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539
2부 3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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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24근 포를 싣고 다니던 전면부에서 지자총통이 불을 토했다. 아무래도 하층갑판은 격군들이 움직이는 공간이다 보니까 전투와는 약간 거리가 있지만, 이 전면부 총통 두 문에서 내뿜는 초연과 포성이 전장의 느낌을 확실하게 전했다.
“우현 노 넣어!”
거북선이 두꺼운 목재로 배를 짓고 철판을 씌워 튼튼하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선체에 한한 이야기다. 노는 조금 굵은 나무 몽둥이에 불과하고, 적선과 제대로 부딪치면 우두둑 부러져 나간다. 적선과 충돌할 때는 당연히 배 안으로 끌어들여 보호해야 한다.
격군들이 노를 끌어당겨 감추자마자 우현이 적 중선을 부수고 들어갔다. 와드득하는 굉음과 함께 왜선 누각이 무너졌다. 마치 덩치 큰 황소가 어깻죽지로 사람을 치받아 날리는 듯했다.
머리 위 중층갑판에서 요란한 포성이 울리고, 그 사이로 끔찍한 비명이 들렸다. 지자총통이 무너진 누각 속으로 조란환을 쏟아붓자 거기 맞은 왜병들이 지르는 소리였다.
“좌현 노 넣어! 우현 저어!”
진로를 살피며 내리는 도노장의 호령에 따라 격군들은 능숙하게 노를 넣고 뺐다. 철저하게 훈련하고 충분히 휴식하는 것, 이 두 가지는 수군이 언제나 승리를 담보하는 비결이었다.
“방포한다!”
전면부에 있는 지자총통이 또 불길을 토했다. 장군전이 눈앞에 있는 왜 중선의 바닥을 뚫고 지나가고, 병력을 가득 실은 배가 옆으로 쓰러지자 타고 있던 왜병들이 물에 떨어지면서 치는 아우성이 들려왔다.
“아이고, 아까운 거.”
격군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입맛을 다셨다. 조정에서 윤허하기를, 적선을 나포하여 얻은 재물은 그 절반만 나라에 바치면 나머지 절반은 나포한 배에 탄 장졸이 나눠 가져도 좋다는 허락이 이번 싸움 직전에 내려왔기 때문이다.
군사들에게 주는 몫은 당연히 쌀이다. 왜검이나 왜조총 따위를 군사들이 어디다 쓰겠는가. 그리고 노획물은 위쪽 갑판에서 적과 싸우는 포수나 사부(射夫), 등선군들에게만 분배해 주는 것도 아니었다. 격군들도 싸움에 한몫했다 해서 엄연히 별도로 몫을 받게 되어있었다.
여기 거북선에 탄 격군들도 모두 대마도 습격에 참여했었다. 당연히 왜선이 수십에서 수백 석씩 쌀을 싣고 다닌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니만큼 저기 가라앉고 있는 왜선이 참으로 아까울 수밖에 없었다.
“에이! 어차피 우리는 저거 다 붙잡아 봐야 싣지도 못해! 그러니까 다 잊자고!”
다만 거북선은 이 횡재에서 예외다. 거북선은 오직 화포를 써서 적선과 싸우며, 등선군도 타지 않는다. 그러니 다른 전선들처럼 싸움 중에 적선을 나포해서 재물을 빼앗을 수가 없다.
다 알지만 그래도 미련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격군들은 한껏 아쉬움을 품은 마음으로 노를 저었다. 왜선 또 한 척이 측면을 들이받혀 뒤집히고, 다락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좋구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나대용이 호탕하게 웃었다. 거북선 겨우 9척으로 4백 척 가까이 되는 왜선 무리 속으로 뛰어들었지만, 그는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왜선이 사방을 둘러싼다고 해도 적이 거북선에 뛰어들 방법은 없었기 때문이다.
총탄과 화살이 비처럼 쏟아졌지만 죄다 겉에다 씌운 철판에 맞고 튕겨 나갔다. 간혹 현자포 정도 되는 화포에서 쏜 큼직한 탄환도 있었으나 별 소용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리 거북선을 부수려면 지자포 정도는 가져와야지! 야, 술맛 좋다!”
안주 따위는 필요 없었다. 지금 눈 앞에 펼쳐진 광경, 수백 척이나 되는 왜선이 열 척도 안 되는 거북선에게 쫓겨 우왕좌왕하는 이 광경이야말로 최고의 잔치였다.
용두 속에 있는 망루는 그야말로 이 싸움을 관전하기에 딱 좋은 명당이었다. 나대용이 타고 있는 1선을 비롯한 거북선 9척은 사방으로 지자포를 쏘아대며 왜선들 가운데를 종횡무진으로 휩쓸었다. 보통 판옥선이라면 허술했을 후면에서조차 지자포 2문이 왜선을 향해 불을 뿜었다.
상부갑판에서 포구만 내밀고 쏘아대는 자모포와 후장조총도 적을 수없이 쓰러트렸다. 왜장 한 명이 또 총에 맞아 바다로 굴러떨어지는 모습을 본 나대용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좋다, 좋아! 보이는 대로 모두 쏘아버려라! 이건 뭐 소경이 쏘더라도 빗나갈 수가 없겠다!”
용이 크게 벌린 아가리 속 망루는 철창살로 보호를 받고 있다. 나대용은 날아든 조총탄이 철봉에 맞아 불꽃을 튀기는 모습을 보며 너털웃음을 웃었다. 자, 이제 적은 견내량을 건너지 못한다. 통상께서는 언제쯤 저놈들을 쳐 죽이러 오실까?
– 19 –
견내량 동편 시래산 위에 연이 올랐다. 통제사 대솔군관 송희립이 연 문양을 확인하고 바로 이순신에게 달려와 보고했다.
“통상! 돌격장과 귀선들이 성공적으로 적진에 돌입하여 적을 흩트려 놓았다 하옵니다!”
“음. 잘 되었군.”
기쁜 소식이었지만 이순신은 웃지 않았다.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았고, 눈앞에 적이 남아 있었다. 웃는 건 싸움이 끝난 뒤에도 할 수 있다.
“어서 남은 적을 진멸하라! 견내량을 건너 적 본대를 토멸해야 한다.”
거제도 남단을 돌아 침입한 적 별군을 격멸하는데 한 시진이 조금 넘게 걸렸다. 적이 워낙 화력에서 뒤처진 탓으로 싸움 자체는 아군이 유리했지만, 개중에 악착같이 대드는 자들이 꽤 있었던 탓이다.
특히 이순신이 탄 좌선을 노리고 덤빈 왜선 10여 척이 가장 지독했다. 척탄을 던져 갑판을 피바다로 만들어도 굴하지 않았다. 기어오르고 또 기어올랐다. 줄줄이 창과 활에 맞아 바다에 떨어지는 앞의 놈들을 보면서도 말이다.
왜군이 쏘는 조총탄도 우박 같이 날아들었다. 수백 명이나 되는 조총수가 총탄을 날려대는 통에 사부들이 방패판 위로 몸을 내밀고 적선에 활을 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뒤로 물러선 사부들은 방패판 위로 기어오르는 왜병들을 쏘는 데 주력해야 했다.
적선에 대한 사격은 조총수들이 주로 맡았다. 다른 전선에는 활강조총을 휴대한 조총수들만 타고 있었지만, 통제사 좌선에는 특별히 후장조총을 든 선방포수 8명이 타고 있었다. 이들은 본래 좌선에 속한 일반 조총수들과 함께 적에게 맹사격을 퍼부었다.
본래대로라면 총통이 불을 뿜었어야 할 측면 포구가 조총을 쏘는 총안구가 되었다. 표적은 누각 위에 선 자, 조총대를 지휘하는 자, 돌격하라고 크게 군사들을 호령하는 자 등 왜장들이 우선이었다. 그다음에는 조총수, 궁수로 차례가 넘어갔다.
반 시진을 넘도록 싸워도 아군 전선이 한 척도 무너지지 않자 적도 그 기세가 무디어졌다. 게다가 적 대장선이 어느 배인지 깨달은 이순신이 밑에서 싸우던 서림을 불러올렸다. 그리고 서림은 단 한 발로 왜장을 맞춰서 그대로 자빠트렸다.
“이야아아아!”
총대장을 맞춰 쓰러트리자 좌선에서 일제히 함성이 올랐다. 그 소리를 듣고서야 뒤를 보고 대장을 잃었음을 깨달은 적은 일순간 크게 흔들렸다. 그리고 그때 적 본대를 섬멸한 이억기와 정걸의 함대가 달려와 남은 적선을 향해 포를 쏘았다.
포가 없는 이순신 휘하의 표하군(標下軍, 고위급 장수가 거느리는 직할군) 함대를 상대로도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고전하던 왜적은 세 배나 되는 수의 판옥선이 포를 쏘며 달려들자 맞설 엄두도 내지 못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맞서려야 맞서지 못했다.
갖가지 구경의 철환이 쏟아져 왜선을 구멍투성이로 만들었다. 줄줄이 늘어서서 조총을 쏘던 조총수 대열을 조란환 구름이 한 번 쓸고 지나가자 그 자리에는 피에 젖은 시체들과 부서진 갑옷만 남았다. 화살에 고슴도치가 된 왜장이 비틀거리며 뒤로 쓰러졌다.
박살이 난 왜선과 그 위에 널린 시체가 된 왜병들이 사방을 메웠다. 몇몇 왜병들은 해변을 향해 헤엄쳐서 도망쳤지만, 육지에는 잔뜩 독이 오른 속오군 군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창과 칼, 몽둥이와 농기구를 든 이들은 육지로 기어오르는 왜적을 용서 없이 때려죽였다.
첫 포성이 울리고 한 시진 안에 왜적 별군은 한산도 옆 바다에서 사라졌다. 이제 견내량을 넘어와 진을 치고 있는 적 본대를 섬멸할 차례였다. 이들도 이순신의 의도에 말려들면서 둘로 갈라졌고, 이제 그중 절반만 쳐부수면 되는 상황이다.
싸움을 더욱 쉽게 하려면 강하게 무장한 배들이 보다 앞으로 나서야 한다. 이억기와 정걸이 이끌던 좌군, 우군 전선들이 이순신을 지나쳐 앞으로 나섰다. 이순신은 자신이 탄 좌선은 그 뒤에 바로 따라붙게 했지만, 표하군으로 거느리던 중군 전선들은 뒤로 빼냈다.
“중군은 무게를 줄이느라 화포를 내렸으며, 한참 동안 노를 저어 격군도 지쳤으므로 전열에 서기 곤란하다. 후군으로 빠져서 휴식하며 대기하라.”
기라졸이 곧바로 명령을 전했다. 견내량 앞을 가로막고 선 왜선은 2백여 척, 좌군과 우군만 투입해도 짓밟기에는 충분했다. 거북선들이 적절한 때에 잘 나서준 덕분에 때려잡기 딱 좋은 규모에서 왜선이 더 늘어나지 않았다. 그 왜선들을 향해 화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통상, 중군에 속한 전선들을 당장 싸움에 쓰지 않으실 거라면, 격파한 적선에 있는 물자와 포로를 수색하게 시키심은 어떻겠습니까?”
좌군과 우군 전선들이 흐름을 거슬러 전진하면서 왜선을 향해 화포를 퍼붓는 동안, 이순신 옆에서 수행하던 병관 이시언이 조심스럽게 진언했다. 이순신은 즉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싸움이 다 끝나지 않았지. 중군은 잠시 쉬었다가 후진으로 투입해야 하네. 적 본진이 견내량 북쪽에 그대로 남아 있지 않은가. 파선하여 무력화된 적은 속오군이 잡게 두도록.”
속오군들은 바닷가로 밀려온 왜선은 물론이고, 가라앉지 않고 바다 가운데 떠 있는 왜선도 작은 배를 타고 건너가서 공격하고 있었다. 아직 숨이 붙어 있던 왜병들은 줄줄이 머리통이 깨지고 바다에 내던져졌다.
“통상, 속오군이 싸움을 포기한 적도 포로로 잡지 않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주상께서도 왜적을 잡으면 다 죽이기보다 되도록 배에 실어 압송하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조정에서는 적선을 나포한 뒤 노획물을 분배해도 좋다고 허락하면서 유독 포로는 모두 배에 태워서 충청도로 후송하라고 했다. 후송 이후에 어떻게 처분할 계획인지는 언급이 없었다.
“명에 따르면 좋겠으나, 지금은 아군보다 적이 너무 많네. 포로를 잡고 있을 틈이 없고, 또 군사와 백성들에게 적에 대한 적개심과 원한을 풀게 해줄 필요가 있어.”
지금 이순신 휘하에 있는 군사 중에는 왜적에게 쑥대밭이 된 전라도 군사들이 많다. 당연히 적개심이 하늘을 찌른다. 왜적이 오기 전에 거제도로 피난한 경상도 백성들도 왜적이 점령한 다른 고을에 친인척을 두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대마도 왜인들 역시 왜적을 증오했다.
“적어도 한 번 정도는 마음껏 한을 풀어야만 이후에 왜적을 포획하라는 명령을 순순히 따를 것이네. 아직 한도 풀지 못한 이들을 붙들고 ‘적에게 자비를 베풀라’고 강요해 보아야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야.”
“예, 통상.”
고개 숙여 대답한 이시언이 뱃전 너머 바다를 보았다. 흔들림이 적어지는 모양을 보니 슬슬 조류가 반대로, 즉 이제까지와 달리 남에서 북으로 흐를 기미가 보였다.
– 20 –
“화공선을 메구라부네에 바짝 붙인 후 불을 붙여라!”
“그게 안 되고 있습니다!”
다카토라는 바로 저 메구라부네를 잡기 위해 화공선을 준비했다. 낡은 세키부네에 기름독을 가득 싣고, 배 한가운데에만 화약을 실었다. 근접한 뒤에 화약을 터뜨리면 기름이 그 주변에 좍 흩뿌려지면서 인화하여 일대를 불바다로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그저 화약만 실은 배를 폭파해서는 별 효과가 없다. 메구라부네는 철판으로 겉을 씌웠으니 폭풍은 별다른 타격을 주지 못할 테고, 나뭇조각 파편 따위도 별 소용 없을 건 마찬가지였다. 그보다는 기름을 끼얹어 불을 지르는 편이 훨씬 낫다. 어차피 철판 속은 목재니까 말이다.
문제는 메구라부네가 뒤에서 나타났다는 점이었다. 화공선은 원래 싸움이 시작되기 직전에 적의 전열을 흩어놓기 위해 투입하는 무기고, 당연히 앞쪽에다 두는 게 보통이다. 다카토라는 준비한 화공선 거의 전부를 2진에 두었다. 가장 먼저 견내량에서 집중포격을 받은 함대다.
덕분에 화공선 대부분이 이미 견내량 한가운데 가라앉았거나 천지를 진동하는 폭음과 함께 불덩어리가 되어 타오르고 있었다. 견내량을 통과한 배들도 돌아올 수는 없었고, 다카토라가 지금 동원할 수 있는 화공선은 혹시나 하고 뒤에 남겨둔 몇 척뿐이었다.
“지금까지 접근을 시도한 화공선 3척이 모조리 적이 쏜 화포에 맞아 부서졌습니다. 기름과 화약을 전부 다락 안에다 감춰서 짐을 실은 보통 세키부네와 겉으로는 똑같이 꾸몄습니다만, 역시 적의 눈을 속이기에 미흡했던 모양입니다.”
“아니! 짐을 실은 배처럼 위장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다카토라는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화공선이라도 어느 정도 겉으로 드러나게 사람을 태워두었어야 했다. 배 안에서 눈을 가린 채 노를 젓는 수부들 외에 병사들을 추가로 말이다. 그렇게 했으면 훨씬 자연스러운 전선으로서의 모습을 연출할 수 있었다.
병사 없이 짐만 실은 화물선은 전투력이 없다. 그런 배가 도망을 치는 게 아니라 적을 향해 곧바로 돌입한다면? 적이 수상하게 여기는 게 당연하다. 그리고 더 근접하지 못하게 화포를 쏘는 것도 필연적인 결과다. 다카토라가 이를 갈았다.
“어떻게든, 어떻게든 저 메구라부네를 격파할 방법이 없나?”
다음 순간 굉음과 함께 화공선 한 척이 폭발했다. 다카토라는 반색을 하며 시선을 돌렸으나 기대는 빗나갔다. 근접하기는커녕 아직 한참 남은 거리에서 폭발하여 주변에 있는 아군에게만 불벼락을 뒤집어씌운 게 아닌가. 그 바람에 5척이나 되는 고바야와 세키부네가 불타올랐다.
“화포에 맞고 흔들리다가…화약에 실화(失火)한 듯합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바로 불을 붙이겠다고 횃불을 들고 있다가 떨어트리기라도 한 건가. 지금 폭발한 화공선이 미리 준비한 마지막 화공선이다. 비장의 수단을 모두 써버렸다.
“주군! 바닷물 흐름이 바뀌었습니다!”
견내량을 북에서 남으로 거세게 흐르던 물줄기가 어느새 반대로 흐르고 있었다. 이젠 적이 뒤에서 방해하지 않더라도 견내량 저편으로 원군을 더 보낼 수 없게 되었다. 이 거센 흐름을 거슬러 견내량으로 뛰어든다면, 조선군 포대가 노리기 딱 좋은 표적이 될 뿐이다.
지금 최우선으로 해치울 과제는 메구라부네를 해치우는 일이었다. 해협 저편의 싸움은 이미 졌지만, 메구라부네를 처치한다면 견내량 이쪽 출구를 막고 적이 북쪽으로 올라오지 못하게 할 수는 있었다. 문제는 ‘어떻게’ 그 일을 하느냐였다.
“주군, 메구라부네에서 사람이 보이는 자리라곤 오직 용머리 안뿐인데, 철망을 둘러놓아서 총탄이나 화살도 통하지 않습니다. 사방에 포를 내밀고 있어 근접하는 배는 모조리 포격으로 부숩니다. 갑판에 철제 지붕을 씌워놓아 침입할 방법도 없습니다.”
이래서야 올라타기는커녕 배 옆에서 매달리는 데만 성공해도 다행일 지경이었다. 이를 악문 다카토라가 마지막 결단을 내리려는 찰나에 또다시 무서운 소식이 들어왔다.
“주군! 남쪽에서 적선이 몰려옵니다!”
아직 등에 매달린 거북선조차 한 척도 잡아내지 못했다. 그런데 남쪽에 있던 조선 전선들이 바뀐 흐름을 타고 달려들었다. 저들이 오는 것을 보니 먼저 견내량을 통과해서 남쪽에서 적과 싸우던 전선들은 벌써 전멸했음이 분명했다. 싸움은 이제 끝났다. 무참하게.
“전군에 철수 명령을 내려라! 전력을 다해 부산으로 달아난다.”
다카토라는 패배를 인정했다. 이미 끝난 싸움에서 손실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아직 움직일 수 있는 배와 병사를 하나라도 더 구해내야 한다. 그래야 부산으로 들어오는 보급로를 유지할 수 있었다. 다카토라의 입에서 절망적인 명령이 연이어 떨어졌다.
“최악의 경우에는 우리 군이 장악하고 있는 육지 해안에 배를 버려라! 병력이라도 살려야 한다. 살기 위해 배를 버린 자들에게는 어떤 책임도 묻지 않겠다.”
배는 소중하지만, 그 이상으로 사람도 소중했다. 어떻게든 인력을 확보해야 수군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싸움으로 전쟁이 끝나는 게 아닌 이상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