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537
2부 3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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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선 전면에 탑재한 지자총통이 불을 뿜었다. 본래 탑재했던 24근 포를 쐈으면 한 방으로 왜선 두세 척쯤 부수는 것도 가능했겠지만, 지자총통으로는 직접 명중한 배 한 척에 구멍을 뚫고 통과선상에 있는 왜병들을 박살 내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통제사 좌선을 쫓아 어린진을 형성하고 있던 왜선들은 추격에 너무 열중하고 있었다. 적이 미처 살피지 못한 측면에서 나타난 조선 전선들은 방심하고 있던 적에게 불벼락을 퍼부었다.
“올라탈 여유는 없다! 화포와 불화살로 격파하라!”
적선을 나포하려고 애쓰지 말라는 건 이순신이 내린 군령 중 하나였다. 두 갈래로 갈라진 적 중에서 한쪽을 빨리 격파하고 다른 한쪽을 쳐야 하니, 시간을 끌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백 보 안으로 다가가지 마라! 화포와 화살만 퍼부어라!”
백 보 거리라면 각궁으로는 넉넉하게 쏠 수 있는 거리, 수군이 가진 활강조총으로 노려 쏠 수 있는 최대거리다. 화포야 종류를 따질 필요도 없고.
하지만 왜군이 쓰는 조총이나 활로는 백 보 떨어진 아군을 쏘아 맞힐 엄두도 낼 수 없다. 맞지도 않는 총을 난사하는 적을 완전히 일방적으로 후드려 팰 수 있는 상황이다. 물론 그냥 맞고만 있을 만큼 왜적들이 바보는 아니었다.
“나리, 놈들이 배를 돌려 우리 쪽으로 다가옵니다!”
아쉽게도 처음 쏜 포환은 전부 목표에 적중하지는 않았다. 3백 척에 달하는 적선 중에서 첫 포격에 맞아 움직임을 멈춘 적선은 30척 정도에 불과했다. 선체를 부수고 들어간 탄환이 적을 죽이고 노를 꺾은 데서 그치지 않고, 바닥을 뚫어 물까지 쏟아져 들어가게 만든 배들이다.
남은 배들도 자신들이 처한 처지를 곧바로 깨달았다. 그리고 미친 듯이 노를 저어 판옥선에 접현하려고 했다. 선두 대열에 있던 50여 척은 이제까지 쫓아온 통제사 좌선을 향해서 그대로 달려들었고, 남은 2백여 척은 좌우로 흩어져 각기 전면에 있는 조선 전선을 향해 달려들었다.
“상관없다. 일차 방포 후 어서 조란환을 장전하라!”
철환과 장군전이 또 한 차례 왜선을 향해 날아들었다. 첫 일제포격은 좌현에 탑재한 화포로 했고, 이번에는 우현 화포였다.
포화는 주로 적 중선에 집중되었다. 중선이 아무래도 사람이 많이 타고 있고, 판옥선으로 옮겨타기도 쉽기 때문이다. 소선과 중선 모두 옆에 사다리를 걸치지 않으면 올라탈 수 없는 건 마찬가지지만, 중선이 그래도 더 높다.
집중사격을 받은 왜 중선들이 잇달아 멈췄다. 정면으로 달려들던 왜선이 포격을 받자, 배가 진행하는 방향으로 줄지어 서 있던 수졸과 격군들이 한 방에 줄줄이 쓰러진 경우가 잇달았던 탓이다. 한참 노를 젓던 격군들이 졸지에 고깃덩어리가 되었으니 배가 움직일 리 없다.
불화살을 메긴 궁수들은 멈춰선 배를 먼저 사격했다. 놈들이 정신을 차리고 다시 움직이기 전에 확실히 숨통을 끊어 놓아야 했다. 불을 끄려고 허둥대는 놈들은 화살과 조총이 날아가서 그대로 거꾸러뜨렸다.
다음 차례는 용케 포에 맞지 않고 그대로 달려드는 왜 소선들, 그리고 일부 중선들이었다. 왜선은 거리를 유지하고 사격전을 벌여 봐야 어떤 운명을 맞이할지 빤히 보인 탓인지 충돌할 기세로 달려들었다. 그새 조란환으로 재장전을 마친 좌현 화포에 불이 댕겨졌다.
“방포하라!”
수백, 수천 개나 되는 새알만 한 철환이 구름처럼 흩뿌려졌다. 전선 측면에 죽 늘어선 지자, 현자, 황자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가까워지던 왜선들이 일시에 구멍투성이가 되고 갑판에 늘어서 있던 왜병들은 피떡이 되어 널브러졌다.
수졸들만 쓰러진 게 아니었다. 왜 중선은 격군이 선실 안에서 노를 젓지만 소선은 갑판에서 수졸들과 뒤섞여 노를 젓는다. 격군들도 수없이 조란환에 맞아 나뒹굴었다.
70척 가까운 전선이 세 차례나 포화를 퍼붓자 이쪽으로 달려들던 왜선 대부분이 불벼락을 뒤집어썼다. 포격만으로 배를 가라앉히는 거야 당연히 무리지만, 갑판 위를 알짱거리던 왜병 대부분은 피투성이가 되어 자빠졌다. 포에 안 맞은 자들도 조총과 화살에 맞아 쓰러졌다.
“이야아아아!”
그래도 하늘이 허락한 운이라는 게 있는지, 제법 많은 왜선이 살아남았다. 포격을 피했거나 맞아도 별 피해가 없었던 자들이 악에 받친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그리고 판옥선을 향해 자기들 배를 들이밀었다.
“배를 돌려라! 측면으로 받지 마라. 정면으로 밀어버려라!”
순식간에 회전하며 양현에 있는 함포를 교대로 쏘아댄 데서 알 수 있듯이 판옥선은 회전이 아주 빠르다. 그리고 왜선보다 크고, 구조도 훨씬 튼튼하다. 게다가 적이 나타나기까지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서 힘을 아껴두기까지 했으니, 왜 소선을 밀어붙이는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판옥선에 정면으로 깔린 왜 소선은 그대로 으스러졌다. 타고 있던 왜병들도 바닷물 속으로 굴러떨어졌다. 그 자리를 지나가는 판옥선 뱃전 옆으로 떠오르는 머리통이 몇 개 보였으나, 곧바로 날아간 화살이 그 옆에 핏물을 퍼뜨렸다.
악착같이 측면으로 붙어서 갈고리를 단 밧줄이나 사다리를 걸고 기어오르는 자들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 시도는 하나같이 실패했다. 재장전을 마친 화포가 양쪽에서 조란환으로 집중사격을 퍼부었고, 코앞에서 쏘는 화포는 더 이상의 행운을 허락하지 않았다.
화포 사격이 전부가 또 아니었다. 달라붙은 쪽 전선 갑판에서는 주먹만 한 쇠공이 왜선으로 떨어졌다. 왜선 갑판에서 터지는 척탄은 그나마 살아남았던 왜병들을 갈가리 찢었다. 선실을 박차고 뛰어나오던 왜인 격군들도 피투성이가 되어 계단 밑으로 도로 떨어졌다.
정말 운이 좋은 극소수의 왜병은 판옥선 갑판에 기어오를 수 있었다. 방패판 상단에 손을 짚을 때까지 올라선 사다리가 부러지거나 매달린 밧줄이 끊어지지 않고, 몸을 내밀 때 창에 찔리거나 화살에 맞지 않고, 뛰어들 때 장대에 맞아 바다로 팽개쳐지지 않은 자들이다.
이들은 자기 앞에서 피하지 못한 수졸 한두 명을 베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한 행운은 여기서 끝이었다. 각 전선에는 숙련된 등선군 20명에서 30명이 올라타고 있었다. 적이 배에 올라탄 직후에는 막지 못했다 해도, 다음 순간에는 끝장이 났다.
뛰어든 왜병들은 기껏해야 서너 명, 무기도 칼이나 창 한 자루가 고작이었다. 이들을 막는 등선군은 조를 짜서 방패로 몸을 지키면서 창과 칼로 적을 난자했다. 중과부적, 아무리 날고 기는 왜병이라도 무리를 지어 덤비는 등선군을 혼자 당해낼 수는 없었다.
물론 개중에는 갑옷이 든든하다든가, 정말 칼솜씨가 뛰어나다든가 해서 등선군 군사들까지 베어 쓰러트리며 날뛰는 자들도 있었다. 그런 왜인에게는 곧바로 궁수나 조총수를 투입했다. 설사 만인지적의 용사라고 해도 날아드는 화살이나 총탄을 모조리 피할 수는 없는 법이다.
피에 젖은 수급을 치켜든 군사들이 환호했다. 통제사가 수급을 거두겠다고 적선에 올라타는 행위를 엄금하기는 했지만, 저쪽에서 먼저 뛰어든 경우라면 베어도 되지 않겠는가. 돛대 위에 내걸린 수급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돛대에 붉은 얼룩을 남겼다.
“반 시진이 좀 넘게 걸린 셈인가.”
한산도 쪽에 매복한 함대를 지휘하던 이억기가 전장을 살피며 뇌까렸다. 이억기가 지휘하는 전선들은 덤벼드는 왜선 백여 척을 모조리 격파했다. 지금은 물에 뜬 잔적을 사살하고 있다.
“건너편 정 수사 나리 쪽도 다 끝났습니다.”
전라좌수사 정걸은 통영 쪽 해안에 매복한 함대를 이끌고 있다. 그쪽도 역시 숙련된 장수, 왜적을 쳐부수는 재주로는 이억기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 않다.
“이제 통상을 도와 정리를 마무리해야겠다. 함대를 북쪽으로 돌려라.”
“도망치는 왜선이 있는데, 쫓지 않으시겠습니까?”
포위망을 제법 넓게 펼쳤음에도 도망치는 적선이 일부 나왔다. 저 운 좋은 놈들은 선단에서 가장 후미에 있었고, 그 덕분에 중앙부에 집중된 포화를 모면했으니 별로 파손되지도 않았다. 이억기는 남쪽을 향해 죽어라 달리는 이 적선들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놓친 건 아쉽다만, 남만선 3척이 이미 섬 뒤에 숨어 대기하고 있지 않으냐. 도망치는 적은 고작 중선 2척에 소선 7척뿐이니, 그 정도는 그 3척이면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거다.”
이제 곧 북쪽에서 내려올 왜적 본대가 있다. 그에 대처하려면 그까짓 왜적 패잔병 때문에 주의를 돌릴 여유가 없었다. 이억기는 바로 함대에 뱃머리를 돌리라는 명령을 내렸다.
– 13 –
구루지마 미치후사는 수없이 죽어가는 부하 해적들을 보았다. 철포에, 화살에, 도끼와 창에 맞아 죽어갔다. 눈앞에 선 조선 전선 30척은 마치 30개의 성과 같았다. 특히 그 중앙에 있는 유독 큰 배, 이순신의 대장선은 마치 오사카성과 같이 거대했다. 그리고 실로 난공불락이었다.
“올라가라! 사다리를 타고 적선에 올라가란 말이다! 이순신 놈의 목만 베면 이 싸움은 우리 구루지마 해적의 승리다!”
목이 터지라고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허사였다. 이순신이 탄 대장선을 붙잡기는커녕 그를 따르는 배들조차 단 한 척도 잡지 못했다. 조선 수군은 거대한 전선이 마치 진짜 성이나 되는 듯이 지켜냈다.
성과 같은 거대한 배 위에서, 아래쪽에 있는 일본군을 향해서 폭탄과 불덩이가 날아들었다. 방패를 들어 그것들을 배 밖으로 쳐내려니 불화살이 날아들어 방패에 꽂혔다. 그 위에 기름이 퍼부어졌다. 방패가 타오르자 병사들은 방패를 던졌고, 다시 불덩이와 폭탄이 떨어졌다.
“주군! 본대, 우리 본대가…!”
“알고 있다! 어렵겠지만 버티라고 해! 그쪽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이순신을 잡기 위해 뛰어들었다. 이순신은 도주를 멈췄고, 지금 뛰어들면 분명히 잡을 수 있었다. 조선 수군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총대장인 이순신이 죽으면 무너져내리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면 저들은 흩어져 도망칠 것이다.
부주의하게 적을 뒤따르다가 매복에 걸리긴 했지만, 이순신을 잡는데 필요한 그 짧은 시간 정도는 버틸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본대 전력은 좌우로 갈라져 적 복병을 상대하게 하면서 자신은 최정예 전선 50척을 끌고 이순신을 정면으로 들이쳤다.
그런데, 그게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썼다. 사다리를 대고 기어오르고, 갈고리를 던져 밧줄을 걸고, 활과 철포로 조선군을 공격했다. 이 모든 시도가 실패했다. 적은 무너지지 않았다.
심지어 장대 위에 선 이순신에게 탄환과 화살이 분명히 명중하는 광경도 몇 번이나 보았다. 하지만 이순신은 쓰러지지 않았다. 탄환에 맞았을 때만 잠시 비틀거릴 뿐, 멀쩡하게 지휘봉을 휘두르며 군사들을 호령하고 있었다.
“개 같은 남만갑!”
악문 잇몸이 터져 피가 흘렀지만 미치후사는 깨닫지 못했다. 도대체 저 괴물이 입은 갑옷은 얼마나 두껍기에 겨우 반 정(약 50m) 거리에서 날아드는 철포 탄환을 버텨내는 걸까?
괴물이다. 이순신은 정말로 괴물이다. 화포 한 문 싣지 않은 배들을 가지고 중무장한 일본 전선 50척을 막아내고 있다. 게다가 자기 배는 단 한 척도 불타거나 빼앗기지 않았다.
“그 많은 희생을 치르고도 갑판에 몇 번 올라간 게 전부라는 말인가!”
그나마 이순신이 탄 대장선 갑판에는 단 한 명도 올라가지 못했다. 뱃전이 워낙 높은 데다, 그 배에 타고 있는 조선군 병사들은 중무장했고 대처도 빨랐다.
이젠 무슨 수단을 쓰면 좋을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어립선을 적 대장선에 바짝 붙인 다음에 싣고 있는 화약을 그대로 폭파해서 자폭할까 하는 생각까지 잠깐 들었다.
“제기랄! 그럴 수는 없어! 난 해적이다! 살아남아야 다음 기회도 있다!”
이를 악문 미치후사는 철수할 결심을 했다. 조선 복병은 바로 뒤에서는 나타나지 않았으니, 방향을 돌려서 당장 도망치면 적어도 절반 정도는 살려낼 수가 있을 터였다. 그 정도만 하면 재기하기에는 충분한 밑천이다.
군배를 든 미치후사가 막 철수 명령을 내리려는 참이었다. 하지만 아까부터 본대 이야기를 하던 근습 무사가 그때 피를 토하는 듯한 비통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주군! 본대가…본대가 전멸했습니다!”
“뭐? 전…멸했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소스라치게 놀란 미치후사가 급히 고개를 뒤로 돌렸다. 정말로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3백 척에 달하던 구루지마 해적 선단은 이제 자신이 이끄는 일부밖에 남지 않았다. 복병을 상대하게 했던 본대는 모조리 부서져 불타거나 가라앉고 있고, 수많은 시체가 수면 위에 떠서 그 주변을 떠돌고 있었다.
그나마 살아서 도망치는 배가 저 멀리 몇 척 보였다. 하지만 그 녀석들도 끝까지 무사하게 도망치지는 못했다. 남만선, 이 근래에 규슈부터 쓰시마를 거쳐 부산포까지 출몰하던 바로 그 남만선들이 앞을 가로막고 포격을 퍼붓고 있었다.
수부들은 새벽부터 노를 젓느라 지쳐 있다. 조선군 포위를 벗어나면서 이미 기력을 소진한 수부들이 저기서 한 번 더 이탈할 수 있을지, 미치후사 자신도 차마 기대를 품을 수 없었다.
“제기랄, 해적이 죽기 위해 싸우다니!”
본대를 전멸시킨 조선 수군 복병들이 대열을 정비하고 있었다. 이제 미치후사에게는 퇴로가 없었다. 미치후사의 입가에 무섭게 냉혹한 미소가 어렸다.
“형님…형님이 확실히 저보다 현명했군요.”
바다가 좋았다. 배가 좋았다. 함대를 거느리고 바다를 누비면서 느끼는 그 바람이 좋았다. 육지에서 누리는 안정 따위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조선을, 명나라를 정벌하겠다는 노부나가의 계획을 들었을 때 미치후사는 진심으로 기뻤다. 성공 여부는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함대를 이끌고 활약할 기회가 생긴다는 사실만으로도 즐거웠다. 이제 일본 내에서는 전쟁이 끝났다. 그럼 바다 바깥으로 나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구키 수군에 밀려 첫 출전 명단에서 빠졌을 때도 큰 실망은 없었다. 다음 명나라 원정 때는 선두에 설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보다 일찍 기회가 왔고, 기쁘게 나섰다.
환호하며 출정한 결과가 이거였다. 거느린 전선들은 거의 잃었고, 지금 남은 전선들도 이제 곧 잃을 것이다. 이순신과 싸우느라 병사들도 거의 잃었다. 백 척이 넘는 적이 배후를 노리고 다가오는데 남은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주군, 이순신이 자기 옆에 철포병을 하나 불러올리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고개를 돌려 이순신 쪽을 보았다. 이제까지 홀로 장대 위에 서 있던 이순신 옆에 보고대로 조선군 철포병 한 명이 올라가 있었다. 이순신이 미치후사가 타고 있는 구루지마군 어립선을 가리키고, 그 철포병이 이쪽을 겨냥하는 모습이 보였다. 미치후사가 비웃었다.
“멍청한 놈. 3정(약 330m)은 되는 거리를, 큰 화포도 아니고 고작 철포로….”
미치후사는 말을 미처 끝내지 못했다. 조선군 철포병이 쏜 원추형 탄환이 그의 오른쪽 눈을 터뜨리면서 머리뼈 속을 온통 헤집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대로 어립선 갑판 위에 쓰러졌다. 더 이상 무엇을 생각할 수도, 입 밖에 낼 수도 없었다.
– 14 –
“멍청한 구루지마! 전군 돌격하라! 대형 따위 신경 쓸 것 없다!”
도도 다카토라가 온몸을 떨며 호령했다. 기껏 계획한 작전이, 미치후사의 욕심 때문에 몽땅 어그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소규모에다 피해도 별로 없었지만, 출발은 늦출 수밖에 없게 만든 조선 수군의 야습 때문에.
그동안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조선 전선 150척이 한데 뭉치면 구루지마군 3백 척 정도는 상대도 되지 않았다. 멋대로 혼자 싸우면 전멸당할 게 뻔했다.
그래서 미치후사에게 꼭 본대가 싸움을 시작한 뒤에야 별동대도 전투에 들어가라고 신신당부했다. 본대가 밤을 보낼 기항지를 처음 계획대로 가덕도로 하지 않고 적의 야습을 무릅쓰고 진해로 옮긴 것도 본대가 최대한 빨리 견내량을 지나 전투를 먼저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다른 함대와 아무리 충돌을 일으키더라도 구루지마군을 본대에 묶어놓았어야 했습니다.”
“지금은 나도 그리 생각한다.”
콧대가 높은 해적이라, 구루지마군은 다른 함대와 사이가 나빴다. 다카토라가 그들을 선뜻 별군으로 내보낸 데는 그 탓도 컸다. 하지만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그런 결정은 삼갔으리라.
“어서 견내량을 돌파하라! 적이 아직 구루지마군과 싸우는 동안 뒤를 쳐야 한다!”
구루지마군을 미끼로 해서 적의 배후를 치다니, 결국 처음에 구키 요시타카가 권했던 대로 되고 말았다. 같은 해적으로서 미치후사를 자주 접해서 그의 성격을 잘 아는 요시타카가 가장 적절한 조언을 했던 셈이다.
“제1진이 견내량을 통과했습니다!”
“좋아!”
부산에서 노획한 천리경은 저 멀리 있는 싸움터를 훨씬 잘 보이게 했다. 그리고 요시타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용한 원균은 함대가 막다른 포구 같은 곳에 들어갔다가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정확한 뱃길을 안내했다. 원균 덕에 구루지마군이 전멸하기 전에 견내량에 도착했다.
몇 척은 그만 견내량의 빠른 물살에 휩쓸려 수로를 벗어나 좌초했다. 하지만 나머지 배들은 가운데 있는 수로를 무사히 통과했다. 이제 물목을 지난 선두 함대가 대열을 정비하고 교전을 시작할 참이었다. 조선군은 아직도 구루지마군과 싸우고 있는 듯했다.
“저게 뭐야…?”
아직 견내량을 지나지 않은 후미부대와 함께 있는 다카토라의 눈에, 삐 하는 소리와 함께 하늘로 날아오르는 연기가 한 줄기 보였다. 기슭에서 솟은 연기는 허공에서 터지면서 폭음을 울렸다. 다음 순간 일본 수군 역사상 최악의 재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