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576
2부 35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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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사로 돌아온 부사 이수광이 자리 위에 그대로 쓰러졌다. 외교 경험이야 그동안 만만찮게 쌓인 셈이지만, 역시 대국 황제를 친견한다는 건 쉽게 감당할 일이 아니었다. 유럽에서 왕과 법왕 따위를 수십 번이나 만났을 때보다 한층 큰 부담이 어깨를 짓눌렀다.
요즘 주상께서 무척 아껴 주시고는 있지만, 이수광은 아직 젊었다. 왕실 근친도 아닌 데다 명나라 외교 경험도 부족했다. 견서사로 유럽에도 다녀왔고 이제 남만에도 나갈 예정이라고는 해도, 명나라에 오는 사은사(謝恩使)의 정사까지 맡기에는 여러모로 모자란 점이 많았다.
하지만 그 부족한 경험은 이번에 크게 증진되었다. 지난 10여 년 동안 북경에 온 사신은 20여 회에 달하지만, 장거정이 숙청된 이후로는 누구도 황제를 직접 알현하지 못했다. 명나라 조정 중신들조차 황제를 쉽게 만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던 황제를 알현한 것이다.
‘조선왕 윤이 왜적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고, 그 성과를 보고하러 사신을 보냈다 하니 실로 그 태도가 기특하기 비할 데 없다. 심지어 포로와 수급까지 바쳐 천자에 대한 예우를 표하니, 어느 속방이 이토록 충실하게 예를 다하겠는가?
조선왕 윤은 일찍이 왜변이 있을 것을 알고 군비를 갖추어 이를 대비하려 했음을 내 알고 있다. 하지만 오호라! 간교한 왜적들이 계교를 부림에 어찌 속아 넘어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짐이 번국에서 환란이 일어난 소식을 듣고 통탄하여 싸움에 보태어 쓰도록 은과 쌀을 내리고, 용맹하고 날랜 군사 수만과 전선 수백을 마련하여 바로 도우러 가도록 준비하게 하였다.
허나 조선왕은 그 신하 및 백성과 더불어 분전하여 천병의 도움이 없이도 훌륭하게 왜적을 토멸하였다. 또한, 짐이 준 작은 도움을 잊지 않고 싸움이 끝나자마자 포로 2천과 수급 2만에 노획한 병장기를 바쳐 천자에 대한 존경을 표하였으니 실로 칭찬할 만하다.
이에 짐은 조선왕에게 은 3백만 냥을 추가로 하사하여 나라 살림을 재건하고 적의 소굴을 쳐서 잔적을 토멸할 수 있게 하려 하니, 제신들은 이를 만방에 알려 각 속방이 조선의 예에 따라 충실히 그 의무를 다하게 하라.’
알현은 길지 않았다. 1각(15분) 정도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사 박창우를 비롯한 사절단 전원은 감격에 벅차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아무리 포로 2천 명과 수급 2만 개라는 선물이 있다고 해도, 후원에서 몇 년을 두문불출하던 황제가 눈앞에 나올 줄은 몰랐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은 3백만 냥이라니! 아이고.”
이번 사신단이 가지고 올 선물에는 임금도 상당한 공을 들였다. 포로로 잡은 왜병 중 몸이 건장하고 풍채가 좋은 자로 2천 명을 고르고, 노획한 갑옷 중에서 상태가 좋은 것으로만 2천 벌을 또 골랐다. 그리고 무장도 완전히 갖추어 감시병과 함께 가장 큰 왜선 열 척에 실었다.
수급 역시 마찬가지였다. 묻거나 태워버리지 않고 남은 수급 2만 개를 골라 소금에 절이고 부서진 왜선에서 얻은 판자로 상자를 만들어 하나하나 담았다. 그리고 상자마다 그 안에 넣은 머리가 얼마나 흉포한 왜적의 것인지 적은 문서를 첨부했다.
당연히 거기 적힌 전적은 모두 지어낸 내용이다. 하지만 황제가 그 문서를 다 읽어볼 것도 아니고, 명나라 조정에서 내용을 검증할 것도 아닌데 뭐 어떠냐.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거둬들인 왜도 중에서 상태가 좋은 칼 5천 개를 따로 골라서 곱게 포장해 가져왔다. 수십만 개나 되는 노획품 왜도 중에서 선별했으니 그 질은 신뢰할 만했다. 척계광 이래, 명나라 남병 장수들은 잘 드는 왜도라고 하면 사족을 못 쓰지 않던가.
“덕분에 예부상서와의 이야기도 잘 되었지.”
사은사 본진은 정사 박창우와 함께 조선으로 바로 귀환한다. 하지만 이수광 자신은 수행원 중 관원과 상인 30여 명을 거느리고 남만으로 내려가서 도방 신호영과 합류해야 했다.
남만에 가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여러 남만 국가들을 순방하면서 외교를 트고, 교역을 통해 필요한 물자를 수급하는 교린정책을 수행하기 위해서다.
이는 완전히 새로운 전례가 아니었다. 이미 국초에도 섬라에서 사절을 보내 공물을 바치고 하사품을 받아간 사례가 있지 않았나 말이다. 이번에 달라진 점이라면, 저쪽에서 보낸 사절을 받는 게 아니고 이쪽에서 먼저 나서서 보낸다는 정도였다.
다만 중국을 둘러싼 모든 나라는 속방으로서 자유롭게 외교를 할 수 없다. 불필요한 오해를 방지하자면 명나라 예부에 사전에 서한을 올려 양해를 구할 필요가 있었다. 혹시 조선이 중원 정복을 위해 동맹을 확보하러 다닌다는 의혹이라도 산다면 큰일이다.
어쨌거나 이야기가 잘 되었으니 다행이다. 이제 해야 할 일은 남쪽으로 함께 내려갈 사절단 인원들을 데리고 바다를 통해 항주까지 가는 일이다. 그리고 안남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신호영과 합류한 뒤 안남국왕 및 섬라국왕에게 국서를 전한다. 이번에는 자신이 정사다.
황궁에서 만난 섬라 측 사신이 본국에 보낼 소개장을 써 주었다.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꼭 혀가 꼬일 것 같아서 외우기도 어렵다. 적어놓은 기록을 나중에 보아야 할 듯하다.
과거 견서사가 서방으로 갈 때도 안남에 들르기는 했다. 하지만 정식 방문은 아니었고 그저 잠시 배를 대고 물과 장작을 보급했을 뿐이다. 그걸 제대로 된 방문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지금 조선에서는 수십 년 된 곡식까지 창고에서 긁어내어 환란을 겪은 양도에 보내고 있다. 몇 년 동안 계속된 가뭄으로 비축한 곡식이 많이 줄어들었는데, 이번 전란을 치른 후유증으로 완전히 바닥이 드러날 판이었다.
겨울은 어떻게 날 수 있다. 하지만 내년 봄 춘궁기를 넘기려면 강남과 남만에서 쌀을 구할 필요가 절실했다. 그리고 그 교섭의 성패가 이번 남행에 달려 있었다. 마침 만력제가 거액의 은을 내려주었으니 쌀 구입대금으로 쓸 수 있으리라.
– 6 –
“조선에서 새 혼처를 찾기는 어려울 거다.”
나가마스는 벽에 대고 말하는 기분을 누를 수가 없었다. 자신은 그 엄청난 수모를 겪은 뒤 북한산으로 돌아왔지만, 오랜만에 만난 차차는 여전했다. 전쟁이 끝났으니 이제 조선 국왕이 새 남편을 구해주리라는 기대를 여전히 품고 있었다.
“너도 조보를 보지 않았느냐? 지금 조선에서는 형님이 벌인 참상에 격노한 이들이 소리를 높여 복수를 외치고 있다. 게다가 네 남편이었던 임해군은 대역죄인이니 갈가리 찢어 죽여야 한다고 전국이 떠들고 있는 판이다.”
유키는 이제 조보를 훔치러 도성에 다녀올 필요가 없었다. 얼마 전부터 조선 조정에서 매일 나가마스 앞으로 조보를 한 부씩 넣어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마 전쟁이 끝났으니 이들이 일본군과 내통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할 필요가 없어져서가 아닐까 싶었다.
“숙부님, 난 출가외인이에요. 조선에 시집왔으니 친정인 오다 가가 무슨 일을 벌였든 저랑 상관이 없다고요. 그리고 임해군과는 이혼했으니 임해군과도 얽힐 일이 없어요.”
북한산성에 갇힌 지도 벌써 두 해째다. 하지만 차차는 아직 기세를 잃지 않았다. 빼앗겼던 시녀들도 돌아왔고, 하성군저에 놓고 온 사물들도 돌려받았다.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다만 금위사로 끌려가 심문을 받은 시녀 중에 넷은 죽었다. 하나는 몽둥이로 몇 대 맞다가 갑자기 심장이 멎었고, 셋은 옷을 찢어서 만든 끈으로 한 사람씩 감방에서 목을 맸다. 남은 시녀 중 하나가 실은 자살한 세 동료가 시녀로 위장한 쿠노이치였다고 뒤늦게 자백했다.
그들이 자결한 진짜 이유는 몇 달이나 이어진 감금이 주는 정신적인 압박과 고향에 돌아갈 수 없는 처지에서 온 절망감 때문이었지만, 그거야 꾸며대기 나름이다. 나이든 시녀가 혼신의 힘을 다해 적당한 변명을 지어내자 조선인들도 그럴듯하게 여겼다.
덕분에 살아남은 시녀들은 거의 1년 만에 차차의 곁으로 돌아왔고, 유키도 정체를 들키지 않았다. 차차로서는 새 남편만 얻는다면 주변의 모든 문제가 마무리되는 셈이었다.
“조선 법도에 따르면 출가한 딸은 친정이 반역죄를 저질러도 연루되지 않아요. 마찬가지로 이혼한 며느리도 시댁이 지은 죄를 적용받지 않죠. 전 괜찮아요.”
“너무 너 좋을 대로만 생각하는 거 아니냐.”
나가마스가 한숨을 쉬었다. 암자 주변을 산책할 수 있는 정도 자유는 허가받았지만, 대화를 나눌 상대가 아무도 없었다. 몇 번 찾아와서 질문을 던지던 조선 병조판서도 요즘은 찾아오지 않고 있다. 홀로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눈 딱 감고 차차를 찾아온 참이었다.
“네가 임해군과 이혼을 선언한 시점에서 이미 너는 오다 가문으로 돌아온 거다. 그럼 너는 당연히 원수 가문의 여자지. 너를 당장 죽이거나 산간벽지로 내쫓지 않고 여기 계속 머무르게 하는 건 순전히 조선 국왕이 자비롭기 때문이야. 아니면 아예 잊어버렸거나.”
여자 혼자 일가를 이룰 수 없는 이상, 시가와 친가가 모두 조선과 원수를 졌는데 차차에게 빠져나갈 구석이 있을 리 없었다. 노부나가든 임해군이든, 어느 한쪽과는 얽힐 수밖에 없다. 그럼 아무리 일이 잘 풀리더라도 어디 시골에 박혀 살아가는 수밖에 없을 터였다.
“네가 신붓감으로 주목을 받았던 이유도 오다 가문이라는 배경 덕분이었다. 만약에 국왕이 네게 죄를 묻지 않는다고 해도, 너에겐 이제 일본의 공주라는 정치적 배경도 없고 사카이에서 보내오던 금은도 없어. 그런데 어떤 명문가에서 너를 아내로 맞아들이려 하겠느냐?”
전자는 몰라도 후자의 문제는 차차에게도 바로 이해가 갔다. 일본에서 보내오는 금과 은이 없다면, 사치도 즐길 수 없다. 물론 혼인하면 남편의 재산을 마음껏 쓸 수 있겠지만, 혼인하기 위해서라도 그녀 자신의 재산이 필요했다. 측실이 아니라 정실이 되려면 말이다.
“노부나가 숙부는 죽었잖아요. 뒤를 이었을 노부카츠, 노부타카 두 오라버니 중에서 하나가 숙부 대신 조선에 와서 국왕에게 사과하고 화해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둘 다 후계자가 아니야. 형님이 고른 후계자는 히데노부란다. 그리고 히데노부의 후견인은 하시바지. 선봉장으로 조선을 짓밟은 당사자가 어떻게 조선과의 화해를 추진하겠느냐?”
하시바라는 이름을 들은 차차의 예쁜 얼굴이 곧바로 혐오감으로 일그러졌다. 그동안 읽었던 조보에는 일본 소식은 한 줄도 없었다. 하지만 설마 그 역겨운 늙은 원숭이가 권력을 잡았을 줄은 몰랐다. 이래서야 마음 놓고 일본으로 돌아갈 수도 없지 않은가!
“공연히 엉뚱한 욕심 부리지 말고, 조용히 지내라. 다행히 국왕이 나를 처형하지는 않을 것 같으니, 언젠가 내가 일본으로 송환될 때면 너도 데리고 가게 해달라고 국왕에게 부탁하겠다. 그때 네 어머니께 돌아가려무나. 성급하게 굴다가 네가 거느리던 시녀들 꼴이 나지 말고.”
잠시 이를 악물고 입술을 씹던 차차의 얼굴에서 갑자기 광채가 일었다. 뭔가 기막힌 생각을 떠올렸다는 표정이었다. 나가마스는 그 얼굴을 보자마자 갑자기 복통을 느꼈다. 이제까지 이 맹랑한 조카가 떠올린 착상 중에서 자신을 난감하게 만들지 않은 게 별로 없었던 탓이다.
“좋아요, 일본으로 돌아가겠어요! 하지만 오사카성으로 가진 않을 거예요.”
일순간 생겨나려던 안도감이 곧바로 싹 사라졌다. 나가마스가 처량한 목소리로 물었다.
“네 어머니가 오사카에 계시는데 오사카로 안 가면 어디로 가겠다는 거냐?”
“에도로 가겠어요. 도쿠가와 님에게 갈래요.”
“도쿠가와라고?!”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나가마스가 두 눈을 크게 떴다.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야?
“숙부님께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난 원래 일본에서 제일가는 남자의 아내가 되려고 했어요. 하지만 일본에서는 노부나가 외숙을 이길 사람이 없고, 외숙과 결혼할 수는 없으니까 조선에 나온 거죠. 저도 당연히 조선보다 일본이 좋아요. 처녀나 밝히는 꽉 막힌 놈들, 질색이에요.”
나가마스도 그 점에서는 절대적으로 같은 생각이었다. 그래서 조카가 다음 발언을 내놓기를 침을 삼키며 기다렸다. 과연 얼마나 엉뚱한 소리를 할 것인가?
“이에야스 님이라면 더러운 하시바 정도는 충분히 이길 수 있겠죠. 다만 이에야스 님은 좀 늙었으니까 곧 후계자가 될 아들 쪽이 좋겠어요. 적당한 아들이 누가 있죠?”
나가마스가 자기도 모르게 앓는 소리를 했다. 이에야스는 분명 노부나가의 동맹자이자 오직 하나뿐인 친구다. 올해 17살 난 차남 히데야스라면 차차와 결혼할 수도 있다. 차차보다는 5살 어리긴 하지만, 그 정도야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과거에 이에야스의 장남 노부야스가 모반 혐의가 있다는 노부나가의 명으로 할복을 당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부자간의 갈등이 있었다고는 하지만…더구나 노부야스를 밀고했던 장본인은 노부야스와 정략결혼을 한 노부나가의 딸 도쿠히메였다.
이에야스는 노부나가의 딸에게 배반당했다. 그런 이에야스가 과연 노부나가의 조카를 새로 며느리로 받아들일까? 더구나 오다는 이제 망한 거나 마찬가지라서 덕을 볼 일도 없는데?
“무슨 생각을 그렇게 복잡하게 하세요? 외숙이 방금 제게 말씀하셨잖아요. 오다 가는 이제 망했다고요. 이미 망한 오다 가가 이에야스 님에게 무슨 위협이 될까요? 그보다는 저를 통해 이어지는 오다 가의 혈통을 받아들이는 쪽이 훨씬 쓸모 있을걸요.”
나가마스는 귀를 의심했다. 자기가 알던 차차보다 훨씬 영리했다. 이 아이가 대체 언제부터 이 정도로 머리를 굴릴 수 있게 되었을까? 조선에서 성질을 죽이고 눈치를 보면서 산 보람이 있는 걸까?
“난 어떻게든 일본 제일의 여자가 되고 말겠어요. 숙부는 내가 도쿠가와 가문에 들어갈 수 있도록만 해주면 돼요.”
“알겠다. 노력해 보지.”
과연 차차가 도쿠가와 가문의 안주인이 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조선의 왕비가 되겠다는 말도 안 되는 계획보다는 그래도 그럴듯하다. 조선 조정에서 언제쯤 자기들을 다시 일본으로 보내줄지는 알 수 없지만, 노력해 볼만은 할 것 같았다.
– 7 –
한산도 통제영에는 많은 포구가 있다. 한때는 삼도수군 전선들과 수백 척이나 되는 왜선이 몰려 모든 포구에서 배를 댈 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였지만, 이제는 한산했다. 다른 진포에서 온 전선들은 모두 겨울을 맞아서 본거지로 돌아갔고, 나포한 왜선들도 어디론가 떠나갔다.
“모두 대국에서 쌀을 실어오는 데 쓴다고 하였지?”
“그렇습니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서해, 그것도 겨울에 배를 몰고 있을 왜인 선인들이 제대로 바다를 건널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분명 사고를 당해 불귀의 객이 될 배가 여럿이리라.
“겨울이지만, 서해는 그래도 동해보다는 배를 움직이기 편한 편입니다. 통제사께서도 익히 아시겠지만, 우리 조운선은 겨울에도 미곡을 싣고 서해를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알고 있네.”
협선에 올라탄 이순신은 수하 장수들과 대화를 나누며 포구에 정박한 남만선에 다가갔다. 가장 큰 좌선에 닿자 곧 줄사다리가 내려왔고, 이순신을 비롯한 장수들이 갑판에 올랐다.
“출발 준비는 되었는가?”
“명령만 내리시옵소서.”
정발이 씩씩하게 외치며 고개를 숙였다. 통제영에 모인 남만선 7척을 총지휘하는 대장이다. 3척은 벽란도에서 나포한 해적선, 4척은 해삼위에서 건조한 신조선이다. 이 배들은 먼 거리를 움직일 수 있어, 판옥선으로는 엄두도 낼 수 없던 일본 직접 공격까지 시도할 수 있다.
“조정에서는 우리에게 왜국에 잠입하여 저들의 정세를 파악하라 하였으나, 겨울은 남만선이 나가사키에 가는 계절이 아니니 수행이 어렵다. 또한, 우리 선인들은 아직 배 다루는 솜씨가 조금 미진하니 겨울 동안 제주도를 왕복하며 배 다루는 연습을 하도록 하라.”
“예, 통상.”
동해에서는 해삼위와 무릉도를 왕복하며 선인들에게 훈련을 시켰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도 바다가 거칠지 않은 계절에나 할 수 있는 일이고, 겨울에는 계속할 수 없다. 그래서 이제까지 건조를 완료한 남만선이 모두 남해로 내려온 것이다.
이순신은 미숙한 선원들이 탄 남만선으로 무리하게 작전을 펼치다가 일본 근해에서 난파해 모든 수졸들이 적에게 죽거나 사로잡히게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조정에서 내려온 지시대로 배를 띄우는 건 완벽하게 준비를 마친 뒤에야 가능했다.
이순신은 그 뒤로도 배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질문을 하거나 지시를 내렸다. 배에는 새롭게 훈련받는 조선인 수졸은 물론 왜인 등선군, 투항한 남만선 선원들과 특별히 동승하는 법왕청 무사단 인원들까지 뒤섞여 타고 있었다. 항해술과 전법을 최대한 배우기 위함이다.
“잘 다녀오기를 바라네.”
“믿어주십시오, 통상.”
이순신은 협선을 타고 해안으로 돌아가며 잠시 장래 계획을 다듬었다. 이제 겨울이 왔으니 적어도 봄까지는 왜적들도 움직이지 않을 터였다. 그리고 배를 보내 대마도 일대를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으니, 봄이 오더라도 적이 재침하기는 지극히 어렵다.
설사 올해 4월처럼 왜적이 엉뚱한 짓을 시도한다 해도, 이번에는 절대 당하지 않을 터였다. 이제 남만선이 있지 않은가. 먼바다까지 나가서 순시할 수 있으니 적이 바깥 바다로 돌더라도 능히 조기에 발견할 수 있다.
“도순찰사가 진주에 와있다 하였느냐?”
“예, 통상.”
진주라면 수군 관할구역에서 가까우니, 잠시 다녀와도 큰 무리가 아니다. 이순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은 도순찰사를 만나러 가야겠다.”
이번 전쟁은 경상도와 전라도 양도에 심각한 피해를 주었다. 인구는 줄고 군사도 사라졌다. 도순찰사 권율은 두 도를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면서 남부지방의 방위 태세를 재정립하고 있다. 무척 복잡한 작업이지만 필요한 일이고, 이제 얼추 마무리되고 있다.
주상께서는 왜적을 응징할 생각이시다. 이를 위해서라도 먼저 우리 강토를 방어할 준비부터 마쳐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