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620
2부 39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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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이 에조치라고 부르는 땅, 아이누 모시리의 겨울은 춥다. 눈은 사람의 키를 넘도록 쌓이고 바람은 매섭다. 그나마 다른 계절에 비해서 한 가지 좋은 점이라면, 곰들이 겨울잠을 자기 때문에 마주칠 일이 없다는 거다.
“천만의 말씀이지. 겨울잠을 자다 말고 깨서 굴에서 나온 산신님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는 샤모들이나 그딴 소리를 하는 거야.”
경험 많은 곰 사냥꾼들이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지금은 곰들이 굴에 들어가 잠에 빠지는 한겨울, 이들로서는 잠시 본업을 쉬는 시기다.
하지만 간혹 자연의 이치에 따르지 않고 바깥을 맴도는 곰들이 있다. 잠들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건, 그런 곰은 성질이 잔뜩 곤두서 있고 길에서 마주치는 모든 짐승을 먹잇감으로 보고 잡아먹으려고 든다, 사람 역시 그 대상에서 예외가 아니다.
“진짜 겨울 산신님은 확실히 성질 더럽지. 솔직히 그런 미친 산신님이랑 마주치는 일일랑은 되도록 피하고 싶어.”
아이누 말에서는 불곰을 키문카무이, 즉 ‘산에 사는 신’이라고 부른다. 겨울잠을 자지 않고 바깥을 돌아다니는 곰은 아푸카스카무이, 그리고 사람을 잡아먹는 데 맛을 들인 식인불곰은 웬카무이, ‘사악한 신’이라 한다. 물론 겨울 외에 다른 계절에도 식인곰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나쁜 산신님을 잡으러 와달라는 부탁은 샤모들의 동네를 염탐할 기회이기도 하지.”
‘샤모’는 본래 아이누 말로 ‘이웃 사람’을 뜻한다. 하지만 이 ‘이웃’은 평범한 이웃 아이누를 지칭할 때는 거의 쓰지 않는다. 바다 건너 남쪽에서 들어온 일본인들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말이다. 조선인을 특별히 칭할 때는 ‘서쪽 샤모’라고 부른다.
최근 몇 년, 샤모의 우두머리 모가미라 하는 자가 악독하게 굴어 수많은 아이누를 죽였다. 저들은 오랜 태곳적부터 아이누가 사는 땅, 아이누 모시리를 빼앗으려 들었다. 못된 샤모들을 몰아내고자 봉기한 아이누는 갑옷으로 무장한 샤모 군대와 정면으로 맞붙어 참패했다.
“샤모가 조선에 대대적으로 쳐들어갔다고 해서 좀 약해졌을 줄 알았는데….”
“누군들 안 그랬나.”
이들의 수령은 일본과 싸우겠다는 결의로 아푸카스카무이, 즉 ‘겨울곰’을 이름으로 택했다. 그리고 몇 년에 걸쳐 아이누 모시리 전역을 누비며 각 부족을 규합, 봉기를 선동했다.
마침 일본군이 대대적인 조선 침공을 시작했다. 그러자 지금이야말로 모두 일어날 때라고 선언했다. 그동안 조용히 눈치를 살피던 부족들도 그 말에 힘을 합쳤다.
아이누가 압도적인 숫자로 나서자 카키자키씨는 도망쳤다. 하지만 응원하러 온 모가미군은 무서웠다. 벼락같은 총성으로 이쪽의 혼을 빼고, 화살 세례를 퍼부으면서 장창을 곧추세우고 전진했다. 비처럼 쏟아지는 총탄과 화살에 기껏 모여든 아이누 연합군은 처참하게 무너졌다.
수령은 포기하지 않고 두 번이나 더 무리를 모았지만 두 번 더 패했을 뿐이었다. 세 번이나 참패하고 나자 힘을 합쳐 일본과 싸워보려는 움직임은 완전히 사라졌다. 살아남은 부락들은 모가미 군이 보낸 사자 앞에 넙죽 엎드려서 목숨만 살려달라고 빌어야 했다.
다행히 일본인들은 혼슈 가까운 남쪽 지방만 직접 관장하고 북쪽까지는 점령하지 않았다. 몇몇 고장을 들쑤시고 다니긴 했지만, 아이누 모시리의 절반을 넘어오지는 않았다. 늦게나마 수령이 과욕을 버리고 싸움 방식을 정면 대결에서 매복 기습으로 바꾼 덕분이다.
숲속과 덤불에서 독화살이 날아들자 일본인들도 더 이상 북쪽으로 올라오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들이 장악한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고하게 굳히기 시작했다. 아이누 족장들에게 교역에서 얻은 이익을 나눠주고, 일본 상인들의 횡포로부터도 보호해 주었다. 군대도 줄였다.
“그리고 산신님이 나타나면 우리를 부르지.”
아이누에게 곰은 단순한 짐승이 아니다. 산신이 아이누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털가죽 옷을 입고, 고기를 가지고 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을 해치는 나쁜 신은 벌을 받아야 한다. 정문을 통하지 못하고 옆문으로 집에 들어와야 하고, 산으로 돌아가는 제사도 지내 주지 않는다.
하지만 나쁜 곰이라고 해도 고기와 가죽은 가치가 있는 법이다. 일본인들은 이런 곰 퇴치를 자기들이 직접 하는 대신 아이누 사냥꾼들에게 의뢰했다. 그럼으로써 이들에게 이익을 주고, 이를 통해 하나라도 많은 아이누를 자기들 편으로 끌어들이고자 했다.
“덕분에 샤모 군대가 얼마나 줄어들었으며, 어디에 있는가도 알 수 있었지. 나쁜 산신님을 잡으러 다닌다는 핑계로 남쪽 땅 전부를 훑고 다녔으니.”
“이 소식을 받으면 그분이 기뻐하실 거야.”
이들은 각자 섬 남쪽을 돌아다니며 모은 정보를 수령에게 보고하려고 여기 모였다. 수령은 더 많은 무기를 가져오려고 바다를 건너갔는데, 1년 만에 드디어 돌아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다만 북쪽 해안에 산재한 여러 부락을 돌면서 동참을 호소하다가 오느라 좀 늦는다고 했다.
보고서 따위는 없다. 아이누 사냥꾼들은 문자는 모르지만 놀라운 기억력을 가지고 있었고, 자기가 관찰한 바를 하나도 빼먹지 않고 남에게 전할 수 있었다. 일본군이 어디에 있는지, 그 정보를 일본인이나 조선인들처럼 종이에 기록할 필요는 전혀 없다.
“아푸카스카무이님이 오셨다! 다들 나와라!”
밑에서 전갈이 왔다. 모닥불을 둘러싸고 앉아 있던 곰사냥꾼들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서서 무기를 구하러 조선에 다녀온 수령을 맞이했다. 털가죽으로 몸을 싼 석탈왜가 부하들을 만나 해후의 기쁨을 만끽했다.
“다들 고생이 많았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곧 끝날 것이다. 조만간 지난번 전쟁을 보복하기 위해 조선군이 일본을 칠 것이고, 그러면 모가미군도 모두 남쪽으로 떠나야 할 것이며 우리는 적을 완전히 몰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날을 위해 새로이 병기를 가져왔도다.”
석탈왜가 이끌고 온 커다란 썰매 7대에 수북하게 쌓인 짐이 모두 무기였다. 자루에 가득한 화살촉, 상자에 가득한 도끼와 창끝, 갑옷, 일본식 장도와 단도 등.
그중에서도 7번째 썰매가 실어온 짐이야말로 부하들을 가장 크게 놀라게 했다. 상자를 열어 안을 본 석탈왜의 부하 아이누들은 곰만큼 크게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수령이 조선에서 이런 물건까지 받아올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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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탈왜에게 총까지 줌은 좀 과도하지 않겠습니까? 저들은 총을 제대로 다루지도 못하는데, 서슴없이 총을 주셨으니 아까운 총 300자루를 바다에 집어넣은 것과 다를 게 없습니다.”
석탈왜에게 준 총은 모두 지난 전쟁에서 노획한 왜조총이다. 비싸게 만든 우리 조총은 한 자루도 넣지 않았다. 화약도, 탄환도 모두 노획한 물건을 그대로 보냈다. 우리 돈이라고 하면 운반비가 들었을 뿐이다. 그래도 몇몇 신하들은 아까워했다.
“비록 적에게 빼앗은 것이라 하나 지금은 우리 것입니다.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할 자들에게 주어 무용하게 소모함은 부당합니다. 차라리 북변에 있는 각지의 촌락에 주어 맹수를 쫓으며 도적을 막는 데 쓰게 하심이 나으니, 앞으로라도 원조를 중단하소서.”
“저들이 총을 다룰 줄 모르기는 왜 모른단 말이냐. 석탈왜와 그 수하 10여 명이 연해주에서 총 쏘는 법을 상세히 익힌 뒤에 돌아가지 않았느냐?”
왜란 이전까지, 아이누에게 가는 무기 수출은 전적으로 칼과 화살촉, 도끼 정도로 제한했다. 물량도 많지 않았다. 일본에 대한 저항운동을 계속 진행할 수는 있되, 아이누 따위가 어떻게 이리 강한지 노부나가가 의심하지는 않을 정도로만 보냈다.
그때는 나도 아이누 문제로 노부나가와 전면전을 벌이게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적당히 지원해서 일본이 홋카이도를 쉽사리 장악하기 어렵게만 했다. 언제까지 그럴 예정이었냐고? 그야 내가 연해주에 기반을 닦고 직접 홋카이도에 진출할 준비가 될 때까지였지.
그리고 그 준비가 다 되기 전에 노부나가가 쳐들어왔다. 전란을 치르고 그 다음 해까지는 내가 전후복구에 정신이 없어서, 아이누 지원 문제 같은 건 신경을 못 썼다. 다테 마사무네와 약속한 밀수선을 보내면서 물자와 무기를 약간 보내줬을 뿐이었다.
보급은 간단했다. 늘 배를 대던 마을에 기항해서 혹시 인근에 일본인이 없는지를 확인하고 얼른 물자를 내린 다음 다시 남쪽으로 떠났었다. 그것도 1년에 단 1번.
그러다 작년 겨울에 도성에 온 석탈왜로부터 직접 보고를 받고서야 지금 아이누 독립군이 어떤 상황인지를 비로소 접했다. 석탈왜도 우리 보급선 편에 지원요청을 보내기는 보냈었다고 하는데, 내 손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었으니 말이다. 도대체 어디서 증발했을지.
전력을 모아 시도했던 3차례의 결전에다 그 뒤로 2년 동안 이어진 유격전과 도피행에 관한 눈물 나는 이야기들을 들으니, 그동안 연해주 관찰사가 적당히 준비해 보내줬던 화살촉 몇 개 정도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될 상황임을 알았다. 파병까지는 아니더라도 지원이 더 필요했다.
“석탈왜는 벌써 4대째 내게 충성을 맹세한 신하가 아니냐? 또한, 그 동포가 사는 땅은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아이누가 살던 땅을 왜인들이 침탈하고 있음이니 이를 도움이 도리에 어긋난 것도 아니다. 기왕 돕기로 하였으면 제대로 싸우도록 해주어야 할 게 아니냐!”
어차피 일본 본국과 전쟁 상태이므로 아이누를 본격적으로 돕는다고 해서 상황이 더 나빠질 것도 없다. 파병은 좀 어렵지만, 무기 지원 정도야.
“모두 지난 4월에 석탈왜가 어전에서 아뢰는 말을 듣지 못하였는가? ‘전하께서 지금 저희를 도와주신다면 장차 왜국을 원정하실 때 아모국의 모든 군사를 모아 저들의 뒤를 치겠습니다’라고 약조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전에는 홋카이도를 일본식으로 에조치(蝦夷地)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젠 일본에 반기를 든 원주민을 대놓고 지원하는 판이다. 그럼 일본식 호칭을 계속 써줄 필요가 없다.
가장 좋은 거야 자기들이 쓰는 이름대로 부르는 거겠지만…‘아이누 모시리’는 길다! 그리고 조선에서 생각하는 전형적인 ‘나라 이름’과 너무 거리가 멀어! 그래서 두 단어에서 머리글자를 하나씩 따서 조합하도록 했다. ‘我母國’이라고 하면 의미도 괜찮을 것 같고.
“하지만 무기를 갖추기도 어렵고, 제대로 조련도 안 받은 군사들이 나선들 어찌 큰 쓸모가 있겠나이까? 그나마 3차례나 결전에 패하여 싸울 만한 사내는 거의 죽거나 흩어졌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대들이 걱정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왜인들이 가라앉은 줄만 알았던 난이 재발하고 수많은 아이누가 중무장하고 소요를 일으킨다면, 수길은 동북에 있는 여러 영주로부터 군사를 징발할 수 없을 게 아닌가? 그것만 해도 큰 도움이다.”
무엇보다 다테군이 움직이지 않는 게 최고다. 그놈은 일단 출병부터 시켜놓고는 어느 편이 이길지 간을 보면서 상황에 따라 움직이고도 남을 놈이다. 그렇게 내가 신경을 쓰게 만드는 존재가 있는 것 자체가 눈에 거슬리니까, 아예 오우에서 내려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의광(最上義光, 모가미 요시아키)과 싸워 의광이 아모국으로 진압군을 보내지도, 수길에게 원군을 보내지도 못하게 만들면 종정이 할 일은 다 한 셈이다.”
다테 마사무네는 1591년에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해 내내 반란을 일으킨 동생이랑 싸우면서 보냈고, 끝내 동생을 잡아 처형했다. 동생 편을 들어 영주 직위를 찬탈하려고 했던 모친도 연금시켰고 말이다. 당연히 외숙인 모가미랑 사이가 더 안 좋아졌다.
다만 아이누들에게는 이 숙질간의 갈등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했다. 다테와 군사적으로 긴장 상태를 유지하게 된 모가미 요시아키가 에조치 주둔군 다수를 본토로 소환했고, 그 탓에 에조치 북방 원정도 포기하고 아이누에 대한 강경책도 완화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석탈왜도 현지에서는 이런 사정을 몰랐던 모양이지만, 조선에 온 뒤에 이를 알고는 되도록 유리하게 이용할 결심을 했다. 자유롭게 살 수만 있다면 다테에게 교역권을 주는 정도는 별로 어려울 것도 없다면서 말이다.
나로서도 ‘거래’가 잘 통하는 다테 쪽이 다른 영주들보다 훨씬 편하다. 다테가 모가미령까지 모조리 차지하고 대대적으로 교역에 나서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을 정도로. 하지만 다테는 싸움은 못 하니까 안 될 거야, 아마. 분명히 모가미군에 밀리겠지.
그래, 저쪽 사정은 저놈들이 알아서 하게 두자. 석탈왜도 이미 홋카이도로 돌아갔고, 지금은 겨울이라 일본군은 움직이지 않을 테니 태세를 정비할 수 있을 거다. 곧 오는 내년 1594년을 아이누 독립군이 충실하게 보내기를 기원해 봐야지.
– 12 –
“군량이 쌓이는구나. 좋은 일이다.”
풍년은 바다에도 들었다. 새끼줄에 줄줄이 매달린 청어와 조기가 바닷바람에 말라 과메기와 굴비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순신은 그저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를 듯한 그 광경을 보며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대들은 고기잡이에 게으름이 없도록 하라. 영호남의 농사가 아직 회복되지 않았고, 우리 군사들에게도 고기를 먹여야 기운을 낼 것이 아니냐.”
“예, 대감. 분부하신 대로 유의하겠습니다.”
고기잡이는 순시를 나갔다가 돌아오는 포작선들, 그리고 수군에서 따로 운용하는 어선들이 맡는다. 아직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은 각 수영 소속 전답이 많아서, 고기를 잡아야만 군량이 넉넉하게 충당이 되었다. 직접 먹는 것 말고 염장하거나 말려서 북쪽 지방에 팔기도 한다.
이순신이 지금 맡은 직책은 종1품 비변사 수군제조다. 새로 신설한 관직으로 품계는 군권을 쥔 병조판서보다도 높다. 하지만 겸직이 아닌 비변사 내 관직이고, 직제에서도 병조에 속하지 않으니 군사를 직접 움직일 권한은 없다.
다만 비변사에서 수군에 관련된 정책을 세우고 임금께 의견을 올리는 데는 누구도 맞설 수 없는 영향력이 있었다. 사실상 병조판서보다 격이 높은 임금 직속 막료라고 할 수 있다. 같은 권한을 가진 육군제조는 권율이다.
이들 두 사람의 역할은 비변사 안에서 끝나지 않았다. 전하께서 당부하신 바에 따라서 전국 13도 3주에 걸쳐 주둔하는 수백 개나 되는 군진(軍陣) 모두를 순회하면서 문제점을 찾아내고, 또한 개선할 방안을 뽑아내는 감찰관 노릇도 해야 한다.
지금 남도수군통제사는 정걸이다. 여러 젊은 장수 중 남들을 능가하는 탁월한 이를 고르기 어려워하시던 상감께서 연륜을 갖춘 정걸을 3년째 통제사로 두고 계셨다. 이제는 슬슬 후임을 생각할 때가 되어 정운이나 이운룡 등 여러 장수 중 적임자를 고르시는 중이다.
“허나 겨울이라 하여 고기나 말리고 쉬고 있어서도 안 될 것이오. 봄이 오면 전군이 모여서 수조를 벌여야 할 것 아니오? 배를 손질하고 무기를 다듬어 그 준비도 해두어야 하오.”
남도 수군 전체가 모이는 수조(水操)는 3월과 9월에 각각 한 번씩이다. 전하께서 내후년에 동정을 결행할 계획이심을 감안하면 이제 2번 남았다. 통제영 제승당으로 돌아온 이순신이 이 문제를 잊지 않도록 정걸을 독려했다.
“예, 대감. 하오나 왜적에게 우리 수군에 맞서 싸울 전력이 있을지를 생각하면 수조를 통한 진법 훈련을 하더라도 보람이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걸이 찻잔을 기울이며 약간 허무한 표정을 지었다. 야인들에게 파는 싸구려 차가 아니라 남만선에 실어 보내는 고급 찻잎이라고 했지만, 지금 그가 느끼는 허전함을 메울 만큼 좋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왜적들은 지난 왜란에서 제대로 수전을 벌였다 하면 우리에게 패하지 않았습니까. 지금도 남만선단이 연이어 왜선을 붙잡고 있지요. 그런데 왜적들이 우리에게 수전을 걸겠습니까?”
“걸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겠소? 우리 수군이 가서 적의 포구를 점령하고 군사와 물자를 양륙하면 우리 보급선을 끊기 위해서라도 분명히 적 수군이 출진할 거요. 그때를 노려 치면 적 수군을 섬멸하면서 우리 쪽에 대한 위협도 없앨 수 있소.”
왜 수군이 살아남아 우리 보급선에 대한 해적질을 벌이는 상황이 제일 난감하다. 그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적당한 미끼를 걸어 뛰쳐나오도록 유인하고, 일거에 섬멸해버리는 게 좋다.
“그리고 등선군 군사들에게도 사냥을 좀 시키심이 어떠시겠소? 한두 번 있을 수전을 끝낸 뒤에는 저들도 사실상 육전을 치러야 할 테니, 사냥을 미리 해둠이 좋을 듯하오.”
“예, 근처 산과 섬에서 사냥을 하겠습니다.”
정걸은 선선히 지시를 받아들였다. 각 도에서는 이미 고을마다 사냥이 한창이다. 군사들을 움직여 적을 몰아붙이고 살상하는 훈련으로 사냥만 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등선군은 그동안 주로 선상에서 벌이는 등선 전투만 훈련하고 사냥은 하지 않았다.
‘다들 한동안 갑갑했으렷다.’
이순신은 옛 부하들을 떠올리며 잠시 미소지었다. 어떤 짐승이든 머리만 맞혀 몸통 가죽을 상하지 않게 하던 서림과, 창을 워낙 세게 던져서 가죽을 너무 크게 찢어놓는 바람에 시장에 들고 나가서도 값을 잘 받지 못하던 임꺽정이 떠올랐다. 그놈들, 지금도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