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580
2부 358화
기침이 한참을 그치지 않았다. 속이 뒤집히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뱃속이 메스꺼운 것이 꼭 구역질이 올라올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그건 가까스로 참았다.
젠장. 역시 20년 만에, 그것도 깨끗한 새 몸으로 담배 따위를 피우는 건 무리로구나.
선교사들이 갖다준 씨앗으로 담배농사를 시작한 건 벌써 몇 해 전이다. 전농시(典農寺)에서 관리하는 의례용 논밭인 적전(籍田)에서 다른 수입작물들과 함께 시험 재배를 시작했다. 일단 한반도 풍토에 적응부터 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백성들에게 보급할 우선순위는 감자, 고구마, 옥수수 등 주곡을 대체할 수 있는 식량 작물이었다. 옥수수로 인해 나타나는 지력 고갈을 보완해줄 땅콩과 호박이 그 다음 순위다. 담배는 고추나 토마토보다도 밀리는 맨 뒤 차례였다.
담배는 감자나 고구마처럼 허기를 채워주지 못한다. 건강에 좋은 것도 아니다. 게다가 재를 떨다가 떨어지는 불똥 탓에 화재가 유발되기까지 한다. 열대산이라 그런지 추위에도 약하다.
이런 수많은 단점에 비해, 장점은 거의 없다.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기호품, 뱀과 벌레 쫓는 특효약, 그리고 국고를 채워줄 전매상품이라는 것 정도.
국민건강을 생각하면 아예 담배를 들이지 않는 편이 맞을 거다. 하지만 이런 문제가 사람의 힘으로 풀리던가? 내가 개입하지 않아도 길어야 10~20년 안에는 담배가 조선에 들어온다. 그 뒤에는 급속도로 퍼져서 중국에 수출까지 한다. 그럼 내 노력은 아무 소용 없게 된단 말이다.
그럴 거라면 차라리 내가 먼저 들여와서 우리 땅에서 잘 자라는 품종을 육성하고, 전매제를 제대로 확립해서 든든한 수입원으로 삼는 편이 낫다. 그래서 그동안 공을 들여 키우게 했다. 다만 지난 몇 년 동안은 담뱃잎을 수확하지는 않았다. 썰어서 적전에서 방충제로 썼다.
전쟁도 끝나고 나른해진 어느 날 오후, 작심하고 올해 거둬서 잘 말려둔 담뱃잎을 경무대로 가져오게 했다. 그리고 잘게 부숴서 대통에 담은 뒤에 불을 붙였다. 담뱃대는 맥아더가 즐겨 썼다던 옥수수 속대 파이프를 본떠서 만들었다. 옥수숫대에 나무 대롱 박아서 말이다.
처음 연기를 들이마실 때만 해도 괜찮았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자 입안에 엄청난 양의 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독하고 매운 연기에 머리가 멍해지면서 뱃속이 메슥거렸다. 앞에 서서 내 표정을 조심스럽게 살피던 상희가 슬며시 고개를 젓는 모습이 보였다.
“됐다, 치워두어라.”
내관에게 담뱃대를 내주고 입에 고인 침을 땅바닥에 뱉었다. 지저분한 행동이지만, 이렇게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러게, 피우지 말랬잖아. 꼭 피워 봐야 안 좋은 걸 알아?”
다가온 상희가 내 옷매무새를 매만지며 속삭였다. 내 승마장이자 사격장인 경무대에 올라올 때는 늘 주변을 최소화하지만, 그래도 조심은 할 필요가 있다. 남몰래 대화할 때면 늘 그러듯, 안장에 올라 상희를 품에 안았다.
“필터가 없으니까 더 독할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정말 연기가 독한 정도가 수준이 다르네. 아무리 경험 없는 몸이라지만 현대에서 처음 배울 때랑 너무 다르다.”
“너 옛날 몸은 간접흡연이라도 해본 몸이었잖아. 그리고 필터만 없는 게 아니야. 현대에서 담배 만들 때는 어느 한 가지 잎만 가지고 안 만들어. 수십 가지 품종을 블렌딩해서 만들지.”
“그래? 나한테 그런 말 했었어?”
상희가 내 품에 얼굴을 묻은 채 한숨을 쉬었다.
“처음 담배 들여오자마자 얘기해줬는데 흘려들었구나.”
한국에서 만드는 ‘국산’ 담배도 원료인 담뱃잎은 국산과 수입산 수십 가지를 섞어 만든다고 했다. 소비자가 원하는 다양한 맛과 향을 만들기 위해서다.
“그래서 국산 연초(담뱃잎)도 다른 나라에 수출하고, 국산 담배도 수입 연초 섞어서 만들고 한 거지. 필터가 있다고 해도 조금 순해질 뿐이야. 지금 그 담배는 네가 현대에서 피우던 그 맛이 날 수가 없어.”
“넌 비흡연자였다면서 그런 걸 어디서 다 봤어?”
“담배도 건강하고 크게 관련된 문제니까.”
그건 그렇지. 하긴, 얘도 나름 책 많이 봤다는 걸 잠깐 잊고 있었다.
“역시 나는 안 피우고 팔기만 해야겠다.”
“그래, 너라도 피우지 마.”
패라리는 콧바람을 푸르륵거리며 유유히 경무대 승마 코스를 돌았다. 우리 두 사람을 등에 태우고도 전혀 힘겨워하지 않는 걸 보면 타고난 힘이 원체 좋은 말이긴 하다. 하긴 전쟁 때도 완전무장한 나를 태우고 까딱없이 다녔었지. 상희가 별로 무겁지도 않고.
“수출도 지원할 거야. 중국이랑 일본에서 ‘조선인삼’ 못지않게 ‘조선담배’가 기호품 시장을 제패하는 브랜드가 되도록 말이지. 맛을 들이면 다들 돈을 싸 짊어지고 와서 제발 팔아달라고 애원을 할 거야.”
“담배로 해친 건강은 인삼 먹고 회복하라고?”
“빙고.”
말 그대로 병 주고 약 주는 셈이다. 하지만 뭐, 담배 정도면 양호한 물건이라고 생각한다. 아편처럼 사람을 말 그대로 폐인으로 만드는 것도 아니고, 갖가지 암을 유발한다지만 어차피 이 시대에는 암에 걸릴 나이가 되기도 전에 죽는 사람이 대다수다.
“화재사고가 늘 테니 소방대도 강화해야 하고, 궁궐이나 관청?학교 내부에서는 금연하라는 법도 만들어야지. 내가 불을 피해 도망가기도 싫고, 책이 타는 것도 싫으니까.”
한양은 목조건물로 이루어진 도시다 보니 종종 화재로 불바다가 되고는 했다. 그래서 이미 세종대왕 때 금화도감(禁火都監)을 두었고, 세조 때 잠시 없앴다가 성종 때 금화사(禁火司)를 다시 만들었다. 세조 때도 한성부에 흡수시켰을 뿐, 소방기구를 아예 없앤 건 아니었다.
“젖은 거적 덮고 옆집 부수는 방법만 쓸 게 아니야. 도로를 정비했으니까 소방차를 만들어 배치해도 돼. 수동펌프 정도야 만들면 되고. 수도가 없어서 퍼부을 물을 조달하기가 힘들기는 하지만, 물탱크를 실은 차도 같이 움직이면 되거든.”
연못을 파서 물을 모아 놓는 방법도 생각은 해 봤다. 지금도 도성 안에 방화용으로 파놓은 연못이 여럿이다. 하지만 이건 많이 파면 많이 팔수록 다른 데 활용할 토지 면적이 줄어드는 데다가, 여름에 모기가 들끓을 우려가 있다. 모기 방제가 또 골칫거리가 된다.
“장구벌레 숨 막혀 죽으라고 고래기름을 부었더니 그 기름을 걷어가는 놈이 있었고, 대신에 미꾸라지를 풀어서 잡아먹게 했더니 그 미꾸라지를 건져다 끓여 먹는 놈이 있었지.”
“나라님께서 모든 백성을 잘살게 해주셔서 방화용 연못에서 걷은 기름이 없어도 불을 켤 수 있고, 그 연못에서 건진 미꾸라지가 아니라도 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해주시면 충분히 유효한 대책이 될 거야.”
“그렇게 말하니 내가 할 말이 없구나.”
하긴 경제가 발전하면 굳이 연못 위에 뜬 그 얄팍한 기름을 걷어갈 필요가 없겠지.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이 참 많다. 마음을 다잡으며 상희를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 16 –
“허어, 참으로 날카로운 칼이로군. 갑옷도 튼튼해 보이고.”
누르하치는 조선 국왕이 보내준 왜검을 들고 날을 살폈다. 무섭도록 단단하고 예리한 것이, 사람 몸뚱어리 정도는 서넛쯤 썰어도 이가 나가지 않을 것 같았다. 갑옷은 구조가 영 이상해 보이지만 나름 튼튼해 보이기는 했다.
“건주위 도독께서 신의를 지켜 우리 후방을 평화롭게 해주시고, 우리가 필요한 전마도 4만 필이나 제공해 주신 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전하께서 보내신 것입니다.”
조선 국왕은 이번 전쟁에서 왜인들로부터 빼앗은 갑옷 2벌과 왜검 10자루, 왜조총 6자루를 사자를 시켜 누르하치에게 선물로 보냈다. 명목상으로는 전쟁 중에 건주위 쪽에서 값을 받지 않고 양도한 전마 2천 마리에 대한 감사의 표시라는 것으로 되어있었다.
“이 총을 앞으로 넘겨주겠다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조선 국왕의 사자는 누르하치가 보는 앞에서 왜조총에 화약을 재고 방아쇠를 당겨 보였다. 선물이라는 명목으로 가져온 왜식 갑옷에 큼지막한 구멍이 뚫리는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당연하겠지만 이 총에 대해서는 대국에는 비밀을 지켜 주셔야 서로 좋을 겁니다.”
“우리는 바보가 아니오. 걱정하지 마시오.”
조총과 화약이 건주위에 흘러 들어갔다는 사실이 명나라 조정에 알려지고, 명나라가 격분한 나머지 군사를 일으키면 건주위부터 피를 볼 수밖에 없다. 명나라는 바다 때문에 조선에 직접 무력을 행사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앞으로 얼마나 가져올 생각이오? 그대들은 아직 그 수량도 확실히 알려주지 않았소.”
조선인들은 전쟁 중에는 무기를 보내주지 않았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여유가 없을 사정을 양해했기에 그동안은 독촉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조선이 계산을 치를 때였다.
이번 전쟁을 맞아 건주위는 조선에 막대한 양의 물자를 제공했다. 전마 4만 마리 외에도 소 1만 마리와 양 3만 마리 분량에 해당하는 말린 고기를 보냈고, 짐을 나르기 위해 사용할 살아 있는 소 5천 마리와 낙타 1천 마리를 보냈다. 물론 태반은 거저 약탈해온 가축이다.
이에 대한 대가로 받은 면포와 차, 소금은 평소 교역 조건대로라면 말 2만 마리에 해당하는 가격밖에 되지 않았다. 명나라에는 2천 마리만 거저 줬고 나머지 분량은 다 대가를 받았다고 했지만, 이는 조선과 건주위가 지나치게 가깝다는 의심을 사지 않으려는 거짓 보고였다.
이만한 후의를 베풀었으니, 마땅히 조선에서도 적절한 답례를 해야 할 터였다. 과연 조선이 넘길 조총과 화약은 얼마나 될까?
“조총 2천 자루와 총에 넣고 쏠 납환 10만 개, 그리고 그만한 탄환을 쏠 수 있는 분량의 화약을 넘겨드리겠습니다.”
누르하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기대한 만큼 많은 양은 아니지만, 추후 이어질 거래의 물꼬를 텄다고 생각하면 나쁘지 않다. 그런데 조선 사자가 말을 덧붙였다.
“아시겠지만 이건 정말 엄청난 물량입니다. 이 거래가 명나라에 새나가지 않게 하려면 기밀 엄수가 철저해야 합니다.
“그래서?”
“약속대로 보내드리기는 하겠습니다. 다만 눈에 띄지 않도록, 소량으로 다른 교역품과 섞어 장기간에 걸쳐 운송해야 할 듯하니 용납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누르하치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보시오, 사자. 숨겨야 할 일을 오래 끌다 보면 꼬리가 밟힐 가능성이 더 커지는 법이오. 조총 2천 자루는 분명 막대한 물량이지만, 우리가 그동안 넘긴 낙타 중에 4백 마리만 한 번에 움직여도 탄환에 화약까지 몽땅 한 번에 가져올 수 있는 양이잖소.”
“그렇긴 합니다. 하지만 건주위 도독께서도 생각해 보시지요.”
사자는 이런 반박을 이미 예상한 듯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그런 대규모 행렬이 순전히 조총과 화약만 싣고 움직인다면 소문이 안 날 수가 없습니다. 마음이 급하시겠지만 참고 기다려 주십시오. 저희 조선인들은 약속은 분명히 지킵니다.”
“그간 교역에서 수많은 협잡을 서로 주고받은 처지에 할 말은 아닌 듯하오만….”
누르하치가 피식 웃자 조선 사자도 웃었다. 하긴 그동안 시장이 열릴 때마다 양측 상인들은 최대한의 노력을 다해 서로를 속여먹곤 했다. 장사란 게 원래 그런 과정이 아닌가? 물론 다음 거래가 무산되거나, 격분한 손이 활을 잡을 정도로 심한 사기는 치지 않았다.
“내 생각에 그대의 국왕은 무기 공급을 손에 쥐고 우리를 길들이려는 모양인데 쉽지 않을 거요. 조선이 우리 기대를 배반하면, 우리도 우리를 위해 움직일 수밖에 없으니까.”
여차하면 건주위가 먼저 나서서 명나라 조정에 고변하는 수도 있다. 조선이 엉뚱한 생각을 품고 건주위에 무기를 제공하려고 한다고 하면 북경에 있는 조정은 발칵 뒤집힐 거다. 그리고 건주위 소속 철기가 요동군을 인도하면서 조선으로 밀려들 수도 있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도독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제가 상상한 것과 같은 일이 생긴다면 조선과 건주위 모두에게 참으로 비극일 겁니다. 요동에 수많은 피가 흐르겠지요.”
“맞소. 피해야 할 일이지.”
조선군이 아무리 강력하다고 해도 명나라가 작심하고 군대를 일으키면 상대하기 어렵다. 그 강대했던 고구려도 연이어 들이치는 당나라의 공격에 결국 무너지지 않았는가.
그렇다 해도 그 과정에서 수많은 명군과 건주위 전사들의 시체가 땅을 덮을 터였다. 별다른 이득도 없이 그 큰 손실을 각오할 필요가 없었다.
“어떻습니까, 도독께서 우호의 상징으로 아드님 한 분을 한양에 보내신다면? 저희는 귀측의 진의를 믿게 되고, 도독께서도 필요할 때 활용할 수 있는 패를 가지시게 됩니다.”
명나라는 자기 세력권에 있는 여진 부족들이 조선과 직접 교통하는 걸 극도로 경계했다. 그 탓에 조선은 본래 가지고 있던 여진에 대한 영향력을 백여 년 동안 조금씩 잃었다. 물론 지난 90여 년 동안 명나라가 보인 소극적인 태도에 힘입어 지금은 그 이상으로 키우기는 했다.
하지만 이제 요동에 남은 대규모 여진 세력은 오직 건주위뿐이다. 만약에 건주위가 조선과 결합한다면 그 결과는 명나라에 정면으로 도전할 수 있는 강자의 출현이다. 조선에서 은밀히 그런 계획을 꾸민다는 사실을 안다면, 절대 명나라 조정에서 그냥 넘어갈 리 없었다.
“확실히 내 아들을 조선에 보낸다는 건 나만 위험해지는 일은 아니군.”
누르하치가 입술을 일그러뜨렸다. 그리고 호의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귀하가 여기 머무르는 동안 생각해 보리다. 다만 보낸다면 혼자 보내지는 않을 거요. 아직 어린아이니, 적어도 기병 2백 기 정도는 딸려서 호위하도록 할 거요.”
“그 정도는 필요하겠지요.”
건주위 기병들이 한양에 온다 해도 신분을 위장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도성에는 이미 수천이나 되는 여러 부족 출신의 여진족 기병들이 주둔하고 있으니까.
“좋소, 그럼 한번 생각해 봅시다. 자, 주연을 즐겨 주시오.”
“감사합니다.”
– 17 –
생각지도 못한 왜국의 영주가 되었다. 수입이 쌀 1만 석, 아니 조선 되로 따지면 2만 석은 족히 되는 땅이다. 졸지에 엄청난 부자가 된 셈이지만 원균으로서는 별로 달갑지 않았다. 그 대가로 완전한 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하필이면 일기도라니!”
일기도는 조선과 일본이 다시 전쟁을 벌이게 되면 최전선이 되는 땅이다. 종의지도 이 섬을 가지고 있었던 탓에 일선에서 고생만 죽도록 하다가 포로가 되었다. 종씨 일족 대다수가 이번 전쟁에 끌려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배에 오를 때, 원균에게는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육지에 남아 있다가는 관군에게 붙잡혀 당장 목이 떨어지리라는 생각만 했다. 배에 오르니 이번에는 남쪽에서 이순신과 싸우던 다른 선단이 불타오르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반쯤 혼이 나간 채 나고야에 도착했다. 히데요시는 무슨 일인지 혼자서 급히 오사카로 갔고 원균은 멍한 상태로 한동안 고니시군 진영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던 참에 히데요시가 권력을 잡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주변이 마구 혼란스럽더니, 그에게도 편지가 한 통 날아들었다.
‘그대가 좀 더 큰 공을 세웠다면 더 큰 영지를 내릴 수도 있었을 텐데 미안하네. 일단은 이 정도로 만족하고, 추후에 더 큰 공을 세워 더 넓은 영지로 전봉될 수 있도록 하게.’
일기도는 일본에서 조선과 가장 가까운 땅이다. 즉, 장차 조선군이 일본을 공격하면 자신이 선봉에서 싸워야 했다. 히데요시가 말한 ‘더 큰 공’이 바로 조선군을 막으라는 소리이리라.
더 넓은 영지 따위 하나도 필요 없었다. 새 임금의 측근으로 금의환향하려던 계획이 완전히 무너진 지금, 하성군이 함께 귀국하자고 권했을 때 절대 거절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감만 들 뿐이었다. 이순신에 대한 혐오감 따위, 아무 가치도 없었다.
생각 같아서야 당장 배를 타고 조선으로 돌아가고 싶다. 하지만 겨울이라서 바다가 거칠고, 돌아간다 해도 관에 붙잡히면 역적이라 해서 능지처참을 당할 테니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저 자신을 친구로 여겨 주는 히데요시의 후의에 기대서 버티는 방법뿐이다.
“젠장! 젠장! 내가 도대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인가! 이순신 따위가 뭐라고 공연하게 그 고집을 부렸을꼬!”
원균은 가슴이 찢어지도록 한숨을 쉬었다. 전쟁이 시작될 때 오사카에 두고 온 왜첩을 마침 히데요시가 일기도로 보내주었다. 오늘도 술이나 실컷 퍼마시고, 왜첩을 끼고 잠들어야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