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54
1부 054화
– 1 –
“올해 농사는 어떨 것 같은가?”
“경기도는 흉년입니다. 다만 강원도와 하삼도는 약간 풍년이 들 것으로 보이니 백성들이 한 시름을 덜었사옵니다.”
아아, 정말 다행이다. 두 해 연속 흉년이 들더니 올해는 그래도 풍년이 들었다. 조정 중신들은 속이 좀 쓰리겠지만, 나라 살림은 그래도 좀 여유가 생길 듯하다.
조정 중신들이 왜 속이 쓰리냐고? 그건 중신들이 가진 땅이 대개 도성 근처 경기도에 있기 때문이다. 조선이 시작할 때부터 관리들에게 주는 과전은 거의 경기도에 있는 토지였다. 관리 및 작물 운반 용이성 등을 감안하면, 너무 멀리에 두기는 곤란하니까 말이다.
“올해 수확이 좋을 것이라 하니 다행이다. 강원도 및 하삼도의 각 수영들은 내년에 새 전선을 건조할 수 있도록 적당한 양의 재목을 준비하여 건조토록 하라. 나무가 잘 말라야 배를 견고하게 만들 것이 아니냐?”
경기수영은 아직 판옥선을 완성하지 못했다. 내가 지시한 성능을 어떤 구조로 현실화시킬 것인가를 놓고 배목수들이 설계안을 짜고 있다. 올해 안에는 설계를 끝내고 건조에 들어갈 수 있을 테니, 내년 초에는 시험항해를 해 보고 각 수영에 설계도를 분배할 수 있으리라.
“전하, 비록 올해는 풍년이 들었다 하나 일시에 전선을 다수 건조하면 백성들에게 폐가 될 것입니다. 그 진도를 적당히 늦추셔야 합니다.”
이조판서 신수근이 은근히 태클을 걸었다. 이젠 뭐 이것도 익숙해졌다. 이게 다 나를 위한 큰처남의 지원사격이니 고맙게 받아야지.
“물론이다. 각 수영은 편제되어 있는 전선 중 대맹선의 삼분지 일만 올해 안에 새 전선으로 바꾸도록 할 것이다. 새 전선 장비는 3년에 걸쳐 천천히 이루겠다.”
급하게 배 만들어 봐야 불량품밖에 안 나온다. 여원연합군이 일본 원정을 벌일 때도 원나라가 하도 건함일정을 독촉해 대는 탓에 나무를 말리지도 못하고 대충 배를 만들었었다. 그 결과 가미가제(태풍)가 몰아쳤을 때 더 쉽게 배가 부서져서 막대한 피해를 냈다.
“그보다 북방의 상황은 어떠한가? 동청례가 말하기를, 올해 혼이 난 압록강 너머 야인들은 아직도 토벌당한 원한을 뼈에 새기고 있다 한다. 변경 고을에 적도가 나타나 위해를 가하는 일이 계속되고 있는가?”
지난번 토벌은 주로 압록강에서 도보로 5일 이내에 있는 부락들 중에 건주위에 속하지 않은 곳들을 집중적으로 털었다. 물론 그 거리 내에 있는 부락이라고 전부 다 털지는 못했다. 꽤 많은 부락이 살아남았고 생존자들은 그런 곳들로 도망쳤다.
“전하께서 하문하셨듯이, 복수하겠다며 강을 건너와 우리 사람과 가축을 빼앗아가는 야인들이 다시 나타나고 있습니다. 군사를 내어 토벌했는데도 저들이 날뛰니, 지난 토벌이 무용한 것이 아니었는지 걱정됩니다.”
영의정 한치형이 고개를 조아리며 아뢰었다. 아니나 다를까, 대간들이 곧이어 나섰다.
“확실히 덕으로 다스리지 못한 상황에서 군사를 동원함은 그저 벌집을 건드린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제라도 저들을 덕으로 대하여 스스로 물러나게 하소서. 야인들을 모조리 죽여 없애지 않는 다음에야, 토벌이 무슨 소용이 있사옵니까? 그저 저들이 원한을 품을 뿐이옵니다.”
“정 전하께서 저들이 벌이는 노략질을 조속히 그치게 하고자 하신다면, 대국에 청해 요동에 배치한 군대로 하여금 저들을 더 엄중히 단속하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둘 다 그냥 한숨밖에 안 나왔다. 덕으로 어쩌라는 소리는 그저 뜬구름 잡는 소리일 뿐이다. 그리고 이미 동청례에게 한 이야기지만, 명나라 군대가 직접 압록강과 두만강 국경을 지키게 되면 조선은 앞으로 만주에 절대 손을 댈 수 없게 된다.
“야인들은 그 행태가 짐승과 같아 대부분은 덕으로 교화함이 통하지 않는다. 또한 우리 스스로가 우리 땅을 지킬 힘이 있는데 굳이 대국에 폐를 끼침도 옳지 않다. 이 나라가 도적떼 하나 스스로 퇴치할 힘이 없다고 천하에 알려야겠느냐?”
통치를 하려면 예스맨만 가지고는 안 되는 거 안다. 하지만 반대 자체에 인생을 걸고 있는 것 같은 저놈들은 그냥 보고 있으면 답이 없다는 생각만 든다. 고구마는 아직 조선에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날 고구마 먹여 죽일 놈들 같으니.
아, 고구마. 가능하기만 하면 태평양 건너 남미에 가서 감자랑 고구마랑 옥수수 구해오고 싶다. 덤으로 고추랑 담배, 호박도. 굳이 바다 한가운데로 가지 않아도 육지 따라 끝없이 가면 갈 수는 있긴 할 텐데, 왕복에 한 2년 걸릴까? 아니면 3년?
그동안 탐사선을 보낼지 말지 한 번도 고민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문제는 항해술보다는 사람을 구하는 데 있었다. 과연 이 조선 땅에서 배를 타고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가겠다고 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억지로 보내면 그냥 다 도망쳐버릴 게다. 게다가 코스는 좀 험한가.
현실의 벽은 두껍다. 공상은 그만두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지.
“과인이 보건대 저들에게 교훈이 부족한 듯하다. 이제 곧 가을이니 저들이 곡식을 거둘 쯤에 다시 한 번 군사를 내어 치도록 하자. 수확한 곡식을 모두 잃고 추운 겨울을 맞이해 보면 저들도 계속 우리에게 덤비는 게 과연 현명한 행동인지 생각해 보게 되리라.”
“전하, 이미 봄에 군사를 내었사온데 또다시 출병을 하면 민력에 무리를 주게 되옵니다.”
“도성에서 군량을 보내겠다. 힘들게 육로로 보낼 것도 없다. 조운선에 실어 의주로 보내고, 다시 작은 배로 압록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평안도에 있는 각 고을에 보급하기에 부족함이 없으리라. 올해 풍년이 든다 하니 국고는 올해 세곡으로 다시 채우면 된다.”
말을 안 들어서 한 대 맞고도 정신을 차릴 줄 모르는 놈을 두 대 팬다고 해서 크게 잘못된 일은 아닐 거다. 평안도 군사들 중 지난봄에 동원을 면한 이들을 주로 해서 원정군을 편성하자. 이번엔 기습이 아닐 테니, 적어도 5천 명은 투입해야 하지 않을까?
“군량이 문제가 아니옵니다. 야인들이 수확을 할 시기라고 하면 평안도 백성들도 수확을 할 시기이옵니다. 남의 추수를 망치기 위해 내 추수를 버린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일이옵니다.”
“그건 그렇구나. 그럼 출병 시기를 추수를 마친 직후로 하겠다.”
그 정도야 얼마든지 조정 가능하고말고. 생각해 보니 여진족들이 추수하기 전에 터는 것보다 일을 마쳐서 곡간에 식량을 쌓아놓은 뒤에 터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더 큰 절망을 줄 겸.
“전하, 군사를 내시려면 명나라에 출병 계획을 보고하고 승인을 얻어야 하지 않습니까?”
“조만간 보낼 사신이 있지 않느냐? 동지중추부사 김응기가 황태자 탄생을 축하하는 사절로 가도록 되어 있으니, 그 김에 출병을 허락해 달라 청하도록 하자.”
지난달에 조총 달라고 했을 때 바로 보내면서 사용법까지 가르쳐준 것도 있으니, 안 된다고 그러지는 않을 거다. 사자 보내 놓고 준비 진행하다가, 허락 떨어지면 10월쯤 치면 되겠지.
– 2 –
“건염 제조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사옵니다. 새로 염전 4개소를 만든 서북 지방은 원래 야인에게 넘기는 소금 수요가 많아서, 싸게 만드는 건염이 잘 팔립니다.”
박이재가 고개를 수그리며 사업 현황을 보고했다. 유목민들은 가축에게 소금을 먹여야 하기 때문에 소금 수요가 많다. 지난 3월에 우리가 압록강 일대를 대대적으로 토벌하긴 했지만, 갑자기 소금 공급선을 바꿀 수도 없다 보니 여진족들은 여전히 조선에서 소금을 샀다.
“그리고 건염의 쓴맛이 개선되었사옵니다. 맛이 나쁘다 하여 팔리지 않는 소금을 섬에 담아 창고에 쌓아두었는데, 이것이 몇 달 지났더니 쓴물이 밑으로 빠지면서 남은 소금이 맛이 좋아졌습니다. 어인 영문인지 알 수 없으나, 보다 좋은 값에 팔게 되었으니 다행한 일이옵니다.”
아, 간수가 빠진 거구나. 천일염을 그늘진 곳에 쌓아 두면 마그네슘 성분이 밑으로 빠진다고 예전에 들었다. 소금을 만드는 자체에만 신경을 쏟다가 깜박 잊어먹고 있었다.
“그리고 덜 마른 소금물을 일부 빼내어 자염 생산을 시작했사옵니다. 아무래도 시장에서는 자염을 더 좋아하는지라, 만들 수밖에 없사옵니다.”
“자염은 나무가 많이 든다 하여 안 하기로 하지 않았느냐?”
“그렇사옵니다, 전하. 허나 내수사 염전에서는 나무가 아니라 사동에서 캔 석탄을 사용해서 소금을 굽고 있사옵니다. 연기가 좀 독하기는 하오나 화력이 나무에 비해 훨씬 강한지라, 그리 많은 양을 쓰지 않아도 소금이 잘 구워지옵니다.”
흠, 본래 증기기관 개발에 쓸 요량으로 탄광을 개발했더니 그게 소금 생산에 먼저 쓰일 줄이야. 뭐, 어느 쪽이든 좋다. 소금 생산으로 돈 벌어서 그걸로 탄광 확장하고 증기기관 개발할 자금도 마련하면 되니까.
“지난 한 달 동안 대마도에서 들어온 토산품이 5건이다. 사여품으로 내릴 도자기는 준비가 충분히 되었느냐?”
내가 특별히 대마도를 압박해서 저들이 갑자기 선물러시를 펼치고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지난번에 병조판서 이계동이 내놓은 제안에 따라, ‘왜구가 한번 나타날 때마다 다음해 세견선을 한 척씩 삭감하겠다’고 위협했을 뿐이다.
번쩍 정신이 든 대마도주는 해적선이 대마도 내 어떤 포구에도 기항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면서 제발 세견선을 줄이지 말아 달라고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 수시로 ‘토산품’을 바쳤다.
뭐 말이 토산품인 거야 다 알지만 보내온 품목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나왔다. 대마도에는 구리 광산도 없을 텐데 구리를 바치는가 하면 원숭이, 앵무새, 후추, 설탕, 그리고 공작새도 또 보내왔다. 이거 다 대마도에 없는 거 뻔히 아는데.
“지난번 공작새는 먹었지만, 이번에는 보내준 성의도 있으니 응방에서 키우도록 하라.”
“공작새와 같이 아무 소용에도 닿지 않는 물건을 왜 키우려 하시옵니까?”
“공작우(孔雀羽, 공작의 꼬리 깃)는 긴요한 장식품이다. 이제까지 늘 나라 밖에서 사들여서 그 값이 비쌌는데, 공작을 키워 직접 뽑아서 쓴다면 비싼 돈을 아낄 수 있지 않느냐.”
그 다음은 공작 깃털 따위를 사용해 치장하는 행위 자체가 근본적으로 어쩌구로 넘어갔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아 그럴 거면 당장 댁부터 삼베옷만 입고 맨머리로 사시든가. 직접 키운 공작 깃털도 못 쓰면, 비싼 말총모자는 어떻게 머리에 이고 사시나?
대마도주가 이렇게 ‘토산품’을 바칠 때마다 나도 하사품으로 물건을 한 무더기씩 내려주곤 한다. 사옹원에서 관할하는 가마들로 하여금 따로 떼어놓게 한 불량품 도자기들, 병이나 찻잔 따위들로 말이다. 그래도 불평 없이 잘들 받아갔다. 되려 더 줬으면 좋겠다고 비치기도 한다.
이런 관계가 정립되면 은근히 조공과 사여의 탈을 쓴 사치품 무역이 이루어지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조정에서 인정하는 정규 무역은 구리나 유황 같은 전략물자를 들여오면서 베나 곡식을 수출하는 것뿐이니까. 왕실이 사무역을 진행하는 셈이다.
“예, 전하. 사옹원이 관할하는 각 도요(陶窯)에서, 대마도에 사여할 만한 품질의 물건들을 수집해 놓았사옵니다. 동래부에 보관하고 있으니, 전하께서 명만 내리시면 동래부사를 통해 왜관에 전달될 것이옵니다.”
“알겠다. 네가 경상도에 직접 가서 보고 오라고 한 고래 건은 어찌되었느냐?”
“역시 고래는 동해안 쪽에 많습니다. 일찍이 전하께서 울산군 일대가 고래가 많으리라고 하명하셨는데, 과연 그러하였습니다.”
괜히 1984년까지 울산 장생포가 포경항으로 유지된 게 아니다. 거기 구축된 기반시설이 있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고래가 그 일대로 많이 다녔기 때문에 포경산업이 유지된 거다.
“비전주 태수 원풍구에게 고래잡이에 능숙한 어민 50명을 보내 달라 했었는데 아직 답이 없다. 우리 백성들 중에는 고래를 잡을 줄 아는 이가 없어 그 재주를 배우려면 왜인 어민들이 꼭 필요한데….”
비전은 히젠(肥前)을 한국식으로 읽은 지명이다. 현대 지명으로는 나가사키 및 사가 현 일대에 해당한다. 태수라는 원풍구(源豊久)는 도대체 누구인지 알 수가 없어 한참 머리를 썩였다.
한참 문서를 뒤지고 일본에 다녀온 신하 및 역관들과 문답을 주고받으니 마쓰우라 토요히사(松浦豊久)인 것 같다. 마쓰우라 가가 진짜 미나모토(源) 씨 후예인지는 잘 모르겠다.
“고래잡이촌을 세울 만한 장소는 보아두고 왔사옵니다. 원래 살던 농민과 어민이 꽤 있긴 한데, 돈을 주어 내보내도 되고 그대로 두어도 될 듯합니다.”
“땅에서 짓는 농사가 고래잡이에 방해될 것도 없으니 그대로 두어라. 어민들도 마찬가지다. 왜인 어민들이 살 집과 고래 처치장을 만들 땅만 확보하면 그 외에는 필요 없다.”
잡기만 하면 고래는 돈 덩어리다. 눈에서 빛이 나느니 어쩌니 하는 황당한 소리는 집어치우고, 고기랑 기름만 팔아도 그게 얼마냐. 안 그래도 기름이 부족한 조선이니 고래기름을 제대로 공급할 수 있으면 정말 떼돈 버는 거다. 고래수염도 중요한 상품이고.
“알겠사옵니다. 다만 원풍구가 과도한 대가를 요구하지 않을까 염려가 되옵니다.”
“당연한 일이다. 장정 50명, 어쩌면 그 처자까지 50호가 건너오는 대역사다. 비천한 왜인들이라 하나 자기 백성은 소중할 터, 대가를 크게 바랄 수도 있다.”
마쓰우라가 요구하는 대가가 좀 세다 싶으면 세견선 허가로 합의를 볼 작정이다. 히젠에 세견선을 허가하면 당장 현금을 주지 않아도 될뿐더러 대마도와 경쟁을 붙일 수도 있다. 게다가 여차하면 입 씻고 중단시킬 수도 있다.
“어쨌건 이 일은 내가 조정에서 마무리할 터다. 너는 터만 준비해놓아라.”
“명을 받들겠사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