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52
1부 05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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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께서 애초에 총을 만들지 않으셨다면 대국에서 총을 내놓으라고 요구할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게 다 전하께서 덕으로 만물을 교화하실 생각은 하지 않으시고 병기 따위 무용한 물건에 마음을 빼앗기어 재정을 낭비하신 탓입니다.”
“그 입 다물라!”
드디어 때가 왔다고 날뛰는 대간들의 개소리 따위 듣고 있어 줄 마음의 여유가 없다. 명나라 황제가 보낸 칙사가 객관에서 총이 완성될 날만 기다리고 있단 말이다.
“황제가 우리 조총을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이리라 생각하는가?”
“그야 당연히 더 보내라고 하지 않겠사옵니까. 어쩌면 장인을 시켜 대국에서 직접 만들 수 있도록 야장(冶匠)들을 북경으로 보내라고 명할 수도 있사옵니다.”
영의정 한치형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전하께서 총을 만드신 일은 나라를 위해 군비를 강화코자 하신 일이었으니 잘못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지금 칙사의 요구에 응하는 일이 급하온데…신의 생각으로는 달라는 대로 일단 총을 세 자루 정도 주어서 보냄이 어떨까 하옵니다.”
“칙사가 달라는 대로 총을 주자고?”
“그렇습니다. 일단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명나라와 사이가 심히 악화될 것이옵니다. 일단은 총을 주고, 그 뒤에 돌아오는 반응을 보고 대처할 방안을 따져 보면 어떠할는지요.”
“사수도 보내라는데 그 요구도 들어주어야 하오?”
“굳이 강제로 보낼 필요야 있겠습니까. 후한 포상을 약속하면 한 명 정도는 자원할 것이옵니다.”
“끄응.”
그래, 세 자루 줘 버리고 말면 편하지. 하지만 선뜻 그렇게 할 수는 없다. 자칫하면 내 조총이 중국에서 대량으로 생산되어 거꾸로 나를 향해 겨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 조총은 본질적으로 화승총이다. 이 시대를 초월한 기술로 제작한 것도 아니다. 일단 중국에서 총을 분해해서 구조를 파악하면 조선에서 온 기술자 없이도 얼마 안 가서 동일한 복제품을 양산할 수 있을 거다. 명나라와 조선은 투입할 수 있는 자원에서 자릿수가 다르니까.
“명나라가 전하께서 만드신 총을 장비하게 되면, 추후 달단을 비롯한 만이(蠻夷)들과의 전투에서 크게 유리해질 것입니다. 황제도 전하께서 베푸신 후의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겨우 총 몇 자루를 아까워하실 일이 아니옵니다.”
병조판서 이계동도 어서 총을 주자고 했다. 그래, 정치적으로는 총 주고 끝내는 게 맞다. 하지만 내 꿈은? 만주벌판으로 북진하는 내 꿈은?
내 군사들과 같은 수준의 총으로 무장한 명나라 대군과 충돌할 생각만 해도 온몸이 떨렸다. 안 그래도 군대 규모에서는 절대 명나라를 능가할 수 없는데, 화력 우위도 없다면?
명나라 군대뿐일까? 여진족들도 이 총을 들게 될지 모른다. 강선총으로 무장한 여진족 스나이퍼들이 만주 각지에서 신나게 조선군을 저격하는 상상만 해도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전하, 중국에 총을 넘기기 꺼려지는 이유가 혹 있으신지요?”
조용히 내 표정을 살피던 이조판서 신수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젠장, 내 표정에 감정이 너무 솔직하게 드러났던 모양이다. 일단 거짓 핑계를 대 보았다.
“음, 과인은 한 가지 우려되는 바가 있소. 총을 바쳤다가는 후일 황제가 조공으로 과도한 총을 요구해서 우리가 무척 곤란해지지 않을까 하는 거요.”
“전하, 지금 총을 바치지 않아도 상황이 곤란해질 것은 분명하옵니다.”
맞는 말이니 할 말이 없군.
“명나라에 총을 제공했다가 자칫 그 총이 야인들에게 넘어가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소.”
“명나라 조정은 화포와 화약을 철저히 관리합니다. 요동도사가 만드는 것도 아니고 북경에 있는 조정에서 만든다면 야인들에게 넘어갈 일은 없사옵니다.”
하긴 훨씬 훗날에 누루하치가 후금을 일으켰을 때까지도 명군은 화력에서는 압도적인 우위를 지켰다. 후금군은 명군에서 전향한 투항자들을 대규모로 받아들이고 나서야 명군과 맞먹는 화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기껏 과인이 공을 들여 천하에 유례가 없는 새 병기를 개발했소. 이는 우리 조선만 보유한 특별한 무기로서 남겨두고 싶소. 명이 비록 상국이라 하나, 어쨌든 타국인 건 분명하지 않소. 나라간의 일이란 변화무쌍한데, 어찌 계속 명과 우리가 한편이리라 장담할 수 있겠소?”
“그건 그렇사오나….”
신수근은 이번에는 딱 잘라 아니라고 말하지 못했다. 아마 광해군이나 인조 시기였다면 내가 이런 핑계를 대지 못했을 것이다. 명이 임진왜란에서 조선을 도운, ‘재조지은(再造之恩)’을 베푼 뒤이므로 명을 속이고 뒷주머니를 찬다는 건 생각도 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조선 전기다. 지금 조선 지배층에는 대국의 눈치를 본다는 의식은 있어도 명나라에게 빚을 졌다는 인식은 없다. 아직 도움을 받은 적이 없으니까.
“확실히…명에게 우리가 가진 것을 모두 보여줄 필요는 없긴 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조총이 있음을 알고 찾아온 저들에게 총을 주지 않을 수는 없으니….”
신수근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때, 이제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던 유자광이 갑작스럽게 자기 의견을 밝혔다.
“전하, 칙사가 달라는 대로 총을 주시옵소서. 그 편이 사직을 위해서도 좋사옵니다.”
다른 사람 아닌 유자광이 이런 소리를 할 줄이야! 더군다나 유자광은 내가 장차 명나라와 전쟁을 무릅쓸 의사가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도대체 무슨 계산으로 저런 소리를 하는지 알 수 없어 멍하니 보기만 했다. 주변의 시선을 받으면서 유자광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총을 주되, 내부에 강선을 파지 않은 총을 주면 되지 않겠습니까? 저들이 그 총에 원래 강선이 있는지 없는지 어찌 알겠습니까? 탄환을 재어 쏘더라도 강선이 없으면 그 날아가는 거리나 정확함이 훨씬 못할 테니, 장차 명군이 그 총으로 무장해도 큰 위협은 아니 될 것입니다.”
그제야 생각이 났다. 조총 생산 초기, 중신들을 모아 놓고 활강총으로 시험사격을 한 적이 있었다. 총통에 왜 돈을 더 들여서 강선을 파야 하는지 이해를 못 하는 신하들에게 보여주느라 말이다. 나도 까먹고 있던 일을 기억해 내다니, 유자광은 역시 영리한 사람이다.
물론 내 조총은 강선을 안 새겨도 ‘진짜 조총’보다 성능이 훨씬 우수하다. 개머리판 달고, 총열도 더 길게 하고, 가늠자랑 가늠쇠도 달았으니 말이다. 강선 없이 구슬 모양 탄환을 쏘더라도 진짜 조총보다는 유효사거리도 길고 명중률도 높을 거다. 내가 왜 이걸 못 떠올렸지?
“좋은 생각이로다! 겸도총관의 말이 옳다. 군기시에 일러 강선이 없는 조총을 세 자루 준비하고, 금과 은으로 장식하라 일러라. 사흘 뒤에 칙사에게 전달하겠다!”
그래, 명나라 황제를 상대로 사기 한 번 쳐 보자. 명나라에서 이 활강식 조총 샘플을 받고 만족해서 입을 다물면 그걸로 된 거고, 혹시 말을 바치듯 매년 총을 바치라고 하면 그건 그거대로 괜찮다. 바가지를 왕창 씌워 팔아먹을 테니까.
지금은 여건상 총을 많이 만들지 못한다. 하지만 명나라 조정이 대량으로 내는 조총 발주를 받는다면, 명나라 돈으로 총기생산설비와 인력을 대대적으로 확충할 수 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조공용으로 생산한 총에 강선만 파서 조선군을 무장시킬 수 있다.
조선은 공물로 바친 말 대신 베를 받았지만, 나는 총을 넘긴 대가로 베 따위는 받지 않겠다. 총값은 염초 아니면 은으로만 받을 테다. 가능하면 염초가 더 좋겠지?
대량의 총을 육로로 수송하기에는 부담이 너무 크니, 선박으로 수송하게 해달라고 해서 해로를 터야겠다. 서울에서 총을 배에 싣고 한강을 거쳐 바다로 나간 다음 육지를 따라 나가면 북경의 입구, 천진으로 바로 갈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고 보니 천진은 지금도 천진인가?
총을 싣고 간 배는 돌아오는 길에 뭐든지 좋으니 중국에서 들여올 수입품을 싣고 오도록 하자. 가는 길에는 총을 팔아 돈을 벌고 오는 길에는 무역으로 돈을 벌면 제법 짭짤할 듯싶다. 야, 이거 진짜 전화위복인데? 사기를 친 게 들키면 그때 가서 다시 고민하자고.
여기까지 생각하다 보니 명나라가 샘플 요구로 그치지 말고 공물로 총을 바치라고 확실히 지시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헌데 이때 갑자기 망치로 머리를 두드리는 충격이 왔다. 아직 한 가지 문제가 남아 있었다.
– 16 –
“총이 다 되었습니다. 여기 보시지요.”
연회가 있은 지 닷새째 되는 날, 칙사가 보는 앞에서 내가 손수 상자를 열었다. 좋은 향나무로 만든 상자 세 개는 모두 안에 솜을 채우고 그 겉을 비단으로 덮었고, 그 위에 조총이 한 자루씩 놓여 있었다. 총열과 총몸, 개머리판에는 모두 금과 은으로 용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황제께서 직접 보실 물건들이니 성의껏 만들었습니다. 칙사께서 보시기엔 어떠한지요?”
“훌륭합니다, 훌륭합니다. 다만 이 아름다운 외양 못지않게 그 위력은 어떠한지, 방포하는 모습을 지금 한 번 보고 싶습니다.”
“당연하신 소망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준비해 두었습니다. 다만 황제께 바칠 총을 범인(凡人)이 손대게 할 수 없으니, 저희가 쓰는 다른 총으로 시연해 보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사신을 안내해서 경회루에 올랐다. 이미 조정의 문무 대신들이 그 위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칙사와 내가 올라오는 모습을 보고 정중히 예를 올렸다.
“자, 높은 곳에서 보시지요.”
난간 앞에 서니, 연못 건너에 철릭 차림을 한 내금위 군사 3명이 서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칙사와 함께 모습을 나타내자 3명 모두 사격 지휘를 맡은 군관과 함께 일제히 예를 올렸다.
표적으로는 30보 앞에 기둥 여섯 개를 세워 두었다. 기둥 꼭대기에는 사람 머리통만한 단지가 한 개씩 얹혀 있고, 그 속에는 붉은 물감을 풀어 색을 낸 물을 가득 채워 놓았다.
“방포를 시작하라.”
내가 지시를 내리자 앞으로 나선 내관이 천을 흔들어 신호를 보냈다. 고개를 끄덕인 군관이 곧바로 구령을 내렸다.
“방포 개시!”
세 사람 모두 민첩하게 움직였다. 총구로 화약을 붓고, 꽂을대로 다지고, 탄환을 넣고, 불접시에 점화약을 붓는 과정이 모두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조총 세 자루가 일시에 불을 뿜었다.
“명중이오!”
표적 세 개가 모조리 한 방에 박살이 나며 주변에 붉은 물을 뿌렸다. 사수들은 발포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재장전을 시작했다. 감탄한 칙사가 흥미진진한 눈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또 총성 세 발이 울리고 나머지 표적 세 개가 박살났다. 칙사는 박수를 치며 탄성을 발했다.
“정녕 놀랍습니다! 가볍고 빠른 것이 저렇게 정확하기까지 하다니! 정녕 조선의 재주가 놀랍습니다!”
“칙사께서 칭찬이 과하십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보고 있던 내 마음에도 안도감이 들었다. 30보(36m)밖에 안 된다고 하나, 아무래도 명중률이 떨어지는 활강총으로는 조금 불안했다. 박원종이 솜씨 좋은 사수를 엄선해서 지난 사흘 동안 맹연습을 시킨 효과가 있었다.
사자에게는 활강총을 건네주면서 시범사격은 강선총으로 하는 방안도 생각해보기는 했다. 하지만 만의 하나 칙사가 사수가 쏜 총을 직접 살펴보겠다고 나서기라도 하면 문제가 생길 지도 모른다. 그래서 시범사격도 활강총으로 하라고 시켰다.
“이런 좋은 무기를 받아보시면 폐하께서도 크게 기뻐하시리라 사료됩니다. 분명 후한 보상이 있을 테니 기대하십시오. 헌데 구출된 백성들이 말하기로는 천 보나 떨어진 야인을 맞혔다고 했는데, 이건 너무 가깝지 않습니까?”
“궁이 좁아 그러하니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천 보 떨어진 사람을 맞혔다 함은 필시 착각일 것입니다. 이 총은 60보쯤 떨어진 사람을 맞히는 게 한계입니다. 무지한 백성들이 난전에 휘말려 무서워하는 중에 잘못 보았을 것입니다.”
“음…그건 확실히 그렇겠습니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고개를 끄덕이던 칙사가 다른 질문을 했다.
“저 사수들이 제게 딸려 보낼 사수들입니까?”
“그렇지 않아도 그 문제로 의논을 드리려고 했습니다.”
자원자가 있든 없든 명나라에 사수를 보낼 수는 없다. 사수들이 겪게 될 안위 문제도 있고, 우리가 보낸 총이 정품이 아니라는 사실이 그 입에서 새어나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낸 대안이 이것이었다.
“우리 사신단을 수행해온 무사를 훈련시키시겠다고요?”
“그러합니다. 우리 사수들도 이제 겨우 서너 달을 다뤘을 뿐인데 저 정도로 총을 씁니다. 대국 무사라면 열흘만 연습해도 충분히 익숙해질 것입니다.”
내 의도는 명확하다. 몇 년씩 수련해야 하는 활과 다르다, 총은 조금만 다루면 금방 익숙해질 수 있다, 하는 특성을 강조한다. 칙사 역시 사수를 데려오기보다 아예 사격술을 배워오는 쪽이 치하를 받을 터, 솔깃할 게다.
게다가 북경에서 총이 잘 안 맞아도 ‘총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기보다 ‘우리가 숙달이 덜 되었다’고 여길 공산이 크다. 그만큼 내가 친 사기가 드러날 가능성이 낮아진다. 자, 낚여라.
“전하께서 말씀하신 방안도 괜찮을 듯합니다. 그럼 말씀대로 열흘만 더 머무르겠습니다.”
오예! 낚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