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630
2부 408화
– 21 –
“그래, 올해 남쪽 농사는 어떻던가?”
“비와 바람이 적절하고 햇볕이 따사로우니 오곡이 풍성하게 무르익고 있사옵니다. 전하께서 성덕을 베푸신 덕으로 하늘에서 이 모든 복록을 베푸시는 듯하옵니다.”
남도 순회를 마치고 올라온 이원익이 엎드려 고했다. 이원익은 키가 작기로 유명해서 겨우 다섯 자(150cm)도 안 되지만, 그가 조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왜소한 체구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우의정으로서, 훌륭한 내 왼팔 노릇을 하고 있다.
“올해도 풍년이 들듯하니, 내년 원정을 위한 군량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 보였사옵니다. 혹 갑자기 태풍이 10개쯤 몰려와 삼남 전역을 휩쓸지 않는 한 말입니다.”
“크, 크흠. 그대도 이항복 같은 농담을 할 때가 다 있군.”
아아, 툭 하면 사람 빵 터지게 만들던 이항복만 한 재담꾼은 조정에 없긴 하다. 그만큼 간 큰 사람도 없었고. 그렇다 보니 그 양반이 없는 조정은 솔직히 좀 심심하다.
견서사는 지금 어디쯤 있으려나? 2년 전에 유럽에 도착했다고 보낸 편지가 그쪽에서 보낸 마지막 소식이었다. 제사 문제는 잘 해결했을까? 필요한 기술인력은 잘 구했을까? 냉랭해졌던 광해군 부부는 금슬을 좀 회복했을까?
다행스럽게도 이제까지 유럽 역사는 별로 바뀌지 않은 듯했다. 그럼 지금 유럽에서는 종교 때문에 빚어진 갈등이 슬슬 최고조를 향해 가고 있을 테고, 그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와 조용히 살고 싶다는 이들도 있을 거다. 그런 이들을 조선으로 데려오면 그게 평화로운 기술이민이지.
이번에는 미처 이것까지 써먹을 생각을 못 했지만, 다음 견서사 편으로 유럽에서 이주자를 모집할 때는 조선이 ‘프레스터 존의 땅’이라고 신문 광고라도 터트려 볼까? 다만 우리 조정이 공식적으로 내는 건 아니고, 대행업자가 과대광고를 게재한 것으로 꾸민다면…음….
아니다. 괜히 그런 짓 했다가 광신자들이 몰려오면 그건 그거대로 골치가 아프다. 조용하게 살고 싶을 뿐인 평범한 사람들을 데려와야 나중에 후환이 적지, 가톨릭이건 개신교건 신앙에 목을 매는 그런 사람들 잘못 데려오면 조선에서 종교전쟁 터질라.
그보다는 과연 이항복이 입에 달고 살던 ‘양첩(洋妾)’을 과연 손에 넣었을지가 더 궁금하다. 출발 전에 한번 슬쩍 떠봤더니 기필코 ‘맛을 보고’ 오겠다고 호언장담을 하던데, 과연 주점의 하녀 따위가 아니라 제대로 된 미녀를 손에 넣었으려나?
하룻밤 인연으로 끝내지 않고 조선에 데려오는 데까지 성공할까? 머리카락은 금발? 갈색? 검은색? 설마 빨강머리는 아니겠지. 눈은 푸른색? 갈색? 검은색? 녹색? 피부는 우윳빛? 볕에 탄 갈색? 까무잡잡한 검은색?
부러운 생각이 들다 보니 별의별 망상을 다 한다. 솔직히 여자가 아쉬운 처지는 아니지만, 백인 미녀…라는 게 로망 중 하나인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내게는 이룰 수 없는 꿈이다. 견서사가 하나 구해 온다고 한들 그 여자가 내 취향에 맞는다는 보장이 없고, 초상화를 보고 데려온다고 해도 배가 2번 왕복하려면 4~5년은 걸린다. 그동안 그쪽에서는 사고가 안 생길까? 애초에 초상화가 실물 반명 100%라는 보장은?
문제가 되는 건 외모뿐만이 아니다. 나는 왕이고, 나와 어울리려면 상대도 웬만큼은 지체가 높아야 한다. 그런데 진짜 체통 있는 귀족 가문이 과연 딸을 먼 동방 이교도 군주의 하렘으로 보낼까? 내, 왕실의 진짜 공주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결국, 적어도 내 대에서는 후궁에 백인 미녀가 들어오기는 어렵다. 하려고만 하면 마닐라에 있는 스페인인들 중에 상대를 고를 수도 있겠지만, 그놈들이 여자 신분을 가지고 사기를 치지 말라는 법도 없으니. 알고 보니 얼굴은 예쁜데 원래 하녀더라…이러면 빡치지 않겠는가.
조선에 넘어온 직후, 연산군 때라면 출신이 하녀면 어떻고 사당패면 어떠냐, 품기만 좋으면 그만이지 했을 거다. 헌데 그 뒤로 20년을 넘게 왕으로 살다가 보니 생각하고 따지는 부분이 생겨났다. 기왕이면 유럽과 연결고리를 형성할 수 있는 여자가 좋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하녀, 노예, 평민 출신 여자? ‘조선왕이 우리 하녀 출신 여자한테 홀딱 빠져서 정신을 못 차린다더라’하는 가십거리나 되겠지. 그 후궁 소생 왕자가 유럽인을 만나기라도 하면 뒤에서 키득거리기나 할 테고. 그 꼴을 보느니 내가 양첩을 안 품고 만다.
약간은 아쉽지만, 자연스럽고 신분에 맞는 국제결혼 같은 건 내 대에는 아직 언감생심이다. 꼭 유럽이 아니라도 마찬가지다. 유독 일본하고는 임해군과 차차 커플로 어느 정도 가능성이 보였지만, 경인왜란으로 기회가 날아갔다.
내 자식 대에서는 내가 억지로 두 쌍 만들었지만, 그나마 이것도 제대로 된 혼인이 아니다. 하나는 귀화인과 혼인했으니 엄밀히 말하자면 국제결혼이 아니다. 다이샨과 상희 소생 옹주는 아직 성혼(成婚)한 것도 아닌 조율 단계니까 아직 됐다고 하기 겸연쩍은 상태다.
이대로 계속 역사가 반동 없이 진행되면 내 손자, 증손자 대에 가서야 진짜 국제결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혹시 아는가? 내 증손자가 베르사유 궁전 ? 한 80년쯤 뒤에 세워질 ? 안에서 프랑스 미녀를 옆에 끼고 눈을 뜨는 날이 올지?
아이고, 망상은 여기서 끊자. 이항복이 귀국하거든 그때 가서나 실컷 주고받고.
“그래, 남도에서 농사가 잘되고 있다니 다행이다. 음, 논산벌에서는 어떠하였는가? 농사짓는 백성들이 별말을 하지는 않는가?”
“아무 말 없이 잘들 농사짓고 있사옵니다. 근처 다른 농지보다 작황이 더 좋은 땅이라 하여 백성들이 더욱 열심히 경작한다고 합니다.”
“그렇지. 더 비옥…할 테니까.”
4년 전 그 들판에서 시체가 되어 누운 수만 명이나 되는 조일 양군 병사들과 말 수천 필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조선군 시신은 고향으로 보내고 왜군의 시체는 모두 태운 뒤 가까운 골짜기에 묻었지만, 그때 들판에 스며든 피와 뼛가루가 거름이 되었으리라.
그 땅을 가는 농민들은 어쩌면 정말 시신이, 유령이 두렵지 않을 수도 있겠다. 땅이란 본래 그 용도가 돌고 도니까. 밭이 되었다가 집이 되었다가 벌판이 되었다가 묘지가 되었다가 또 밭이 되는 거 아니겠는가? 그래, 그렇게 돌고 도는 거다. 너무 찝찝해하지 말자.
“그러고 보니 그대가 남도를 돌면서 처리한 송사가 3천 건이 넘는다고 하였지. 실로 고생이 많았다.”
“3,157건이옵니다.”
이원익이 남도를 돌아다닌 기간을 생각하면 하루에 15건씩은 처리한 셈이다. 그것도 원고가 후에 불만을 제기하지 않을 정도로 현명하게 처리하여 나중에 항소하는 자도 없었으니, 정말 이 양반도 유성룡이나 이항복, 이덕형 못지않은 먼치킨이다.
“전란 중에도 그렇고, 계속 외방으로만 돌려 미안하기 그지없다. 당분간 휴가를 줄 터이니, 집에서 글이라도 읽으며 두어 달 푹 쉬도록 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사가독서(賜暇讀書)라고 해도 되려나. 다만 이원익이 지방을 돌아다니느라 사실상 공석이던 우의정 자리를 이제 대놓고 비우는 셈이니, 새 우의정을 임명하기는 해야 할 듯하다.
우의정 자리는 단순히 서열 3위 관직이 아니다. 워낙 김명원이 군무를 잘 수행해서 그다지 큰 문제는 없었지만, 우의정은 본래 판병조사(判兵曹事)로서 무관의 인사와 병권을 감독하는 직위다. 동정을 1년 남짓 앞둔 상황에서 계속 비워둘 수는 없다.
“후임 우의정으로는 좌참찬 윤두수를 올린다. 원익은 내 명에 따라 쉬면서 원기를 회복하고 조정에 다시 들어오면 내 다른 자리를 내릴 터이니, 그동안 사전청에 들여놓은 양서(洋書)라도 읽으면서 쉬고 있으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윤두수는 유능한 행정가, 외교관이긴 하지만 군재는 그다지 없다. 그래서 병조판서는 못 할 사람이지만 우의정은 괜찮을 것 같다. 우의정은 군부 인사와 행정에는 개입하지만, 작전계획 수립에 직접 권한을 행사하지는 않으니까.
이원익은 유학자이면서도 실용적인 기술과 지식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어학에도 흥미를 보여 초년부터 중국어를 배워 익혔고, 서양과의 교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라틴어도 배우기 시작했다. 내가 딱히 시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이항복보다는 못할지 몰라도, 지금은 이원익도 라틴어가 능숙하다. 유성룡, 이원익, 이항복, 이덕형 같은 고관들이 몇 년 걸리지도 않아서 다들 유창하게 라틴어를 읽고 쓰고 말하고 하는 걸 보고 있으려니 이 양반들은 정말 천재인가 하는 생각밖에 안 든다. 쉬운 언어도 아닌데.
물론 번역된 양서는 읽어보지만 자기가 직접 라틴어를 익힐 생각은 안 하는 사람도 있다. 이산해, 윤두수, 윤근수 같은 사람들이다. 다들 한 문장 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새로운 문자를 익힌다는 게 기존에 가지고 있던 한문 실력을 부정하는 것처럼 인식되는 게 아닐까?
다만 여기에는 정철이라는 엄청난 반례가 있는지라 이것도 확실하지는 않다. 지금도 사전청 책상에 앉아 수많은 번역문을 손보고 있는 정철은 정말 영혼을 불태우듯 일하고 있다. 그리고 박문국은 그렇게 번역이 완료된 책들을 열심히 찍어내고 있다.
지금 조정에서 가장 열중하고 있는 일은 당연히 동정 준비다. 하지만 사전청 업무처럼 직접 전쟁과 상관이 없는 일도 각 부서에서 열심히 진행하고 있다. 대남도에서도 개척이 열심이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연해주에서도 본격적인 북방 탐사를 시작한 참이다.
그러고 보니 사전청이 지금 번역해서 간행하는 책은 죄다 해적판이로구나. 이거 나중에라도 저작권료 줘야 할까? 그냥 모르는 척 입 닦으면 안 좋은 선례 되겠지?
– 22 –
해삼위를 떠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과거 무종 시절에 야인 토벌을 위해 보냈던 대군이 움직였다는 수분하(綏芬河)를 배로 거슬러 오르고, 충분히 상류로 올라온 뒤에는 배를 뜯어서 그동안 배에 싣고 온 수레에다 실었다. 그리고 육로로 송아찰하(松阿察河)에 도착했다.
송아찰하에 도착한 뒤에는 목수들이 배를 다시 조립했다. 수레는 더 이상 필요가 없으므로 해삼위로 돌려보내기로 했다. 앞으로는 계속 배를 타고 이동할 일만 남았으니까.
“부디 무사히 돌아오시기를 빕니다.”
“여기까지 배웅해주어 고맙소. 꼭 무사히, 정확히 살피고 돌아오리다.”
정문부의 환송을 받은 이순원이 굳은 표정으로 답했다. 그는 지난번 왜란도 종군하지 않고 계속 북방에 머무르며 야인을 단속하고 치안을 유지했다. 해삼위 동쪽, 지금은 동왜포(東倭浦)라고 불리는 곳에 왜인들이 들어왔을 때 그 주변을 감시하기도 했다. 공도 제법 인정받았다.
그러던 참에 상감께서 아직 그 상태를 확실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연해주 북방 수로를 상세히 살펴 보고하라는 어명을 내리셨다. 관찰사 정효신은 휘하 장수 중에서 북방 땅에 가장 익숙한 사람인 이순원을 적임자로 낙점했다.
“관찰사께서 이 사람을 택하셨으니, 어명을 직접 받은 거나 마찬가지요. 최선을 다하리다.”
“성공하시리라 믿겠습니다”
북방을 살피러 가는 탐북군(探北軍) 200명은 치중을 가득 실은 배 8척에 나눠타고 천천히 북쪽을 향해 움직였다. 강변에서 손을 흔드는 정문부 일행이 보이지 않게 되자 이순원이 선실 안으로 들어와 전립을 벗었다.
“아이고, 이런 고생까지 하게 될 줄이야.”
“그래도 두목, 일찌감치 조선 편에 붙어서 살아남은 게 훨씬 낫지 않습니까?”
부하인 반차원, 원래 여진 이름으로는 판차가 히죽거리며 옆에서 말을 걸었다. 옆을 돌아본 이순원이 피식 웃었다.
“그래, 네 말이 맞긴 하다. 그런데 이제 두목 소리는 좀 그만둘 때도 되지 않았느냐?”
이순원은 본래 예허 출신 도적 두목이었다. 하지만 해서부가 처음 힘을 합쳐 부여주를 쳤을 때 조선 쪽으로 귀순했다. 모친은 예허 출신이었지만 조부와 부친이 본래 조선인이었던 덕을 아주 크게 보았다.
본격적으로 전력을 투입한 조선군의 힘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본 뒤로는 절대 엉뚱한 생각을 품지 않았다. 하려고만 하면 언제든 옛 부하들과 새 부하들까지 끌고 탈영해서 도적질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지만 그런 낌새도 보이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충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노력한 만큼 보답도 받았다. 벼슬은 계속 오르고 꽤 괜찮은 조선인 아내도 얻었다. 전부터 수하에 두고 있던 부하들도 자질구레한 벼슬과 함께 조선 이름을 받았다. 만사가 모두 편하게 되어가는구나 하는데 떨어진 게 이 임무였다.
“갈 필요가 없어서 아무도 안 가본 길을 직접 가보고 앞으로 자유로이 다닐 수 있게 하라니 이게 뭔…젠장, 마지막으로 이 길을 누가 움직인 게 몇 년 전이라고 했지?”
“50년 전이라고 했습지요, 두목. 아니, 나리.”
정효신이 내준 문서에 따르면 선선왕 시절인 무신년(1548년)에 김 뭐시기더라 하는 장수가 군사를 거느리고 이 길을 따라 북으로 갔고, 오소리강(烏蘇里江)으로 들어가 한참 북으로 간 끝에 흑수, 즉 흑룡강에 도착했다고 했다. 다만 곧바로 뱃머리를 돌려 해삼위로 돌아왔지만.
“이번에는 그대로 돌아오지도 못하지.”
왕명은 흑수에 도착하거든 성채를 세워 표식으로 삼고, 송화강 쪽에서 오는 군사들이 바로 여기가 오소리강 입구임을 확인할 수 있게 하라고 했다. 송화강과 목단강은 이미 한참 전부터 뱃길로 사용한 지 오래라, 그쪽 강줄기 파악은 많이 되어있다.
“강줄기만 파악하라 했으면 적당히 요령을 부리다 돌아와도 될 것을, 흑룡강을 따라 바다로 내려가 해로로 귀환하라 하였으니 그러지도 못하고,”
탐북군의 임무는 그동안 미루고 미룬 흑룡강과 연해주 연안을 그린 정확한 지도를 작성하고 혹시 흑룡강에서 북으로 뻗은 지류가 있는지 확인하는 거다. 지금 작성된 연해주 지도는 북쪽 절반이 그냥 텅 빈 상태다.
이순원이 흑룡강을 따라서 움직이며 지류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면, 직접 북쪽으로 올라가는 세부 탐사는 다음에 온 이들이 할 예정이라고 했다.
“어쩌시겠습니까, 나리. 이번에야말로 감관을 해치우고 도망쳐 옛 시절처럼 두목으로 다시 돌아가시렵니까?”
반차원이 이죽거렸다. 이순원이 지금 거느린 부하 중에는 절반이 조선인이고 나머지는 대개 연해주 야인들이었다. 옛날 도적패 시절부터 함께 일한 진짜 부하는 열 명이 안 된다. 그래서 한 가지 좋은 건, 이들이 예허 말로 서로 지껄이면 아무도 못 알아듣는다는 점이었다.
“아서라. 그런 짓을 벌이면 해삼위에 놓고 온 곰 같은 여편네와 늑대 새끼 같은 자식놈들은 어쩌란 말이냐. 다시는 못 볼 게 아니냐. 네놈도 마찬가지고.”
이순원은 감영 호방의 딸인 아내에게 충분히 만족했다. 아내는 성격이 억세면서도 이순원을 잘 받들었고, 사납고 튼튼한 아들도 셋이나 낳아주었다. 그런 가족을 버리고 또다시 들개처럼 떠도는 도적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한번 해보자꾸나. 교서에서 이르기를, 한 2년 걸릴 거라고 임금이 말하셨다지? 못할 건 또 뭐냐. 어차피 지도는 따라온 조선 문관들이 그릴 테고 일지도 저들이 기록할 것이니, 우리는 비석 세우는 일 말고는 2년 동안 사냥과 낚시나 하며 느긋하게 움직이면 되는 것이다.”
비석이란 정계비(定界碑)를 말한다. 준비해 온 비석 80개를 흑룡강 줄기와 연해주 해안선을 따라 죽 늘어놓는 것도 이번 탐사의 임무 중 하나였다. ‘여기부터는 대조선의 영토이다’라고 선명하게 새긴 비석이다. 명나라에서 알면 난리가 나겠지만, 설마 누가 와서 들여다보겠는가.
그 외에는 정말 일이 없다. 강을 따라 내려가는 길이니 힘들여 노를 저을 일도 없으리라. 돛을 움직여 배를 모는 일도, 삿대로 배를 미는 일도 사공들이 할 것이다. 겨울이 오기 전에 든든한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일 정도만 신경을 쓰면 될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