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629
2부 4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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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원 마당, 아니 연병장은 함성으로 떠나갈 듯했다. 각 군영에서 나온 대표들이 뒤엉켜서 몸을 부딪치다가 공을 발로 차서 날릴 때마다 함성이 일었다. 그리고 날아간 공이 골문, 아니 구문(毬門)을 통과해서 그물이 출렁일 때면 더 큰 함성이 터져 나왔다.
“전하, 용호영이 공을 넣었사옵니다!”
내관이 흥분해서 소리를 쳤다. 이런, 임금 앞에서 감정이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다니. 역시 아직 젊은 내관이라 저런 꼴도 보이는구나. 저기 상선이 두 눈에 쌍심지를 곤두세우는 모습이 보인다. 저 녀석, 이따가 화장실 앞으로 불려가겠네.
“그래, 나도 보았느니라.”
사실 나는 원래 축구를 별로 안 좋아했다. 애초에 뛰어다니는 운동보다는 그 자리에 서서 할 수 있는 검도 같은 운동을 좋아했던 것도 있고, 축구를 하자면 필연적으로 상대편 선수랑 몸싸움을 벌여야 하는 것도 싫었다.
결정적으로 내가 축구를 싫어하게 만든 건 군대에서 억지로 축구를 해야 했던 경험이었다. 고참들은 갓 소대에 배치받은 나를 골키퍼 자리에 세웠고, 그 뒤로 10분 동안 나는 정확히 17골을 먹었다. 그날 밤에 겪은 일은…젠장, 망각하고 싶다.
하여튼 그래서 난 축구를 안 좋아하고, 조선에 와서도 딱히 축구 리그 따위를 만들고 싶은 생각도 안 들었다. 이미 존재하는 거라면야 뭐 방해만 안 하면 그만이지만, 아예 기반이 없어 밑바닥부터 내가 직접 만들어야 하는 거라면 굳이 내가 싫어하는 걸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공이랑 골대만 있으면 즐길 수 있는 축구도 귀찮아서 안 만들었는데 방망이나 글러브, 라켓 같은 소도구가 필요한 야구나 테니스 같은 건 당연히 할 리가 없다. 농구나 배구도 별로 많은 장비는 필요 없지만 내가 안 좋아하니까 굳이 만들 필요를 못 느꼈고.
원래 영국에서는 축구가 마을 대항전 같은 역할을 했다지만, 조선에서도 같은 역할을 하는 스포츠는 이미 있다. 도대체 언제 시작되었는지 모르겠지만 확고하게 터를 잡은 민속놀이가. 뭐냐고? 석전이지 뭐긴 뭔가(…).
신나게 때리고 짓밟고 던지는 석전에 익숙한 조선인들이 현대의 ‘신사적인’ 스포츠 따위를 놓고 재미있어할 것 같지도 않고, 내가 그런 단체운동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으니 스포츠 보급 문제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무종 때나, 지금이나 말이다.
체력 증진에 유용하네 어쩌네 해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구성원의 90% 이상이 육체노동으로 먹고사는 농업사회에서 ‘체력을 키우기 위한 운동’이라는 것부터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다. 굳이 일부러 공 몰고 뛰어다니지 않아도 다들 땅 파고 행군할 체력은 기본적으로 있다.
그러던 내 생각이 바뀐 건 일본 원정을 준비할 기간이 좀 촉박하다는 문제가 컸다. 권율이 멋대로 나선 탓이기는 했지만, 일단 도수체조를 보급하고 나니 이 짧은 시간 동안 효과를 볼 수 있을 다른 쓸모있는 체육활동은 또 뭐가 있을까를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됐다.
‘규칙이 간단하고 도구가 필요 없으면서 각 군영 사이에 경쟁심을 불러일으켜 신병이 많이 섞인 부대원들을 빨리 하나로 만들 수 있는 단체운동은 뭐가 있을까?’
지난번 살곶이 벌판에서 한 것처럼 경마나 활쏘기, 사격, 씨름 같은 것도 군영별 대항전이 벌어지기는 한다. 하지만 이런 시합은 결국 개인전이다. 명사수나 명포수, 명기수와 천하장사 발굴에는 좋겠지만 부대원들 간의 동질감을 끌어올리고 단결력을 키우는 효과는 약하다.
이 조건을 모두 만족하자면 역시 축구밖에 없었다. 석전? 석전 역시 모든 조건을 충족하나, 부상자가 다발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출정하기도 전에 엄청난 병력 손실이 발생할 게 뻔한데 어떻게 군영 안에서 석전 따위를 벌인단 말인가.
단결심을 충족시킬 수 있는 전통적인 군대 스포츠로 격구도 있기는 하다. 격구라면 말 타고 하는 폴로 비슷한 플레이만 머리에 떠올리기 쉬운데, 선수가 걸어 다니면서 하는 도보격구도 있다. 게이트볼 비슷한 격봉(擊棒)과 필드하키 비슷한 장치기가 있다.
문제는 말을 탔건 안 탔건 위험하기 짝이 없다는 거다. 공을 치는 채는 언제든지 상대편을 후려갈기는 구타용 곤봉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기병들이야 기마술을 익힐 겸 격구를 계속 시킨다고 쳐도 보병들에게 단체활동이라고 격구를 시키는 건 석전을 시키는 거나 마찬가지다.
기존에 있던 공차기 놀이인 축국(蹴鞠)과 헷갈리지 않게 하려고 새 공놀이의 이름은 확실히 축구(蹴球)로 했다. 한 팀 인원수는 19명이고, 대신 경기장 넓이는 현대 축구보다 더 넓혔다.
인원을 늘린 건 참여하는 인원수를 늘리고 그만큼 조직력과 작전의 비중을 중요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대인원이 벌이는 난투를 보고 싶어서가 절대로 아니다! 훌리건의 원조, 영국에서는 지금도 축구 한판 한다면 어떤 제한도 없이 마을 남자 전체가 뛰겠지? 폭력이 난무하고?
그에 비하면 우리 축구는 시시할 만큼 얌전할 거다. 규칙도 폭력을 가능한 줄일 수 있도록 제정했다.
이게 내가 정한 규칙 전부다. 오프사이드 같은 복잡한 규칙은 다 빼버렸다. 뭐, 선수 숫자가 19명이나 되니까 웬만해서는 오프사이드가 터질 일도 없겠지만. 눈을 찌르거나 깨물지 말라고 규정하지도 않았는데, 설마 이런 짓을 해도 괜찮으리라고 생각하는 멍청한 놈은 없겠지.
공은 처음에는 돼지 오줌보를 사용했다. 그런데 너무 금방 망가져서, 등나무를 공 모양으로 엮고 겉에 가죽을 씌워서 다시 만들었다. 직접 차 봤는데 제법 잘 나갔다.
“용호영이 또 한 점을 얻었습니다, 전하!”
저 내관 놈, 상선이 이젠 자기를 대놓고 노려보고 있는데도 눈치를 못 채는구나. 용케 저런 둔한 놈이 대전까지 들어왔네. 아니면 축구경기 보고 흥분해서 저러나? 현대였으면 유튜브로 직접 중계한다고 난리를 쳤겠군.
“그래, 이 재미에 축구를 보는 거지.”
하긴, 연병장을 둘러싼 용호영과 수어청 군사들이 전부 흥분해서 날뛰고 있는데 그 흥분이 이 내관에게까지 전염됐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그럴 수도 있지. 나도 응원은 좋다. 응원이 좋다기보다는 엄밀히 말하면 응원하는 사람들을 보는 게 재미지만.
내가 있는 단상 밑에서 꿀꿀거리는 거세한 양돼지 30마리가 이 혼란을 더 크게 만드는 데 분명히 한몫하고 있을 거다. 경기장에 웬 돼지냐고? 그야 이긴 팀에 줄 상품이지.
요즘 오군영은 옛 도감군 ? 오군영으로 개편한 지도 한참이 지났으니 나도 이젠 말버릇을 바꿔야지 ? 사이클에 맞춰서 6일 훈련하고 하루 쉬는 게 관습으로 정착했다. 내일은 남만절, 즉 일요일이니 포상으로 받은 돼지고기로 포식하고 푹 쉬면 되는 거다.
“어허, 어허! 저자가 격술로 상대 선수를 걷어찼습니다! 벌써 세 번째입니다!”
“판관이 적발하였으니 규정대로 벌을 주면 된다. 네가 왜 그리 흥분하느냐?”
아직 규칙대로 하는 축구시합이 낯선 녀석들이 많구먼. 격술(擊術)은 우리 군사들이 무기를 잃었을 때 맨손으로 싸울 수 있도록 가르치기 시작한 격투술이다. 그걸 여기서 써먹다니.
다만 이 격술은 내가 군대에서 익힌 태권도랑은 아무 관련도 없다. 의무적으로 단증 따느라 폼 잡는 법만 가라로 익힌 군대 태권도가 실전적일 리가 없지 않은가? 특공무술이라면 혹시 모르겠지만 그런 건 배운 적도 없으니, 이 시대에 실제로 쓰는 무술을 여럿 섞었다.
먼저 택견. 전국에서 한 가닥 하는 택견꾼들을 몽땅 모아들였다. 지역마다 수박이니 까기니 지칭하는 이름이 다 다르긴 하더라만, 뭐 맥이야 비슷하지 않겠나. 막싸움을 잘하는 게 아닌, 정말 기술과 체계를 갖춘 자들을 최대한 찾았다.
다음은 조타술(組打術). 배를 움직이는 조타(操舵)와는 우리말 발음이 같을 뿐인 기술이다. 이건 갑옷을 입고 싸우는 일본식 격투술로, 왜별기에서 쉽게 교관을 구할 수 있었다.
골라서 뽑은 택견, 조타 고수 300명을 모아놓고 지난 2년 동안 계속 대련과 연구를 시켰다. 그렇게 해서 실전적인 군용 무술인 ‘격술’을 만들었다. 갑옷을 입은 상대에게 타격을 주는데 별 효과 없는 주먹질 같은 건 최대한 빼고 관절기나 발차기 중심으로 기술을 구성했다.
발차기도 하이킥으로 헤드샷을 날려서 단방에 쓰러트리고 그런 거 아니다. 투구를 쓴 놈이 킥 한 방 맞는다고 바로 다운되지도 않고, 이쪽도 갑옷 입은 몸으로 그만큼 다리를 올리기도 힘들다. 도리어 넘어지기만 쉽다.
격술에서 발차기는 적의 다리를 차서 균형을 잃고 자빠지게 만드는 용도다. 적이 쓰러지면 그대로 올라타고 관절을 꺾거나 단도로 갑옷 틈을 찌른다. 그러라고 가르친 기술을 축구에서 상대편 선수를 넘어뜨리는 데 쓰다니, 이런 경을 칠 놈들!
다행히 판관들은 반칙을 저지르는 선수가 나올 때마다 놓치지 않고 호각을 불었다. 임금이 친견하는 시합이니, 어찌 확인이 소홀할 수 있겠는가.
격술은 전국에 교관을 내려보내서 올해부터 가르치게 했지만, 축구는 아직 그렇게 퍼뜨리지 못했다. 도수체조처럼 오군영에서만 하고 있다. 아무래도 훈련보다는 유희에 가까운 운동이니 어쩔 수 없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는 각 도 병영이 팀을 구성해서 붙는 리그전을 벌여볼까?
음, 왠지 전국대회가 되면 치어리딩도 가능할 것 같다. 물론 현대 한국에서 하듯이 ‘헐벗은’ 치어리더는 400년은 있어야 용납되겠지만, 기생들이 나와서 풍악을 연주하며 춤추고 노래하는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겠지? 어느 군영에서 가장 미인을 데려오는가도 다툴 수 있….
“또 공이 들어갔사옵니다, 전하! 이번엔 수어청이옵니다!”
…이 호들갑쟁이 놈은 다시는 축구장에 데려오지 말아야겠다. 뭔 생각을 할 수가 없네.
치어리더 조직에 관한 구상이 끊긴 김에 점수판을 보니 지금 수어청 대 용호영의 스코어는 2대4다. 자, 과연 오군영 소속 부대들 사이에 벌어진 첫 정식 시합의 승자는 누가 되려나.
오늘 시합의 인기를 보고 매주 토요일에 한 번씩 군영 간 시합을 시킬까 했는데, 지금 내가 직접 보는 반응만 해도 충분히 열광적이다. 계속 시켜도 되겠지 싶다. 일반 구경꾼도 받고.
근데, 혹시 경기 결과를 놓고 돈 걸고 도박하는 놈들 나오지 않을까? 민간에서 그 짓 하는 놈들 나오기 전에 내수사에서 먼저 스포츠토토 사업을 시작해버릴까? 경마에서도 마권 팔고?
이건 군비를 마련하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다만 병조에서 직접 나서면 윗선에서 부당이득을 얻겠다고 승부를 조작하려는 시도가 너무 쉬워질지 모르니 내수사에서 실행하는 거다.
문득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안 그래도 올해부터 담배를 민간에다 팔기 시작한 터다. 담배 전매에 독점 도박장까지, 정말 ‘나라님’이 이런 식으로 백성들 주머니를 털겠다고 나서도 되나 싶다. 담배야 스트레스 해소에 가치가 있다고 치지만, 도박은 정말….
“현대 물이 가시지 않은 예전 상희였으면 미쳤냐고 펄쩍 뛰었겠지….”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입 밖으로 나왔다. 다행히 바로 지금 용호영 팀이 한 골을 더 넣는 바람에, 훈련원 전체가 함성으로 떠나갈 지경이라 아무도 내 말을 듣지는 못했다.
해시계를 보니 남은 시각은 이제 1각(15분), 3점 정도는 수어청 쪽이 기를 쓰면 따라잡을 수도 있는 점수 차다. 자, 과연 오늘 시합의 결말은 어떨까. 200근(120kg)짜리 돼지 30마리가 어느 군영으로 끌려가서 목이 따이려나?
조선 토종돼지와 비교가 안 될 만큼 덩치가 크고 기름진 이 양돼지 ? 라고 하지만, 사실은 유럽종과 중국종의 교잡이다 ? 숫자가 늘면서 경기도 일대에서 이 돼지를 분양받아 사육하는 농가가 이미 많다. 이제 장시를 통해 전국으로 퍼지는 건 시간문제다.
덕분에 궁중에서도 이 기름진 돼지고기를 활용한 서양 요리가 나오게 되었다. 다만 이름은 죄다 내게 익숙한 영어식 이름이 아니라 스페인어지만, 어쩌겠는가? 그래도 영국 요리가 먼저 들어오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새로 만든 스페인식 돼지고기 소시지 맛이 괜찮기에 이순신과 권율에게 각각 한 상자씩 보내줬다. 이제 앞으로 누구한테 고기를 내리고 싶으면 소시지나 햄을 보내야겠다. 소금에 절이고 훈제까지 해서 웬만해서는 가다가 상하지 않을 테니 얼마나 좋은가?
한참 생각하고 있는데 또 함성이 울렸다. 어이구, 수어청이 한 점 또 따라잡았구나. 반칙은 하지 말고 끝까지 한번 노력해 봐라. 여기 앉아서 봐 줄 테니.
– 20 –
“이 순대의 이름이 무엇이라고?”
“초리소(椒理燒)라고 하옵니다. 돼지고기에 남만초(椒)를 넣고 요리(理)한 뒤 창자에 채우고, 연기에 쐬어 익힌(燒) 음식이옵니다.”
“그런가. 서반아 순대는 개고기를 김에 찌는 우리 순대와는 다르구나.”
순대는 개고기를 잘게 다져서 개 창자에 채워 넣은 뒤 솥에 쪄서 만든다. 개가 소처럼 귀한 짐승은 아니지만, 고기에서 나는 냄새를 없애기 위해 갖은양념을 하고 또 창자 속에 빈자리가 생기지 않게 꽉꽉 채워야 하므로 만들기 쉬운 음식은 아니다.
이순신은 처가가 워낙 부자다 보니 개고기 순대 정도 음식은 어렵지 않게 접했었다. 하지만 돼지고기로 만든 순대라니, 이런 건 처음이었다.
“전하께서 이르시기를, 이 초리소는 건포(乾脯)만큼 오래 보존할 수 있다 하시면서 동정에서 군사들에게 먹일 전량도 건포만 준비하지 말고 이런 보존육도 보내겠다 하셨습니다. 육군뿐만 아니라 수군에게도 이런 보존육을 내려 선상에서 먹는 것을 더 풍족하게 하겠다 하셨습니다.”
당연하겠지만 육군이건, 수군이건 조선군에서 가장 중요한 군량은 쌀을 비롯한 곡식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식은 간장이다. 밥에다가 간장만 뿌려 비벼 먹는 경우도 흔하다.
여기 변화가 생긴 건 무종 시절부터다. 무종대왕께서는 군사들이 힘을 내려면 고기를 아주 조금이라도 먹어야 한다고 하시며 군량에 어포를 넣게 하셨다. 그리고 금상께서는 어포뿐만 아니라 육포도 넣게 하시고, 채소절임도 먹게 하셨다. 산 가축도 자주 내리셨다.
수군도 수영에 있을 때는 육군처럼 먹는다. 하지만 판옥선에 가축을 싣고 다니면서 먹기는 어려우므로 말린 어포나 육포를 좀 더 많이 먹는다. 먼 바다로 나가는 남만선도 싣고 다니는 군량은 쌀과 간장, 건포가 중심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분명 서반아식 순대가 건포보다 맛도 좋고 군사들도 환영할 것운 분명했다. 다만 이순신은 한 가지 문제가 걱정되었다.
“전하께서 비변사에서 논의하지는 않으신 듯한데, 부식이 너무 많아지면 치중에 부담이 될 수 있다. 건포만 해도 몸을 튼튼히 하기에 충분한데, 굳이 이런 사치스럽고 무거운 음식물을 전선까지 보급할 필요가 있겠는가?”
“전하께서도 수군제조 대감께서 언급하신 문제를 염려하지 않으신 것은 아닙니다. 허나 그 정도 부담은 우리 수군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으리라 하시며, 우리 군사들에게 조금이나마 더 맛있는 음식을 먹임이 만백성의 어버이로서 행할 책무라 하셨습니다.”
“음, 알겠다. 경상좌수사, 귀공의 생각은 어떠시오?”
임금의 뜻이 그렇다면 이순신으로서는 할 말이 없다. 옆에 있는 이운룡에게 고개를 돌렸다.
“동정이 시작되면 치중을 운반하는 일은 주로 저희 수영에서 맡게 되겠지요. 지금 계획하고 있는 운송량을 감안하면, 부식 수송을 위해 배 몇 척을 더 할애한다고 해도 큰 부담은 되지 않습니다. 대감께서도 아시겠지만.”
잠시 말을 멈춘 이운룡이 얼굴 가득 미소를 띄웠다. 하지만 그 미소는 즐겁고 유쾌한 것이 아니라 복수의 염이 서린, 무섭고 잔인한 미소였다.
“수송할 군량의 양은 현지에서 필요한 양에 결정적으로 좌우되지요. 소관이 생각하기에 왜 땅에 건너간 장수들이 경인년의 왜군처럼 스스로 군량을 구한다면 우리가 보급선이 부족하여 곤란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왜국에도 곡식이 있고 소와 말과 개가 있지 않습니까?”
경인년에 건너온 왜군은 조선에서 엄청난 약탈을 저질렀다. 지금 이운룡은 그 복수를 위해 우리도 왜국을 약탈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 것이다.
“잘하면 쌀 한 톨도 안 가져가도 될지도 모릅니다. 몽땅 빼앗아서 먹으면 되니까요.”
“왜적이 그런 생각으로 쳐들어왔다가 우리 땅에서 굶주려 맥을 못 추게 되었지.”
이순신은 평온한 표정으로 이운룡이 내세운 논리의 약점을 지적했다. 전쟁이란 절대 행운에 의지해서는 안 되고,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갖춰둔 뒤에만 비로소 싸움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 이순신의 철칙이었다. 손자병법에서도 그리 가르치지 않던가.
“적지에서 얻는 군량은 어디까지나 여분이오. 귀공은 전리품으로 얻을 군량은 절대 계산에 넣지 말고 순수하게 우리 수군이 나를 수 있는 양만 계산함이 옳을 것이오. 나는 도성에 가서 전하께서 얼마나 많은 서반아 순대를 지급할 생각이신지 여쭙고 계획을 수정해야겠소.”
“예, 대감.”
여러 해 전부터 준비하던 일들이 최근 결과를 내기 시작하다 보니, 그 결과가 나오기 전에 수립된 계획에 자꾸 수정할 부분이 생겼다. 그래도 이 정도면 크게 중요한 사안은 아니니까, 논의해서 해결을 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