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55
1부 05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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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무역을 담당할 국영기업을 하나 정식으로 설립할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다. 하지만 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성리학 근본주의를 지향하는 조선에서, 그 업무를 맡을 만한 인재가 없을 게 빤하기 때문이다. 어느 사대부가 관직에 앉아 장사를 하겠다고 나서겠는가?
그렇다고 상인을 등용할 수도 없다. 차라리 나라가 완전히 망가지기 시작한 조선 말기라면 모르겠다. 아직 시스템이 멀쩡하게 살아 있는 조선 전기다. 사농공상의 밑바닥에 있는 상인들을 등용해서 나랏일을 시킨다면 조정이 뒤집어질 게다.
사대부고 상인이고 등용할 수 없는데 국영 무역회사는 무슨…차선책으로 몇몇 상인들에게 특허권을 주고 세금만 걷을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이때 발생할 문제도 만만찮다. 상인정신에 따른 극한의 이윤추구로 인해서 엄청난 부작용이 생길 게 빤하니 안 하고 만다.
결국 남은 길은 적당히 내가 관리하면서 내수사에서 직접 굴리는 것밖에 없다. 내수사 내에는 나름 경력 있는 상인도 있고 투자전문가(?)도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수익도 온전히 내 몫으로 돌아오고.
포경업 역시 마찬가지다. 민간에 맡겼다간 일단 원천기술 도입부터 첩첩산중일 게 뻔하다. 조선에서는 고래잡이 전통 자체가 완전히 끊긴 지 오래이니, 경험 있는 기술진을 초빙해 와야 하는데 기술을 도입할 곳이 일본밖에 없다.
지금 시점이라면 일본에서도 포경 기술이 그렇게 크게 발달하지는 않았다. 연안에 다가온 고래를 만으로 몰고 쪽배를 타고 창질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지금 조선에서는 바다에 익숙하면서 거리낌 없이 고래에 덤벼들 수 있는 사람 자체가 거의 없다. 그러니 이럴밖에.
굳이 내가 직접 나서는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다. 일반인이 고래를 잡아 돈을 벌기 시작하면 관에서 가하는 수탈이 장난이 아닐 게 뻔하다. 실제 한국에서 고래잡이 전통이 끊긴 이유 중 하나가 지방관들의 수탈 문제였다.
고래를 얻으면 백성들을 부역시켜 기름을 뽑는데, 보수는 한 푼도 주지 않는다. 게다가 그 수익은 국가에 바치지 않고 지방관과 아전들이 날름 먹는다. 이래서야 어느 미친놈이 고래를 잡는단 말인가? 그러니 해안에 떠내려 온 고래도 끌어다 바다에 던지는 막장이 나타난다.
아예 고래마을(가칭) 설립 시점부터 내수사 소속으로 해 버리면 누구도 손을 댈 수 없다. 물론 내수사 안에서 해 처먹는 놈은 분명히 있겠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비용이고 적어도 포경업 자체를 망칠 만큼 장애가 되지는 않을 거다. 물론 늘 겪는 난관 하나는 있다.
“전하, 세견선은 왜구가 창궐하지 못하게 하느라 불가피하게 허용하는 제도입니다. 가능하면 저 간악한 왜인들과는 아예 교류를 끊음이 현명합니다. 그런데 저들에게 사람을 얻어내는 조건으로 세견선을 허용하시다니, 이는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옵니다!”
마침내 마쓰우라가 답을 했다. 50호로 이루어진 포경조 하나를 보낼 의사가 있으나, 이들이 매년 올리는 수익이 막대하니 그 손실을 메우기 위해 1호당 세견선 한 척을 허용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쾌재를 올리고 승인하려 하니 또 조정에서 난리가 났다.
“겨우 50호 정도의 왜인 때문에 세견선을 50척이나 허용하다니요! 전하께서 왜인을 향화시키고자 하신다면, 차라리 왜관에 득실거리는 자들 중 양순하고 착실히 농사짓는 자들을 골라 경상감사가 호적에 올리도록 하소서. 왜 하필 거칠고 난폭한 어민들을 데려오려 하시옵니까?”
“고래는 바다에 사는 영물이옵니다. 부모가 자식을 키우니 그 정을 알고 성인의 덕을 아는 짐승이옵니다. 이익을 노려 그러한 고래를 잡고자 하심은 도에 어긋납니다.”
“세견선을 늘림은 국가와 모든 백성이 지는 부담입니다. 저들이 이 땅의 보화를 빼내가도록 권장하는 일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입니다. 허나 이로 인해 얻는 이득은 내수사에 속한 왜인 노비 50호가 생기는 것뿐이니, 전하께서 탐욕을 추구한 결과라 누가 아니하겠습니까?”
아아, 오늘도 말똥 냄새가 조정에 진동하는구나. 다만 이 말똥은 내 코가 아니라 귀를 괴롭게 하는도다. 그나마 귀를 기울일만한 건 세 번째 하나뿐이구나.
그 말이 맞다. 이번에 데려오는 일본인 포경업자들은 형식상 내수사 노비가 된다. 내 욕심 때문은 아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신분이 확실히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신분을 방패삼아 양민들을 상대로 패악질이라도 벌인다면 당연히 신나게 처 맞는 거고.
“하필 그 왜인들을 데려옴은 고래를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고래가 영물이라 하나 또한 그 쓸모가 매우 크니 잡지 않을 이유가 없다. 세견선을 늘림은 도리어 저들이 노략질보다는 장사를 할 유인(誘因)을 더 제공하니, 부당하다 여기지 않는다.”
물론 이 정도로 설명을 그칠 수는 없다.
“새로이 세견선을 허락하되, 비전태수에게는 일전에 대마도 세견선에 지급하던 세사미두를 지급하지 않는다. 또한 대마도 세견선이건 비전도 세견선이건, 내년부터는 싣고 온 화물 중에서 십분지 일에 해당하는 금액을 구리로 납부하도록 하여 이를 국고에 수입으로 삼겠다.”
“세를 걷는다 함은 왜관에서 이루어지는 거래를 정식 교역으로 인정한다는 말씀이시옵니까? 세견선은 마땅히 축출해야 할 도적떼를 긍휼히 여겨 자비를 베푸는 정책인데, 관세를 거두어 인정한다 함은 말도 안 됩니다.”
“바로 그 도적떼들에게 내주는 물화를 줄이기 위해서 세를 걷는 바이다! 대국에서도 만이들과 교역할 때 관세를 걷는데, 우리도 왜인들이 가져오는 물화에서 관세를 거둠이 어찌 타당치 않겠느냐? 대마도주 및 비전 태수에게 전하고, 내년부터 실행토록 하라!”
조선에서 가장 필요하면서 부족한 자원이 구리다. 역설적이게도 양 이웃나라인 일본과 중국은 참으로 구리가 풍부하건만 조선에는 구리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실제 역사에서도 조선은 구리 부족 때문에 곤란을 많이 겪었다. 동전도, 화포도 원활하게 생산하지 못했다.
대포를 만드는 데 구리가 필요한 건 청동 때문이다. 값은 철보다 비싸지만 인장강도가 더 높아서 화약이 폭발해도 잘 견딘다. 19세기에 강철이 제대로 생산되기 이전에는 철로 만든 대포는 터져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유럽에서도 그때까지는 청동대포를 많이 썼다.
어쨌거나 이제 좀 내가 하고 싶은 걸 제대로 실행하기 시작하니 기분은 좋은데, 예전에 보던 소설이나 만화에 나오던 클리셰들이 생각나서 좀 찜찜하다. 꼭 주인공이 이제 만사가 다 잘 되어 나간다고 안심하면 뭔가 엄청난 사건이 터지더란 말이지…?
– 4 –
“전하, 평안도에 심한 우박이 내려 벼농사가 다 망하였다 하옵니다.”
“이런 씨…!”
아니나 다를까. 만사 잘 되어간다 싶었더니 돌부리에 발이 채였다. 입에서 나오려는 욕지거리를 참고 보고를 재촉했다.
“박천, 안주, 가산 일대에 큰 우박이 내렸습니다. 이 고을들은 모두 관서 지방의 대읍(大邑)으로, 다음 원정에서도 많은 군사를 내기로 되어 있사옵니다. 각 고을에 우박으로 인해 입은 피해를 수습할 여유를 주시고, 올해 군사를 내는 일은 취소하심이 어떨까 하옵니다.”
조심스럽게 말했지만 병조판서 이계동의 의도는 분명했다. 지금은 나로서도 딱 잘라 거부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토벌을 취소할지 여부는 지금 정하지 않겠다. 일단 피해를 확실히 조사하여 구휼이 필요한지, 아니면 군사를 내어도 될 정도인지 보고하도록 하라.”
“예, 전하.”
지금은 8월이다. 조금만 더 있으면 추수인데…하필 평안도냐. 그렇지 않아도 사신단이 오가는 경비나 군사비 때문에 돈 쓸 일이 많은 지방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도 국경을 넘어 노략질하는 야인들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평안도 관찰사 송질이 ‘야인 70여 인이 강계 추파진을 포위하고 있다’는 내용의 장계를 보냈기에 대신들에게 논의하게 했더니 입을 모아 이런 소리를 했다.
“전하께서 이미 매년 봄마다 대군을 동원해 야인을 치겠다 하셨습니다. 올해는 우박으로 인해 평안도에서 한 번 더 군사를 동원하기 힘들어진 만큼, 일단 그대로 두시옵소서. 불과 야인 70인이 우리 군진을 범할 수는 없사오니, 관찰사로 하여금 구출케 하시면 되옵니다.”
고작 백 명도 안 되는 안 되는 여진족 때문에 무슨 큰일이 생기지 않으리라는 사실은 나도 안다. 젠장, 그래도 열은 받는다. 봄에 토벌을 벌인지 반년도 안 됐는데 벌써 저 꼬라지라니.
게다가 압록강 너머 좀 더 깊숙한 지역에 자리하고 있는 건주위 놈들도 불온한 분위기를 조금씩 보이고 있다. 건주위 지도부는 동청례를 보아서인지 비교적 행동을 조심하고 있는데, 건주위 산하에 있는 소부족들 중에는 그런 거 신경 안 쓰는 놈들도 많다.
이런 부락들을 건드리다가는 자칫 건주위와 관계가 악화될까봐 지난번 토벌에서도 공격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공격당한 부족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할 뿐 아니라 이를 기화로 세를 늘리고, 복수하고자 하는 자들에게 병력을 제공하기까지 하고 있었다.
이런 사정이 있는 걸 알면서도 올해 출병을 취소하는 게 맞을까?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데 시독관 정광필이 나서서 한 가지 보고를 올렸다.
“전하. 서강변에 사는 어떤 여인을 주인이 쇠를 달구어 살을 지졌는데, 겨우 죽지 않고 살았다 하옵니다. 어떤 영문으로 이런 잔혹한 일을 하였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달군 쇠로 살을 지지는 단근질, 즉 낙형(烙刑)은 대역죄를 저질렀을 때나 행하는 최고로 잔인한 고문 중 하나다. 사육신이나 김덕령 쯤 되어야 당하는 고문이다! 이걸 자기 집 여종에게 했다고?
“그거 참 잔인한 일이로다! 의금부에서는 그 여종의 주인을 찾아 조사한 뒤 장형에 처하라. 그 행동이 심히 잔인하니, 속전(사대부들이 장형이나 도형을 면하기 위해 내는 돈)으로 장을 피하도록 허용하지 않겠다.”
예전에 살인사건을 캐고 다닐 때만큼 내가 한가했다면 이 인간쓰레기를 벌주는데 좀 더 열심히 개입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저런 일들로 내 머리가 꽉 차 있다. 밑에서 이야기할 이런 것들도 포함해서 말이다.
“성을 더 지을 필요가 있는가?”
“그러합니다. 그동안 계속 흉년이라면서 지방관들이 성 짓는 일을 미루자 청하는데, 지금 경상감사도 그러합니다. 허나 구휼을 청하지도 않으면서 말로만 흉년이라 하니 이는 실로 거짓입니다. 지금 성을 수축해 두지 않으면 유사시에 어찌 대처하겠습니까?”
우의정에 특진관을 겸하고 있는 축성 체찰사 성준은 강력하게 성을 여럿 새로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준은 본래 문관이지만 성종 때는 북정부원수로 여진족을 정벌했고, 그 뒤에는 병조판서를 수년간 지냈다. 그만큼 군사에는 전문가였다.
“전하께서는 성 쌓을 곳에 홍문관 관원을 보내 그 필요성을 한 번 더 살피라 하셨는데, 아무 필요가 없는 일입니다. 현지에 관원이 가 봐야 성을 쌓지 않게 해달라는 호소 말고 무엇을 듣고 오겠습니까?”
그 말이 사실이니 답할 말이 없다. 현대 대한민국도 그 점에서는 마찬가지였으니까.
“동래성은 너무 작아 변고가 생겼을 때 백성을 다 수용할 수도 없고, 강릉과 삼척은 본래 대양에 면한 도적의 소굴이었습니다. 대간들은 태평성대니 축성이 급하지 않다 하나, 언제 무슨 일이 있을지는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청컨대 축성하라는 명을 정지하지 말아주소서.”
이런 신하가 때로는 더 골치다. 분명 유능하고, 필요한 제안을 한다. 성을 쌓아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자는 준비정신도 내 구미에 맞는다. 문제는 그게 내 ‘우선순위’에 안 맞는다는 거다.
내 목표는 가급적이면 빠른 시일 안에 두만강 방면으로 원정을 감행해 영토를 넓히면서 일본을 상대로도 원정을 벌이는 거다. 그래서 총도 만들고 판옥선도 만들었다. 지금 당장은 아니긴 하지만, 몇 년 안에는 벌일 생각이다.
문제는, 성을 쌓으면 총 만들고 배 만드는 데 쓸 에너지를 거기 쓰게 된다는 거다. 노동력이야 부역을 시키면 되고 필요한 흙과 돌도 부역을 시켜 캐 오게 하면 되니까 돈은 안 든다. 하지만 ‘민력’이 소모되는 건 출병이나 같다. 당연히 신하들이 난리를 치는 과정이 수반된다.
“강원도에서 이제까지 적변이 없었음은 모두가 압니다. 굳이 필요 없는 성을 쌓아 백성이 힘들지 않도록 하소서.”
이렇게 말이지. 내가 원하는 정책을 채택하게 만드는데도 막대한 에너지가 소모되는데, 내가 크게 원하지 않는 제안을 놓고까지 싸우고 싶지는 않았다.
“그 문제는 생각을 좀 더 해보아야겠다. 꼭 모든 성을 한꺼번에 수축할 필요는 없으니, 급한 것 한두 개만 먼저 짓도록 해도 좋을 것이다.”
회의를 마치고 침전으로 돌아와 앉아 있으려니 기운이 쪽 빠졌다. 가끔은 이러고 늘어져 있으면 전쟁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그냥 내정이나 적당히 챙기며 살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지금 굳이 전쟁을 하려고 하는 건 단순한 정복욕이 아니다. 수백 년 뒤 후손들이 잘 살게 하려고, 그리고 백년 안에 몰아닥칠 임진왜란에 병자호란이라는 양대 충격을 피하려고 하는 노력이다. 헌데 그게 꼭 전쟁으로만 풀 수 있는 문제일까?
내가 진짜 연산군처럼 병신 짓을 하지 않고, 국력을 다지며 국가 시스템만 잘 돌아가게 만들어 놓아도 임진왜란에서 그토록 참극은 안 일어날지 모른다. 임진왜란만 없으면 여진족도 계속 얌전할 거다. 귀찮게야 하겠지만 병자호란까지는 안 일어날 수 있다.
고민스럽다. 침략당할 위험을 확실히 없애기 위해 내가 먼저 침략해서 전쟁을 해야 할지, 침략을 방지할 노력을 하는 편으로 가야 할지…후손에게 물려줄 나라를 어떻게 해야 할까.
후손…하니 갑자기 또 우울한 기분이 확 든다.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