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563
2부 341화
– 21 –
“지금쯤 저 밑에서는 전투가 시작되었겠구나.”
“그럴 것이옵니다.”
아, 전화나 무전기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새삼 생각하지만, 현대 문물 중에서 통신장비가 제일 아쉽다. 물론 다른 물건들도 없어서 유감인 게 많지만, 내 입장에서 가장 간절한 물건이 바로 통신기다. 하지만 역사대로라면 19세기는 되어야 전보나 전화가 나오겠지.
“너무 심려치 마시옵소서. 적 주력은 이쪽에서 단단히 붙들고 있으니, 별군이 상대할 적은 많지 않을 것이옵니다.”
“알겠다.”
일본군의 정확한 배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여기서 동래성까지 내려가는 영남대로 좌우측 산속에 만 단위로 숨어 있을 건 분명하다. 아마 어제 일차로 몰아낸 놈들 이상의 숫자이리라.
그래서 선거이와 이빈에게 낙동강을 건너 노부나가의 본진을 직접 공격하게 했다. 일본군이 날 잡기 위해서 대규모 복병을 두었다면 필시 자기네 후방은 허술할 테니까 말이다.
물론 적 후방도 아예 무방비는 아니다. 절영도를 차지한 등선군 때문에 노부나가도 뒤가 좀 간지럽기는 할 것이고, 적어도 만 명 정도가 후방을 지키고 있다. 그런데 그 선에서 조금 더 위로 올라가면? 과연 수비대가 있을까?
노부나가라고 자기 방어선에 허점이 있다는 걸 모르지는 않았겠지. 하지만 지금 노부나가는 병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아직 10만 대군이 남았다지만, 역시 10만에 가까운 내 주력부대를 상대하기에는 넉넉하지 않은 숫자임을 자기 자신도 알 거다.
당연히 병력 대부분은 내 쪽으로 투입될 수밖에 없고, 그 틈을 노려 별동대를 밀어 넣었다. 잘 되면 노부나가를 바로 잡을 수 있고, 매복하고 있던 놈들이 산에서 튀어나와 노부나가를 구하러 가려고 하면 본대로 갈아버릴 수 있다. 그게 무서워서 안 나오면 그거대로 또 좋고.
다만 이 희망적인 예측에는 한 가지 불확실한 요소가 있다.
“병판, 역시 신장이 동래성에 없을 수도 있겠지?”
“물론이옵니다, 전하. 신들이 동래성을 떠나자마자 바로 성을 나가서는 어딘가 다른 장소에 숨고, 성에는 자신의 기치(旗幟)만 세워놓았을 수 있사옵니다.”
덫에 걸어놓은 미끼가 굳이 진짜일 필요는 없다. 나야 ‘나 역시 너희와 마찬가지로 위험을 무릅쓰노라’라고 군사들에게 보여줄 생각에서 논산에서 직접 전선에 섰지만, 노부나가가 나랑 똑같이 생각하고 있다는 보장은 없지 않은가. 깃발만 세워둬도 미끼 노릇은 할 수 있고.
뭐, 동래성에 노부나가가 없어도 큰 상관은 없다. 그렇다고 해도 별동대가 동래성을 탈환한 뒤 본대와 협력하면 왜군을 앞뒤에서 협공해서 흔들어놓는 정도는 충분히 달성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되면 굳이 적 주력에 대한 정면공격을 펼칠 필요도 없다. 날 기습하겠다고 틀어박힌 놈들이 물자를 충분히 가지고 산에 들어갔을 리도 없고, 일이 생각한 대로 안 굴러가는 꼴만 봐도 정신적으로 무너지기에는 충분하다.
아예 공격하지 않고 적이 스스로 무너질 때까지 기다리는 쪽도 고려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일본군이 보유한 물자가 얼만큼인지 정확한 양을 알 수가 없고, 아직 수십만은 충분히 될 점령지 주민들을 구해야 하는 데다 적 수뇌부가 도망갈 가능성도 생각해야 했다.
해상봉쇄는 아직 완벽하지가 않다. 판옥선의 작전반경을 생각하면 적어도 진포 서너 개쯤은 더 탈환해야 한다. 봉쇄가 부실한 상태로 시간을 끌다 보면, 혹시 노부나가나 히데요시 같은 대가리들이 빠른 배를 타고 먼저 도망가버릴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그런 불쾌한 사태를 예방하고 봉쇄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라도 늦기 전에 부산포와 좌수영, 동래부까지는 먼저 탈환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왜군이 보유한 물자 중 상당량도 여기에 쌓여 있다. 그렇지 않아도 부족할 적의 보급을 똥통에 처넣을 기회다.
부산을 뺏긴 적이 동해 연변 고을로 후퇴하면 추격하면서 허점을 노린다. 추격전 중에 진짜 노부나가를 잡는다면, 나머지 병력은 그냥 항복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 22 –
급히 나타난 왜병들이 저지선을 형성했다. 하지만 그 수는 기껏해야 기천 명에 불과했다.
물론 훨씬 적은 병력이라도 좁은 길목을 막고 버틴다면 충분히 유효한 수비를 할 수 있다. 문제는 왜군이 이쪽 길로 조선군이 쳐들어올 경우를 대비해 미리 진지를 구축해놓지 않았고, 군사들에게 미리 연습을 시켜두지도 않았다는 데 있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낙동강 양쪽 기슭이 모두 자기들 차지였으니, 우리 군사가 강을 타고 올라와서 저들을 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으리다.”
이빈이 건네는 말에 선거이가 피식 웃었다. 눈앞에 나타난 왜군은 이들 두 사람이 휘하에 거느린 조총병 숫자보다 적었다. 일제사격 두 번 정도 하고 전군을 돌격시키면 그대로 짓밟을 수 있었다. 아니, 한 번이면 충분할 듯했다.
두 장수가 짧은 논의 후 지시를 내리자 군관들이 곧바로 명령을 전달했다. 두 군영에 속한 조총수 4천여 명이 적진까지 백 보 정도 거리를 두고 정렬해서는 적진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 경상우도 조총수들이 가진 활강조총으로 목표를 겨누어 쏠 수 있는 최대한의 거리다.
“쏘아라!”
구령이 떨어지자 조총 4천 자루가 일시에 불을 뿜었다. 왜병들도 총을 쏘았지만, 방아쇠를 당기는 게 한발 늦었다. 더구나 왜군 조총수는 숫자가 백여 명밖에 되지 않았고, 기껏 발사한 탄환도 거의 맞지 않았다.
수천 발이나 되는 총성이 양쪽 산 사이에서 울리며 퍼져나갔다. 구름같이 피어오른 연기도 눈 앞을 가렸다. 그 연기 속에서 돌격을 알리는 북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돌격 앞으로~!”
도감군 보병들이 함성을 지르면서 앞으로 달려나갔다. 전신에 갑주를 착용한 도감군이지만, 백 보 정도를 전력으로 질주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허술한 갑옷을 걸친 경상우도 병사들은 그 뒤에서 두 번째 제대를 구성하고 차례를 기다렸다.
“천주님, 성모님! 부디 가호를 베푸소서!”
돌격하는 도감군 전열 일각에는 천주교도 의용군 2개 대대도 섞여 있었다. 중앙부 최선두에 서지는 않았으나 왜적과 정면으로 창칼을 맞대는 것은 틀림없었다.
그 군사들 사이에는 광해군도 끼어 있었다. 그가 받은 공식적인 직책은 서기관이었으므로 직접 칼을 들 의무는 없지만, 그 스스로 자원해서 환도를 잡고 있었다. 지난 몇 달 동안 함께 고락을 나누던 군사들이 싸움터에 뛰어드는데, 혼자 뒤에 남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광해군에게는 싸워야만 할 이유가 있었다. 가형(家兄)인 임해군이 지은 죄를 갚자면 이대로 편안히 서기관 노릇이나 할 수 없었다. 왜적의 피로, 그것이 모자란다면 자신의 피를 흘려서라도 그 죄를 씻어야만 했다.
여기에 묵은 빚도 있었다. 다른 종친들이 신립과 함께 족친위로 싸우다 죽고 경상도 일대를 범하는 왜적에 맞서 속오군에 들어가 싸운 몇 달 동안 안전한 도성에 있었다는 부채 말이다.
“창 겨눠~!”
장창진끼리 붙는 싸움이라면 굳이 뛰지 않는다. 창싸움은 서로를 밀면서 찌르고 제압하는 싸움이라서 침착하게 밀어붙여야지, 괜히 빨리 붙자고 힘 빼고 헐떡거리면서 뛰어갈 필요가 없다. 하지만 지금 왜군은 총탄 세례를 뒤집어쓰고 대열이 완전히 와해됐다.
왜병들도 급히 창을 겨누며 아군을 막아서려고 했다. 하지만 양측이 쓰는 장창 길이도 별로 차이가 없고, 갑옷은 도감군이 훨씬 든든했다. 더구나 왜군 셋 중 하나는 조총 제압사격으로 총탄에 맞아 쓰러진 상태였으니 대열도 제대로 구성되지 않았다.
왜군이 발악적으로 쏘아댄 화살과 총탄 몇 개가 코앞에서 날아들었다. 운이 없는 병사 몇이 가까운 거리에서 갑옷을 뚫은 탄환에 쓰러지고, 광해군의 투구에도 화살이 맞았다. 둥근 투구 표면에 맞은 화살은 그대로 미끄러져 튕겼다. 빗맞은 화살이라 충격도 별로 받지 않았다.
광해군은 다른 도검병들과 함께 장창병들보다 한발 앞서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환도를 들어 휘두르자 창을 잡은 왜병의 팔이 바닥에 떨어지고, 팔을 잘린 왜병이 비명을 지르며 무릎을 꿇었다. 내리치지 못하고 멈칫하는 사이 뒤에서 뻗어 나온 창날이 왜병의 가슴을 찔렀다.
잠시 창백해졌던 광해군의 얼굴에 핏기가 오르며 결의가 살아났다. 다음 적병을 향해 몸을 던져 달려드는 광해군의 손에서 물결무늬가 새겨진 환도가 빛을 발했다.
“등선군과 진주목사가 잘해 준 덕분에 쉽게 넘어갑니다.”
유극량이 대기하고 있던 도감군 기병들에게 도망치는 적을 쫓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호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별다른 방책이 없다 하나, 이 일대에 있는 적이 1만을 넘으니 화포도 가져오지 못한 우리 힘으로는 빨리 돌파하기 어려울 뻔하였소. 하지만 등선군과 진주목사가 때맞춰 남쪽에서 적을 쳐서 주의를 붙들어준 덕분에 우리가 쉽게 진군하는구려.”
진주목사 김시민은 5천 병력을 거느리고 좀 더 하류 쪽에 먼저 내렸다. 그리고 다대포에서 기다리던 등선군과 합세해서 적 3천이 있는 구덕산을 남쪽, 서쪽에서 일시에 공격했다. 적은 당연히 이에 대처하느라 그 위에서 부산진으로 직행하는 2만 5천 병력을 막아서지 못했다.
부산진에 있던 적 5천도 마찬가지다. 이들 역시 절영도에서 뭍에 오르는 등선군에만 주의를 쏟다가 자기들 뒷덜미로 들이닥치는 아군을 제때 막지 못했다. 서평포에 있는 적 2천은 논할 것도 없었다.
그나마 부산진에 있던 적이 지금 겨우 1천 명을 보냈지만, 바로 짓밟아 버렸다. 첫 총성이 울리고 나서 놈들을 다 쳐부술 때까지 걸린 시간은 1각(15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어찌할까요. 본래 예정대로 곧바로 동래성을 칠까요? 아니면 남쪽으로 방향을 돌려 부산진 남쪽에서 공격하고 있는 등선군과 합세하여 부산진성을 먼저 되찾을까요.”
부산진을 무너뜨리면 등선군과 합세할 수 있다. 게다가 부산진 일대에 갇혀 있는 적 1만이 한데 뭉쳐 포위를 뚫고 이들 두 군영을 배후에서 공격할 가능성도 막을 수 있었다. 잠시 논한 뒤에 선거이가 결론을 내렸다.
“어명은 지엄하므로 동래성 탈환을 늦출 수는 없소. 5천 명을 남겨서 배후를 든든히 하고, 나머지 2만은 곧바로 동래성을 칩시다. 지금 보니 코앞에 있는 황령산에도 적이 있는데, 저들 역시 우리 배후를 노릴지 모르오.”
황령산에 있는 적은 화포 따위는 전혀 갖추지 않은 보병 2천이 전부였다. 두 장수는 도감군 5천이면 황령산에 있는 적이 섣불리 덤비지 못하게 하면서 부산진 방면에 있는 왜군의 추격도 충분히 저지할 수 있다는 결론을 냈다.
선거이는 곧바로 전령을 보내 부산진 방면으로 도망치는 적을 추격하던 기병들을 본진으로 다시 불러들였다. 과연 적괴가 아직도 동래성에 있을지 없을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어명에 따라 공격하고 볼 일이었다.
듣기로 동래성에 있는 군사는 1만 명 내외. 여기 5천을 남겨도 2만이면 충분히 둘러쌀 수 있을 터였다. 공략에는 시간이 좀 더 걸릴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 23 –
“주군! 전면에 있던 삿사군이 매복해 있던 진영에서 급히 나오고 있습니다. 동래부로 가려 하는 듯합니다.”
히데요시는 계속 들어오는 보고를 아무 대답 없이 받았다. 처음에는 지난 며칠 동안 꾸준히 그랬듯이 절영도를 차지한 조선군 병력이 부산진을 공격하고 있다고 했고, 다음에는 다대포에 있는 적이 구덕산과 서평포를 공격한다는 연락이 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북쪽에서 내려오는 조선 국왕의 본대에 호응하려는 조선 수군의 독자적인 활동일 공산이 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황령산에 주둔하는 고니시로부터 적의 대군, 그것도 전신에 남만갑을 걸친 전주군 2만이 나타났다는 급보가 왔다.
그렇다면 이는 노부나가를 노린 적의 기습이 틀림없었다. 어떤 면에서 보자면 ‘날 노리라’는 노부나가의 미끼를 조선군이 제대로 문 것이다. 단 던진 낚싯바늘을 제대로 정면에서 삼킨 게 아니라 옆에서 살짝 물었고, 낚이는 대신 미끼만 따먹고 도망갈 가능성이 농후했다.
“놈들이 사흘만, 아니 이틀만 더 있다가 공격을 가해왔으면 좋았을 텐데.”
히데요시가 움켜쥔 주먹을 부들거리며 떨었다. 오늘은 12일, 이틀 후에 도시이에가 약속한 배가 온다. 그때라면 해변으로 달려가기만 하면 배를 탈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부산포와 좌수영이 완전히 적에게 넘어간다면 바닷가로 간들 배를 댈 곳이 없을 수도 있다.
“주군, 저희는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노부나가 님을 구원하러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하들이 결정을 재촉했다.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로 생각에 잠겨 있던 히데요시가 고개를 들더니 엉뚱한 소리를 했다.
“동래성에서 구원을 명하는 사자가 왔느냐?”
“아니오, 오지 않았습니다.”
“북쪽에 있는 조선 국왕의 본대는?”
부하들은 당황스러웠다. 지금 조선군 별동대가 노부나가가 있는 동래성을 향해 밀어닥치고 있는데, 주군인 히데요시는 계속 엉뚱한 질문만 하고 있었다.
“조선군 본진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놈들은 진격로 좌우에 있는 산마다 병력을 올려보내 점령한 뒤에야 앞으로 나오고 있으며, 후방에서 기습을 당하지 않도록 배후 경계도 철저히 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1군이 진짜 패해서 물러난 게 아님을 아는 듯합니다.”
히데요시에게도 보였다. 산 위에 매복하고 있던 부대들은 조선군이 비탈을 올라오자 그대로 숨어 있을 수도 없고 도망갈 수도 없어서 갈팡질팡하다가 자포자기하는 듯한 태도로 비탈길을 내려 달려 적을 향해 덤벼들었다. 그리고 묵사발이 났다.
계획대로라면 조선군이 영남대로 끝, 더 엄밀히 말하자면 히데요시군이 매복한 윤산 앞에 조선군 선두가 도달했을 때 전군이 일시에 일어나 적을 덮쳐야 했다. 행군하는 적을 측면에서 공격하려고 대기하던 이들이, 하나씩 차례로 사형집행을 당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저건 오토모군이 아니냐.”
곧 적에게 공격당한다는 두려움 때문인지, 주군 노부나가를 도와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인지 몰라도 오토모 요시무네가 이끄는 2천 병력이 매복해 있던 산에서 평지로 내려왔다. 조선군이 자기 자리까지 오기 전에 동래로 이동할 여유가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기대는 곧바로 무너졌다. 조선군은 전군을 몰아 오토모군을 추격하지는 않았다. 대신 기병 수천 기를 내보냈다. 삽시간에 오토모군을 따라잡은 조선 기병들은 화살 수천 개를 퍼부어 오토모군 대열을 와해시킨 뒤 창과 도리깨를 휘두르며 이미 흩어진 대열을 짓밟았다.
아직 산에서 내려가지 않은 각 부대는 공포에 떨면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지금 동래성을 돕겠다고 잘못 움직이다가는 같은 꼴을 당할 게 분명했다.
“사자를 준비시켜라.”
히데요시가 손짓으로 미츠나리를 불렀다.
“이렇게 전하라. ‘적은 이미 우리 매복을 눈치챘습니다. 강력한 조선군에게 붙잡혀, 구원은 불가능합니다. 주공께서는 동래성을 버리고 나오십시오. 밖에서 최선을 다해 엄호하겠습니다.’ 이상이다.”
“그것으로 되겠습니까?”
미츠나리가 확인차 질문했다. 잠시 조선군 본대의 위치를 가늠한 히데요시가 처음 지시에 몇 마디를 덧붙였다.
“이것도 더해라. ‘부디 신시정(오후 4시)까지는 결단을 내려주십시오. 그때까지 아무 분부가 없으시다면 부득불 철수하는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말이다.”
지금 거느린 병력으로 동래성을 구원하러 간다면 노부나가를 구출하지도 못하고 같이 죽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히데요시는 살고 싶었고, 살자면 이 싸움에서 빠져나가야만 했다. 그리고 지금 히데요시는 노부나가가 동래성을 빠져나오기만 한다면 함께 돌아갈 의사가 있었다.
나리마사는 방해 없이 동래성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위치가 맨 끝인 데다 일찍 출발했고, 아직 조선군 본대가 여기까지 내려오지 않은 덕분이다. 하지만 나리마사가 전주군이 얼마나 위험한 상대인지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주성에도, 논산에도 가보지 않은 나리마사가 전주군을 알 리가 없지.”
히데요시는 동래성을 향해 달려가는 나리마사의 5천 병사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저만한 원군이 갔으니, 노부나가가 좀 더 버틸 수는 있으리라. 하지만 지금이라도 마음을 고쳐먹지 않는다면 동래성에서 뼈를 묻게 될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