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646
2부 42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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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야성은 지난 덴쇼 18년(경인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기존에 만든 구조물을 해체한 건 아니다. 그 주변에 추가로 만든 여러 보루와 포좌가 이 성을 난공불락의 존재로 만들었다.
우키타 히데이에는 이 성을 보강하기 위해 나가사키에서 포르투갈인 기술자까지 고용했다. 그래서 서양식 포대를 건설하고 화포를 얹었다. 나고야성 하나만 강화한 것도 아니고, 포구로 들어오는 수로 주변에 있는 여러 섬에도 보루와 포대를 구축했다.
“놈들은 분명히 이리로 온다!”
조선에서 가장 가까운 규슈 땅이 바로 이곳 나고야다. 이키를 점령한 조선군이 동남쪽으로 한나절만 움직이면 당도할 장소이고, 규슈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거점이기도 하다. 적이 규슈 방면 정세를 제대로 파악한다면 당연히 노릴 표적이었다.
히데이에는 이런 사태를 예견하고 지난 4년 동안 나고야성 일대를 요새화했다. 지원병력을 동원할 체계도 정비해서 6만에 달하는 규슈 전체 병력 중 4만 명이 집결할 수 있도록 계획을 짰다. 조선군은 이런 대군을 후방에 놓아두고 다른 곳으로 진격할 수는 없을 거다.
“하카타에 연락을 보내라! 준비한 군량과 화약을 육로를 통해 운송할 준비를 하라고!”
“예!”
나고야성에 비축된 군량과 화약은 2달쯤 버틸만한 분량이다. 여전히 작황이 별로 좋지 못한 데다, 어선조차 멀리 나가지 못해 식량부족이 절실하다 보니 더 많은 양을 비축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이상 필요하리라는 예상은 들지 않았다. 나고야성을 무너뜨리지 않는 이상 적이 규슈에 상륙하기는 어려울 테고, 필요한 물자는 육로를 통해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적이 간몬으로 들어가지는 않고 있다. 주고쿠나 시고쿠에서 물자를 들여오는 뱃길은 열려 있으니, 싸움에 필요한 물자가 모자라지는 않을 거다.”
한참 지시를 내리는 히데이에에게 이의를 제기한 이는 고니시 유키나가였다. 적이 쓰시마를 덮쳤다는 연락을 받자마자 자기 영지에서 동원한 병력 3000명을 끌고 바로 달려온 참이었다.
“우키타 님, 적이 나고야를 버려두고 하카타나 나가사키를 노릴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옛 고사를 돌이켜보건대, 300여 년 전 원구(元寇, 몽골군)가 고려와 합세해서 규슈에 쳐들어왔을 때도 저들의 목표는 하카타였습니다.”
“고니시 공, 시절이 바뀌었소. 지금은 호조 도키무네 공 시절이 아니오.”
하카타를 공략하면 규슈의 행정 중심지였던 다자이후(太宰府)로 진격할 수 있다. 예전이라면 정말 큰 타격이겠지만, 이제 다자이후는 더 이상 옛날만큼 중요한 도시가 아니었다. 중앙에서 내리는 지시가 별 힘이 없었던 지난 백여 년, 대관(代官)의 도시였던 다자이후는 쇠퇴했다.
“지금의 다자이후는 그저 한적한 농촌에 불과하잖소. 규슈 각지에 자리한 영주와 호족들은 각자 근거지를 기반으로 하니까 조선군이 다자이후를 빼앗은들 세력에 별 타격을 입지 않소. 적이 무작정 옛 고사를 바탕으로 다자이후를 노린다면 도리어 환영할 일이오.”
지금 규슈의 중심은 누가 뭐라고 해도 이곳 나고야성이다. 여기를 공략하지 않고서 어떻게 규슈를 장악한다는 말인가?
“비록 교역이 끊기면서 지금은 심히 침체했지만, 하카타는 규슈에서 가장 큰 무역항입니다. 많은 물자를 구할 수 있는 곳이지요. 우키다 님께서도 보충물자를 하카타에다가 준비해 두지 않으셨습니까?”
“만약 조선군이 하카타에 쳐들어오면 모든 창고가 불태워질 거요. 이순신이 그 정도 이치도 헤아리지 못할 만큼 멍청한 줄 아시오? 그자는 놀랍도록 견실한 장수요. 손에 넣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전리품 따위에 기대를 걸고 병사를 움직이지 않는단 말이오.”
이순신에 대한 정보는 전쟁이 끝난 덴쇼 18년 이후에 도리어 더 많이 흘러들어왔다. 약탈을 나간 해적들이 조선에서 붙잡은 포로 중에 이순신 휘하에서 수군으로 복무했던 자들이 상당수 있었던 덕분이다.
포로들이 진술한 내용을 가지고 분석한 이순신의 성격은 놀랍도록 견실하고 차분했다. 절대 흥분하지도 않고 적을 보고 경솔하게 굴지도 않았다. 신상필벌이 확실하고, 기책(奇策)을 쓰지 않고 평범한 전술을 정석대로 구사하여 그 많은 승리를 이뤄냈다.
이순신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된 장수들은 ‘우리는 인간이 아니라 신장(神將)을 상대했구나!’하고 탄식했다. 그리고 적개심이 아니라 존경심을 품었다. 그런 대단한 장수를 어떻게 증오할 수 있겠는가? 덕분에, 그동안 이순신을 헐뜯던 원균의 평이 더 나빠졌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물론 일반 병사들이나 하급 무사들은 이순신과 조선 수군을 악귀처럼 간주하며 무서워했다. 이들에게는 이순신 개인의 품성이나 태도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문제였고, 오직 수많은 배와 사람을 바다 밑에 처박은 적장이라는 사실이 눈에 들어올 뿐이다.
“조선군은 하카타에서 물자를 약탈하지 않아도 충분히 싸울 수 있소. 애초에 그런 준비도 없이 쳐들어올 이순신이 아니오. 그러니 규슈 방어의 핵심인 이곳 나고야를 첫 번째로 공격할 게 분명하오. 지난번에 붙잡았던 첩자 건만 봐도 그렇소.”
히데이에는 조선군이 상륙할 곳은 나고야성에서 동남쪽으로 하루 정도 걸리는 가라쓰 방면, 마츠우라 강 하구 일대라고 생각했다. 여러 조건을 감안할 때 그곳이 상륙에 가장 적합했다.
“그곳은 해변이 넓고 내륙으로 들어가는 도로도 있소. 게다가 포구 입구를 가로막는 섬도 하나뿐이라 방어도 취약하지.”
나고야성을 직접 공격하는 길은 여러 섬과 수많은 포대로 막혀 있다. 조선군이 그것들을 다 부수고 오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게 될 터였다. 그러니 가라쓰로 우회하리라. 적이 가라쓰를 점령하면 나고야성을 규슈 본토에서 고립시키기도 쉽다.
“그쪽에는 포대는 모자라지만, 대신 화공선으로 쓸 쪽배 수백 척을 숨겨두었소. 유럽에서도 잉글랜드군이 화공선을 써서 스페인 함대를 격파했다지 않았소? 우리도 화공선을 잘 활용하면 조선 수군을 격파할 수 있을 거요.”
덴쇼 18년에 겪은 수전 패배는 함선 크기와 무장에도 요인이 있지만, 조선 연해에서 싸움을 벌였던 탓이 크다. 적에게 익숙한 바다에서 이순신처럼 견실한 장수를 상대로 했으니 패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일본 연해가 싸움터가 된다. 당연히 지리에 익숙한 편은 이쪽이다. 그러면 그 대단한 이순신이 상대라고 해도 승리할 가망이 있다. 함선과 무장에서 열세라도 말이다.
“타격을 입은 조선군이 설사 상륙에 성공하더라도 그 병력은 크게 약해져 있을 거요. 적이 미처 진형을 정비하기 전에 급습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소.”
“조선군이 가라쓰로 온다면 그렇겠지요. 하지만 놈들이 하카타를 친다면 여기 모인 병력은 고스란히 닭 쫓던 개 신세가 됩니다. 그 점을 생각하면, 병력의 절반은 하카타에 두게 하심이 좋다고 생각됩니다.”
조선군이 쓰시마를 공격한 지 5일째 되는 오늘까지 나고야성에 집결한 병력은 2만 명이다. 영주들이 막대한 부담을 감수하며 유지하고 있던 상비군부터 바로 소집한 덕분이다. 남은 4만 병력까지 모으자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고니시 공, 아시잖소? 우리 병력을 분산하면 적에게 따로따로 당하기만 쉬워지오. 전력은 하나로 모아야 강력한 법이오.”
“틀린 말씀은 아니지만, 그러다 적이 하카타를 치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만약 이순신이 하카타를 칠 정도로 어리석다면, 역공하면 그만이오.”
히데이에가 입가에 매서운 미소를 띄웠다. 두 눈이 욕망으로 빛났다.
“여기 나고야에는 치쿠젠, 히젠 일대에서 모아들인 전선 100척이 있소. 이 전력으로 조선 본국을 공격하겠소. 그러면 적의 공세를 멈추고 시간을 벌 수 있을 거요.”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그대가 오기 전에 내 중신들과 이미 군의에서 깊이 논한 바요. 원 공의 보고로 미루어보면 이키를 공략한 조선군은 2~3만 명 정도였소. 하지만 지난번 우리 원정에 대한 보복을 노리고 쳐들어왔다면 분명 서너 배는 되는 병력이 더 있을 거요.”
그런 대군을 유지하려면 배가 얼마나 많이 필요하겠는가? 덴쇼 18년의 원정 때도 일본군은 1천 척 이상을 보급선 유지에 투입했다. 지금 쳐들어온 조선군이 그때 일본군보다는 적지만, 대신 밥을 훨씬 많이 먹으니까 보급 소요량에는 별 차이가 없을 거다.
“조선 수군은 경상도에서 하카타까지 이어지는 보급선을 유지하고 우리 수군이 이를 도중에 습격하지 못하도록 운송선을 지키는 데만도 부담이 클 거요. 당연히 본토 해안 방어가 전보다 허술해질 수밖에 없소.”
조선 수군이 규슈로 출동한 틈을 타서 전라도, 충청도를 공격한다. 딱 한 번만 제대로 털면 적은 전선 다수를 되돌려야 할 테고, 규슈 진공은 지연된다. 그 틈에 주고쿠에서 원군을 불러 상륙한 적군을 격파하면 하카타 침공도 저지할 수 있다.
총대장인 우키타 히데이에의 강력한 의사표명에 고니시도 입을 다물었다. 이때 무사 하나가 급히 달려와 무릎을 꿇었다.
“주군! 조선 수군의 남만선이 나타났습니다. 가카라시마(加唐島) 앞에 나타나서 우리 보루를 향해 포격을 가할 태세라고 합니다.”
두 손으로 자기 무릎을 친 히데이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자신의 예상대로 조선군이 움직였음을 알고 얼굴에 희색이 만면했다.
“그것 보시오, 고니시 공! 내 말대로잖소? 이제 조선군 주력을 맞아 버티면서 싸울 준비를 하면 되는 거요.”
히데이에는 따라 일어서는 장수들에게 이것저것 지시를 내리면서 밖으로 나갔다. 그 뒤에서 따라가던 고니시는 불안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조선군이 히데이에의 주장대로 움직인다면야 나쁘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저들이 나고야와 하카타를 동시에 공격하려는 거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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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남만선들은 명호옥(名護屋, 나고야) 일대를 완전히 봉쇄하고 있습니다.”
조방장 정발 지휘 하의 남만선 12척은 3일 동안 나고야 주변을 둘러싸고 포화를 퍼부었다. 일기도에서 나고야로 들어가는 뱃길을 가로막고 있는 가당도(加唐島, 가카라시마)를 비롯한 섬 3개도 뭍에 오른 등선군에게 함락되었다.
전초선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섬들에도 포대는 있었다. 다만 수효가 많지는 않아서 해안선을 전부 지킬 수는 없었다. 그 틈으로 등선군이 배를 대고 육지에 올랐다. 얼마 안 되는 왜군은 곧 제압당했다.
“지금 왜 수군은 가부도(加部島, 가베시마) 좌우를 돌아 나고야로 가는 길을 막고 있습니다. 명령만 내리신다면 바로 섬멸할 수 있습니다.”
정발이 보낸 보고를 받은 이순신은 간단하게 답했다.
“우리 목표가 명호옥이 아니니 굳이 지금 공격할 필요는 없다. 저들은 미리 구축한 견고한 포대의 지원을 받고 있고, 화공선도 숨겨두었을지 모른다. 우리 남만선들은 왜적의 전선들이 명호옥 일대를 벗어나지 못하게만 하고, 당장이라도 공격에 나설 것처럼 위장하라 이르라.”
금위사에서 미리 파견한 세작들이 입을 모아 보고하길, 명호옥이야말로 왜적이 구주 방어의 핵심 거점으로 삼은 장소라고 했다. 수만 단위 왜병이 진을 친 데다가 병기와 군량도 넉넉히 비축한 금성탕지(金城湯池)라는 것이 이순신에게 전달된 보고였다.
“강력한 거점은 우회한다.”
강력한 적 거점을 모조리 격파, 점령할 필요는 없다. 비변사에 장수들이 모여 주상전하를 모시고 군의를 할 때, 상감께서는 몇 번이나 강조하셨다.
‘나는 우리 군사들이 나를 위해 죽기를 바라지 않는다. 마땅히 왜적들이 저들의 우두머리를 위해 죽도록 할지어다.’
싸움을 준비하고 있는 적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건 아군의 피해를 늘리는 바보짓이다. 물론 적을 섬멸하는 건 필요한 일이지만, 적이 대비하고 있는 정면으로 밀고 들어갈 필요는 전혀 없다. 지난 경인년에 그랬듯, 우리가 준비한 정면으로 저들이 밀려오게 해야 한다.
그러자면 적이 예상하지 못한 장소를 노려 혼란에 빠지게 해야 한다. 그러면 적은 자신들이 상정한 전장을 벗어나서 이쪽이 준비한 전장으로 끌려오게 될 것이다.
“적이 두려워서 싸우지 못하고 물러나면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지요. 나중에 포로로 잡아 얼마든지 우리 좋을 대로 처분하는 편이 죽이는 것보다 훨씬 이득 아닙니까.”
며칠 전 합류한 이항복도 한마디 했다. 문관이지만, 적어도 말로는 충분히 군략을 논할 수 있는 사람이다. 경인년에 병조판서로 있으면서 군무를 관장했던 주역이 아닌가.
“도원수께서 오셨음을 알고 적이 겁을 먹도록, 일기도에서 잡은 왜병 포로 중에 50여 명을 슬쩍 풀어주어 소식을 알리게 했습니다. 명호옥 공격을 개시하던 날 하카타 일원에 풀었으니, 저들은 지금쯤 잔뜩 동요하고 있을 겁니다.”
일기도에서 잡은 포로는 1천여 명이다. 이들은 공간이 부족한 일기도 대신 대마도로 보내서 수용했는데, 이 포로 수송선 중 몇 척은 일기도 주민들이 몰도록 했다. 그중에 한 척을 따로 움직여 규슈 해안에 포로를 내려놓게 한 거다. 조선인들로부터 함께 탈출하는 척 하면서.
“그 포로들은 우리가 명호옥을 목표로 삼았다고 알고 있으니, 이중으로 계교를 펼치게 되는 셈이지요. 체찰사께서 좋은 계책을 내셨습니다.”
이제 막 출격할 참인 이억기가 한마디 거들었다. 이억기는 박다(博多, 하카타) 공격 선두에 설 예정이다. 오늘 저녁에 일기도를 출발, 내일 새벽녘에 박다 항구를 급습한다.
“5년 전, 저들이 발포진을 기습한 날이 바로 이맘때였습니다. 드디어 원한을 갚을 기회가 왔음에 저희 군사들은 모두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여 흐느껴 울고 있습니다.”
경인년에 가장 혹심한 피해를 본 곳이 전라도다. 당연히 한이 깊을 수밖에 없었다.
군의에 모인 장수들은 드디어 본격적으로 경인년의 원수를 갚을 수 있게 되었음을 기뻐하며 다시 한번 결의를 다졌다. 못된 짓을 획책한 적괴 수길의 목을 기필코 베고, 저들에게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만들고야 말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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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카타만 입구에는 겐카이시마, 시카시마, 노코노시마 등 큼직한 섬 3개가 가로놓여 있다. 당연히 일본군은 이 세 섬에 모두 망루와 포대를 설치해서 항구를 지키게 했다.
조선군이 나고야성을 공격하고 있다는 소식에 여기 배치된 병사들은 다소 안도했다. 여기가 목표가 아니라니, 목숨이 단 며칠이라도 더 붙어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고야성을 수비하는 아군이 조선군을 되도록 오래 붙들어주기만 바라고 있던 4월 9일 새벽, 이변이 생겼다.
“시커먼 그림자가 다가온다. 저게 뭐야?”
“저건…저건, 메구라부네다! 조선 수군 메구라부네야!”
미처 해가 제대로 뜨기도 전에 납작한 형상을 한 낯선 배 10여 척이 항구를 향해 움직이는 모습이 보초를 서던 병사들의 눈에 들어왔다. 5년 전 조선에 싸우러 갔던 자라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악귀들, 총탄도 화살도 먹히지 않는 메구라부네였다.
“종을 쳐라! 불을 피워라! 적이다! 적이 하카타로 들어온다!”
어둠 탓에 발견이 너무 늦었다. 졸고 있던 병사들이 급히 포대로 뛰어가서 포구에 끼워둔 마개를 뽑고 화약을 퍼넣었다. 너무 어두워서 포도, 포탄도 제대로 보이지 않자 몇몇 병사가 급한 마음에 횃불을 치켜들었다.
“멍청한 놈! 어서 꺼!”
지휘하던 무사가 고함을 쳤지만, 그 병사가 횃불을 끌 틈은 없었다. 메구라부네의 옆구리가 연달아 불을 뿜었고, 불빛을 향해 날아든 포탄이 포대를 휩쓸었다. 그리고 일본군이 밀려오는 메구라부네에만 주의를 쏟는 사이, 그 뒤를 따라온 판옥선이 불벼락을 퍼부었다.
신기전 역시 5년 전에 죽도록 뒤집어쓴 무기였다. 쇳가루가 섞인 화약이 곳곳에서 폭발하자 포대에 준비해 둔 화약이 연달아 유폭했다. 불꽃과 연기, 비명이 세 섬 중에 가장 앞에 있는 겐카이시마, 그리고 시키시마를 덮었다.
그 혼란 속으로 조선 전선 몇 척이 뛰어들었다. 모래톱에 접안한 배에서 칼과 방패를 들고 남만식 흉갑을 걸친 병사 수백 명이 뛰어내려 섬 안쪽으로 쇄도했다.
하카타만 안에 있어서 일차 공격 대상에서 벗어난 노코노시마에 배치된 병사들은 두 섬에 있는 동료들이 묵사발이 나는 모습을 보며 공포에 떨었다. 이제 해가 천천히 떠오르는 가운데 수십 척, 아니 수백 척이 될지 모르는 조선 전선들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