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526
2부 304화
– 4 –
장마가 지나간 도성 하늘은 무척이나 푸르렀다. 세자 성은 이 푸른 하늘을 보며 모화관 앞에서 칙사 이지충을 환송하고 있었다.
“부디 황제께 우리 조선의 사정을 잘 알려주시기를 당부드리오.”
“소인이 본 대로, 들은 대로만 그대로 고하겠습니다.”
이지충은 깍듯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이산해에게도 예의를 지켰던 사람이다. 세자에게 소홀히 대할 리 없었다.
옆에 서 있던 이산해도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지난 10일에 도성에 당도하고 어제 27일까지, 17일 동안 칙사 이지충은 문서로 산을 쌓고 그 안에서 살았다. 처음 도착했을 때 세자가 환영연을 베풀겠다고 했더니 그것도 거절했다.
‘귀국은 지금 국운을 건 전쟁을 치르고 있다 했습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접대에 쓸 비용을 한 푼이라도 절약하여 군자(軍資)로 사용하심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사신들이 종종 그러듯이, 내심 즐기면서 겉으로만 튕기는 태도가 아니었다. 이 칙사는 정말로 일밖에 모르는 위인이었다. 이산해는 당황하는 세자에게 얼른 사정을 귀띔하여 상황을 수습하게 했다.
그 뒤로 칙사는 누구도 따로 만나지 않았다. 비변사 한쪽에 자리를 잡고, 책상을 하나 청한 다음 거기 앉아서 두 달 동안 쌓인 장계 무더기를 읽으며 17일을 보냈다. 왜적이 침공했다는 보고, 전투 결과에 대한 보고, 적에게 넘어간 고을과 물자에 대한 보고 등.
필요한 내용은 직접 베끼고, 의문점이 있으면 눈앞에 있는 비변사 관원 중 아무나 불러들여 물었다. 그럴 때 통변은 이산해 자신이 직접 맡았다. 그만큼 중요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일찍이 조선에서 하성군을 북경에 보내어 고했듯이, 저들이 감히 대국을 노리고 있었음은 전부터 명확했습니다. 다만 대국 조정 일각에서 조선이 왜국과 결탁하여 흉책(凶策)을 꾸미는 것이 아닌가 기우를 하는 이들이 있었기에, 결백을 확실히 하였습니다.”
“감사하오, 칙사.”
만약에 칙사가 돌아가서 ‘조선과 일본이 결국 야합하여 대국을 침범하려 한다’고 보고하면 정말 큰일이 난다. 그 점에서 무고함을 확실히 해주었으니 실로 고마운 일이었다.
“이번 전쟁으로 조선 남부의 곡창이 황폐해져서 내년 양식이 크게 부족해지리라는 귀측의 우려가 충분한 근거가 있음도 확인했습니다. 올해 안에 왜적을 다 물리침은 어렵지 않겠으나, 황폐해진 농토는 당장 복구가 어려워 내년에도 양식이 더 필요하리라는 점도 이해했습니다.”
이로써 가장 중요한 목표를 달성한 셈이다. 이산해와 세자 성은 모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제가 북경에 돌아가면 곧바로 조정에서 보내는 물자가 이쪽으로 출발할 것입니다. 그편에 무역을 허용하는 감합증서와 인장이 올 것이니, 세자께서는 필요한 만큼 배를 조달하고 각각 인장을 찍어 합법적인 교역선임을 드러내게 하소서.”
이지충은 지금 조선이 처한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명나라 조정에서 교역선 척수를 조정하지 않겠음을 명확히 했다. 그래서 조선 조정에 증서만 주는 게 아니라 그 증서에 찍을 인장까지 특별히 함께 주는 것이라 했다.
“잊지 마십시오. 몇 척이나 되는 어떤 배에 증서를 발급하셨는지, 그 세목은 필히 작성하여 북경으로 보내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목록은 실제 대국을 드나드는 배와 일치해야 합니다. 이 인장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만 유효하다는 점도 잊지 말아 주십시오.”
“물론이오. 이런 비상시에 대국의 은혜를 받고 어찌 이를 기화로 이득을 욕심내겠소.”
세자는 부왕이 마련해 놓은 선박 동원 계획을 보고 놀라 자빠질 뻔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부왕은 운행을 중단한 조운선 300척을 명나라에 보내 쌀을 들여오게 하고, 명나라 현지에서 또 배를 사들여 구리와 쌀을 실어 올 계획이었다. 대금은 당연히 호조와 내수사의 인삼이다.
송방에서 은 10만 냥을 헌납하겠다는 제안이 들어왔다고 보고했을 때 부왕이 놀라던 일도 기억났다. 부왕은 그 돈은 가욋돈이니 그냥 쌀값으로 써 없앨 게 아니라 외수사를 설립하는 밑천으로 삼겠다고 했다. 호조 예산 3만 냥에 내수사의 금 3천 냥을 보태서 말이다.
운영은 당연히 대외교역에서 조선 최고 전문가인 송방에 위탁한다. 조건은 명나라에서 곡식 5백만 석을 실어오는 대신 무역독점권을 인정하는 것. 또한, 배가 더 필요할 경우 수군에서 나포한 왜선 중 상태가 양호한 배들을 제공하는 조건도 포함되어 있었다.
과연 칙사는, 명나라 조정은 조선이 이렇게 많은 배를 교역에 보내리라는 사실을 짐작하고 있을까? 세자로서는 의문이었다. 칙사는 인장이 효과가 있는 기간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라고 했다. 부왕도 전쟁 중에만 명나라로부터 도움을 받으면 된다고 했다.
그럼 관건은 또 있다. 과연 그 ‘전쟁이 끝나는 시점’은 언제라고 보아야 하는가?
“부디 위기를 잘 극복하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고맙소.”
인사를 마친 칙사가 가마에 올라 서쪽을 향했다. 벽란도까지 칙사를 배웅하기로 한 좌의정 이산해도 가마에 올라 그 뒤를 따랐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세자 성의 입가에 문득 미소가 흘렀다.
이 땅에 넘어온 왜적을 모두 물리쳤을 때, 그때 전쟁이 끝나는 게 아니다. 그때는 방어가 끝나는 때일 뿐이다. 이쪽에서도 적에게 반격을 감행, 충분한 타격을 주고 왜국이 후회하도록 했을 때 비로소 전쟁이 완전히 끝나는 때가 온다. 그때까지 조선은 ‘전쟁 중’이리라.
“그 시기는 아바마마께서 결정하시겠지.”
소리 내어 중얼거렸지만 누가 듣더라도 그 의미를 알 수는 없었다. 성은 흐뭇하게 웃으면서 가마에 올랐다. 이제 궁궐로 돌아가서 쌓인 국사를 처리해야 했다.
– 5 –
1만여 명에 달하는 왜군이 달성을 포위하고 공격을 퍼부었다. 작은 야포를 끌고 와서 쏘고, 사다리를 걸치고 성벽을 기어올랐다. 달성에 배치된 화포는 적이 아예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할 정도는 되지 않았다. 양군이 쏘는 조총과 화살이 치열하게 허공을 오갔다.
한편으로는 5~6천 명쯤 되어 보이는 왜병들이 대구성 본성을 향해 계속 참호를 파면서 접근했다. 또 18근 포와 같은 급의 야포 4문이 북문, 동문을 향해 포탄을 쏘아댔다. 포루에서도 18근 포 8문이 치열하게 응사했다.
“우리가 달성을 지원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로군요.”
이항복은 북문 쪽 포루에 유성룡과 함께 올라가서 천리경으로 적진을 살폈다. 하필 자신이 여기 도착한 다음 날 왜군이 공세를 펼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환영할 일이긴 하지만.
오늘은 장마철 동안 제대로 뜨지 못하던 비승군도 첫 출격을 했다. 왜군은 생전 처음 이런 물건을 보았을 텐데도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다. 거리가 있으니 저들이 보이는 반응이 일일이 보이지 않는 것뿐일지도 모르지만.
“덕분에 돌아갈 날은 빨라지겠습니다.”
“어서 돌아가서 전하께 여기서 본 것을 아뢰셔야지. 잘된 일이오그려.”
이항복은 적의 참호에 집중했다. 왜군이 파는 참호는 거의 사람 겨드랑이가 닿는 깊이였다. 지자포에서 쏘는 철환 정도로는 그 안에 숨은 적을 죽일 수 없었다.
“성벽에서 보기에 비스듬한 방향으로 호를 파고, 땅을 파서 나온 흙으로는 성벽 방향으로 벽을 쌓아 포를 막는다…역시 글로 보기만 하는 것보다는 직접 보는 편이 확실하군요.”
“그림으로 그려서 보낸다 해도 직접 보는 것만은 못하지 않겠소이까.”
이항복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유성룡처럼 남만갑을 입었다. 따로 가져온 자기 것이다.
“하지만 소관이 보기에는 적이 판 참호가 그다지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저 참호가 우리 해자에 도달하면, 해자에 가득 찬 물이 그대로 참호로 흘러 들어갈 게 아닙니까?”
“바로 맞혔소. 왜적들은 익사하든가, 아니면 물에 빠진 생쥐가 되겠지.”
유성룡이 인상을 찌푸린 채 왜병들을 향해서 턱짓했다.
“해자에 물이 없는 줄 알고 있거나, 해자 바로 앞까지만 파고 올 생각이거나, 아니면 호를 여러 줄기를 파서 해자의 물을 빼내는 배수로로 사용할 생각인지도 모르지.”
“어느 쪽이든 대처하기는 쉽겠군요. 굳이 영상께서 나서실 필요도 없어 보입니다.”
“방어사와 왜별장에게는 주의하라 했소. 사실 자기들도 이미 알고 있었다더군.”
두 사람이 대화하는 사이 적이 쏘는 18근 포가 또 한 번 성벽을 강타했다. 흙을 다져 쌓은 성벽에서 흙덩어리와 먼지가 사방으로 튀었다. 이쪽에서도 반격탄이 날아갔지만, 왜군 포대를 명중시키진 못했다. 너무 멀었다.
“딱 저희가 달성 쪽을 지원하기 어려울 만큼 주의를 끄는군요.”
“그래도 지원할 준비는 되어있소. 기병이 나가서 옆구리를 들이칠 거요.”
대구성에는 기병 3백 기가 있었다. 대부분 김성일이 수습한 오위 기병, 일부는 왜별기다. 출격 준비를 마친 기병들의 선두에는 새 남만갑을 입고 그 위에 붉은 전포를 드리운 사노부가 서 있었다. 그런데 사노부의 투구에 붙은 이상한 물건 하나가 이항복의 눈에 들어왔다.
“동해위는 왜 투구에 엽전을 붙이고 있는지요?”
“저 엽전 여섯 개가 사씨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가문의 상징이라고 하더이다.”
일본이었다면 깃발도 들었겠지만 그건 없었다. 임금의 신하, 임금의 군대를 이끄는 자로서 받들 수 있는 깃발은 오직 임금의 깃발뿐이기 때문이다. 유성룡이 쓴웃음을 지었다.
“성을 공격하는 이도 왜장, 성을 지키는 이도 왜장, 지키는 이를 돕는 이도 왜장. 이거 뭔가 우습구먼. 우리 땅에서 하는 전쟁인데.”
“동해위는 전하께 이름도 받았고 심지어 부마까지 되었으니 분명 조선인이 아닙니까. 다른 이들도 우리 장수, 전하의 신하이니 괘념치 마시옵소서.”
이항복은 태연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물었다.
“지키는 이도 왜장이라 하심은 사마유를 가리키신 것인지요?”
“한 사람 더 있소. 달성에 있는 왜별기를 지휘하는 사람이 남도사거든.”
남도사는 시마즈 토시히사가 임금에게 받은 이름이다. 일본에 남은 일족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죽은 사람으로 행세하느라, 사씨 부자처럼 눈에 띄는 활약은 못 하고 있다.
“성문이 열립니다!”
서문이 열리면서 기병들이 달려나갔다. 그리고 왜군이 성벽에 매달려 주의를 돌리지 못하는 사이에 그들의 뒷덜미를 후려쳤다. 만약 보병으로 이와 같은 시도를 했다면 미처 적의 뒤로 들어가기도 전에 적 후군이 돌아서서 앞길을 가로막았을 것이다.
“그동안 대구성에서는 소규모 정찰 외에는 한 번도 기병을 내보내지 않았소. 그래서 왜적도 우리가 이렇게 나가 저들을 공격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게지.”
사노부가 이끄는 기병이 후방에서 들이치자 달성을 공격하던 왜병들은 급히 물러나서 진을 재편했다. 그들을 향해 달성에서 쏘아대는 화살과 탄환이 퍼부어졌다.
“적이 물러나고 있습니다.”
후방을 기병이 공격하고, 정면에서는 성에서 맹렬하게 시석을 날리니 왜적은 버티지 못하고 물러났다. 그 자리에는 적어도 천여 구에 달하는 시체가 남아 있었다. 호를 파던 적들도 일을 중단하고 뒤로 물러났고, 18근 포도 발포를 멈췄다.
“장마가 끝나자마자 적이 벌인 첫 공성 시도로군. 다음에는 방식을 바꿔서 시도하겠지.”
유성룡이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중얼거렸다. 이항복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는 바로 주상께 돌아가야겠습니다. 볼 것은 다 보았으니 말입니다.”
“그러시오. 더 좋은 소식을 기다리겠소.”
이항복은 정충신을 불러서 함께 계단을 내려갔다. 유성룡은 잠시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시 시선을 적진으로 돌렸다.
– 6 –
전라도에서 온 왜군이 진주성 앞에 처음 나타난 날은 열흘 전인 6월 18일이었다. 4만 명은 확실히 넘을 그 대오를 본 진주목사 김시민은 쓴웃음을 지었다. 자기 밑의 군사는 고작 3천에 불과했던 탓이다. 숫자로는 절대 상대가 되지 않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진주성에는 1만 이상의 군사가 적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도순찰사 권율이 내린 명에 따라 김시민의 상관인 경상우병사 이빈이 휘하에 거느린 군사들 대부분을 거느리고 이미 의령으로 이동했다. 적에게 포위당하지 않고 밖에서 협공하기 위해서였다.
왜군도 도착하자마자 맹공을 시작하지는 않았다. 적은 일단 성벽을 따라 빙 둘러서 목책을 세워 성을 포위했다 그리고 대군 그 자체를 무기로 삼아 항복을 종용했다.
‘순순히 항복하면 노부나가 님께 고하여 넓은 영지를 받도록 해주겠노라!’
실로 기가 차는 제안이었다. 무시하자 다음 날인 19일에는 아침 일찍부터 격전이 벌어졌다. 김시민은 삼성부에서 권율에게 배운 수법 그대로 성벽 밑에 지뢰를 묻어 놓았고, 성벽에 잔뜩 매달린 왜병 수백 명을 한 방에 날려 보냈다.
폭발에 놀란 왜군을 향해 화살과 탄환이 수없이 날아들었다. 왜군은 피해를 수습하기 위해 일시 후퇴했고 조선군은 개가를 올렸다.
왜군은 한낮이 되자 공격을 재개했다. 수천 명이 성벽에 달라붙었지만, 그중에서 성벽 위에 올라서는 데 성공한 왜병은 하나도 없었다. 날아드는 화살과 내리치는 돌과 끓는 물이 저들을 맞이했다.
성과는 없이 피해만 잔뜩 입은 왜군은 본진으로 물러났다. 그리고 그날 밤, 왜군은 전날과 달리 편안히 잠들지 못했다. 왜군의 배후에서 수천 개나 되는 횃불이 오르고 북소리와 함성이 울렸다. 대기하고 있던 우병사 이빈과 향군장 곽재우가 이끌고 온 원군이었다.
성을 두고 앞뒤로 포위당한다고 생각한 왜군은 당황했다. 그리고 아침이 오자 왜적은 어제 그렇게 열심히 저항하던 진주성이 텅 비어 있음을 깨닫고 입을 딱 벌렸다.
“놈들이 성을 탐낸다면 잠깐 내주는 정도는 어려울 거 없지.”
김시민이 배를 타고 남강을 통해 진주성을 빠져나온 그 날 밤을 생각하며 웃음을 지었다. 강 건너편에도 왜적이 진을 치고 있었기 때문에 들키지 않고 빠져나가기는 쉽지 않았다.
“진주성이 적을 막을 때의 의의는 경상도와 전라도 사이를 가로막는 데 있다. 하지만 적이 이미 동에서도 진주 인근까지 와 있으니, 귀중한 인명을 희생하며 지킬 필요가 없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사또.”
동쪽에서 온 왜적이 벌써 고성까지 점령하고 있다.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적은 진주를 향해 다가오다 말고 고성으로 물러섰지만, 사실상 진주 이동은 모두 왜군이 차지한 셈이었다.
적이 오기 전에 성내에 있던 백성과 물자는 일찌감치 피난시켰다. 빼앗길 게 없으니까 성을 버려도 아쉬울 것도 없었다. 김시민은 적이 구원군을 보고 놀라 있는 틈에 조용히 준비해 둔 배를 타고 강을 건넜다. 그리고 강 건너편에 왜군이 진을 치지 않은 동쪽으로 빠져나갔다.
동쪽 산속에서 적이 줄어들기를 차분하게 기다렸다. 그리고 이제 성을 탈환할 때가 되었다.
“자, 북을 울리며 함성을 질러라! 횃불을 들어라!”
어두운 강물 위에서 갑자기 횃불이 줄줄이 오르고 북소리와 함성, 위협용으로 쏴대는 조총 소리가 울렸다. 십여 척에 달하는 배들이 강물 위에서 적군을 위협하자, 성벽 위를 당황해서 오가며 고함을 지르는 왜병들이 보였다. 김시민이 웃으며 물었다.
“육지 쪽에서도 계속하고 있으렷다. 지금 진주성에 남은 왜군은 1만이라고 했는가?”
“예, 사또. 적이 지난 며칠 동안 주변으로 정찰대를 내보내더니, 드디어 고성에 있는 왜적과 연결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흘 전부터 그 병력을 고성으로 빼내 경상도의 왜적과 합세하고 있습니다.”
“적이 움직이는 범위를 줄여 한쪽으로 모았으니 괜찮은 성과다. 적이 대군을 모으게 놓아둔 건 아쉽지만, 쥐 백 마리를 잡기보다는 돼지 한 마리를 잡기가 훨씬 쉬운 법이지.”
도순찰사 권율로부터 이미 연락이 들어와 있었다. 군위 방면으로 우회해 상주를 공격하려던 왜군 일익을 격파하고, 막대한 전과를 거뒀다고 말이다. 이미 북방군과 도감군이 다 내려와서 전투태세를 갖춘 이상, 적이 한곳으로 모이더라도 두려울 게 없었다.
김시민 자신이 권율과 함께 북방에서 종군했다. 생존 자체가 투쟁인 북병이 발휘하는 힘에 대해서도 잘 알았다. 그만한 전력이 집결하면 왜군을 물리치는 정도는 일도 아니다.
“자, 적을 좀 더 모아 보자. 내일 아침에는 성에 있는 적에게 사자를 보내라. 진주성은 지금 우리 대군에게 포위되어 있으니, 저들이 성을 고이 비우고 나간다면 그대로 고성으로 떠나게 해주겠다고 말이다.”
이 작전을 위해 그저께 밤부터 이틀에 걸쳐 밤마다 성 주위에서 대량으로 횃불을 켜고 북을 치며 포를 쏘는 등 소란을 피웠다. 악공들을 시켜 악곡을 연주하며 적을 희롱하기도 했다.
김시민은 적이 보일 반응을 기다렸다. 만약 왜군이 물러나지 않는다면 시간을 들여 천천히 괴멸시키면 되고,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나중에 벌어질 결전에서 일거에 섬멸하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