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569
2부 34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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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출 틈이 없다! 어서 달려라!”
히데요시는 전군에 행군을 재촉했다. 최대한 빨리 기장 일대로, 가능하다면 더욱 북쪽으로 움직여서 조선군의 추격에서 도망쳐야 했다. 그래서 겨우 달이 지기 전에 목적지에 닿았다.
“주군! 노부나가 님을 그렇게 버리고 가셔도 되는 겁니까?”
“이미 말하지 않았느냐? 주공께서 스스로 신가리를 자처하셨다고 말이다. 다른 장수들도 다 수긍하는 모습을 보았을 텐데.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다.”
그때는 히데요시가 19세 때, 노부나가의 휘하에 들어온 바로 다음 해였다. 노부나가는 자기 장인인 사이토 도산(?藤道三)이 장남 요시타츠가 일으킨 반란에 직면하자 구원병을 보냈는데, 노부나가가 직접 지휘하는 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도산이 아들에게 패배, 전사하고 말았다.
싸우기도 전에 철수할 수밖에 없게 된 노부나가는 요시타츠의 군대가 뒤를 쫓아오자 자기 스스로 신가리를 맡아 후퇴를 엄호했다. 자기 밑에 거느린 병사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영주가 직접 신가리를 하는 모습에 신하들은 감격했었다.
“도라노스케, 네가 내 의도를 오해한 건 알고 있다. 길을 비켜주는 척하다가 주공과 협력해 적을 협공하려는 줄 알았다고 했지.”
이해를 얻은 가토 기요마사가 조심스럽게 머리를 끄덕였다. 가토는 그동안 이 문제 때문에 무척 속을 끓였다. 성격이 단순한 편인 그로서는 주군이 적중에 고립되었다면 마땅히 구하러 가야만 된다고밖에 생각이 되지 않았다.
“적이 10만 대군이라고 하나, 다카카게군까지 합치면 우리도 7만입니다. 각오하고 싸운다면 전혀 불리하지 않습니다. 지금이라도 돌아가면 노부나가 님을 구출할 가능성은 분명히….”
“됐다, 도라노스케. 그만둬라.”
히데요시가 피로감을 가득 내비치는 얼굴로 답했다. 어제부터 한숨도 자지 못한 탓으로 몸 상태가 좋지 않다 보니, 태도도 자연히 딱딱해졌다.
“신립군을 격파한 이래, 우리 군은 단 한 번도 적과 결전을 벌여서 이기지 못했다. 지금에 와서 다시 도전한들 제대로 싸우기는 어렵다. 다들 적을 무서워하며 어서 일본에 돌아가기만 바라고 있는데, 어떻게 이 군대로 기세가 충천한 데다 수까지 많은 조선군과 싸우란 말인가.”
남은 병력은 대부분 규슈, 주고쿠 일대에서 동원된 잡다한 병력이다. 게다가 다카카게 휘하 부대와 합류하지도 못했다. 그놈들도 북쪽 어딘가에서 바다를 향해 달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서 일본으로 돌아가라는 건 주공의 명이다. 그분께서는 이번 전쟁이 실패한 데 대해서 스스로 책임을 지기 위해 솔선해서 뒤에 남으신 거다. 그 배려를 따르지 않는다면, 그 또한 불충이라 할 수 있지 않겠나!”
히데요시는 호소카와 후지타카를 통해 전달받은 노부나가의 유언을 곧바로 휘하에 거느린 장수들에게 공표했다. 노부나가의 맏손자이자 후계자인 히데노부의 후견인으로서, 그 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려면 일본으로 조속히 귀국해야 한다는 데 이론의 여지는 없었다.
더불어서 노부나가가 스스로가 부하들에 대한 마지막 배려로 신가리를 자청했다는 대목에 이르자, 임석한 장수 중 누구도 동래성으로 돌아가 노부나가와 함께 죽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철수가 늦어져 조선군에게 따라잡히지 않을까, 그 점에만 다들 신경을 썼다.
“타치바나 공은 생각이 다른 것 같습니다만.”
양산에서 신가리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타치바나 무네시게는 전선에서 떨어진 후방으로 가서 휴식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래서 자기가 경상좌도군을 쳐부순 수영강 상류 쪽에 진을 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느닷없이 기장 쪽으로 가는 철수부대가 밀어닥치자 휩쓸리고 말았다.
“타치바나 무네시게는 의견을 내는 게 너무 늦었다.”
무네시게는 철수 명령이 노부나가에게서 나온 것으로 여기고 순순히 철수대열에 합류했다. 하지만 한참을 움직인 뒤에야 군중에 노부나가의 깃발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둠 속이라 파악이 늦었던 탓이다. 그제야 히데요시를 찾아와 노부나가의 행방을 물었다.
“그 타치바나조차도 호소카와 공의 설득을 듣고 나서는 동래성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은 하지 않았다. 너도 그만 포기하고, 고니시와 함께 배를 탈 준비나 해라.”
이들이 밤늦도록 쉬지 않고 달려 도착한 기장에, 고니시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이들보다 남쪽에 있던 고니시가 어떻게 먼저 도착했나 했더니, 배를 타고 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영리함을 평소 높이 평가하던 히데요시는 칭찬했지만 , 가토는 이를 갈았다.
“마에다 공이 배를 보내는 날은 이틀 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먼저 도착한 고니시가 나고야성에 연락선을 보내 이곳 사정을 알리면서 일단 모은 배부터 빨리 보내 달라고 했다고 했다. 그러니 곧 배가 올 거야.”
히데요시가 눈을 매섭게 떴다.
“부산에서 도망쳐온 배 3백 척은…일본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놈들은 조선 수군으로부터 항구를 지켜야 한다. 그 3백 척만 가지고 7만 병력이 전부 철수할 수도 없고, 그놈들을 보낸 뒤에 조선 수군이 오면 우리는 손도 못 쓰고 봉쇄된다.”
노부나가가 후지타카를 통해서 전한 말은 사실이었다. 얼마나 많은 병력을 살려서 일본으로 데리고 돌아가느냐, 그것이 장차 히데요시의 패권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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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주 북방, 그리고 일기도와 대마도에 적선 수백 척이 모여 있었다고.”
군관들이 탁자 위에 펼쳐놓은 커다란 지도에 급히 목패를 쌓았다. 조선 수군을 의미하는 패 무더기는 부산포, 가덕도, 거제도에 놓이고 왜 수군을 의미하는 패들은 이순신이 언급한 장소 세 곳에 쌓였다.
적선이 집결하고 있다는 보고는 정찰을 맡은 남만선들이 가져왔다. 정발은 법왕청 무사단을 인솔하느라 남만선장 자리를 내놓았지만, 이순신은 그 자리에 다른 이를 앉혀서 계속 임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남만선 3척은 여심히 구주 일대를 돌며 적세를 살폈다.
고요히 지도를 들여다보며 생각을 가다듬던 이순신이 부하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대들은 어찌 생각하는가. 저들이 함대를 모으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혹시 신장을 구하기 위해 원군을 보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왜적은 침략 초기에 수십 만이나 되는 병력을 집중해서 쏟아부었다. 최근 몇 달간은 군사는 보내지 않고 식량과 화약 같은 물자만 보냈다. 그러던 저들이 갑자기 대군을 보내려 한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필요했다.
“농사철이 끝났으니 그동안 군사로 뽑지 않고 남겨두었던 사내들을 추가로 동원해 보냈을지 모르지 않습니까? 만약의 경우는 대비해야 합니다.”
먼저 입을 연 장수 하나가 적의 추가병력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곧바로 전라우수사 이억기가 고개를 저으면서 이견을 제시했다.
“아닙니다. 왜인들이 전쟁을 즐긴다고 하나, 이미 패색이 짙은 싸움에 미련을 품고 대군을 보내지는 않을 겁니다. 이미 바다가 우리 수군의 손에 있는데, 적이 수만 군사를 보낸다 한들 상륙하기는커녕 모조리 배와 함께 수중고혼이 될 뿐이옵니다.”
이순신 역시 그에 동조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육지에 남은 왜적을 철수시키려는 배들인가.”
“소장은 그렇게 생각하옵니다.”
그보다 연장자인 전라좌수사 정걸은 거제도를 지키고 있으니, 이억기가 지금 수군에서 서열 2위인 셈이다. 대부분의 만호나 첨사들보다 젊고, 태도도 부드러웠으나 지위와 실적으로 보면 이억기의 발언권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저들에게 가장 중요한 인물은 역시 왜추 신장이 아니겠습니까? 동래성이 함락되고 신장이 자결했다는 소식은 아직 왜국에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니, 저들은 분명히 부산포를 공격하려고 노리고 있을 공산이 큽니다.”
좌수영 일대에 정박하고 있던 왜선은 단 한 척도 대마도로 도망치지 못했으니, 저들은 아직 소식을 듣지 못했으리라. 부산에 있는 조선 수군 전선은 백 척에 불과하므로, 적이 수백 척을 동원한다면 3백 척 정도는 수전을 치르고 나머지는 땅에 있는 육군을 실어갈 수도 있다.
“그럴 공산이 큰 것은 사실이나, 지금 남은 적은 기장 쪽으로 움직이고 있지 않은가. 울산에도 아직 적 수천이 있다고 알고 있다. 적이 병력을 철수시키고자 한다면 분명히 그쪽으로도 선단이 갈 것이다.”
“통상, 오늘 낮까지만 해도 왜군 주력은 동래 일대에 집결해 있었습니다. 구주에 있는 적이 어찌 자기네 군사들이 기장으로 옮긴 줄을 알고 그리로 배를 보내겠습니까?”
대마도에서 아무리 열심히 살펴도 동래가 누구 손에 있는지 식별하기는 쉽지 않다. 확실히 파악하자면 직접 와서 확인해야 하는데, 오늘 대마도 쪽에서 접근한 왜선은 없었다.
“통상, 왜군의 사정은 하루가 급했습니다. 그동안 치중을 나르는 배들은 적어도 며칠 정도 여유가 있었기에 북쪽으로 돌아서 움직였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신장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이지 않았습니까? 분명 부산으로 직행할 겁니다.”
적이 부산으로 오리라는 의견에 찬동하는 이들은 제법 많았다. 하지만 이순신은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오늘 낮에 우리 손을 빠져나가 북쪽으로 도주한 왜선만 해도 수백 척인데, 그들이 본국에 연락선 한 척을 보내지 않았겠는가? 그러면 대마도에 있는 왜적이 당연히 기장으로 움직일 게 아닌가.”
“통상, 저들은 신장이 자결했음을 모릅니다. 분명 신장을 구출하려고 부산으로 올 겁니다. 기장으로 간 왜적들이야 자기들이 가진 배를 타고 왜국으로 귀환하지 않겠습니까?”
의견이 분분했다. 왜군이 신장을 구하려고 부산으로 오리라는 이억기의 견해와 주력부대를 철수시키기 위해 기장으로 오리라는 이순신의 견해 모두 일리가 있었다. 장수들이 두 무리로 갈라져 결론을 내지 못하니, 결정을 내리는 건 결국 이순신의 몫이었다.
“어차피 밤이 깊었으니 아침까지는 움직일 수 없다. 날이 밝는 대로 빠른 배 몇 척을 띄워 적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적이 부산으로 오지 않는다면 바로 기장을 치도록 한다.”
“예, 통상.”
토론 과정이야 어쨌건, 통제사 이순신이 결정을 내리면 모두 일사불란하게 따른다. 그것이 조선 수군이다.
“육지에 올라간 파총 임꺽정으로부터는 보고가 있었느냐?”
왜선들을 빼앗은 뒤, 임꺽정은 육지로 올라가 좌수영 일대 해안에 남아 있을지 모르는 왜군 패잔병을 수색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선발한 정예 등선군 5백 명과 함께 저녁나절에 바닷가에 내렸다.
“이제까지 보고가 오기를, 도망친 왜적 34명을 베고 53명을 포로로 잡았다 하였습니다.”
“잘했다. 육전은 육군이 맡기로 했으나, 그래도 해안은 우리가 맡아 지켜야 하니 철저하게 지켜 적이 범접하지 못하게 해야 하리라.”
수군이 좌수영 일대를 바로 떠날 수 없는 또 한 가지 이유가 여기 있었다. 오늘 나포한 4백 척 가까운 왜선에서 구출한 조선인 포로만 1만 명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들 대부분은 왜군 포로로 있으면서 심하게 학대받은 탓에 몸이 좋지 않아서, 바로 집으로 보내기도 어려웠다.
주상께 보고하니 해안에 임시로 시설을 마련하고 노획한 왜군 군량으로 먹이면서 정양하게 하라고 하셨다. 행여 이들이 적에게 해를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수군 전선과 등선군을 배치해서 해안을 지켜야만 했다.
이제 내일 낮에는 수전이다. 왜적 하나라도 더 물에 빠트려 죽이기 위한 날이 밝아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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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도와 서양검이 서로를 겨누었다. 둘 다 통상적으로 쓰는 칼보다 훨씬 길고 무거웠다. 두 칼을 손에 쥔 주인들은 서로의 힘과 솜씨를 잘 알고 있기에 섣불리 덤벼들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싼 등선군 군사들은 침을 삼키며 두 사람의 대결을 바라보았다.
“나리! 귀, 귀신이옵니다!”
“무슨 헛소리냐?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다고!”
“이, 있습니다! 전신이 시커먼 귀신이 우리 군사들을 마구 쳐 죽였습니다!”
도대체 뭐가 나타났기에 이 야경군이 이리 호들갑을 떠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귀신이 나왔고 그 몸빛이 까맣다고 하는 걸 보니 혹시 흑표범이라도 나타난 게 아닌가 싶었지만, 직접 보기 전에야 알 수가 없는 법이다.
“앞장서라!”
임꺽정은 대도를 어깨에 걸머지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총과 활, 창을 든 군사 20명도 뒤를 따라오게 했다. 표범이 아니라 호랑이라도 단박에 잡을 수 있을 규모였다.
“누구냐!”
야경군을 따라 귀신에게 습격당한 장소로 올라가던 중, 웬 왜병 한 명이 터덜거리며 산길을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다음 순간, 길을 안내하던 야경군이 기겁을 하면서 뒤로 물러서다가 그대로 자빠졌다.
“저, 저놈입니다! 저놈이 시커먼 악귀, 저승사자예요!”
한 자리에서 역전의 등선군 9명을 죽이고 보고하러 온 군사 하나만 남겼다는 귀신이 바로 저 자였다. 짐승은 아니지만, 임꺽정이 데려온 군사들이 일제히 총과 활을 쏘기만 해도 마치 짐승 사냥하듯 죽일 수 있으리라. 어쨌거나 저건 사람이지 귀신이 아니니까.
하지만 임꺽정은 어둠 속에서 나타난 저 왜병을 그렇게 허무하게 죽일 생각이 없었다. 그 시커먼 ‘귀신’은 자신이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이군, 야스케. 이게 몇 년 만인가?”
두 사람은 여전히 서로의 틈을 노리며 천천히 돌았다. 절대 끼어들지 말라는 명령을 받은 임꺽정의 부하 군사들은 두 손을 꽉 쥔 채 보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 편이 되라고 해도 듣지 않겠지?”
“물론이다. 나 노예였다. 노부나가가 풀어줬다. 무사로 대우받았다. 나 노부나가의 신하다.”
당연한 소리지만 두 사람이 주고받는 말은 모두 일본어였다. 이색적이게도 임꺽정 쪽에서 일본어를 훨씬 유창하게 구사했다. 노부나가 옆에만 붙어 있던 야스케와 달리, 등선군에 있는 도왜병들과 허구한 날 떠들어댄 덕분이다.
야스케는 기장 쪽으로 도망치다가 쫓아오는 본대 소속 기병들이 활을 쏘아대는 바람에 말을 잃고, 뒤따르던 자기 편 병사들도 모두 죽자 추격을 피해 산길로 들어섰다고 했다. 일본에서 배가 올 동쪽 바닷가로 가야 하는데 산속에서 길을 잃었다는 말도.
“그래? 그럼 그 배가 어디로 몇 척이나 오는지 좀 알려주겠나?”
“모른다. 알아도 안 말한다.”
거절하는 야스케의 표정에는 어떤 변화도 없었다. 콧방귀를 뀐 임꺽정이 피식 웃으며 칼을 수평으로 들었다.
“못다 한 승부를 여기서 내도록 하세. 각오하게!”
“바라던 바다!”
다음 순간 임꺽정의 서양식 대검과 야스케의 일본식 대검이 부딪쳐 불꽃을 튀겼다. 두 사람 모두 빠르고 날렵한 검이 아니라 힘에 의존하는 강력한 검을 휘둘렀기 때문에 움직임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칼놀림 한번 한번은 마치 아름드리 거목이라도 단칼에 잘라버릴 듯 맹렬했다.
군사들은 손에 땀을 쥔 채로 함성 한 번 지르지 못하고 달빛 아래에서 벌어지는 이 대결을 주목했다. 너무도 긴박감이 넘치는 싸움이라 목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가히 용호상박이라 할 수 있을 이 싸움은 2각(30분) 가까이 진행되었다. 지루한 승부를 단 일격으로 끝낼 마음을 먹었는지, 야스케가 검을 높이 들고 전력으로 내려칠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임꺽정은 방어자세를 취하지 않았다. 대신 전력으로 뛰어들었다.
“으흑!”
한 손은 손잡이를, 다른 한 손은 날이 없는 검신 부분을 잡고 전력으로 내찌른 칼날이 바로 야스케가 입고 있던 몸통 갑옷을 뚫고서 배에 박혔다. 잠시 그 자리에서 비틀거리던 야스케가 털썩 주저앉았다. 참고 있던 함성이 주변에 둘러선 군사들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그 환성 속에서 야스케가 천천히 뒤로 누웠다. 그리고 임꺽정에게 축하의 말을 건넸다.
“꺽정, 너 이겼다. 기쁘다, 밀린 승부 끝나서.”
“나도 기쁘다.”
말은 기쁘다고 하면서도 임꺽정의 표정은 침울했다. 적이라서 싸웠을 뿐, 야스케가 미워서 죽인 것은 아니니까. 그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야스케가 속삭였다.
“내 고향, 바다 건너, 아주 먼….”
먼 과거에 떠나온 고향을 그리는 야스케의 말은 끝을 맺지 못했다. 미처 감지 못한 그의 두 눈을 감겨 주던 임꺽정의 눈에, 야스케의 품속에 감춰져 있는 하얀 종이가 보였다.
“뭐야, 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