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523
2부 3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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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으로 한참을 도망친 뒤에야 술이 깨었다. 자기 옆에 겨우 30명 남짓한 부하밖에 없음을 깨달은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또 쫓겨 도망치다니! 차라리 이즈하라에서 죽는 편이 나았을 것을!”
“주군! 그리 말씀하지 마십시오. 일단 살아남아야 가문을 유지하고 적에게 복수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패했으면서도 영지를 지키고 가문을 유지하려면, 어떻게든 살아남아 재전의 기회를 얻든가 적과 싸우다 죽어야 한다. 적의 칼에 죽었다 해도 싸우다 죽은 게 아니라면, 전사로 인정되지 않아 영지를 뺏기고 가문의 존속이 흔들리게 된다. 가신들도 당연히 실업자로 전락한다.
“히데마사 공은 어찌 되었나?”
분명 같이 술을 마시다가 유녀를 낀 채 한 방에서 쓰러져 잠들었다. 눈치 없는 주방 하인이 미역으로 만든 안주를 내놓는 바람에 술상을 한번 뒤엎었고, 그 분노를 달랜다고 따르는 족족 잔을 비우며 밤새워 마셔댄 결과다. 하지만 같이 빠져나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저희는 주군부터 먼저 모시고 나오느라 미처 살피지 못했습니다. 그분이 어떻게 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와키자카의 군사들은 거제도에서, 고금도에서 조선 수군의 위력을 절실하게 겪었다. 남만갑을 입고 대검을 휘두르는 그 거한도 이미 거제도 앞바다에서 만났었다. 그자를 상대로 맞서서 싸우는 만용을 부릴 자는 없었다.
“내 갑옷을 혹시 가지고 왔느냐?”
“워낙 상황이 급박해서 챙기지 못했습니다. 여기 제 갑옷이라도 입으십시오.”
기가 막혔지만, 맨몸이나 마찬가지인 상태로 돌아다닐 수도 없었다. 와키자카는 근습무사가 벗어주는 갑옷을 입으면서 가슴이 터지라고 한숨을 쉬었다. 제기랄, 그렇게 술에 취해 있지만 않았어도 이 꼴은 안 났을 텐데! 이게 다 히데마사 탓이다.
히데마사는 노부나가의 사위니까, 문책을 받아도 죽지는 않을 거고 다시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은 연이어 실패만 겪은 데다, 가장 중요한 배경인 히데요시가 전라도로 간 이후 행방이 묘연하니 도와줄 사람조차 없다. 히데요시 덕분에 급출세한 대가다.
“서쪽, 사스우라로 간다. 사스우라에는 우리 병사 2천이 있으니 합세해서 원군이 올 때까지 버틴다.”
쓰시마 수비대 7천 명은 크게 네 곳에 나누어 배치되어 있다. 본성인 이즈하라에 2천, 서쪽 사스우라에 2천, 아소만 일대에 2천, 조선으로 건너가기 전에 들르는 섬 북쪽 기항지 일대에 1천이다.
섬 북쪽에 남아 있는 토민병 잔당 같은 건 이미 버려두기로 결정된 뒤다. 이케다 츠네오키 휘하 주력 병력이 노부나가에게 가고 나니 토벌에 나서기에는 병력이 부족했다. 그래서 일부 수군이 배를 타고 바다를 감시하는 외에는 놈들은 그냥 내버려 두었다.
“하지만 주군, 사스우라는 섬 서쪽에 있으니 이즈하라보다도 조선에 가깝습니다. 조선군이 설마 사스우라는 놓아두고 이즈하라만 덮쳤겠습니까? 게다가 사스우라에는….”
부하들이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말을 와키자카가 대신 이었다.
“그래! 사스우라에는 조선 포로들을 가둬두었지! 그래서 더더욱 가봐야 한단 말이다!”
사스우라에는 신립군 포로 8천 명이 갇혀 있다. 싸움이 끝난 뒤에 붙잡은 포로는 9천 명이 넘었지만, 부상이 심하거나 장맛비를 맞고 병이 들거나 해서 상당수가 죽었다. 포로 따위에게 의사를 붙여 치료해줄 일은 없지 않은가. 물론 반항하거나 도망하려다 처형된 자들도 있다.
신립군만이 아니다. 동래성에서는 포로가 없었지만, 경상도 각지에서 붙잡은 조선 포로들이 관병과 노부시를 막론하고 모조리 쓰시마로 끌려왔다. 그 숫자만도 4천 명은 충분히 넘는다.
“왜 포로들을 쓰시마 같은 곳에 두었는지!”
일본이었다면 노예상인에게 넘기기만 하면 포로 따위는 간단하게 돈으로 바뀐다. 그런데 그 쉬운 길을 버리고 조선과 강화가 성립되면 포로들을 돌려보내면서 생색을 내야 하니, 조선에 가까우면서 또한 포로들이 도망치기 어려운 곳에 가둬두라고 한 장본인이 바로 노부나가다.
와키자카로서는 부하들 앞에서 노부나가를 대놓고 비판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막연하게 한 마디 내뱉고 말았다.
“노부나가 공께서 직접 붙잡으신 포로들이다! 그놈들이 어떻게 됐는지, 직접 가서 확인하지 않으면 나중에 보고할 수가 없다.”
“알겠습니다. 그럼 사스우라에 도착한 뒤에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만약 조선군이 아직 사스우라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감금해둔 놈들을 몽땅 베어 죽인다.”
와키자카의 눈에서 살기가 뻗쳤다. 부하들이 자기도 모르게 주춤할 정도였다.
“설사 사스우라에 지금 적이 들어와 있지 않다고 해도, 붙잡힌 우리 병사 중에서 누군가가 자백하겠지. 그러면 놈들은 거기 포로가 있는 걸 알고 이즈하라에서 구하러 올 테니, 그 전에 전부 베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적병 1만 2천을 더 상대해야 한단 말이다!”
이제까지 억누르고 있던 분노가 적의 습격을 계기로 폭발한 듯했다. 와키자카에게 갑옷을 양보한 근습무사가 주춤거리며 물었다.
“만약 사스우라에도 조선 수군이 상륙해서 이미 점거했다면, 어떡하실….”
와키자카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스우라를 향해 발길을 옮겼을 뿐이다. 이제 한 줌밖에 남지 않은 와키자카군 병사들이 서로 눈을 마주치고는 역시 말없이 주군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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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 해안에는 표식으로 삼을 만한 큰 불빛이 없었다. 파수를 보는 왜병들이 피우던 조그만 모닥불 정도가 겨우 포구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표시가 되었다. 하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풍랑을 맞으며 방심하고 있던 왜병들은 느닷없이 들이닥치는 거북선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그리고 앞을 다투어 도망갔다. 쏘아죽인 왜적이 5백 명, 포로로 잡은 왜적은 3백 명 정도여서 기대했던 만큼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큰 전과가 있었다.
“그대들을 구하게 될 줄이야, 이건 정녕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오!”
“저희도 눈물이 앞을 가려 뭐라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순신은 대마도 공략 계획을 세우면서 각 수영 전선들을 혼합해서 편성했다. 대마도 진공 함대도, 부산포 공격군도, 거제도 방어군도 모두 혼합 편성이다. 사스우라 공략을 총지휘하는 역할도 전라도 조방장을 겸임하게 된 녹도만호 정운이 맡고 있었다.
정운은 포로로 잡은 왜병으로부터 ‘조선에서 온 포로 수천 명이 가까운 금전산(金田山)에 갇혀 있다’는 진술을 받아내자마자 휘하 등선군 5백 명을 파견해서 구출하게 했다. 포로들을 감시하던 왜병들은 사스우라에 있던 본진이 무너진 것을 알고 이미 도망친 뒤였다.
감시하던 왜병들이 갑자기 사라지자 무슨 영문인가 싶어 어리둥절한 태도로 상황을 살피던 조선 포로들은 수군이 나타나자 말을 잇지 못했다. 당장에 울음판이 벌어졌다.
“적들은 우리를 옛날에 은을 캐던 곳이라 하는 낡은 굴속에 가두고, 먹을 것도 제대로 주지 않았습니다. 이에 많은 군사가 굶주려 죽거나 병이 났습니다.”
구출한 포로 중에 대대장 이상 가는 고위 장수는 하나도 없었다. 경상좌수영 군관 제만춘이 진술한 바로는 장수들은 대개 싸우다 죽었거나, 상처가 심해서 잡힌 뒤에 곧 죽었다고 했다.
“왜적들이 말하기를, 자기네 상전이 자비를 베풀어 저희를 노비로 팔지 않고 놓아두니 그에 감사하라 했습니다. 그러면서 깔고 잘 거적 한 장을 주지 않고 하루 식량으로 반 되를 주지 않으며, 병들고 다친 이를 위해 의원 한 명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저런 고얀 놈들이 있나! 남의 땅에 함부로 쳐들어온 도적놈들다운 만행이로다!”
정운을 비롯한 수군 군사들은 이를 갈며 분개했다. 정운은 지금 구출한 군사 중에서 상처가 없고 당장이라도 싸울 기운이 있는 자들 1천 명을 골라 무기를 주라고 명했다. 도망친 왜적이 버리고 간 창과 칼이 산더미 같으니, 무장을 갖추기는 쉬웠다.
“너희는 당장 창을 들고 동쪽 엄원성으로 가라! 통상께 가서 너희가 죽지 않았음을, 이렇게 살아서 적과 싸우려 함을 알리는 것이다!”
구출된 군사들은 복수하려는 열망으로 타올랐다. 이제 이들이 할 일은 최대한 많은 왜적을 죽여서 그동안 무도한 왜적들에게 무참히 죽어간 많은 동료와 상관들을 위한 제물로 바치는 것이었다.
상처가 심하고 많이 지친 나머지 군사들은 수군과 함께 건너온 군의들로 하여금 보살피게 했다. 각 전선에는 군의로 투입된 향의관들이 한 명씩 타고 있으니, 당장 상태가 급한 이들을 살펴 진료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정운은 휘하에 거느린 전선 중 10척을 따로 빼내서 남쪽으로 보냈다. 대마도 남단까지 계속 해안을 따라 항행하면서 혹시 구조를 원하는 조선인이나 대마도인이 있으면 구출하고, 왜적이 남아 있으면 토벌하라는 지시를 덧붙였다.
다만 구해야 할 사람이 1만에서 2만 2천으로 두 배가 넘게 늘었으니, 운반할 배도 두 배가 필요하게 된 점은 걱정이 좀 되었다. 하지만 크게 고민할 일은 아니었다. 두 번 왕복하면 될 일 아닌가. 어차피 장마도 곧 끝날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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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두 달 동안, 왜적들은 실로 잔인하게 대마도 백성들을 탄압했습니다.”
이즈하라에서 구출된 이들 중에는 대마도 향군장 아여문(阿汝文)이라는 자가 있었다. 종씨가 찬탈하기 전에 본래 대마도를 지배하던 아비루(阿比留) 씨의 후예로, 섬 북쪽에서 싸웠었다. 적이 경상도로 이동하여 세력이 줄었음을 알고 남쪽으로 숨어들다 이틀 전 붙잡혔다고 했다.
“저들이 원래 하던 대로라면 잡히자마자 목이 베여 죽었겠으나, 비가 내리는 바람에 왜적이 집행을 미루어 살아났습니다. 소인을 구해주신 통상 대감께 감사드립니다.”
아여문은 20년 전에 향교에 다니면서 조선말과 예법을 배웠다고 했다. 그래서 대마도 토착 왜인이지만 이순신을 상대로 편히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이순신으로서는 좋은 정보원을 얻은 셈이다.
“그대들도 모두 우리 조선 백성이건만 세 부득이하여 진즉에 구하러 오지 못했음이 미안할 뿐이니라. 지금 대마도 백성들은 모두 어디 있으며, 그 수는 얼마쯤 되는가?”
아여문이 우울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대감께서도 아시는 바대로, 대마도 백성들은 왜적이 침입하자 모두 산으로 피했습니다. 저 간악한 왜적들은 그 뒤를 쫓아 산에 올라와서는, 속오군과 한패라는 이유로 무고한 백성들을 약탈하고 살상했습니다. 남자는 죽이고 여자는 범하며, 모든 재물을 빼앗았습니다.”
산으로 도망쳤던 대마도 백성 중에 얼마나 많은 수가 잡혔는지는 아여문 자신도 모른다고 했다. 다만 그가 붙잡히기 전 소문으로 들은 바와 붙잡힌 뒤 직접 눈으로 본 숫자만 합산해도 수백 명은 족히 되리라고만 했다.
“섬 남쪽에 있던 군사들은 대개 싸우다가 죽었거나 붙잡혀서 죽었을 겁니다만, 적의 눈길을 피해서 숨는 데 매진한 백성들은 상당수가 아직 산속에 숨어 있을 것입니다. 소인을 보내어서 찾게 하신다면 최대한 찾아 데리고 오겠습니다.”
아여문은 이순신이 전선 이외에 조운선을 수십 척씩이나 거느리고 온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대마도 주민들을 거제도로 피난시킬 예정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크게 기뻐하며 임금의 은혜를 찬양하고 있었다.
“섬 북쪽에 숨어 구원의 손길이 오기만 기다리고 있는 군사와 백성만 모두 합해도 적어도 5천여 명은 됩니다. 마침내 대감께서 오시어 그 기다림이 보답을 받았으니, 어찌 하늘이 내린 은총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충분하니 예의는 그만 차리게. 그보다 섬에 있는 왜병의 수는 얼마나 되는가?”
“섬 남쪽에는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북쪽에는 고작 1천 정도입니다. 다만 소인이 거느린 군사의 수가 적고 무장이 빈약하여 저들을 쓸어 없애지 못했습니다.”
지금 섬 북쪽에 남은 아군은 경상도 병사 1백여 명, 대마도 속오군 4백여 명뿐이라고 했다. 나머지는 적진을 습격하다가 죽거나 왜군 토벌대와 싸우다 죽었고 말이다.
“상감께서 베푸신 은혜를 생각하면 마지막 한 사람까지 싸워 적을 죽였어야 하나, 기댈 곳 없는 아녀자들을 지키느라 남은 군사들은 지금 싸움을 멈추었습니다. 그 죄를 용서하소서.”
“나라의 근본은 백성이니 왜적 열을 놓치더라도 대신 백성 하나를 구하는 데 성의를 더함이 맞다. 그대들이 행한 바를 주상께서도 옳다 여기시리라.”
그 뒤로도 이순신은 대마도의 현재 상황에 대해 가능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옆에 서서 지시를 기다리고 있는 경상우수영 우후 어영담에게 바로 지시를 내렸다.
“거북선, 대전선을 포함한 전선 20척과 조운선 60척으로 해안을 따라 북상하면서 북쪽에 남은 군사와 백성을 구출하라. 북쪽 포구에 있는 적은 우리가 여기 왔음을 아직 모르고 있을 터이니, 급습하여 모든 배를 깨트리고 부산포에 소식을 전하지 못하게 하라.”
“예, 통상.”
“아여문, 그대가 수하에 거느린 군사 중 10명을 북쪽으로 보내서 왜적들 간의 연락을 끊고 산에 있는 군사와 백성들이 해안으로 내려오게 하라. 또한, 그대는 수하들과 직접 남쪽 산을 돌면서 산에 남은 이들을 찾아 데리고 내려오라. 사흘 안에 모두 모을 수 있겠는가?”
“물론입니다!”
대마도에는 외지인은 모르는 섬사람들만의 연락법이 있다. 그 방법을 쓰면 사흘 안에 남은 주민들을 다 모으는 건 일도 아니다. 게다가 험한 지형 탓으로 대마도 주민들은 모두 기마에 능하니, 말을 타고 돌아다니며 모으면 금방 사람을 모을 수 있다.
“그대가 아까 말하기를 이즈하라, 여기 엄원성에 있는 치중은 왜군의 물자 중 극히 일부라 하였는데 그 말이 맞는가?”
“저희가 아직 왕성하게 적을 치던 시절에 적이 육지에 쌓아둔 치중을 자주 습격하여 불태운 탓인지 요즘 왜적은 육지에 물자를 많이 쌓아두지 않습니다. 경상도로 보낼 물자는 굳이 여기 대마도에서 내리지 않고, 배에 실은 채로 가져갑니다.”
“그 말인즉슨 여기 있는 물자는 오직 이 성을 지키는 왜적들이 소모할 물자라는 말이로군. 아쉽네그려.”
왕명은 분명 대마도에 있는 적의 물자를 모두 불태우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여문이 말한 대로라면, 이즈하라에 있는 물자를 모두 태워도 신장에게는 별 타격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대마도에 있는 물자가 이것만은 아니다. 날씨가 나빠 부산으로 가지 못하고 아소만 등지에 배를 대고 날이 맑아지기를 기다리던 배들이 분명 있을 터, 그 배들을 잡으면 신장이 받을 물자가 사라진다. 그리고 물자가 배에 실린 채라면 굳이 불태우지 않아도 된다.
“비가 개면 구주에서 새로 건너오는 배도 있을 것이다. 우후는 적선이 나타나면 단 하나도 놓치지 말고 나포하도록 하라.”
“예, 통상. 엄원성에 남는 전선들을 잘 단속하여 대비를 소홀히 하지 않겠습니다.”
– 26 –
아소만 제압을 맡은 김완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짐을 실은 왜선이 포구에 가득한데, 그 선창에 실린 쌀과 화약의 양이 정말 엄청났다.
“왜선이 1백 척인데, 왜선 한 척이 쌀 1천 석을 실었으니…아이고, 세상에!”
이만하면 경상우수영이 1년 동안 쓰고도 남을 양이다. 만약 육지 창고에 있었다면 운반하기 어렵다고 태워버렸을지도 모르겠지만, 배에 곱게 잘 실려 있다면 문제가 전혀 달라진다.
“조상님, 공자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정말 잘 쓰겠습니다!”
화포를 퍼부어 모조리 쓸어버릴까 하다가 그만두기를 잘했다. 어차피 포구 안에 있는 적은 조선 수군이 가까이 오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기왕 들키지 않았으니 완벽하게 기습할 셈으로 해안에 배를 대고 뛰어내릴 때까지 한 발도 포를 쏘지 않았는데, 그 덕분에 포구 가득 묶여 있는 왜선을 단 한 척도 손상되지 않은 채로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왜병들이 지금 산 위에서 통곡하고 있겠지, 핫핫핫!”
백 척을 넘는 조선 수군 선단이 갑자기 들이닥치자 포구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왜병들은 부리나케 산속으로 도망쳤다. 그래서 전투도 없었다. 사실 조선배 중 80척은 조운선이었지만, 어슴푸레한 새벽녘이라 언뜻 봐서는 조운선과 판옥선이 다 비슷해 보인 덕분이다.
“그나저나 이 많은 배를 어떻게 끌고 간다? 애초 계획대로 다 태워버리기는 너무 아까운데. 그렇다고 거제도나 한산도로 몰고 가자니 일손이 없고…통상께 보고를 드려서 조치해주십사 청해야겠군. 혹시 태워버리라고 하시면 할 수 없고.”
김완은 자기 휘하에 있는 경상좌수영 군사들을 불렀다. 여기서 이즈하라로 가는 빠른 길을 알고 있는 사람을 찾자면 이들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적습에 주의하면서 엄원성으로 가라. 그리고 통상께 적의 치중을 가득 실은 배 1백 척을 노획했는데 우리 수졸만으로는 몰고 갈 수가 없으니 어쩌면 좋을지 여쭈어라.”
“예, 조방장 나리.”
사자를 보낸 김완은 수하에 있는 등선군으로 하여금 왜적의 반격을 대비하게 하면서 붙잡은 왜선들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자기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흘렀다.
“실로 하늘이 내려준 횡재로세!”
* 조선석 2석 = 일본석 1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