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538
2부 3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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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아라!”
무시무시한 포화가 불을 뿜었다. 30문 가까이 되는 24근 포, 3백 문을 넘는 천자총통, 60기 이상 되는 신기전기, 백문 가까운 대완구가 견내량 양편 기슭에서 일시에 불길을 토해냈다. 포대를 가리기 위해 덮어 두었던 포장, 앞에 세운 나뭇단과 풀더미는 모두 옆으로 젖혀졌다.
이순신은 심혈을 기울여 수많은 포대를 구축했다. 등선군, 속오군, 피난민까지 총동원해서 밤을 새워 가며 땅을 파고 담을 쌓고 포와 탄환, 화약을 옮겼다. 포대 구축이 완료되면 포장을 씌우고 풀더미를 쌓거나 나무를 세워 앞을 가렸다. 대마도 왜인들도 한몫 끼었다.
공사장에 모인 피난민들은 노인과 여자, 아이들뿐이었다. 한창때인 사내들은 이미 속오군에 나가고 없었다. 게다가 나라에서 평소에 행하는 부역처럼 저화가 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모두 싫다 하지 않고 기꺼이 나서서 땅을 파고 흙을 날랐다.
이 백성들에게 이순신은 왜적에게서 자신들을 구출해 준 은인임과 동시에 싸움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은 불패의 명장이었다. 패하기는커녕 배 한 척도 잃지 않았고, 간혹 전사한 수군이 있으면 가족에게 쌀을 보내 위문하는 자상한 장수이기도 했다.
그런 배경이 있었기에 소와 사람이 함께 붙어서 만 근은 족히 나갈 24근 포를 끌어올렸다. 말뚝을 박고 밧줄을 매어 동차를 고정했다. 화약과 신기전 다발을 이고 지고 날랐다.
그 노력의 결과가 지금 왜적을 향해 퍼부어지고 있었다. 왜적이 지난 몇 달 동안 호남에서, 그리고 지금 영남에서 저지른 온갖 만행에 대해 들은 군사들은 분노에 불타 공격을 가했다.
“배에 싣고 쏘는 것보다 훨씬 좋구먼!”
흔들리는 배 위가 아니니 조준이 편하다. 인접한 포대와 충분한 거리를 두었으니 방포 중에 서로 방해가 될 일도 없다. 화약과 탄환을 쌓아 놓을 공간도 넉넉하다. 당연히 배 위에서보다 빨리 쏠 수 있고 정확도도 높다. 심지어 위력도 배에서 쏠 때보다 더 강했다.
배에서 쏘는 포환은 적선과 별 차이 없는 높이에서 발사된다. 하지만 포대 대부분은 거제도 쪽, 시래산 자락에 자리를 잡았다. 실제 전선보다 더 높은 위치에서 대포를 쏘면서 떨어지는 힘이 더해지니, 왜선을 맞힌 포환의 위력은 더 강해졌다.
대완구와 신기전기는 사거리가 짧아서 포대보다는 견내량 가까이에 놓였다. 하지만 이들은 적선에 맞기만 하면 맞는 위력 같은 건 별로 의미가 없으므로 상관이 없다. 더구나 왜선에서 쏘는 총탄이나 화살은 신기전보다도 사거리가 훨씬 짧으니, 일방적으로 쏠 수 있는 건 같다.
“왜놈들이 배에서 뛰어내려 칼을 들고 달려들면 어쩌지?”
“어허, 자네는 저 여울에 배를 댈 수 있는가?”
견내량의 거친 물살 속에서 기슭에 무사히 배를 대다니, 그건 극소수 이 동네 토박이들이나 부릴 수 있는 재주다. 처음 이 물길을 지나는 왜선이 육지에 군사를 내려 포대를 공격하다니,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계속해 쏘아라! 24근 포와 천자포는 적선을 정확히 노려 쏘고, 신기전은 대략 적선 방향만 맞추어서 쏘아라! 대완구도 적의 위치를 정확히 가늠하여 쏘아라!”
측면에서 왜선을 명중시킨 대장군전은 적 대선의 옆구리를 뚫고 들어가서는 그대로 반대편 벽을 뚫고 나갔다. 그리고 하필 그 자리에 있던 운 없는 적 소선을 명중시켜 두 조각낸 다음, 커다란 물보라를 피워올렸다.
뒤이어 날아든 24근짜리 철환은 적 대선이 높이 세워 올린 누각 절반을 그대로 부숴버렸다. 왜병 수십 명이 그대로 흩날리거나 바닷물 속으로 내팽개쳐지자 신기전 수십 개가 쏟아져서 박히더니 불길을 뿜어냈다. 그리고 하늘 높이 치솟았던 단석이 내리꽂히며 참극을 끝냈다.
그동안 조선군은 대완구로 보통 비격진천뢰를 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단석 쪽이 더 효율적이었다. 물살을 타고서 빠르게 움직이는 왜선을 대완구로 명중시키기가 쉽지 않았고, 비격진천뢰는 빗나가서 물속에 빠트리기에는 너무 아까웠으니까 말이다.
사실 왜선을 가라앉히는 정도는 단석이면 충분하기도 했다. 화강석을 깎아 만든 45근짜리 단석이 하늘 높이 솟구쳤다가 떨어지면, 왜선 갑판부터 바닥까지 일격에 뚫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굳이 비격진천뢰를 날릴 필요도 없었다.
단석에 맞은 배는 그래도 타고 있던 왜병이나 격군들이 물에 뛰어들 틈이라도 있으니 운이 좋은 편이었다. 신기전을 뒤집어쓰고 일거에 불덩어리가 된 배에 타고 있던 왜인들은 제대로 탈출하지도 못했다. 몸에 불이 붙어 비명을 지르며 바다로 떨어지는 자들이 줄을 이었다.
불붙은 왜선이라고 해도 당연히 바로 가라앉지는 않았다. 흐름을 타고는 그대로 견내량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기습이 시작되기 전에 견내량을 빠져나가서 전열을 형성하고 있는 자기편 전선들을 향해 그대로 뛰어들었다. 당장에 엄청난 혼란이 빚어졌다.
견내량 남쪽으로 넘어간 왜선은 이미 1백 척가량이나 된다. 저놈들은 조선 수군이 남쪽에서 오는 자기네 별군을 맞아 싸우느라 등을 드러낸 틈에 기습할 생각이었겠지만, 이순신은 그에 맞춘 대책으로 이 포대를 만들어 놓았다. 장수들은 이순신의 지시에 따라 포대를 지휘했다.
“적이 견내량으로 들어오기를 망설이고 있습니다!”
“이미 들어온 놈이나 열심히 쏘아라!”
왜군이 견내량으로 들어오자마자 쏘지 않았던 건 되도록 많은 적선을 함정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적 선봉이 무사히 견내량을 통과하고 해간도를 지나쳐 전열을 짤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적 2진 1백여 척이 견내량을 가득 메웠을 때 포문을 열었다.
이중 견내량을 통과한 왜선은 채 절반이 되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십여 척은 신기전에 맞고 불길을 피워올리며 물살에 밀려 떠내려갔다. 나머지 배들은 모두 구멍이 뚫리거나 불타면서 견내량에 가라앉았다. 그 뒤에 있는 왜선들은 급히 멈춰서 같은 운명에 처하기를 피했다.
“왜놈을 때려죽여라!”
운 좋게도 물목 한가운데서 배가 완전히 가라앉지 않고, 물가에서 좌초하지도 않고, 간신히 물가에 배를 대고 뛰어내리는 데 성공한 왜인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운명은 배와 함께 물에 가라앉는 것보다 딱히 낫지도 않았다. 찔려 죽고 맞아 죽는 결과가 있었을 뿐이다.
“속오군이 그동안 쌓인 한이 많았군. 그나저나 포를 견내량 북쪽으로 선회시킬 수 있으면 정말 좋을 텐데!”
신기전기나 대완구는 그리 무겁지 않으니 포구를 돌리기 쉽다. 천자총통도 비교적 간단히 옆으로 돌릴 수 있다. 하지만 조선 수군이 보유한 가장 강력한 화포인 24근 포는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방향을 자유롭게 돌릴 수 없었다.
“기다려라! 적이 분명 다시 진입할 거다!”
견내량 남쪽에서는 불타는 왜선이 밀려오는 바람에 적 선봉이 기껏 편성한 대열을 허겁지겁 다시 풀고 있었다. 그 사이로 불덩어리가 된 적선들이 흘러갔고, 그보다 남쪽에서는 통제사가 지휘하는 전선들이 유유히 일자진을 짜며 적을 섬멸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음, 저건 화공선인가?”
적이 오기를 기다리는데 여울에 얹힌 적 중선 한 척이 갑자기 대폭발을 일으키면서 주변에 불보라를 흩뿌렸다. 아무래도 기름 따위를 가득 싣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화약이 터질 때와는 양태가 전혀 달랐다.
“적이 다시 밀려듭니다!”
“그렇지. 다시 올 수밖에 없다니까.”
시래산에 자리를 잡은 24근 포대를 직접 지휘하면서 매복진 전체에 대한 통제도 맡고 있던 조방장 김완이 크게 웃었다. 적이 지금 물러난다면 나머지 전선은 살릴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전멸한 별군은 둘째 치고라도 지금 견내량을 넘은 자기네 선봉대까지 그대로 버리게 된다.
장수라면, 사지에 아군을 남겨둔 채 물러나야만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지금 왜군 대장은 그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놈에게 어떤 사정이 있는지야 모르겠지만, 이쪽으로서는 더 많은 공을 세울 수 있게 되었으니 고마울 뿐이다.
만약 왜적에게 시간이 넉넉하다면, 저들은 견내량을 강행 돌파하기보다는 입구 양편 기슭에 병력을 내려 포대부터 공략했으리라. 그편이 확실히 위협을 제거하는 방법이니 말이다. 허나 지금 왜군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설사 그런다 해도 막을 준비는 충분히 해두었다.
“적이 아까보다 노를 훨씬 빠르게 젓고 있다! 움직임을 고려하여 포를 쏘아라!”
사람이건 배건 빠르게 달리면 쏴서 맞히기 힘들다. 적은 그 자명한 진리를 활용해서 피해를 줄여 볼 심산이 분명했다. 그 계획이 성공한다면 6백 척에 달하는 전선으로 이순신 휘하 전선 160척과 격돌, 승부를 걸어볼 수 있다. 성공한다면.
“안됐다만 그럴 기회는 없을 거다.”
김완이 웃으면서 북쪽 바다에 무리를 짓고 있는 왜선을 바라보았다. 이제 저들은 곧 묵직한 철퇴로 뒤통수를 얻어맞게 되리라.
– 16 –
“당장이라도 물러나야 할 상황이지만….”
도도 다카토라는 어립선 위에서 난간을 부여잡고 신음했다. 조선군은 견내량 양편을 완전히 호랑이 아가리로 만들어 놓았다. 불타는 배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와 화약 연기가 뒤엉켜 물목 저편을 내다보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주군, 물러나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적이 포격을 중단하면서 시야가 좀 트였다고 하나, 낯선 급류인 데다 양편은 여울입니다. 고작 해적들 따위를….”
선봉부대는 아리마, 마쓰라 같은 해적 출신 영주들이다. 이들은 조선 수군에게 무참히 패해 본 경험이 있어 구루지마 미치후사처럼 콧대를 세우지는 않았고, 다른 무장들과 딱히 충돌을 일으키지도 않았다. 다카토라에게 순순히 따르지 않는 건 다른 영주들과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가야 한다. 이번이 아니면 조선 수군을 격멸할 기회가 없다!”
다카토라는 부산포에서 지금 일본 수군에 남은 선박 사정을 알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몇 년에 걸쳐 준비한 함선 3천 척을, 전쟁을 시작한 지 겨우 4개월도 지나지 않고서 벌써 반이나 잃었다. 전투에서 깨진 배와 난파한 배를 합친 전체 손실이 그만큼이었다.
본국에 명을 내려 다급하게 건조를 독촉하고 있지만, 제대로 건조하지 않은 목재를 가져다 배를 만들면 어떤 꼴을 보게 될지 너무도 뻔했다. 분명 많아야 서너 번 조선을 왕복하면 배가 망가져 쓸 수 없게 될 공산이 크다.
“하지만 주군, 우리가 패하면 뒤에 남는 건 구키 수군 2백 척과 수송선들뿐입니다. 뒷날을 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노부나가 공께서 내리는 분노는 어떻게 피할 생각인가?”
“구루지마군이 멋대로 굴다가 망친 싸움입니다. 게다가 적이 길목에다 저렇게 많은 화포를 숨겨두었을 줄은….”
지금 물러난다면 남은 배 5백 척은 살릴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전멸했을 구루지마군 이외에 이미 견내량을 통과한 백여 척도 확실히 잃는다. 그리고 기세가 등등해서 동쪽으로 밀고 나올 조선 수군을 막아낼 전력은 도저히 모을 수 없었다.
“아니,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쳐야 한다!”
지금까지 근근이 부산포를 지키던 구키군은 다카토라에게 금쪽같은 전선 1백 척을 할애하고 나머지로 버티고 있다. 물러나서 합세해 봐야 겨우 7백 척, 지금 전력이랑 차이도 없다.
차라리 적이 구루지마군과 싸우느라 지쳐 있을 지금이 훨씬 싸우기에는 낫다. 수로가 약간 열렸을 때 전력으로 견내량을 돌파하고, 저편에서 전력을 결집해서 승부를 낸다. 더구나 지금 조선 수군은 한 가지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
“저 많은 화포가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왔을 리는 없다. 분명 전선에 싣고 있던 화포를 빼서 육지에 올렸으리라. 지금 치면 저들은 화포 없이 싸울 수밖에 없다.”
육지에 올랐던 저 화포들이 다음 싸움에서는 다시 갑판 위에서 일본 전선을 향해 불을 뿜을 테니, 저들이 견내량 길목에 묶인 지금이 차라리 낫다. 그러니 다카토라는 지금 전력을 다해 이순신과 싸울 계획이었다.
“3진이 견내량을 통과했습니다!”
연기 때문에 확실하지는 않지만, 대략 30여 척이 조선군의 화포나 불화살에 맞아 움직임을 멈췄다. 적에게 당한 배가 늘면서 수로가 막히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워낙 흐름이 거센 탓에 부서진 배들은 빠르게 해협에서 밀려 나가거나 양쪽 여울에 얹혔다.
“4진 출발 준비!”
생각 같아서야 한 번에 우루루 보내고 싶지만, 포화를 뒤집어쓰면서 좁은 길목을 진행하면 아군끼리 충돌할 우려가 크다. 시야도 막히고 길도 막힌다. 자칫하면 전 함대 진행이 막히고 모두가 화려하게 불타는 장작더미가 될 수도 있다.
“그래도 그대 덕에 엉뚱한 포구로 들어가지 않고 곧바로 견내량으로 왔다. 시간을 아꼈다.”
다카토라가 잠시 고개를 돌려 원균을 치하했다. 원균은 허겁지겁 고개를 숙였다.
“제가 맡은 일입니다.”
원균은 어떻게 해야 지금 당장 죽지 않을까 하는 일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노부나가가 화를 내면서 임해군을 유폐시켰다는 건, 자신에게 이제 어떤 보호막도 없다는 의미였다. 자칫하면 그 자리에서 목이 날아가도 누구도 편들어주지 않는다.
탈출할까 하는 생각이 다시 떠올랐지만, 벌써 추포령이 내렸으니 무사히 돌아갈 수도 없다. 일반 백성인 척하자니, 호패도 없이 다니다 붙잡히면 왜인 간자 취급을 받을 게 뻔하다. 이미 삼남 전역에 용모파기가 적힌 인상서가 돌았을 테니 그대로 붙잡힐 수도 있다.
당장은 최선을 다해 일본군에 협력하면서 목숨을 부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되도록 저편에 있는 조선군 눈에 띄지 않으려고 수염도 싹 밀고 왜군 무사 갑옷도 빌려 입었다. 이제 누가 보더라도 조선인으로 보지는 않으리라.
“고성은 가토 요시아키 공이 점령했으니 조선 수군이 해안에 숨기 어렵고, 또 저들은 모든 전선을 견내량 남쪽에 집결했을 게 분명한데 공연히 시간을 끌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얼른 견내량으로 와야지요.”
길을 모르고 오면 바다가 열린 모양만 보고 통영 쪽에 있는 포구로 잘못 들어갈 수도 있다. 특히 기호포구로 들어가는 수로는 물길을 잘 모르고서 본다면 헷갈리기 딱 좋다. 물론 바다에 조금만 익숙하면 포구와 해협을 혼동할 일은 없지만, 또 모르는 일이다.
“4진 출발!”
초연이 심하게 끼면 조선군이 화포를 쏠 수 없지만, 대신 이쪽은 배가 여울에 걸릴 위험이 커진다. 잠시 기다려서 바람이 초연을 날리고 물살이 부서진 배들을 쓸어가면서 뱃길이 다시 열리자 다카토라가 군배를 들고 진격 명령을 내렸다.
승리를 기대하며 막 4진을 견내량으로 들여보내려는 참이었다. 급보가 들어왔다.
“주군! 후방에 적 메구라부네가 나타났습니다!”
“뭐, 뭐라고? 메구라부네?”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그 악명은 익히 들었다. 얼굴이 새파래진 다카토라가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 옆에 있던 원균도 백지장같이 하얗게 된 얼굴로 그 뒤를 따랐다. 도대체 그놈들이 어디 숨어있다가 기어 나왔단 말인가? 혹시, 들여다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 그 기호포구…?
– 17 –
“자, 적은 얼마든지 있다! 신나게 쳐부숴 보자!”
나대용은 호기롭게 기라졸에게 지시를 내렸다.
“각 전선에 일러라! 지금부터 지휘는 없다! 적진에 뛰어들어 각자 능력껏 싸우는 거다!”
“예, 나리!”
거북선에 타는 수졸들은 어떤 적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왜군은 어떤 수단을 써도 거북선을 부술 수 없었다. 이제까지 거북선을 타다 죽은 수졸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했다. 유탄에 맞아 가벼운 상처를 입은 경우야 뭐 몇 명 있었지만 말이다.
“저놈들은 무척이나 부주의합니다, 나리! 경계도 안 하다니 말입죠.”
“견내량으로 서둘러 오느라 마음이 급했던 모양이지.”
슬쩍 역성을 들어 주기는 했지만, 나대용 자신도 속으로는 왜장을 비웃었다. 이곳은 저들이 처음 오는 바다다. 그렇다면 각 포구를 뒤져 혹시 적(조선군)이 매복했는지 살피는 게 당연한 도리 아닌가? 지금처럼 기습당하면 어쩌려고?
어쩌면 어제 진해로 들어가는 길을 아무도 막지 않았고, 야습 규모도 별로 크지 않았던 것 때문에 경계심이 풀렸을지도 모르겠다. 겨우 하루 무사했다고 다음날도 괜찮을 줄 알다니, 거 참 부주의한 놈들이로세.
나대용이 비록 거북선 안에서 전투 중에 술을 마시는 습관이 있기는 했지만, 싸움에 임하는 장수가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서는 절대 잊지 않았다. 왜장은 싸움 전에 적의 동태를 확실히 살핀다는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조치를 잊었으니 이런 꼴을 당해도 쌌다.
“적이 너무도 많으니,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모두 잡는다는 망상은 버려라! 능력껏 부수고, 우리 손이 부족하여 놓치는 왜적은 다음 싸움에 잡으면 된다고 생각하라!”
“예, 나리!”
군사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무기를 잡았다. 이순신도 나대용에게 거북선으로 적 진영을 휘저어 놓으라고만 했지, 한 척도 놓쳐서는 안 된다고는 하지 않았다. 아무리 거북선이라도, 겨우 9척으로 적선 수백 척을 몽땅 섬멸하라는 건 솔직히 말도 안 되는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