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524
2부 3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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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를 쏘아라!”
전선 측면에 탑재한 황자포, 현자포가 연달아 불을 뿜었다. 선두에서 돌입하는 귀선을 피해 측면으로 달려들려던 왜선들은 비처럼 쏟아지는 철환 세례에 맞고 피투성이가 되었다. 수졸과 격군을 가릴 것 없이 팔다리를 잃고 머리가 터져 널브러지며 배를 붉게 물들였다.
“겨우 서른 척? 그것도 대선은 한 척도 없고? 이게 무슨 수전이야?”
이순신에게 대마도 북부 포구를 제압하라는 명령을 받은 어영담이 코웃음을 쳤다. 이즈하라 함락 후 이틀 걸려 대마도 북쪽 끝까지 왔는데, 그동안 적은 남쪽에서 아무 통보도 받지 못한 모양이었다.
“엄원성(이즈하라) 놈들은 그렇다 치고 천모만(아소만)에 있던 왜놈들까지도 못 올라왔다니, 정말 제대로 차단했구먼. 대마도에서는 역시 아씨 집안인가.”
아씨, 즉 아비루 씨는 본래 350년 전까지만 해도 대마도를 4백 년 넘게 지배한 호족이었다. 하지만 고려 고종 때 쳐들어온 종씨에게 패해 지배권을 빼앗겼고, 그 뒤로 고개를 숙인 채로 살다가 종씨가 일기도로 밀려난 뒤 다시 세력을 펴고 있었다.
엄원을 탈환한 뒤 이순신을 만난 아여문은 즉시 사자를 보내 섬 북쪽에 은신하고 있던 아씨 일족과 남은 속오군을 봉기시키겠다고 약조했다. 과연 그 약속이 지켜져, 엄원성과 천모만에 있다가 쫓겨난 적 패잔병들은 하나도 섬 북쪽으로 올라오지 못했다.
“놈들이 올라왔으면 저놈들이 아직도 저기서 저러고 있을 리 없겠지.”
엄원성을 출발하고 하루가 지났을 때 통상이 보낸 쾌속선이 뒤를 따라왔다. 대마도 백성이 모는 왜선이었는데, 타고 있던 사자의 전갈인즉슨 조방장 김완이 지휘하는 3군이 너무 많은 배를 나포한 탓에 움직일 수 없으니 북쪽 포구는 어영담 단독으로 처리하라는 내용이었다.
어영담으로서야 전공을 독점할 수 있으니 환영할 일이었다. 게다가 그가 거느린 배만 20척, 그중에 거북선과 대전선까지 있으니 왜선 백 척 정도는 우습게 상대할 수 있었다. 아니, 지금 눈앞에 나타난 적들 정도는 거북선 한 척이면 혼자 다 해치울 수 있을 정도였다.
거북선과 대전선이 탑재한 24근 포는 근처에 포탄이 떨어지기만 해도 왜군 소선 정도는 한 방에 그냥 뒤집어 버린다. 중선이라면 물보라 정도로 뒤집히진 않았지만, 포탄에 맞으면 바로 박살이 나서 가라앉는 건 같았다.
거북선이 앞에 나서서 포를 쏘며 왜선들을 휩쓰는 광경을 본 어영담이 혀를 찼다.
“이건 화약이 아깝군. 귀선에 방포를 중단하라고 명하라! 뚫고 나가기만 하면 남은 적선은 뒤에서 맡는다.”
거북선은 그저 왜적을 위압하여 밀어내기만 해도 된다. 대열이 무너지면 거북선을 뒤따르던 전선들이 소형 총통과 불화살로 마무리하면 그만이다. 24근 포를 한 발 쏘는데 화약 8근하고 6냥(약 5.7kg)이 드는데, 이 화약이면 자모포 3호를 50발이나 쏠 수 있는 양이다.
거북선은 명령에 따라 24근 포 발사를 그쳤다. 하지만 그저 왜적을 위압하기만 할 생각은 없는 듯, 속도를 내서 선체로 적선을 그대로 들이받았다. 미처 피하지 못한 왜 소선이 그대로 깔려 부서지고 그 위에 타고 있던 왜병들이 바다로 곤두박질쳤다.
“나리, 적선 두 척이 부산 쪽으로 도망치고 있습니다만 어떻게 할까요?”
어영담이 인상을 찌푸리며 북서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왜군 소선과 중선 각 한 척이 포위를 벗어나 정말 미친 듯이 노를 저어 부산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둘 다 어영담이 오기 전부터 포구 서쪽에서 순시를 돌던 배들이라, 앞을 가로막지 못했다.
“어쩔 수 없다. 보내라. 저걸 따라잡기는 무리니까.”
아무래도 속도에서는 왜선이 더 유리하다. 더구나 이미 돛을 활짝 펼쳐서 순풍까지 탔으니, 지금 추격해서 따라잡기는 무리였다.
“김완 조방장이 서쪽에서 협공했으면 확실히 잡을 수 있었을 것 같지만 또 모르지. 여봐라! 적선을 모두 제압했으니 이제 포구에 군사를 내려라!”
30척이었던 왜선들은 이제 한 척도 움직이지 않았다. 포에 맞아 부서졌거나, 불화살에 맞아 불타는 배가 대부분이었다. 아직 부서지지 않은 몇 척은 육지에 배를 대고, 타고 있던 왜병들 모두 배에서 내려 육지로 도망치고 있었다.
“등선군은 놈들을 산으로 몰아라! 대마도 백성들이 칼을 갈며 기다리고 있느니라!”
“섬사람들에게 수급을 양보하려니 좀 아쉽습니다.”
“대마도 백성들에게도 그동안 쌓인 원한을 풀 기회는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두 달 동안 대마도 백성들이 겪은 고생은 확실하게 들었다. 왕명으로 한 해 전부터 산속에 식량을 비축하고 피난처를 준비해 두었기에 굶주리지는 않았지만, 언제 왜군이 산으로 올라와 은신처를 찾아낼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언제나 그들을 덮고 있었다고 했다.
“저들은 왜적에게 숱한 고초를 겪었다. 마땅히 그 한을 갚아야 한다.”
어영담으로서는 해안에 있는 배와 물자를 확보하는 쪽이 도망친 왜적을 쫓기보다 먼저였다. 공연히 수급을 탐내 적을 쫓다가 행여 함정에 빠져 군사들을 잃기라도 하면, 공도 못 세우고 통제사에게 질책만 받게 될 테고 말이다.
– 28 –
조선 수군이 대마도에 상륙하고 사흘이 지났다. 이틀째 되는 날 비가 개었고, 주로 해안에 주둔하던 왜군은 죄다 조선군의 공격을 받고 무너져 도망쳤다. 대부분은 산으로 들어갔다.
“시간만 있다면 모두 쫓아 잡을 수 있겠습니다.”
“우리에게는 수급 몇 개가 중요하지 않네. 이번 작전은 적의 보급을 차단하고, 또한 대마도 백성들을 구출하는 데 중점을 두었으니 산으로 들어간 적 잔병 정도는 두고 가도 상관없지. 그동안 죽인 적만 해도 2천여 명에 달하고, 신장의 사위까지 베었으니 그만하면 충분하네.”
포로를 심문한 바에 따르면 대마도 전체에 있는 왜병은 7천 명이었다. 그중에서 2천 명을 죽이고 1천 명을 포로로 잡았으니 충분한 전과다. 아군이 입은 손실은 2백 명을 좀 넘는다.
“대마도 속오군도 1천에 달하는 왜적을 따로 죽였다 하지 않았나? 고작 사흘 동안 4천이나 되는 왜적을 잡았으니, 그만하면 되었어. 이제 돌아가야지.”
지금 조선 수군 수뇌부는 아소만에 모여 있다. 사스우라에 있던 포로 1만 2천 명과 대마도 여기저기에 흩어져 숨어 있던 주민 9천 명도 아소만으로 모여들었다. 날씨가 좋아지자 대마도 사정도 모르고 구주에서 건너왔다가 붙잡힌 왜선 열 척도 노획선 무리에 추가되었다.
거제도로 돌아갈 함대는 이제 4백 척, 아무 곳에나 모아둘 수는 없다. 이렇게 많은 선단이 한꺼번에 머물 곳을 찾으려면 아소만처럼 좋은 장소가 없었다.
“조방장 김완이 적선을 백 척이나 노획한 덕분에, 돌아가는 길을 두 번이나 왕복할 필요는 없어졌습니다. 구출한 대마도 백성 9천 명과 우마 3천 두를 모두 싣고도 배에 자리가 남을 것 같습니다. 물론 덤으로 얻은 쌀 10만 석, 화약 2만 근을 배에서 내리지 않고도 말입니다.”
본래 대마도 주민은 1만여 명이었지만, 두 달 동안 계속된 왜적의 점령 때문에 숫자가 많이 줄어들었다. 싸우다가 죽거나 붙잡혀 처형당한 속오군이 6백여 명, 산을 뒤지는 적에게 들켜 붙잡힌 주민이 1천여 명이었다. 남자는 역시 처형되고 여자들은 감금되어 욕을 당했다.
“실컷 야욕을 채운 뒤에는 구주에 있는 노비 상인에게 팔아버렸다지, 이 못된 놈들.”
이순신이 무서운 눈으로 산을 노려보았다. 그 눈매에 힘을 얻은 장수 하나가 나서더니 이미 결정한 방침을 바꾸자고 조심스레 제안했다.
“대감, 산을 뒤져 남은 적을 모조리 찾아내어 죽이고 가면 어떻겠습니까? 대마도 주민들은 산길에 익숙하고, 말도 넉넉하니 적을 찾아내는 데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수하 장수 중에는 기껏 탈환한 대마도를 다시 적에게 내주기 싫어하는 자들이 적지 않았다. 복수심에 불타는 오위 포로들도 그렇고, 주민 중에도 임금께서 대마도를 지켜주려고 군사를 보내신 게 아니냐며, 왜 고향을 버리고 거제도로 가야 하느냐고 반문하는 이가 상당수였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한산도를 출발하기 전부터 분명히 방침을 정해두었다. 이순신은 장수들을 둘러보며 미리 정한 대로 하겠다고 확실히 공언했다.
“이미 출정 전에 단단히 일러두지 않았나. 대마도는 큰 섬이라 제대로 지키려면 군사 수만 명은 필요하다. 지킬 수 있는 섬이라면 이미 전쟁 전에 충분히 군사를 두어 지켰으리라.”
“맞습니다. 게다가 적도 우리 보급선을 노릴 겁니다. 노략질은 왜인들의 장기가 아닙니까.”
어영담이 동조했다. 그 역시 이순신과 마찬가지로 빨리 철수하기를 바랐다.
“대마도를 차지하고 신장의 양도를 끊는 것도 좋습니다만, 우리 역시 대마도로 오는 양도를 유지해야 합니다. 군량과 화약은 이번에 노획한 것을 쓴다 해도 포환과 화살은 가져와야 하지 않습니까? 이를 운반하고 또 호송하는 부담이 큽니다. 그럴 가치가 없습니다.”
여기에 왜군이 본국의 배를 모아 여러 무리로 쳐들어온다면 우리 전선이 힘껏 싸워도 모두 쳐부술 수 없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분명 몇 무리는 대마도까지 도달하여 육군을 내려놓을 게 분명하다. 이번은 기습이라 쉬웠지만, 단단히 채비하고 온 적과의 육전은 쉽지 않으리라.
“통상께서 이미 말씀하셨듯이, 왜적이 본국에서 동원하는 모든 전선을 쳐부술 수 있을 만큼 우리 전선을 대마도에 많이 둔다면 지금 부산에 있는 왜적이 거제도를 침범하려고 할 때 막을 전선이 없을 것입니다. 대마도에서는 물러남이 옳습니다. 곧 태풍이 오는 철이기도 하고요.”
“그러하다. 그대들이 우리 영토를 적에게 돌려주기 싫은 마음을 내가 알고, 저들이 괴롭힌 대마도 백성들의 고초를 알아 그 원수를 갚아주고 싶은 마음도 안다. 하지만 크게 생각하라. 기껏 모은 세 도의 전선을 우리 스스로 흩어서 어찌 큰 싸움을 하겠느냐?”
덤으로 왜군이 주전장인 경상도가 아니라 대마도에 대병력을 유지하게 할 수 있다. 또다시 습격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말이다.
“적은 이번에 대마도를 습격당했으니,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또 공격할 수 있음을 알 것이다. 그러면 대마도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적어도 군사 수만과 전선 수백 척을 여기 섬에 둘 터이다.”
“그만큼 경상도에서 싸울 적의 군세가 줄어들겠지요!”
거제현령 안위가 자기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지금 통상께서 말씀하시는데 어디 감히 호들갑이냐!’는 주변의 따가운 눈총이 쏟아지자 얼른 입을 다물었다. 다행히 이순신 본인은 안위를 따로 나무라지 않았다.
“거제현령의 말대로다. 우리가 지금 대마도에 주둔한다 해도 이미 경상도에 건너간 적도가 없어지지는 않을뿐더러, 이미 실어간 군량도 그대로 있다. 게다가 적은 우리 백성을 약탈하여 군량을 보충할 수도 있으니, 그 점을 고려하면 일단 철수하는 편이 낫다.”
장수들도 다들 납득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임을 말이다.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한다. 그러면 내일 해가 질 때쯤엔 거제도에 도착하리라.”
“예, 통상. 오늘 중으로 채비를 모두 차리겠습니다.”
전선 90척에 조운선 2백 척, 수졸 9천, 등선군 6천, 조운선 선인 3천으로 감행한 원정이다. 이제 돌아가는 길에는 배가 4백 척으로 늘고 사람도 4만 명으로 늘었다. 이만하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그럭저럭 만족할만한 성과였다.
– 29 –
산속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대마도 주민들이 끝도 없이 나왔다.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에도 십여 차례씩 인근을 지나갔다. 마을 하나를 만들 인원이 한꺼번에 지나가기도 하고 일가족 몇 명이 단출하게 지나가기도 했다.
“베어라!”
숫자가 많을 때는 그냥 넘겼지만, 단숨에 처리할 만큼 수가 적은 집단이 지나가면 습격해서 죽였다. 이즈하라를 나올 때 쌀 한 자루 챙기지 못한 만큼 식량이 필요했다.
하지만 습격해서 죽이고 나면 옷가지 정도만 가지고 있고 식량은 한 톨도 가지지 않은 자가 대다수였다. 결국, 와키자카 야스하루와 그가 거느린 병사 4백 명은 사흘 밤낮을 산속에 갇혀 거의 굶다시피 했다.
“미역 다음에는 더덕이란 말인가, 제기랄!”
조선군에게 들킬까 봐 철포를 쏠 수 없으니 멧돼지 같은 짐승은 잡을 수 없다. 사냥 경험이 없는 병사들이 창이나 활을 가지고 사냥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러니 먹을 것이라곤 산에서 캔 것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주군.”
이즈하라를 탈출해서 사스우라를 향할 때까지만 해도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산길 중간에서 만난 사스우라 주둔군 병사들이 전한 소식은 와키자카를 절망 속에 빠트렸다. 급히 목적지를 아소만으로 바꿨지만, 그쪽도 마찬가지였다. 우루루 몰려오는 패잔병을 만났을 뿐이었다.
와키자카는 자기를 따르는 병사 4백 명과 함께 섬 북쪽으로 움직이려고 했지만 길은 이미 막혀 있었다. 남은 선택은 섬 남쪽에서 산에 숨어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분명 노부나가 공께서 구원병을 보내실 것이다. 우리는 빗속에서 기습을 당했지만, 그 뒤에 날이 개었으니 북쪽에 있는 놈들은 그렇게 당하지는 않았을 거야. 구원을 청하는 배를 분명히 보냈을 테니, 구원군이 오면 바로 호응할 수 있도록 해안 가까운 산에 숨어서 기다린다.’
다행히 조선군은 이들을 찾아 산을 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굶주림은 조선군보다 더 무서운 적이었다. 쓰시마로 온 뒤 한동안 풍족하게 지낸 터라 더 견디기 힘들었다.
“주군! 아소만에 있던 적선에 빠져나가 바다로 가고 있습니다!”
힘이 없어 나무 밑에 누워있는데 보초를 서던 병사가 뛰어와 알렸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와키자카가 관측소로 달려가 직접 살폈다. 정말로 조선 수군이 물러가고 있었다. 아소만에서 빼앗은 수송선에, 되찾은 포로와 대마도 주민들을 가득 싣고서 말이다.
“저들은 애초에 이 섬을 탈환할 생각이 없었단 말인가.”
와키자카가 주저앉았다. 그는 당연히 조선군이 이 섬을 자기들이 장악할 의도로 공격했다고 생각했다. 상황이 정리되고 흩어진 병사들을 좀 더 모으면, 그리고 적이 방심하면 그때 가서 ‘쓰시마 토민병들이 했듯이’ 자기도 산에 숨어서 본격적으로 유격전을 시도할 생각이었다.
“숫자가 늘면 식량을 탈취하고 배를 불태우며 구원군에 호응하기도 더 쉬워졌을 텐데….”
이미 늦었다. 적이 이렇게 빨리 물러갈 줄 알았으면 지난 사흘 동안 산에서 나가는 주민들 구경이나 하면서 보내지는 않았을 텐데. 조금이라도 전과를 올리려 발악했을 텐데.
“다들 산에서 내려가자. 내려가서 혹시 남은 식량이 있는지 찾도록.”
맥이 풀린 와키자카가 하산 명령을 내렸다. 노부나가에게 질책을 받는 건 나중 일이고, 쌀 한 되라도 찾는 게 더 급했다.
– 30 –
거제도로 돌아오는 뱃길은 일사천리였다. 왜선에 익숙한 대마도 주민들은 도와주는 수군과 함께 신나게 배를 몰았고, 마침 바람도 좋은 방향으로 불었다. 아침 일찍 대마도를 출발한 선단은 해가 지기 전에 거제도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조운선과 왜선들은 대부분 거제도로 보내서 사람과 짐을 내리게 하고, 이순신은 남은 전선 대부분을 거느리고 한산도로 귀환했다. 그런데 한산도에 도착하니, 생각지 않은 사태가 하나 발생해 있었다.
“어허,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소?”
“소장의 불찰입니다. 부디 소장을 벌하여 주소서!”
이억기가 지휘하는 경상, 전라 전선 40척은 이틀에 걸쳐 부산포를 공격해서 신장이 대마도 구원을 시도하지 못하게 막았다. 그런데 어제 낮에 공격을 마치고 철수할 때 사건이 터졌다.
“아무리 적을 쳐 없애고 싶었다 하나, 10척이나 되는 전선이 제때 물러나지 못하고 개펄에 얹히다니!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이오?”
“첫날 싸움에서 적이 포구 밖으로 나오지 않자, 적에 대한 분노를 미처 다 풀지 못한 몇몇 전선이 자제심을 잃었습니다. 둘째 날에 포구 안까지 들어가 싸우다 그만 물때를 놓쳐서….”
이억기는 분명히 늦기 전에 철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왜적을 모조리 죽이지 않고 물러날 수는 없다면서 버틴 전선들이 있었다. 그러다 그만 썰물이 지고 말았다.
“급히 다시 들어가서 군사들은 태반을 구했고, 배는 불태워서 적에게 넘겨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소장의 탓으로 큰 손해를 입은 것은 사실이니 부디 소장을 벌하소서.”
“아니오! 이 일은 그대가 젊다 해서 얕본 선장들의 잘못이니, 선장들을 엄히 벌해야 하오. 여봐라, 송 군관! 부산포에서 배를 잃고 돌아온 선장들을 모두 잡아 진문에 효수하라! 지엄한 군령을 어찌 일개 선장이 멋대로 어긴단 말이냐!”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순신의 말이라면 하늘의 계시처럼 따르는 송희립도 놀랐다.
“대, 대감. 적을 치고자 하는 열의가 다소 과했을 뿐인데 그렇게까지 엄히 다스리실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군기(軍器)와 전선은 잃었어도 군사들은 거의 구하지 않았습니까.”
“군율이 없이 어찌 싸움에 이기겠는가! 이를 용납하면 훗날에 열의를 핑계로 질서를 문란케 하는 자들이 줄을 이을 것인즉, 처음부터 뿌리를 뽑아야 하네!”
“알겠습니다, 통상.”
송희립이 고개를 숙인 채 밖으로 나갔다. 이순신은 낯빛이 창백해진 이억기를 다독였다.
“그대는 상감께서 명하신 수군절도사요. 그대의 명은 곧 주상께서 내리신 명이거늘, 따르지 않는다면 어찌 말이 되겠소? 잊지 마시오. 상감께선 나와 그대, 모두를 믿고 계시오. 장수로서 그 믿음에 보답해야 하지 않겠소.”
“예, 통상.”
이억기를 다독인 이순신은 자기 휘하에 있는 서리들을 불러들였다. 대마도에서 거둔 결과를 상감께 보고하는 장계를 쓸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