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624
2부 402화
– 8 –
놀라운 소식이 날아왔다. 모리 가문에서 나한테 밀사를 보냈다고? 히데요시 몰래?
“웅곡원직이라 하는 자가 통제영에 들어와서 고하기를, 전하를 직접 알현하고 자기 주군의 친서를 전하고 싶다 합니다. 어찌 하시겠사옵니까?”
확인해 보니 이번에 사자로 온 웅곡원직(熊谷元直, 쿠마가이 모토나오)은 모리 데루모토의 큰삼촌인 깃카와 모토하루(吉川元春)의 처조카라고 했다. 깃카와 모토하루는 경인년에 논산벌 싸움에서 우리 손에 전사한 깃카와 히로이에의 부친으로, 이미 죽은 지 여러 해 됐다.
모토나오는 그렇게 모리 일족과 연이 있을 뿐 아니라, 지난 왜란에도 참전하지 않고 본국에 머물러 있었다고 한다. 더구나 세례까지 받은 가톨릭 신자라고 했다.
그 세 가지 조건을 들으니 자기 영지가 공격 목표가 될까봐 잔뜩 달아오른 모리 데루모토가 되도록 우리 입맛에 맞는 사자를 골라 보내느라 애 좀 먹었겠구나 싶었다. 물론 내 쪽에서 그 사정을 감안해 줄 필요는 전혀 없지만.
전쟁 전이였다면 선뜻 받아들였겠지. 하지만 지금은 솔직히 좀 그렇다. 모리군은 경인년에 침공한 일본군 중에서 확실한 주력이었다. 솔직히 그거 하나뿐이었다면 또 모르겠다. 전라도 초토화 작전을 실행한 장본인, 고바야카와 다카카게가 모리 데루모토의 작은삼촌이다.
성이 다르지 않냐고? 나도 처음엔 이해가 안 갔는데, 알고 보니 다카카게는 어릴 때 양자로 고바야카와 가문에 들어가서 대를 이었다. 적자 셋 중에서 장남인 데루모토의 부친은 본가를 잇고 둘째인 모토하루는 깃카와 씨, 셋째인 다카카게는 고바야카와 씨를 계승했다고 한다.
본래야 다른 집안이지만, 이 세 가문은 지금은 사실상 한 집안으로 봐도 무방하다. 그러니 모리 데루모토를 좋게 봐줄 생각이 들기 힘들다. 고바야카와 놈의 목을 스스로 잘라다 바치고 오사카 공격의 일익을 담당한다면야 또 모르겠지만, 절대로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일단 불러올려 보아라. 육로로 오면 혹시 백성들한테 들켜서 도성에 도착하기도 전에 맞아 죽을지 모르니, 수로로 데려오라.”
“예, 전하.”
모리 데루모토도 나름대로 각오를 크게 하고 보낸 밀사다. 어디, 무슨 소리를 하는지 직접 들어나 보자. 최소한 일본 내 사정을 파악하는 데는 도움이 될 테니까 말이다. 물론 내 앞에 데려오기 전에 몸수색은 철저히 해야겠지.
– 9 –
“방포!”
호령과 함께 하얀 연기가 일시에 뿜어져 나갔다. 수백 개나 되는 총구가 불과 연기를 뿜고 납탄 수백 발이 표적을 향해 날아갔다. 길게 펼쳐 걸어놓은 삼베가 구멍투성이가 되었다.
“어떻습니까, 대감.”
권율은 마땅찮은 얼굴로 통제관이 걷어온 표적을 살폈다. 분명 조총수 300명이 일제히 총을 쏘았건만, 삼베에 뚫린 구멍은 60여 개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역시 솜씨가 떨어지는구먼.”
“어쩔 수 없습니다. 최근에 새로 초모한 군사들이라 미숙한 데다, 들려준 총도 모두 강선을 파 넣지 않은 민짜 조총이니까요. 게다가 새 총은 아무래도 좀 흔들립니다.”
비변사에서 논의 끝에 원정군 규모는 18만으로 확정되었다. 최소 필요한 인원이라고 의견을 올렸던 15만에다가, 여유분으로 2할을 덧붙인 것이다.
정규군으로 보낼 기병 1만은 오도리와 남도 기병으로 충당한다. 보병은 도감군 3만, 각 도 병영군 3만, 각 도에서 모집한 복수군이 6만에 수군이 4만 명이다. 수군에는 격군과 등선군이 들어간다. 그 외에 본주(本州, 혼슈) 서부를 노략질하도록 풀어놓을 야인 기병이 1만 기다.
도감군은 전란 이후 재편하면서 인원을 6만 명까지 늘렸다. 병영군 역시 북방을 제외하고도 각 도에 1만 명 정도는 확보해 놓았다. 그런데도 반가량만 파견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정예군을 몽땅 바다 건너로 빼돌렸다가 혹시 흉사(凶事)가 터지기라도 하면 어쩌겠는가?”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대감.”
아무리 풍년이 연이어 태평성대가 왔고 백성들이 고복격양(鼓腹擊壤)하고 있다지만, 행여나 어떤 대역무도한 불평분자가 있을지 모른다. 과거에 벌어졌던 수많은 변란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때 일어났다.
“도성에 정예군 3만, 각 도에 3~4천 정도는 남아 있어야지. 그래야만 무슨 난리가 일어나도 바로 대처할 수 있을 게 아닌가. 바깥에 있는 적들이 우리를 허술하게 보지도 않을 것이고.”
‘바깥에 있는 적’이라고 하면 사실상 건주위밖에 없다. 몽골은 속말주와 부여주에 주둔하는 북방군으로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 하지만 건주위가 단독으로 혹은 몽골과 결탁하여 평안도 방면으로 기습적으로 들이닥친다면 경군이, 각 도 병영군이 절실하게 필요해진다.
비록 자신이 누르하치의 둘째 아들을 직접 양육하고 있지만, 권율은 그 야인 추장이 완전히 무방비 상태로 뒤를 드러낸 조선의 뒤를 건드리지 않으리라고 보지 않았다. 틈이 보이면 분명 치고 들어올 놈이었다.
‘아들 같은 건 새로 낳으면 그만이라고 여길 작자지.’
북방 소식은 지금도 여러 경로를 통해서 꾸준히 조정으로 들어오고 있다. 지금 누르하치는 최소한 6명이 넘는 첩을 거느리고 있고, 다이샨 밑으로도 이미 아들을 8명이나 더 낳아 놓고 있다. 모두 건강하게 잘 크고 있다니, 웬만하면 후계가 끊길 일 같은 건 없다고 봐도 좋았다.
후계가 그쯤 단단해지고 보면 누르하치도 몇 년째 얼굴을 보지 못한 둘째 아들 정도는 별로 고민도 하지 않고 서슴없이 버릴지도 모른다. 누르하치 같은 인간과 화친을 오래 유지하자면, 역시 그놈이 넘볼 만한 빌미를 주지 않는 게 중요했다.
“헌데, 새 총이 쏠 때 흔들린다고?”
“그렇습니다, 제조 대감.”
원정군에 투입할 군사들에게 새로 지급한 조총은 화승으로 화약에 불을 붙이는 보통 조총, 즉 화승총이 아니다. 부싯돌로 철편(鐵片)을 때려 점화하는 수석식 총이다. 그동안은 제작비가 비싸고 부싯돌 조달이 어려워서 기병용 권총 일부 외에 정식으로 채택하지는 못했었다.
“오도리 기병들은 총신이 짧은 권총으로도 잘만 백발백중으로 맞히던데?”
“그놈들이야 말을 타고 활을 쏘는 데 도통한 자들이니까 그렇겠지요. 그 정도 요동치는 건 오도리들에게는 흔들리는 것도 아닐 겁니다.”
지금은 훈련원 판관으로 도성에서 모집한 복수군 훈련을 맡은 김응서가 차분하게 설명했다. 그는 이 임무 때문에 군기시에서도 한동안 있었다고 했다. 새 총 구조를 배우느라 말이다.
“수석총이 잘 안 맞는 이유는 용두(龍頭)에 물린 부싯돌이 귀판(龜板)을 때려 불을 일으킬 때 생기는 충격 때문입니다. 화명(火皿)에 불을 붙이려면 귀판을 세게 쳐야 하는데, 흔들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화승총이랑은 다르지요.”
“하긴, 화승총이야 화약이 드러난 화명에 불붙은 화승을 살짝 대기만 하면 불이 붙지.”
권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화승총은 가격도 싸고 격발기 구조도 간단하다. 유럽에서 온 대장장이들이 없었다면 조선 장인들만으로는 복잡한 수석총을 아예 양산하지 못했으리라.
기계장치만큼이나 중요한 요소인 부싯돌 역시 서양인들 덕을 보았다. 조선에서는 질 좋은 부싯돌이 대량으로 산출되지 않는다. 마닐라에 있는 스페인 식민지에서 황철석을 수입해다 쓸 수 있게 되면서 비로소 수석총을 양산할만한 부싯돌이 확보되었다.
기계장치 제작과 부싯돌 수입에는 모두 돈이 들어갔다. 명중률도 떨어졌다. 하지만 새 총을 채택함으로 인해 얻은 효과도 확실했다.
“확실히 실화(失火)를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점 말고 다른 장점도 보이긴 보이는군. 방포할 때 화구에서 옆으로 튀는 불꽃이 화승총보다 작으니, 바짝 붙어서 설 수 있는 점이 좋네.”
화승총은 화승을 잡은 용두가 화약접시(화명)에 닿을 때 화약이 폭발하듯 불이 붙는다. 바로 옆에 사람이 서 있으면 화상을 입을 만큼 큰 불꽃이다. 그래서 안전거리를 1보(120cm) 정도 두도록 규정하고 있고, 당연히 병력의 밀집도가 떨어진다.
하지만 수석총은 그 불꽃이 확실히 작았다. 그래서 조총수들을 훨씬 밀집해서 배치할 수 있고, 그만큼 공간을 절약할 수 있다. 이로써 적이 돌입해 왔을 때 진형이 무너질 공산도 훨씬 낮아진다. 밀집대형에서 일제히 총창을 내밀어 적을 저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화승이 습기를 먹을 염려가 없는 점도 좋고, 싸움 도중에 불이 꺼져서 다시 붙이느라 애쓸 필요가 없는 점도 좋네. 여차하면 거꾸로 들고서 적에게 휘둘렀다가도 다시 쏠 때는 용두만 젖히면 되니 화승총보다 훨씬 편하고.”
화승총도 몽둥이로 쓰려면 쓸 수는 있다. 하지만 백이면 백 날아갔을 화승을 용두에다 새로 물리고 불까지 붙여야 한다. 하지만 수석총의 용두는 나사로 단단히 조여놓기 때문에 웬만한 충격으로는 부싯돌이 빠지지 않는다.
“아직은 경군에만 수석총이 있다 하였지?”
“그렇습니다, 대감. 올해 안에 삼남으로 내려보내 각 군영에 배부할 예정이라 들었습니다.”
이번 동정에 투입할 조총수는 4만으로 어림잡고 있다. 그중에서 강선을 판 화승총을 장비한 도감군 조총수가 1만, 나머지 3만은 민짜 수석총을 드는 병영군과 복수군이다. 수군 중에서도 조총수가 있지만, 이들 역시 화승총을 든다.
수석총 3만 정도 완전히 신품을 만드는 게 아니다. 수발식 격발기만 새로 만들어서 기존에 사용하던 화승총 총열에 붙이는 방식으로 만든다. 완전히 새 총 3만 정을 만들기에는 비용도 비용이고, 시간이 없었다. 강선총을 늘리지 않는 이유 역시 같다.
현재까지 준비한 수석총은 약 1만 정. 올해 안에 2만 정을 더 준비해서 목표량을 달성한다. 전쟁 이후에도 개조를 계속해서 모든 군용 조총을 수석총으로 교체하는 게 최종 목표다.
다만 이는 장기적인 계획일 뿐,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는 권율 자신의 눈에 차지 않는 사격 명중률이었다. 동정을 시작하기 전에 어떻게든 해결해야 했다.
“도감군처럼 생각하면 안 되겠지. 어쩔 수 없네. 더 가까이 다가가서 쏘는 수밖에.”
오군영에 속한 도감군은 지금 120보 거리에서 총을 쏜다. 강선조총을 쏘면 400보 떨어진 사람을 맞힐 수 있다지만 그건 정말 명사수들에게나 해당하는 이야기고, 대열을 이뤄 싸움에 임하는 보통 군사들은 이 정도가 한계다. 그것도 몇 년씩 총을 만지고 숙달된 이들 이야기다.
“숙련도 때문에 멀리서 쏴서 안 맞으면 가까이 가서 쏴야지. 왜조총은 50보 거리에서 쏘니, 우리 군사들은 60보 거리에서 쏘도록 하게. 그 정도만 해도 적보다 훨씬 멀리서 쏘는 거니까 사격전에서는 우리 군사들이 훨씬 유리할 걸세.”
지난 전란 중에는 강선 없는 조총도 100보를 기본 사격 거리로 했다. 하지만 이것도 역시 몇 년씩 군사로 있으면서 총에 익숙한 군사들이었기에 가능한 거리였다. 지금 복수군에, 또한 병영군에 있는 숙련도 낮은 군사들에게는 어려운 과제였다.
“그리고 해결할 문제가 하나 더 있군. 총이 흔들린다 했지?”
“그렇습니다, 대감.”
“자네 생각에는 어떤가. 팔에 힘을 주어 총을 꽉 잡으면 용두가 같은 힘으로 귀판을 때려도 총이 훨씬 덜 흔들리지 않겠는가?”
“그야 그렇겠지요.”
“자네가 나와 같은 생각이라니 기쁘네. 그럼 오늘부터 모든 군사에게 조석으로 이 단련법에 따라 팔을 단련하라고 가르치게.”
권율은 손에 들고 있던 물건들을 따라오던 하인에게 건네고 띠돈을 매어 허리에 차고 있던 환도도 풀어서 넘겼다. 그리고 전립과 철릭도 벗어서 건네더니 난데없이 땅에 엎드렸다.
“대, 대감! 무슨 행동이시옵니까?!”
“잠자코 보고만 있게.”
권율은 땅에 완전히 엎드린 게 아니었다. 두 손바닥을 땅에 대고, 오직 발끝과 손바닥으로 곧게 편 몸을 지탱했다. 김응서를 비롯한 훈련원 군관들이 입을 떡 벌리고 쳐다보는 중에 권율이 천천히 팔꿈치를 폈다가 굽혔다. 그러자 몸이 그에 따라 위아래로 오르내렸다.
“이것은 팔굽혀펴기라고 하네. 일전에 주상께서 이 단련법으로 몸을 단련하시는 모습을 내 직접 뵈었었네.”
10번 몸을 움직이면서 군관들에게 시범을 보인 권율이 자리에서 일어나 설명했다. 군무를 논할 일이 있어 입궐했더니 마침 임금은 경무대에 올라가 있었다고 했다. 자신이 쉬지 않고 몇 번이나 몸을 올리고 내릴 수 있는지 소의 이씨 앞에서 과시하는 중이었다.
“군사들에게 가르쳐도 좋을 것 같은데 왜 퍼뜨리지 않으시냐고 여쭈었더니, ‘다들 밭일하고 나무를 패며 힘을 충분히 키웠을 텐데 경은 뭐하러 이런 귀찮은 일을 시켜서 군사들을 괴롭게 만들려고 하는가? 이런 건, 밖에 나가지 않는 나 같은 서생의 단련법이다.’라고 하시더군.”
그런데 군사들이 팔 힘이 부족해 총이 흔들린다니, 전하의 뜻은 아니지만 이런 방법이라도 써야 하지 않겠느냐는 게 권율의 천연덕스러운 설명이었다.
“조총수뿐 아니라 다른 군사들도 모두 이 단련법을 써서 조석으로 팔 힘을 단련하게 하게. 꾸준히 하면 팔뿐만이 아니라 다른 부위도 골고루 튼튼해지니, 아침과 저녁에 각각 100회씩은 해야 할 것이야. 물론 군사들만이 아니고 장수들도 마찬가지일세.”
훈련원 군관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권율은 짐짓 못 본 척하며 시선을 돌렸다.
“음, 그러고 보니 병판 대감에게 일러서 각 지방 군영에도 같은 지시를 내리라고 해야겠군. 이런 좋은 단련을 경군에서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무, 물론입니다.”
이미 왕명으로 매일 아침 5리씩 뛰고 나서 일과를 시작하라는 지시가 내려와 있다. 여기에 팔굽혀펴기라는 해괴한 방침이 더해졌다. 이제 또 뭐가 떨어질지, 김응서를 비롯한 군관들은 우려를 떨칠 수가 없었다.
– 10 –
“주고쿠 일대는 도탄에 빠져 있습니다. 전쟁 때문에 막대한 인력과 물자가 고스란히 사라진 데다, 일손이 부족해서 몇 년째 농사를 망치고 있는 고장이 한둘이 아닙니다.”
모리 데루모토의 사자, 쿠마가이 모토나오는 전력을 다해 어려움을 호소했다. 지금 이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건 나 외에는 열 명이 채 안 되는 비변사 핵심 인사들뿐이다.
모리가 보낸 밀사를 은밀히 도성으로 보내라는 내 명령을 받은 정걸은 최대한 승조원 수가 적은 배를 골랐다. 남해안 일대에서 화물 운반에 종사하면서 선원들을 훈련하던 플류트선 한 척이 뽑혔고, 모토나오와 측근 부하 3명이 그 배를 타고 도성으로 왔다.
도성에 온 모토나오 일당은 금위사 안에 수용시켰다. 그리고 몇 가지 사전정보를 받은 뒤에 비로소 궁으로 불러들였다. 당연히 왜인으로 보이지 않도록 변장시켜서 들였다.
“지금 저희가 해야 할 일은 노부나가 공이 주도했던 지난 원정 건에 대해 전하께 진심으로 사죄를 드리고, 두 나라 사이의 관계를 원래대로 회복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도요토미는 오직 자신의 권좌를 위해서 전쟁 상태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덧붙은 이야기가 히데요시의 권력욕이었다. 권좌에 오르는 명분이었던 노부나가의 손자, 히데노부를 그사이 뒷전으로 밀어버리고 자신과 자신의 새 양자를 그 자리에 올리려고 획책한다는 것이다.
“노부나가 공의 뜻이었다면서 조선을 무릎 꿇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주제에, 노부나가 공의 정당한 후계자에게서 영지와 지위를 빼앗아 자신이 독식하니 어찌 이를 용납하겠습니까?”
그리고 모리 가문이 지금 어떤 고난을 겪고 있는지 줄줄이 늘어놓기 시작했다. 농사를 지을 일손도, 배를 몰 일손도 부족하고 특히 산음(山陰, 동해에 면한 주고쿠 북쪽) 지방은 조선에서 약탈하러 나온 남만선 때문에 지옥을 보고 있다나. 그런데 듣다 보니 지쳤다.
“그래서 너는 무슨 말을 하고 싶으냐? 네 주인이 내게 청하고 싶은 바를 그대로 말하라.”
사설은 됐다. 히데요시 욕은 나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보다는 모리 데루모토가 도대체 무슨 목적을 이루려고 히데요시에게 들킬 위험을 무릅쓰면서 내게 밀사를 보냈는지가 훨씬 더 궁금하다.
모토나오는 내가 재촉하자 잠시 당황하는 듯했다. 그러다가 어차피 자기가 여기 온 이유가 그 말을 전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느냐고 스스로를 다잡는 듯 깊은 숨을 쉬더니,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전하께서 원정을 감행하실 때를 알려주신다면…제 주군께서는 최선을 다해서 내응하겠다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