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621
2부 399화
– 1 –
어제는 설날이었다. 마땅히 사당에서 조상에게 차례를 올리면서 후손으로서의 예를 다함이 도리겠으나, 이원익은 도성에 있는 본가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이곳 나주에서 산더미같이 쌓인 송사 서류를 검토하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당사자들을 접견하면서 세밑을 보내고 있었다.
상감께서는 선전관을 보내서 잠시 일을 쉬고 본가에 가서 제사를 지내도 좋다고 전하셨다. 하지만 이원익은 임금의 은혜에 감사를 표했을 뿐 실제로 집에 다녀오지는 않았다. 그 연유를 묻는 부하 관리들에게는 이렇게 답했다.
“내가 집에 다녀오려면 적어도 열흘은 걸리는데, 그동안 해결할 수 있는 송사가 몇 건인가? 그 생각을 하면 도저히 자리를 비울 수가 없도다. 제사는 어차피 내 형님이 주관하실 것이니 내가 없다고 본가에서 제사를 못 지낼 것도 아니니라.”
자기는 설날 하루 업무를 쉬고 혼자 조상을 기리면 된다며, 도성에서 데려온 관원들에게는 걱정하지 말고 집에들 다녀오라고 했다.
“여기 나주 관원들이 일을 도와주니, 송사를 처리하는 데 별문제가 없다. 굳이 그대들 모두 여기 남아서 조상에 대한 예를 소홀히 할 필요는 없으니, 걱정하지 말고 다들 다녀오라.”
이원익이 괜찮으니 어서들 가라는 데도 10여 명 되는 관원들은 서로 눈치만 볼 뿐, 아무도 집에 가지 않았다. 이구동성으로 자기들도 여기 있겠다고 할 뿐이었다.
“허허 참, 괜찮다는 데도.”
이원익이 혀를 찼지만, 관원들은 모두 자기들만 다녀올 수는 없다며 이원익 곁에 머물렀다. 이원익은 이들과 함께 설날 당일만 휴식을 취하며 나주목사와 함께 제를 올렸고, 오늘은 다시 그전처럼 송사에 임하고 있었다.
“그래, 벌써 이 송사로 1년을 끌었단 말이냐.”
“그렇습니다요, 우상 대감 나리!”
이번 재판은 무주지라고 해서 몰수되어 속오군으로 출전했던 백성에게 경작하라고 배분했던 땅을 돌려달라는 원주인의 고소였다. 상당히 골치 아픈 문제다.
먼저 확인해야 할 문제지만, 나주는 지난 전란에서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왜군에게 부역한 몇몇 역도들 때문에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성을 빼앗겼고, 고을은 왜군의 손에 들어갔다. 물론 적이 성을 함락시키자마자 나주 고을을 폐허로 만든 건 아니다.
역도들은 성을 빼앗은 후에는 산과 들로 도망친 백성들을 찾아 온갖 감언이설로 꼬드겼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했다. 지금 호남 일대를 점령한 왜군은 노략질만 하고서 도망칠 왜구가 아니라 작정하고 조선을 정복하러 온 군대라고, 숨어봤자 소용없다고 말이다.
이들이 내세운 무엇보다 큰 유혹은 ‘먼저 돌아와 자리를 잡는 자는 더 많은 땅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기존에 왕실과 관청, 양반들이 소유하던 대규모 토지를 모두 몰수하여 다시 분배할 텐데, 그 땅을 받으려면 집으로 다시 내려와 왜인들을 상전으로 모셔야 한다고 한 것이다.
농사지을 사람 없이 빈 땅만 차지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점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왜인들이 직접 농사를 지을 게 아니라면 말이다. 게다가 전라도 일원이 너무 빠르게 왜적에게 무너지는 바람에, 정말로 왜군이 조선을 정복할 줄 안 자들도 일부나마 있기는 있었다.
그 결과 소수이기는 해도 피난했던 백성 중 일부가 이들의 사탕발림에 넘어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왜인들이 정해주는 바에 따라 농토를 받아 경작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전라도에서 물러날 때 갑자기 태도를 바꾼 왜군에게 학살당했다.
이들이 갈던 땅은 태반이 무주지가 되었다. 관에서는 땅 주인의 소재가 바로 확인되지 않는 농토는 모조리 무주지로 선언하고 공을 세운 자들에게 주었는데, 간혹 이런 사고가 생겼다.
“소인은 왜국 땅에서 죽을 고생을 하다가 겨우 돌아왔사온데, 소인의 땅은 이미 나라 땅이 되었다 하니 이 어찌 억울하지 않겠습니까요? 부디 굽어살펴 주소서!”
소송을 제기한 자는 나주에 살던 조군(漕軍, 조운선을 모는 선원)이었다. 왜군에게 붙잡혀서 밧줄에 묶인 채 짐을 나르다가 끝내는 왜선에 격군으로까지 끌려갔고, 타고 있던 왜선을 모는 선장이 조선 수군과 싸울 생각은 않고 줄행랑만 친 탓에 끝까지 풀려나지 못했다고 했다.
꼼짝 못 하고 그대로 구주로 끌려갔고, 구주에서 한 해를 노비로 살며 고생하다가 일기도로 보내졌다는 눈물겨운 사연이 이어졌다. 일기도에서는 처까지 맞이해서 2년을 살다가 고깃배를 훔쳐 바다로 나왔는데, 중도에 수군이 내보낸 남만선을 만나 비로소 돌아왔다고 했다.
“이미 부산에서 수군 나리들께 모두 말씀드렸사옵니다만, 소인은 왜적에게 잡혀 끌려갔지, 절대 스스로 왜적에게 귀순하지 않았사옵니다요.”
“그런 것 치고는 특이하군. 본국에 처자가 이미 있는데도 왜국에서 맞은 처와 의붓자식까지 모두 데려오다니?”
“소인이 처음부터 원해서 맞은 처는 아니라 하나, 살다 보니 정도 들었고 일단 한번 이어진 인연인데 버리고 오는 것도 할 짓이 아니기에….”
일기도에는 사내가 없다고 했다. 사지 멀쩡한 사내라면 늙은이까지 군사와 배꾼으로 끌려가 죽었거나 돌아오지 못한 탓이다. 왜란 전과 비교하면 사내 셋 중 하나만 남은 꼴이라고 했다.
“그나마 또 절반은 팔다리 하나씩은 날린 병신이라, 사지육신 멀쩡한 사내라면 원하는 대로 계집을 취하면서 살 수 있습니다요. 배필 없는 왜년들이 몸이 달아 있거든입쇼.”
일기도에 거주하는 남자가 워낙 줄어든 탓에 섬을 지킬 병력이 없어, 구주 본토에서 지원군 2천이 들어와 있을 정도라고 했다. 여러 영주가 번갈아 가면서 병력을 보내는데, 지금 와있는 이는 고니시라고 했다. 원균에 관해 물어보자 사내는 이렇게 답했다.
“일기도주는 본래 조선 장수라고는 하던데,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요. 생전 저택 밖으로 나오지를 않는 걸입쇼. 그런데 나리, 자꾸 일기도 얘기만 물으시는데 제 땅은 언제 돌려받게 해주실 것입니까요? 소인은 벌써 1년을 품팔이로 연명하고 있사옵니다요.”
불행하게도 나주에 남겨두고 갔던 일가붙이는 왜군이 분탕질을 칠 때 모두 죽었다고 했다. 분란을 각오하고 데리고 온 왜처(倭妻) 문제로 싸울 일은 없어졌지만, 좋다고 할 수도 없다.
“음, 그 문제는 이렇게 함이 좋겠다.”
이원익이 고개를 돌려 옆에 엎드린 피고를 보았다. 법도대로 하면 나주목사가 피고겠지만, 지금 재판에 출석한 이는 경작권을 받아 지금 실제로 그 땅을 갈고 있는 농부였다.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이니만큼 이쪽이 출석하는 게 더 자연스럽기도 했다.
“법에 따르자면 본래 네 땅이었던 논 3두락(斗落, 마지기)과 밭 2두락은 지금도 네 땅 맞다. 관에서 네 땅을 무주지라 하여 회수한 건 네 일가가 몰사한 줄 알고 한 일이었으나, 이렇게 네가 살아서 돌아왔으니 어찌 돌려주지 않겠느냐?”
“감사합니다요!”
나주목사가 1년이나 질질 끌었던 판결을 이원익이 한나절 만에 내려주자, 송사를 건 조군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환호했다. 피고인 농부는 항변하지도 못하고 눈물만 줄줄 흘렸다.
“허나.”
판결은 끝나지 않았다. 이원익은 조용히 이야기를 이어갔다.
“네가 본의는 아니었다 하나 왜적을 위해 짐을 나르고 배를 젓는 동안 저 농군은 속오군에 속해 적과 싸웠고, 혼자 힘으로 수급을 3개나 얻었느니라. 그 공으로 관노 신분에서 면천되고, 네 땅을 받아 농사도 짓게 되었다. 그리 얻은 상을 박탈함은 야박하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조군의 안색이 갑자기 창백해졌다. 자기가 기대한 대로 판결이 나오지 않을 듯한 예감이 든 모양이었다. 갑자기 어조가 필사적으로 되었다.
“그야 그렇겠습죠만, 그 상을 왜 하필 제 땅으로 주어야 합니까요? 나라님께서 나라 땅으로 주셔야지, 이 천것이 가진 전 재산을 가져가서 돌려주지 않으심은 너무합니다요. 소인이 왜군 편에 있었다고 하시지만, 영산창의 세곡을 실어내다가 창졸간에 붙들렸을 뿐입니다요.”
나주 영산창이 어떻게 왜적에게 넘어갔는지, 그 자초지종은 이원익도 잘 알았다. 그래서 이 조군이 적극적인 부역자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다만 원고와 피고가 모두 다 만족할 수 있는 타협안을 내고자 할 뿐이었다.
“남쪽에 새로이 개간하는 섬이 있다. 기왕 남에게 준 땅을 다시 회수하기도 어려우니, 너는 그 섬에 가서 새 땅을 받음이 어떠하냐? 여기 놓고 가는 전답 5두락 대신, 50두락도 가질 수 있을 것이니라. 어차피 나주에 남은 일가도 없으니, 별 미련도 없지 않으냐.”
“섬이라니, 대남도 말씀이십니까요?”
“알고 있구나. 그래, 그 섬이다. 겨울도 없고, 사방이 푸르른 큰 땅이지.”
잠시 생각하던 조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낯선 땅으로 이주하는 데 따르는 두려움도 있지만, 역시 재산을 열 배로 불릴 수도 있다는 말에 혹한 듯했다. 피고였던 농부의 얼굴에도 혈색이 돌아왔고, 이원익도 미소를 지었다.
“좋다. 다음 배편으로 바로 갈 수 있도록 내 조치를 해주마. 자, 다음 송사.”
하나 또 끝났지만, 아직 많이 남았다. 앞에 쌓인 문서도, 문밖에 늘어선 사람의 줄도 끝이 없었다. 언제쯤 나주 일원에서 들어온 송사를 전부 끝내고 다음 고을로 갈 수 있을까 싶었다.
– 2 –
“이제 본격적으로 동정군을 초모해야 할 듯하옵니다.”
새해가 됐다. 그 말은 곧 본격적인 원정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다.
“적어도 1년은 조련을 해야 제대로 된 군사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지난 왜란에 종군한 군사들이라 해도 제대로 대오를 갖추고 하는 싸움을 치러보지 않은 이들이 많습니다.”
동정군 주력이 될 복수군은 속오군 출신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렇다 보니 지난 왜란 때 얻은 전투경험이라고 해도 게릴라전이 전부인 이들이 태반이다. 일본 원정에서 우리는 게릴라전이 아니라 대게릴라전을 벌여야 할 상황이고, 정규전을 주로 할 터이므로 정규 훈련이 필요하다.
“지난 왜란에서는 국가가 존망의 기로에 처했기에 우리도 북병을 대규모로 동원했습니다만, 이번에는 남병을 주로 초모하여 투입함이 옳다고 사료되옵니다. 차자를 볼모로 보낸 건주위는 비교적 믿어도 좋겠사오나, 요즘 달단인들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고 합니다.”
몽골은 무자년 때 신립한테 크게 한번 당하고, 그 뒤에 건주위한테 지속적으로 털리면서 꽤 큰 손해를 입었다. 하지만 5년 넘는 기간이 지나면서 나름 손해를 회복하고 우리한테 복수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육군제조 권율이 북방 정세를 차분하게 보고했다.
“지난번 왜란 때야 저들이 타격에서 아직 회복하지 못했었고, 워낙 갑작스럽게 난이 일어난 터라 저들도 우리 틈을 노릴 여유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저들도 기운을 차렸고, 싸움 준비를 할 시간도 있으니 우리가 북병을 남으로 빼면 분명히 변경을 노릴 것입니다.”
육군제조, 수군제조는 사실상 육해군참모총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직접적인 지휘권은 없지만, 전군 총사령관인 나를 보좌하면서 군사정책 결정에 관여한다. 장차 이 시스템이 더욱 발전하면 참모본부가 별도로 독립할 수 있고, 병조는 순수한 군정기관이 되리라.
어쨌건 그건 장래 이야기다. 각군 제조는 지금은 비변사라는 임시조직 내에서도 임시직책일 뿐이다. 이번에 원정에서 성과를 발휘하면 아예 비변사와 별도로 존재하는 상설조직으로 만들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라도 원정 준비를 철저히 해보자.
“그래, 전체 군사는 얼마나 동원해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는가?”
“적어도 15만은 되어야 하리라고 보입니다. 그래야 구주 일대를 확실히 장악하는 한편으로 대판(大阪, 오사카)까지 진공할 군사를 확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기본 전략은 정해졌다. 전선을 너무 확대하지 않기 위해서 주고쿠는 건드리지 않는다. 우리 주력은 규슈 북부, 히데요시가 가지고 있었던 영지를 먼저 장악한 뒤 오토모령으로 진격한다. 그리고 여기를 거점으로 확보한 뒤 수로로 진군해서 오사카에 있는 히데요시를 처치한다.
“하지만 본주(本州, 혼슈) 서부의 휘원(毛利輝元, 모리 데루모토)을 그대로 놓아두고 가기는 불안합니다. 저들이 병력을 동원해서 대판에 있는 수길을 지원하거나, 우리 손에 있는 북구주 방면을 공격하고 수군으로 우리 보급로를 끊고자 할 수도 있으니 조치가 필요합니다.”
주고쿠는 모리 가문이 여전히 지배하고 있다. 당주 모리 데루모토는 지난 왜란에서 무사히 빠져나갔고, 대조선 방어의 일익을 맡아 끙끙거리고 있다. 그놈 입장에서는 안타깝게도, 지난 3년 동안 그놈이 조선에 면한 서해안 방어에 들인 노력은 몽땅 헛수고가 될 예정이지만.
“육군제조의 말이 옳다. 그럼 어찌하면 좋겠는가?”
“울라를 비롯, 해서부 잔여 세력을 싹싹 긁어 본주에 풀어놓으심이 어떻겠습니까? 옛날에 무종대왕과 명종대왕께서 야인들을 구주에 풀어놓아 적에게 큰 타격을 주셨듯이 말입니다.”
아아, 그 방법이 있었지. 확실히 여진족을 푸는 건 내 손해는 줄이면서 적에게는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묘책이다. 약탈품으로 보상하면 되니까 딱히 보수를 책정할 필요도 없다.
“저들은 지난 3차에 걸친 북벌에서 본 피해 때문에 아직도 우리에게 원한을 품고 있습니다. 이참에 저들에게 한참 노략질하며 날뛸 기회를 주어 그 원한을 다른 쪽으로 풀게 하면서 또한 이득을 얻게 한다면, 저들은 전하께 보다 충성할 것입니다.”
“그리고 달단 놈들과 호응하여 북방을 뒤흔들어놓을지 모르는 예비 반란자들을 이국에 보내 왜적의 칼날에 죽게 만드는 차도살인지계를 쓸 수 있겠지?”
“물론이옵니다, 전하.”
북방에 인구를 유지해야 하니 해서부 놈들도 살려서 포섭해두긴 했다만, 그게 진정 굽히지 않고 내심 다시 들고 일어날 기회만 살피고 있다면 제거해 버림만 못하다. 작년 누르하치에게 넘어갔다가 목이 달아난 부잔타이 놈이 그 대표적인 예다.
놈들이 일본에 가서 모두 죽더라도 그 구멍은 쉽게 메울 수 있다. 왜란 발발 이후 중단했던 전가사변을 재개하면 된다. 홀아비나 총각들을 이주시키면서 과부가 된 야인 여자들을 짝지어줘도 되고 말이지. 옛날에 왜인여진 처음 만들 때처럼.
사실 왜병 포로들을 만주로 보내서 왜인여진 2기를 시작하는 것도 고려 안 해본 건 아닌데, 80년 전에 들어간 선배들하고 도저히 섞일 것 같지가 않았다. 게다가 1기 녀석들은 전원 쇼니 군 출신이라 서로 단결이라도 됐는데, 이번에는 온갖 지역에서 모인 놈들이었으니 말이다.
결정적으로 돈이 문제였다. 전후복구에 일손으로 쓸 최소한을 빼고 한 놈이라도 더 노예로 팔아서 쌀값을 마련해야 했으니까. 그리고 정착시키기에는 숫자가 너무 많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이수광은 섬라에서 돌아오는 길에, 왜병을 더 사고 싶다는 나레쑤언의 주문을 받아왔다. 하긴 코끼리 앞에서 버티는 병사가 얼마나 욕심이 날까.
나레쑤언만이 아니다. 베트남의 완씨도 왜병을 사고 싶다는 요청을 해왔다. 일본인 용병이 동남아시아에서 인기를 끌었다더니, 이쪽 세계에서도 그 점은 똑같이 돌아가는 중이다.
“북방 야인들에게서 어느 정도 병력을 뽑아낼 수 있을지, 조사하여 확인하라. 하지만 이는 우리 본군과는 별개이니 그 점 유념하고, 북변 방어를 약하게 만들지 않으면서 본군에 동원할 수 있을 북방 기병 규모도 확실히 결정하여 보고하라.”
지금 상정하고 있는 진로대로라면 일본에서 대규모 기병전을 벌여야 할 일은 없으니, 1만기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한다. 그 정도라면 도감군에 속한 오도리와 남도에서 조달한 기병만 해도 충분하다.
“전하, 가강에게 한 번 더 사자를 보내어 우리 군사가 당도했을 때 호응하라고 재촉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확언을 받아둘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몇몇 신하들은 여전히 이에야스와 확고한 동맹을 맺자고 했다.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그런 미련을 버리라고 다그쳤다.
“가강이 지금 확언을 했다 한들 나중에 식언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어디에 있느냐? 이대로 그자가 알아서 하게 두어라. 가강은 필시 자기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고 그 종막은 우리에게 협력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알겠사옵니다.”
휴우, 연초 첫 비변사 회의도 이제 끝나가는구나. 보복전이 점점 다가온다고 생각하니 자꾸 심장이 떨리고 뇌가 흔들리는 기분이다. 그때 겪은 그 끔찍한 위경련 생각도 난다. 이번에는 부디 그 위경련이 재발할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