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650
2부 428화
– 1 –
돌격장 나대용이 지휘하는 거북선 6척이 일제히 전진하자 왜선들이 물러났다. 하지만 계속 기세를 잃지 않고 함성을 지르면서 화포와 조총을 쏘아대는 것이, 더 맞설 태세였다.
“체찰사의 말로는 모리 놈들이 내응할 조짐이 있다더니, 역시 놈들의 간교한 속임수였군.”
이순신은 등선군 7천과 명군 2백, 판옥선 40척, 대전선 4척, 거북선 6척을 거느리고 간몬 해협에 길을 뚫으러 온 참이었다. 이항복은 하카타의 본진에 남았지만, 수집한 정보는 휘하 관원에게 주어 이순신을 따르게 했다.
“확실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저들이 밀사를 한 번 보내기는 했으나, 확실하게 귀순하겠다는 뜻을 표하지는 않았으니 말입니다. 대감께서는 저들이 항복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정도로만 염두에 두시옵소서.”
“알겠네.”
이순신은 다시 앞을 보았다. 눈앞에는 왜선 2백여 척이 해협을 등지고 버티고 있었다. 이쪽 규모보다 자기들 전선 숫자가 4배나 되니까, 그 점을 믿고 덤벼 볼까 말까 망설이는 듯했다.
“송 군관, 등선군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느냐?”
“예, 도원수 대감. 짐도 모두 내렸고, 진군도 순조롭습니다.”
이순신은 등선군 군사들을 온가천(遠賀川) 동안에 내려놓았다. 목표인 고쿠라성(小倉城)까지 가는 길에 있는 장애물을 최대한 피해야 했기 때문이다. 1만 명이나 되는 인원이 막대한 양의 병기와 치중까지 끌고 강을 하나 더 건넌다는 건 무척이나 피곤한 일이다.
1만 명 중에서 전투병력은 등선군 6천 3백, 명군 2백 기뿐이다. 나머지 3천여 명은 하카타 측에서 제공한 왜인 역군들이었다. 물자 운반과 노역을 맡은 역군도 원래 조선에서 데려와야 하지만, 군사와 병기를 실어오는 데만도 바빠서 아직 역군들까지 데려오지는 못했다.
“우리가 적선을 놓치면 놈들이 육지에 군사를 내려 후방에서 등선군을 공격할 수도 있으니, 한 놈이라도 통과하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물론입니다, 대감.”
장대 위에 선 이순신이 두 손으로 방패판을 짚은 채 잠시 생각해 빠졌다. 고쿠라성 공략을 더 쉽게 만들려면 어서 적 수군을 격파하고 간몬 해협을 통과, 배후로 돌아야 했다. 지금 단 한 가지 고민이 있다고 하면 처음 통과해보는 이곳 물길이었다. 여울은, 암초는 어디 있을까?
물론 하카타에서는 이순신을 위해 이 바닷길에 익숙한 뱃길 안내인들을 보내주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그들을 확고하게 신뢰하지 않았다. 상감께 충성을 맹세한 것도 아니고, 왜인 상인이 그저 돈으로 고용한 자들이 아닌가 말이다.
“등선군이 일을 쉽게 하려면 우리가 먼저 소창성 앞에 가 있는 게 좋겠지. 그렇지 않은가?”
“물론입니다, 대감.”
참모장 이시언이 고개를 숙이며 정중하게 답했다. 수군에서도 육군에서처럼 참모장과 육방 참모가 모두 존재한다. 다만 이순신은 참모장을 제외한 다른 참모들은 전투 시에는 자신이 탄 상선이 아닌 다른 배에 하나씩 나뉘어 타도록 했다. 만약을 위해서였다.
“그럼 진격하세. 적 수군을 쳐부수고 언도, 선도도 손에 넣어야지.”
육지로 진격하는 군사들이 고쿠라성을 목표로 한다면, 이순신이 직접 이끄는 함대는 언도(彦島, 히코시마), 선도(船島, 후나시마)를 목표로 한다. 주고쿠에 바싹 붙은 두 섬을 장악하면 북쪽 혼슈에서는 간몬 해협에 손도 대지 못하게 하면서 해협을 틀어막을 수 있다.
“선도를 장악하는 즉시 서양 석공을 시켜 섬 전체에다가 보루를 쌓고 포를 설치하는 걸세. 어떤 왜선도 마음대로 해협을 지날 수 없도록 말일세.”
“꼭 필요한 조치입니다.”
전선으로 해협을 막으면 언제 사고가 터질지 몰라서 늘 근심을 안고 지내야만 한다. 하지만 땅에서 솟은 섬에 성을 쌓아 뱃길을 막으면 주야(晝夜)와 천기(天氣)를 상관하지 않고 임무를 다할 수 있다. 히코시마는 통째로 요새화하기에는 섬이 좀 크고, 후나시마가 적당하다.
“중군장에게 명하라! 해협을 막고 있는 왜선들과 교전을 시작한다!”
당장 신호기가 휘둘러졌다. 거북선 6척이 선두에서 천천히 움직이고 그 뒤를 대전선들이, 양쪽 날개는 일반 판옥선들이 맡아서 일제히 진격했다.
조선 수군이 진격하는 모습을 보더니 왜군이 배를 돌려 뒤로 물러났다. 다만 속도를 아주 빠르게 내지는 않았다. 적의 속내를 간파한 이순신이 콧방귀를 뀌었다.
“흥, 저놈들이 나름 우리 흉내를 내는구나. 저 섬 사이를 지나서 좀 더 넓은 바다로 나가면 넓게 진형을 펼쳐 우리를 포위할 모양이다.”
바로 한산도 앞바다에서 이순신이 펼쳤던 계략이다. 어쩌면 지금 왜군을 지휘하는 장수는 그때 살아 도망친 자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상관없다. 첨자진을 짜고 전투를 개시한다.”
왜군이 포위를 시도한다면 도리어 반가운 일이다. 아군 전열뿐 아니라 양 측면과 후방에서 진군하던 전선들도 적과 싸울 기회를 얻지 않겠는가!
모든 전선에서 열기가 타오르고 있다. 기대하고 기대하던 왜군과의 수전을 드디어 처음으로 제대로 치르는 참이다. 저 밑에서 대검(大劍)을 뱃전에 기대놓고는 굵직한 두 팔을 휘두르면서 몸을 푸는 임꺽정도, 조총을 준비하는 서림도 모두 눈을 빛내면서 싸움 준비를 하고 있다.
“대감! 왜선들이 반전하고 있습니다!”
“각 위장의 판단에 따라 방포를 시작하라고 전하라!”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선두에 선 거북선 6척이 일제히 24근 포 12발을 쏘았다. 치솟는 물기둥 속에서 산산이 부서지는 왜선과 물속으로 내동댕이쳐지는 왜인들이 똑똑히 보였다. 그 통쾌한 광경에 좌선에 타고 있는 군사들이 일제히 환희에 찬 함성을 질렀다.
– 2 –
나고야는 완전히 봉쇄되었다. 물론 육지 방면이야 훤하게 뚫려 있지만, 바다로 나가는 길은 조선 수군이 끌고 온 남만선 12척으로 완전히 막혔다. 도무지 엉겨 볼 재주가 없었다.
“이래서야 조선 땅으로 역공하러 갈 수가 없지 않은가…!”
우키타 히데이에는 천수각 위에 올라가서 바다를 보며 절망감을 토했다. 조선군이 하카타를 공략했다. 그리고 하카타를 거점으로 규슈 전역을 점령하려는 참이다.
히데이에는 하카타가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조선 남만선이 하카타로 떠날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놈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한 히데이에가 밤을 틈타 함대를 내보내려고 했지만, 탈출은커녕 포탄 세례만 받았다. 세키부네 열 척 정도를 그렇게 잃었다.
미리 짜놓은 계획대로라면 여기서부터 일은 이렇게 전개되어야 했다. 적은 하카타로 병력과 물자를 수송하느라 모든 함선을 투입하고, 그 틈을 노려 히데이에는 나고야에 대기하고 있던 병사 1만으로 전라도를 노린다. 그러면 조선 수군은 본국을 지키기 위해 물러날 수밖에 없다.
수군의 지원이 끊기면 하카타에 상륙한 조선군은 그대로 고립된다. 그때를 노려 주고쿠에서 세 번째 오대로인 모리 데루모토가 수군으로 하카타를 봉쇄하고, 자신과 고바야카와 다카카게 두 사람이 규슈 병력 전부 및 혼슈에서 온 원군으로 적을 공격하면 간단히 끝낼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떨어진 이 상황은 뭐란 말인가? 나고야를 위협하던 적 남만선은 그냥 미끼였다. 적은 자기들이 점령한 섬 3개 주변에 배를 정박시켜 놓고는 유유자적할 뿐이었다. 육지에 상륙해서 나고야성을 공격하려는 병사는 한 명도 없었다.
“어떻게, 전선을 내보낼 수 없겠나?”
“안 됩니다, 주군. 그저께 밤처럼 될 뿐입니다.”
도무지 방법이 없었다. 저 커다란 배들이 뱃속에 얼마나 많은 병사를 품고 있는지 모르니 나고야를 놓아두고 하카타를 탈환하러 갈 수도 없다. 자칫하면 전쟁이 끝날 때까지 2만 5천에 달하는 병사가 아무 일도 못 하고 바다만 멍하니 바라보는 신세가 될지도 모를 판이다.
“어떻게! 어떻게 일이 이렇게 될 수 있는 거지? 분명히 조선군이 나고야로 올 거라고, 혹시 하카타로 가더라도 치고 나갈 틈이 있다고 판단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창틀을 꽉 움켜쥔 히데이에의 두 손이 부르르 떨더니 힘줄이 드러나고 핏기가 가셨다. 주군 주변에 둘러서 있던 근습무사들과 부하 장수들은 차마 그 모습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조금 더 떨어진 곳에 서서 이를 악물고 있던 고니시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도련님이니까 그렇지.”
우키타 히데이에는 음모가로 이름이 높은 친아버지 나오이에와는 달랐다. 성격도 온후하고 너그러워 신하들에게 인망이 높다. 하지만 그런 장점이 아직 젊고 경험이 부족하다는 단점을 수습해줄 수는 없었다.
“가토 놈이 부러울 지경이군.”
가토 기요마사는 조선군이 쳐들어오기 직전에 히데요시의 부름을 받고 오사카에 갔다. 평소 원수지간인 가토지만 지금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조선군은 덴쇼 18년에도 강했는데 지금은 더 강해져 있었다. 구로다 군이 보냈던 첫 사자는 조선군의 화력 및 등선군 전력 ? 조선이 전선에 태우는 보병을 등선군으로 부른다는 정도는 고니시도 알았다 ? 이 강화되었음을 전했다. 그리고 고바야카와 군의 사자는 악몽을 전했다.
날개를 달고 호랑이 가죽을 몸에 걸친, 보병용 장창보다 더 긴 창을 쓰는 기병이라고? 그런 게 조선에 있었단 말인가? 논산에서 싸울 때도 본 적이 없는 그런 괴물들이?
조선군이 하카타에서 더 움직이지 않은 지난 며칠 동안, 그 기병들에 관한 소문은 급속도로 나고야성 안팎으로 퍼져나갔다. 당연히 만연한 공포감과 함께였다.
“날개 달린 호랑이…궁기로군.”
궁기(窮奇)는 산해경에 등장하는 괴물이다. 날개가 달린 호랑이로 사람고기를 즐겨 먹으며, 그것도 착한 사람을 좋아한다. 선한 이와 악한 이가 다투고 있으면 선한 이를 잡아먹고 악한 이에게는 짐승을 잡아 선물한다는 아주 고약한 버릇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일반 병사들이 산해경 따위를 읽었을 리 없다. 궁기 따위를 생전에 들어보지도 못한 병사들은 그 괴이하게 생긴 기병들을 자기들에게 익숙한 호칭을 써서 텐구(天狗)라고 불렀다. 조선에서 왔으니까 고마텐구(高麗天狗)가 된다.
어느새 고마텐구는 도이(여진족)를 능가하는 살인귀들로 인식되고 있었다. 도이가 살인보다 약탈, 방화, 납치 등으로 두려움을 준다면 고마텐구는 살인 그 자체로 즐거움을 얻고, 사람을 죽여 그 고기를 뜯으며 피를 마신다는 소문이 이미 파다했다.
“말도 안 되는 소문이지만….”
조선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고니시는 조선에 그런 요괴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혹시나 어디 산속 같은 데 있다고 해도, 괴력난신을 혐오하는 조선인들이 그런 요괴를 군대에 넣어서 병사로 부릴 리 없었다.
병사들이 진즉에 그리스도를 받아들였다면 그런 쓸데없는 공포를 억누를 수가 있었을 텐데. 좀 더 일찍 선교에 힘쓰지 못한 자신이 한스러웠다.
“뭐야? 주군께서는 지금 심기가 불편하시다!”
“오가와 님, 비켜 주십시오! 급합니다! 주군, 급보입니다!”
아래층에서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얼굴이 종잇장처럼 하얗게 된 전령무사가 위층으로 뛰어 올라왔다. 무슨 일이냐고 물을 사이도 없이 무사가 무릎을 꿇었다.
“주군! 조선군이 진격을 개시했습니다. 지금 조선군 3만 명 이상이 구루메 성 쪽으로 오고 있다고 합니다. 구루메 성에서 구원 요청이 왔습니다.”
절망감이 방안을 휩쓸었다. 자기 성이 조선군의 공격을 받는다는 소식에, 모리 데루모토의 막냇동생이자 작은형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의 양자로 들어가 고바야카와가 된 모리 히데카네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 창백해졌다. 히데이에가 급히 외쳤다.
“뭐라고? 미하라 성에 계시는 다카카게 님은 무엇을 했단 말이냐!”
“다카카게 님은 병력이 부족하여 성문 밖으로 나서지 못했다 합니다. 더구나 조선군 일대가 미하라 성 역시 공격하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4월 17일, 조선군이 다카카게 군을 대파한 지 엿새째다. 드디어 적이 규슈 내륙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구루메 성(久留米城)을 지나면 그 다음 차례는 사가 성(佐嘉城)이다.
하카타에 이어 사가 성까지 함락되면 나고야가 있는 히젠 전체가 규슈 나머지 지역과 따로 떨어져 고립된다. 그대로 놓아둘 수는 없었다.
“구루메 성에는 병사를 1천 명밖에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우키타 님, 부디 구원 명령을….”
히데카네가 애걸했다. 하지만 히데이에로서도 뾰족한 수는 없었다.
“구원을 보내려 해도 구루메 성까지 병력을 보내려면 4일은 걸리오. 사가 성에 있는 병사도 고작 2천…히고 쪽에서 병력이 올라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소.”
전령 1명이 혼자 말을 달리는 속도로 군대가 움직일 수는 없다. 그런 속도로 움직이는 게 가능하다고 해도 아마 도착한 뒤에 싸울 힘이 없을 것이다.
지금 움직여야 하는 거리는 태합 히데요시가 ‘주고쿠 대회군’으로 움직인 거리보다 더 멀다. 게다가 그만한 준비도 되어있지 않다.
“아닙니다. 그래도 공께서 움직이셔야 합니다.”
고니시가 용기를 내서 나섰다. 여기 있는 누구도 하지 못하는 말을 해야 했다.
“이대로 머뭇거리면 조선군이 사가를 손에 넣고 남쪽에서 올라오는 원군도 차례로 쳐부숴서 규슈 전역을 확보한 다음 우리를 말려 죽일 겁니다. 그 전에 여기, 나고야를 버려야 합니다.”
“나고야를 적 수군에게 내주라는 말이오?”
“그게 규슈 전역이 넘어갈 때까지 우리만 여기서 버티고 있는 것보다 낫습니다. 나고야성은 우물이 적어서 물도 넉넉하지 않은데, 적이 규슈 전역을 장악한다면 농성인들 되겠습니까? 정 적에게 넘기기 싫으시다면 불태우고 가십시오. 이미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움직여야 합니다.”
히데이에가 애타는 얼굴로 다른 장수들을 쳐다보았다. 잠시 망설이던 장수들이 성을 지켜야 한다느니, 병력을 나누자느니, 전군을 사가로 이동시키자느니, 시마즈를 믿어보자느니 하면서 제각기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결론이 쉽사리 나지 않았다.
– 3 –
“쏘아라!”
총통위를 지휘하는 위장(衛將)이 호령하자 벌판에서 구름 같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 연기 사이에서 쌕쌕거리는 소리와 함께 수백 개나 되는 신기전이 솟아올라 성벽 저편으로 날아갔다. 이미 불길과 연기로 가득한 성내에 또 한 무더기의 폭발과 불꽃이 더해졌다.
“항복 권고를 거절했으니 당연한 결과지. 순순히 성문을 열었으면 이런 꼴을 당하지 않았을 것을.”
권율이 불길에 휩싸인 구루메 성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성벽 앞에 포진한 군사들은 포탄과 신기전이 날아가 꽂힐 때마다 환성을 질렀지만, 그는 별 감흥이 없었다.
이항복이 붙여준 서양 철기 20기는 황진에게 딸려 보냈다. 자기보다는 황진 쪽에서 그들을 유용하게 잘 활용할 것 같았다.
“왜적이 죽는 모습도 처음 한두 번 볼 때가 통쾌하고 즐거운 것이지, 하도 여러 번 보다가 보니 별로 와 닿는 감상이 없구먼.”
“그건 부원수 대감께서 왜적을 많이 죽이셔서 그런 게 아니고, 지금 싸움이 재미가 없어서 그러실 것입니다.”
옆에 있던 왜별장 사마유가 쓴웃음을 지었다.
“왜적은 전혀 응전하지 않고, 우리만 일방적으로 포를 쏘고 있으니 전혀 싸움하는 것 같지 않을 수밖에요. 적이 화포라도 쏘아 응전한다면 모르겠으나, 해안에 있는 포대에만 포를 많이 두고 내륙에는 포가 없다 하니 어쩔 수가 없을 겁니다.”
“사 공의 말이 맞소. 싸움이라고 하면 역시 단밀현이나 논산 같은 한판을 치러야지. 어떻소, 그대가 보기에는 저들이 얼마나 더 버티겠소?”
“오늘 안에 끝날 겁니다. 병력도 얼마 없어 보이는데, 더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구루메 성에서는 반격을 위한 돌격대를 출성시키지도 않았다. 공성에 나선 조선군 3만에게 도저히 비벼 볼 수도 없을 만큼 병력이 적다는 뜻이다.
피식 웃던 권율이 화제를 돌렸다.
“유 별장은 준비를 다 끝냈소?”
“예. 왜국에서부터 거느리던 자기 영지 출신 병사 1천 명을 인솔해서 자기 성으로 돌아갈 준비를 모두 마치고, 대감께서 출발 명령만 내려주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좋소. 바로 출발하라 이르시오.”
유 별장이란 왜별기를 지휘하는 항왜장 중 한 사람인 유종무(柳宗茂)를 가리켰다. 유종무의 원래 이름은 타치바나 무네시게(立花宗茂)로, 이름은 일본에서 사용하던 이름을 그대로 쓰도록 했지만 유씨 성은 무네시게의 영지인 야나가와 성(柳川城)에서 따서 임금께서 내려주셨다.
무네시게가 맡은 바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면 규슈에 있는 일본군은 치명타를 맞을 터였다. 권율은 즐거운 마음으로 다음 전투를 기대했다. 이제 사가 성을 부수고 나면 나고야에 있는 왜군 주력이 남으로 내려오지 않고는 못 배길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