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631
2부 4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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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히 돌아오겠지.”
정효신은 북쪽 하늘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자신이 이곳 북방 땅에 부임한 지 어느새 5년이 넘었지만, 그 역시 자신의 ‘임지’인 흑룡강에 가보지는 못했다. 멀어도 너무 먼 곳이니까.
주상께서 간략하게 그려주신 지도에 따르면 연해주 땅 넓이는 조선 8도, 아니 13도와 거의 비슷했다. 그렇게 넓은 땅에 인구는 이제 겨우 7만, 그것도 대개 해삼위에서 300리 안에 살고 있다. 그 밖에 사는 야인들은 자기가 조선 임금의 백성인 줄도 모르고 살 것이다.
본래 이 지역은 명나라가 노아간도사(奴兒干都司)를 설치해 두고 지배하던 땅이다. 하지만 말이 좋아 지배지, 실제로는 명목상으로 위소를 설치하고 조공을 받는 데 불과했다. 흑룡강과 오소리강 일대 야인들은 황제 따위 모르고 사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명나라에서도 이 지역을 명목상으로만 통제할 뿐 진지하게 자기네 영토로 여기지도 않았다. 그래서 무종대왕께서 이 땅을 가지고 싶다고 하셨을 때 선뜻 내준 것이기도 하다.
“그나마 담저 덕분에 이 땅이 제대로 땅 구실을 하게 되었구나.”
담저가 들어오기 전에는 정말 농사가 어려웠다. 하지만 금상께서 남만, 아니 서양인들에게 담저 종자를 받아다 보내주신 덕에 이 북방에서도 제대로 사람을 먹여 살릴 만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최근 인구가 많이 늘었다.
지금 북쪽으로 간 이순원의 탐북군도 혹시 북방에서 담저 농사를 지을 수 있을지 알아보기 위해 담저 종자를 가지고 갔다. 잘 되면 훨씬 북쪽까지도 정주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지난 4년 사이 연해주의 조선인 인구는 2배인 2만 명이 되었다. 사냥과 어로를 주로 하는 야인들도 관아에 가면 양식을 준다는 소문에 찾아왔다. 기근이 오면 도토리를 줍고 풀뿌리를 캐가며 살던 이들이, 담저를 받아 농사를 지으면서 차츰 관의 통제를 받고 있었다.
이제 연해주 관아에서 통제하는 야인 출신 주민의 수는 4만을 넘는다. 여기에 죄수와 포로 등이 여전히 1만여 명, 조선소와 가마터에서 일하는 중국인, 서양인 기술자 소수가 더해진다. 이렇게 해서 7만 명이 북방의 추위를 이겨내며 살고 있다.
물론 연해주에 공급이 늘어난 식량이 순전히 담저와 옥수수뿐인 것은 아니다. 요즘은 굳이 남쪽 지방에서 쌀을 따로 사들이지 않아도 막대한 쌀이 들어오고 있다. 경인년 이래 연해주에 머물러 버티고 있는 왜인들 덕이다.
동왜포에 머무르는 왜인 1천 명은 거의 성이라고 해도 좋을 수준으로 크게 지어놓은 왜택(倭宅)에 진을 치고 있다. 주변 토지에서 담저와 콩 농사를 짓고, 인삼 채집과 사냥을 한다. 그리고 매년 봄 에조치, 아모국으로 가는 배에 그동안 모은 조선 상품을 실어 보낸다.
종정(宗政, 다테 마사무네)이 귀국한 뒤로 이들은 3년이 넘게 머물러 있었다. 몇몇 지도자 격 인사가 지시를 청하러 밀수선을 타고 왜국에 다녀오기는 했지만, 종정은 딱히 저들을 얼른 데려갈 의사가 없어 보였다. 호방이 옆에서 거들었다.
“어떻게든 뿌리를 박고 농장을 유지하려는 의도인 듯합니다. 내쫓을 빌미를 주지 않으려는 생각인지, 부과하는 조세도 꼬박꼬박 내고 있습니다.”
곡식이 넉넉하게 나지 않는 연해주에서 조세는 곧 어포다. 생산하는 건포 자체야 사슴고기, 멧돼지고기, 고래고기 등등 갖가지 고기를 다 사용하지만, 조세는 그 질을 균일하게 맞추는 문제 때문에 어포로만 걷고 있다.
그런데 왜인들은 연해주에서 유일하게 쌀을 조세로 낸다. 매년 500석이나 되는 쌀을 바치는 자들을 이쪽에서 나서서 쫓아내기도 참 어려웠다. 조세로 낼 쌀은 밀수선이 왜국에서 돌아올 때 싣고 온다. 여기서 가져간 물품 대금으로 오는 쌀, 금, 은, 구리와 함께다.
“그거야 놈들이 여기서 사가는 그릇과 비단, 모피 따위로 버는 돈이 그만큼 많으니까 그런 거긴 하지만. 내가 처음 온 5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교역액이 커졌으니 말일세.”
동래를 거쳐 일본으로 가던 기존 교역로는 완전히 끊겼다. 대신 왜인들이 원하는 그릇, 베, 비단 같은 상품들은 연해주에서 밀수선을 타고 종정의 영지로 간다. 어차피 도요(陶窯) 태반이 연해주로 옮겨왔고, 중국산 비단도 요동을 가로질러 오는 만큼 문제는 없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해삼위 일대에 거주하는 조선인 숫자가 2배로 늘어난 진짜 배경은 여기 있었다. 담저가 아닌 교역에서 오는 이득이었다. 연해주가 교역으로 벌어들이는 이윤은 매년 10만 석을 넘기니, 실로 큰 액수다. 물론 진짜 쌀은 1만 석 정도지만 말이다.
과거에 연해주는 인삼과 목재, 모피 등을 남쪽에 팔고 그 돈으로 곡물을 사들여야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담저·옥수수·콩 등을 심는 것만으로 식량을 자급할 수 있을 정도인데, 일본에서 교역으로 들어오는 쌀이 더해졌다. 여기에 원래 사냥과 고기잡이도 성하던 지역이다.
“여기에 주상께서 보내주신 새 돼지 종자도 많이 늘었습지요.”
호방이 언급한 돼지는 작년 봄에 도성에서 도착했다. 몇 마리는 도중에 길에서 죽었다지만, 무사히 도착한 새끼돼지만 해도 30마리가 넘었다. 이 양돼지들은 잘 키우면 300근까지 살이 찐다. 그 정도라면 웬만한 멧돼지를 압도하는 수준이다.
남도에서 하듯이 도토리나무 숲에 풀어놓고 키울 수는 없다. 연해주에는 호랑이, 표범, 큰곰 같은 맹수가 사방에 널려 있으니까. 늑대 같은 건 개처럼 우글거린다. 산적까지 있다. 그러니 방목하지는 못하고 우리에서 키워야 한다. 먹이는 얼마든지 있었다.
“남아도는 담저와 옥수수를 정말 잘 처리했습지요. 그동안은 죄다 술 빚는 데 썼지만, 돼지 먹이로 사용하는 것도 좋았습니다.”
“그도 그렇네. 돼지들이 정말 살이 잘 찌더군.”
예전 같았으면 턱도 없는 소리였을 것이다. 남는 옥수수와 담저로 돼지를 키우기보다 술을 빚는 쪽이 훨씬 비싸게 팔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왜국에서 쌀이 쏟아져 들어오는데 누가 이런 잡스러운 술을 마시고 있겠는가? 고급스럽게 쌀로 빚은 술이 인기를 끄는 게 당연했다.
그런 연유로 담저술과 옥수수술 가격은 폭락했다. 그나마 옥수수는 말려서 기근 대비용으로 보관할 수라도 있지, 그것도 안 되는 담저는 쌓인 채 썩어갈 판이었다. 난감하던 판에 마침 좋은 용처가 생긴 셈이다.
“그런데 호방, 어명에 따라야 하는데 소금은 넉넉한가?”
“예, 대감. 이번에 함흥에서 배 4척으로 실어왔으니 소금은 충분합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조정에서는 목재를 아끼기 위해 되도록 천일염으로 소금을 생산하게 하고, ‘소금을 구워서’ 만드는 옛 방법을 쓰는 자염(煮鹽)은 생산을 억제했다. 하지만 함경도, 연해주 일대는 천일염 생산지인 서해 연변에서 거리가 멀어 운반이 곤란하다는 이유로 자염 생산을 계속하고 있다.
다만 조정 시책에 맞추기 위한 조치는 당연히 있다. 바닷물을 끓이는 연료로 장작이 아니라 석탄을 쓰고 있고, 그 석탄은 연해주 탄광에서 공급하고 있다.
“어명에 따라 겨울까지 준비해야 할 서반아 순대는 3천 관(약 11t)이다. 그걸 다 만들려면 소금이 넉넉해야지. 소금 생산이 원활하도록 석탄 수송에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하네.”
“예, 대감.”
순대를 만들려면 내장이 많이 필요하고, 그 내장을 깨끗하게 씻는데 또 많은 소금이 든다. 적당히 헹궈 만들면 안 될까 싶지만, 임금께서 보낸 숙수들이 ‘이 초리소는 전하께도 진상할 텐데, 상감마마께 돼지 변을 먹일 작정이냐’고 들고나오니 도리가 없다.
상감께서는 서반아식 순대를 만들어 올리라는 교서 한 장만 달랑 보내신 게 아니다. 순대 만들기에 익숙한 숙수 4명에 순대에 맛을 낼 후추와 말린 남만초도 배에 가득 실어 보내셨다.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내년에 벌어질 동정에 대비한 준비가 분명했다.
“다만 정육(正肉)은 납육 만드는 데 써야 하니, 되도록 잡고기로 만들도록 하라. 모자라거든 고래고기도 좀 섞고. 고래고기도 돼지고기 못지않게 기름지니 괜찮을 게다.”
납육(臘肉)은 돼지고기를 소금에 절여 말리고 삶은 돼지고기 덩어리에 다시 기름을 발라서 연기에 그을린 요리다. 연해주에서는 본래 사냥한 멧돼지나 사슴으로 납육을 만들었는데 돼지 숫자가 늘면서 이제 돼지로 만들기 시작한 참이었다.
납육은 연해주 야인들이 주로 만든다. 제조법이야 원래 조선에서 하던 방법이지만, 귀순한 이들에게 가르쳐서 고기를 오래 두고 먹을 수 있게 돕던 것이, 뜻밖에 잘 팔려 쏠쏠한 수입이 되었다. 순대 속에 넣는 고기는 갈아서 넣는데, 굳이 좋은 정육을 쓸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3천 관이면 상당한 양이다. 그간 납육을 만들던 작은 소육장(燒肉場)에서는 작업이 안 될 듯하여 마침 쉬고 있는 벽돌가마 하나를 비워서 급한 대로 대규모 소육장을 만들었다. 그 정도면 순대를 굽는 작업장으로 쓸 수 있을 듯했다.
그나저나 바다 건너 왜놈들도 요즘 농사가 잘되는 모양이구나 싶었다. 그러니 이렇게 쌀을 내놓고 온갖 방물을 사들이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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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군, 오사카에서 쌀을 너무 적게 보낸다고 재촉이 심합니다. 더 보내야 하지 않을지요.”
“안 돼. 지금 남겨둔 건 비상시를 대비한 마지막 물량이다. 이걸 보낼 수는 없어.”
다테 마사무네는 하나뿐인 눈으로 문서를 훑으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꼭 필요한 군량미와 주요 성채마다 유사시 농성전을 위해서 비축한 물량을 제외한 나머지 쌀은 모두 팔아치운 지 오래다. 조선에 보내기도 하고, 일본 내에서 처분하기도 했다.
이렇게 쩨쩨하게 굴어야 하는 건 조선과의 거래 때문이다. 조선에서 에조치로 오는 밀수선 수는 매년 20척이고, 사실상 철을 제외한 모든 물자가 이 길로 들어온다. 그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치르려면 쌀 한 톨도 거저 처분할 수는 없었다.
“오사카에는 작년에 냉해가 심해서 수확이 좋지 않았다고 답하라 하지 않았느냐? 모자라면 올해부터 에조 놈들이 도호쿠로 숨어들어와서 우리 창고에 불을 지르고 있다고도 보고해라.”
에조치에서 쪽배를 타고 넘어오는 놈들이 있는 건 사실이었다. 낡은 갑옷과 투구를 착용해 일본인처럼 위장한 에조들이 몇 명씩 숨어들어 은밀하게 돌아다니면서 불을 지르거나 철포를 쏘아댔다. 경계가 허술한 민가를 습격하기도 했다.
물론 뭔가 저지르기 전에 바다 위나 해안에서 붙잡혀 죽는 자들이 대부분이었지만,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는 히데요시의 요구를 다테가 거부할 수 있는 훌륭한 핑계가 되어주었다.
“다이코 전하께 답해라. 유감스럽게도 에조 놈들이 우리가 비축해둔 쌀을 모두 태워버려서 지금 지시를 따를 수 없으니, 가을에 추수할 때까지는 기다려 달라고 말이다. 다만 올해도 영 추수가 시원찮을 것 같아서 걱정이구나.”
히데요시가 지원을 재촉하는 이유는 서국 쪽 영주들이 여전히 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 원정 약탈이 나름 재미를 보고 있다지만, 거기서 걷은 노획물은 결국 일부 영주만 손에 넣을 뿐이었다. 나머지 영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나도 도와드리고는 싶다. 하지만 내 영지는 넓기만 하지, 실제 석고는 형편없으니 마음이 닿는 만큼 도와드릴 여유가 없다. 그렇게 적고 마무리해라.”
다테 마사무네는 히데요시에게 아주 유감이 많았다. 히데요시가 조선과 화해를 거부한 덕에 기존 무역로가 완전히 끊기고 자신이 그 틈새를 파고들어 이익을 얻게 된 건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자신이 겨우 손에 넣은 아이즈를 빼앗긴 일은 이가 갈렸다.
다테 마사무네가 연해주에서 귀환했을 때, 동생 마사미치는 최근에 정복한 아이즈 일대를 기반으로 해서 세력을 모아놓고 있었다. 애초에 부친 테루무네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두 형제 사이에 다툼이 있었고, 모친은 동생 편을 들었다. 이유는 마사무네의 흉한 애꾸눈이었다.
다테 본령에 있는 신하들은 대부분 죽은 부친의 뜻을 따라서 마사무네를 지지했다. 하지만 본래 아시나 씨의 영지였던 아이즈에서는 한때 아시나 씨의 양자로 거론되기도 한 마사미치를 지지했고, 마사미치는 여기에 모친의 지원까지 등에 업고 소식이 끊긴 형을 밀어내려 했다.
마사무네가 센다이에 돌아온 때는 동생 마사미치가 막 센다이성에서 이제 자신이 당주라고 선포하려는 참이었다. 형이 돌아왔다는 사실을 안 마사미치는 포위당하기 딱 좋은 센다이성을 빠져나가 아이즈로 도망쳤고, 마사무네는 곧바로 동생을 붙잡는 데 실패했다.
아이즈로 도망쳐 군대를 일으킨 마사미치와 싸워 격파하고, 잡은 동생의 목을 쳐서 완전히 후환을 없애는 데 꼬박 2년이 걸렸다. 격전의 와중에 조선에서 기껏 데려온 북방인 기병 1천 기도 절반 넘게 소모해 버렸다.
동생 편에 있던 모친 요시히메는 보기 흉한 애꾸인 장남을 저주하며 친정인 모가미 가문에 가버렸다. 어쨌든 내분은 끝났고, 조선과의 밀거래는 계속하고 있고, 이제 100만 석이 넘는 영지를 관리하며 평화를 누리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참인데 히데요시의 명령이 떨어졌다.
‘다가오는 조선의 침략에 맞서 모두 힘을 합쳐야 할 지금, 친동생과 싸워 죽이다니! 도저히 용서하지 못할 죄이나, 그대가 북방에서 고립된 처지에 처했음에도 분전하였고 귀환한 후에도 값진 전리품을 바친 성의를 보아 벌을 감한다. 아이즈 50만 석을 몰수하는 것으로 그친다.’
몰수한 아이즈 영지는 이에야스의 둘째 아들, 히데야스에게 내린다고 했다. 지난번 원정 때 부친 이에야스를 도와 물자와 인력을 조달한 공이라지만, 속셈이 빤했다.
‘내가 거역했다면, 사방에서 포위공격이 들어왔겠지.’
외숙인 모가미 요시아키와는 원래 사이가 안 좋은 데다, 사랑하는 둘째 마사미치가 죽어서 한껏 분노한 모친이 붙어 있다. 사타케는 원래 가문 대대로 원수였다. 우에스기 카게카츠도 다테를 싫어한다. 영지를 확장하려고 좌충우돌한 탓에 주변이 모두 적이었다.
본래 관동 사람이 아닌 이에야스와는 직접적인 원한은 없다. 하지만 히데요시가 아이즈를 이에야스의 아들에게 주겠다고 했으니 이에야스가 어느 편에 설지는 불을 보듯 뻔했다.
만약 다테가 히데요시의 명을 거절했다면, 이들 모두가 다테령으로 밀고 들어왔을 것이다. 오사카에 가서 ‘친동생을 죽인 죄’를 용서해달라고 빌고 아이즈를 토해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 굴욕적이던 날이 겨우 1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히데요시가 연모하는 오이치에게 호감을 얻고 이에야스에게 자기편에 남으라고 던져줄 고깃덩이로 50만 석을 빼앗겼던 날이 어제처럼 눈앞에 선한데, 피 같은 쌀을 거저 내놓으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다시 말하지만, 서쪽에 보내줄 쌀은 없다. 나도 영지를 재건하느라 여유가 없으니까.”
밀무역으로 번 돈도 상당액이 기병 확충에 들어가고 있다. 북방인 기병과 흡사한 궁기병을 양성하고, 다테의 영지에서 본래 사육하던 말과 북방인들의 말을 교잡하여 더 크고 힘센 말을 만들려는 노력도 하고 있다. 잘 되면 자신도 조선 같은 기병을 가질 수 있으리라.
“주군, 작년처럼 주군을 둘러싼 포위망이 형성되지 않겠습니까?”
“작년에야 내가 마사미치 놈을 처치하느라 지쳐 있지 않았나. 하지만 지금은 충분히 쉬었고 전쟁이 벌어져도 방어전은 충분히 치를 수 있다. 그리고 자기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조선군이 쳐들어올까 봐 두려워서라도 다이코 전하가 직접 날 잡으러 오시지는 못할 거다.”
서쪽 상황은 웬만큼 들었다. 이쪽도 방어전이라면 10만 대군도 동원할 수 있었고, 서너 달 안에 무너지지는 않을 터였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나면 바로 연해주에 사자를 보낼 테다. 히데요시가 도호쿠로 움직였으니 당장 규슈를, 오사카를 치라고.
마사무네는 자기가 천하인이 되겠다든가 하는 비현실적인 꿈은 꾸지 않았다. 천하인은 누가 해도 상관없었다. 히데요시든, 이에야스든, 아니면 조선 국왕이든. 애초에 자신은 그중 누구를 향해서도 무릎을 꿇지 않았다. 자신은 노부나가에게 충성을 서약했을 뿐이었다.
그저 자신이 도호쿠에서 100만 석을 소유하고 즐겁게 사는 것만 아무도 방해하지 않으면 되었다. 자, 과연 다가올 조선의 침공에서 살아남아 천하인의 자리에 오르는 게 누구일지는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