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528
2부 306화
– 10 –
“그대가 왜장과 단기로 창을 맞대 전혀 밀리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심히 감탄하였다. 그로 인해 전주에서 군사들의 사기가 용이 하늘로 솟듯이 충천했다고 하니, 명마 한 필과 더불어서 기룡(起龍)이라는 이름을 그대에게 내리노라. 앞으로 정기룡이라 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정무수, 아니 이제 정기룡이 내 앞에 엎드려 절을 올렸다. 휴우, 역사에서 지워진 줄 알고 실망했는데 아니어서 다행이다. 설마 정기룡이 본명이 아니었을 줄이야.
‘몰랐어? 정기룡 본명이 정무수야.’
‘왜 이름이 바뀐 거야?’
‘선조가 꿈에 종각에서 잠자는 용을 보고, 지금 종각에 있는 사람을 당장 불러오너라, 해서 종각에 있는 정무수를 데려다가 정기룡이라는 이름을 준 거라고 하더라.’
모처럼 상희랑 저녁 먹으면서 대화를 나누다 들은 이야기에 한 방 먹었다. 넌 어떻게 그걸 알고 있냐고 물었더니, 자기 외가가 상주라서 많이 들었다나. 상주에 정기룡의 무덤과 사당이 있어서 관련된 이야기 같은 게 여러 가지 전해진다고 한다.
내가 몰랐던 건 아쉽지만,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처리하면 될 일이다. 마침 불러올렸으니 그 김에 이름도 내리고, 무용담도 듣고, 현지 상황 보고도 받고.
정무수, 아니 이제 정기룡이 속한 선거이군은 지금 히데요시를 쫓아 고령에 다다랐다. 적은 김면이 이끈 고령 속오군에게 밤낮으로 시달리면서 고령을 지나 대구부 초입까지 도달했다. 낙동강을 건너다가 김면에게 죽은 왜병만 천여 명에 달한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건넜다.
남원부에서 조헌이 올린 보고를 보면 팔량치 고개를 넘기 전 왜군 수는 2만 4천 명이었다. 지금 대구에 도착한 왜군의 규모는 1만 8천이라고 하니, 철수 도중에 25%를 손실한 셈이다. 남원 철수에서 후위를 맡았던 가토는 아예 지리산으로 들어가서 행방이 묘연하고.
선거이가 제법 맹추격을 했음에도 히데요시의 본대를 포착하지는 못했다. 뒤떨어진 소부대, 낙오병들을 주워 담으면서 뒤를 쫓았는데 히데요시도 살려고 발악하는지라 쉽게 따라잡히지 않았다. 붙잡은 포로들 덕분에 왜장들 이름이나 편성 같은 건 그래도 파악했지만 말이다.
히데요시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그런 히데요시가 왜군 ‘선봉장’이 되어 아군에게 쫓기는 현실을 보고 있으려니까 뭔가 참 미묘한 기분이 든다. 역사가 정말로 크게 바뀌었다는 상징적인 모습 같다. 물론 지금 상황을 보고 나와 다른 부분에 주목하는 이들도 있었다.
“전하, 김면이 용전하기는 하였으나 적을 막지 못해 2만에 가까운 적이 대구에 들어갔으니, 이는 대구로서는 실로 큰 환란이 닥쳤다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또한, 경상우병사 이빈과 그 휘하인 진주목사 김시민은 4만을 넘는 적 대군을 별다른 전투 없이 통과시켰습니다.”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
“그들 모두 작은 공이 있다 해도 벌을 면할 수는 없습니다. 마땅히 문책하소서.”
“당치 않은 소리.”
잔소리꾼들은 거의 다 도성에 놓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비상사태가 되니까 평소에는 안 그러던 놈들이 말똥 냄새를 풍기기 시작하는구나. 연산군 때 조정을 채우던 말똥 냄새가 떠오른다. 이게 위기를 맞으면 사람 본바탕이 드러난다는, 그런 상황인가 보다.
“적이 비록 굶주리고 지쳐 있다 하나, 거의 2만에 달하는 대군이었다. 김면 밑에는 수백에 불과한 속오군밖에는 군사가 없었는데, 어찌 이런 대적을 맞아 완전히 저지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2천이나 되는 적을 베거나 잡았으니 실로 큰 공적이로다. 상을 내려 마땅하다.”
이빈과 김시민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각개격파했으면 좋았겠지만, 그것도 여건이 되어야지.
“더러운 것은 한쪽으로 몰아두어야 청소가 쉬운 법이다. 이미 왜적이 진주성의 동서 양편을 모두 장악했으니 큰 희생을 무릅쓰며 굳이 성을 지킬 이유는 적었다. 그뿐만 아니라, 말로써 적을 몰아내어 성을 되찾고 군량도 얻었으니 벌이 아니라 상을 주어야 할 것이다.”
김시민은 왜군 주력이 고성으로 떠날 때까지 기다리다가 후위로 남아 진주성을 지키고 있던 고니시에게 ‘명예로운 철수’를 제안했다. 고니시는 이에 응해 고성까지 가는 동안 먹을 식량과 탄약을 제외하고 성에 있던 모든 물자를 넘겼고, 김시민은 저들에게 안전을 보장했다.
이 문제가 보고되자 조정에서는 김시민이 반역을 저질렀다며 난리가 났다. 왜적에게 재물을 받고 탈출시켜줬다면서, 당장 김시민을 잡아들여야 한다는 여론이 폭발했다.
아, 혹시나 해서 말하자면 지금 내가 말하는 조정은 바로 여기, 내가 있는 충주다. 의정부와 비변사에 속한 주요 신하들은 대부분이 도성에 남아 있다. 하지만 임금인 내가 행재소(行在所)를 두고 있는 여기가 엄연히 원조정(元朝廷)이다.
도성에 두고 온 조정이 실질적으로 국가운영을 맡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조정을 이끄는 건 대리청정 중인 세자다. 그러니 지금은 도성에 있는 조정이 분조(分朝)고, 소규모에다 업무가 전쟁 지도에 국한된다고 해도 여기 충주에 있는 조정이 진짜 조정이 되는 게 당연하다.
“호남 속오군과 관군이 힘을 합쳐 적을 밀어냈으니, 적이 살길을 찾아 영남으로 합류함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적이 합치기 전에 진멸했다면야 가장 좋았겠으나 그러지 못했고, 이는 이빈과 김시민이 책임질 일이 아니다.”
전라도가 초장에 무너진 근본적인 책임이야 오다가 히데요시처럼 경상도로 들이밀 거라고만 생각하고 전주성 보강 외에는 전라도 방어에 별 신경을 안 쓴 나한테 있지. 다들 눈치가 빤한 일인지라, 신하들도 이 문제를 굳이 파헤치지는 않았다.
“경상도를 아직 적이 범하지 않았다면 물론 진주성에서 죽기로 적을 막아야 했겠으나, 이미 왜적이 양도를 모두 범했으니 큰 의미가 없다. 그보다 도적을 한쪽으로 몰아서 날뛸 수 있는 범위를 줄이는 편이 차라리 낫다.”
진주를 통과한 왜군은 4만이 넘는다. 그놈들이 전라도에 남아서 작심하고 설쳤다면, 여기에 투입해야 할 토벌군 규모와 활동 범위가 정말 끔찍하게 늘어난다. 그러느니 나가겠다고 할 때 빨리 내보내서 호남이라도 깔끔하게 정리하고 배후를 평안하게 하는 편이 훨씬 도움이 된다.
“하지만 김시민의 잘못은 그뿐이 아닙니다. 도적에게 안전을 보장하고 그 약속을 지키다니, 왜적에게 뇌물을 받지 않고서야 어찌 그런 판단을 하겠습니까?”
“그대는 생각이 묘하구나. 설령 상대가 도적이라 해도 군자로서 이름을 걸고 약속을 했다면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도적에게 한 약속은 어겨도 되는가? 또한, 목숨을 보장한다고 약속해 놓고 쳐서 죽인다면 추후 어떤 적이 우리 약속을 믿고 투항하겠는가?”
전장에서 속임수를 쓸 수야 있지, 이번에 권율이 한 것처럼. 하지만 그거야 말 그대로 속는 놈이 바보인 속임수고, 얼굴과 이름을 걸고 거짓 약속을 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김시민이 고니시를 상대로 약속을 하고 지킨 건 책 잡을 일이 아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본다.
“적장 수길이 고령을 통해 대구로 들어가고, 적장 행장이 진주를 거쳐 고성으로 들어갔으니 비로소 우리가 영남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생각 같아선 당장 일전을 치러 적을 진멸하고 싶으나, 아직은 적이 품은 기세가 흉맹하니 적의 양도를 끊고 힘이 더 빠지기를 기다리겠다.”
이순신이 대마도를 싹 털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장 내일부터 경상도에 있는 일본군이 굶을 리는 없다. 적어도 한두 달 정도 버틸 군량은 있을 거다. 우리 땅에서 약탈도 했잖은가.
보급선이 한번 타격을 입었다고 바로 일선에 식량이 떨어질 정도로 노부나가가 병참 운용 능력이 형편없다면, 일본 통일조차 못 했을 거다. 당연히 비축분이 있다고 보는 게 맞다.
하지만 호남방면 병력이 합류했으니 영남으로 들어가는 일본군 보급선은 부담이 더 커졌다. 갑자기 식수인원이 6만 명 이상 늘어났으니 노부나가 쪽 보급담당자들은 아마 지금쯤 비명을 지르고 있으리라. 가뜩이나 이순신 때문에 보급선도 불안한데 입이 50%나 늘었으니 말이다.
회의를 마무리하며 속으로 다짐했다. 조급하게 굴지 말자고. 이제 일본군은 거의 진격할 수 있는 한계선까지 나왔다. 대구성에서 병력을 갈아내고 수군으로 보급을 끊으면서 속오군들이 내장을 후벼내면 오래 못 갈 거다. 그렇게 약화시킨 다음에 치자.
순순히 진주성을 내줬다는 말을 들으니 고니시에 대한 증오심이 좀 낮아졌다. 놈은 호남에 있을 때도 별로 잔학행위 같은 건 하지 않고, 흥양 수비를 맡아 우리 수군에게 얻어터지기만 했다고 한다. 그 정도면 능지처참까지는 하지 않아도 될 듯싶다. 깔끔하게 참수해 줘야지.
그나저나 가토는 어디로 갔을까? 지리산 산속에서 호랑이한테 쫓기고 있으려나?
– 11 –
“그대들이 무사히 지내기 위한 인질을 원한다면 무고한 강릉 백성 수천 명을 잡아두지 말고 나를 잡으시오. 내 비록 아직 젊으나, 명가의 후예이자 왕실의 인척이기도 하니 그대들에게는 인질로서 나 한 사람이면 족할 거요! 세자께서도 허락하신 일이오.”
“그대의 말이 그럴듯하구려. 좋소이다. 강릉을 떠나기를 원하는 조선 백성이 있다면 그대의 신변과 바꾸어 떠나도록 하겠소. 허나 기회를 주었음에도 그 자신이 원하여 강릉에 머무르는 자들에 대해서는 불평하지 말기 바라오.”
“물론이오.”
도성에 머무르던 성균관 유생 강항이 세자의 허락을 받아 강릉에 들어온 건 17일 전인 6월 17일이었다. 그리고 이틀 동안 적장 우에스기 카게카츠 및 그 중신 나오에 카네츠구와 담판을 벌인 끝에 강릉을 떠나기를 원하는 조선 백성은 모두 석방한다는 대답을 받아냈다.
강항은 예종 때 남이를 처단하는 데 참여해 익대공신(翊戴功臣)이 된 강희맹의 5대손이다. 또 그의 숙부는 선왕인 명종의 딸과 혼인하여 부마가 되었고, 이는 강항이 성균관을 마치기만 하면 곧바로 출세가도를 달릴 수 있는 밑바탕이었다.
하지만 강항은 성균관 동료들이 자원해서 군문에 들 때 그 자리에는 빠지고 말았다. 전라도 영광에 있는 본가가 걱정되어 잠시 다녀왔는데, 돌아오니 성균관이 절반 이상 비어 있었다. 젊고 건강한 관생 대부분이 종군하고, 남은 이들은 너무 어리거나 너무 늙은 관생들뿐이었다.
이미 상감을 따라 전선으로 내려갈 사람은 다 떠나버린 뒤라, 강항으로서는 실로 난감했다. 마침 도성에 돌아온 광해군처럼 새로 편성하는 도감군 대대 서기로 들어가는 길도 있었지만, 다른 관생들이 전장에 나가는데 홀로 도성에 남아 있음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지금에 와서 그대가 아바마마를 따라 내려가는 것도 적절치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대에게 내가 한 가지 역할을 부여할까 하는데, 해보겠는가?’
‘명하시옵소서, 세자저하.’
‘강릉으로 가서 왜장과 교섭하여 우리 백성들을 석방하게 해보라. 도총섭 휴정이 교섭한바 저들이 거절하긴 했으나, 조정에서도 한 번쯤은 시도해야 하지 않겠느냐?’
주상은 전장으로 나가면서 내정과 관련된 국사는 세자와 분조에 전적으로 일임했다. 그러나 왜군과의 외교는 어디까지나 임금의 몫이고 세자가 관장할 범주가 아니었다. 강릉을 점거하고 있는 왜장을 상대로 하는 교섭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세자 성은 조정에서 강릉 백성들을 구할 시도를 아예 하지 않는 건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기가 움직일 수 있을 만한 사람으로, 공식적인 직위가 높지는 않으나 그 신분이 무시당할 만큼 낮지는 않은 사람을 찾았다. 그게 강항이었다.
‘이는 아바마마께서 명하신 일이 아니니 조정의 고관을 보낼 수는 없다. 내가 임의로 하는 일이라 후에 벌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백성을 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불승에게만 이 중대한 일을 맡기고 왕실에서는 방관하려니 마음이 편하지 않다.’
강항의 나이 이제 24살, 왕명 없이 하는 일이라 겁을 먹기에는 아직 젊었다. 또한, 세자가 무슨 사욕을 부려서 시도하는 일도 아니니만큼 흔쾌히 수락하고 강릉으로 출발했다. 도착하자 바로 왜장을 만나 담판을 벌였다.
“오늘이 귀공에게 약속한 보름이 다 되는 날이오. 강릉을 떠날 조선 백성들이 얼마나 되나, 같이 한 번 봅시다.”
나오에 카네츠구라 하는 왜장의 중신이 강항과 함께 서문 문루에 섰다. 헌데 해가 중천에 떠오르도록 모여든 백성 숫자는 서른 명이 되지 않았다. 그나마 대다수가 강릉성 내에 살던 사대부들이었다. 강항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자, 보셨지요? 강릉 백성들은 우에스기 님께서 다스리는 강릉에 남는 데 별로 불만이 없는 모양이오. 어쨌건 저기 나온 30명은 석방하겠소. 저기 바깥에 마중하러 나온 강원도 병사들과 함께 떠나게 해줄 것이니 안심하시오.”
강항이 창백해진 얼굴로 물었다.
“저들은 그렇다 치고, 본인은 어찌 되는 거요?”
“그야 귀공이 약속한 대로 우리가 철군할 때까지 강릉 관아에 머무르셔야 하지 않겠소. 뭐 잡아먹지는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객지 생활에 따분해하시는 우리 주군의 말 상대라도 해주시면 되겠소.”
강항의 당황스러운 얼굴에 비해 나오에 카네츠구는 여유만만했다. 강항과 조정을 비꼬듯이 쐐기를 박는 것도 있지 않았다.
“조선은 예의의 나라라 하지 않았소? 우리는 강릉 관내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약속을 지킬 것이니, 귀국 국왕도 약속을 지켜 우리를 건드리지 말기 바라오. 그래야 강릉 백성들과 귀공 모두 무사할 테니까 말이오.”
나오에 카네츠구가 웃음을 터뜨렸다. 서문 문루에 백기가 오르고 강릉을 떠나려는 백성들이 성문 밖으로 나가자 역시 백기를 든 강원도 군사들이 그들을 맞으러 다가오고 있었다.
– 12 –
돌아왔다. 드디어 집에 돌아왔다. 세상을 한 바퀴 돌고 내 나라, 내 땅과 내 바다에 드디어 돌아왔다. 갑판 위에 빽빽하게 선 사절단원들은 경기도 해안을 보면서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두 눈에서 눈물을 흘렸다. 흐르는 눈물을 훔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오늘은 1590년 7월 5일이다. 그동안 억지로 써야 했던 서양 달력이 아닌, 조선 달력으로.
“3년! 3년하고도 3개월 만에 돌아왔구려!”
정사 정곤수조차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도중에 유구와 제주도에 기항하면서 보낸 시간조차 얼마나 아까웠는지 모른다. 어서 돌아오고 싶었지만, 제대로 길을 잡아 돌아오려면 중간에 몇 차례는 기착하면서 방향을 바로잡아야 했다.
“축하드립니다. 정말 기쁘시겠군요.”
코르나로 추기경이 축하 인사를 건넸다. 그를 비롯한 사절단은 조선인들이 기뻐서 날뛰는 모습을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 한편으로 자신들은 언제쯤 돌아갈 수 있을지 씁쓸해하는 이들도 상당수였지만 말이다.
“류큐와 제주도에서 들은 바로는 일본군이 남부 해안 일대를 장악했다던데, 지금은 상황이 어떨지 모르겠군요. 전황이 호전되었어야 할 텐데.”
중도에 두 차례 기항한 주요 이유는 항로 보정이었지만, 전황 정보를 입수하고자 했던 데도 이유가 있었다. 다만 류큐는 참전국이 아닌 탓에 일본 측에서 의도적으로 퍼뜨린 풍문 이상은 알지 못했고, 제주도는 흥양이 적에게 넘어간 이후 육지에서 오는 소식이 끊긴 상태였다.
결국, 만약을 위해서 견서사 일행은 전라도에는 들르지 않고 서해를 멀찍이 돌아서 곧바로 벽란도로 들어가기로 했다. 마닐라 총독이 예전에 도성에 주재했다가 필리핀으로 넘어온 고문 수십 명을 다시 보내주었기에, 이들 중 길을 기억하는 일부가 항로 안내를 도왔다.
“추기경 예하, 저희가 출발할 때만 해도 조선과 일본이 전쟁을 치르고 있으리라는 예상은 없었습니다. 저희는 어느 편을 들어야 할지요.”
코르나로 추기경이 정곤수를 뱃머리에 두고 선미 쪽으로 돌아오자 일행인 성 요한 기사단 소속 기사 중 최선임인 스페인 출신 기사 로드리게스가 다가왔다. 마닐라에서부터 이 문제를 두고 여섯 기사가 격론을 벌였지만 결국 답을 얻지 못했다.
“조선과 일본 두 나라 모두 이교국입니다. 저희가 드는 칼은 언제나 교회의 이름으로 드는 것이니, 어느 일방이든 이교도를 위해 칼을 들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교황께서는 저희 칼이 선교에 도움이 되리라 여겨 보내셨음도 알고 있습니다. 예하께서 지침을 내려주십시오.”
“사실 나도 아직 결론을 내지 못했소. 생각해봅시다.”
잘 판단해야 했다. 중국이나 향료 제도 등, 아시아의 다른 지역에서 스페인이나 포르투갈과 같은 유럽 출신 용병들이 활동하고 있다는 건 그도 알았다. 하지만 교회의 칼인 종교기사단을 용병처럼 내돌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파견단장 로드리게스가 지적했듯이 조선과 일본은 둘 다 이교국이다. 파견 목적을 생각하면 기사단은 중립을 지키거나 조선 편을 들거나 둘 중 하나를 골라야만 했다. 조선 편을 든다고 하더라도 군사고문 노릇으로 만족할지, 직접 참전할지에도 차이가 컸다.
코르나로 추기경은 다가오는 조선 땅을 바라보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변수들을 정리했다. 일단 교황 특사의 자격으로 조선 국왕을 만나야 한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교회와 조선왕국 사이의 관계에 관해 확인해야 한다.
그래야만 당면한 이 전쟁에 기사단이, 교황청이 취할 입장을 정할 수 있다. 아시아를 과연 교회가 확고히 틀어쥘 수 있는가 없는가가 앞으로의 며칠 동안에 달려 있었다.
* 팔량치(八良峙) : 남원에서 함양으로 넘어가는 고개.
* 류큐와 유구 표기는 해당 문장이 누구 시점에서 서술되느냐에 따라 바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