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641
2부 4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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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타는 결국 이덕형의 집으로 들어갔다. 정식 부인이 아닌 첩, 정부나 마찬가지인 지위라 해도 무방하다면서 말이다.
‘이미 조선으로 오는 뱃길에서 돈 항에게 충분히 설명을 들었사옵니다. 돈 덕에게는 어려서 혼인한 아내가 이미 있으며, 그분과 이혼할 수도 없다고요. 저로 인해서 그분이 불행해지기를 바라지도 않으니, 감내하겠습니다.’
앞으로는 스페인식으로 돈(Don) 누구라고 부르는 건 삼가라고 주의를 시켜야겠군. 조선에서 ‘돈’이라고 하면 존칭이 아니라 머리가 돌았냐는 뜻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100%니까 말이지.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유럽식으로는 간통이고 정부라고 하겠지만, 조선에서는 첩도 엄연히 법적으로 인정되는 아내 중에 하나다. 본처와 비교해서 서열이 떨어질 뿐. 자식이 태어나도 부친이 인정하기 전에는 사생아이고 친자로 인정하지 않는 유럽보다 나은 면도 있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유럽에서도 정부를 두는 사내는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당장 롤리타의 조국인 스페인에서도 귀족이나 고관들이 정부 두엇 정도는 흔히 둔다고 했다. 펠리페 2세도 정부가 몇 명이었다더라?
현실은 현실이고 이상은 이상이다 보니 롤리타도 그 점에선 그냥 눈을 감기로 한 모양이다. 조선식이건 서양식이건 혼인식도 치를 수 없지만 ? 교회법으로야 당연히 불륜이라서 안 되고, 조선에서도 정식 혼인은 정처만 치를 수 있다 – , 그에 대한 불만도 표하지 않았다.
‘그래도 아무 이벤트 없이 들어갈 수는 없잖아. 여자 일생에 한 번 있는 일이라고.’
상희의 강력한 요구와 이항복의 장난기 품은 동조 덕에, 롤리타가 이덕형의 집에 들어가는 날이었던 사흘 전은 나름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이항복이 자기 돈을 들여 화려하게 만들어준 유럽식 사륜마차에다, 백마 4필까지 매어 도성을 가로지르게 해준 덕분이다.
혼인식은 없었지만, 마차 2대로 움직이는 이 행렬은 무척이나 도성 백성들 눈길을 끌었다. 롤리타가 탄 상자형 마차는 물론이고 한껏 꾸민 시녀들이 탄 마차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이 탄 마차 대열은 반짝이는 남만갑을 입고 말을 탄 남만별기 군관들이 특별히 호송했다.
이 화려한 행렬의 종착지는 당연히 궁궐 인근 서촌에 내가 새로 하사한 집이었다. 롤리타를 이덕형의 본가에 보내 분명 속이 뒤집혀 있을 본처와 같이 지내게 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무슨 분란을 불러일으키려고 그런 짓을 하나? 집 하나 따로 구해주고 말지.
내가 직접 현장에 나가보진 않았다. 하지만 이항복에게 들으니, 이덕형은 제발 자기가 지금 여기 없었으면 하고 표정으로 말하고 있더라고 한다. 물론 롤리타를 첩으로 맞아들이라는 내 명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아마 한음은 평생 그날을 잊지 못할 것이옵니다. 그토록 자신과 맺어지기를 바라는 여인을 찾기도 쉽지 않은 일이오니, 그 인연이 끊어지지 않고 맺어지게 해주신 전하께서는 실로 큰 공덕을 쌓으셨습니다.”
“옛말에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라 하지 않았느냐? 남녀 사이의 일도 일종의 흥정이니, 마땅히 붙일 일이다. 그런데 어떤가? 새 첩과 잘 지내기를 바라서 사흘간 등청하지 말고 함께 지내라 하였는데, 경이 보기에는 잘 지내고 있는 듯하던가?”
“신도 일부러 찾지 않았사옵니다. 다만 한음이 오늘까지 사흘째 대문 바깥을 출입하지 않고 있다 하니, 아마 깨를 볶는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을까 하옵니다.”
과연 모를까. 내가 이덕형에게 새집에 두라고 하사한 노비가 11명인데, 분명히 그중에 한둘 정도는 금위사 끄나풀일 터였다. 이항복이 금위사장 자리에 복귀하지는 않았지만, 영향력까지 완전히 사라졌을 리는 없지 않은가.
뭐, 언젠가는 금위사도 이항복 손에서 떠나야 하니까 다시 돌려보낼 생각은 없다. 금위사는 지금 박희성 밑에서도 제법 잘 돌아가고 있으니까 말이지.
이제 자질구레한 사적인 사안은 다 청산한 듯하니, 막바지 원정 준비에 들어가자. 이덕형이 내일 등청하면 시작이다.
– 44 –
어전에 부복한 정여립이 건주위 방문 성과를 보고했다. 누르하치가 옛날에 함께 해서부를 토벌하던 정을 운운하며 하도 환대하는 바람에 얼른 돌아올 수 없었다고 했다.
“건주위 도독 누르하치가 자신의 조부가 명종대왕 시절에 왜국에 원정했던 일을 거론하면서 이번 원정에 대해 말하기를, 참으로 크나큰 영광이며 칙명까지 받았으니 최선을 다해 수행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도움을 준다며 뽐내는 태도는 취하지 않았습니다.”
간교한 놈 같으니. 대놓고 으스대면 우리가 반감 품을 거 빤히 아니까 점잖은 척 무게 잡고 있었구먼. 이건 다 알고도 엿 먹는 셈이네. 망할 이부상서.
“그래, 군사는 얼마나 보내겠다더냐?”
“봄이 되어 요동 도독(都督) 이여백이 요동병을 거느리고 당도하면, 건주위에서 가려 뽑은 정병 3천 기를 도성으로 보내겠다 하였습니다. 인솔할 장수는 그 친동생 슈르하치라 하였고, 슈르하치 본인도 무척 열의를 보였습니다.”
바다 건너로 가는 귀환이 불확실한 원정에 슈르하치를 보낸다…이거 의도가 빤하잖아?
슈르하치는 누르하치의 동생이면서 라이벌이다. 건주위 세력이 아직 미약했던 때야 중요한 동지이자 장수였지만, 요동을 호령할 세력을 확보한 지금은 건주위를 지배할 정통성을 다투는 경쟁자가 되었다.
다만 슈르하치는 자기가 독자적으로 내게 사신을 파견한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까지 나섰다가는 형의 경계심을 지나치게 살까 봐 두려운 모양이다. 다만 이번처럼 이쪽에서 보낸 사신을 맞을 때면 형과 별도로 성대하게 대접하며 눈도장을 찍으려고 노력했다.
음, 그 정성을 높이 평가해서 슈르하치가 올라왔을 때 그놈하고도 뭔가 끈을 만들어 볼까? 슈르하치도 아들이 여럿 있긴 할 테지만 슈르하치하고까지 사돈을 맺기는 좀 그렇고…분명히 누르하치가 경계심을 확 품을 테니까.
그보다 슈르하치 본인에게 첩을 하나 안겨주는 정도는 어떨까 싶다. 사돈을 맺는 데 비하면 서로 부담도 적고, 그러면서 조선에 대한 슈르하치의 호감도를 높일 수 있다. ‘기껏해야 여자 하나’ 내주는 것뿐이니 누르하치가 경계할 일도 없고.
그렇다고 노비나 상민 출신 여자로 아무나 내줄 수는 없으니, 적당한 사대부가의 얼녀(?女, 천첩 소생 딸)라도 하나 물색해 두어야겠다. 적녀는 말할 것도 없고 서녀(庶女, 양첩 소생 딸) 하나 내놓으라고 해도 순순히 나오지는 않을 테니까. 여진은 적서 구분을 안 하니 괜찮겠지.
“알겠다. 출병은 4월이니 적당히 당도하기만 하면 된다.”
뭐, 건주위 군사들을 꼭 1진으로 보낼 필요는 없으니까. 우리도 전군을 한꺼번에 실어나를 배는 없으니, 원정 끝나기 전에만 내려오면 느긋하게 일본에 보내면 된다. 건주위만 데려가는 거라면야 얼른 실어가서 선봉에 세우겠지만, 명나라 감군이라는 혹이 딸려 있으니까 말이다.
음, 슈르하치에게 여자를 내주면 양호나 이여백에게도 하나씩 안겨줘야 하나? 왠지 기분이 나빠졌다. 슈르하치는 여자를 미끼로 해서 그놈을 내 편으로 끌어들인다는 느낌인데, 명나라 장수들한테는 공녀를 바치듯 빼앗긴다는 느낌이 든다. 생각만 해도 불쾌하다.
임진왜란 때도 이여송이 조선에서 첩을 들여 후손을 남겼다고는 하지만, 그걸 조선 조정이 나서서 제공하지는 않았다. 정권 유지 때문에 명나라에 아부하느라고 뇌가 썩어빠졌던 선조도 안 한 짓을 내가 저지를 수는 없다.
다만 슈르하치에게 첩을 제공하는 계획까지 취소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내가 공식적으로 내주는 게 아니고, 그놈과 친분을 맺은 우리 장수 하나가 ‘자의적으로’ 딸을 내주는 정도라면 전혀 문제 될 게 없으니까 말이지.
명나라 장수들은 최대한 빠르게 ‘조선 패싱’을 시킬 테니까 첩을 찾고 어쩌고 할 틈도 없을 거다. 혹시 툴툴거리면 일본에 가서 ‘전리품’으로 조달하라고 하면 그만이다. 아마 일본 땅에 건너가는 명나라 병사들 전원이 여자 하나씩은 잡아다 끌고 다니지 싶다.
“천장이 좀 늦게 오더라도 우리 군사들은 예정대로 출진한다. 천장은 없는 셈 치고 계획을 짜도록 하라.”
“예, 전하.”
출병은 5개월 뒤, 4월 갑진일(4월 2일)로 확정했다. 처음에는 4월 첫날인 계묘일로 하려고 했는데, 관상감에서 보고하기를 그날 일식이 일어날 수 있다고 해서 하루를 미뤘다. 군사들이 일식을 보고 재수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일(日)본이 빛을 잃었으니 길조라고 주장할 수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일본을 ‘태양의 나라’ 따위로 불러주기가 싫다. 저들이 그렇게 주장한다는 단서를 붙인다면 못 부를 이유도 없지만, 사석이라면 모를까 공식 석상에서 기록으로 남겨주고 싶지는 않았다.
다행히 올해도 풍년이라 ? 꿈만 같다 ? 군량미 마련에는 무리가 없다. 강남과 섬라에서도 적절한 양의 곡식을 수입하고 있는 만큼, 국내에서 소비하고 비축할 식량을 빼고도 원정에서 소비할 군량만도 백만 석을 준비했다. 이만하면 1년 정도는 충분하리라.
원정 계획은 기본적으로 아래와 같다.
경상도에 집결한 병력으로 먼저 대마도를 공략한다. 종의지가 정탐한 바에 따르자면 대마도 수비군은 현재 고작 3천, 그나마 주요 항구와 포구 몇 곳에 흩어져 있으니까 우리가 공격하면 제대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사흘도 안 될 거다. 그 뒤에는 산으로 도망가는 수밖에 없다.
한때 2만에 달했던 대마도 수비군이 이렇게 약해진 이유로는 역시 비용 부담 문제가 컸다. 그동안 전쟁 상태가 계속되며 규슈?주고쿠 일대 영주들은 말 그대로 허리가 휘었고, 도저히 그런 대규모 병력을 유지할 수 없었다.
일본군은 대마도에 주둔한 병력만 줄인 게 아니다. 설치했던 포대도 철거하고 화포를 규슈 본토로 옮겼다. 우리 남만선단이 수시로 규슈 각지를 습격하자 자칫 후방이 털릴 게 두려워진 모양이다. 우리가 전라도 털렸을 때처럼 말이지.
우리가 대마도와 이키를 뛰어넘고 규슈나 주고쿠를 바로 강습하면 대마도를 지키던 왜군은 그대로 무용지물이 된다. 압도적인 해군력을 가진 우리가 대마도를 봉쇄해 버리면 대마도에서 빠져나올 방법도 없고, 손가락이나 빨면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필시 그렇기에 저들도 대마도에 둔 군사를 다시 빼냈으리라.”
다만 우리는 대마도부터 정공법으로 탈환할 예정이다. 형식상으로야 대마도가 아직 일본이 다스리는 땅이었다고 해도, 실질적으로는 분명한 조선 영토였으니까 말이다. 대마도는 우리가 되찾지 못한 미수복영토고, 그런 땅을 1번으로 탈환하는 데는 충분한 정치적 의미가 있다.
그 뒤로도 정공법으로 간다. 여원연합군이 그랬듯이 이키, 하카타로 나간다. 우리가 선택한 진공로에 적이 병력을 집중하지 못하도록 견제구는 계속 날리겠지만, 노부나가처럼 후방에다 대군을 갖다 던지는 특공은 펼치지 않는다. 내 장수와 군사들은 바둑돌이 아니니까.
모든 면에서 내가 우세한데 위험부담을 무릅쓸 필요는 없다. 아무리 우리가 제해권을 쥐고 있다지만, 주공과 떨어진 방향에 내던져진 병력은 고전을 치를 수밖에 없으니까. 게다가 우리 보급선에도 엄청난 부담을 지우는데 굳이 특공을 펼칠 이유가 뭐란 말인가.
노부나가에게는 나를 놀라게 해서 항복하도록 만든다는, 특공을 시도할만한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내 전쟁 목적은 그저 충격과 그로 인한 공포만으로는 달성할 수가 없다. 직접 일본을 갈아버림으로써만 달성할 수 있고, 그러자면 주공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
우리 공세를 정면으로 받게 될 원균은 여전히 이키 도주로 남아 있다고 한다. 만약에 내가 원균이었다면 조선으로 밀사를 보내서 손이 발이 되도록 빌던가, 아니면 어떻게든 히데요시를 구워삶아 일본 본토로 빠질 텐데 어느 쪽도 하지 않고 여전히 술만 퍼먹고 있다.
정말이지 범상한 인물이 아니다. 간이 크다고 해야 할지, 제정신이 아니라고 해야 할지.
“원균을 붙잡으면 바로 처분하지 말고 보고하라. 생각해 보고 처형 방법을 결정하겠다.”
“예, 전하.”
이키 이후에는 하카타에 상륙한다. 하카타 상인 일부가 협력을 약속했지만, 어디까지나 그 협력이란 우리가 하카타를 탈취한 뒤에 하겠다는 거였다. 그러니 하카타 함락은 우리 손으로 이루어야만 한다.
하카타를 기점으로 삼아서 규슈 북서부 일대를 장악하고, 오토모 영지인 동부도 점거한다. 지금까지 교감한 대로라면 시마즈는 히데요시의 출병 명령을 받고도 뭉그적거릴 것이고, 우리 군대와 마주쳐도 선제공격은 하지 않고 대치만 할 것이다.
물론 실행 여부는 닥쳐야만 알 수 있다. 계약서가 오간 것도, 명시적인 약속을 접수한 것도 아니니까. 막상 상황이 터지면 그놈들이 안면몰수하고 우리 뒤통수를 때릴 수도 있다.
그 때문에라도 계획대로 규슈를 제압하고 해로를 이용해 오사카로 직행하면서도 규슈에는 충분한 병력을 남겨둬야 한다. 적어도 전체 병력 중에서 6만은 규슈에 잔류해야 시마즈 견제 및 규슈 점령지에서의 반란을 막으면서 보급선을 유지할 수 있다.
옛 해서부 병력 1만은 규슈를 장악한 시점에서 주고쿠에 풀어놓는다. 이놈들은 자기 멋대로 설치고 다니게 놓아둘 거니, 보급지원도 필요 없다. 말 그대로 버리는 돌이다.
울라를 비롯한 옛 해서부에서 기존 위소 체제는 사실상 거의 해체됐고, 남은 인구는 대부분 우리 행정체계에 편입됐다. 본국에서는 존재가 거의 사라진 백정처럼, 세월이 조금 더 지나면 동화되어 사라질 존재들이다.
건주위 병력 3천은 이들과 달리 우리 본대와 함께 움직인다. 오사카까지 가서 함께 싸우며 활용할 방안을 탐색한다. 다른 장수가 병력을 끌고 온다면 최일선에 보내서 거침없이 소모해 버렸겠지만, 슈르하치가 온다고 하니 조정이 불가피해졌다.
“그나마 세력을 나누어 가진 슈르하치가 이번 전쟁에서 왜적을 만나 죽는다면, 누르하치는 일거에 건주위 전체를 자기 손에 넣을 것입니다.”
“내 생각도 영상과 같다.”
내가 건주위를 완충지대로 삼고, 장차 명나라가 위태로울 때 조선이 세력을 확대할 수 있는 발판으로 삼을 생각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르하치가 너무 급격하게 세력을 불릴 필요는 없다. 명나라가 경계하지 않고 놈이 헛된 욕심을 품지 않을 정도가 딱 좋다.
누르하치를 적절히 억제하려면 슈르하치는 살아서 돌아가야 한다. ‘적당한’ 공적과 함께.
“하오나 전하, 모리는 강화를 요청하였사온데 그 땅에 야인을 풀어도 괜찮겠사옵니까?”
“저들이 진심으로 우리 편이 되려는 것인지, 아니면 혼란스럽게 한 후 기습하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일단은 계속 적으로 간주한다.”
각서를 받지도, 인질을 잡지도 않았다. 사자가 한 번 다녀갔을 뿐. 그런 상대의 제안이라면 신뢰하는 게 바보 아닌가. 일단 두들겨 패고, 항복을 청하면 그때 가서 접수하면 그만이다.
“정종(마사무네), 가강(이에야스) 등은 모두 제 영지만 챙긴다고 하였겠다.”
올해 내내 홋카이도와 도호쿠에서는 석탈왜가 이끄는 아이누 군이 게릴라전을 벌였다. 다테 진영에 사치품을 운송하는 밀수선들은 아이누에게는 무기와 탄약을 주었다. 이들은 넘겨받은 총탄과 화살로 저격, 방화 등 테러를 감행했다.
아이누 군의 테러는 실질적으로 큰 피해를 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다테와 모가미는 사전에 입이라도 맞춘 듯이 이를 핑계로 삼아서 히데요시가 명하는 자금 및 인력 공출을 거절했고, 우에스기나 사타케도 혼란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활동을 줄였다.
심지어 이에야스도 비슷하게 행동했다. 강항이 보고하기를, 이에야스는 ‘전년도까지 시행한 과도한 징수로 인해 잇키가 자주 일어난다’며 오사카에 제공하는 전량(錢糧)의 액수를 줄이고 있다고 했다. ‘만약 조선군이 침공하면 밀린 분량을 즉시 보내겠다’는 약속으로 때운 채.
이에야스 진영에 머무르고 있을 차차나 나가마스에 대한 소식은 없었다. 이에야스는 도대체 언제쯤에나 그들의 존재를 공표하고 정치적으로 활용할 생각이려나. 너무 오래 감춰두면 차차 그 계집애가 참다못해 도망치려고 들지도 모르는데. 뭐, 알아서 하겠지만.
군량, 화약, 화살 같은 물자는 이제 수송을 시작했다. 겨울에는 물자를 집중적으로 나르고, 2월부터는 동절기를 이용해서 최종훈련을 마친 병사들을 남해 일대로 집결하게 한다. 그리고 아까 언급했듯 4월 2일에는 원정을 개시한다. 출정식은 3월에 도성에서 열도록 할 예정이다.
그리고 중요한 문제인 도원수, 즉 일본원정군 총사령관 인선 문제가 남았다. 그런데 여기서 다소 내 예상과 어긋나는 일이 생겼다.
“전하, 신에게는 너무 부담되는 직책이오니 부디 동정군을 총지휘하는 도원수 직은 내리지 말아 주시옵소서.”
도원수 후보 중 하나로 내가 직접 선발 의사를 비치기까지 했던 병조판서 김명원이 스스로 그 자리를 사양했다. 가만히 있으면 김방경에 이어 한반도 역사상 2번째로 일본 원정을 맡아 지휘할 수 있었던 사람이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은 직접 군사를 지휘하는 일은 맡아 감당하기 어렵사옵니다. 전하께서 분부하시기를 육군과 수군의 두 부원수만 상대하면 되리라 하셨으나, 일단 도원수의 직책으로 전선에 나가면 어찌 두 부원수만 감당하겠습니까.”
사실이 그렇기는 하다. 솔직히 김명원에게 장재(將材)는 별로 없다. 다만 김명원이 행정을 전담해주면 두 부원수는 전투와 관련된 일만 맡아 좀 편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거지.
“물자나 병력의 공급은 신이 병조판서로서 부산에 체재하면서 해도 충분합니다. 굳이 맞지 않는 도원수 직까지 맡아 출정할 필요는 없을 듯하오니, 부디 주상께서는 신의 부족한 능력을 감안하시어 명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알겠다. 그럼 도원수는 누구로 함이 좋겠느냐?”
김명원이 선뜻 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런데 이항복이 서슴없이 입을 열었다.
“수군 제조 이순신으로 하시옵소서, 전하.”
“이순신을 도원수로?”
그거야 나도 그렇게 하고 싶기는 하다. 하지만 내가 남들 보기에도 확연히 티가 날 정도로 이순신을 편애하고 있음을 나 자신도 알다 보니, 이럴 때는 또 손을 확실하게 내밀지 못하고 망설인다. 그래서 처음부터 이순신을 도원수로 하겠다고 말하지 못한 거다.
공정해 보이고 싶은 소심함이라고 해야 하나, 이건.
“육군 제조 권율과 수군 제조 이순신, 두 장수는 모두 그동안 뛰어난 공적을 세웠사옵니다. 남과 북을 오가며 군사를 몰아 적을 쳐부수었고 군민을 다스리는 솜씨도 뛰어났습니다.”
그래, 둘 다 군사와 행정에서 모두 뛰어났지. 권율은 삼성부 방어전부터 시작해서 연달아서 대승을 거뒀고, 이순신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 모두 북방에서 거둔 혁혁한 전과를 밑바탕으로 경력을 쌓아 왜란에서 완전히 날아올랐다.
“허나, 육군 제조 권율은 몇 차례 결전에서 승리한 공은 크되 적을 완전히 두려움에 떨도록 하지는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수군 제조 이순신은 적이 아예 바다로 나오지 못하게 만들면서 전란 내내 왜적이 공포에 떨게 하였으니, 그 공이 어찌 전군에 으뜸이 아니겠습니까?”
이순신이 지휘하는 수군이 바닷속에 처박은 왜인 숫자는 육전에서 죽인 모든 왜병의 숫자를 능가한다. 불태우고 나포한 배 숫자가 2500여 척은 족히 되니, 한 척에서 60명만 죽었다고 쳐도 최소 15만 명이 수전에서 죽은 거다.
이항복은 다른 사람 아닌 권율의 사위다 보니, 자기 장인에게 유리한 의견을 낸다는 의심을 사기 쉽다. 그래서인지 확실한 근거를 바탕으로 이순신을 내세웠다.
“그렇구나. 다른 신하들은 의견이 어떠한가?”
“신들도 같은 생각이옵니다.”
임금이 이순신을 총애하는 줄은 모두가 알고 있다. 그리고 이순신이 그런 대우를 받을 만큼 실제로 유능한 장수라는 사실도 다들 안다. 장수로서 쌓아 올린 전과가 그 사실을 잘 보여줄 뿐 아니라, 행정업무 결과도 마찬가지다.
조정 대신들도 동의하겠다면야 뭐 망설일 필요가 없다. 불감청이언정 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라고, 못 이기는 척 기용하면 될 일이다.
“경들의 뜻이 그렇다면 따르도록 하리라. 수군 제조 이순신을 동정군 대원수로 하고 육군 제조 권율은 부원수로 명하니, 원정 준비 완료에 매진하라.”
이제 남은 건 겨울 동안 철저한 훈련으로 태세를 한 번 더 다지는 것뿐이다. 병력만 18만에 비전투원까지 합하면 원정 인원은 근 30만! 5년 만에 갚는 원한, 속 시원하게 한번 풀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