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590
2부 368화
– 16 –
“전하, 소신을 조정으로 다시 불러주신 은혜는 뼈에 새겨 대대로 전할 것이옵니다. 다만 한 가지 청할 것이 있사옵니다.”
“뭐냐?”
“신은 본래 무관이 아니라 문관이오니 부디 지금의 직책을 그만두도록 허락해 주시옵소서.”
“안 된다. 내가 살펴서 적절하다 보고 너를 그 자리에 앉히도록 이조에 명하였으니, 지금 임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도록 하라.”
정여립은 이번 전쟁에서 감군으로 세운 공을 인정받아 서울로 올라왔다. 옛날에 지은 죄는 이로써 다 용서받은 셈이다. 역모죄로 유배당한 이후로 북변을 참 오래 맴돌기는 했다. 전쟁 터질 때마다 나가면서 공도 많이 세웠고. 그쯤 싸웠으면 이제 포상을 내려야지.
이번에 내가 정여립에게 준 자리는 도감군 예하 기병대대장이다. 이번에 새로 손본 편제에 따르면 휘하에 오도리 기병 300기를 거느리게 된다. 이번 왜란에서 정여립이 울라 기병 2천 기를 사실상 직접 지휘했음을 생각하면, 성에 안 찰 수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 병사들은 어디까지나 부잔타이가 가진 전력이었고, 정여립의 지위는 감군이었다. 게다가 대역죄인으로 유배를 당했다가 다시 시작하는 처지이니 낮은 지위라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서운하겠다 싶어 위로차 따로 불렀더니 건방지게 이런 소리를 해?
정여립이 진짜 희망하는 자리가 어디인지는 사실 나도 안다. 정여립은 금위사에 복귀하기를 원한다. 이항복이 수집해 놓은 사찰자료에는 당연히 정여립의 파일도 있었고, 정여립이 북방 및 남방을 오가며 보였던 언행이 샅샅이 적혀 있었다.
이제까지 보인 경험과 능력으로만 보면 정여립만큼 금위사를 잘 움직일 놈도 없다. 하지만 정여립에게는 자기가 품은 사적인 원한 때문에 죄 없는 이를 역적으로 몰아 고생시킨 전과가 있다. 우찬성 윤두수부터가 바로 그 피해자가 아니었는가?
그동안 정여립이 전장에서 세운 공이 워낙 많다 보니 윤두수를 비롯해 그때 역모 사건에서 피해를 봤던 이들도 정여립이 다시 출사하는 일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여립을 보는 두 눈에는 시퍼런 불길이 아직 살아있다.
물론 정여립이야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겠지만, 불신을 씻기는 어렵다. 만약에 내가 정여립을 믿고 금위사에 다시 들어갈 기회를 준다고 해도, 옛 피해자들은 절대로 정여립을 믿지 않을 거다. 내가 피해자라도 그럴 텐데,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 없다.
“경관(京官)직을 원하지 않는다면 내 기꺼이 너에게 외관(外官)직을 내리겠노라. 속말주에서 강을 건너오는 도적들을 다시 상대해 보고 싶으냐?”
“아, 아니옵니다. 신이 하해와 같은 성은을 잠시 잊고 망발을 했사오니, 부디 용서하소서.”
공연히 욕심을 부리다가 다시 북방으로 가기는 싫었는지, 정여립이 납작 엎드렸다. 네놈이 옛날에 범한 잘못을 아직 다 뉘우치지 못한 거냐고 일갈하고 싶었지만, 정여립이 그동안 구른 걸 생각하면 나름 죗값은 치른 셈이기에 더 야단을 치지는 않았다.
“오늘 일은 눈감아줄 테니 물러가서 최선을 다하라. 내, 그대의 태도를 계속 살필 것이다.”
얼굴이 파랗게 질린 정여립은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허겁지겁 물러갔다. 잠시 혀를 차며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함께 입시하고 있던 영의정 유성룡과 도승지 김홍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정여립이 공은 세웠다 하나, 아직 죄를 뉘우침이 부족한 듯하다. 차라리 조용히 직무에만 충실했다면 언젠가 금위사로 복직시켰을지도 모르는 것을.”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유성룡이 고개를 숙이며 찬의를 표했다. 으음,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이 이항복이었으면 뭔가 더 생동감 있는 반응을 보였을 텐데.
이항복과 이덕형이 견서사로 떠나면서 옆에서 깐죽거리던 이와 그놈한테 제동을 거는 이가 동시에 사라졌다. 주변이 싹 허전해져 버렸다.
출발 전에 경력 관리를 하느라 관찰사로 몇 달 자리 비웠을 때도 보고 싶긴 했었다. 그래도 그때는 마음만 먹으면 가끔 불러올릴 수도 있었는데, 이제는 적어도 3년은 볼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그저 얼굴에 철판 깔고 농지거리하는 사람이 필요한 건 아니다. 그런 거야 내관들하고 해도 된다. 내관이야말로 아무 권력도 없으니 같이 놀기에는 최적의 상대다. 왜 역사에서 군주들이 내관한테 그렇게 의존하고 힘을 주고 했는지, 내가 왕이 되어보니 알겠더라.
다만 내시들과의 관계는 언제나 내가 절대갑이다. 연산군 시절 내 총에 맞아 죽었던 김처선 같은 괴짜가 아니고서야 내 앞에서 설설 기는 이들이 태반이고 보니, 어느 정도 동등한 친구 같은 관계는 애초에 성립이 안 된다. 그래서 이항복의 부재가 더 아쉽다.
영의정 유성룡은 유능하기로는 이항복을 능가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친구처럼 지낼 상대로는 실격이다. 태생적으로 너무도 진중한 성격이자 임금을 하늘같이 여기는 사람이라, 이항복처럼 격의 없는 대화는 불가능했다.
도승지 김홍석은 내 기억에 없는,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원래 역사에는 없었던 사람이다. 살면서 보니 이쪽 역사에서 새롭게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도 적잖게 눈에 띈다. 역사가 달라진 나비효과가 슬슬 나타난다고 보면 맞을 듯하다.
아직은 본래 역사에서 이름을 떨친, 내 나름대로는 ‘능력이 검증된’ 이들을 주로 고위직으로 앉히고 있다만 중간 이하 직급에서는 이쪽 세상 인물도 많이 쓰고 있다. ‘이쪽 세상 사람’이라 하니 어째 어감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새 금위사장도 그런 사람이다.
“전하께서 새로이 임명하신 금위사장이 아직 젊은 것을 알고 정여립이 욕심을 부린 듯하니, 그가 젊으면서도 유능하고 공평무사한 인재임을 공표하시어 정여립이 미련을 끊게 하소서.”
“옳은 말이다.”
정보기관은 철저하게 집권자의 뜻에 따라서 움직이는 도구로 남아야 한다. 도구가 스스로 의지를 갖추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하면 누구도 통제하지 못한다. 금위사를 존 에드거 후버 시절의 FBI처럼 만들 수는 없지 않나?
초대 FBI 국장 존 에드거 후버는 고위 인사들의 모든 비밀을 쥐고 50년 가까이 FBI를 자기 왕국으로 만들었다. 후버를 해임하려던 정치인들은 자기들의 치부가 폭로될까 봐 죄다 시도를 포기했고, 끝내 후버가 자연사할 때까지 FBI는 후버의 손에 남았다.
물론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 정치인들과 나는 상황이 다르다. 금위사가 내 눈을 가리고 자기 멋대로 놀아날 기미가 보이면 곧바로 모가지를 날릴 수 있다. 문제는 내 눈과 귀가 가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알 수 있느냐 하는 거지. 그래서 금위사장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이항복이 추천한 신임 금위사장 박희성은 무종 때 포도청과 금위사를 오가며 활약한 베테랑 수사관, 박헌의 증손자라고 했다. 박헌은 중인 신분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증손자가 금위사 중진으로 출세하다니, 확실히 이쪽 세계는 신분 변동성이 원래 조선보다 강해진 모양이다.
정여립과 이항복 밑에서 모두 근무하면서 업무를 익힌 만큼, 실무를 처리하는 데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력파였다. 내게 모든 진실을 보고한다는 오직 한 가지 원칙만 준수하면서 앞으로도 내게 충성을 다하기만 바랄 뿐이다.
– 17 –
교황 특사 일행이 마카오로 떠나고, 대만으로 가는 이민선단도 떠나고, 추수철이 다가왔다. 전국적으로 풍년이 들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마음이 훨씬 편안했다. 유감스럽게도 고작 한 해 든 풍년으로 텅 빈 창고를 채울 수는 없지만, 그래도 풍년이 흉년보다는 낫지 않은가.
“신 호조판서 윤찬영 아뢰오. 전란 중에 소모한 창고를 다시 채우려면 올해까지는 대국에서 쌀을 들여와야 할 듯하옵니다.”
“비축이 그토록 적은가?”
“작년 전란이 터지기 전에는 전국에 600만 석의 비축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란 중에 불타 버리거나 왜적에게 빼앗긴 것, 혼란을 틈탄 도적들이 훔쳐낸 곡식이 근 100만 석은 되옵고, 그 뒤에 군량과 구휼곡으로 사용하여 지금은 비축이 약 150만 석에 불과하옵니다.”
150만 석이 비축분으로 남은 것도 그동안 명나라에서 들어온 곡식 중 일부를 백성들에게 바로 풀지 않고 쌓아둔 덕이다. 하지만 이건 정말 풀 수 없는 쌀이라, 안 그래도 값이 낮은 저화가 더 싸졌다. 그나마 일부 세금을 저화로 받으니 완전히 휴짓조각 취급은 안 받고 있다.
“현재 파악한 작황은 좋은 편입니다. 올해 수확만으로 내년 추수까지 버티는 정도는 충분히 가능합니다. 하지만 영호남의 농사가 완전히 복구되지 않았고, 조세도 감해 주기로 한 만큼 곡식을 새로이 비축하기는 어렵습니다. 100만 석 정도는 사들여 비축함이 좋을 듯합니다.”
호조판서가 화두를 열자 신하들이 저마다 의견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제 만력제가 준 돈도 전부 써버려서 지금부터는 정말 우리 돈만 가지고 식량을 사들여야 하다 보니, 다들 나름대로 의견이 분분했다.
“흉년으로 백성들이 굶주린다면 모르겠사오나, 풍년도 들었는데 굳이 귀한 재정을 소비하여 무리하게 곡식을 들여올 필요는 없다고 사료되옵니다. 비축할 수 있는 곡식이 적다고는 하나, 최대한 국용(國用)을 줄이고 아껴 비축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신도 그리 생각하옵니다. 올해 들여온 곡식은 천자께서 은자를 내려주신 덕분으로 사들일 수 있었는데, 내년 곡식을 사들일 은자를 얻으려면 백성들을 들볶아 인삼을 마련하고 면포를 짜야 하옵니다. 올해가 흉년도 아닌데 그럴 필요가 있겠사옵니까?”
물론 반대 의견, 곡식을 수입하는 게 옳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늘의 뜻은 닥치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는바, 내년에도 올해처럼 풍년이 들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지금 곡식을 사들여 비축해 놓지 않았다가 갑자기 흉년이 닥치면 그 혼란을 어떻게 수습하겠습니까? 지금 돈을 쓰느니만 못합니다.”
“미리 비축하지 않고 있다가 내년 농사가 어려워지면 운을 손에 쥐고도 곡식을 살 수 없는 처지가 될 것입니다. 장차 왜국 원정도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군량도 넉넉히 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양측이 나름대로 논리를 내세웠다. 물론 나는 후자 쪽으로 기울었지만, 만약을 대비해서 한 번 더 의견을 구했다. 다른 신하들이 치열하게 논쟁을 벌이는 동안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는 영의정 유성룡을 향해서였다.
“영상은 이 문제를 어찌 생각하는가?”
이런 문제에서 영의정이 의견을 내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다. 유성룡이 차분히 답했다.
“국용을 아무리 아낀다고 하더라도, 지금 조정에서 아낄 수 있는 비용은 한계가 있습니다. 영호남 4도에서 걷는 조세가 없으면 비축할 수 있는 식량은 10만 석도 안 될 것입니다. 신이 생각하기에도 곡식 100만 석 정도는 사들여 비축할 필요가 있다고 사료되옵니다.”
“100만 석이라.”
그 정도라면 만력제의 내탕금이 없어도 살 수 있다. 인삼 팔고, 비누랑 소금이랑 진주 팔면 된다. 인삼은 누르하치에게서 올 물량도 있으니까. 조정에서 공개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인삼은 누르하치로서도 명나라에 팔아야 하는 중요한 교역품이다. 하지만 내가 명나라에서 절대 팔지 않는 물건을 넘겨주기로 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조총 한 자루와 여기에 딸린 탄환, 화약까지 한 세트를 인삼 1근에 넘기기로 합의를 보았다.
본래 약조한 바에 따르면 조총과 탄약은 가축과 육포에 대한 대가였다. 그런데 수만 명이나 되는 울라 여자와 아이들을 누르하치 놈이 먹어버리지 않았는가? 반란을 진압해준 보수라고 치더라도 놈이 좀 지나치게 먹긴 했다. 충분히 재협상을 요구할 만하지 않은가?
어차피 볼모로 오기로 한 다이샨이 오지 않으면서 조총 인도도 멈춘 참이었다. 몇 달 동안 사자가 오간 끝에 겨우 합의를 다시 봤고, 조총 600자루가 넘어갔다. 건주위에서도 약속대로 인삼 600근을 보냈고, 이는 공식적으로는 내수사가 채취한 물량으로 출처가 세탁됐다.
“영상의 말이 옳다. 외수사에 영을 내려 내년 춘궁기가 오기 전에 양곡 100만 석을 사들여 본국으로 보내도록 하여라. 저쪽에서도 추수한 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곡가가 오를 테니, 그전에 사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아, 한 가지 주의사항을 빠트렸다. 잊어버리기 전에 얼른 지시해야지.
“다만 매입할 쌀 중에서 안남미는 30만 석을 넘지 않도록 하라. 아무리 권해도 백성들이 영 즐기지를 않으니, 되도록 덜 들여오는 편이 낫겠다.”
안남미가 볶음밥으로 하면 맛있다지만, 조선에서는 볶음밥을 먹는 일이 흔하지 않다. 일단 식용유가 필요하고, 이미 익은 밥을 또 요리하자면 연료가 2중으로 들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해주에서 밥을 돼지기름에 볶고 부재료와 비벼 먹는다는 게 내가 들은 유일한 ‘볶음밥’이다.
쌀국수는 맛은 괜찮다는 평을 들었다. 하지만 쌀을 가루로 내서 물에 풀고, 그 쌀물을 한번 걸러서 햇볕에 며칠을 말려야 하는 복잡한 제법 탓에 별 인기가 없었다. 안남미로 제대로 밥 짓는 법을 알면 먹을만한 밥이 나온다지만, 그걸 전파하기도 쉽지 않다.
그 결과, 백성들이 가장 애용하는 안남미 조리법은 죽 끓이기가 되고 말았다. 끓이면 바로 풀어져서 땔감을 조금만 써도 되니 좋다나? 그 외에는 술 빚는 데 쓰고 있다.
어쩌면 앞으로 3년이나 4년 정도 계속 쌀을 들여와야 할지도 모르겠다. 대만에서 본국으로 쌀을 실어 올 만큼 상황이 안정되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할 테니까. 대만은 적어도 한 세대는 돈을 잡아먹기만 하고 내놓지는 못하는 땅이 될 각오를 해야겠지.
– 18 –
겨울이 초입에 접어들기 전에 상희는 딸을 낳았다. 오랜만에 얻은 후사가 태어나자 궁궐은 떠들썩했고, 중궁전을 비롯한 여러 비빈들이 보낸 선물이 잔뜩 쌓였다.
“고생했어. 엄마 닮아 예쁘네.”
“나만 닮았나.”
상희는 내 칭찬을 듣고는 웃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어딘가 쓸쓸했다. 아마 ‘엄마’라는 단어 때문이었으리라. 후궁의 자식은 법도상 중전의 자식이니까. 괜히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
“지난번 잔치 때 너랑 중전도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아직은 내외가 엄격하니, 그럴 엄두를 못 내겠더라고. 우리 다음 생 정도면 궁궐에서 부부동반 파티 같은 거 열 수 있을까?”
“어느 나라, 어느 시대냐에 따라 다르겠지 뭐.”
웃을 수 있는 이야기로 상희 기분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고 싶었다. 좌우를 물리고 소곤소곤 얘기를 나누는데, 상희가 이제 충분하다는 듯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괜찮으니까 그만 가봐. 일 많잖아. 일해야지.”
“응…알았어. 이따가 밤에 올게.”
사실 일이 많기는 좀 많았다. 아쉬운 마음에 고생한 상희의 손을 한번 꼭 잡아주고, 이마에 입을 한번 맞춘 뒤 편전으로 돌아왔다.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13도 3주에서 보내는 서류는 정말 산과 같다. 쌓인 서류를 연달아 처리하다 보니 평안북도 관찰사가 보낸 장계가 눈에 들어왔다.
“도승지, 평북감사가 뭐라 하였느냐?”
“노을가적의 차자(次子), 대선이 수하 기병 2백 기와 함께 입경했다 하옵니다.”
“오, 드디어 왔는가!”
노을가적(老乙加赤)은 누르하치, 대선(代善)은 다이샨의 한자 표기다. 처음 볼모를 제안한 지 근 1년 가까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조선에 온 것이다.
“대국 요동부에서 혹시라도 의심하지 못하게 한다며, 이번에 우리에게 넘기는 농우를 모는 소몰이꾼으로 변장하여 들어왔다 합니다.”
“핑계가 좋구나.”
하려고만 하면 얼마든지 요동부의 감시를 피해 밀입국할 수 있는데. 이성량 일가가 요동을 꽉 잡고 있다고 하지만, 압록강과 송화강의 수천 리 경계선을 모조리 감시할 수는 없다. 그게 되면 우리가 보낸 조총부터 벌써 걸렸을 거다.
날짜를 보니 사흘 전에 의주에 들어왔다고 한다. 국경을 넘어서도 굳이 소떼와 같이 움직일 필요는 없으니, 그대로 오면 한 이틀 안에는 도성에 도착하겠구나. 어디, 장래의 우리 사윗감 인물이 어떤지 기다려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