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592
2부 37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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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마지막 배가 북으로 떠났다. 웬만하면 여기 계속 머물러 주었으면 싶었지만, 아직은 본국에서도 여기에 배를 놓아둘 여유가 없다. 몇 척 안 되는 귀한 양선이다.
“그래서 대장장이와 배목수를 넉넉히 데려오지 않았느냐? 이곳에도 나무는 많이 있으니, 잘 베어 말려서 우리가 배를 직접 만들면 된다.”
정일한은 애써 백성들을 독려했다. 물론 북쪽 수평선을 바라보는 남녀가 단순히 타고 다닐 수단으로서 배를 원하는 게 아니라는 점은 그도 알고 있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여차하면 그 위로 피할 수 있는 피난처, 본국으로 갈 수단이 있다는 상징으로서의 배였다.
“자, 떠나는 배만 바라보면 무엇을 하느냐? 어서 일터로 돌아가라!”
바닷가에서 떠나는 백성들을 바라보던 정일한이 말 위에서 한숨을 쉬었다. 지난 한 달 동안 겪은 온갖 고생이 마치 꿈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견서사 일행이 탄 배와 헤어진 뒤, 사민할 백성들이 탄 선단은 대남도 북쪽 해안을 목표로 삼고 접근했다. 명나라 방향인 섬 서쪽 해안을 따라서 남쪽으로 움직였더니 큰 강이 나왔고, 강가에 펼쳐진 평야가 보였다. 적당한 언덕도 있었다.
“저기에 성을 쌓고 거점을 마련함이 좋겠다.”
큰 강은 농사지을 물과 더불어 교통수단을 제공해준다. 물고기를 잡아 식량을 보충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강 바로 옆에 마을을 만든다면 질병이나 사고, 홍수 때문에 피해를 볼 수 있다. 여기에 방어도 염두에 두자면, 마을은 적당히 높이가 있는 구릉을 찾아 만드는 편이 좋다.
하구에 배를 정박시키고 돛대 꼭대기로 올라가 천리경으로 주변을 살폈다. 과연 강가와 산 아래 구릉지 등 여러 곳에 이미 토인(土人)들의 마을이 보였다.
북변에서의 경험으로, 정일한은 저들에게 대뜸 싸움부터 거는 건 현명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판단했다. 지형도 잘 알지 못하는 데다 토인들의 말도 모른다. 인원수도 이쪽이 적고, 적어도 내년 봄까지는 보충할 수도 없다. 한명 한명이 소중했다.
일단 날이 밝으면 척후를 내보내서 주변을 살펴 정확한 지형을 살피기로 하고, 배 위에서 밤을 보냈는데 그날 밤에 바로 습격이 있었다. 쪽배 수십 척이 어둠 속에서 모여들더니, 그 위에 타고 있던 토인들이 갑판으로 기어오르려고 했다.
파수를 보던 정일한의 둘째 아들 정준석이 수상한 그림자를 발견하고 놀라서 고함을 지르지 않았다면, 적은 갑판을 점령하고 배에 불을 질러 모두 태워버렸을지도 모른다. 자칫하면 사람 3천 명과 배 7척을 통째로 잃을 뻔했다. 다행히 이날 밤에 입은 피해는 보초 4명뿐이었다.
다음날 해가 뜨자마자 정일한은 함대에 강을 거슬러 올라가라는 명령을 내렸다. 적이 배를 타고 습격해온 이상 대부분은 강가 마을에 거주하는 토인일 게 분명했고, 선제공격을 받고도 가만히 있으면 바보 취급을 받을 뿐이다. 이쪽이 받은 것 이상으로 갚아주지 않을 수 없었다.
“쏘아라!”
모두 찾아 죽일 필요까진 없다. 포격으로 마을과 배를 부수고 남은 것들을 불태우기만 해도 충분하다. 그 정도 공격만으로도 토인들은 겁을 크게 먹고 도망칠 것이고, 적어도 당분간은 이쪽에 손을 댈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
배 7척이 수십 발이나 대포를 퍼부었지만, 강변에 산재한 마을에서 움직이는 사람은 하나도 눈에 띄지 않았다. 자기들이 한 짓이 있으니, 이쪽에서 보복에 나서리라고 예상을 하고 미리 피난한 모양이었다.
“어사또, 아예 저기 육지 안쪽에 있는 놈들도 정벌하시지요?”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다.”
정일한의 말대로였다. 강변에 있는 마을 6개가 풍비박산 나는 모습을 본 상륙지 인근 토인 전부가 모습을 감추었다. 덕분에 대남도에 이주해온 조선인들은 마을을 만들 자리를 마음대로 고를 수 있었다.
“원래 야인들은 강한 무리가 나타나면 물러나서 눈치를 살핀다. 지금은 우리가 강한 화포를 가지고 있음을 보았으니 쉽게 덤비지 않을 것이다. 이 틈에 항구를 방비할 성채를 축조하고 훗날을 대비한다.”
토인들과 아예 싸우지 않으려면 아무도 안 사는 땅에다 자리를 잡으면 되지만, 그런 곳에는 사람이 살 수 있는 조건이 부족하니 사람이 안 살기 마련이다. 게다가 본국과 연락을 하려면 항구가 꼭 필요하다. 적당히 빈터를 찾아 봇짐을 풀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
처음 배에서 지형을 살필 때만 해도, 정일한은 가능하면 토인들과 교섭해서 땅을 양도받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하는 편이 훗날 평화를 유지하기에도 훨씬 좋기 때문이다. 일단 무력으로 관계를 시작하면 계속 서로가 더 많은 힘을 기울여 싸우게 될 공산이 크다.
하지만 먼저 공격을 받고도 대응하지 않으면 완전히 먹잇감이 될 뿐이니 어쩔 수 없다. 첫 포성이 이미 울린 이상, 최대한 빨리 거점을 확보하고 토인들에게 우위를 보임으로써 저들이 조선인들을 인정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항구를 만들기 좋은 하구 북쪽 언덕 위에 성을 쌓았다. 토인 마을이 있었지만 이미 주민이 모두 도망친 뒤였으므로 토인들이 지어놓은 건물은 전부 허물어 재목으로 사용했다. 조선에서 가져온 재목은 꼭 필요한 건물을 짓기에도 수량이 빠듯해서 어쩔 수가 없었다.
다른 자재가 없으므로 성벽은 토성으로 만들어야 했다. 2천 명이 머무를 수 있는 면적으로 만들려니 힘들었지만, 다행히 토인들에게 화포가 없으므로 성벽이 아주 높고 견고할 필요는 없었다. 다만 해자는 적군이 사다리를 걸치기 어려울 만큼 충분한 넓이로 팠다.
정방형 성벽의 네 면에 각각 문을 만들고, 네 모퉁이에는 큼지막한 토루를 만들어서 가져온 화포를 얹었다. 이로써 대남도에 조선이 세운 첫 성이 완성되었다. 정일한은 이 성을 진남성(進南城)이라고 명명했다.
정일한이 데려온 백성 2천 명이 성을 쌓는 동안, 이들을 호송하던 수군 군사 500명은 성 쌓는 현장 주변을 지켰다. 모습을 감춘 토인들이 언제 습격해올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토인들은 이미 조선인들에게 적대적이었다. 성채 주변 지형을 살피러 나갔던 조사대는 수를 알 수 없는 복병의 공격으로 30명 중 절반을 잃었다. 겨우 도망쳐온 자들의 보고를 받고 급히 달려간 구원대는 목 없는 시체들만 발견했을 뿐이다.
살아서 돌아온 자들도 몇몇은 화살에 맞은 상처가 썩어들어가 끔찍한 죽음을 맞았다. 함께 데려온 의관들도 처음 보는 독이라면서 해독할 수 없다고 할 정도였다.
보고를 받은 정일한은 격노했다. 하지만 이곳은 그에게 익숙한 부여주가 아니었고, 당장 할 수 있는 대책도 지금 단계에서는 없었다. 적이 어디 있는지, 무슨 무기를 주로 사용하는지도 제대로 모르는 상황이다. 몇 차례 군사를 끌고 나가서 적을 찾았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부하 관리들과 의논한 후에 내린 결론은 사실상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성채에서 10리 밖으로는 절대 나가지 않도록 하고, 사기가 오른 토인들이 혹시 공격해와도 막아낼 수 있도록 성벽을 얼른 완성하는 것이다. 수군에서는 축성은 돕지 못해도 경계는 대신 맡아주었다.
수군이 축성을 돕지 못한 건 대남도 주변을 돌면서 해안선의 지도를 그려야 했기 때문이다. 추후 안전한 항해를 위해서는 이 지도가 꼭 필요했고, 만약의 경우 발생할지 모르는 사고를 생각하면 적어도 2척은 함께 움직여야 했다. 나머지 배에도 최소한의 인원을 남겨놔야 했다.
나머지 5척은 성채가 완성될 때까지 항구에 배를 댄 채 기다렸다. 만약 토인들이 또 공격을 가해 온다면 싣고 있는 화포로 막아내고, 육지에 오른 백성들을 배로 피난시키기 위해서였다. 성이 완성될 때까지 싣고 온 물자를 안전하게 보관하는 임무 역시 이들의 몫이었다.
공사는 수군의 엄호 밑에서 한 달을 조금 넘게 계속됐다. 사흘 전에는 지도를 그리러 갔던 탐사선 2척도 별다른 탈 없이 무사히 돌아왔다. 토인들이 탄 조각배와 몇 번인가 마주쳤지만, 충돌은 의도적으로 피했다고 했다.
탐사선이 돌아온 건 마침 축성이 거의 끝날 때쯤이었다. 하루 뒤에 포루에 포를 설치하자 모든 작업이 마침내 끝을 맺었다.
이제 성이 완성되었으니 수군은 사민된 백성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모두 마친 것이다. 배에 남은 짐을 모두 내려놓고 그만 본국으로 돌아가는 게 당연했다. 어젯밤에는 수군과 백성들이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어울려서 거하게 송별연을 벌였고, 이제 배들이 떠나는 참이었다.
“중선 한 척 정도라도 남았으면 참 좋겠습니다만….”
정일한의 둘째 아들 정준석(鄭俊碩)은 멀어지는 선단을 보며 아쉬운 듯 눈을 떼지 못했다. 장남인 정준현(鄭俊賢)은 문관이지만 이번 전쟁에 고을 군사들을 거느리고 참전했다가 적탄에 전사했고, 정준석은 오위에 속해있으면서 무과를 준비하다가 그대로 전장에 나갔다.
정준석은 하남벌 싸움에도 참전했다. 그는 부마 사노부가 결사적으로 싸워 길을 연 덕분에 탈출한 군사 중 하나였고, 하남벌에서 도망친 뒤에는 곽재우 휘하의 의령 속오군에 들어가서 계속 싸웠다. 그렇게 싸운 공으로 지난 6월에는 정6품상 돈용교위(敦勇校尉)를 제수받았다.
그대로 도성에 머물러 있어도 뭔가 관직을 받았을 것은 틀림없었다. 하지만 나이든 부친이 북변에서 이제 또 바다 건너 남방으로 간다는 사실을 알고 부친을 따라 내려가겠다고 청했다. 그러자 임금은 기특하다며 정준석에게 다시 정5품상 과의교위(果毅校尉)를 주었다.
다만 임금은 정준석에게 구체적인 벼슬을 주지는 않았다. 대신 어사인 정일한에게 현지에서 적절한 직책을 만들어서 사람을 임명해도 좋다고 허락했다.
“하지만 본국에도 배가 필요하니 어쩔 수가 없다. 그리고 내가 이미 말하지 않았느냐? 배는 여기서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바다를 건널 만한 큰 배는 만들 수 없으리라. 하지만 지금 있는 인력만으로도 진남성 항구 앞바다에서 고기를 잡거나 진남강 ? 진남성 앞을 흐르는 강도 진남강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 상류를 탐사하는 데 쓸 정도의 배는 충분히 만들 수 있다. 그만하면 충분하다.
“그보다 앞으로의 일이 걱정이구나. 토인들은 그동안은 우리 대선(大船)이 뒤에서 진을 치고 있으니 겁을 먹고 우리를 치지 않았을 것인데, 이제 배가 없으니 언제 공격해 올지 모른다.”
“역시 배가 있는 동안 토인부락을 찾아내서 모조리 토벌하든가, 아니면 교섭이라도 벌여서 놈들이 습격을 그만두도록 조치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젊고, 야인을 대해본 경험이 없는 정준석은 불만을 드러냈다. 그 주장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아는 정일한이 고개를 저었다.
“배가 있는 동안에 너도 나와 함께 토인들을 찾으러 나가지 않았느냐? 토인들이 모두 숲과 산에 숨어들어 하나도 찾지 못했음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저들을 찾았다 한들 말이 통하지 않으니 협상도 어려웠을 거다.”
협상도 말이 통할 때 이야기다. 처음부터 싸우지 않았다면 말이 안 통하는 상대와도 어떻게 해서든 교섭을 시도할 수 있지만, 이미 싸움이 시작된 이상은 교섭이 성립되지 않는다. 적을 찾아내서 완전히 박살을 내고 무릎을 꿇릴 때까지는.
제대로 나라를 만들지 못한 야인들은 대개 각 부락마다 우두머리가 있고 각자가 개별적으로 행동 방침을 결정한다. 어느 한 부락과 교섭을 타결한다고 해도, 그 협정이 주변에 있는 모든 부족에게 적용되지는 않는다. 몇 개인지도 모르는 부락과 다 따로 접촉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미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다. 앞으로 해결할 일이 잔뜩 있으니 그쪽에나 신경 쓰거라.”
주상께서는 대남도에 가면 모기를 주의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셨다. 주거지 인근에서 고인 물을 없애고, 잠을 잘 때는 꼭 모기장을 치고, 모깃불을 피워 모기를 쫓아야 한다고 말이다. 미꾸라지를 물에 풀면 모기 새끼인 장구벌레를 잡아먹으니 좋다고도 하셨다.
“준비해온 모기장을 각 호(戶)에 나눠주어 잘 때 칠 수 있도록 하고, 성벽 안에는 웅덩이가 생기지 않도록 잘 관리하라. 우물에는 모기뿐 아니라 다른 더러운 것들이 들어가지 않도록 잘 덮어두어야 한다. 성 바깥에 있는 연못에는 미꾸라지를 풀어라.”
조선에서 독에 담아 가져온 미꾸라지 중 반은 항해를 견디지 못하고 도중에 죽었다. 하지만 이곳 대남도에도 미꾸라지는 있었다. 부족하면 그놈들을 잡아다 더 풀면 된다.
우물은 유일한 식수원이기 때문에라도 잘 관리해야 했다. 식수는 새로 판 우물에서만 긷게 했다. 강물은 물론이고 토인들이 파서 쓰던 우물도 절대로 쓰지 말라는 명령이 나가 있었다. 저들이 마을을 버리고 가면서 우물 속에다 무엇을 처넣었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버님, 아무리 전하께서 강조하신 바라고 하나, 지금은 9월입니다. 이제 곧 겨울이 오는데 모기에 그렇게 주의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곳 겨울은 조선보다 훨씬 따뜻하다 하였다. 혹시 이곳 모기는 겨울에도 번성할지 모르지 않느냐? 전하께서 내리신 명을 받들어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
말끝마다 전하의 명, 전하의 명. 정준석은 고개를 숙이고 이를 악물었다. 부친이 몇 년이나 변방을 떠돌았는지 확실히 기억도 나지 않았다. 분명 외관으로 한번 봉직하고 나면 내관으로, 꼭 경직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8도 안에는 보직해주건만 부친은 북변에만 붙박여 있었다.
그런데도 부친은 임금을 향한 원망 한마디를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원망하기는커녕 어떻게 하면 임금께서 베푸신 은혜를 갚을 수 있을까 하는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네 증조부께서 늘 말씀하시기를, 우리 가문은 마지막 피 한 방울, 마지막 살 한 조각까지 이 나라를 위해 바쳐야 한다고 하셨느니라. 그래서 이 아비도 평생 변방을 돌면서도 충성심을 잊지 않았고, 문약하던 네 형도 왜적과 싸우다가 동래성에서 장렬히 전사하지 않았느냐?”
‘네,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조선 땅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하게 먼 이 땅에 오셨지요. 같이 배를 타고 온 마흔도 안 된 애송이들이 도성에서 노닥거리다가 대감 소리를 듣는 동안에 북변에서 눈과 얼음을 헤치며 고생한 대가가 이번에는 더운 남변이란 말입니까?’
부친은 정준석이 속으로 중얼거리는 말을 듣지 못했다. 아들 역시 자신처럼 충성스러우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부친은 앞으로 할 일을 지시할 뿐이었다.
“너는 군사를 거느리고 일꾼들을 지켜야 한다. 일단 성벽에서 10리 안에 있는 모든 나무를 베고 농토를 만들 것인데, 토인들이 습격하지 못하게 주변을 철저히 경계하라.”
“예, 아버님.”
지금 당장은 싣고 온 식량이 있으니 괜찮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이곳 대남도에서 직접 거둔 식량으로 버텨야 한다. 본국에서 혹시 다음번 배가 안 올 수도 있고, 다행히 배가 온다 해도 식량은 실어오지 않고 사람만 더 데려올 수도 있다. 아니, 그럴 공산이 더 크다.
“다행히 이곳 남쪽 땅은 겨울에도 땅이 얼지 않는다고 하니, 나무를 베고 땅을 일구기에도 무척 좋다. 전하께서 직접 쓰신 농서를 보면 이런 땅에서는 감저와 땅콩이 무척 잘 자란다고 하였으니, 일단 그것들부터 심으면서 논을 만들어 벼를 심도록 하자.”
이들이 가져온 짐에는 조선에서 재배하는 모든 작물의 종자가 있었다. 어떤 작물이 여기서 잘 자라고 못 자랄지 알 수 없으니 모두 가져왔다. 전란 중 노획한 왜국 볍씨도, 명나라에서 외수사가 들여온 강남 안남미 종자도 준비해 왔다. 단 하나, 연초(煙草)만 제외하고 말이다.
미리 가져온 종자 외에도, 뜻밖의 소득이 있었다. 진남성을 쌓느라 헐어버린 토인 부락에서 토인들이 놓고 간 좁쌀 종자를 얻었다. 조선에서 가져온 곡식은 이곳 풍토에서 제대로 자라지 못할 수도 있으니, 토인들이 재배하던 좁쌀을 얻은 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토인들이 공격해 오면 응전에 그치지 않고 추격해도 좋겠습니까?”
우리 백성들의 머리를 베어간 무도한 놈들이다. 정준석으로서는 농토를 개간하는 일보다 그 못된 놈들의 목을 치고 마을을 불태워 씨를 말리는 쪽에 더 관심이 있었다. 임금에 대해 품은 불만과는 별개로, 함께 이곳까지 내려온 백성들에 대한 애정이었다.
“아니, 혹여 적들이 함정을 파고 우리를 끌어내는 속임수일 수도 있다. 마음껏 추격하는 건 우리가 이 땅에 더 익숙해지고, 본국에서 더 많은 군사를 보내준 뒤로 미루도록 해라.”
“예, 아버님.”
비록 장소가 좀 바뀌긴 했지만, 난폭한 야인들에게 대처하는 방법은 다르지 않다. 정일한은 기필코 어명에 따라 이곳 대남도를 개간하여 조선 땅에서 기근을 없애리라 결심했다.
저 멀리 사라져 가는 남만선의 누런 돛이 이제 막 사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해변에 나왔던 백성들은 대부분 몸을 돌려 성으로 들어가는 귀로에 올랐다.
정씨 집안의 두 부자도 말고삐를 잡고 남문을 향해 말머리를 돌렸다.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할 농지 개간을 위해 준비할 일들이 많이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