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529
2부 3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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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아 보낸 왜놈들은 잘 도착했는가?”
“예, 대감. 진천까지 무사히 잘 보냈습니다.”
포로를 전장 가까이 두면 탈출하거나 적에게 내응할 우려가 있다. 그래서 심문을 마친 후에 모두 충청감영으로 넘겨서 후방에서 감시하게 했다. 조정에서 내린 지시였다.
“죽령을 넘으려던 놈들이니 죽령을 넘게 해서 원주로 보냈으면 어땠겠습니까? 헌데 포로는 그렇다 치고 수급은 지금쯤이면 냄새가 참으로 감당할 수 없을 테니 큰일입니다.”
황진이 벤 왜군 총대장을 비롯한 장수급들의 목은 잘라서 충주로 보냈다. 하지만 병졸들의 목까지 잘라서 상감께 바치기에는 그 수가 너무도 많았다. 그 수급을 모두 베어서 쌓았다가는 성길사한(成吉思汗, 칭기즈 칸)이 세웠다는 해골탑을 만들게 될 판이었다.
권율도 한참 고심했다. 하지만 전과를 보고하는 기본은 수급이었다. 적에게 이런 대승리를 거두었으면서도 수급을 바치지 않는 건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더구나 하남벌의 대패로 수만에 달하는 군사를 잃은 일이 겨우 한 달 하고 조금 전이다. 그 일로 적에게 한을 품은 군사와 백성들의 분을 풀어주려면, 수레 가득 실은 수급만큼 눈에 확 들어오는 제물도 없을 터였다.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상감께서는 크게 기꺼워하실 걸세.”
임금은 과거에 도성에서 개선식을 열면서 야인 추장 네 명의 목을 수레에 달아 백성들에게 선보이기도 했다. 그러니 그 수급 더미를 보고도 딱히 역겨워하지는 않으시리라. 썩은 냄새가 좀 나면 어떤가. 상감께서 좋아하시는 수급이 그렇게 많은데.
권율 역시 이순신처럼 단밀현 전투의 대승으로 이순신처럼 정2품상 정헌대부를 제수받았다. 그동안 그 누구도 육전에서 거두지 못한 통쾌한 승리를 거둔 덕분이다. 그러니 수급을 바쳐서 전하께 기쁨을 드림이 당연했다.
“그래도 적 총대장의 시신은 고이 돌려보내도록 수습하는 편이 좋지 않았겠습니까? 우리도 평양군의 시신을 돌려받지 않았습니까.”
“저놈들은 도적놈들이다. 도적 두목의 시신 따위는 본래 토막을 쳐 장대에 내걸어 만백성이 구경거리로 삼게 해야 하는 물건이 아니더냐!”
왜장들이 어떤 태도를 보이든 저들은 이 땅을 침노한 도적이었다. 권율은 저들을 하루빨리 토멸하여 모든 백성을 평안케 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왜군 진중에 다녀온 공개(恭介, 교스케)가 말하길, 왜적이 이루고자 하는 바는 무엄하게도 바로 도성으로 달려가서 전하를 겁박하여 항복을 받는 것이라 하였겠다. 어디, 그 오만방자한 배포가 언제까지 가나 보자.”
상감께서는 적이 초조해지고 기세가 약해질 때까지 기다리라 명하셨다. 적 별군을 대파하여 그 기세를 꺾었다고는 하나, 왜적은 아직 경상도 전역에 총 20만에 가까운 병력을 확보하고 있었다. 아군은 북방군과 도감군을 다 합쳐도 겨우 8만, 정면 공격을 가하기는 어렵다.
다행히 적이 맹공을 퍼붓는 대구성에는 금성탕지(金城湯池)를 만들고 1년은 족히 버틸만한 군량과 화약을 비축해 두었다. 그만하면 쉽게 떨어지지 않을 터였다.
“앞으로 당분간은 왜적이 견디지 못하고 또 고개를 내밀기를 기다려야 한다. 군사와 말이 모두 잘 먹고 쉬게 하여 원기를 보충하게 하도록.”
대구를 함락시키지 못하는 한, 왜군은 전력으로 치고 나올 수 없다. 전하께서 말씀하시기를 호남에서 고령을 거쳐 대구로 들어간 풍신수길이라는 왜장이 무척 간교하다 하셨는데, 재주가 어느 정도 되는지 한번 두고 볼 일이다.
– 14 –
“대나무가 모자라면 남쪽, 동래 인근에서 베어오면 되지 않나. 대구 일대에 있는 대나무로 충당이 안 된다면, 다른 고을에 가서 베어와!”
조선군은 싸움이 시작되기도 전에 대구 인근에 있는 모든 대나무를 태워버렸다. 그 탓으로 일본군은 공성구를 만들 자재를 조달하는데 큰 곤욕을 치러야 했다. 남쪽에서 미리 가지고 온 대나무는 그동안 벌인 몇 차례 교전에서 몽땅 소모해 버렸다.
“이따위 일로 날 귀찮게 하지 마! 네놈들 어깨 위에 있는 게 투구받침이 아니라면, 네놈들 머리로 생각이란 걸 하란 말이다!”
서류뭉치를 들고 끼어든 부하들을 내쫓은 노부나가가 고개를 돌렸다.
“저놈들 때문에 방해를 받았다만, 다시 이야기를 계속해 보아라.”
“예, 주군.”
히데요시는 전주성에서 ‘전주’때문에 곤욕을 치렀다는 데서 끊어진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노부나가는 삐딱하게 팔짱을 낀 채 그간의 사정에 대한 히데요시의 보고를 끝까지 들었다.
“그래서 지금 네놈이 하는 말인즉슨, 대구성 위에 둥둥 떠 있는 저 둥그런 놈 하나 때문에 전주성 공략에 실패했다는 거냐?”
“그…그렇습니다.”
“머저리 같은 놈.”
노부나가는 멸시하는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히데요시는 고개를 숙이고 이를 악물었다.
“조선 놈들이 하늘에서 널 내려다봤다고? 전주 주변에는 산이 없었느냐? 그놈들이 산에서 널 내려다보는 것과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것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나?”
맨몸을 얼음 채찍으로 후려치는 듯한 질타가 쏟아졌다. 히데요시는 아무런 반박도 못 하고 그대로 노부나가의 욕지거리 세례를 감당해야 했다.
“오죽 못났으면 식량 한 톨 없이 2만 병력을 움직이나? 추격하는 조선군에게 반격 시도 한 번을 제대로 못 하고, 그러고도 네가 무장이냐?”
본대에서 떨어져 혼자 고생한 데 대해서는 위로하는 말 한마디가 없었다. 동생 히데나가를 비롯한 많은 희생에 대해서도 히데요시에게 유감을 표하려는 생각 자체가 없었다. 히데요시는 고개를 숙인 채 이를 악물었다.
“곧 고바야카와군을 불러올려 조선 국왕을 노리는 대공세를 펼칠 거다. 그때 종군해서 지금 겪은 패전으로 인한 치욕을 씻고, 원래 네놈이 가지고 있던 위명을 되찾아라.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한참을 퍼부어댄 뒤에야 노부나가의 어조가 좀 부드러워졌다. 히데요시가 고개를 숙여 자기 잘못을 사죄하고 밖으로 나오니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구로다 요시타카가 히데요시를 붙잡아 자기 막사로 데리고 갔다.
“히데요시 님, 정말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먼저 소중한 아우 히데나가 님을, 그리고 가문을 이을 아들들을 잃으신 데 대해 애도를 표합니다.”
노부나가 앞에서 억지로 참았던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히데요시는 차마 소리 내서 울지는 못하고 눈물만 계속 흘렸다.
“주공께서도 악의가 있어서 저러시는 건 아닙니다. 대구를 공성한 지 50일이 되어가는데 별 진전은 없고, 우회를 시도한 토다군은 패했고, 쓰시마까지 조선 수군에게 당한 탓입니다.”
“쓰시마에서 히데마사님이 전사하셨다는 이야기는 들었소. 그리고…와키자카가 죽지도 않고 도망만 다니다가 추방형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와키자카를 추천한 사람이 바로 히데요시 자신이다. 그러니만큼 노부나가가 자신에게 날 선 태도를 보이는 이유를 일부는 알 수 있었다.
“지금 워낙 전황이 좋지 않다 보니, 주군께서 분개하시어 상대가 누구이든 부드럽게 대하지 못하고 계십니다. 하시바 공께서도 부디 유감을 깊이 품지 마시고 넓으신 마음으로 주군께서 겪고 계신 어려움을 이해해 주십시오. 어쨌든 오다 가에서 제일가는 중신이 아니십니까?”
오다 가를 떠받치는 존재라고 일컬어지던 다섯 장수 중 마지막으로 남은 이가 히데요시다. 반란을 일으켰다 토벌당한 아케치 미츠히데, 병으로 죽은 니와 나가히데와 시바타 가츠이에에 이어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타키가와 카즈마스가 대구성을 공격하다가 대포에 맞아 죽었다.
지금 조선에 건너온 장수 중에 그간의 공적이건 지위건, 히데요시를 능가할 인물은 없었다. 그런데 오늘 노부나가는 그런 히데요시의 체면 따위에는 일말의 배려도 하지 않았다.
“다음 싸움에서 승전을 거두거나, 대구성을 함락시키고 나면 주공께서도 다시 귀공을 좋게 대하실 겁니다. 오늘은 운이 없었다고 생각하시고 너무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고맙소. 요시타카 공 덕분에 내 마음이 좀 풀렸소.”
“별말씀을. 그 험난한 퇴로를 뚫고 제 아들 나가마사를 어떻게든 살려 오시지 않았습니까. 저로서는 감사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요시타카의 아들 나가마사는 후쿠시마 마사노리와 함께 움직였다. 남원에서 대구까지 군을 철수하는 과정에서도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 후쿠시마군의 손실을 줄였다. 다행히 철수 도중에 다치지 않고 대구에 들어와 부친을 만날 수 있었다.
요시타카 덕분에 다소 위로를 받은 히데요시는 달성 서쪽에 있는 자기 군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노부나가에게 받은 모욕은 가슴속 한구석에 파묻힌 채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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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을 공격하다가 천여 명에 달하는 손실을 보고 물러난 적은 그 뒤로 아흐레 동안 공세를 펼치지 않았다. 대신에 참호를 열심히 팠다. 왜별기가 밤마다 펼치는 습격으로도 참호 자체를 파괴하기는 어려웠다.
“이제는 정말로 포위되었으니.”
엿새 전, 7월 6일에 서쪽에서 나타난 왜군이 달성 이서에 포진했다. 놈들이 기운을 차리고 포위망을 넓게 펼치자, 왜군이 나타난 지 48일 만에 드디어 상주로 가는 길이 완전히 막혔다. 그리고 적은 영남대로를 통해 계속 증원군을 끌어오고 있었으나 아직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비승군의 보고입니다. 서쪽에 있는 적이 금호강에 둑을 쌓고 있습니다, 영상대감.”
“이 성을 수몰시키려는 모양이군.”
사흘 전에 이런 보고가 들어왔을 때도 유성룡은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강물을 막아서 성을 물에 잠기게 만드는 전법은 예로부터 흔하게 쓰던 공성법이라 놀랄 것도 없었다.
“내버려 두게나.”
역시나 왜적의 기도는 하루 만에 수포로 돌아갔다. 금호강 옆 함지산에 은밀히 진을 치고, 영남대로 입구를 지키던 속오군들이 화살과 총탄을 퍼부어 강물을 막던 왜병들을 몽땅 시체로 만들어버린 덕분이다. 강물은 흙과 돌 대신 왜병의 시체로 막혔다.
“저럴 줄 알았지.”
서쪽에서 온 왜병들은 대구성과 달성에만 조선군이 있는 줄로 안 듯했다. 왜군 사이에서도 첩보가 공유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쓴웃음을 지은 유성룡이 수행군관에게 한 가지 지시했다.
“비승군은 앞으로도 적도들의 동태를 잘 살피게 하여라. 다만 기구를 하늘에 띄우는 시간은 진시(7시~9시)부터 신시(15~17시)까지로 줄인다.”
전주성에서는 새벽녘부터 해가 질 때까지 기구를 띄웠었다. 하지만 전주는 적에게 완전히 포위되지 않았다. 동문과 북문이 열려 있어서 기구를 띄울 연료와 새로 기낭을 제작할 비단을 계속 공급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대구성은 연료는 몰라도 비단을 공급받을 길은 끊겼다.
열기 때문에 기낭이 손상되었는데도 무리해서 띄우면 아까운 비승군의 목숨만 버릴 뿐이다. 포위가 언제 풀릴지 모르니, 오랫동안 비승군을 운용하려면 물자를 아껴 써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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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마마께서는 평안하시온지요. 일전에 명하신 대로 급하지 않은 용건에 관해서는 올리지 않도록 하며 시급한 안건에 대해서만 전하겠습니다.
견서사가 7월 5일에 남만선을 타고 벽란도로 들어왔음은 이미 서한을 올렸습니다. 유럽에서 받아온 여러 군주의 친서는 이 서한과 함께 아바마마께 올렸사옵니다. 소자는 비록 그 내용을 읽어보지는 못하였으나 정사 정곤수에게 사정을 들으니, 무척 환대받았다 하였습니다….』
세자 성이는 매일 내게 도성 상황을 편지로 보고한다. 물론 굳이 성이가 알리지 않아도 다 내 귀에 들어오기는 하지만, 대리청정 중인 세자가 자기가 하는 일을 충실하게 알린다는 데서 의의가 있다.
감히 나한테 의논도 안 하고 세자가 우에스기군과 인질 석방 협상을 벌였다는 보고는 잠시 내 화를 돋웠다. 하지만 곧 성이 자신이 스스로 잘못을 고하고 용서를 빌었기에 크게 꾸짖지 않고 넘어가기로 했는데, 그 담판이 결과가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다.
어쨌든 오늘 편지의 주제는 귀환한 견서사다. 며칠 전에 간략한 보고가 이미 왔지만, 오늘 보고는 보다 상세하다. 특히 우리 사신들이 유럽에서 대동한 사람과 물자에 관해 적었다.
사실 견서사가 만나 회견한 주요 군주라야 사실상 펠리페 2세 한 명뿐이다. 추가한다고 해 봐야 교황 식스투스 5세 정도. 루돌프 2세는 우리랑 별 상관도 없고.
그래서 성이가 말하는 ‘여러 군주’가 누군가 했는데, 리스트를 보니 역시 별 볼 일 없었다. 이탈리아의 여러 잡다한 군주들과 주교·추기경 같은 성직자들까지 내게 서한을 보낸 거였다. 뭐 성이는 아직 유럽을 잘 모르니까 착각할 수도 있지.
서한과는 별개로 교황 특사가 오리라는 예상은 했다. 추기경이 올 줄은 몰랐지만, 베네치아 출신 추기경이라니 도리어 잘 됐지 싶다. 합리적이고 타산적인 협상이 더 쉬워지지 않을까?
의외인 부분은 교황 특사뿐 아니라 성 요한 기사단이 20명이나 왔다는 거다. 요새를 짓는데 전문가인 건축기사를 데려오는 거야 내가 시켰지만, 성 요한 기사단이라니??
어쩌면 추기경씩이나 되는 특사를 위한 경호원으로 따라왔는지도 모르겠다. 이거야 특사로 온 추기경을 직접 만나서 들어보는 수밖에 없겠군.
이해할 수 없는 인원이 한 패거리 또 있었다. 무어인 서른 명? 이거, 스페인에서 종교차별 때문에 쫓겨난 북아프리카계 이슬람교도잖아? 펠리페 2세는 왜 이 양반들을 나한테 보냈지?
노예도 아니고 무장을 갖춘 병사들이라는데, 어쩌면 장식용으로 쓰라고 보낸 병사들일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정확한 시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조선 초기에도 태국에서였나, 흑인을 선물로 받고 궁궐에서 근위병으로 썼다는 기록을 읽은 것도 같고.
사람도 사람이지만 물품도 다양했다. 견서사가 사서 가져온 책 4987권 제목을 모두 적어서 보냈는데, 아직 번역이 안 된 탓에 책 제목이 죄다 원어(거의 라틴어)로 적혀 있어 이게 무슨 책들인지 당최 하나도 모르겠다. 딱 하나 내가 아는 제목 있었다. 《Decameron(데카메론)》.
이거 하나 말고는 알아먹을 게 하나도 없다. 이항복이 아무리 라틴어를 잘해도 제목만 보고 책 내용을 알 도리는 없을 테니, 어서 사전청을 돌려 저 책들을 번역시켜야겠다. 이제 정철도 라틴어 기초 정도는 익혔다고 하니 얼른 진행하겠지.
그 외에 견서사가 가지고 돌아온 갖가지 선물 중에 당장 필요하지 않은 사치품 목록 같은 건 일단 그냥 넘겼다. 확실히 유용한 품목으로는 말이 있었다. 호랑이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펠리페 2세가 품질 좋은 종마 10필을 더 주었다고 했다.
새로 받은 종마들도 모두 강화도에 있는 왕실 목장에 보내서 종마로 키워야겠다. 처음 받은 말들도 1대 잡종을 생산하고 있으니, 2진으로 투입해야지. 1대 잡종 중에도 꽤 쓸만한 말들이 나오기 시작해서, 이번에 정기룡에게 내린 말도 그중에 한 마리 고른 거다.
성이가 보낸 편지는 교황 특사가 보이는 태도에 대해 한 번 더 강조하는 멘트로 마무리하고 있었다.
『…코르나로라는 이 추기경은 하루빨리 아바마마를 뵙고 저들의 교주가 전하라 맡긴 서한을 바치고 싶다 하옵니다. 일단은 도성에서 기다리겠으나 아바마마께서 허락하기만 하시면 바로 찾아뵙고 교주의 서한을 전하고 싶다 하니, 어찌하실지 명을 내려 주시옵소서.』
오래 생각할 필요도 없다. 바로 붓을 들어서 특사를 보내라는 답서를 썼다. 마닐라 총독이 자기 밑에 있는 병사 30명을 고문단으로 새로 보낸 것만 봐도, 지금 교황청과의 관계가 어찌 돌아가느냐에 따라 이번 전쟁에 큰 영향이 있으리라고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교황 특사 일행을 내려보내면서 베네치아에서 고용한 화공도 그편에 함께 보내라고 썼다. 조선 역사상 최초로 서양식 초상화를 남긴 임금이 될 예정이긴 했지만, 그게 전장에서 갑주를 착용한 모습이 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아, 붓을 든 김에 권율에게 보내는 편지도 썼다. 다시는 그딴 해골 무더기 같은 거 보내지 말라고 말이다. 아무리 소금을 뿌렸다지만, 그 썩어가는 머리 더미를 직접 보고 내가 얼마나 속이 뒤집혔는지 모른다. 내가 직접 확인할 수급은 대장급 몇 개면 족하다.
이제부터라도 전과 집계 방법 자체를 바꿔야겠다. 수급 대신에 노획한 투구와 무기 숫자를 세는 편이 훨씬 낫지 않을까? 포로는 기본이고, 소나 말, 군기(軍旗), 군량도 괜찮고.
그나저나 남만선이 한산도에 도착했을지 모르겠다. 벽란도에서 붙잡은 선원 중에 이쪽으로 확실히 전향했다 싶은 놈들만 골라서 한 배 편성했는데 이순신 말을 제대로 들으려나?
선장은 당연히 조선인이다. 정발을 비롯해 이번에 견서사에 다녀온 무관들을 모두 그 배에 태워 보냈다. 제대로 도움이 되어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