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521
2부 29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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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도 수군 본영에서는 대마도를 공격하여 왜군의 치중을 차단하는 계획이 끝맺음 단계로 들어가고 있었다. 운주당(運籌堂) 안에 모인 장수들이 원정계획을 마무리하는 중이었다.
“피난민을 구출할 조운선 2백 척은 모두 준비를 마쳤소?”
“예, 통상. 산으로 피신한 대마도 주민들을 한 명이라도 더 데려올 수 있도록, 가용한 배를 최대한 확보하게 했습니다.”
통제사의 권한 중에는 관할구역 내에 있는 조운선을 임의로 운용할 수 있는 권한도 있다. 조운선은 본래 호조에서 움직이지만, 전시에는 통제사 판단에 따라 징발할 수 있었다.
이순신은 그동안 경상우도 일원에 있는 조운선들을 수송선으로 활용했다. 어차피 전란으로 경상도 일원에서 도성으로 올라가는 세곡 수송은 모두 멈췄고, 적이 전라도를 칠 정도였으니 항행 도중에 피습당할 우려를 지우지 못해 도성으로 보낼 수도 없었다.
적이 흥양에서 수군을 빼내고 또 부산포 상륙에 집중하면서 조운선이 습격당할 우려는 크게 줄었다. 하지만 조정에서 세곡 운송을 중단하고 창고에 있는 양곡을 구휼미와 군량으로 쓰게 하면서 조운선이 크게 움직일 일은 또 없어졌다.
그동안 조운선들은 조창에 있는 곡식을 거제도로 운반하고, 바닷가 고을에서 사는 백성들을 모아 섬으로 나르는 피난선 노릇을 주로 했다. 그 일이 마무리되자 이순신은 가용한 조운선을 거제도로 모아 정비하게 했다. 대마도 공격에 투입하기 위해서다.
“전하께서는 대마도에 쌓인 적의 치중만 불태워도 충분하다고 하셨으나, 기왕 대마도를 칠 거라면 마땅히 우리 백성들도 구출해야 하오. 벌써 두 달이나 괴로움을 겪고 있는 대마도민 1만 명은 비록 핏줄은 왜인이라 하나 엄연히 우리 백성이니, 어찌 왜적 치하에 놓아두겠소?”
“옳으신 말씀입니다. 하지만 도민 구출까지는 무리라 생각하시어 전하께서도 굳이 명하지는 않으셨을 터인데….”
“할 수 있고, 해야 하오. 배만 넉넉히 동원한다면 충분히 가능하오.”
임금은 대마도 공격 실행에 있어서 이순신에게 전권을 내주었다. 이순신은 자기에게 부여된 권한을 유감없이 사용할 생각이었다. 대마도 주민들을 구출하기 위해 조운선 2백 척을 보내는 것도 그 일환이었다.
“투입하는 전선은 대전선과 거북선을 포함해서 90척은 되어야겠소. 나머지 전선은 거제도를 지키는 데 40척, 가덕도 방어에 10척, 적의 눈길이 대마도에 쏠리지 않게 하기 위한 부산포 공격에 40척이오. 거제도는 정 수사가, 부산포는 이 수사가 맡으시오.”
이순신이 지도 위에 목패를 쌓았다. 패 하나가 전선 10척을 나타낸다. 이억기와 정걸이 그 지시에 따라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예, 통상.”
이순신은 대마도 작전을 수립하면서 정걸, 어영담, 김완 세 사람의 의견을 많이 참고했다. 정걸은 수군 장수로 경험이 풍부했고, 우후 어영담은 조선의 바다라면 모르는 해로가 없고, 조방장 김완은 서평포 만호, 다대포 첨사를 역임하면서 대마도에서도 근무했던 탓이다.
“한 번 더 확인하겠지만, 우리가 꼭 쳐야 할 곳은 이와 같소.”
이순신이 손에 든 등패가 지도 위의 세 점을 짚었다.
“좌수포(佐須浦, 사스우라), 엄원(?原, 이즈하라), 천모만(淺茅灣, 아소만) 이렇게 세 장소를 일거에 제압해야만 대마도를 손에 넣을 수 있소. 대마도에서 가장 배를 대기 좋은 곳도 바로 여기고, 적이 신장에게 보낼 치중을 구주에서 가져와 쌓아놓았을 곳도 여기요.”
운주당 안은 침 넘기는 소리가 들릴 만큼 조용했다. 모두가 이순신이 가리키는 지도 위를 주시하며 그가 하는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세 거점 중 한둘만 공략한다면 왜적은 바로 남은 거점에 군사를 모아 원군이 올 때까지 버티려고 할거요. 적이 그럴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하려면 세 곳을 동시에 공략해서 한꺼번에 적을 부수고, 섬 남쪽을 점령한 뒤 남은 적을 북쪽으로 몰면서 섬멸해야 하오.”
전라좌수사 정걸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정걸은 대마도에 직접 주둔한 적은 없다. 하지만 여러 차례 대마도를 오가면서 그곳 지형은 충분히 살폈다.
“옳습니다. 대마도 북쪽 해안은 바다를 건너기 전에 잠시 머무는 곳일 뿐, 물자를 집적하고 배를 오래 정박해둘 곳은 아닙니다. 섬 남쪽에 있을 적 거점을 먼저 확보하고 왜적의 치중을 빼앗거나 불태움이 적절합니다. 또한, 진로를 보아도 남쪽이 먼저 치기 좋습니다.”
어영담이 말을 받았다. 이미 언급했지만, 수군 장수 중에서 뱃길이라면 그 이상으로 상세히 알고 있는 사람이 없다.
“대마도에 가려면 부산포에서 곧바로 대마도 북단으로 가는 길이 가장 쉽기는 하지만, 그건 평시에 경상좌수영에서 편히 왕래할 때나 쓰는 길이지요. 우리는 거제도에서 바로 대마도로 갈 수 있습니다. 이미 옛 전례가 몇 번이나 있으니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지난 2백 년 동안에만도 두 번이나 대마도 원정이 있었다. 전조 말기에도 두 번, 그전에는 원나라 군대와 합세해 벌인 원정도 두 번 있었다. 대마도를 공략할 원정군은 매번 합포 내지 거제도를 출발해 대마도를 향했고, 하루만 배를 타고 가면 대마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 우후의 말이 옳소. 근래 태종대왕 때와 무종대왕 때 있었던 정벌에서도 매번 6월 중에 군을 내보내 대마도를 쳤으니, 지금이라 하여 그리 못할 이유가 없소.”
“다만 올해는 장마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며칠만 더 기다리시지요.”
창밖을 보며 잠시 침묵하고 있던 이억기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렇지 않아도 장마 때문에 부산포 공격도 자주 나가지 못하니, 어찌 지금 대마도를 쳐서 적의 양도(糧道)를 끊겠습니까. 조운선뿐 아니라 전선들도 당장이라도 출격할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끝냈건만,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바람이 불고 비가 퍼붓는 날에 배를 몰고 바다에 나가는 건 어려운 일이다. 시야가 나쁘니 좌초하기도 쉽고, 풍랑이 일어 배가 뒤집히는 일도 잦다.
“바다 날씨를 잘 아는 노인들을 찾아 물어보니, 아마 지금 내리는 비가 이번 장마를 끝내는 마지막 비일 거라고 합니다. 2~3일 내로 그칠 거라 하니 그때 바다를 건너면 어떻겠습니까.”
이억기가 출정 연기를 청했다. 탁자 주위에 둘러앉은 장수들도 대부분 그 의견에 동조했다.
“비가 내리면 시야가 나빠 사고가 날 공산이 큽니다. 전하께서 대마도를 칠 날짜를 정하여 그날 꼭 공격하라고 명하신 것도 아니니, 날이 개기를 기다리소서.”
수하 장수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던 이순신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흥양에서 사로잡은 왜병이 자백하기를, 장기(長崎, 나가사키)를 출발하여 꼬박 엿새가 걸려 흥양까지 왔다 하였소. 그대들은 들었소?”
“들었습니다.”
“그럼 왜적이 그 엿새 동안 비 한 번, 거센 바람 한 번 맞지 않고 흥양까지 도달했겠소?”
이순신의 일침에 아무도 반박하지 못했다. 적은 한 차례도 아니고 네 번이나 난바다를 건너 흥양에 병력을 내려놓았다. 그동안에 풍랑 한 번 겪지 않았을 리가 없다.
“오가는 길에 몇 척이 난파했건, 왜적은 네 번이나 엿새짜리 뱃길을 건너 우리 땅에 군사를 내려놓았소. 그런데 우리 수군은 고작 하루짜리 뱃길도 가지 못한단 말이오?”
“하지만 지금 내리는 비는 가벼운 보슬비 정도가 아닙니다. 사후선 정도는 간단히 뒤집어 버릴 날씨인데, 바다를 건너자 하심은….”
“7월에 부는 태풍도 아니지 않소. 이 정도 비바람이라면, 우리 배꾼들도 충분히 대마도까지 건너갈 수 있소. 연안을 지나가는 게 아니라 난바다로 가니, 사고는 도리어 적을 거요. 좌초할 일이 없으니까 말이오. 큰 전선만 동원하고, 도중에 충돌하지 않도록만 주의하면 되오.”
장수들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서로 눈치를 보던 끝에 방답첨사 이순신이 나서서 의문을 표했다. 통제사 이순신과는 이름의 한자가 다르고, 나이는 아홉 살 어린 장수다.
“하지만 대감,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맑은 날보다 뱃길이 위험할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이리 좋지 않은 날씨에 대마도를 치셔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있소.”
이순신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대들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만큼 왜적들도 지금 같은 날씨에는 바다로 나서기 어렵다고 여기겠지. 그러니 우리 군이 대마도를 습격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방심할 공산이 크오. 우리는 그 틈을 치는 거요.”
장수들 사이에 불안감과 기대가 교차했다. 통제사의 말대로 확실히 왜적의 뒤통수를 후려칠 수 있겠다는 기대와 함께 비바람 속에서 배를 몰아야 한다는 불안감도 밀려왔다.
“하지만 날이 갠 뒤에 출격한다면, 적이 방비 태세를 굳힘은 물론이고 그동안 풍랑을 피해 대마도에서 기다리던 왜선들이 모두 짐을 가득 싣고 신장에게 가버린 뒤일 것이오. 그것들을 놓치지 않고 모두 잡자면 마땅히 우중에 대마도를 들이쳐야 하지 않겠소?”
이순신의 논리정연한 설명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장수는 없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여 풍랑을 가림막 삼아 대마도를 공격한다는 계획에 동의했다. 이순신은 여기서 한 차례 더 수하 장수들을 놀라게 했다.
“적을 급습하려면 확실하게 해야 하오. 비가 이틀은 더 내리리라 했으니, 모레 새벽에 적을 칠 수 있도록 내일 아침 사시(10시)에 거제도를 출발합시다. 그리고 일시에 적을 칠 거요.”
적이 자고 있을 때 야습을 성공시킨다면 분명 성과는 막대하리라. 하지만 서로 다른 거리를 움직여 서로 다른 장소에 당도해야 하는 세 함대가, 그것도 같은 시각에 도착하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대감, 낮이라면 해를 보고 시간을 맞출 수 있겠으나 밤입니다. 더구나 비바람이 불어 달과 별을 보고 시간을 짐작하기도 어려운데, 어찌 적을 들이칠 시간을 맞추겠습니까?”
“그 문제도 생각해 두었소. 쉬운 일이오.”
이순신은 송희립을 시켜 상자 하나를 가져오게 했다. 상자 안에는 아주 길게 만든 화승 세 가닥이 들어있었다.
“여기 조총 화승에 눈금을 표시해 두었소. 함대가 셋으로 갈라질 때 동시에 화승에 점화한 뒤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잘 보존하면, 적진을 들이쳐야 하는 정확한 시각을 알 수 있소.”
지금이 정확히 몇 시인지 파악하기까지는 부족하겠지만, 함대가 흩어진 뒤 얼마나 지났는지 정도는 확실히 파악할 수 있다. 이만하면 돌입 시각을 맞추기에는 충분했다.
“이 수사는 내가 대마도로 출격할 때 같이 나서서 부산포를 공격하시오. 우리가 함께 나가 적을 쳐야 부산에 있는 적이 이 수사에게 시선이 쏠려 대마도를 미처 살피지 못할 거요.”
“신명을 바쳐 수행하겠습니다.”
이억기가 고개를 숙여 군례를 올렸다. 이순신은 운주당에 들어찬 장수들을 둘러보며 크게 호령했다.
“그대들은 두려워 말라! 하늘이 우리를 도울 것이니라! 어찌 맑은 날이 우리에게만 도움이 되겠느냐? 왜적들에게도 배를 띄우기에 좋을 날씨니라! 하지만 이 비바람은 적선을 대마도에 잡아두면서 우리 모습과 소리를 감춰 줄 것이니, 이야말로 실로 하늘의 도움이니라!”
장수들이 찬동하는 함성을 질렀다. 이순신이 굳게 선언했다.
“조만간 적은 쫓겨나 왜국으로 돌아가려고 들 것이다! 그때 앞을 막아서고, 마지막 한 척의 왜선까지 불태우는 주역은 우리 수군이리라. 그날이 오기까지 모두 최선을 다하라! 주상전하 천세!”
“천세! 천세!”
이순신의 선창에 따라 일제히 지르는 함성이 운주당 안을 채웠다. 아직 확신이 없었던 다른 장수들도 함성 속에서 승리에 대한 확신이 자라났다.
– 19 –
“비, 비, 또 비….”
“왜 한탄하고 그러시오. 비가 오니 차라리 다행이지.”
술잔이 쭉 기울어졌다. 이케다 츠네오키가 노부나가의 호출을 받고 경상도로 떠난 뒤로, 그 뒤를 이어 쓰시마를 관리하는 역할을 맡은 나카가와 히데마사(中川秀政)는 며칠째 이어지는 나쁜 날씨를 보며 무척이나 즐거워했다. 그는 벌써 며칠째 취해 있었다.
“솔직히 나는 나쁜 날씨가 반갑소. 풍우가 몰아쳐 배가 조선에 건너가지 못하면, 우리 배가 조선 수군을 만나 침몰당할 일도 없고 수천 목숨을 바닷속에 집어넣지 않아도 되잖소. 솔직히 지금까지 이미 건너간 병력과 물자만 해도 조선 정벌에는 충분하지 않소?”
“히데마사 공, 말을 조심하시오. 누가 듣겠소. 부인을 믿고 함부로 말을 하면 안 되오.”
히데마사는 노부나가의 셋째딸 쓰루히메를 아내로 맞았다. 오사카 인근에 10만 석이나 되는 영지도 가지고 있다. 용맹한 장수로도 이름이 높고 중국 원정이 성공한다면 정말로 큰 혜택을 받을 사람 중 하나이건만, 이번 전쟁에 대해 말하는 그의 태도는 삐딱하기 짝이 없었다.
“들으면 어떻소? 사실이 그렇잖소? 귀공도 조선 수군 때문에 지금 같은 형편이 됐잖소.”
“닥치시오!”
계속해서 비꼬듯 던져대는 말을 참다못한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히데마사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솔직해져 보시오. 귀공만 저들에게 졌소? 천하제일이라던 구키 수군도 연전연패하고 있는 판인데 누가 조선 수군을 이긴단 말이오? 아직 세토우치에 있는 무라카미 수군?”
히데마사는 연이어 술잔을 들이켰다. 와키자카는 말없이 그 손을 노려보았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이제까지 천 척이 넘는 배를 잡아먹은 조선 수군을 무라카미 수군이 나선다고 해서 이길 것 같지 않소. 그저 내 영지에서 수부나 또 뽑아내지 말았으면 좋겠소.”
“내 영지는 이미 사내 씨가 말랐소. 귀공은 나보다 영지가 넓고 인구도 많으니 지금도 훨씬 나은 상황일 것이오만.”
“그래서 귀공이 대마도로 왔겠지요. 와키자카군이 앞으로 전공을 세우기는 도저히 어렵다고 노부나가 공께서 판단하셨기에.”
다른 7군 소속 다이묘들은 모조리 진주성으로 몰려가는 동안에도 와키자카는 고성에서 조선 수군을 찾아 헤맸다. 부상을 입은 원균의 보고를 받고 이제야 적을 찾았다며 싸우러 갔지만, 매복했다던 조선군은 어느새 싹 사라진 뒤였다.
내친김에 아예 남쪽 땅끝까지 가볼 생각도 했다. 하지만 길을 안내해야 하는 원균이 복병에 당한 상처가 중하다면서 드러누워 버렸다. 조선 수군이 정확히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 길을 알려줄 원균도 없이 계속 전진할 수는 없었다.
머뭇거리는 사이 대구에 있는 노부나가로부터 철수하라는 명이 떨어졌다. 전공을 세우기는 완전히 글러 처먹었으니, 쓰시마 섬에 가서 전방으로 가는 물자 관리나 하라는 지시였다.
와키자카군 병사들은 부산포에 모인 신립군 포로들을 감시하며 함께 바다를 건넜다. 그리고 쓰시마를 지키고 있던 히데마사의 병사 4천 명과 합류했다.
지금 하는 일은 간단했다. 포구를 지키는 포대 위에서 멍하니 바다를 보며 나타나지도 않을 조선 전선을 기다리고, 자기들이 울타리를 쳐서 그 안에 가둬 놓은 조선군 포로들을 감시하는 것뿐이었다. 명이 있기는 했지만, 물자 관리는 그동안 해온 대로 나카가와군이 맡았다.
“자, 귀공도 어서 한 잔 드시오. 그 타는 속을 술이 아니면 무엇으로 달래시겠소? 쭉 한잔 들이키고 최근에 하카타에서 데려온 유녀(遊女)라도 품으시오. 이 섬에 있는 위안거리는 오직 그 둘뿐이오. 사냥도 하려면 할 수 있지만, 귀공은 사냥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고 들었으니.”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쉰 와키자카가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잔에 따라 놓은 술을 단숨에 들이마셨다. 그 모습을 본 히데마사가 씩 웃고는 손뼉을 쳤다. 그러자 방문이 열렸다.
미리 기다리고 있었는지, 악기를 든 유녀 네 명이 들어와 두 사람 양쪽 옆에 하나씩 앉아서 하나는 악기를 뜯고 하나는 술 시중을 들었다. 히데마사가 씩 웃으면서 술잔을 들었다.
“아까 하던 복잡한 얘길랑 가슴에 묻어둡시다. 조선인들이 쓰시마에 뭔가 수작을 부리려고 해도 적어도 비가 그칠 때까지는 기다려야 할 테고, 이 비가 적어도 이틀은 갈 거라니 그동안 관심 끊고 술 좀 마셔도 안 될 거 없잖소. 병사들도 숨 좀 쉬게 하시고. 자, 드시오.”
하긴 전쟁이 시작되고서 조선 수군이 쓰시마까지 손을 댄 적은 없었다. 와키자카가 빈 잔을 내밀자 오른쪽에 있던 유녀가 바로 술을 따랐다. 무척이나 향기로운 술이었다.
와키자카는 술잔을 기울이며 생각했다. 그래, 오늘은 히데마사가 권하는 대로 실컷 마시고 기분이나 좀 풀어 보자. 그날 거제도에서 패한 이후로 술 한 잔 마음 편히 마셔본 적이 없지 않은가. 이렇게 비가 오는 동안에야 설마 무슨 일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