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532
2부 3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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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의께서는 어찌 이리 진료가 능숙하신지요. 험한 꼴을 보이는 환자가 한둘이 아니건만, 전혀 동요 없이 처치를 진행하시니….”
의녀들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환자를 다루는 상희를 보고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옛날에 내의원에서 상희와 함께 일한 고참 의녀들이야 그녀를 알지만, 그 뒤에 들어온 신입 의녀들은 상희를 잘 모르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픈 이를 보면 성의껏 대하라. 그 이상 무엇을 신경 쓴단 말이냐.”
의녀들 사이에 자기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가 돌고 있음은 상희도 알았다. 미색으로 상감을 홀려 후궁으로 출세한 주제에, 궁에서 편하게 지내기나 할 것이지 공연히 전하의 눈에 들려고 설쳐서 애꿎은 의관과 의녀들까지 고생시킨다고 말이다.
뒷구멍으로 그런 불평을 늘어놓는 의녀들은 대개 상희가 내의원에 있을 때부터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던 이들이었다. 나이도 어린데 의시에 붙어 의녀가 되고, 솜씨도 뛰어난 데다 어의 허준과 함께 의서까지 편찬했으니 시기하는 눈길이 쏠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동의보감은 거의 완성 단계다. 서문에는 왕명에 따라 편찬했으며 ‘소의 이씨의 공이 크다’는 문구도 명기되었다. 이만하면 한의사로서 이름도 충분히 남긴 셈이다. 그 정도 질시는 충분히 참고 넘길 만하다.
어차피 상희를 험담하는 의녀들은 면전에서는 고개도 들지 못했다. 어의에 버금가는 실력을 갖춘 데다 임금의 총희다. 누가 감히 그녀를 면전에서 모욕한다는 말인가.
그래도 상희는 거만하게 굴지 않았다. 겉모습은 갓 스무 살 난 가녀린 처녀 같지만, 그녀의 몸 안에 든 혼은 이미 50년을 살았다. 윗자리에서 어떤 태도를 보이면 다른 이들에게 반감을 사는지, 너무도 잘 알았다.
연산은 아직 그런 걸 잘 몰랐다. 현대에서도 사는 데 곤란할 게 없는 집에서 태어나 별다른 고생 한 번 안 해보고 살았고, 공무원 시험도 남들이 한다니까 그냥 적당히 적당히 준비했다. 교육행정직 준비할 때 선택과목을 과학이랑 사회로 고른 것도 제일 덜 귀찮아서였다고 했다.
조선에 와서도 계속 왕 노릇만 하면서 남들 눈치 따위 안 봤고, 하다못해 임금이 되기 전에 세자 노릇조차 안 해봤다. 그러니 그다지 고생이랄 만한 경험이 없는 것도 당연하다. 조선에 적응하느라 몇 년 헤맨 건 상희 자신이 겪은 데 비하면 고생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연산이 종종 드러내 보이는 유치한 행동이나 생각도, 별로 고생을 해보지 않은 데서 나오는 결과라고 생각했다. 신하들의 반대는 억눌러 진압하면 그만이었고, 가뭄이나 홍수가 들었다고 해도 연산 자신이 집을 잃거나 밥을 굶는 건 아니지 않았나 말이다.
하지만 이번 전쟁은 다르다. 연산은 확실히 자기보다 우월한 상대 ? 상희는 미래지식 없는 연산이 노부나가를 이길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다 ? 에게 나라와 백성과 왕위를 모두 빼앗길지 모른다는, 인생 최대이자 최초의 위기를 겪고 있다. 패배도 이미 몇 번 겪었다.
다행히 연산은 그 패배로 인해서 쓰러지진 않았다. 유능하고 충성스러운 신하들 덕분이긴 해도 다시 일어섰고, 지금은 침착하게 반격을 이끌고 있다.
이 정도 겪었으면 연산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도 바뀌리라. 상희는 연산이 지금보다는 좀 더 원숙한, 만인에게 존경받는 임금님이 되었으면 했다. 적어도 후대에 철딱서니 없다는 평가를 받아서야 곤란하지 않겠는가. 진짜 어린애도 아닌데.
“마마, 여기 고약이옵니다.”
“고맙네.”
상희는 붕대를 풀어낸 환자의 상처를 닦고 고약을 발랐다. 어서 이 전쟁이 끝나기를.
– 24 –
건주위에서 조선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압록강을 건너는 길이지만, 압록강도 여름에는 물이 분다. 말은 헤엄을 잘 치니까 압록강을 건너는 정도는 별 무리가 아니긴 하지만.
“오늘도 일단 4천 필을 준비해 왔습니다.”
누르하치의 중신 중 한 사람인 호호리가 문서를 내밀었다.
“숫자를 확인해 보시고 수결해 주십시?? 저희 추장께 바쳐야 하니까요.”
“그대들이 말 숫자 따위를 속이지 않는다는 정도는 우리도 아오.”
건주위로부터 말을 인수해서 도성으로 운송하는 업무는 관에서 직접 맡지 않는다. 송방에서 맡아 수행하고 여기 소요된 경비와 수수료를 호조에서 받기로 되었다. 이런 일이 자주 있는 것도 아닌데, 여기 필요한 인력과 설비를 관에서 갖추는 건 무리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은 확실하게 처리해야겠지요.”
송방에서 나온 마부들은 말떼 사이를 돌면서 말 숫자와 상태를 확인했다. 발굽도, 이빨도 모두 건강했다. 마릿수도 딱 맞았다.
“벌써 3번째…약속한 날짜에 꼬박꼬박 넘겨주는 건 참 고마운데, 비결이 궁금하구려. 내가 알기로 건주위에는 양마(良馬)가 이렇게 넉넉하지 않았을 텐데. 혹시 비축해 둔 전마(戰馬)를 빼내서 파는 거요? 말값이 평소와 같은 걸 보면 또 그건 아닌 듯하고.”
송방에서 나온 행수 장재웅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르하치가 평안병사에게 직접 이행을 약속했다고 듣기는 했지만, 전마를 털지 않는 한 건주위에는 질 좋은 말을 3만 필이나 내놓을 여유가 없을 터였다. 아니면 다른 데서 말을 구해왔든가.
“코르친에서 샀습니다. 마침 자기들에게는 말이 너무 많아서 싸게 팔겠다고 하기에, 적당한 값으로 사들였지요.”
역시 답은 후자였다. 그러자 한 가지 의문이 더 생겼다.
“대체 얼마를 주고 샀기에 우리에게 파는 값이 평소와 거의 같은 거요?”
“화살촉 몇 개에 다 넘겨주더군요. 요즘 그쪽에서 사냥에 쓸 화살촉이 모자란 모양입니다.”
초원에서는 원래 철제품이 비싸게 거래된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말을 겨우 화살촉 몇 개를 받고 팔아넘긴다는 건 상식 밖의 일이다.
“물건이란 때에 따라 가치가 변하는 법이지요.”
장재웅이 싱긋 웃었다. ‘화살촉 몇 개’라는 문구가 품은 함의를 알아챈 탓이다.
“그렇군요. 혹시 원하신다면 우리가 좋은 화살촉을 공급해드릴 수도 있소이다. 아니, 요즘은 화살보다는 총 쪽이 사냥에 쓰기에도 좋지요. 위력도 활보다 강하고요.”
“좋기야 합니다만, 우리는 총을 구할 수 없습니다. 요동부에서 엄격하게 단속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건 그렇지요. 하지만 다 사람이 하는 일이고, 요동 땅은 넓으니 어딘가에서는 생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겠지요.”
두 사람은 눈을 마주치고 피식 웃었다.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눌 필요 없이, 서로가 전하려는 뜻을 알아들은 탓이다. 호호리가 다른 화제를 꺼냈다.
“짐을 싣고 오실 거라면 저 녀석들이 필요하시겠군요. 말과 같은 값에 싸게 드리지요.”
호호리가 가리킨 쪽에는 혹이 두 개 솟은 낙타 한 무리가 만사가 귀찮다는 표정으로 서서 되새김질을 하고 있었다. 지난번까지는 없었던 모습에 장재웅의 눈이 동그래졌다.
“조선에서는 낙타를 쓰지 않지요? 낙타는 7백 근(420kg)을 등에 지고 천 리를 쉬지 않고 움직일 수 있습니다. 성질이 고약하고 새끼를 치기 어렵다는 단점은 있지만.”
“확실히…받아두면 쓸모는 있겠군요. 지금은 개시(開市)를 우리 국경에서만 하지만, 건주위 안쪽까지 짐을 싣고 가게 되면 필요할 테니.”
조선 내부에서는 굳이 낙타가 없어도 된다. 말과 소를 부려서 수레를 끄는 쪽이 낙타보다는 훨씬 나으니까 말이다. 도로는 흉년이 들 때마다 계속 확충되고 있다.
하지만 조선 영토가 아닌 요동에는 도로가 없으니까, 요동을 향하는 대상(隊商)은 수레를 쓸 수 없다. 상인뿐만 아니라 군대가 이동할 때도 낙타가 확실히 한몫할 수 있다.
“마음에 드시면 다음번에 뵐 때 추가로 청하십시오. 그러면 낙타도, 소도, 양도, 건육(乾肉)도 얼마든지 제공할 테니까요. 마침 군량이 많이 필요하시지 않습니까?”
조선군의 군량은 크게 쌀과 간장, 건포(乾脯)로 구성한다. 여기서 포는 상황에 따라 어포일 수도 있고 육포일 수도 있다.
“윗전에 여쭈어야 할 일이구려. 사실 부여주에서 들여오는 육포가 수요를 대지 못하고 있긴 하지만, 내가 결정할 일은 아니라서 말이오. 어포로 대체할 수도 있거든.”
“좋게 결정되기를 바랍니다.”
호호리가 싱긋 웃었다. 마주 웃은 장재웅이 다음번 전마 인수는 언제쯤 하면 될지 논의하기 시작했다.
– 25 –
드디어 우군을 만났다. 48일 전 남원에서 출발할 때 2천 명이던 병사는 3백 명에 불과했다.
“세상에! 정말 가토 기요마사 공이시오? 전혀 다른 사람 같소!”
고성 수비를 맡고 있던 가토 요시아키가 달려 나와 맞이했다. 요시아키는 기요마사와 성은 같지만 같은 집안은 아니다.
“먼저 우리 병사들에게 먹을 것 좀 주시겠소? 그동안 거의 식사를 하지 못했소.”
“당장 준비시키겠소! 여봐라, 지금 바로 죽을 묽게 끓여라!”
요시아키는 굶주린 병사들을 위한 식사를 준비시킨 뒤 기요마사를 안으로 안내했다. 도대체 어떤 고생을 겪었기에 이런 몰골이 되었는지, 안쓰러울 뿐이었다.
“주군이신 하시바 님을 탈출시키고…같은 길이라고 생각하고 들어선 골짜기가 내가 가려는 쪽을 향하지 않았소. 추격하는 적을 피해서 급하게 이 길, 저 길을 찾다 보니 방향도 완전히 잃어버렸고.”
기요마사가 술을 들이켰다. 이것도 48일 만에 마시는 술이라고 했다.
“5백 명을 싸움에서 잃고, 나머지 1천 5백을 거느리고 산길로 들어왔는데 식량이라곤 각자 걸머진 사흘 치밖에 없었소. 산길로 계속 후퇴하려니 식량을 얻을 민가도 없고, 정말 미칠 것 같았소. 가끔 사냥하는 짐승으로는 턱도 없고.”
요시아키는 조용히 듣기만 했다. 기요마사 역시 그 이상을 바라지 않았다.
“풀뿌리를 캐고 나무껍질을 벗겨 먹으면서 산을 넘었소. 적이 그 산속까지 추격해 오지는 않았지만, 산속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으니 어떻게든 움직여서 우군을 찾아야 했지. 머뭇거려 가만히 있다가 때를 놓치면 몽땅 산에서 짐승 밥이 될 게 뻔했으니까.”
기요마사가 진저리를 쳤다. 병력 절반을 산에서 잃은 악몽 같았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산나물을 캐느라 땅에 쭈그리고 있다가 호랑이에게 물려간 자, 나무껍질을 벗기다가 나무 위에서 뛰어내린 표범에게 당한 자, 변을 본다고 뒤처졌다가 늑대 무리에게 당한 자가 한둘이 아니었소. 나 역시 호랑이와 맞닥뜨렸고, 창을 잃고 간신히 살아남았소.”
호랑이는 가토가 찌른 창을 앞발로 후려쳐 꺾어버렸다. 하지만 자기도 창날에 베어 상처를 입었고, 그 탓인지 울부짖기만 하다가 훌쩍 뛰어가 버렸다. 그냥 덤벼들기에는 놈을 가로막은 일본군 숫자가 너무 많았으리라.
“거의 한 달 만에 산을 벗어나서 평지로 나왔소. 이젠 식량도 구할 수 있겠다 싶었지. 그랬더니 이번에는 사방에서 노부시들이 덮쳐 오더군.”
전라도에서 마주쳤던 그 어설픈 병사들이 아니었다. 원거리에서 활과 총을 쏴대고 일본군이 돌격하면 그제야 흩어져서 도망쳤다. 게다가 식량을 구하기는 도리어 더 어려워졌다. 산에서 구할 수 있었던 산나물이나 나무껍질도 이제는 없었다.
“어쩌다 마주치는 조선 피난민이 있으면 가지고 있는 식량을 모조리 털어내고, 불탄 민가라 해도 집이 있기만 하면 그 주변을 샅샅이 뒤져 숨겨둔 양곡을 찾아냈소. 남강을 건너려 했을 때는 조선 관군에게까지 들켜서 맹공격을 당하는 바람에 남은 병력 절반을 잃었지.”
강을 건넌 뒤에는 더 이상 적에게 공격당할 위협은 없었다. 게다가 일본군이 바로 근처까지 와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하지만 여전히 식량은 없었고, 그저 동쪽을 향해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해서 여기에 도착한 거요. 도중에 고바야카와군이 그 길로 철수했다는 것도 우연히 알게 되었소. 고바야카와군 최후미는 언제쯤 도착했소? 지휘관은 누구였고?”
“고바야카와군 최후미는 고니시 유키나가 공이 담당하고 있었소. 7월 2일, 그러니 딱 23일 전이구려. 전투 없이 적에게 성을 내주고 물러났다고 해서 무척 크게 문책을 받았으나, 문책 외에 별다른 처벌은 받지 않았소.”
기요마사의 얼굴에 힘줄이 돋았다. 요시아키가 진정시킬 틈도 없이 분노가 폭발했다.
“나는 40일 넘게 양식도 없이 싸우면서도 적에게 항복하지 않았소! 그런데 양식도 넉넉하고 별다른 손실도 없는 병력 1만을 거느리고도 적에게 거저 성을 내줬다고? 제정신이오!”
요시아키는 분노한 기요마사를 말리느라 무척 애를 먹었다. 한참을 달랜 후에야 기요마사의 주군 하시바 공이 귀하의 희생 덕분에 무사히 대구에 도착했으니, 어서 생환을 알리고 새롭게 지시를 청하라고 관심을 돌릴 수 있었다.
– 26 –
7월 26일, 마침내 고바야카와군 4만 5천 명이 대구성을 둘러싼 포위진에 합류를 완료했다. 일본군이 원체 대군이 되니 이젠 조선군도 야습을 삼가고 자기네 진영을 지키는 데 집중했다.
“이제 참호도 성벽에서 1정(109m)까지 접근했으니, 한두 번 정도는 공세를 취한다. 만약에 성이 무너진다면 가장 좋겠지만, 안 무너진다고 해도 괜찮다. 저놈들이 우리가 여전히 대구에 목을 매고 있다고 착각하게 될 테니까.”
노부나가의 지시가 떨어졌다.
“사흘 뒤에 2만 명으로 달성을 한 번 더 공격하면서, 1만 명으로 대구성 본성을 공격한다. 지난번처럼 조선 기병이 장난질을 치지 못하도록 예비대 5천을 뒤에 남겨서 대비하게 한다.”
“예, 주군.”
“그리고 요즘 보급로가 끊겼다는 소문이 도는 모양인데, 그런 헛소리를 퍼뜨리는 놈은 몽땅 붙잡아서 목을 매달아라. 군량은 전혀 모자라지 않으니까.”
길이 멀기는 하지만 군량 수송선은 울산으로 무사히 들어오고 있다. 부산으로 직행하다가는 언제 조선 수군에게 공격당해 전멸할지 알 수가 없었다.
문제는 울산에서 쌀을 하역한 다음 영남대로까지 육로로 운반하는 과정이었다. 빈약한 도로 사정에다 일꾼과 수레, 말과 소까지 부족하니 도저히 운반할 수가 없었다.
결국, 노부나가는 방침을 다시 바꿨다. 울산에 일단 도착한 수송선이 연안을 따라 좌수영 앞바다까지 내려와서 짐을 내리고 거기서 쓰시마로 떠나도록 한 것이다. 그러면 조선 수군의 근접 여부에 따라 운행 일정을 조정하면서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었다.
“시간은 좀 걸릴지 몰라도 우리 보급선은 유지되고 있다! 대구성을 목표로 한두 번 공략을 시도하는 모습을 보인 뒤, 방심하고 있을 적 주력을 격파하면 전쟁은 끝나는 거다!”
군의를 마친 노부나가는 막사 밖으로 나갔다. 그사이 밖에는 기둥 세 개가 세워지고 밧줄에 목이 매달린 시체 세 구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입을 함부로 놀리면 어떤 결과를 맞을지, 이로써 병사들에게 확실히 깨닫게 할 수 있을 것이다.
– 27 –
함성이 올랐다. 오위군, 아니 이제 통제영 소속 등선군이 된 군사들이 칼과 방패를 쳐들고 승리를 기뻐하는 함성을 질렀다.
“훌륭하네. 이제 왜적이 다시 다대포를 빼앗지 못하도록 잘 지키는 일만 남았군.”
이순신은 오위군 출신으로 기력을 빨리 회복한 군사 4천 명을 뽑아서 다대포를 공략했다. 전선에서 신기전과 화포를 쏘아 왜병들을 다대포진성에서 쫓아내고, 해안에 가까운 평지에도 범접하지 못하게 했다.
다대포를 지키는 왜병은 1천 명도 되지 않았다. 그동안 낙동강을 봉쇄하는 조선 전선들이 툭하면 포를 쏘아대는 통에 잔뜩 주눅이 들어있던 다대포진 왜병들은 공격이 시작되자 서로들 앞을 다투어 도망쳤고, 등선군이 딱히 싸울 필요도 없을 정도였다.
“과도한 욕심은 부리지 않도록 하라. 너희 책무는 다대포진성을 지켜 우리 수군이 부산으로 출격할 때 정박지를 제공하는 일이다.”
“예, 통상. 명심하겠습니다.”
복수심에 불타는 오위군은 적과 싸우겠다면서 명령받은 이상으로 나가서 싸우려 할 우려가 있었다. 이순신은 이들에게 다대포 바로 북쪽에 있는 아미산을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단단히 못을 박았다.
“너희가 군령을 어기고 함부로 군사를 움직인다면, 마땅히 군율에 따라 기둥에 목이 걸리게 되리라. 알겠느냐?”
“예, 통상.”
내륙에 왜군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는 이상, 수군이 지원할 수 있는 이상 깊이 들어가는 건 위험했다. 지금 중요한 건 육전으로 적을 죽이는 게 아니라 적의 양도를 끊는 일이다.
이곳 다대포에서 출발하면 판옥선이 좌수영 앞바다까지 하루 안에 왕복할 수 있다. 중도에 기항지가 없어 제대로 작전을 펼치기 힘들었던 제약이 사라지고, 왜군은 아예 부산포에 배를 댈 엄두도 내지 못하게 된다. 적어도 대낮에는.
이순신은 왜군의 숨통을 천천히 조여가고 있었다. 이제 조금만 더 조이면 왜적은 숨이 막혀 바닥에 뒹굴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