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535
2부 3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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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조선 수군은 나타나지 않았다. 1천 척에 달하는 대함대를 보고, 기가 질려 나타나지 못했음이 분명했다.
“진즉에 이렇게 했으면 좋지 않았겠소? 그랬으면 우리도 조선 수군 따위는 신경도 안 쓰고 보급을 계속할 수 있었을 텐데.”
“1천 척이나 되는 배를 한꺼번에 움직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오. 1천 번째 배가 짐을 실을 때까지 짐을 실은 채로 기다릴 1번째 배는 어쩌란 말이오? 1군부터 4군, 아니 7군이 진공할 때까지야 미리 준비할 시간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도 없소.”
흥양에서는 대함대가 있으면 적이 범접하지 못했다. 이틀이나 사흘에 걸쳐 물자와 병력을 내리는 동안에는 조선 수군도 조용히 기다렸다. 수송선단 본대가 철수하고 상륙지를 엄호하는 고니시 예하 함대만 남으면 다시 난타가 시작되었다지만 말이다.
구키 요시타카와 도도 다카토라 모두 흥양 상륙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1군 소속으로 그 작전에 참여했던 고니시 이하 장수 대부분이 부산을 지나갔거나 지금 부산에 있었다. 그들 입으로 들은 흥양 상륙은 저런 미친 짓이 어디 있나 하는 수준이었다.
“흥양에서야 기습이었으니 바닷가라면 죄다 배를 대고 올라가도 괜찮았고, 조선 수군도 그 위용에 질려 적어도 우리 대함대가 있는 동안은 덤비지 않았소. 하지만 그만한 함대가 상주할 수 없는 이상, 1천 척 단위 수송선단 운용은 큰 의미가 없소. 효율이 낮아도 너무 낮소.”
다카토라가 지적했듯, 지금 일본군에는 수백 척이나 되는 수송선이 바다 위에 둥둥 뜬 채로 허송세월해도 될만한 여유가 없었다. 지금도 대구에 주둔하는 노부나가 휘하 본대에서 보유한 물자는 계속 줄어들고 있었다.
“그래서 주공께서 수군이 보유한 전선을 총동원해서 조선 수군을 격파하라고 명하신 거요. 애초 계획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지금이라도 적을 쳐부숴야 하오.”
대륙 원정의 성공을 위해 조선이 확보한 모든 군사역량을 흡수한다는 게 원래 계획이었다. 당연히 조선 수군도 일본군에 편입시켜 물자와 병력을 운송하는 데 써먹을 예정이었다. 전혀 위협으로 여기지도 않았던 자들이, 이토록 발목을 잡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사실 여기에 모인 장수 중에도 진심으로 대륙 원정이 성공하리라 믿는 자는 거의 없었다. 그래도 조선 정도는 쉽게 정벌할 수 있으리라 예상했고, 그 과정에서 떨어질 포상과 이득이면 충분하다고 다들 생각했다.
다만 그다지 위협으로 여기지도 않았던 조선군이 이토록 발목을 잡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조선 원정이 이토록 어려워질 줄은 아무도 몰랐다.
“지금 조선 수군은 거제도 동편 해안에 있는 여러 포구에 분산되어 있소. 지금 우리 수군이 자기들과 결전을 벌일지, 그게 아니라 그저 물자를 옮기러 온 건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텐데, 우리가 진군하면 분명 거제도 서안으로 일단 후퇴할 거요. 그게 상식적인 대처니까.”
조선 수군이 아무리 강력하다고 해도 1천 척에 달하는 일본 수군과 싸우려면 배를 모아야 한다. 겨우 수십 척 정도 전력으로 싸움을 벌일 리는 없다.
“우리 군의 기본 전략은 이렇소. 부산포를 출발해서 당일로 다대포와 가덕도를 탈환하고 그 일대에서 밤을 보낸 뒤, 둘째 날에 두 무리로 나눈 우리 함대가 거제도를 남북으로 돌아 거기 모인 적을 포위, 섬멸하는 거요.”
다카토라가 지도를 짚으면서 설명했다. 구루지마 미치후사가 삐딱한 태도로 질문했다.
“적에게 너무 여유를 주는 거 아니요? 첫날에 바로 거제도까지 진격하는 게 좋지 않겠소?”
질문을 받은 다카토라가 고개를 저었다.
“우리 함대가 출발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있으니 당일에 도착하기가 어렵소. 게다가 거제도 전체가 조선군 점령지잖소? 그런 곳에서 밤을 보내려다간 무슨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오. 조선 수군이 야습할 수도 있고, 육지에서 불화살이 수천 개씩 날아들 수도 있소.”
조선 수군은 겁쟁이가 아니다. 총대장 이순신도 원균에게 들었던 것처럼 무능한 자가 절대 아니었다. 용맹하고 유능하며 굳세기가 강철 같은 무장이었다. 게다가 철포 탄환이 빗발치는 전장 한가운데를 누비면서, 분명 몇 발은 맞았을 텐데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원균은 지금 노부나가의 명령으로 연금된 상태다. 그동안 이순신을 줄기차게 깎아내리던 그 모든 행동이 의도적으로 전한 거짓 정보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은 탓이다.
“조선에 관한 가장 중요한 정보원이라고 우대받은 두 놈 중에서 하나는 얼간이였고 하나는 간첩이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지.”
구키 요시타카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다른 장수들은 그 소리를 얼핏 들었으면서도 다들 모른 척했다. 노부나가에 대한 불신으로 해석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카토라가 얼른 나서서 화제를 돌렸다.
“그래도 원균 놈이 그려준 지도는 실제 지리와 부합하고 있었으니, 거제도를 우회하는 뱃길 안내 정도는 시킬 만하지 않소?”
“다카토라 공이 원한다면 그리하시구려. 노부나가 공께서도 그놈을 절대 풀어주지 말라거나 절대 기용하지 말라는 말씀은 없으셨으니 말이오. 다만 결정적인 순간에 놈이 귀공을 함정에 빠트리더라도 말리지 않은 나를 원망하지 마시오.”
원균이 이순신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멋대로 떠들어댄 얼간이인지, 아니면 일본을 구렁텅이에 빠트리려고 의도적으로 역정보를 퍼뜨린 간첩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한 차례 더 신뢰하기에는 위험부담이 컸다.
– 5 –
가덕도와 다대포에 주둔하던 5천여 명에 달하는 군사들이 투덜거리며 배에 올랐다. 왜적과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다시 물러나야 하는 데 불만이 컸지만, 명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이들은 지금 수군이었다. 이들을 지휘하는 통제사 이순신은 군사들에게 군율을 지키게 하는 데는 추상같았다. 최근에 부산포에서 배를 잃은 선장 여섯을 한 번에 목을 날린 일은 출신과 고하를 막론하고 수군 장졸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죄를 짓고 통상 앞에 서느니 왜선 백 척과 싸우는 게 낫다!’
원래 수군에 있던 군사들 말고 최근에 편입한 오위 출신 군사들에게도 이런 인식은 확실히 박혔다. 다소 투덜거리기는 할지언정, 명령에 정면으로 거스르려는 자는 하나도 없었다.
“자, 자! 얼른 올라타라! 양곡은 불태우고, 화약과 무기만 챙겨서 타라!”
경상도 조방장 배흥립이 크게 호령했다. 그동안 경상우수군 소속으로 몇 차례 전투에 나가 싸우면서 공을 세웠지만, 그동안은 대개 이순신의 직접 명령을 받으며 움직였었기에 단독으로 함대를 움직이는 건 처음이었다.
“모두 태웁니까? 나리, 여유도 있는데 그러지 말고 싣고 가지요. 아까운뎁쇼.”
“우리가 허둥대며 급하게 물러나는 줄로 왜적이 착각하게 해야 한다는 명이 있으셨느니라! 어서 시행하렷다!”
다대포에 있는 군량은 3백 석 정도 된다. 많다면 많은 양이지만, 대마도에서 왜적에게 뺏은 쌀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하면 그 정도는 아낌없이 태워버릴 수 있었다.
산처럼 쌓인 곡식더미에 금방 불길이 올랐다. 배흥립은 일부러 장작과 짚더미, 쇠똥 따위를 그 옆에 쌓아서 불길을 키웠다. 시커먼 연기가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이 정도면 충분히 절영도에서 보일 만하겠지.”
배흥립이 동쪽을 보며 연신 비웃음을 흘렸다. 통상께서 말씀하셨듯, 적은 분명히 이 미끼에 낚일 것이다. 오늘은 8월 1일이다. 과연 며칠이나 걸릴까?
– 6 –
“왜적은 우리 전선들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다는 알지 못한다.”
가덕도 외에도 옥포, 율포, 조라포, 등 거제도 동쪽 해안에 있는 모든 포구에 속한 전선들이 전부 한산도로 모였다. 이순신은 부산으로 들어온 적선 1천 척이 치중을 보급하려는 배들이 아니고, 자신과 결전을 벌여 승부를 결하려고 온 자들이라고 확신하고 병력을 모았다.
주요 장수들이 모두 운주당에 모였다. 그리고 이순신이 침착한 목소리로 진행하는 설명을 들었다.
“그동안 왜적은 꾸준히 정찰선을 보내 우리 수를 살폈으나, 거제도 서편까지는 눈을 돌리지 못했다. 고성에 있는 적도 통영까지 오는 도중에 있는 도덕산을 넘지 못했다. 그러니 왜적은 우리 전선 수효를 기껏 150척 내외로 알고 있을 것이고, 남만선이 있음도 알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1천 척이라 하면 너무 많지 않습니까? 통상, 저희가 첫 싸움에서 70척으로 5백 척을 쳐부수기는 했으나, 그때 적은 다섯 무리로 나뉘어 각기 따로 움직이다시피 했고 그중에서 마지막 한 무리는 아예 싸우지도 않고 도주했습니다. 과연 이번에도 그럴는지요.”
지나간 몇 차례 수전에서 왜군은 매번 패했다. 하지만 마지막 배 한 척, 수졸 하나까지 다 죽은 싸움은 없었다. 적이 워낙 많았던 탓으로, 죽이고 또 죽여도 살아서 도망가는 자들이 더 많았다. 그만큼 저들도 지나간 싸움 결과를 보고 배운 바가 있을 것이다.
“포로로 잡은 왜적이 실토하기를, 그때 후미에서 싸움을 구경만 하다가 도망간 자들은 실은 거제도에 상륙하려고 준비한 군사라서 수전을 치를 준비가 안 되어있었다 하지 않았느냐?”
“그렇습니다, 통상. 왜적이 단단히 별러서 준비한 수전이라면 1천 척을 모조리 군선으로만 준비하여 우리 전선들을 그 수로 눌러버리려 들 것입니다. 그 기세를 정면으로 맞받아치다가 우리 전선들도 피해를 볼 수 있으니, 조금 물러나서 적이 지치고 흐트러지게 하면 어떨지요.”
남해도까지만 물러서도 된다. 적은 조선 수군이 어디 있는지 찾느라 함대를 분산할 수밖에 없고, 따로 움직이는 소규모 적선들을 한 번에 한 무리씩 쳐부수는 건 쉽다. 하지만 이순신은 이 제안에 대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미 충분히 많이 물러섰고, 충분히 패했다. 적에게 밀려서 여기서 더 물러설 수는 없다.”
이순신은 압도적인 수의 왜군과 맞서 싸우다가 자폭한 발포 만호 박홍섭과 흥양 현령 원전, 두 수군 장수를 거론했다. 그동안 몇 차례 싸움에서 적탄에 맞거나 난전 중에 죽어간 장수와 군사들도 언급했다. 그리고 최근 합류한 오위 군사들이 잊을 수 없는 사건도 되새겼다.
“평양군과 오위 군사들 역시 적의 계교에 빠져 사방을 포위당했음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싸웠다. 절반은 순절하고 남은 절반은 격전 끝에 혈로를 뚫었다. 그리고 우군이 적진을 뚫고 빠져나가는 동안 엄호를 맡아 최후까지 싸운 이들이 우리 등선군으로 오지 않았느냐!”
최후까지 후퇴를 엄호한 종사관 김여물, 그가 이끌던 결사대 군사 중 상당수도 한산도에 와 있었다. 그들은 김여물이 어떤 최후를 맞았는지를 생생하게 전했다. 전신에 화살을 여섯 개나 맞고, 조총탄 세 발을 맞고, 창과 칼에 수없이 찔리고서야 비로소 쓰러졌다고 했다.
이 장엄한 최후도 신립의 그것에는 미치지 못했다. 대마도에서 생환한 포로 중에는 신립과 함께 봉수대가 있는 산꼭대기까지 올라갔던 기병도 있었다. 그가 전하는 신립의 최후는 실로 비장했다. 정말로 신립다운 마지막이었다.
“너희도 나라와 백성을 위하여 그처럼 해야 할 것이다. 적이 나타나면 물러섬 없이 싸워야 한다. 물론 적을 더 좋은 싸움터로 끌어들이기 위해 일시 물러설 수는 있으나, 지금 남해도로 물러설 필요는 전혀 없다. 한산도에서도 낙승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절대 철수는 없다. 이순신은 수하 장수들 앞에서 단단히 쐐기를 박았다. 왜 물러설 필요가 없는지, 거침없는 설명이 이어졌다.
“적은 우리 수군이 거제도 동안에 없음을 쉬이 파악하고 철수한 아군을 찾아 서안으로 돌아 들어올 것인데, 그 주력은 필시 영등포를 거쳐 견내량을 향할 것이다. 거리가 짧고 움직이기 쉽기 때문이다.”
왜군이 의외로 바깥 바닷길로 움직이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은 포로들을 통해 알려졌다. 흥양을 직접 타격한 왜적들은 오도(五島, 고토) 출신 해적으로, 다른 자들은 수군은 수군이되 바닷길을 누비는 재주는 그보다 떨어진다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지금 저들은 조선 수군과 결전을 벌이고자 하고 있을 테니, 한산도를 우회할 이유도 없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싸움은 분명히 벌어진다. 이제까지 없던 대규모로 말이다.
“왜적이 반도들을 통해 우리 뱃길을 꽤 정확히 알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부 전선들을 거제도 남단으로 돌려서 우리 전선들이 후퇴하지 못하게 만들려 할 공산이 크다. 우리는 이를 이용하여 적을 각개격파하고, 급히 달려드는 적 주력을 마저 격파한다.”
이순신은 손에 쥔 등채로 지도 위에 두 개의 선을 그었다. 거제도를 남북으로 돌아 한산도 앞바다에서 만나는 선이었다.
“통상, 적이 만약 거제도를 우회하는 대신 거제도 동안에 배를 대고 섬을 점령하려 든다면 어찌 대응하시겠습니까? 한산도야 괜찮겠습니다만, 거제도 여러 골짜기에는 육지에서 피신한 수만 백성이 몸을 숨기고 있습니다. 포로들도 있고, 치중도 많습니다. 옮길 여유가 없습니다.”
한산도가 그렇게 크지 못한 탓에 경상우도에서 피난해 온 백성들 대부분이 거제도에 있다. 그 안전을 걱정함은 장수들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반복해서 거론됐다.
“이미 말하지 않았나. 적은 지금 우리 수군을 없애려 전력을 경주하고 있을 터인데, 거제도 점령 따위가 눈에 들어오겠는가? 지금 거제도에 배치해둔 등선군 1만과 속오군이면 충분한 대비가 되니 걱정하지 말라. 하지만.”
이순신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적이 거제도에 군사를 내려서 섬을 빼앗고자 한다면, 우리는 수전을 치르지 않고도 싸움에 이길 것이다.”
– 7 –
“우리가 거제도부터 공략하고자 한다면, 수전을 치르지 않고도 싸움에 패할 거요.”
도도 다카토라가 거제도를 함락하여 조선 수군이 기항할 근거지를 빼앗아버리자는 장수들의 주장을 억누르며 말했다.
“다대포에 있던 조선 수군이 진영을 불사르고 퇴각했으며, 적어도 수백 석은 되는 군량미를 불태웠다는 보고는 받았소. 그리고 조금 전 돌아온 정찰선이 올린 보고, 거제도 동편 해안에 조선 수군이 진을 친 진포에서 비슷하게 연기가 오른다는 보고 역시 그대들과 함께 받았소.”
“그럼 다카토라 공은 왜 거제도 공략을 반대하는 거요? 적은 우리 대함대의 위용에 질려서 군량을 불사르고 도망치고 있음이 분명하지 않소! 지금이 기회요. 적이 물러나려 하는 바로 그때 단박에 몰아쳐야 하오. 흥양에서는 그걸 못해서 해로가 끊기고 말았소.”
노부나가는 흥양에서 돌아온 수군 장수 대부분을 다카토라 휘하에 넣었다. 이들은 흥양에서 엄청난 손실을 내고 겨우 전력을 복구한 터였지만, 본래 가문의 세력으로 딱히 다카토라에게 뒤떨어지지 않다 보니 그의 지휘권을 잘 인정하지 않았다.
“흥양에서, 고니시 유키나가 공이 조금 더 과감하게 움직였다면 우리는 전라좌수군이 싸울 태세를 취하기 전에 여수를 들이쳐 함락할 수 있었소. 서쪽 역시 과감하게 움직여서 강진으로 진군했다면 전라우수군이 오기 전에 막을 수 있었지. 그런데 그걸 못 했소.”
고니시가 수군으로 다시 오지 않고 육군으로 대구에 투입된 데는 역시 1군을 이끌었을 때 너무 소극적으로 움직인 탓이 컸다. 노부나가는 고니시를 문책하진 않았지만, 다시 수군으로 보내지도 않았다. 수군을 이끌 역량이 없다고 공표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우리도 이번에는 과감하게 움직여야 하오. 적이 거제도 동편을 비운 틈을 이용해 거제도에 가능한 많은 병력을 양륙하고, 섬을 점령하는 거요. 그러면 더 서쪽으로 진격할 필요도 없소. 거제도 하나만 확실히 잡아도 조선 수군은 부산포를 칠 수 없소.”
거제도에 기항할 수 없는 조선 전선들은 보급로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 이들은 이미 충분히 처절하게 조선 수군과 싸워보았고, 조선 수군과 굳이 직접 싸워서 격파하지 않더라도 그들을 밀어낼 수만 있다면 만족했다. 하지만 다카토라는 생각이 달랐다.
“그대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오? 동편 해안을 비워 놓은 것은 이순신이 내건 미끼요. 또한, 흥양은 우리가 기습을 성공시켰기에 적이 대비하고 있지 않았으나 거제도의 적은 한참 싸우던 중이니 만전을 기하고 있을 거요. 게다가 거제도의 모든 산꼭대기는 적이 차지했소.”
산꼭대기를 차지했다는 말은 곧 시야를 확보했다는 의미다. 즉, 일본군이 취하는 움직임을 적이 모조리 관측하고 그에 맞춰 움직일 수 있다.
“우리가 유유히 거제도를 점령하도록 적이 섬 내부를 비웠을 리도 없고, 분명 며칠 이상은 싸움을 계속해야 할 거요. 전투병들을 육지에 올리고 수부만 남아 있는 우리 함대를 이순신이 덮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소? 쓰시마에서 벌어진 일을 10배로 반복하는 꼴이 아니겠소?”
다카토라는 이 너무도 당연한 소리를 왜 강조해야 하는지 자기 자신에게 한심함을 느꼈다. 그나마 쓰시마가 언급되니까 장수들이 바짝 긴장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는 노부나가의 명령을 다시 한번 선포하여 장수들의 주의를 환기했다.
“잊지 마시오. 주공께서는 ‘적 수군을 격멸하라!’고 하셨소! 이순신을 죽이거나 붙잡고, 조선 수군 전선들을 전멸시켜야만 하오. 그저 적을 밀어내기만 하면 된다는, 그런 느슨한 마음으로 이 싸움에 임하지 말기를 바라오! 우리 수군은 거제도 서편에서 결전을 치를 수밖에 없소!”
“옳소! 마땅히 적장의 목을 벨 각오로 싸움에 임해야 무장이라 할 수 있는 법이오!”
조용히 분위기를 살피던 구루지마 미치후사가 벌떡 일어나 적극적인 교전론을 설파했다. 긴 서론이 있었지만, 결론은 자신이 이순신을 몰겠으니 별군 지휘를 맡겨달라는 내용이었다.
“좋소! 그대가 별군을 맡으시오. 구루지마군 3백 척이 거제도 남방으로 돌고, 나머지 본대 7백 척이 거제도 북방으로 돌아 견내량으로 진입하겠소.”
구키 요시타카가 제안한 이동 방향과는 반대다. 다카토라에게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었다.
다른 장수들도 별 이의 없이 동의했다. 구루지마군이 먼저 적에게 죽는 사이 적의 뒷덜미를 치겠다는 의도인지, 주전장에서 구루지마군을 밀어내겠다는 의도인지는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