
“주군! 아직 본대가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동안에 물러나야 합니다! 방어태세를 취하면서 천천히 물러나면 적 기병도 섣불리 덤벼들지는 못할 겁니다.”
“지금 총대장인 내게 먼저 전장에서 도망치라는 건가!”
카츠타카는 미쳐 날뛰었다. 이번이야말로 엄청난 전공을 세울 기회였다. 노부나가의 명에 따라 상주를 함락시키기만 하면 포상과 출세는 결정된 거나 다름없었다. 장차 벌어질 명나라 원정에서도 중책을 맡고 길이길이 이름을 남기게 되리라.
지금 도망치면 그 모든 게 허상으로 날아간다. 적이 기습으로 아군에게 타격을 주었다고는 하나, 수는 아군의 반도 안 된다. 어떻게든 잘 싸우다 보면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었다.
“안된다! 선봉에 나선 양 군이 적장 권율을 베고 적 본진을 물리칠 때까지 버텨야 한다!”
카츠타카가 발작적으로 고함을 지르는 참에 앞쪽에서 비명 섞인 보고가 들려왔다.
“적 기병이 우리를 향해 옵니다!”
과연 방향 전환을 마친 조선 기병들이 본대 쪽으로 밀려오고 있었다. 카츠타카가 허리에 찬 칼손잡이를 잡는 순간 수천 개나 되는 화살이 공중으로 떠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아악! 으아악!”
기병을 막기 위해 열을 맞추어 창을 겨누던 본진 병사들이 쏟아지는 화살에 맞아 허무하게 쓰러졌다. 옆으로 길게 벌려 서 있던 장창진은 화살 세례를 받자마자 순식간에 구멍투성이가 되었고, 그 틈으로 조선 기병들이 뛰어들었다.
“저놈들은 일본인이군!”
카츠타카가 칼손잡이를 잡은 채 이를 갈았다. 조선 기병은 조선식 포제(布製) 갑옷을 입은 자들과 안 입은 자들의 두 부류였는데, 포제 갑옷을 안 입은 자들은 일본식 칼인 타치(太刀)를 휘두르고 있었다. 개중에는 일본식 갑옷을 입은 자들까지 있었다.
“속았다, 속았어! 교스케 그놈에게 속았어!”
확실히 알았다. 그놈은 저놈들처럼 조선 쪽에 붙은 왜인 패거리였다. 카츠타카를 자기들이 준비한 함정으로 확실히 끌어들이기 위해 잠입한 것이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주군! 어서 피하십시오! 이미 늦었습니다. 가문을 생각하십시오!”
주군이 죽으면 가문도 끝이다. 신하들은 카츠타카를 억지로 끌다시피 하면서 말에 태웠다. 이미 조선군은 카츠타카의 깃발이 선 본진 코앞에까지 당도해 있었다.
“분하다!”
조선 기병들이 전열을 돌파하면서, 짐꾼들은 제대로 싸울 각오도 하기 전에 그대로 무너져 도망쳤다. 카츠타카는 말에 올라탄 채 그 광경을 보아야 했다. 너무 비현실적인 광경에 기가 막혀 말을 모는 것도 잊은 그를 향해 신하들이 고함을 쳤다.
“주군! 위험합니다!”
날아든 화살이 그를 둘러싸고 있던 기병들을 줄줄이 낙마시켰다. 급히 말 옆구리를 걷어차 말을 몰면서 고개를 돌리니 조선 기병 한 떼가 어느새 바로 앞에까지 달려와 있었다. 주군이 몸을 피할 수 있도록 막아서는 근습 무사들을 뒤에 남기고 말을 달리는데, 적이 앞을 막았다.
남아 있던 우마마와리 셋이 급히 앞으로 나섰지만, 순식간에 셋 다 피투성이가 되어 말에서 떨어졌다. 남만갑을 입고 타치를 든 조선 장수가 고함을 치며 카츠타카에게 달려들었다.
카츠타카도 칼을 뽑아 들고 적장에게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몇 합 주고받기도 전에 승부는 났다. 적장이 휘두른 칼이 정확하게 갑옷 틈을 파고들어 카츠타카의 목을 찔렀다.
“적장을 베었다! 이제 전군은 다시 반전하여 도순찰사 대감의 진을 공격하고 있는 왜적들을 쳐서 멸하라!”
왜장의 목을 벤 황진이 고함을 쳤다. 짐꾼이 태반인 적 본진을 섬멸하기보다는 아직 버티고 있는 적 전투병들을 먼저 섬멸해야 했다. 그러고 나면 이 싸움은 사실상 끝이 나는 셈이다.
새 칼은 확실히 마음에 들었다. 무자년 난리 때 도감군이 쓰는 남만식 칼을 보고 튼튼함이 마음에 들어 군기시에 연줄을 넣어 좋은 철로 남만식 환도를 하나 만들어 달라고 했었다.
군기시에서는 남만 장인들이 사흘 밤낮을 벼려 만들었다면서 이 칼을 보냈다. 과연 그 정성 덕분인지, 수많은 왜적을 베고 그 피를 머금었으면서도 칼날은 여전히 영롱하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