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643
2부 421화
– 4 –
5년 만에 찾아온 엄원(이즈하라)성은 모습이 많이 변해 있었다. 이순신은 성문을 들어서면서 뒤따르는 대솔군관 송희립에게 지시를 내렸다.
“산으로 도망친 적은 대마도 속오군으로 하여금 추격하게 하라. 패잔병 따위를 쫓느라 우리 정예병을 소모할 필요는 없다.”
엄원성은 조선군이 대마도를 공격하기 시작한 지 단 이틀 만에 성문을 열었다. 대마도에서 가장 중요한 요지인 천모만(아소만), 좌수포(사스우라) 등이 공격 첫날에 이미 함락당한 데다 항구 바깥에 상륙한 조선군이 육지에서 공성을 시작할 태세를 갖춘 덕분이다.
물론 적이 성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목책을 둘렀지만, 적이 죽기로 달려들자 다 막아내지는 못했다. 대략 엄원성을 지키던 왜병 셋 중 하나는 산속으로 도망치는 데 성공했다.
“대마도 산중에는 옛날에 우리가 설치한 양곡 창고가 아직 여럿 남아 있다 하니, 왜적들은 필시 이에 의지하여 저항하려 할 것입니다. 어서 군사를 보내 창고부터 빼앗겠습니다.”
“그리하라.”
이틀 동안 벌어진 대마도 탈환전에서 쏘아죽인 왜적이 783명, 포로로 잡은 적이 42명이다. 죽인 수에 비해 포로가 적은 건 왜병 다수가 아군이 상륙하기 전에 산으로 도망친 탓이 컸다.
그저 겁을 먹고 도망쳤을 수도 있다. 하지만 조선 측이 그렇게 했듯, 왜군도 조선군이 섬을 장악하면 정면으로 맞서는 대신 산속에 숨어 유격전을 벌이겠다고 계획했을 공산은 충분하다.
저들도 5년이나 이 섬에 머물렀다. 토착민인 대마도 주민들만큼 지리에 익숙하진 않겠지만 어느 정도는 파악했으리라. 물자를 숨긴 창고나 몸을 숨길 피난처, 거점으로 삼을 성책 역시 기존에 있던 것 외에 추가로 준비해 두었을 것이다.
“대마도 군사들은 지리에 밝으니, 창고를 찾아내고 왜병을 수색하는 일에도 능숙할 것이다. 공을 세운 자에게는 어명에 따라 상을 내리겠다고 알려주고, 이후에도 구주 출병에 동원하지 않고 섬에서 잔적 소탕을 맡기겠다는 약속도 유효하다고 확인해 주어라.”
대마도 병사들은 토병(土兵)이다. 복수를 원하고 있기도 하지만, 고향을 되찾는 일이야말로 이들이 무기를 잡은 가장 큰 원인이었다. 대마도를 수복한 뒤에도 원정군에 억지로 잡아놓고 싸우게 한다면 사기만 떨어질 가능성이 더 크다.
옛날, 무종 대였다면 길 안내나 통역으로 강제로 동원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만 명을 넘나드는 왜별기가 있으니 굳이 대마도 주민들을 동원할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일부 병력을 대마도에 남겨야만 하는데, 그렇다면 섬을 잘 아는 이들을 남겨두는 게 낫기도 하고.
“천장은 언제쯤 온다고 하던가?”
“경리 대인은 부원수 대감과 같이 올 모양입니다.”
경리 양호는 동래까지는 함께 왔다. 하지만 본래 육군이다 보니 대마도를 공략할 선봉대에 따라붙지는 않았고, 군관 몇 명만 먼저 내보냈다. 부원수 권율은 수군이 구주 박다(하카타)를 공략하고 나면 왜국으로 출발할 예정인데, 그때 함께 올 모양이다.
“경리 대인은 그렇다 치고, 요동에서 오는 이 도독 대인과 건주위 군사들은 아직 도성에도 도착하지 않았으니 왜국까지 넘어오려면 한참 걸릴 듯합니다.”
“그쪽이야 안 오는 편이 더 좋지 않은가. 늦어질수록 좋다.”
이순신은 이미 이여백과 누르하치를 모두 만난 적이 있었다. 무자년에 해서부를 쳐부술 때 일이다.
이여백은 싸움이 다 끝난 뒤에 뒤늦게 형 이여송과 함께 나타나 패악을 부렸었다. 주상께서 ‘황제께 심판을 청해 시시비비를 가리자’ 했더니 그대로 쪼그라들었지만 말이다.
누르하치는 달랐다. 주상을 알현할 때도 예의를 지켰고 이순신을 비롯한 조선 장수들에게도 깍듯했다. 다른 장수들은 그 태도를 좋게 평했지만, 이순신은 그 속셈이 음흉하다고 판단해서 그다지 호의적으로 보지 않았다.
“양 경리 대인은 그 사람됨이 정직하고 대범하여 능히 천장이라 일컬을 만하나, 이 도독은 딱히 보탬이 될 사람이 아니니 늦어도 딱히 문제가 없다. 앞으로도 없는 셈 치고 진행한다.”
“예, 도원수 대감.”
그 뒤에 몇 가지 지시를 더 내린 이순신은 아직도 연기를 피워올리고 있는 엄원성을 향해서 침착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승리에 들뜰 필요는 없었다. 이제 겨우 첫 싸움을 치렀을 뿐이다.
– 5 –
“본관도 어서 이 노야를 따라가고 싶습니다. 본진이 출발하기 전이라도 좋으니, 따로 배를 내어 먼저 건너가게 해주지 않겠습니까?”
“명하시는 바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번 토왜군의 본진은 도원수가 이끄는 선진이 아니라 이곳입니다. 대인께서는 천자께서 명하신 바를 받들어 본진과 함께하심이 옳지 않겠습니까.”
경리 양호는 조선에 오자마자 지난 경인년 왜란에서 왜선을 쓸어 없앤 이순신을 만나보고 싶다고 청했다. 그가 벌인 활약과 세운 공적이 이미 중국에까지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 초, 조정에서는 3년여에 걸쳐 작업한 《경인란록(庚寅亂錄)》을 간행하고 연행사 편으로 명나라 조정에 1부를 진상했다. 왜군이 흥양 앞바다에 나타나서 발포진을 급습하면서 시작한 151일간의 난리를 꼼꼼하게 정리한 기록이었다.
당연히 명나라 조정에서는 이 책을 받기만 하고 끝내지 않았다. 사본 다수를 제작해서 조정 대신과 장수들에게 내주어 읽고 숙지하게 했다. 양호 역시 그 책을 읽고 이순신이 적을 쳐서 거둔 전과에 탄복한 이들 중 하나였다.
“천장께서 선봉에 서셨다가 행여 흉적에게 위해라도 입으신다면, 어찌 저희가 고개를 들고 천자께 나갈 수 있겠습니까. 대인께서 손수 진두에 서고자 하시는 심정은 실로 감동할만하나, 부디 저희를 가엾게 여겨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양호를 직접 상대하는 역할을 맡은 이덕형으로서는 양호의 적극적인 태도에 도리어 골치가 아팠다. 차라리 명나라가 정식으로 참전했다면 속셈이야 어쨌건 차라리 대응이 쉬웠으리라. 죽든 말든 가고 싶다는 대로 전선으로 보내버리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이번 원정에 참여한 명군은 관전하러 왔지, 직접 싸우러 온 게 아니었다. 이순신을 존경하는 마음을 품고 온 거야 참으로 고마운 일이지만, 공연히 전선에 나가 봐야 이순신을 방해하는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될 뿐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본진이 바다를 건널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양호는 정말로 아쉬운 듯이 입맛을 다시면서 군사들을 거느리고 숙소로 돌아갔다. 이덕형은 그 뒷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게 좋은 거지. 듣는 이가 없으니까 하는 말이지만, 양 경리는 도성에서부터 마치 주인을 쫓아다니는 강아지처럼 도원수 대감을 따라다니지 않았던가. 곧바로 따라가고 싶어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이항복은 서류를 넘기면서 속 편한 소리를 했다. 거북한 상대인 양호를 상대하는 일은 몽땅 이덕형에게 떠넘겨 놓고, 자기는 그에 비해 쉽게 처리할 수 있는 행정문서만 붙들고 있었다.
“요동에 있는 이씨 형제들처럼 앙심을 품고 트집만 잡으려 드는 그런 자들에 비하면 얼마나 나은가. 자네가 양 경리를 잡아주니 나는 우리 장인어른이랑 함께 출진 준비에만 몰두할 수 있어서 참으로 좋으이.”
“그런다고 내가 형만큼 일을 안 하는 것도 아니지 않소.”
양호를 상대하지 않을 때는 이덕형 역시 출진 준비에 매달렸다. 도성에서는 중국어에 능한 영중추부사 이원익이 접반사를 맡아서 양호를 상대했지만, 양호를 동래까지 데려다준 뒤에는 다시 도성으로 돌아가 버렸다. 돌아와서 조정 일을 살피라는 어명 때문이었다.
‘경리왜국순무’씩이나 되는 인물에게 아무나 붙여줄 수도 없으니, 결국 두 체찰사 중 하나가 양호를 전담으로 안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항복은 매우 자연스럽게 이 골치 아픈 일을 이덕형에게 떠넘겼다.
“어쩌겠는가. 새로 차린 신접살림을 버리고 나온 새신랑의 귀향하고픈 마음을 가라앉히려면 일이라도 잔뜩 안겨주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첩을 들이는 것도 엄연히 혼인이니 말일세.”
롤리타가 거론되자 이덕형이 얼굴을 붉혔다. 전과 다른 반응에 이항복이 폭소를 터트렸다.
“국왕 전하의 윤허 덕분에 서방님을 남편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지어미로서 제가 할 몫을 다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어명에 의해 롤리타를 집으로 들이던 날, 이덕형은 놀라도록 조신한 태도로 자신을 대하는 그녀를 마주하고 깜짝 놀랐다. 옷은 여전히 드레스 차림이지만 몸가짐은 서반아에서 만났을 때 보이던 모습과 전혀 달랐던 때문이다. 한마디도 못 하던 조선말도 상당히 능숙했다.
“모두 조선까지 오는 도중에 돈…아니, 백사 공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제가 남은 평생을 서방님과 함께 조선에서 살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조선 말과 풍속을 능숙하게 익혀야 한다며 말입니다.”
소의 이씨 본가에 머무르는 두 달 동안은 소의 이씨가 보내준 상궁들이 조선 예법을 추가로 가르쳐 주었다고 했다. 호출을 받고 몇 번 입궁해서 소의 이씨를 직접 만나기도 했고 말이다.
“세뇨리타, 그럼 더 확실히 알았을 것 아니오. 나는 아내가 살아 있는 한은 그대를 정처로 맞이할 수가 없소. 우리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은 세례도 받을 수 없을 것인데, 가톨릭 신자인 그대가 어찌 첩의 지위를 받아들인다는 말이오?”
“유럽에서도 신실한 신자면서 또한 정부를 둔 이들이 숱하게 많습니다. 심지어 모든 백성의 모범이 되어야 할 군주와 성직자 중에도 아내 아닌 여인과 관계하는 이를 흔히 볼 수 있지요. 하물며 조선은 그 법도가 유럽과 다르니, 두 번째 여인이 됨이 어찌 흠이겠습니까?”
롤리타는 태연했다. 이덕형이 도리어 당황할 정도였다.
“세례 문제도 별로 걱정은 되지 않습니다. 중혼에 대한 금지도, 사생아에 대한 차별도 모두 그리스도의 율법이 뿌리를 내린 유럽에서만 시행할 수 있는 조치니까요. 만약 첩의 자식에게 세례를 주지 않는다고 하면, 어찌 교회가 조선에서 그 세를 넓힐 수 있겠습니까?”
지금도 마포에 있는 성당에서는 찾아오는 신자들에게 어떤 구분도 두지 않고 세례를 주고 있다. 아비를 모르는 상것들과 제사가 승인된 후 찾아온 양반가 서얼들도 포함해서 말이다.
이 문제에 관해 선교사들은 ‘주님을 알기 전에 지은 죄는 죄가 아니다’라는 태도를 표했고, 가톨릭에 귀의한 이가 첩을 ‘더’ 들이지 않기만 권했다. 롤리타 역시 노고산 성당을 드나들며 그 방침에 대해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애초에 교회의 가르침을 모르는 조선인들과 태어날 때부터 세례를 받고 교회 안에 머무르던 세뇨리타, 그대와는 상황이 다르지 않소.”
롤리타는 시종일관 조선말을, 이덕형은 서반아어를 썼다. 이 기묘한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사랑하는 서방님과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괜찮습니다. 물론 저도 정처가 되고 싶지만, 저 때문에 먼저 혼인하신 아내를 버리신다면 그게 더 큰 죄악이겠지요. 저는 괜찮아요.”
카디스를 떠난 지 거의 1년 반, 그동안 이덕형은 롤리타와 마주 앉아서 이 문제를 진지하게 논한 적이 없었다. 도대체 이 곤란한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시 롤리타가 마음을 바꿔 돌아가겠다고 해도 배를 돌릴 수도 없었으니 말이다.
“마데이라에서 벽란도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계속 그대를 피했소. 원망스럽지 않았소?”
“이미 6년이나 서방님과 떨어져 있지 않았습니까. 1년 정도 더 기다린다고 해도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옆에서 항해하는 배에 서방님께서 타고 계심을 알고 있는데, 소녀가 불안해하거나 원망을 품을 이유가 어디 있었겠습니까?”
“허어, 그대는….”
이덕형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동안 첩을 들이지 않았던 이유는 필요가 없어서였다. 아내인 이씨가 아들을 셋이나 낳아 후사 때문에 첩을 들일 필요도 없었고, 여색을 즐기지도 않았다.
가문에서 골라준 아내와의 삶은 편안하고 평화로웠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20여 년 쌓아온 정은 분명 있되, 보기만 해도 가슴을 설레게 하거나 마음 한쪽이 불타오르는 열정은 없었다. 그런데 자신을 연모하여 세상 반대편까지 온 여인 앞에서 그것이 지금 생겨나고 있었다.
“커, 커흠. 형도 첩이 둘이나 있으시잖소. 그러면서 뭘 놀리시오? 어서 일이나 합시다.”
얼굴이 붉어진 이덕형이 애써 화제를 돌렸다. 웬일인지 이항복도 더 붙들고 늘어지지 않고 선뜻 그 말을 들어주었다. 다만 웃음은 그치지 않았다.
– 6 –
쓰시마 섬에 설치한 봉화대에서 연기가 솟는 광경을 목격한 이키섬에서는 소동이 벌어졌다. 저 신호는 조선군이 쓰시마에 들이닥쳤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이 혼란 속으로 쓰시마 외곽 경계를 맡다가 간신히 탈출한 고바야 2척이 당도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목격한 조선 수군의 규모를 고했다. 그 소식은 빠르게 섬 전체에 알려졌다.
“남만선만 쳐도 10척 이상이라고 했지?”
“그, 그렇습니다, 주군. 시간이 지났으니 더 늘었을 겁니다.”
이키 수비를 담당하는 병력은 쓰시마와 같은 3천이다. 하지만 주민도 없이 크기만 한 섬을 겨우 3천 명으로 지켜야 하는 쓰시마와 달리, 이키는 2만 가까운 상주인구가 아직 남아 있다. 본래는 한참 더 많았지만, 지난 조선 원정 이후 격감했다.
“어서 병사들을 배치하고, 아직 아무 일도 안 하는 주민 중 싸울 만한 자들을 골라 무기를 주어라! 이렇게 급박한 상황인데 원균 공이 지시를 내리길 기다리고 있을 여유가 없다.”
이키 수비군 3천 중에서 이키 병사는 1천, 방어전을 지원하기 위해 규슈에서 교대로 파견된 병사가 나머지 2천이다. 지금은 우키타 히데이에군이 와 있다. 물론 히데이에 본인이 여기에 직접 오지는 않았다.
“원균 공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방어를 주관해야 할 사람은 자신이건만!”
남성에 주둔하는 우키타군 총대장 오카 이에토시(岡家利)는 발을 동동 굴러댔다. 쓰시마에서 봉화가 오르고 감시선이 도착해서 조선군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알린 지 벌써 하루가 지났다. 그런데도 영주인 원균은 나타나지 않고, 자신이 방어를 총지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이 거느린 우키타군 병력이 이키군보다 더 많고 전력도 강하다. 하지만 이키섬을 지키는 주장(主將)은 어디까지나 이키 영주 원균이어야 했다. 우키타군은 원군, 자신은 분명한 객장이다. 그런데 정작 주장 원균이 코빼기도 안 내밀고 있다.
“원균 공에게 사자를 보내기는 했는가?”
“물론입니다, 오카 님. 제가 북성에서 오는 길에 분명히 중성에 들어가 전했습니다. 쓰시마에서 지금 봉화가 오르고 있다고요.”
사실 봉화가 올랐다고 전령무사가 굳이 알려주러 갈 필요도 없다. 중성에 있을 원균의 눈이 양쪽 다 멀지 않았다면, 그 진한 연기를 못 봤을 리가 없으니까.
히데요시의 명에 따라 성 3개를 쌓자 원균은 섬 안에서의 위치에 따라 각각을 북성, 중성, 남성이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이키 병사 1천을 중성에 두고, 자신의 저택도 중성 안으로 옮겨 적이 쳐들어왔을 경우 끝까지 항전할 태세를 보였다.
쓰시마 측의 동태를 살피는 일이 주임무인 북성에는 우키타군 500명이 남아 경계를 맡았다. 이들은 자신들이 감당할 수 있는 규모 이상으로 조선군이 쳐들어오면, 성을 폭파하고 빠르게 후퇴해서 남성에 주둔한 주력부대에 합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쓰시마에서 도착한 감시선에 타고 있던 병사들이 한 보고도 분명히 전했습니다. 조선군이 남만선 10여 척, 판옥선 수백 척을 타고 몰려오고 있다고 말입니다.”
“허허, 그럼 뭔가 반응이 있기는 해야 할 게 아닌가.”
영지의 방어를 책임진 영주라면 당장 뛰쳐나와 방어태세를 점검하고 항전을 준비해야 한다. 그럴 상황이 아니라면 적어도 이미 파악해둔 상황을 중심으로 지시라도 내려야 한다. 하지만 지금 원균에게서는 전언 한마디가 오지 않았다.
“안 되겠다. 어쩌면 아직도 술에 취해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르니, 내가 중성으로 가는 편이 낫겠다.”
일본군의 방어전략은 간단했다. 원균군이 내륙인 중성에서, 우키타군이 규슈와의 연결점인 남성에서 버티면서 원군을 기다린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에토시 본인은 그 원군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저기 원균 님이 오십니다!”
“그래?”
직접 중성에 가려는 참에 북쪽에서 다가오는 행렬이 하나 보였다. 막대기를 붙인 널빤지와 긴 빗자루가 교차하는 깃발이 분명히 보였다. 이제 겨우 저 돼지가 움직이는구나 싶었다.
“원균 님, 어찌 이제야 나오십니까? 어서 방어 준비를 하십시오.”
“그전에 내가 배를 타고 나가 직접 적세를 살펴야겠소. 그동안 이키를 부탁하오.”
주장이 위험하게 직접 나가 적세를 살피다니? 더구나 그 비대한 몸으로?
이에토시가 두 눈을 부릅뜨자 원균이 가마에 탄 채로 급히 이유를 설명했다.
“쳐들어오는 적과 싸우려면 그 적세를 내 눈으로 살필 필요가 있음은 아시지 않소? 그리고 배를 타고 움직이면 내 몸 사정과 별개로 날렵하게 움직일 수 있소. 나는 본래 수군이오.”
이에토시가 알고 있기로, 원균은 적어도 적과 싸워보지도 않고 도망치는 장수는 아니라고 했다. 지난 원정에서도 몇 차례나 조선군에게 패해 도망쳤지만, 그래도 자기 할 몫은 다했다. 패한 싸움도 최선을 다해 보다가 힘에 부쳐 밀려났었다고 들었다.
“알겠습니다. 무사히 돌아오십시오.”
“곧 돌아올 테니 그동안만 이키를 부탁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