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647
2부 4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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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카타는 하카타만 남쪽에 동서로 길게 펼쳐진 도시다. 특정 영주가 맡아 다스리는 영토가 아니라 사카이와 마찬가지로 상인들이 자치권을 가지고 운영하는 도시로, 본래는 누구의 지배권도 미치지 않았다.
하지만 천하가 한 사람 밑에 들어간 이상, 지금까지와 같은 자유는 허용되지 않았다. 이곳 역시 먼저 무릎을 꿇은 사카이와 마찬가지로, 천하인인 노부나가의 지배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노부나가를 이어서 나타난 지배자는 그 지위를 승계한 히데요시였다.
그동안 하카타의 풍요는 조선과 명나라를 상대로 하는 교역에서 나왔다. 하지만 노부나가가 일으키고 히데요시가 이어받은 전쟁은 하카타를 번영하게 해주던 그 교역을 끊어버렸다. 이제 하카타는 남만과 진행하는 일부 교역 외에는 모든 교역을 중단해야 했다.
하지만 하카타는 아직 살아 있었다. 경쟁 관계인 사카이는 노부나가의 명에 의해 직할령이 되면서 자치권을 상실했지만, 하카타는 아직 자치권을 유지했다. 역설적이지만, 이것도 역시 전쟁 때문이었다.
히데요시는 규슈 방어를 위해서 물자와 자금을 조달할 필요에 쫓겼다. 대외교역이 줄었다고 하지만 하카타에는 아직 물자 조달 능력과 그동안 축적한 자본이 있었다. 하카타 상인들에게 원활한 협조를 얻기 위해서 히데요시는 하카타의 자치권을 계속 인정해 주었다.
다만 유사시에 하카타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구로다 나가마사를 시켜 병사 3천 명을 거느리고 주둔하게 했다. 이들은 과거 원구(元寇, 몽골군)가 쳐들어왔을 때 호조 도키무네가 쌓게 했던 옛 방벽을 보수하고, 포대를 증축하여 방비 태세를 갖추었다.
나고야성 공략을 이제 막 시작한 조선군이 과연 언제쯤 하카타에 쳐들어올지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상인들도, 나가마사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과연 언제 조선군이 나타날 것인지 모두가 가슴을 졸이며 기다리던 참에, 드디어 적이 나타난 것이다.
“나가마사 님의 명이오!”
하카타를 움직이는 두 거상 중 하나, 시마이 소시츠(島井宗室)의 저택에 나가마사가 보낸 전령무사가 도착했다. 나가마사는 해안가 방벽에 나가서 병사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오늘은 해가 뜨기도 전부터 하카타만 전체가 포성과 불꽃으로 가득했다.
“조선군이 상륙했소. 즉시 모든 창고를 불태우시오! 조선군에게 물자를 넘겨서는 안 되오!”
“알겠소.”
집주인인 시마이 소시츠가 고개를 끄덕이자 전령무사는 곧바로 다시 뛰어나갔다. 곧 말발굽 소리가 포성 사이로 멀어져갔다. 일출과 함께 시작되어 격렬하게 울려대던 양군의 포성은 이제 잦아들려고 하고 있었다.
“우리가 준비한 병사가 얼마였지요?”
“500명이오.”
시마이 소시츠와 함께 하카타를 주름잡는 상인인 카미야 소탄(神屋宗湛)이 조용히 답했다. 카미야는 명나라와의 교역을 전문으로 했고 쌀을 전문으로 취급했다. 집주인 시마이 소시츠가 양조, 돈놀이, 조선과의 교역을 주로 해오던 것과는 달랐다.
물론 지금은 둘 다 남만과의 소규모 교역 및 일본 내에서의 물자 유통으로 소액을 버는 데 그치고 있다. 이들이 다시 과거와 같이 번영하려면 하루빨리 전쟁이 끝나고 조선, 명나라와의 교역이 회복되어야만 했다.
“더 모으려면 모을 수도 있었지만, 그래봤자 구로다 님께 빼앗기기만 했을 테니까요.”
“맞는 말이오. 500명, 딱 적당한 숫자요.”
실패한 5년 전의 원정에서 입은 피해는 아직도 규슈 전역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약간의 급료와 식량만 주면 병사는 수천 명이라도 고용할 수 있었다. 많은 이들이 굶주리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잘하는 것, 그리고 히데요시가 하카타에 바라는 역할은 병사를 모아서 직접 싸우는 게 아니고 다른 영주들이 병사를 모을 수 있게 돈을 내놓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들도 직접 보유한 병사는 하카타 시내의 치안을 유지할 정도의 소수만 유지했다.
이들 하카타 군(軍)의 역할은 시내 요소를 경계하고, 규슈 각지에서 모은 물자와 혼슈에서 들어온 물자를 비축한 창고를 경비하는 일이었다. 외부의 위협에서 하카타를 지키는 건 방금 사자를 보낸 구로다 군의 역할이다. 시마이 소시츠가 결단을 재촉했다.
“이제 지시를 내립시다. 창고를 엄중히 봉하고, 누구도 손대지 못하게 하라고 말이오.”
이미 약속은 되어있다. 조선군이 성공적으로 하카타를 손에 넣는다면 그때부터 협력하기로 말이다. 단 여기에는 하카타를 파괴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도 붙어 있었다.
“그럽시다. 저들도 약속을 잊지 않은 듯하니.”
카미야 소탄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선군은 화포로 구로다 군이 설치한 포대와 교전할 뿐, 하카타 시가지에 폭탄이나 불화살을 퍼붓지 않았다. 조선군이 쓰는 불화살은 화약을 사용하기 때문에 단지 몇 개만 날아와도 대화재를 일으킬 텐데, 시가지 안으로는 하나도 쏘지 않았다.
“자, 우리는 이렇게 저쪽으로 넘어가기로 했소. 차야 님은 바로 에도로 가서 도쿠가와 님께 이곳 사정을 알리시겠지요?”
“그래야지요.”
옆에 조용히 앉아 있던 차야 시로지로(茶屋?延)가 차분하게 답했다. 차야는 하카타가 아닌 교토 출신 상인으로, 도쿠가와 가문을 위한 어용 상인 노릇을 하고 있었다. 본래 포목상이나, 도쿠가와 측에서 필요한 물품이라면 포목 외에도 무엇이든지 취급했다.
“세토우치 쪽 수로는 아직 안전합니다. 조선 수군이 간몬을 넘기 전까지는 에도로 돌아가는 길도 괜찮을 겁니다.”
태합 전하께서는 모리 가문으로 하여금 간몬을 막게 했다. 섬과 해안에는 포대를 건설하고 수군도 재건해서 방어할 준비를 하라고 말이다. 지금 모리 가문은 벌써 200척 가까운 전선을 모아놓고 있다고 했다. 급보가 갔을 테니 곧 간몬 해협을 폐쇄하리라.
“앞으로 도쿠가와 님은 어떻게 하신답니까?”
“글쎄요. 아직 확실하게 결정된 바는 없습니다.”
시마이와 카미야는 이에야스가 자신들과는 다른 경로로 조선과 이미 접촉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차야 스스로가 그 사실을 암시하면서 접근해왔고, 구체적인 행동 방향은 아직 몰라도 이에야스가 조선과 뭔가 연계할 생각임은 이들도 느낄 수 있었다.
“어서 결정이 나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그리고 좋은 결과를 맞이하시기를.”
차야를 내보낸 두 사람은 눈을 마주치고 한숨을 쉬었다. 이제 조선군이 코앞에 왔으니까 곧 그 보호를 받을 수 있으리라.
혹시 이에야스가 히데요시에게 이들의 배신을 고발한다고 해도, 이젠 상관없다. 히데요시가 내린 체포령이 도달할 때쯤이면 이미 조선군이 이들을 지켜주고 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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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공들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저희 하카타에서는 조선군 제위께서 머무시는 동안 모자라는 구석이 없도록 성심성의껏 대하겠습니다.”
해안에서 버티던 구로다 군은 모두 도망쳤다. 운수 좋게도 거북선 2척에 손상을 입히기는 했으나 전과는 오직 그뿐, 마치 비처럼 날아드는 포탄을 감당해내지 못했다. 더구나 항구로 밀려드는 전선들이 줄줄이 병력을 쏟아냈다.
남만식 흉갑에 조선식 전모, 둥근 방패와 장검, 그리고 권총. 조선군이 등선군이라고 일컫는 병사들이다. 일본 병사들과 비교해도 칼싸움 솜씨가 거의 차이나지 않는 강력한 부대다. 그런 병사 수천 명이 개미 떼처럼 해안을 올랐다.
싸우기 전에 포화를 뒤집어쓰지 않고 하는 제대로 된 싸움이었다면 일본군이 딱히 불리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구로다 군은 이미 많은 병사가 포격에 맞아 죽고 다쳤다. 그런 상황에서 벌이는 싸움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방어를 포기하고 도망할 수밖에 없었다.
“하카타에서는 어떤 저항도 없을 것을 약속드립니다. 저희가 바라는 건 오직 평화를 누리는 것, 그리고 질서 속에서 거래하고 그에 따른 이익을 얻는 것뿐입니다.”
두 호상(豪商)은 모두 조선말에 능통했다. 당연히 항복을 표현하는 말도 전부 조선말이었다. 전선에서 내린 조선 장수들은 이들이 항복 의사를 표하자 다들 웃으며 받아들였다.
다만 이순신은 이들의 항복을 받으면서도 별로 좋은 표정이 아니었다. 왜인. 그것도 이득을 노려 고개를 숙인 장사치들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순신이 별로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으니 이항복이 잽싸게 끼어들어 대화를 이어받았다.
“그대들이 제공하는 물자가 큰 보탬이 되겠소. 감사하오.”
“작은 성의일 뿐입니다.”
시마이 소시츠와 카미야 소탄이 창고째로 넘긴 물자는 쌀 10만 석에 화약 1만 근. 행여나 구로다 군이 이것들을 파괴하러 올까 싶었던 하카타 측은 창고 앞에 젖은 짚을 쌓고 불태워서 창고가 타는 것처럼 위장했다. 젖은 짚에서 나는 큰 연기를 본 구로다 군은 의심하지 않았다.
규슈 방어에 쓰기 위해 기껏 준비한 물자가 역으로 조선군을 위해 쓰이게 되었다. 오사카에 있는 히데요시가 이 일을 알면 그대로 뒤로 자빠지리라.
“우리 조선군은 이미 일기도에 물자와 병력을 집적하고 있소. 오늘 오후부터 병력과 치중이 이곳 박다로 들어올 테니, 맞이할 준비를 부탁하오. 대가는 나중에 한꺼번에 정산하겠소.”
“대가 같은 문제로 고민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전혀 아쉬우실 것이 없도록 하겠으니, 염려 마시고 마음 푹 놓으십시오.”
동래에 대기하고 있던 육군은 그저께부터 병력과 물자를 운송하기 시작했다. 대마도에 병참 중계지를 만들고, 이키에도 물자를 쌓았다. 하카타에서 얻은 상당한 식량 덕분에 당장 급하게 물자를 나를 걱정은 덜었으니, 병력과 무기만 먼저 나를 수 있게 되었다.
이항복은 두 사람에게 현재 규슈 일대의 정확한 정보를 들었다. 이제 육군이 도착하면 이번 동정의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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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군이 왔다!”
조선군이 하카타를 점령했다는 소식은 화살처럼 규슈 북부 각지로 퍼져나갔다. 하카타에서 물러난 구로다 나가마사는 다자이후로 후퇴하면서 급히 사방으로 사자를 보냈다.
나가마사가 보낸 사자들은 길을 메운 피난민들을 뚫고 지나가야만 했다. 전쟁이 시작됐다는 소문은 이미 잔뜩 퍼져 있었다. 그 위에 적이 하카타를 점령하고 규슈에 거점을 확보하기까지 했으니, 공포에 찬 주민들이 피난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무쿠리, 고쿠리가 왔다!”
“북방인들이 왔다!”
“여진족이 왔다!”
300여 년 전에 쳐들어온 몽골과 고려의 연합군, 90여 년과 30여 년 전에 규슈를 휩쓸었던 여진 기병대의 악몽은 지금도 규슈 주민들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확실하게 자기 몸을 지킬 수 있는 장소를 찾아 주민들이 피난하는 것도 당연했다.
주민들과 별개로, 방어를 책임진 영주들도 난리가 났다. 오대로의 일원으로서 규슈 방어를 책임지고 부젠, 분고 지방에서 동원한 병력을 결집하여 나고야성으로 보낼 준비를 하고 있던 고바야카와 다카카게도 마찬가지였다.
“급하다! 지금까지 동원한 모든 병력을 바로 이동시켜라! 이미 병력을 낸 영주들에게도 더 내놓으라고 하라. 각 영지의 석고 따위는 상관없으니까, 병사가 되겠다고 지원하는 자는 전부 받아들이라고 하라!”
석고대로 동원하면 이 두 지방에서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1만 4천 명이 고작이다. 그나마 후방 치안 유지를 위해 일부 남겨두고 왔기 때문에, 지금 다카카게가 거느리고 온 병력은 1만 명밖에 되지 않았다. 치쿠젠에 있는 자기 병력은 치쿠젠 각지에 흩어져 있다.
이 정도 병력으로는 하카타를 탈환하고 적을 바닷속에 처넣을 수 없었다. 우키타 히데이에 쪽에서 알려왔던 적의 병력 규모 추산대로라면, 적어도 그 3배가 필요하다.
“영주들이 죄다 비용 문제로 난감해할 겁니다만….”
“조선군을 격파하고 나면 포로로 잡은 놈들을 노예로 팔아서라도 충당해줄 테니까 지금은 닥치고 한 명이라도 더 모으라고 해! 지금 비용 따위를 따질 때인가?”
조선군이 하카타를 확보하고 대병력을 양륙하면 자칫 규슈 전역이 점령당할지도 모른다. 그 뒤에 탈환도 어려울 수 있었다.
“병력 추가동원을 망설이는 자들에겐 조선군이 덴쇼 18년의 일을 복수하고자 쳐들어왔음을 상기시켜라! 우리가 모두 저들의 원수고 복수할 대상이다. 맞서 싸워서 몰아내거나, 체념하고 목을 내밀거나 둘 중 하나다!”
다카카게 자신부터도 적군에게 붙잡히면 절대로 목숨을 건질 수 없는 사람이었다. 전라도를 초토화한 일로 원한을 품은 조선 국왕이 이름까지 거명해 가며 자신을 잡아 오라고 한 사실을 다카카게 역시 들어서 알고 있었다. 정말 죽을 각오로 싸울 수밖에 없었다.
“일단 다자이후로 움직여 구로다 군과 합류하고, 적이 부젠 방향으로 진격하지 못하게 막은 상태로 원병을 기다린다. 적이 부젠으로 나가 오토모령을 함락하면 끝장이다.”
설사 나고야성을 빼앗기더라도 부젠은 지켜야 한다. 부젠을 빼앗기면 간몬 해협이 열리면서 조선 수군이 세토우치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된다. 그 말인즉슨 혼슈로 가는 뱃길도 적에게 넘어가고, 당연히 원군도 더 받을 수 없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세토우치 내 제해권도 부젠, 분고 일대에 근거지를 둔 조선 수군 손에 들어간다. 그동안 유지되던 일본 내에서의 물자 유통조차 완전히 끊어지고 만다.
그렇게 되면 조선군은 다른 지역으로부터 고립된 규슈를 천천히 정복해나갈 수 있다. 아니, 그럴 필요도 없이 규슈 북부 일부만 차지하고 버텨도 된다. 그렇게만 해도 쌀 수송이 안 되어 굶어 죽는 백성들이 일본 전역에서 줄줄이 나올 거다.
“주군, 단순히 길을 막고서 버티기만 할 게 아니라, 곧바로 하카타를 공격하는 편이 훨씬 더 나을 듯합니다.”
측근 신하 한 사람이 제언했다.
“구로다 공이 알리기를, 하카타의 창고가 있던 자리에서 연기구름이 치솟는 광경을 분명히 두 눈으로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저들은 필요한 모든 식량과 물자를 조선에서 뱃길로 가져와야 한다는 말인데, 그럼 당연히 병력을 태울 배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아직 적이 병력을 충분히 실어오기 전에 선공으로 거점을 제압하자는 의견은 쉽게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대로 놓아두면 하카타에 올라온 조선군 거점은 계속 더 강해질 것이 분명하니, 다소 위험부담을 각오하고서라도 그전에 밀어붙이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일단 다자이후까지 진격하여 적의 상태를 살핀 뒤에 실행 여부를 결정하자.”
“예, 주군.”
다자이후까지 하루다. 5년 전에 싸웠던 경험을 생각하면 방어태세를 갖춘 조선군 정면으로 뛰어드는 건 자살행위지만, 막 상륙해서 아직 전열을 제대로 정비하지 못한 상태라면 돌입이 성공할지도 모른다. 충분히 시도해볼 가치가 있었다.
“진군을 서둘러라! 오늘 밤 안에 다자이후에 도착해야 한다!”
다카카게가 병사들을 재촉했다. 조선군은 오늘 하카타에 상륙했다. 내일 새벽에 급습하면, 1만 명으로도 적을 물리칠 수 있을지 모른다. 마음이 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