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53
1부 053화
– 17 –
“귀한 총을 주셨을 뿐 아니라 우리 무사에게 사격술까지 전수해 주셔서 감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황도에 돌아가면 꼭 폐하께 잘 말씀드리겠습니다.”
“과도한 칭찬의 말에 제가 낯이 다 뜨겁습니다. 귀로가 머니 여정에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명나라 사신은 어떻게 잘 속여서 돌려보냈다. 사격술 교육 때문에 늦은 일정을 보충하려는지, 가는 길도 올 때처럼 질풍같이 달려갔다. 나중에 보고를 받아보니 순식간에 황해도, 평안도를 지나 의주로 갔다고 했다.
“살수에서 쫓겨난 수나라 군대도 아니고 빨리도 사라졌군.”
어쨌든 한 차례 난관은 넘겼다. 과연 명나라가 총을 주문할지 안 할지는 알 수 없으니 그 일은 나중으로 미뤄두고, 이제 또 다른 일에 신경을 써야 할 때가 되었다.
“신 별위장 동청례가 전하를 뵈옵니다.”
동청례는 2년 전 건주위 파견 임무를 아주 잘 수행하고 돌아왔다. 수십 명이나 되는 여진족 유력자들을 만나 내 하사품을 전달했고, 조정에서 내리는 지시를 잘 따르면 큰 은혜가 있으리라고 설득했다. 잡혀 있던 백성 십여 명을 구해 돌아오기도 했다.
나는 그 공을 인정해서 동청례를 5위와는 별개의 새 직책인 별위장(別衛將)으로 임명하기로 했다. 물론 대간들이 반발했다. 향화인(귀화인) 따위에게 당상관인 종2품 위장이라니, 말이 안 된다고 난리가 났다.
“동청례가 전하께 관직을 달라 청한다는데, 거절하시옵소서. 위장이란 금병(禁兵)을 관할하고 그 아래에 딸린 부하들을 관리하는 자리로, 향화인을 임명해도 되는 자리가 아니옵니다!”
실제로 금군을 지휘하게 해줄 것도 아니고, 명목상 내리는 벼슬인데 뭔 난리였는지…결국 그런 반발 때문에 실행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무오사화로 대간들의 입에 재갈을 한번 물린 다음에야 겨우 처리가 되었다. 헌데 이렇게 되니 또 다른 반발이 나왔다.
“동청례가 어명을 받자와 건주위에 다녀왔사오나 그 뒤로 적도들이 노략질을 그치기는커녕 한층 더 날뛰고 있습니다. 그 세운 공이 없는데 어찌 벼슬을 올리겠습니까?”
무오사화가 있었던 작년에 여진족들이 국경을 습격한 사건이 빈발하긴 했다. 하지만 동청례의 동족인 건주위 쪽은 그래도 사건이 적었고, 대개는 올해 털어버린 압록강 방면 여러 부족들이 일으킨 사건이었다. 동청례에게 그 책임을 묻는 건 너무하지 않은가.
어쨌든 임명은 내 뜻대로 되었다. 허나 조정 내외에서 동청례가 공에 비해 과한 포상을 받았다고 비난의 화살이 쏠리고 있음은 사실이다. 그리고 동청례 본인도 그 사실을 잘 알았다.
“그간 보지 못하였는데 잘 지냈느냐. 북방별위에서의 업무는 잘 진행되고 있느냐.”
“미천한 몸에 성상께서 베푸신 은혜를 갚기 위해 진력하고 있사옵니다.”
처음에 동청례에게 준 별위장이라는 직위는 정말로 명예직이었다. 여진족들 사이에서 동청례가 체면을 세울 수 있도록 말이다.
헌데 일단 5위에 별도로 붙은 별위 직위를 만들고 보니 뭔가 체계를 갖춰서 쓸모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그 수장이 하필 여진족 출신 동청례이니…북방정보를 수집하는 정보기관으로 딱이지 않은가?
사실 도성에서 시위무사로 일하고 있는 여진족은 의외로 많다. 태조 이성계 이래 조선 왕실에 출사한다는 것은 많은 여진족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었다. 왕실 역시 국내 정치에 이해관계가 없는, 믿을 만 한 친위대를 확보할 수 있었다. 대민사고를 자주 쳐서 문제지.
“지난 봄 출병 이래로 북방인들이 동요하고 있으리라 본다. 그대가 보기엔 어떠하냐?”
“확실히 전하께서 하시는 말씀이 옳습니다. 신이 전언을 듣기로 압록강 일대에 있는 무리들 사이에서는 보복을 외치는 목소리가 큽니다. 허나 토벌이 또다시 이루어질까봐 두려워하는 자들도 많기에 당장 소요가 일어날 것 같지는 않사옵니다.”
“그대가 거느린 북방인들 중에서는 불만을 품은 이들이 없는가?”
얼마 전부터 나는 최소한 동청례를 직접 대할 때는 야인이나 여진족 대신 북방인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야인(野人)이라는 호칭은 확실히 비하하는 의미니까 말이다.
“신이 거느리고 있는 북방인 출신 시위들은 모두 건주위 및 기타 두만강 일대에서 온 자들이라 별다르게 동요할 기미가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번에 압록강 일대에 사는 자들이 토벌된 데 대해서는, 무도한 자들이 법도에 따라 당연히 응징을 받았다고 여깁니다.”
하긴 여진족 각 부족 사이에 동족의식 따위는 전혀 없을 터이다. 저들은 서로간의 관계가 변화무쌍하여 그때그때 이해관계에 따라 협력하거나 또는 갈등한다. 누루하치도 여진을 통일할 때 꽤나 애를 먹었다.
“믿는다. 그대와 수하들이 요동 전역에서 북방인들의 동향을 얼마나 잘 파악하고, 쓸데없는 마음을 먹지 않도록 다독이는가가 이 나라 사직을 지키는데 아주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염려 놓으시옵소서, 최선을 다 하겠나이다.”
동청례는 바닥에 닿도록 이마를 조아리며 굳은 결심을 내비쳤다. 나는 그 뒤통수를 내려다보며 차분하게 강조했다.
“그대와 그대의 부하들이 중점을 두어 살펴야 할 사항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이미 말했다. 저 도적들이 품은 원한이 얼마나 큰지 계속 살펴라. 그리고 저들이 우리를 적대하고자 대국에 청을 넣는지 여부를 특히 정확히 파악하라.”
“대국에…명나라에 청을 넣는다는 말씀이시옵니까? 조선을 공격하려고? 설마 그런 황망한 짓을 저지르겠사옵니까?”
동청례가 두 눈을 크게 떴다. 나는 얼굴에 힘을 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설마 우리를 쳐 달라고 하지야 못하겠지만, 대국 군사를 압록강 일대에 배치하도록 청할 수는 있을 것이다. 대국 군대가 압록강을 지킨다면 우리가 어찌 강을 건너 도적들을 치겠느냐? 저들은 대국 군사들 뒤에 숨어 손쉽게 우리 땅을 노략질하려 들 것이 분명하다.”
여진 부족들이 조른다 해서 정말 명나라 군대가 압록강 선으로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명나라로서도 굳이 조선과 직접 국경을 맞대고 긴장감을 조성하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다만 그런 책동을 벌이는 부족이 있다면 그 자체로도 먼저 두들겨 부숴야 마땅하다. 그만큼 우리에 대한 원한이 크다는 소리니까 말이다.
“알겠습니다, 전하. 명하신대로 저들의 움직임을 세밀히 살피겠습니다. 또한 엉뚱한 생각을 품지 않도록 잘 이끌어 따르게 하겠나이다.”
동청례는 굳건한 맹세의 말을 남기고 물러갔다. 하지만 나는 동청례가 노력하는 바와는 별개로, 그가 모든 여진족들을 움직일 수 있으리라고는 믿지 않았다. 애초에 여진족 집단 자체가 오만 갈래로 나뉘어 있는데 동청례 하나의 말을 들어 갑자기 얌전해질 리가 있겠는가.
동청례가 올리는 정보도 왜곡되어 있을 수도 있다. 개인적인 원한이나 자기 부족의 이득을 위해서 잘못된 정보로 농간을 부릴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러면 좀 어떤가? 어차피 여진 전체는 세력이 약화될 텐데.
건주위가 여진에서 주도권을 가져 봤자 조선을 압도할 만큼 커지지는 못한다. 나로서는 수많은 잡다한 여진 세력을 하나하나 쳐부수는 것보다, 건주위와 협력해서 잡다한 놈들을 먼저 싹 청소한 다음 건주위의 목을 치는 게 훨씬 쉬울 게 분명하다.
동청례가 내게 충성하건, 건주위에 충성하건 상관없다. 결말은 같을 테니까.
– 18 –
“요즘 혜민서에는 환자가 많으냐?”
“올해 도성 일대에는 돌림병도 없고 해서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처음으로 상희네 집에 들렀다. 요즘 두 달에 한 번 정도는 도성 민심을 겉으로나마 살필 겸 미복잠행을 나오는데, 나온 김에 상희 퇴근시간에 맞춰서 정호찬을 앞세워 찾아와보았다. 전쟁터에서 겪은 안 좋은 기억이 아직도 그 애를 괴롭히고 있는지 걱정이 좀 되었다.
다행히 지금까지 마음에 부담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셋이서 웃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또 치통이 왔다.
“으윽!”
“전…아니, 나리! 왜 그러십니까?”
“도, 도련님?”
내가 갑자기 턱을 부여잡고 신음을 참는 모습을 보고 두 사람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제까지 이 두 사람에게 내가 치통을 심하게 앓는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한참 뒤에야 아픔이 차츰 잦아들었다. 한숨을 쉬며 두 손을 내리자 두 사람이 창백해진 얼굴로 나를 마주보고 있었다.
“도련님, 혹시…치통이 있으신지요?”
“그러하다.”
상희의 얼굴에 수심이 드리워졌다. 조심스레 앞으로 나오며 내게 물었다.
“도련님, 저도 명색이 의원입니다. 치통 치료는 어이 하고 계십니까?”
“식후에는 칫솔로 이를 닦고, 명주실로 이 사이에 낀 음식 찌꺼기를 빼고, 매일 두 번씩 소금물로 이를 헹구고 있다. 그리 관리해서인지 지난 4년 동안 새로 이가 상하지는 않았는데, 그전에 생겨 있던 충치 하나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연산군이 충치 때문에 고통을 겪었다는 이야기는 사실 여기 오기 전에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다잡자마자 가장 먼저 구비한 물건 중 하나가 칫솔이었다. 치약으로 쓸 만한 물건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아 그냥 진한 소금물을 썼다.
“약제는 쓰지 않으셨습니까?”
“어…집안에 둔 의원들이 이것저것 탕약이라든가 환약을 만들어 대령하기는 했는데, 그러한 것들을 써도 치통이 낫지 않았다.”
내가 시키지 않아도 어의들이 이것저것 약을 대령했지만, 하나도 쓰지 않았다. 다른 건 몰라도 치과 진료는 한의사가 아니라 전문 치과의사한테 받아야 하지 않겠냐 말이다.
“대신 버드나무 껍질 달인 물을 충분히 준비해 두었다가 수시로 마시고 있다. 오늘은 그만 잊고 마시지 않았더니 통증이 살아나 곤욕을 치렀다.”
아스피린이 바로 버드나무 껍질에서 추출한 살리실산으로 만든 진통제다. 진통 효과가 강하진 않지만, 그거라도 먹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다. 치통 때문에 아편을 먹을 순 없잖아.
“치통…치통이라면 대개의 의원들이 벌레가 먹은 것이라 하고, 그 벌레를 잡아내는 약을 쓰지요…. 아니면 기가 흐트러진 탓이라고 하거나….”
상희가 말을 흐렸다. 그렇다. 어의들은 주로 내 치통이 고기를 좋아하고 섭생을 제대로 하지 않아 기가 흐트러진 탓이라고 주장했다. 현대 치과 상식을 아는 나로서야 어의들이 내리는 진단을 개소리로 취급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한번 도련님의 이를 보게 해주시겠습니까? 저도 치통 환자를 많이 보았습니다.”
성의는 고맙지만, 기대는 되지 않았다. 상희도 결국 근본은 한의사가 아닌가. 하지만 딱 잘라 거절하기도 미안했다.
“그래, 보아라.”
고개를 살짝 젖히고 입을 크게 벌렸다. 입안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보던 상희가 충치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콱 찌르는 통증이 머리를 관통했다.
“아얏!”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자 상희가 황급히 손을 뺐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정말…심하긴 심하시네요. 많이 아프셨겠어요.”
턱이 얼얼했다. 대답도 못하고 이를 악물고 있는데 상희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저, 도련님. 제가 보기에는…발치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발치? 이를 뽑으라고?”
“네, 이제라도 뽑지 않으시면 고름이 턱뼈까지 파고들어 턱이…썩어 들어갈지도 몰라요.”
맞다. 충치가 오래되면 확실히 염증이 턱뼈 속으로 파고들어간다. 그런데 이런 걸 이 시대 한의사들이 알 리가 없을 텐데…? 의아해하는 내 표정을 느꼈는지 상희가 조용히 설명했다.
“저는 사당패와 함께 시골을 돌면서, 이가 상한 환자들을 여럿 봤어요. 이런저런 돌팔이 처방에 의존하다가 몸만 상하죠. 결국에는 참다못해 이를 돌로 때려서 깨고 피투성이가 된 입에서 부스러기를 뽑아내는 경우도 있었어요. 도련님, 제가 뽑아드릴게요.”
상희가 이를 뽑는다고? 설마 옛날 엄마들이 애들 젖니 뽑을 때 하던 것처럼 이에 실을 매고 당기겠다는 건 아닐 테지. 놀란 내 얼굴을 보며 상희가 차분히 설명했다.
“통증을 없애는 탕약을 드시고 집게로 뽑습니다. 피가 좀 나지만 반나절이면 멎어요.”
“잠깐, 상희야. 그리 서두를 일이 아니다. 이 분은 말이다….”
상희가 당장이라도 시술을 시작하려는 기미가 보이자 정호찬이 당황해서 나섰다. 자칫 말실수를 할 상황이라 내가 손을 내저어 막았다.
“어, 음, 고맙다. 헌데 지금은 곤란하니 나중에 생각을 좀 해 보자.”
계속 이렇게 앓느니 차라리 뽑아버리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다. 하지만 내가 입에서 피를 질질 흘리며 돌아가면 궁궐이 발칵 뒤집힐 게 뻔하다. 그 뒷수습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얼른 뽑지 않으면 더 힘드실 거예요. 제가 이래봬도 이를 꽤 잘 뽑습니다. 믿으세요.”
“널 믿지 못하는 게 아니라, 내가 좀 사정이 있다. 어이쿠, 벌써 시간이 이렇게 늦었구나.”
애꿎은 시간 핑계를 대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상희가 걱정하면서 따라 일어섰다.
“언제 또 오시나요? 얼른 그 이를 뽑으셔야 할 텐데….”
“내, 날을 정해 여기 정 군관을 통해 이야기하마. 다음에 올 때까지 잘 있거라.”
얼버무리면서 상희에게 인사를 하고 길을 나섰다. 궁으로 돌아가며 생각했다. 저 아이, 아무래도 평범한 의원이 아닌 것 같다. 전부터도 좀 특이하다고 생각했지만, 충치에 대한 지식은 도저히 평범한 이 시대 의원이 아는 바가 아니다.
“정 도사, 자네 혹시 상희의 고향이나 부모, 스승에 대해 이야기해 본 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좀 알아보게. 전에 그 아이와 어울리던 사당패를 찾아서라도…어느 고을 출신인지, 어린 나이에 의술은 누구에게 배웠는지, 한번 알아봐 주게. 이러려고 금위사를 만든 건 아닌데 좀 묘하게 되었군.”
“나리께서 궁금해 하시는 바를 알아내는 게 제 일입니다. 심려 놓으시옵소서.”
기껏 만든 비밀경찰을 가지고 16살짜리 어린애 뒤나 캐려 들다니 나도 막장이구만.
어쨌든 상희가 좀 수상한 구석이 많은 건 사실이다. 그동안 신경을 써 볼 생각을 왜 못했는지도 요상하고. 급한 일은 아니니 한번 정호찬에게 맡기고 기다려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