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65
1부 065화
– 10 –
“어이구, 상감께서 오신다더니 이게 웬일이여! 사또나리가 역적질이라도 했나?”
“사또가 상감마마 이름을 팔아서 도적질을 했다는구먼!”
“뭣이? 도적질을 해?”
관아 주변은 온통 구경꾼으로 들끓었다. 임금이 보낸 군사들이 관아를 온통 뒤집어엎은 지 하루가 지났지만 흥분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동안 차 공납 양이 늘어난 거, 그게 다 사또가 지 입에 처넣으려고 걷은 거라는구먼!”
“뭣이? 상감께 바치는 게 아니고?”
“이런 가랑이를 찢어죽일 놈이 있나!”
내가 탄 어가가 정읍 고을로 들어서자 고을 백성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그리고 너나 할 것 없이 그동안 현감이 얼마나 자기들을 쥐어짰는지 호소하기 시작했다.
“그놈의 찻잎 때문에 제 동생이 호랑이에게 물려갔습니다!”
“제가 찻잎 대신 낼 베가 없어 고민하고 있으니, 늙으신 어머니께서 ‘일가가 찻잎을 따다가 호식을 당하면 세를 면해주지 않느냐’면서 스스로 산으로 들어가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찻잎도, 베도 바치지 못하자 호방이 나졸들을 거느리고 와서 가족들 면전에서 저를 후드려 패고 제 집에서 소를 끌고 갔습니다!”
“노비를 쉰 명이나 가진 대갓집이나, 달랑 두 양주가 노부모를 모시고 자식새끼들 거느리고 사는 집이나 똑같이 막대한 차를 바쳐야 하니 어찌 살겠습니까!”
현감을 잡아 가두라고 한 연유를 백성들이 알고 있다니, 아마 겸사복장이 입을 놀린 모양이다. 쳇, 극적인 효과를 낼 수 없어졌군.
뭐,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사건을 설명하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가마에 탄 채 들어보니 차에 얽힌 원성은 끝이 없었다. 정읍 백성들은 지난 3년 동안 너무 힘들게 차를 바치느라 한이 골수에 박힌 듯했다. 얼마나 몰려들어서 외쳐대는지, 가마가 전진하기 힘들 정도였다.
아마 공납으로 바치는 차 때문에 사또를 잡아넣지 않았으면 이런 일도 없었으리라. 여기도 다른 고을과 별 차이가 없어 겠지.
관아 안으로 들어선 다음에야 숨을 돌렸다. 너무 혼란스러워 정문은 내금위 군사들이 막아섰다. 원래 있던 고을 군사들은 싹 다 도망쳐서 남아있지 않았다. 어차피 군사들이야 현감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도구에 불과했을 테니 도망쳐도 별 상관없지만.
“현감을 비롯한 관리들을 모두 투옥했으니 어가를 호종해온 우리 군사와 역군들을 먹이기가 난망하구나. 그대가 나서서 관고를 열어 쌀과 장을 꺼내 밥을 짓도록 하라. 고을 안의 유력자들을 불러 숙소를 마련하고, 성의껏 봉사토록 효유하는 일도 그대에게 맡기겠다.”
“맡겨만 주시오소서.”
남순관리사다운 업무를 맡게 되었는데도 어째 유자광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은 더 급한 일이 있으니 그대로 넘겼다. 이제 재판에 집중할 차례다.
“도승지는 가서 이 고을이 바친 공납과 관련된 모든 서류를 가져오라. 읍리(邑吏) 한 사람을 옥에서 꺼내 데려가되, 만약 협잡을 부린다면 네놈부터 살아남지 못하리라고 주지시키라.”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곧바로 현감이 집무실로 쓰던 방으로 서류더미가 날라져 왔다. 승지들은 다들 행정업무는 줄줄 꿰고 있는 엘리트들이라, 수상한 구석을 잇달아 찾아냈다.
“전하, 확실히 규정된 양보다 많이 거두었음은 분명하옵니다. 여기 호조에서 내려온 문서가 있는데, 차를 공납함에 있어서 ‘질은 좋아야 하되 양은 작년 정도로만 할 것’을 분명히 주문하였사옵니다. 헌데 이쪽에 있는 장부를 보면 백성들에게 거둔 양이 그 세 배가 넘사옵니다.”
“차를 발송한 기록을 보면 도성으로 보내긴 하였으되 호조로 보낸 양은 일부에 불과합니다. 도성에 있는 모 객주로 보낸 차가 절반, 나머지는 모두 현감의 사가(私家)로 보냈사옵니다. 최고급 차는 모조리 사가로 보냈고, 객주에 넘긴 물량은 그보다는 질이 떨어지는 것들입니다.”
“사가에 있는 가령(家令)에게 보낸 서한 초안도 있사옵니다. 차를 어느 댁에 얼마나 선물로 보내야 하는지 일일이 지시하는 내용이옵니다.”
“이리 내놔 보아라!”
읽어보니 가관이다. 영의정부터 육조에 속한 참의급들까지, 많이도 돌렸다. 지금은 현직이 아니되 관계에 영향력이 있는 노신들도 빼놓지 않았다. 조정에서 이 작자에게 선물을 받지 않은 사람 수를 세는 게 빠를 지경이다. 어째 표정이 이상하더라니, 역시 유자광도 받아먹었다.
“제기랄, 이건 완전히 ‘김완구 리스트’로군.”
“뭐라 하셨사옵니까?”
“아니, 아무 뜻 없는 혼잣말이다.”
리스트를 죽 읽어보니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돌린 양은 그리 많지는 않다. 하지만 받은 사람이 원체 많다 보니 상당한 양이 여기 들어갔다. 게다가 이번 한 번이 아닐 게 명약관화하다.
“객주에 차를 매각한 장부도 여기 있습니다. 올해 들어서 이미 팔아넘긴 찻값으로 받은 베만 오승포 4천 필에 달합니다. 아직 곳간에 남은 차의 양은 직접 확인해보아야 할 듯합니다.”
오승포(五升布)는 거래에 쓰이는 표준적인 면포다. 베 4천 필이면…쌀로 8백 섬 정도 되겠다. 정말 엄청나게 챙겨먹었구나.
“용서할 수 없다. 당장 친국할 준비를 하라!”
나랏돈을 이렇게 해먹은 놈을 잡았으니 그대로 넘길 수는 없다. 고을 백성들 앞에서 단단히 창피를 준 다음 서울로 보내서 투옥해야겠다. 이놈도 울릉도로 보내버릴까? 아니, 이놈은 파렴치범이니 그냥 북방에 보내서 도형에 처해야겠다. 명색이 사대부라 사형은 힘들겠지.
– 11 –
동헌을 둘러싼 담장이나 그에 인접한 나무 위에는 빽빽하게 사람이 올라가 있었다. 불안한 기분을 느낀 내금위장이 저들을 다 내려가게 하자고 청했지만 내가 불허했다.
“현감 때문에 그동안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장본인이 저들이다. 이 심판이 어찌 진행되는지 백성들에게 보여주어야만 한다.”
호흡을 가다듬었다. 사실 그동안 많은 죄인을 처벌했지만 친국은 정말 처음이다. 무오사화 때도 국문 현장에 직접 나가지는 않았다. 비겁하다면 비겁한 일이지만, 피나 비명을 직접 보면서도 계속 상대에 대한 분노를 유지할 자신이 없었다.
차라리 현대식으로 증거와 논리에 따른 추궁만 한다면 모르겠다. 하지만 이 시대에는 심문은 곧 고문이다. 죄인의 주리를 틀고 곤장을 치는 그 광경을 도저히 직접 볼 수가 없었다. 막 비명을 지르고 피를 흘리는 모습을 보면 당장 심문을 중단시키게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죄를 밝히기 위해 고문을 할 필요가 없다. 증거도, 증인도 너무나 충분하여 유죄를 처결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주 마음이 편했다.
“죄인을 끌어내어라!”
“예이!”
곧 군사들이 현감 김완구를 끌고 왔다. 결박은 풀려 있었지만 입고 있는 관복은 감옥에서 묻은 먼지와 지푸라기로 더럽혀져 있었다. 몸부림을 치다가 잃어버렸는지 머리에는 아무 관도 쓰지 않은 맨머리였다. 밤새도록 음식과 물을 먹지 못했는지 입술이 다 갈라져 있었다.
“네 죄를 알렸다!”
“저, 전하! 소, 소인은 억울하옵니다!”
내 호통 소리를 들은 현감은 바닥에 엎드려 마치 열병 환자처럼 온몸을 떨었다. 뒤통수만 보이는 그 모습이 정말 혐오스러웠다. 일단 입에서 나오는 것부터 물어보았다.
“가족이 차를 따다가 호식을 당하면 공납을 면해주었다니, 그 말이 사실이냐?”
“그, 그렇사옵니다. 나라에 바칠 공물이오나, 사람을 호랑이 밥으로 만들면서까지 마련할 수는 없기에….”
뭐야, 이 자식. 혹시 자기가 공물을 ‘성실하게 거두어들이지’ 않고 사정을 봐준 것 때문에 심문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건가?
“닥쳐라! 네놈이 애초에 법에 정해진 양보다 많이 거두지 않았다면 어찌 백성들이 호랑이가 나오는 깊은 산골까지 들어가 차를 따야 했겠느냐? 더구나, 일가가 호식을 당했다고 세금을 감해주었다는 사실 자체가 본래 걷을 필요 없는 세금을 걷었다는 의미가 아니냐!”
정말 법에 정해진 세금이라면, 가족이 호랑이에게 물려갔다고 해서 부과를 취소할 수 없다. 아니, 해도 된다. 조정에 보고해서 임금, 바로 내게 허락을 얻고 세금을 면해줄 수 있다. 그게 아니면 임의로 빼준 다음 수령이 자기 사재로 채워 넣든가 말이다.
“아니옵니다! 소신은 그저 백성들의 가련한 처지를 생각하여 세금을 줄여 주고자 하였을 뿐이옵니다! 조정에 표를 올려 승인을 청하지 않았음은 사실이오나, 그전에 줄어든 차 수집량을 다른 수단으로 메운 뒤에 보고하고자 했을 뿐으로서….”
“다른 수단? 어떤 다른 수단 말이냐?”
어디 무슨 변명을 하나 보자. 곧이어 튀어나온 대답은 예상과 한 치도 어긋나지 않았다.
“도성에 있는 객주에 부탁하여서라도 좋은 차를 구한 다음 전하께 올리려 하였사옵니다. 다만 그 비용이 필요하기에, 나라에서 방납을 금지하고 있는 줄 알면서도 백성들에게 약간의 금품을 걷었을 뿐이옵니다.”
현감의 입에서 ‘약간의 금품’이라는 말이 떨어지는 순간 사방에서 폭풍과 같은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놈아! 우리 집에 마지막 남은 곡식자루까지 털어가는 게 약간이냐?”
“우리 소 내놔!”
“네놈한테 바친 쌀만 아니었어도 우리 아버지가 안 돌아가셨다!”
심지어 장작개비에 돌멩이까지 날아들었다. 분위기가 난폭해질 기미를 보이자 내금위장이 허리에 찬 환도 손잡이를 잡고 나서서 호통을 쳤다.
“감히 어전에서 난동을 부리는 자들이 어느 놈이냐!”
고함소리가 거짓말같이 잦아들었다. 주변이 완전히 조용해지기를 기다려 현감에게 죄상을 추궁했다.
“네놈이 스스로 죄를 인정하고 그동안 한 짓을 자백하면 다소나마 벌을 감해 주겠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차를 빼돌렸느냐? 그리고 무엇 때문이었느냐?”
김완구는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면서도 있는 힘껏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옵니다, 아니옵니다. 신은 결단코 부정한 짓을 하지 않았사옵니다.”
자기 나름대로는 영혼을 실은 호소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게는 그 몸짓이 현실을 부정하려는 헛된 몸부림으로밖엔 보이지 않았다. 내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갯짓을 하자 도승지가 조심스럽게 서류뭉치를 들고 나와 동헌 마루 위에 쌓아올렸다.
“여기 관아에서 찾아낸 문서들이다. 매년 호조에서 상납하라고 할당한 차의 양, 실제로 네놈이 거둔 차의 양, 실제로 호조에 보낸 양, 네놈이 차를 ‘샀다고’ 주장하는 객주에 팔아넘긴 양, 네놈이 사가에 보낸 양을 기록한 문서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이래도 부인하겠느냐?”
김완구의 낯빛이 종잇장처럼 하얘졌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김완구는 자기 스스로 죄를 인정하지는 않았다.
“어, 억울하옵니다! 살려주시옵소서!”
“우~~~!”
사방에서 비난하는 소리가 날아들었다. 다만 방금 전 내금위장의 위협을 잊지 않았는지 노골적인 욕을 하거나 돌을 던지는 이들은 없었다.
“네놈은 당장 봉고파직(封庫罷職)하며, 고을 사무는 당분간 전라감사가 직접 돌보도록 하라. 원래는 즉시 금부도사로 하여금 도성까지 압송토록 해야 하나, 지금 의금부가 멀리 있으니 할 수 없다. 감사는 즉시 감영에서 선발한 군사로 하여금 이 죄인을 도성으로 압송하도록 하라.”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내 옆에 서 있던 전라감사 정숙지가 고개를 숙여 따르겠다는 뜻을 표했다. 그러자 김완구가 갑자기 고개를 쳐들며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전하! 전하! 살려주시옵소서! 신은 그저 관행에 따라, 다른 이들도 하는 정도로만 했을 뿐이옵니다!”
“듣기 싫다. 끌어가라!”
현감이 발버둥을 치며 끌려 나갔다. 그 모습을 본 주변 백성들이 환호하며 기뻐했다.
“천세! 천세!”
“주상전하 천천세!”
환호성을 들으며 속으로 씁쓸한 기분을 곱씹었다. 관행, 관행. 해오던 대로 했을 뿐이라고?
잘못되었음을 알면서도 폐습을 유지하는 자들이야말로 정녕 나쁜 공직자라 아니할 수 없다. 아무리 조선에서 관리에게 지급하는 녹봉 액수가 적다지만, 지방관은 그나마도 없다지만, 백성들을 쥐어짜는 행동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정말 자기 생활에 필요한 최저한으로, 백성들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적당히 뜯어먹었다면 또 모르겠다. 하지만 정읍현감은 너무 도를 지나쳤다. 백성들이 가족을 위해 스스로 호랑이밥이 될 정도로 쥐어짜다니, 이게 무슨 목민관이란 말인가?
고개를 돌리자 옆에 서서 아무 말 못하고 재판을 지켜보고만 있던 전라감사 정숙지의 창백하게 질린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감사는 운 좋은 줄 알아야 할 게다. 갓 부임해 업무파악도 덜 된 상황만 아니었으면 분명히 김완구와 얽혀서 치도곤을 맞았을 테니까.
“그저 죄인을 압송하고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관내에 있는 수령들이 관행이라는 명분으로 이런 탐학한 짓을 하지 못하도록 단속하는 것도 그대의 임무가 아니겠느냐?”
“옳으신 말씀이시옵니다, 전하.”
내가 허탈하게 웃으며 당부하자 정숙지가 잔뜩 굳어진 태도로 답했다. 어디, 두고 보겠다. 앞으로 얼마나 잘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