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587
2부 365화
– 7 –
거제도는 반쯤은 왜인의 섬이 되었다. 전쟁이 일어나기 한참 전에 넘어온 도왜, 전쟁 중에 투항한 항왜, 전쟁이 끝난 뒤에 조금씩 넘어온 신왜(新倭)까지 합쳐서 모두 3만 명이 넘는다. 여기서 왜별기에 정식으로 편제된 자만 1만 2천이다.
왜별기 중에는 포로에서 전향한 자들도 있다. 하지만 왜별기 외에 거제도에 거주하는 왜인 1만 8천은 모두 스스로 넘어온 자들이었다. 그렇기에 포로가 아니라 투항자로 취급받아 땅을 받아 농사를 짓거나, 고기를 잡고 배를 모는 등 자유롭게 생업을 영위하고 있다.
“그대가 고생이 크겠구먼.”
“수령으로서 할 일을 할 뿐이옵니다.”
거제현령 안위는 경상남도 관찰사 이항복을 맞아 거제도 곳곳에 있는 왜인촌을 안내했다. 전 일기도주 종의지가 온갖 눈치를 보며 그 뒤를 따라왔다. 거제도는 경상우수영 관할에 속한 고을이라 관찰사 예하는 아니지만, 그래도 함부로 대할 수는 없는 사람이다.
“신왜는 얼마나 넘어오고 있는가?”
“올해 들어 한 달에 백여 명꼴로 넘어오고 있사옵니다.”
넘어오는 왜인들이 진술하기로, 바다 건너 구주 땅은 작년에 엄청난 흉작을 겪었다고 했다.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준비한 군량도 엄청났던데다, 농사를 지어야 할 장정들이 죄다 군사로 뽑혀나가는 바람에 일손이 없어 더 망했다는 이야기였다.
본래대로라면 각 영지를 책임지는 영주들이 어떻게든 해결해줘야 한다. 하지만 구주, 중국 일대 여러 영지는 상당수가 혼란에 빠져 있다고 했다. 영주를 비롯해 중신들 다수가 조선에서 전사하거나 포로로 잡혀 불귀의 객이 되어버린 탓이다.
물론 미리 권한을 위임받은 친족이나 부하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런 자들은 새 영주로서 권위를 확립하고 반대세력을 억누르는 게 더 급해서 민생을 철저히 보살피는 데까지는 여유가 없었다. 게다가 전쟁으로 무너진 재정을 재건하느라 거둘 수 있는 수입은 모두 긁어모았다.
농사도 망쳤는데 세금은 악착같이 걷어가니 버틸 수 있을 리 있겠는가? 형편이 조금이라도 나은 이웃 영지로 도망치는 이들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개중에는 바다 건너 조선으로 도망칠 생각을 하는 자들도 당연히 있었다.
“넘어온 자들의 8할은 일기도 백성입니다. 아무래도 우리 땅과 가깝고, 명목상으로는 저들 역시 전하의 백성이다 보니 보호를 청하며 넘어오고 있습니다. 구주에서 오는 자들이 또 1할 정도입니다.”
“구주에서 온 배는 1척뿐이라고 알고 있는데?”
“아…그 1척에 타고 온 왜인 52명이 지난 5개월간 넘어온 왜인의 1할입니다.”
뱃길에 익숙한 일기도 왜인들은 갖가지 소선을 타고 몰래몰래 잘도 넘어온다. 하지만 구주 왜인으로 뱃길에 능한 자들은 싸움에 나가 다 죽었거나, 본래 출신이 해적이라 조선에 오기를 꺼린다고 했다. 게다가 역공을 걱정하는 왜군의 방비도 엄중하다. 그래서 탈출자가 적었다.
“하지만 일기도는 해변을 제대로 지키지도 않는다고 했나?”
“그렇습니다, 대감.”
관찰사는 본래 종2품 영감이다. 하지만 이번에 새로 설치된 경상남도와 전라남도 관찰사를 맡은 이항복과 이덕형은 북방 3주 관찰사들처럼 정2품 품계를 유지했다. 아무리 두 사람이 정2품 판서직을 맡다가 내려온 탓이라지만, 과거에 이런 전례는 없었다.
어쩌면 남쪽 변경인 두 도는 북방 3주와 같이 관찰사를 계속 정2품으로 할 수도 있다. 다만 아직은 묘당에서 정식으로 논의되지 않았다. 이항복 역시 그 점은 확실히 알지 못했다.
“신임 일기도주가 일을 아주 잘 해주고 있구먼.”
대부분 일기도 출신인 신왜들이 진술하는 새 도주 원균의 행태는 가관이었다. 자기 저택을 둘러싸는 담장을 높이 쌓고, 전쟁 중 입은 부상을 핑계로 그 안에 틀어박혀 한 발짝도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담장에 뚫린 문으로는 술과 여자가 들어갈 뿐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섬을 다스리던 영주와 고위 신하 상당수가 전쟁에서 돌아오지 못한 처지다. 후임이라고 온 도주는 도정에 무관심하여 해안 경계는 허술하기만 하고, 본토에서 오는 식량 수송선은 수시로 조선 수군에게 습격을 당하니 탈출자가 속출하는 것도 무리도 아니었다.
“이보게 종가. 그대도 원가가 하듯이 평안히 살았으면 참 좋았겠지? 차라리 신장의 위협을 받았을 때 그 말을 듣는 대신 바로 도망쳐 전하께 구원을 청했으면 지금쯤 그리 속 편히 살고 있을 텐데.”
걱정을 빙자해서 비아냥거리는 이런 말을 듣고도 종의지는 한 마디도 답하지 않았다. 종씨 집안에, 자신이 마음속에 떠올린 말을 그대로 입 밖에 낸다는 일은 있을 수가 없었다. 가문의 전통에 따라 종의지는 참기 힘든 모욕을 그대로 참았다.
잠시 눈치를 보던 안위가 설명을 계속했다. 신왜 중 가장 가치가 있는 부류에 대해서였다.
“나머지 1할은 대마도 수비를 맡은 왜병들입니다. 그쪽은 여기 왜별장이 설명하겠습니다.”
대마도에 있는 왜병들의 상태에 대해서는, 조용히 뒤를 따라오던 사마유가 설명을 맡았다. 품계는 사마유가 안위보다 확실히 높았으나, 대구에서도 그랬듯이 그는 조선인 수령보다 위에 서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주변에서 평이 좋았다.
”쓰시마에 주둔한 왜병은 한때 4만 명에 달했으나, 지금은 그 수가 1만으로 감소했습니다. 게다가 규슈에서 식량난이 심각하다는 호소에, 전쟁 중에 쓰시마에 쌓아두었던 군량도 대부분 도로 규슈로 실어갔다고 하옵니다.”
봄이 되어도 조선군은 일본을 공격하지 않았다. 그럼 저들이 반격은 없는 모양이라고 보고 안심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더구나 대마도는 대군이 자급할 수도 없는 척박한 섬이다.
왜인들은 작년 전쟁에서 입은 엄청난 피해로 신음하고 있다. 대마도에 대군을 주둔시키고 군량을 보급할 형편은 도저히 되지 않으리라.
“더 줄어들 걸세. 나중에는 대마도에서 직접 농사를 지어 식량을 충당할 수 있는 수준까지 줄어들겠지. 아마 그때가 복수의 때가 아니겠는가.”
이항복은 적어도 자신이 견서사 임무를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는 임금이 군사를 일으켜 동정(東征)을 시작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경남으로 내려오기 전에 잠시 상감을 알현했을 때도 언질이 있었다.
병조판서 자리는 일단 내려놓았지만, 금위사장으로서는 그날을 위해 준비할 일이 아직 많이 있다. 무엇보다 왜국에 대한 첩보를 많이 입수하여 축적하고, 자신이 자리를 비운 동안에도 금위사가 문제없이 돌아갈 수 있도록 안배해 두어야 했다.
“그럼 이만 포구로 내려가세. 통영에 들러야겠으니.”
한산도에 있던 남도수군통제영은 봄이 오자 통영으로 돌아갔다. 한산도는 어디까지나 전시 중에 임시로 둥지를 틀었던 곳이고, 이래저래 불편한 점이 많았다. 평시에는 통영이 낫다.
이항복은 거의 한 달에 한 번꼴로 이순신을 찾아가고 있었다. 아직도 도순찰사로 있으면서 삼남 지방을 분주히 돌아다니는 장인 권율보다 더 잦았다. 가끔은 세 사람이 다 모여 남도를 지킬 계획을 구상하기도 했다. 무척이나 즐거운 자리였다.
“음, 그러고 보니 거제현령 그대는 무척 많은 공을 세웠는데 여전히 현령이지. 혹시 포상에 불만이 있지는 않은가?”
“직책은 여전하나, 품계는 정4품상 진위장군(振威將軍)을 이미 받았으니 소장이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그저 전하의 크신 은덕에 감사드릴 뿐입니다.”
안위뿐만이 아니다. 다른 장수들도 벼슬은 그대로고 품계만 올라간 경우가 많다. 경험 많은 수군 장수들을 계속 일선에 기용하려는 조치였다. 그 대신 다른 포상으로 은자와 왜인 노비도 분배받았다. 중랑장쯤 되는 고위 장수들은 견서사가 가져온 서양 물품도 받았다.
이런 포상에다 실질적으로는 벼슬이 올랐어도 직책은 그대로이다 보니, 출세를 원하던 무장 중 일부는 이런 조치를 아쉬워하는 자도 있다. 하지만 어쩌랴, 고위직은 한정되어있고 공적이 있는 모든 장수를 수사, 통제사로 임명할 수도 없으니 말이다.
– 8 –
금위사에서 올린 보고를 보니, 나가마스와 차차가 세운 계획이 대충 윤곽이 보인다. 상희가 저번에 내게 들려준 이야기를 바탕으로, 좀 더 상세한 첩보를 가져와 보라고 금위사를 다그친 덕분이다.
차차 주변 시녀들은 여전히 뚫지 못했다. 노부나가가 죽었으니 이제 오다는 망했는데도 왜 차차 같은 주인을 그렇게 충성스럽게 섬기는지는 모르겠지만, 금위사에서 갖은 애를 썼는데도 포섭에 실패했다. 하지만 나가마스의 시종은 그렇게 심기가 굳지 않았다.
이제 나가마스와 차차가 주고받는 밀담은 며칠 안으로 모조리 내 앞에 놓인다. 이에야스의 며느리라, 과연 그 계획이 잘 될까.
차차 개인의 인성과는 별개로, 노부나가가 총애하는 여동생의 딸이라는 건 확실히 그럴듯한 타이틀이긴 하다. 하지만 이쪽 세계에서는 그다지 절대적인 가치는 없다. 왜냐고? 그 이유를 정말 모르겠나?
간단하다. 노부나가의 피를 자기 가문에 섞고 싶다면, 노부나가의 조카 따위가 아니라 딸을 며느리로 들이는 편이 훨씬 확실하다. 노부나가는 열 명이 넘는 딸을 뒀고, 이미 다 결혼하긴 했으나 이에야스쯤 되면 무슨 수를 써서든 그중 하나를 데려가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을 거다.
우리 역사에서 차차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던 건 단지 노부나가의 조카여서가 아니다. 그녀가 히데요시의 후계자인 히데요리를 낳았기 때문에 권세를 쥔 거다. 차차에게 히데요리가 없었다면? 그럼 수십 명이나 되는 나머지 노부나가의 딸이나 조카들과 다를 게 전혀 없었다.
이쪽 세상 차차도 마찬가지다. 아껴주는 외삼촌이 있는 동안은 그나마 기댈 빽이 있었지만, 지금은 과연 어떨까. 그 미모 말고, 뭐 자산가치가 있기는 있을까?
“일단은 내버려 둬라. 산속에 갇혀 있으니 이런 망상이나 하면서 소일하지 않으면 지루함을 어찌 견디겠느냐?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감시나 철저히 하여라.”
차차가 이에야스 며느리가 되겠다는 계획을 세우니 한 가지는 바로 내게 좋은 일이 생겼다. 신랑감을 구해 달라는 독촉을 안 한다. 그전까지는 정말 줄기차게 편지를 보내서 조르더니! 우핫핫핫! 한 가지 스트레스 덜었다.
앞에서 말했듯 이쪽 세상에서는 차차한테 별 가치가 없지만, 뭐 마이너스까지는 아니니까 이에야스한테 보낼 바둑돌로 써보기는 하자. 나가마스를 사자로 해서, 노부나가의 유언장을 보내는 김에 덤으로 쥐여주면 삶아 먹든 볶아먹든 이에야스가 알아서 처리하겠지.
자, 그러면 이제 해결해야 하는 건 이에야스에게 저 숙질(叔姪)을 보내는 방법이다. 쟤들이 처음 조선에 왔을 때처럼 이키, 규슈를 통해 보내는 경로는 고려할 필요도 없다. 히데요시가 보자마자 홀랑 먹어버릴 게 분명하지 않은가?
음, ‘히데요시가 먹는다’고 하니 과연 차차 엄마 오이치는 어떻게 됐을지 궁금하네. 오빠가 죽었으니 나서서 지켜줄 사람도 없을 텐데, 과연 히데요시 품으로 들어갔을까?
그거야 뭐 내가 알 바 아니니 젖혀두고, 안전하게 이에야스 손에 이 두 사람을 쥐여주려면 바다를 통해 우회해서 바로 에도로 가는 길밖에 없다. 갈레온에 태워서 말이다.
일본 연안을 그린 정확한 해도는 없다. 하지만 대략적인 거리는 알고 있고, 관동 쪽 해안선 형태도 부정확하긴 해도 알고 있으니 에도까지 가는 건 어렵지 않다. 우리 선원들이 항해술을 훌륭히 구사할 수 있게 될 만큼 훈련을 더 쌓는다면.
그리고 도착 타이밍도 중요하다. 노부나가의 후계자에 오른 히데요시와 원래는 노부나가의 동맹자인 이에야스 사이에서 대립각이 확연히 드러날 시점이 좋다. 언제일지는 몰라도, 그때 차차라는 선물과 유언장이라는 명분이 전해지면 화재를 일으키기 충분한 스파크가 된다.
적어도 올해는 이에야스도 히데요시에게 반기를 들지는 않을 듯하다. 내가 반격할 가능성에 대비해서 모두 힘을 합쳐야 할 테니까 말이다. ‘복수심에 미쳐 날뛰는 조선왕’이 히데요시 한 놈만 족치고 본국으로 돌아가리라고는 이에야스도 절대 안 믿겠지. 그 조심스러운 인간은.
차차와 유언장을 보내는 건 적어도 내년 이후, 어쩌면 내후년쯤에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일본 쪽 정보를 최대한 입수하면서 시점을 따져 봐야지. 이번에는 재작년 겨울처럼 첩보전에 실패하지 말고, 제대로 좀 해보자.
“그나저나 그 희망찬 꿈만 가지고 차차 그 계집애가 얌전히 지낼지 모르겠다. 조용해지라고 애인이라도 하나 만들어 줄까?”
미남 군관이라도 하나 처소 주변에 배치해서 차차 혹은 여러 시녀 중 하나를 유혹하게 하면 내가 아직 모르는 그 계집애의 비밀을 더 캐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놈이 여자한테 빠져서 역으로 호구가 되는 전개도 각오를 해야겠지만…혹시 금위사가 이미 시도했으려나?
에휴, 괜히 쓸데없는 짓 하다가 위험을 무릅쓰지는 말자. 차차와 나가마스 주변에는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엄중한 감시만 계속 펼쳐 두기로.
– 9 –
“출발이다!”
드디어 90척에 달하는 선단이 다시 돛을 올렸다. 동쪽으로, 센다이로 돌아가는 길이다.
“주군! 기쁘십니까?”
“기쁘다마다.”
질문하는 근습무사나 대답하는 다테 마사무네나, 모두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남쪽에서 온 소식은 이들도 이미 접했다. 전쟁은 다 끝났으니까 다테군도 당당하게 귀환할 수 있다. 적잖은 병력을 잃고 가는 길이니 별로 부끄러울 것도 없다.
“숨겨두었던 병기는 모두 가져와 배에 실었습니다. 남겨두고 가는 인원 500명을 위해서는 갑옷 100벌, 조총 40정, 칼 1천 자루만 남겨두었습니다.”
“그만하면 충분하다.”
정효신의 말이 옳다. 무장병력은 산짐승을 쫓기 위해서 소수만 있어도 된다. 만약 조선군이 작심하고 잔류병력을 공격한다면, 중무장한 대군을 남겨두더라도 아무 의미가 없을 거다.
그보다는 분명히 일어났을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본국으로 돌아가는 병력이 총 한 자루라도 더 쥐고 돌아가야 했다. 그놈의 반란 진압 때문에 조선 국왕에게 특별히 청을 해서 북방 출신 기병 1천 기를 달라고 한 게 아니었는가.
“그자들은 얌전히 배를 타고 있겠지?”
“아직은 소요를 일으켰다는 보고는 없었습니다.”
“바다를 건너는 동안은 녀석들이 몽땅 뱃멀미를 일으켜서 뻗어 있어 줬으면 좋겠군.”
기병 1천 기를 달라는 청을 받은 조선 국왕은 인심 좋게도 2천 기를 내주었다. 조선군에게 넘겨받을 때까지만 해도 잔뜩 풀이 죽어 늘어져 있던 북방인들은 자기들이 어디로 보내지는지 알자마자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정말 난폭했다.
놈들을 제대로 통제하는 일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처음 넘겨받은 인원 중 절반 가까이가 도망치고 말았다. 그래서 남은 전력이 1천 기, 딱 애초에 요청한 만큼 남았다.
“남은 놈들이 날뛰지 못하려면 멀미가 심해야 하니, 배가 적당히 흔들리기를 빌어야겠다.”
“5월이라, 딱히 바다가 거칠어질 시기는 아니라 유감입니다.”
지금쯤 센다이에서는 모내기를 한참 진행하고 있지 않을까. 다테는 어립선 갑판 위에 팔을 벌리고 서서 햇볕을 만끽했다. 키보다 높이 쌓인 눈 밑에 굴을 파고 건물 사이를 오가야 했던 겨울이 마치 꿈같이 느껴졌다.
“이곳 연해주야말로 추운 곳이었다. 내, 다시는 센다이의 추위를 자랑하지 않으리라.”
온돌이 없었다면 절대로 버티지 못했으리라. 자기 인생에서 가장 추운 겨울이었던 지난 몇 달을 생각하며 다테가 온몸을 떨었다. 온돌공을 초빙한다는 핑계로 도공을 빼돌리려던 시도는 실패했지만, 자기 부하들이 구들 놓는 법을 배운 것만 해도 충분한 소득이었다.
다시는 연해주에서 겨울을 보내고 싶지 않다. 하지만 영지를 유지하려면 누군가는 현지에서 머무르면서 관리해야 한다. 부실한 관리는 반란과 이탈을 초래한다.
“믿을 수 있는 놈을 보내둬야겠는데, 누가 좋으려나.”
어쨌거나 다테의 본거지는 센다이였다. 연해주의 새 영지는 덤으로 얻은 땅일 뿐이다. 조선 물산을 들여오면서 센다이에서 수확한 쌀과 에조치에서 얻은 모피, 생선을 가져다 파는 시장 역할도 해줄 곳이다.
농사는 어렵다. 한 해를 지내보니, 추위에 강한 센다이 벼도 재배가 어려운 땅이었다. 이곳 농장에서는 콩과 조, 메밀을 심고 조선인들에게 얻은 담저나 심게 하자. 여기서 식량으로 쓸 물량 말고 일본으로 가져와 팔 만한 건 담저로 빚은 술 정도가 아닐까.
지금 어립선 선창에 가득 든 도자기와 비단을 생각하면, 새 영지가 앞으로 자신의 주머니를 얼마나 불려줄지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앞으로도 조선과 절대적으로 가깝게 지내야 하리라.
이 선단에는 외숙부 모가미 요시아키와 담판을 지을 조선 협상단도 타고 있다. 요시아키가 잡아놓고 있을 작년도 조선 교역선들을 구해내는 일에 협력하여 얼마나 성과를 내는가, 바로 그 일이야말로 다테가 앞으로 조선과 어떤 관계를 수립하게 될지 그 시금석이 될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