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611
2부 389화
– 32 –
이항복은 ‘이민사업’의 조율을 위해 몇 차례 더 마우리츠를 찾았다. 스페인 당국에서는 그가 반란군 진영에 자꾸 드나드는 모습을 별로 좋게 보지 않았지만, 국왕의 승인도 얻은 일인지라 크게 간섭하지는 않았다.
“다만 내가 서반아군의 군사정보를 그대들에게 흘리지 않을까 싶어 대단히 경계하고 있기는 하오. 증거는 없으나 의심은 드는 모양이지.”
“그건 우리도 똑같이 하는 걱정이잖소. 마침 우리도 봄을 맞아 전투를 재개할 준비를 하고 있어서, 혹시 그대를 통해 기밀이 새어나가는 거나 아닐지 좀 걱정스럽소.”
마우리츠가 웃었다. 하긴, 명확히 어느 편도 아닌 제3자가 양측 진영 사이를 오간다면 양쪽 모두 취할 태도는 같다. 그를 이용해서 상대편의 정보를 얻으려 하거나, 그가 자기편 정보를 빼돌린다고 의심할 것이다.
“본관을 믿으시오. 내 36년을 살면서 지금껏 신의를 배반한 적은 한 번도 없으니 말이오.”
“믿어 보겠소.”
두 사람은 곧바로 본 주제로 넘어갔다. 네덜란드 측에서는 그동안 조선으로 이주할 사람을 골라 명단을 작성해 놓고 있었다.
“일단 이주하겠다는 사람은 300명 정도 되오.”
“그렇게 적소? 난 1천 명쯤 될 줄 알았는데.”
이항복이 심드렁하게 대꾸하자 마우리츠가 놀라서 두 눈을 크게 떴다.
“1천 명? 누가 그대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줬소?”
“그대가 200명을 보내겠다고 했잖소. 나는 당연히 그 200명이 가장 200명이라고 생각했고, 딸린 가족과 하인을 생각하면 호(戶)당 인원이 적어도 5명은 될 것이니, 이주할 네덜란드인의 숫자도 1천 명은 되리라고 생각했소.”
이항복은 이번 사업을 조선에서 전가사변을 할 때 일가족 전체를 이주시키는 사례와 비슷한 경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우리츠가 전에 제시한 ‘200명’이라는 숫자를 ‘200호(戶)’와 같은 뜻으로 받아들였었다.
“아, 그것이…아이가 있는 가정은 그런 모험에 잘 나서지 않소. 귀공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정부가 시행하는 강제이주라면 모르겠으나, 자원해서 이주할 사람을 모집한다고 하면 독신인 남자가 지원자 중 대부분이오. 여자나 아이들은 아무래도 장기간 항해를 견디기가 힘드오.”
“흠,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요.”
하긴, 조선에 순응하기엔 독신 남자가 더 나을 수도 있다. 펠리페 2세가 보내준 고문관들이 지금 다 그러고 있듯이, 조선 여자와 결혼시켜 혼을 뽑아 놓으면 금방 본국을 잊고 조선에서 상감의 충실한 신하로 살아갈 테니까.
“지금까지 조선에 살러 가겠다고 나선 이들은 남자 어른 180명, 여자 어른 80명, 어린애가 40명이오. 여자 80명은 죄다 남편과 함께 나선 거라, 처녀는 없소. 귀공은 조선에 돌아가면 나머지 남자 100명에게 얼른 신붓감을 찾아주어야 할 거요.”
“그러리다.”
이항복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덜란드인들은 개성 인근에 정착하게 될 텐데, 개성은 외부와 접촉이 잦았던 역사가 있으니 통혼에도 큰 거리낌이 없을 것이다. 그래도 양반은 무리겠지만, 중인 정도까지는 서양인과 혼사를 맺겠다고 나올 수 있으리라.
“그리고 짐이 좀 많소. 우리가 알아서 운반하기로 했으니 걱정은 안 하셔도 되지만.”
“정착할 준비는 우리가 맡는다고 하지 않았소?”
“이주하겠다고 나선 이들 중에 농부도 몇 명 있소. 자기가 키우던 종자와 가축을 꼭 가지고 가야겠다 하니 어쩌겠소? 그 외에 책이나 도구, 세간을 가져가겠다는 사람들도 있어서 그대가 생각한 것보다는 짐이 많소.”
“뭐, 나도 그대들이 몸에 걸친 옷가지만 가지고 이주에 응하리라 여기지는 않았소.”
이항복이 적당히 받아넘겼다. 두 사람이 이민자들을 언제쯤 출발시킬지 논의하고 있는데 큰 책 한 권을 든 월터 롤리가 방으로 들어왔다.
“오랜만이오, 이 경! 지난번에 부탁한 책을 가져왔소. 그런데 셰익스피어 그 친구 극작가가 아니라 시인 맞소. 여기 그 친구가 출간한 소네트를 다 가져왔으니 보시구려.”
소네트(Sonnet)는 운율을 맞춰 짓는 시다. 본래 이탈리아에서 유래했는데, 잉글랜드에서도 요즘 인기를 끌고 있다고 했다.
“그 유행을 새로 불러일으킨 주역이 바로 셰익스피어 그 친구라오. 혹시나 내가 모르는 새 나온 작품이 있나 해서 서점마다 이 잡듯이 뒤져봤지만, 그가 쓴 시집만 있지 극본은 없었소. 연극이 상연된 적도 없고. 아, 페스트 때문에 런던의 모든 극장이 아예 폐쇄되어 있었소이다.”
“그럼 확실히 동명이인인가 보군요.”
상감께서 뭔가 잘못 아신 모양이다. 돌아가거든 그런 극작가는 없더라고 말씀드려야 할 것 같다. 그 문제를 마음속으로 일단락지은 이항복은 마우리츠에게 한 가지 부탁이 있다고 했다.
“무슨 부탁이시오? 가능한 거라면 들어드리리다.”
“뭐, 크게 힘들거나 어려운 건 아니오. 여기 정 군관을 볼모로 잡아 주시오.”
“뭐, 뭐라구요?!”
깜짝 놀란 마우리츠가 또 두 눈을 크게 떴다. 롤리도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두 조선인은 태연했다.
“아니, 나는 귀공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고 아까 확언했잖소? 그런데도 자청해서 부관을 볼모로 맡기겠다니, 도대체 무슨 의도요?”
“별거 아니오. 여기 정 군관에게 유럽식 공성전을 보여주고 배우게 하고 싶어서 말이오.”
이항복이 손을 들어 옆에 선 정충신의 어깨를 두드렸다.
“여기 정 군관은 나이는 아직 좀 어리지만, 무척이나 영특한 자질을 갖춘 장수의 재목이오. 그래서 먼 고장에 온 김에 다양한 경험을 좀 시켜주려고 하오.”
“공성전을 배우게 하겠다는 건?”
“그대들은 작년부터 계속 서반아군이 지키는 요새와 도시를 공성하고 있지 않소. 이번 봄에 벌일 전투도 필경 어딘가의 요새를 무너뜨리는 것일 테니, 정 군관으로 하여금 잘 살펴보라고 할 작정이오. 우리 군은 사실 수성전은 몰라도 공성전을 치러본 적은 거의 없거든.”
이항복은 스페인인들에게 의심을 받지 않고 정충신을 네덜란드 진영에 남기려면 마우리츠가 그를 볼모로 잡아두는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충격에서 회복된 마우리츠도 그에 동의했다.
“알겠소. 볼모가 아니라 그대가 맡긴 조카라고 생각하고 곱게 데리고 있으리다. 싸움터에서 공연히 눈에 띄어 나중에 그대가 곤란해지지 않도록 하겠소.”
“그거 고마운 마음 씀씀이구려. 그럼 잘 부탁드리겠소. 나도 얼른 진영으로 돌아가서 빈과 로마에 각기 서한을 보내 진행 상황을 알려야겠으니.”
몇 가지 사소한 용건을 더 나눈 뒤에 이항복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우리츠와 악수를 하고 정충신의 어깨를 다시 한번 두드리며 격려해 주고는 밖으로 나가 마차에 올랐다.
– 33 –
“네덜란드인들이 배 3척을 내기로 했다는 말이지.”
슬슬 이곳 달력으로 3월이 다가오는 어느 날 브뤼셀에 있는 이항복에게서 서한이 도착했다. 중부 유럽을 지나는 스페인군 통신망을 통해 보내진 편지였다.
“저쪽에서는 일이 계획보다 잘 되어간답니까, 대감?”
“그러하네. 쓸만한 기술자와 그 가족을 합쳐 300명이 이주하기로 되었고, 함께 가져갈 세간과 가축까지 실으려면 상선 1척으로는 운반이 어렵다는군.”
여기에 잉글랜드 배가 1척 더 참가한다고 하니 총 4척이다. 4척이면 상당한 함대다. 그만한 규모가 한꺼번에 움직이면 보통 해적선은 손도 댈 수 없고, 반란자들의 함대라고 해서 혹시 스페인 해군이 중간에 요격을 시도한다고 해도 한두 척으로는 상대하기 벅차다.
유출을 염려해서인지 이항복은 네덜란드 측의 의도에 대해서는 상세히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덕형이 살피니, 아무래도 네덜란드인들은 그저 이주민 수백을 내주는 정도로 사업을 종료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항로 개척과 거점 확보를 모두 진행하려는 게 분명했다.
“많아 봐야 고작 100명 정도 데려오려나 했더니…병판 대감 수완이 생각보다 좋구먼. 이제 로마에 있는 광해군께서 바빠지시겠네그려. 어서 통행증을 발급받아야지.”
네덜란드 상선, 그것도 반란군 쪽에 있던 배가 동쪽으로 움직이려면 서반아 인근을 지나게 된다. 불필요한 충돌을 방지하려면 스페인 국왕 명의의 통행증은 꼭 소지해야 할 터였다.
“그런데 대감, 아무리 저희가 고용했다고 해도 잉글랜드나 네덜란드 선적의 배를 카디스에 대고 우리가 승선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잉글랜드와 네덜란드, 두 나라는 모두 스페인과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지 않은가. 더구나 잉글랜드 해군이 스페인 해안을 수시로 공격하여 타격을 주는 탓으로, 스페인에서는 잉글랜드 배라면 무조건 해적으로 여겼다.
“그러게. 무슨 생각으로 잉글랜드 배까지 참가시킬 생각이라고 했는지 모르겠군. 뭐, 스페인 항구 말고 포도아령인 마데이라섬 같은 곳에서 기다리라고 하면 되겠지만.”
본래는 귀로에도 포르투갈 배를 용선할 예정이었다. 포르투갈인들이 동방으로 가는 항로에 가장 익숙할뿐더러, 곳곳에 설치된 중계점을 이용하기에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포르투갈인들은 이미 100여 년에 걸쳐 인도 항로를 오가면서 요소요소에 요새를 쌓고 배가 쉴 수 있는 안전한 거점을 만들어두었다. 네덜란드인들과 잉글랜드인들은 당연히 이를 이용할 수 없다. 펠리페 2세의 통행증이 있으면 이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경계하는 연유를 잘 모르겠군. 설마하니 우리가 함께 있는데도 서반아 국왕이 자기네 백성들을 해치리라고 보는 걸까.”
조선 국왕에게 충성을 바치겠다는 서약서에 서명하고 배에 오른 이상, 그들 모두는 더 이상 네덜란드 시민이 아니라 조선인이다. 과거 스페인 국왕에게 맞선 반란자였다 하더라도 서명한 뒤에는 조선 임금의 백성이니 마땅히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저들을 실제로 보호할 만한 힘이 없으니까요.”
“음, 그렇기는 하지.”
스페인인들이 작심하고 해를 끼치려 나서면 50여 명 남짓한 견서사로서는 버틸 힘이 없다. 차라리 직접 자신들의 신변을 지키겠다는 저 태도 쪽이 훨씬 편하기는 했다.
“네덜란드 측에서 자원한 거라 용선료를 줄 필요도 없으니 잘 되었군. 우리는 베네치아에서 마데이라까지 갈 뱃삯만 준비하면 되겠네.”
“마데이라에서 병판 대감과 만나시겠습니까?”
“음. 보헤미아에서 오는 광산기술자들과 헝가리에서 올 기병들, 베네치아에서 사들인 책을 모두 베네치아에서 배에 싣고 로마로 가서 거기 계신 광해군 나리와 합류하고, 서반아에 가서 서반아 왕의 통행증을 받아서 마데이라로 간 다음 짐과 사람을 그쪽 배로 옮겨 실으면 되지.”
이항복은 광산기술자들을 네덜란드로 보내라고 했지만, 남녀노소가 섞인 100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유럽을 가로질러서 여행시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리라. 서쪽으로 움직이다 자칫하면 프랑스나 네덜란드에서 전쟁에 휘말려 엉뚱하게 피해를 볼지도 모르는 문제도 있다.
“더구나 그들은 카이저의 백성이 아닌가. 마땅히 이곳 빈에 와서 카이저께 인사를 드리고서 길을 떠나도록 해야지, 왜 서쪽으로 인사도 없이 떠난단 말인가.”
보헤미아인들을 태우겠다는 잉글랜드 배도 마데이라에서 대기하게 하면 된다. 마데이라까지 가는 길에는 다른 배를 위한 보급품을 싣고 간다거나 해도 되니까 말이다.
“그럼 이쪽에서는 로마에 남은 사람들까지, 우리 견서사 일행 30명에 보헤미아인이 100명, 헝가리 기병 20명까지 총 150명이 가는군요. 잉글랜드 배에 타면 딱 맞을 것 같기는 합니다.”
“말도 40필을 실어야 하니 큰 배라야 하겠지. 겨우 그것밖에 못 데려가는 게 유감이지만.”
이덕형이 한숨을 쉬었다. 황진이 보고서에서 ‘후사르’라 하는 그 기병들의 용맹을 극찬하던 문구가 눈앞에 선했다.
『…이들은 등에 깃털을 달고, 몸에는 표피(豹皮)를 걸치고 돌진하는데 그 기세가 마치 등에 날개를 단 표범이 먹이를 덮치듯이 맹렬합니다. 말은 덩치는 작아도 빠른 전마를 사용하는데, 그 맹렬함이 이로써 한층 강해집니다.
창은 가볍고 길어서 적의 병기가 몸에 닿기도 전에 먼저 적을 찌르며, 닫는 힘이 더해지니 가벼운 복장을 한 돌궐 기병 3명을 한 번에 꿰뚫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우리가 기창을 휘둘러 적을 치면 고작 1명을 쓰러뜨릴 뿐인데, 긴 창을 들고 정면으로 찌르니 여럿이 쓰러집니다.
다만 창이 가벼워 적을 찌르면 창대가 산산이 부서져 흩어지니 여분의 창을 후미에 충분히 준비해두어야 합니다. 이들은 적진을 돌파할 때 창을 들고 돌진하여 적을 찌르고 다시 돌아와 새 창을 들고 다시 돌입하기를 적진이 무너질 때까지 반복합니다.
다만 우리 군에서 저 기병들을 싸우게 한다면, 굳이 돌격을 반복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화포를 쏘아 적진을 무너뜨린 뒤에 돌입시키면 창으로 적을 찌르고 나서 바로 휴대한 철퇴나 곡도를 사용하여 적을 짓밟을 수 있습니다. 그 외에 기병을 상대로도 압도할 수 있습니다.
트란실바니아 공은 대감께서 카이저께 윤허만 받아내신다면 바로 약속대로 100기를 빈으로 보내주겠다 합니다. 어서 좋은 소식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유감스럽게도 황진이 바라는 소식은 도달할 수 없게 되었다. 루돌프 2세를 두 번이나 만나 부탁했지만, 그 기병들을 모두 조선으로 데려가도 좋다는 허락은 끝내 받지 못했다.
“귀공도 알다시피, 우리가 튀르크인들과 결전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 큰 병력을 선뜻 넘겨줄 수가 없노라. 트란실바니아 공은 아직 젊어서 여유를 부리는 모양이지만, 전쟁이란 불과 기병 100기라고 해도 전국을 좌우할 힘을 가질 수도 있는 법이라….”
“그럼 트란실바니아 공이 양도한 군사를 데려가도록 허락하실 수 없다는 분부이신지요?”
“그건 아니다. 허락은 하겠지만, 너무 많다고 생각하노라. 어차피 그대들도 우리 기병들을 그대로 싸움터에 내보내려는 게 아니라 하지 않았는가? 저들의 전법을 배우려는 게 목적이라 했는데, 그러하다면 교관 노릇을 할 인원으로 약간만 데려가도 충분하지 않겠는가?”
조선으로 데려갈 기병대의 규모를 격감시킨 장본인은 바로 카이저 루돌프 2세였다. 주인인 바토리 가문이 100기를 주겠다는데도 안 된다면서 20기만 데려가라고 했다. 정 100기를 모두 데려가고 싶으면, 전쟁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라는 조건을 붙였다.
“자기 휘하에 거느린 병사도 아니건만, 왜 그리 간섭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명색이 유럽의 천자라 하면서 너무 좀스러운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갖다 바친 초피와 인삼은 그리 넙죽넙죽 받아먹었으면서, 자기 것도 아닌 병사를 내주기를 꺼리니….”
김상헌이 불평하자 이덕형이 차분하게 토닥였다.
“전란이 터졌는데 내 군사, 네 군사가 어디에 있겠는가. 사비성이 무너지고 의자왕이 잡혀 소정방 앞에 무릎을 꿇은 이유가 귀족과 성주들이 군사를 보내지 않은 탓이 아니었는가? 지금 도이칠란트는 대적과 결전을 앞두고 있으니 병사 하나를 아낌이 당연한 일일세.”
오스만은 언제나 이쪽보다 훨씬 많은 대군을 전선에 투입한다고 했다. 병사 하나라도 자기 손에 남겨두고 싶은 카이저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기에 여기서 물러서기로 했다. 그 20기로 조선 기병들을 가르쳐 수백 기를 양성하면 되는 거 아니겠는가.
“자, 이 서한을 프라하와 자그레브로 보내게. 3월 중순까지는 준비를 마치고 모두 빈으로 모여야 하니까.”
“예, 대감.”
이덕형은 베네치아에서 보내온 서적목록도 훑어보았다. 이번에 사들이는 책은 저번과 달리 로마에서 광해군이 코르나로 추기경의 도움을 받아 골랐다지만, 인수하는 곳은 이번에도 역시 베네치아였다. 5천 권이나 되는 책을 굳이 육로로 나를 건 없지 않은가.
움직여야 하는 일행만 140여 명에 말이 최소 20필, 그 외에도 잡다한 짐이 잔뜩이다. 이런 대규모 집단이 움직이려면 배가 육로보다 낫다. 최종 목적지가 로마라면 혹 모르지만, 그것도 아니니까.
“로마에 계시는 광해군께서는 평안하신지 모르겠군. 올해 들어서 통 연락이 없으시니, 그쪽 상황을 알 수가 있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