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586
2부 36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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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언제야, 무오사화 때니까 93년 전인가? 아니, 내 시간표로는 16년 전 일이라고 하는 게 맞으려나.
바로 이곳 모래밭에서 대역죄를 선고받은 죄인 3명을 거열형에 처해서 사지를 찢어 죽였다. 그때 귓가를 울리던 비명과 모래 위를 적시던 핏자국이 지금도 기억 속에 선명하다. 정호찬을 처음 만난 계기가 되었던 사건이기도 했지.
사람이 산채로 팔다리가 찢어지는 장면을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뒤로 수많은 사람을 죽이라고 명령하고 또 그 광경을 직접 보았다. 이제 사람 죽이는 광경에는 꽤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지금부터 볼 광경은 내 이제까지의 경험을 능가하는 수준이 될 터였다.
“죄인을 끌어내라!”
진행자 격인 의금부 소속 금부도사 ? 금위사는 수사기관이지 형벌을 집행하는 집행기관은 아니니까 ? 가 그때 정호찬처럼 호통을 치자 뒷전에 머물러 있던 함거가 앞으로 나왔다. 그냥 놔두면 백성들이 달려들어 때려죽일까 봐, 그동안 의금부 사령 백여 명이 호송하고 있었다.
덮어놓은 거적을 걷고 문을 열자 그동안 햇빛을 보지 못해 허옇게 뜨고, 살이 피둥피둥 찐 임해군이 나타났다. 임해군은 한참 만에 햇빛을 보니 눈이 부신지, 눈을 껌벅거리면서 멍하니 앉아 있기만 했다. 그 표정이 무척이나 바보스러워 보였다.
“저, 저놈 행색 좀 보소!”
도성 백성 절반은 몰려나온 것 같다. 그 많은 입에서 비난의 함성이 쏟아졌다.
“이 대역죄인아!”
“육시를 할 놈!”
“내 자식 살려내라!”
“네놈 때문에, 네놈 때문에…!”
수천 명이 퍼붓는 욕설이 쏟아지니 하나하나 구분해서 듣기도 어려웠다. 내가 다들 조용히 하라고 하면 금방 그치긴 하겠지만, 이것도 형벌이라고 생각하고 내버려 두었다.
그나저나 아무리 운동을 안 했다지만 하루 한 끼 먹는 금위사 밥으로 저렇게 살이 찌다니, 임해군 저놈도 보통 놈은 아니긴 하구나.
“내가 절대 저놈을 병들게 하거나 밥을 굶겨 죽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더니, 이놈의 금위사 옥졸들이 과잉해석을 했나?”
뭐, 나쁜 결과는 아니다. 저놈이 혹시 진짜 죄인처럼 핼쑥하고 초췌한 행색을 하고 형장에 나타났으면 혹시 동정하는 사람이 하나라도 나타났을지 모르니까. 하지만 저런 꼴로 고개를 내민 덕분에 동정여론 따위는 씨알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욕설 속에서 임해군이 함거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스스로 걷지 못하고 양쪽에서 겨드랑이를 잡고 이끄는 형리들에게 끌려오다시피 했다. 그리고 열십자로 세워놓은 형틀에 두 팔을 벌리고 묶였다. 결박을 마친 형리가 곧바로 재갈을 물렸다.
“확실히 아편이 약효가 있구먼.”
능지형은 죄인이 집행 중에 쇼크사하기 쉽다. 그래서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할 조치가 뭔가 필요하다. 술을 먹일 수도 있지만, 알코올은 혈액순환을 빠르게 하니까 출혈도 늘어서 죄인이 더 빨리 죽을 공산이 크다. 그래서 반항도 막을 겸, 죽지 않을 만큼 아편을 먹였다.
아편을 얼마나 먹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눈이 풀려 있고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는 꼴을 보면 확실히 제정신이 아니긴 한 모양이다. 저 정도면 칼질을 해도 고통도 못 느끼겠지.
“집행하라!”
내가 손짓하자 금부도사가 크게 호령했다. 지시가 떨어지자 그늘 밑에서 쉬고 있던 명나라 집행인이 칼을 뽑아 들고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죄인을 ‘찢어 죽인다’고 이미 들어 알고 있는 구경꾼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조선에서 처음 보는 진짜 능지형이 시작되는 것이다.
“집행인이 뭐라 중얼거린 것 같은데, 조 내관은 가서 통변에게 물어보고 오라.”
급히 통변에게 다녀온 내관은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얘져 있었다.
“그것이, ‘죄인이 살이 쪄서 벨 곳이 많고 금방 죽지 않겠구나’하고 기꺼워했다 하옵니다.”
임해군이 살이 쪄서 즐거워하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뭐라고 할 말도 없어서 괜히 입맛만 다시다가 옆에 선 유성룡을 돌아보았다. 마침 집행인이 임해군에게 다가서고 있었다.
“영상, 그대는 형을 집행하는 광경이 잘 보이는가?”
“멀어서 잘 안 보이옵니다, 전하.”
사전에 설명은 들었다. 손가락, 발가락 등 치명적인 상처가 되지 않는 부위부터 칼로 살을 발라내고 관절을 부순다. 출혈이 심하면 진흙으로 지혈하고 다른 부위를 도려낸다. 팔다리와 몸통의 살을 다 발라냈는데도 살아있으면 가슴에 구멍을 뚫거나 심장을 찔러 목숨을 끊는다.
집행인을 만났을 때 물어보니, 자신은 사형수가 죽기 전에 2만 번까지 칼을 그을 수 있다고 했다. 당연히 하루에 끝날 일이 아니고, 사나흘에 걸쳐서 천천히 사람을 조각내는 작업이다.
“그건 너무 잔혹한 듯하여 칼질은 1천 번만, 집행은 오늘 안에 끝내라 하였는데…그러기를 잘한 듯싶구나.”
“더 줄이셔도 괜찮았으리라 사료되옵니다. 우리 백성들이 이제까지 본 혹형이라고 해봐야 백여 년 전 무오사화 때 본 거열형이 고작이니, 스무 번만 칼을 긋는다고 해도 모두 끔찍하게 여겼을 것입니다.”
어째 혹형은 나만 하는구나. 속으로 한숨을 쉬는데, 벌거벗은 임해군의 신체가 점점 피로 붉게 물드는 모습이 보였다. 거리가 있다 보니 지금 어느 부위를 잘라내고 있는지 같은 건 잘 안 보였다.
집행장을 둘러싼 백성들은 아까 그 함성은 어디 갔나 싶을 만큼 조용했다. 숨소리조차 내지 않을 만큼 열중해서 집행 장면들을 보고 있었다. 아마 오늘 일은 발 없는 말을 타고 조선팔도 아니 13도 전체로 퍼지겠구나. 조보에 실린 밋밋한 기사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살이 붙어서.
“그…그만 환궁하심이 어떻겠습니까? 밀려 있는 국사가 많으니, 어서 궁으로 돌아가 처결하심이 어떨까 합니다만….”
“아니다. 대역죄인에 대한 처벌이니, 나오지 않았으면 모를까 나온 이상 끝까지 관전해야 하지 않겠느냐?”
유성룡이 부들부들 떨고 있는 걸 보니 견디기 힘든 모양이다. 사실 나도 사람이 말 그대로 조각나는 꼴을 보고 있으려니 속이 메스꺼웠다. 하지만 내가 내린 형벌이니 안 볼 수도 없다.
붙잡은 직후에 토막을 내서 죽였으면 아마 나도 신나게 봤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놈을 옥에 가둔 뒤 시간이 몇 달 지났고, 그동안 전쟁도 승리로 끝난 덕분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화가 꽤 풀린 모양이다. 저놈이 원체 찌질한 놈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 그런지도.
“어명이다. 영상은 예판과 함께 의정부로 돌아가 조만간 출발할 견서사에게 들려 보낼 친서 문안을 좀 더 다듬도록 하라. 그리고 다른 대신들은 각기 급한 중대사가 없는가?”
사족을 안 달고 그냥 가고 싶은 사람 있냐고 했으면 아무도 안 나왔겠지. 급한 일 없느냐고 돌려서 질문하자 내 주변에 모여 있던 정승, 판서 중 반 가까이가 주춤주춤 손을 들었다.
“할 일이 있는 자는 모두 등청하여 업무를 보아도 좋다. 오늘의 자리는 일벌백계로서 혹시라도 역심을 품은 자를 계도하고자 함인데, 그대들이 굳이 경고를 받을 필요가 있겠느냐?”
지금까지 보여준 부분만으로도 중신들에게 주는 경고로서의 의미는 충분하다. 굳이 끝까지 보게 하지 않아도 한동안은 다들 꿈자리가 사납겠지 싶다.
어물거리며 물러간 신하들 말고도 아직 관중은 많았다. 시선을 다시 앞으로 돌리니, 아직도 한참 ‘집도’에 열중하고 있는 집행인이 눈에 들어왔다. 재갈과 아편 덕분인지, 임해군은 전혀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아예 혼절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한 번만이다. 종친이 외적을 끌어들여 왕위를 노렸다는, 아마도 고구려 때 고국천왕의 동생 발기 이후로 처음 벌어진 사태를 도저히 평범하게 처벌할 수가 없다.
앞으로는 이런 잔혹한 처형은 하지 않을 테다. 너무 잔인하기도 하고, 대외적으로 드러날 조선이라는 나라 이미지도 생각해야 하니 웬만하면 참수형이나 교수형으로 처리하도록 하자. 사람을 회를 뜨는 모습을 일어나지도 못하고 보고 있으려니 나부터도 괴롭구나.
– 5 –
“고생이 실로 많았도다.”
“전하께서 베푸신 성총에 보답하기 위함이니, 어찌 고생이라 하겠습니까?”
동남아에서 돌아온 이수광이 내 앞에 엎드려 귀환 보고를 했다. 북경부터 들르느라 출발한 시점부터 따지면 거의 5개월 만에 돌아온 장기 출장이다.
도성에 들어오는 길에 남대문 앞에 매달려 있는 임해군의 머리와 뼈만 남은 몸, 독에 담겨 젓갈이 된 발라진 살점을 보았을 테지만 이수광은 그 일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도 알아서 자제해 주는 그 태도가 고마웠다.
임해군 따위 이제 젖혀두자. 해골을 한강에 던지고, 젓갈 한 동이씩 13도에 돌리면 그 일은 이제 끝이다. 나랏일에 열중할 때다, 이젠.
“안남의 정세는 어떠하였는가? 내란이 일어나 혼란하다 하던데, 추이는 어떤가?”
“대국에서 직접 책봉을 받은 왕실은 안남 막씨(莫氏)이온데, 사실 막씨는 본래 여씨(黎氏)의 신하로서 60여 년 전에 임금인 여씨를 시해하고 권좌를 찬탈한 역신의 후예들이옵니다. 지금 여씨의 옛 신하인 정씨(鄭氏)와 완씨(阮氏)가 군사를 일으켜 막씨를 밀어내고 있습니다.”
찬탈이란 조선에서는 함부로 다루기 곤란한 주제다. 창업군주인 이성계부터가 사실 고려의 신하였으면서 나라를 빼앗았고, 초기에는 왕조 내에서도 왕권을 놓고 몇 차례 피 튀는 다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베트남처럼 양위를 받자마자 대놓고 임금을 죽이진 않았다.
베트남 내전에서는 어느 쪽에 줄을 대야 할까…내가 기억하기로는 베트남 마지막 황제였던 바오다이가…분명히 응우옌 왕조, 그러니까 완씨였다. 베트남에 흔하기는 더럽게 흔한 성씨가 완씨라고 알고 있기는 한데, 설마 완씨 왕가가 2개나 되지는 않았겠지.
최후의 승자가 완씨가 될 거라면, 지금부터 친하게 지내 둬서 나쁠 거 없다. 노획한 일본군 갑옷과 일본도 같은 거 완씨 쪽에 주로 제공하고, 필요하다면 병력도 넘겨주도록 하자. 물론 공짜는 아니고, 기왕 파는 거 막씨한테 안 팔고 그쪽에 팔겠다는 것뿐이다.
“전하, 대국에서 책봉을 받은 국왕은 막씨인데, 어느 한쪽을 택한다면 막씨를 골라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우찬성 윤두수가 걱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나는 코웃음을 쳤다.
“그 책봉이란 것이 정녕 막씨가 정당한 군주여서 받은 것이 아니라, 대국 조정에서 안남에 개입하기 귀찮으니까 힘으로 권좌에 오른 놈을 그냥 대충 인정하고 넘어간 게 아니냐? 그것을 왜 우리가 그대로 따라야 하느냐?”
베트남은 2백여 년 전 명나라 영락제의 침공을 받고 명에 흡수될 위기에 처했었다. 하지만 20년에 걸쳐 싸워서 명군을 몰아낸 전적이 있다. 그때를 생각하면 수틀리는 점이 있다 해도 명나라가 개입할 마음을 먹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대국에서 누구를 인정했건 상관없으니 우리는 되도록 완씨 쪽에 유리하게 임하도록 하자. 혹시 대국 조정에서 이 문제로 트집을 잡고 나온다면, 이리 답하라. 우리가 안남 사정에 밝지 못한 탓으로 토인들의 술책에 넘어가 거래 상대를 자꾸 혼동한다고 말이다.”
이성계가 어떻게 고려 왕위를 뺏고 명나라에서 책봉을 받았는지를 생각하면 내가 지금 하는 소리는 개가 웃어도 모자라지 않을 거다. 내가 진짜 이성계 후손이면 낯이 뜨거워서 입밖에도 못 냈겠지.
“그리고, 섬라에서는 크게 환대를 받았다고?”
“그렇습니다. 작년에 새로 즉위한 섬라 국왕 납서선, 섬라 말로는 나레쑤언이라는 임금이 직접 궐문에 서서 저희를 환영할 정도였습니다. 연회도 크고 화려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납서선이 나레쑤언이었구나. 태국 역사는 내가 잘 모르지만, 나레쑤언이 태국 역사에 남는 명군이라는 정도는 안다.
저쪽도 흥분할 만은 하다. 조선이 태국 사신을 받은 적은 있어도 이쪽에서 보낸 적은 전혀 없었으니까 말이다. 구한말에 개항하기 전까지는 조선에서 사신을 보낸 나라라야 중국과 일본 두 나라가 전부였으니까.
아마 이번 조선 사신의 즉위 축하 방문은 태국에서도 역사에 남을 사건이겠지. 우리도 조선 초에 태국 사신 한두 번 온 거 가지고 국사 교과서에까지 실어서 우려먹잖아.
“쌀도 적극적으로 내주었습니다. 섬라에서 안남까지는 저들이 운송하고, 안남부터는 저희가 강남에서 마련한 배들이 인계받아 덕적도까지 운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교역선으로 투입한 왜선만 가지고는 필요한 물자를 다 나를 수가 없다. 왜병을 주고 사 오는 쌀만 있는 게 아니고, 명나라에서 받은 은으로 사는 구리와 쌀도 있으니 말이다. 그 덕에 지금 강남에서는 신조선뿐만 아니라 중고 화물선도 값이 몇 배는 뛰었다고 한다.
21세기 같으면 화물선이 태국에서 한국까지 직항으로 오겠지만, 장거리 항해의 위험성이나 익숙하지 못한 뱃길 같은 걸 감안하면 릴레이식으로 운송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동원할 배가 더 많이 필요하다. 선원으로 투입할 인력도 모자라서 왜인들에다 중국인도 고용하는 중이다.
“그래도 외수사가 힘쓴 덕분에 식량이 순조롭게 들어오고 있어 추수 때까지는 버틸 수 있을 듯하다. 호조에서는 외수사가 청하는 교역품이 있거든 되도록 빨리 마련해 주고, 덕적도에 둔 곡식 재고 현황을 수시로 갱신하여 새로 오는 배를 필요한 곳으로 보낼 수 있게 하라.”
수입한 곡식은 전국 각지, 특히 남부 지방에 보내야 한다. 고로 이 배들은 경창에다 곡식을 보충하기 위한 일부를 뺀다면 벽란도나 한강에 굳이 들어올 필요가 없다. 그래서 바깥 바다에 면한 덕적도에 들러 최종 행선지를 지정받은 뒤 움직이게 했다.
덕분에 춘궁기에 들어섰음에도 전국에서 백성들이 굶어 죽는다는 보고는 올라오지 않았다. 물론 지역에 따라, 특히 배가 들어가기 어려운 내륙 지역의 경우는 다소 곤란을 겪는 고을이 있다. 하지만 그런 고을도 육로를 통해 최소량은 공급했기에 최악의 사태는 나지 않았다.
실제 역사랑 다르지만, 만들어 놓은 도로망이 확실히 보탬은 된 것 같아 다행이다. 그래서 다소 안도하고 있는데 신하 하나가 백성들의 불평을 전했다.
“다만 구휼곡으로 받은 그 길쭉한 안남미…로 밥을 짓자 쌀이 기름지지 못해 푸슬푸슬하고 찰기가 없어 맛이 없다는 불평은 백성들 사이에서 조금 나오고 있사옵니다.”
다들 배가 불렀구먼. 나도 모르게 대응이 조금 거칠게 나갔다.
“그 쌀이 종자가 원래 그러한 것을 어찌하랴.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 참으라 일러라.”
안남미 밥은 불면 날아간다지. 조선인들 입맛에는 밥으로는 영 아니지만, 술이나 떡 만드는 용도로는 괜찮다고 했던 것 같다. 이 두 가지도 조선인들이 무척 좋아하는 음식이니, 공연히 밥맛 안 난다고 불평하기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먹으라고 해야지.
뭐, 이미 대다수는 알아서 잘 요리해 먹고 있지 않을까?
– 6 –
“부인, 너무 두려워하지 마시오. 이역만리 먼 뱃길이라 하나, 전남감사 대감께서도 무사히 다녀오셨고 또 가실 길이오. 이미 한번 가본 분과 함께 가는 길이니 무엇이 어렵겠소?”
광해군은 부지런히 아내를 다독였다. 부인 유씨는 광해군과 함께 세상 반대편에 다녀오라는 왕명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사흘 밤낮을 울었었다. 이제 겨우 16살이니 무리도 아니다.
아내를 다독이는 광해군 자신도 이제 17살, 아내보다 겨우 1살 많을 뿐이다. 하지만 겪어본 인생의 고난은 아내를 능가했다. 덕분에 그에게는 충격에 주저앉을 여유조차 없었다.
“전하께서 부인에게 문성군부인(文城郡夫人)이라는 봉작까지 내리지 않으셨소. 본래대로라면 왕자군의 처에게만 내릴 수 있는 특전인 것을, 다음 대에 봉작이 회수될 우리에게 내리셨으니 진실로 엄청난 은혜요.”
하성군 일가는 완전히 망했다. 친형인 임해군은 조선 역사상 가장 참혹한 몰골로 처형됐고, 부친과 두 이복동생을 비롯한 모든 일가는 연해주로 떠났다. 노비들조차 북방으로 쫓겨났다. 북방에서는 노비가 아닌 양민이라 하나, 남쪽으로 돌아올 수는 없었다. 그게 무슨 자유인가.
이제 가문의 명운은 광해군 한 사람에게 달려 있었다. 하지만 광해군은 가문을 일으키고자 노력할 의욕조차 없었다. 임금의 부르심을 받고 입궁했을 때 소의 이씨와 잠깐 스쳐 지나갔을 때도 절망감만 더해졌을 뿐이었다.
견서사로 가라는 명은 어쩌면 전화위복인지도 모른다. 그동안의 모든 짐을 내려놓고 인생을 새로 시작할 기회가 온 것일 수도 있다.
아내를 위로한 광해군은 마당으로 나와 서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덕형이 말하기를, 유럽 땅에서 보는 밤하늘도 조선과 똑같더라고 했다. 사람 사는 세상, 어디나 근본은 다 똑같다면 분명 이쪽에서 실패한 삶을 저쪽에서 다시 시작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