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657
2부 435화
– 21 –
오토모 군을 토멸하는 막바지 전투는 예상보다 어려워질 듯하다. 길이 험해서 산꼭대기로 화포와 병사를 올려보내기 힘든 탓이다.
“대우(大友, 오토모)씨의 후계자가 애송이일지는 몰라도 멍청이는 아니었구나. 저런 산성에 자리를 잡다니.”
황진이 산마루를 올려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머리 위에 있는 다카사키산(高崎山) 꼭대기에 자리를 잡은 산성에는 오토모 씨가 긁어모은 마지막 병사 4천 명이 틀어박혀 있다. 공성전을 펼치려면 산길을 올라가야 하는 무척이나 귀찮은 구조였다.
“여유를 가지고 생각하십시오, 장군. 이제까지 잘 해오시지 않았습니까.”
“그렇긴 하지.”
황진이 팔짱을 낀 채로 성벽을 올려다보았다. 오토모 령으로 들어온 이래, 이제까지 함락한 성은 모두 5개다. 하지만 이곳 다카사키산성은 이제까지 상대한 성 중에서 가장 까다로웠다.
첫 목표였던 히노쿠마성 공격은 이틀 만에 끝냈다. 18근 포를 퍼부어 바깥 성벽을 허물고, 신기전 세례로 성 안팎에 불을 질렀다. 견디다 못해 성문 밖으로 뛰어나온 돌격대는 조란환을 퍼부어 제압했다.
왜군은 강이 성을 둘러싸고 있다는 점을 이용해서 도망치려고 했다. 밤이 되자 몇몇 왜병이 강물에 뛰어들어 헤엄쳐서 도망치려고 하다가 감시망에 걸렸다. 달빛 아래에서 총탄과 화살이 빗발치듯 날았고 강물은 피로 물들었다.
공격 둘째 날인 4월 21일, 전라도 복수군 3천 명이 성벽을 향해 달려들었다. 성벽을 통째로 으깨놓다시피 할 정도로 포격을 가해놓은 덕분에 왜군은 제대로 맞서지도 못했다.
왜성의 특징은 공간의 단절이다. 조선 성곽처럼 성문을 뚫기만 하면 트인 공간이 나타나는 게 아니다. 다른 구획을 점령하려면 성안에서 또 성문을 부수고 성벽을 넘어야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성문이 있는 부분 외에도 외부에 면한 사실상 모든 구역이 조선군의 공격을 받았다. 게다가 내부와 외부를 막론한 왜성 전 구역이 신기전을 뒤집어쓰고 불바다가 되어버렸다.
불바다 속에서 건진 수급만 3백여 급, 포로는 2백여 명이었다. 황진은 이들을 길잡이 삼아 후나이로 가는 길을 재촉했다. 도중에 만난 왜성 4곳에서 항복을 권하는 사자로도 활용했다. 그 결과 모두 전투 없이 항복을 받아낼 수 있었다.
‘조선 국왕께서 저희 죄를 용서만 해주신다면 최선을 다해 봉사하겠습니다.’
이 성들은 병사라곤 겨우 300명도 안 되는 작은 성들이었다. 오토모 씨는 당장 적을 맞아 싸워야 할 이 성들에게 응원군을 단 한 명도 보내지 않았다고 했다.
‘적군이 쳐들어오는데도 화살 하나 보내주지 않는 주가(主家)를 어찌 저희가 계속 주군으로 모시겠습니까? 공을 따라 종군하겠으니, 부디 공적을 세울 기회를 주십시오.’
‘좋도록 하라.’
이렇게 해서 따라나선 병력이 근 1천 명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기를 쓰는 모습이 보였기에 저들이 편을 바꾸는 행위가 부자연스럽지는 않았다. 저들 덕분에 오토모 측 내부 사정도 더욱 확실하게 알았다. 다만 만약을 위해서 감시는 엄중히 했다.
그렇게 편을 늘리면서 후나이에 도착한 게 어제, 4월 28일이다. 1만 6천 병력이 행군하기에 좀 험한 길이기는 했지만, 전투를 피할 수 있었던데다 복수심에 불타오른 군사들이 발걸음을 늦추지 않았기에 그 짧은 시간 동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자, 이제 저거 하나 남았는데….”
북쪽으로 간 도원수 이순신은 고쿠라성을 함락하고 간몬 해협을 장악했다. 그리고 전선 몇 척을 선봉으로 보내 후나이 항구에 정박시킴으로써 왜적이 혼슈. 시코쿠에서 원군을 보내지 못하게 막았다.
서쪽으로 간 부원수 권율에게서도 좋은 소식이 왔다. 나고야에서 내려온 적 주력과 싸워서 격파하고 많은 고위 왜장들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다는 전갈이었다. 파발이 가져온 문서에서 그 명단을 본 황진이 입을 딱 벌릴 만큼 그 면면이 화려했다.
“그런데 나는 아직 이 꼴이라니, 참.”
2번이나 황진의 손에서 벗어나 도망쳤던 고바야카와 다카카게도 지금 저 위에 올라가 있다. 규슈 방어를 책임진 두 우두머리 중 하나인 그놈을 잡는다면, 다른 하나인 우키타 히데이에를 잡은 권율에 버금가는 공이 되리라.
“장군! 도진(島津, 시마즈) 군 5천이 남쪽에서 다가오고 있다 합니다.”
“도진? 고기산(다카사키산)에 있는 대우씨를 구출하러 온 건가?”
시마즈 군은 상당한 강병이다. 물론 이쪽 병력과 장비가 모두 압도적이니만큼 패배할 일은 없겠지만, 산성에 있는 적이 내려와서 호응하기 전에 해치우려면 빠르게 움직일 필요는 있다.
원정을 시작하기 전에 시마즈 측에 협력하라는 제안이 갔음은 황진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들이 제안을 수락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지금 나타난 시마즈 군 병력이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아닙니다! 사자가 와서 고하기를, 영주 도진의구(島津義久, 시마즈 요시히사)의 명을 받아 우리 군사들과 함께 대우씨를 치러 왔다 하였습니다. 우군입니다!”
“호오, 그래?”
사실이라면 환영할 일이다. 황진은 수하 장수들에게 공성전 준비를 맡기고 다가오는 시마즈 군을 맞이하러 나섰다. 물론 홀몸은 아니었다. 서양 철기 20기를 비롯한 정예 기병 1천 기가 혹시 모를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황진을 뒤따랐다.
“늦어서 유감입니다. 길이 너무 멀고 험한 데다 오토모 군의 저항까지 있어서 구마모토에서 출발한 지가 10일이나 되었는데 이제 겨우 도착했습니다.”
시마즈 군을 인솔한 시마즈 요시히로가 점잖게 변명했다. 황진으로서는 시마즈 군이 정말로 전투를 치르면서 험로를 지나왔는지, 그저 둘러대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일단 시마즈는 우호세력이 된 셈이니 굳이 공박할 필요는 없었다.
“와주신 것만 해도 반갑소. 그대의 아우가 함께 왔으면 참 좋았겠지만, 애석하게도 원정을 준비하던 도중에 풍을 맞아 드러눕는 바람에 오지 못했소. 심히 아쉽구려.”
요시히로의 바로 아래 동생인 도시히사는 올해 초에 대구에서 갑자기 풍을 맞았다. 다행히 대화는 할 수 있었지만, 운신이 상당히 어려워져서 전쟁에는 참여할 수 없게 되었다. 덕분에 왜별기에서 비중이 제법 컸던 시마즈 계는 지금 구심점을 잃고 어수선한 상태다.
“어쩔 수 없지요. 그나저나, 오토모는 역시 다카사키에 들어갔군요.”
요시히로가 간단히 설명했다. 다카사키는 전쟁에서 불리할 때마다 오토모 가문이 사용하는 피난처라고 말이다.
“후나이에 있는 성관은 성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그냥 큰 저택 같은 곳입니다. 오토모는 그 성관을 제대로 된 성으로 개축하기보다는 다카사키 성을 계속 방어진지로 쓰기로 했지요.”
10여 년 전, 시마즈 군은 오토모 령을 통째로 집어삼키기 직전까지 갔다. 히데요시가 와서 개입하지만 않았으면 충분히 달성할 수 있었다.
“그때도 놈들은 다카사키 성에 틀어박혔습니다. 하지만 조선에서 죽은 전 당주 요시무네는 그때 다카사키 성도 지키지 못하고 한참 북쪽에 있는 류요(龍王) 성까지 도주했지요. 여기에서 군대를 몰고 이틀은 더 가야 하는 곳입니다.”
“그럼 귀측은 고기산성(다카사키산성)을 공략해 보았다는 뜻이오?”
“그렇습니다. 아마 제 경험이 황 공께 도움이 될 듯합니다.”
시마즈 요시히로는 바로 막대기로 땅바닥에 다카사키 성의 구조를 그려 보였다. 두 사람은 곧바로 공략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 22 –
야나가와 성은 흥겨운 잔치 분위기였다. 주민들이 연달아 몰려와 돌아온 영주를 칭송하고 조선군의 위용에 감탄의 눈빛을 보냈다. 번쩍이는 갑옷을 입은 채 활보하는 조선군 기병들도 눈길을 끌었지만, 무엇보다 시선이 쏠린 존재는 역시 권율의 코끼리였다.
권율은 코끼리에게 다채로운 색으로 된 장식천을 둘렀다. 이마에는 가시 돋은 철판을 씌워 위엄을 강화했고, 상아에는 뾰족한 놋쇠 고깔을 씌워 앞을 막는 방해물은 무엇이든 찔러 버릴 태세를 보였다. 등에 얹은 망루에는 번쩍이는 철판을 붙여 보는 이들의 눈을 부시게 했다.
회견장에 도착한 권율은 코끼리에서 내려 천천히 탁자 앞으로 걸어갔다. 마침 오늘 만나볼 상대인 시마즈 요시히사도 지금 막 도착해서 말에서 내린 참이었다. 오늘 회견은 추후 규슈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자리가 될 터였다.
“대승을 축하드리오. 아우에게 익히 들었지만, 역시 조선군은 강력하군요.”
두 장수는 투구도 벗지 않은 채 마주 앉았다. 요시히사가 의례적인 인사말을 건넸다.
“지난 전란 때 쌓인 피맺힌 원한을 풀고, 전하께서 베푸신 은덕을 갚기 위해 결연히 나선 군사들이올시다. 어찌 패할 수가 있겠소.”
지금도 눈앞에 선했다. 전장이 되었던 사가성 서쪽 벌판에는 죽거나 다친 사람과 말의 몸, 그리고 버려진 병장기가 사방에 널려 있었다. 경상을 입은 포로들과 조금 늦게 도착한 조선군 역군(役軍)들이 전장을 정리했다.
흩어진 병장기를 모아 쓸 수 있는 것을 정리했다. 갑옷을 벗긴 시신을 한데 쌓고 불태워서 장사지냈다. 물론 조선군과 일본군 시신은 따로 분리했고, 조선군 전사자는 호패를 확인해서 그 신원을 파악한 뒤에야 한 구씩 화장했다. 호패가 없으면 같은 부대 군사들이 확인했다.
남쪽에서 올라온 시마즈 이에히사가 권율을 만난 때는 이렇게 전장정리가 한참 이루어지던 중이었다. 조선과 협력하겠다는 요시히사로부터의 전갈을 가지고 온 이에히사를 보고, 권율은 요시히사와의 직접 회견을 제안했다.
이 만남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이에히사가 그 뒤로도 몇 차례나 양측 진영 사이를 왕래했다. 그런 노력 끝에 회견 장소로 이곳 야냐가와 성이 결정되었고, 조선군 3만과 시마즈 군 1만이 남북으로 대치하는 가운데 오늘 회견이 열렸다.
“이런 자리를 만들고자 한 건 우리 쪽에서 귀 측에게 제안할 사안이 있어서요. 혹시 귀공은 그저 가만히 있는 대가로 우리 전하께서 3개국을 보장해 주시리라고 믿지는 않았겠지요?”
“오스미, 사쓰마, 휴가 3국은 우리 시마즈 가가 아주 옛날부터 관리 책임을 맡았던 땅이오. 혹시 귀국 국왕께서 우리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으신다면, 무척 슬픈 일이나 우리로서는 강한 이의를 제기하는 길밖에 없소. 우리 병사들도 귀국 병사들만큼은 날래고 강하니까.”
딱 예상한 반응이라, 권율도 딱히 놀라워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요시히사의 입장이었다고 해도 아마 똑같이 대답했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다 한들, 우리로서는 귀측이 면종복배할지 모른다는 의심을 깨끗이 청산할 수가 없소. 우리 군대가 수길을 치러 간 동안에 그대들이 우리 보급로를 끊고 우리 본국을 침략한다면 이 어찌 엄청난 비극이 아니겠소?”
“그런 일은 없을 거요. 돕기로 한 이상, 중도에 배반하는 일 따위는 절대로 없소.”
통역을 맡은 무네시게는 어떤 말이 오가건 털끝 하나만큼도 동요하지 않고 양측의 언사를 그대로 전달했다. 마치 혼이 없는 인형이 말을 하는 듯했다. 당사자들은 그러지는 못했다.
“말뿐인 약속이 아니라 그 이상이 필요하오.”
권율의 강경한 언사를 들은 요시히사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반문했다.
“그럼 뭐가 더 필요하시오? 이미 내 아우 요시히로가 5천 병력을 거느리고 오토모 공격을 지원하러 갔소. 이만하면 조선과 한편이 되겠다는 성의로서는 충분하지 않소?”
“그 이상이 필요하오.”
“인질이라도 내라는 거요?”
시마즈는 이미 히데요시에게 인질을 보낸 상태다. 조선에 있는 도요히사의 아내가 오사카에 끌려가서 인질 노릇을 하고 있다. 그런데 조선에까지 인질을 보내야 한단 말인가.
“아니, 인질이 아니라 군대를 내시오. 우리 군 본진은 대우씨 영토에 집결한 다음에 수길을 치러 갈 것인데, 그 측면을 위협할 사국(四?, 시코쿠)을 그대들이 제압해주길 바라오.”
히데요시가 조선군의 손을 빌려 노부나가를 모살했다는 주장은 무네시게의 증언을 통해서 일본에 알려졌다. 이는 분명 반역행위지만, 상대방인 히데요시 측이 순순히 인정할 리가 없다. 당연히 시코쿠 등 여러 지방 영주들은 자신의 이득에 따라 편을 정할 게 분명했다.
시코쿠는 옛 영주들이 세력을 유지하고 있는 규슈와는 다르다. 거기 있는 영주들은 지난번 원정이 끝난 뒤에 히데요시가 새로 영지를 분배했을 때 득을 보고 충성을 맹세한 자들이 거의 전부다. 그런 놈들이 인제 와서 편을 바꾸고 히데요시 타도에 동참할 리가 없었다.
“우리가 시코쿠를 제압할 경우 추가적인 보상은 어떻게 되오?”
“기존에 약속한 영지인 3개국의 영유를 보장하는 것이 전부요. 원한다면 조선과의 자유로운 교역도 허락할 수 있소. 하지만 귀측이 따르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요. 우리 후방의 안전을 위해서 부득이하게 귀측 영지부터 평정한 뒤에 수길을 잡으러 가는 수밖에.”
요시히사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조선 측의 요구는 시마즈 군 주력을 규슈에서 빼냄으로써 자신들의 안전을 도모하고, 오사카로 가는 진격로를 확보하기 위한 측방엄호를 시마즈 군에게 떠넘겨서 자기들 병력을 아끼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과연 따라야 할까 말아야 할까.
“좋소. 시코쿠 제압을 우리가 맡겠소. 다만 시코쿠에 건너갈 때 사용할 배는 귀측에서 좀 제공해 주어야겠소. 당신들이 지난 5년 동안 수시로 나타나서 때려부수는 바람에 우리 쪽에서 보유한 선박이 거의 없소.”
“알겠소. 수군에 연락해서 교섭하겠소.”
시코쿠 공격은 양측이 모두 만족할 만한 협약이었다. 조선은 귀중한 병력과 시간을 아낄 수 있고, 시마즈 쪽에서는 약탈을 통한 부수입을 얻을 수 있다. 시코쿠 땅을 완전히 차지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런 건 바라지도 않았다.
– 23 –
우물쭈물하는 사이 다카사키 산은 조선군에게 겹겹이 포위당했다. 고바야카와 다카카게는 산 아래에 진을 친 조선군을 노려보며 분노를 곱씹었다.
“어떻게, 어떻게 단 한 달 만에 이런 일이!”
오늘은 5월 1일. 조선군이 쓰시마를 침공한 날이 4월 2일이니까 전쟁이 시작된 지 정확히 한 달이 되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규슈 전역이 조선군에게 제압당하고 말았다.
“태합 전하께서는 오토모, 류조지와 동맹을 맺어 거점을 마련한 뒤에 쳐들어오기나 하셨지, 조선군은 내응하는 세력 하나 없이 막무가내로 쳐들어왔다. 그런데도 이토록 짧은 시간 안에 이국(異國)인 규슈를 장악하다니, 역시 화포와 기병 탓인가.”
조선 기병의 위력은 다카카게 자신이 가장 뼈저리게 체험했다. 하카타 앞에서 벌어진 싸움 때는 조선 장창기병의 돌격으로 대열이 무너져서 완패했고, 미하라 성에서는 도망치는 도중에 계속 추격을 당했다. 그리고 후위로 남긴 부대는 차례로 적 기병에게 짓밟혔다.
“바닷길이라도 뚫려 있었으면 지금이라도 탈출하겠는데.”
구로다 나가마사는 조선 수군이 오기 전에 배를 타고 오사카로 떠났다. 히데요시 곁에 있는 부친 요시타카와 히데요시 본인에게 지금 규슈가 처해있는 절박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전하기 위해서였다. 4월 25일에 나가마사가 떠난 지 하루 만에 조선 수군이 나타나 항구를 막았다.
이제 퇴로는 없었다. 조선군 1만 5천에 일본군 6천이 다카사키 산을 겹겹이 에워쌌다. 적이 들고 있는 깃발을 보니 오토모 씨 휘하에 있던 소영주가 넷, 그리고 시마즈 군이었다.
“우리를 도와주러 올 구원군이 없다는 뜻이지.”
다카카게가 자조적으로 내뱉었다. 지금 오토모 씨는 수년 동안 벌어진 난맥으로 인해 휘하 호족들에게 신망을 잃었다. 전투 없이 항복한 자들이 아예 적군에 가담할 정도다. 이런 판에 자기 목숨을 걸고 주군을 구하러 올 자가 있을까?
그리고 조선군이 화살로 쏴 보낸 편지대로라면 이제 규슈에 남은 일본군 주요 거점은 여기 하나밖에 없다. 나고야에 주둔하던 우키타 군은 사가성 앞에서 궤멸당했고 우키타 히데이에는 포로로 잡혔다. 유일한 희망이던 시마즈 군은 적에게 붙었다. 눈앞의 깃발이 그 증거였다.
“요시히로 공이 항복을 주선하겠다고 했지….”
배신자 시마즈 요시히로가 사자를 보내 자신을 통해 항복하면 다카카게와 부하들의 목숨은 책임지겠다고 했다. 사자를 돌려보내기 전에 잠시 고민했지만, 역시 싸우다가 죽는 것밖에는 이제 남은 활로가 없다고 생각했다. 항복해 봐야 조선 국왕이….
“주군, 적습입니다! 시마즈 군이 뒤쪽으로 이어지는 샛길을 파고들었습니다!”
“병력을 보내 막아라!”
아직 어린 오토모 요시노리 대신에 방어전을 총지휘할 책임은 다카카게가 맡고 있다. 지금 정도라면 아직 이들의 힘으로 대처할 수 있다. 문제는 시마즈 군만 막으면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정면의 조선군이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조선군은 비교적 쉽게 산으로 가지고 올라올 수 있는 진천뢰와 신기전으로 성 동쪽에서부터 성내에다 포격을 퍼부었다. 산성 안에 있는 여러 전각은 곧 불길에 휩싸여 무너져내렸다.
잠시 이를 악물던 다카카게가 결심했다. 요시히로의 약속을 믿어보겠다고 말이다.
5월 1일 오후, 마침내 다카사키산에 백기가 올랐다. 한 달에 걸쳐서 진행되던 규슈 전역이 드디어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