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56
1부 056화
– 5 –
남녀가 음양합일을 이루면 후손을 봄이 당연한 일일 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4년이 지나도록 나는 아이를 단 하나도 얻지 못했다. 중전도, 두 숙의들도 젊고 건강하건만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내가 알기로 연산군은 분명히 고자가 아니었다. 아니, 고자가 아니긴커녕 도가 지나쳤다. 역사 기록대로라면 정식으로 궁에 들인 후궁만 십여 명에, 기쁨조라고 부르면 딱 정확할 흥청이 2천 명에 달했다. 이쪽은 말기에만 잠깐 두었다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심하지.
연산군은 이 많은 여자들을 대상으로 섹스 중독이라도 걸린 것처럼 여자를 품었다. 심지어 궁에서 여는 잔치에 관리들을 부부동반으로 불러서 관리 아내들 중 미인을 보면 옆방으로 불러 강제로 범하기도 했다고 했다. 이건 마치 로마 황제 칼리굴라 같군(…).
자식도 십여 명이 넘게 얻었다. 물론 이는 중전과 후궁들에게서만 얻은 숫자고, 그 외는 알 수 없다.
헌데 그 몸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분명히 고자가 아니고 정상적인 남성일 내게서는 아무 후손도 태어나지 않았다. 피곤해서 그냥 자는 날도 많지만 지금도 중전 및 두 후궁들과 각각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잔다. 이쯤이면 하나 정도는 낳아야 되는 거 아닌가???
“주상, 후궁을 두어 명쯤 더 들이면 어떻겠습니까?”
아침 문안을 가면 ‘할머니’인 인수대비가 심심찮게 하는 말이 이거였다. 심지어 옆에 중전이 있는데도 말이다!
아무래도 인수대비는 내 여자들 쪽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내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거든가. 일단 딸을 하나 낳긴 낳았으니 – ‘내’ 딸이 아니고 ‘연산군’의 딸이지만 ? 내가 고자라고 생각하진 않는 게 분명하다.
“전하, 왕실의 후사는 절대 끊어져서는 아니되옵니다. 후궁을 더 들여서라도 후손을 보도록 하시옵소서. 미색에 혹하여 아무나 들이셔서는 아니 되옵고, 좋은 가문에서 규수를 골라 궁에 들이시면 왕실이 번성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옵니다.”
신하들도 툭하면 이 소리를 들고 나왔다. 내가 아주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누구라고 확실히 지칭하진 않았지만, 아마 미색에 혹해 운운하는 건 장녹수를 염두에 둔 발언 같다. 내가 요즘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제안대군의 집이나 궁에서 장녹수가 하는 공연을 보니 말이다.
“과인은 아직 젊소. 비빈들도 모두 건강하니 너무 재촉하지 마시오. 때가 되면 다 태어나는 법 아니겠소?”
내가 억누르려고 해 봐야 소용이 없었다. 가끔은 중요한 다른 안건은 다 제쳐 두고 후사가 걱정이니 어서 간택을 해서 후궁을 더 뽑으시라는 의견을 만장일치로 내놓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이 문제에 있어서는 훈구고 사림이고 없었다. 조정 전체가 한통속이었다.
“다 시끄럽다! 대국 황제도 후궁을 두지 않았는데 왜 과인에게 후궁을 들이라고 재촉인가?”
지금 명나라 황제인 홍치제는 정말 후궁이 하나도 없다. 수십, 수백 명 정도는 작정만 하면 궁에 채울 수 있는 중국 황제가 말이다. 그쪽도 젊다. 29세밖에 안 됐다. 만으로.
“황제는 이미 후사가 있지 않습니까. 황태자 탄생을 축하하러 사신이 출발한 게 겨우 한 달 전입니다. 허나 전하께서는 공주가 하나 있으실 뿐이니 후사가 시급합니다.”
“황제도 서른이 다 되어서야 황태자를 얻었다. 원자가 태어날 때까지 5년쯤 더 넉넉하게 기다리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냐?”
아무래도 선왕들이 자꾸 일찍 죽는 바람에 인수대비나 중신들이나 요절 노이로제 같은 게 걸렸나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사실 다들 일찍 죽긴 했다. 내 ‘친할아버지’인 덕종은 만 19세, ‘작은할아버지’인 예종도 만 19세, ‘아버지’인 성종은 만 37세로 죽었으니 말이다.
‘내’가 올해 23세니, 주변의 시각으로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게 보일 수도 있겠다 싶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내게 억지로 여자를 붙일 구실이 되지는 않는다. 난 사람이지 종마가 아니란 말이다!
물론 나도 남자다. 미래가 없는 찌질한 삶을 살았다면 혹 모르겠지만 왕이라는 자리에 앉아 나라를 다스리다 보니 이 자리를 내 아들에게 물려주고픈 생각이 갈수록 커진다. 그리고 미인을 품고 싶은 생각도 당연히 있다. 하지만 여자는 이미 셋이나 있지 않은가.
가끔은 혼자 누워서 미친 듯이 생각하곤 했다. 도대체 내가 불임인 이유가 뭘까? 중전이나 후궁들과 모두 사이도 좋고, 관계를 하는데 아무 문제도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까닭을 알 수가 없다.
혹시 스트레스 때문에 무정자증이라도 나타난 건가 생각해 봤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무정자증이 일어날 만큼 내가 스트레스가 심하다면, 그전에 발기부전부터 왔을 테니 말이다.
원인이 뭔지도 모르는데 여자만 더 들인다고 해결이 될 리가 없다. 도리어 낯설고 어색해서 잘 되던 일도 안 될지 모른다. 지난 4년 동안 살을 맞대고 살면서 중전 및 두 숙의를 겨우 편안하게 느끼게 되었는데 그 과정을 또 새롭게 시작하는 것도 싫다.
나도 아들을 갖고는 싶다. 내 위업을 이어받아줄,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내가 어떻게 했는지 인정하고 역사에 남겨줄 아들을. 하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답이 없다. 그저 시간이 해결해 주기를 기다릴 밖에.
– 6 –
“또 왜적이 변을 일으켰단 말이냐!”
진도 군수가 군사를 4백 명이나 거느리고 보길도로 사슴사냥을 갔다고 한다. 섬 안에 흩어져 짐승을 찾던 군사들 중 일부가 섬에 머무르고 있던 왜구들과 마주쳤다. 그리고 두 명이 칼에 맞아 죽고, 도망치다가 열여덟 명이 물에 빠져 죽었다!
“왜적이 섬에 들어오는 줄도 몰랐다는 것도 문제지만, 군사가 4백 명이나 출동했으면서 왜적의 목을 하나라도 베기는커녕 우리 군사만 죽은 자가 스무 명이라니! 이게 말이 되느냐?!”
“필시 피해가 더 있을 것입니다. 잡혀간 자도 있을지 모릅니다. 적에게 피해를 입었을 때, 관장이 자기 책임을 모면코자 숫자를 줄여 보고하는 일이 결코 드물지 않습니다.”
영의정 한치형이 침통한 얼굴로 아뢰었다. 우의정 성준도 마찬가지 표정으로 말을 보탰다.
“속히 관원을 보내어 그 사정을 상세히 살피게 하소서. 또한 전라좌수사 한철동과 경상우수사 김수정으로 하여금 왜선을 잡지 못하고 통과시킨 죄를 물으시고, 저들을 귀로에라도 반드시 잡게 하소서.”
“옳은 말이다.”
요즘 나타나는 왜적들은 일본 본토에서 출격한 경우가 많지만, 알 수 없는 일이다. 보길도는 인적이 드문 섬이니 아지트를 만들어 놓고 전진기지로 사용했을 수도 있다. 적당히 연안을 따라 항해하다가 일본으로 갈 수도 있다.
“전하, 역시 판옥선보다는 중맹선과 소맹선을 많이 만들어 바다 순시를 보다 원활케 하심이 좋으리라고 판단되옵니다. 물샐 틈 없이 바다를 지키려면 배 숫자가 중요합니다.”
“아니다. 작은 배도 필요하지만 맞붙었을 때 싸우는 강한 전선도 필요하다. 이 문제는 이미 더 이상 논의하지 않기로 했으니 재론하지 마라.”
이번 사건을 기화로 판옥선 불용론이 또 기어 나올 기미를 보였다. 그건 절대 안 될 말이니 가능한 단호하게 잘랐다.
“그런데, 군사들이 아무 무장도 없었단 말이냐? 명색이 사냥을 갔는데, 창이나 활을 가져가지 않았단 말인가?”
“모두 몰이꾼으로 동원된 이들이라, 거추장스럽다고 무기 없이 몽둥이만 한 자루씩 들었었다 하옵니다.”
“그것 참!”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조선에서 사냥이란 그저 즐기고자 하는 게 아니다. 군대까지 동원해서 사냥을 할 때는 군사훈련을 겸한다. 진형을 짜서 적 ? 실제로는 짐승 – 을 섬멸하는 그 과정이 실전과 같다. 당연히 동원되는 군사들도 모두 무장을 갖추는 게 원칙이다.
“필시 섬에서는 맹수를 만날 일이 없다고 생각해서 방심한 것이로다! 진도군수는 준비도 없이 섣불리 사냥을 하다 귀한 군사를 죽게 하였으니, 당장 파직하고 도성으로 압송하라. 의금부에서 국문하여 그 죄상을 밝히도록 하라.”
“예, 전하.”
젠장, 기껏 대간들을 윽박질러 히젠과 벌일 포경사업 합작 건에 대해 입을 다물게 만들어 놨는데 이런 사건이 터지다니. 보나마나 이런 적변이나 일으키는 야만인들과는 어떤 일도 할 수 없다는 소리가 튀어나올 게 뻔하다.
가뜩이나 이번 달에는 아직 9월인데 눈이 오네, 우박이 내리고 뇌성 번개가 치네 하고 난리들인데 일본 관련 악재까지 터지니 영 죽을 노릇이다. 제발 날씨 가지고 내 탓 하는 것만 좀 그만뒀으면 좋겠다.
– 7 –
조선에서 분위기가 심상찮다는 사실이 대마도를 통해 히젠에 전달된 모양이다. 히젠 태수 마쓰우라가 10월이 되자마자 ‘토산물’을 바쳤다. 고래기름 열 통과 소금에 절인 고래고기 백 근, 손질한 고래 힘줄 백 가닥, 잘 다듬은 고래수염 백 개였다.
“잘 받았다고 전하고, 사여품으로 면포를 3백 필 내리도록 하라.”
굳이 고래와 관련된 물품들만 보낸 의도가 빤히 보였다. 게다가 자기 영토에서는 절대 해적이 활동하지 않는다는 맹세가 덤으로 붙어 있다. 저들도 이번 거래를 성사시켰으면 한다는 의미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포경조, 즉 포경회사는 일본에 몇십 개는 존재할 테다. 그중에 하나 정도 없어져도 일본 포경업계에는 아무 지장도 없다. 하지만 조선과 정식으로 무역을 할 수 있는 세견선을 띄울 수 있게 되면 포경조 하나와는 비교도 안 되는 이익이 발생한다.
“전하, 이런 대사건이 터진 판국에 왜인들에게 세견선을 더 많이 허용하신다 함은 말도 되지 않습니다. 당장 있던 세견선도 폐하고 저들과 교류를 끊으소서!”
또 말똥이 굴러오는구나. 이제 진짜로 해탈할 것 같다.
“흐르는 물은 막을 수 없다. 다른 길로 돌릴 수 있을 뿐이다. 저들이 섬 밖에서 식량과 면포를 구하고자 하는데, 장삿길을 터주지 않으면 어찌하란 말이냐? 교류를 끊어보아야 왜구가 늘어날 뿐이다. 비전주 태수에게 세견선을 허락하고 대신 왜구를 억제하게 함이 가하다.”
이런 문답이 몇 번째인지 기억도 안 난다. 대간들 요구처럼 일본과 교류를 끊으려면 한반도를 하와이쯤으로 옮겨야 할 텐데, 그럴 수만 있으면 당장 하겠다. 중국이랑도 떨어져서 우리끼리 유유자적 살 수 있으니 얼마나 좋나.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없는 일들을 쌓아 놓고 살다 보니 낙이라고 즐길만한 거리가 별로 없다. 매일 하는 승마는 그냥 운동이고, 비빈들을 찾는 밤은 딱히 즐겁고 좋다기보다 그저 일상일 뿐이다. 남편으로서의 의무랄까, 요즘은 그런 생각이 강하다.
일상을 벗어난 재미라면 어쩌다 불러서 노래를 부르게 하는 장녹수, 그리고 가끔 잠행 나가서 만나는 상희 정도다. 요즘은 군사 사열도 별로 안 하고 있고.
장녹수는 눈치가 요상한 것이, 아무래도 내가 자기에게 눈독을 들여서 자꾸 궁으로 부른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본래라면 노비에 불과한 자신은 감히 임금에게 눈도 돌릴 수 없는데도, 춤을 추는 중에 은근슬쩍 시선을 맞춰서 눈웃음을 치곤 한다. 유혹하는 빛이 완연했다.
글쎄…저게 장녹수인 줄 몰랐으면 그 눈웃음에 넘어갔을지도 모르겠다. 무의식중에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매혹적인 건 사실이라서 말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역사에서 장녹수는 임금을 배경으로 막대한 뇌물을 받아먹으면서 정말 엄청난 파란을 일으켰다. 여기라고 해서 저 여자가 다른 심성을 가졌으리라고는 믿기 힘들다. 게다가 엄연히 서방이 살아 있는 유부녀 아닌가. 임자 있는 여자한테 손댈 생각은 없다.
“도련님! 이제 결심하셨나요? 탕약 준비해 놓았어요!”
상희는 여전히 날 볼 때마다 충치를 뽑자고 끈질기게 붙들고 늘어졌다. 나도 뽑는 거 말고 답이 없다는 건 알지만 선뜻 허락할 수가 없었다. 자칫 실패해서 출혈이 멈추지 않으면 어쩌라고? 한방 치료법대로 말린 쑥가루 같은 거 뿌려야 하나?
금위사에 지시한 상희의 과거 조사는 아직 완료되지 않았다. 하지만 대할 때마다 주의해서 보니 과연 평범하지 않은 모습이 점점 더 드러나 보였다. 사용하는 단어 같은 건 이상하지 않았지만 사고방식이라든가, 상황을 분석하는 태도 같은 점은 확실히 나랑 많이 흡사했다.
물론 어느 시대에든 특이한 사람은 있다. 상희도 그저 집을 나와 이연(異緣)을 만나 어린 나이에 의술을 익혔고, 그러다 보니 세상에서 보통으로 통용되는 기준과 다른 독특한 사고방식을 갖게 되었을 수도 있다.
상희의 정체에 대해 대놓고 당장 추궁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괜히 엇나가기라도 하면 가끔 누리는 이 즐거움을 잃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정호찬이 조사 결과를 들고 오면 그걸 가지고 한번 사실을 캐 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