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658
2부 436화
– 1 –
규슈 전선에서 거둔 승리를 기록한 승첩 장계는 하카타에서 배를 타고 동래성에 도착했다. 거기서 말로 바꿔 타고 영남대로를 달려 도성으로 직행한다. 전선에서 거둔 승전보가 이렇게 해서 나한테 도착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7일 이내다.
연이어 들려오는 승전 소식은 내게 먼저 보고된 뒤 곧바로 조보를 통해서 전국으로 퍼졌다. 조보 새 판본이 나올 때마다 새 소식을 들으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전하, 조보를 원하는 이가 너무 많아서 기존에 배포하던 수량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으니 어찌하면 좋겠사옵니까.”
“소식을 알고자 하는 마음은 인지상정이니 보고 싶다는 이들은 모두 볼 수 있게 해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하지만 조보를 찍는 종이와 활자, 먹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건 아니니 무한정 찍어내어 나눠줄 수는 없다. 한 달에 저화 한 말을 내겠다는 자들에게만 한 부씩 내주어라.”
한마디로 정기구독 계약을 받는 거지. 일단은 도성에서만 시작하지만, 지방에서도 충분히 시행할 수 있는 조치다. 적어도 감영 소재지 정도 되면 재지사족(在地士族)이라 해도 세상이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 궁금증을 품을 것이고 매달 저화 한 말 정도 여유는 있을 테니까.
지금 조보가 정식으로 배부되는 대상은 현 단위까지 내려가는 각급 관청과 향교, 소대 단위 독립 군영까지다. 도성에서도 각 관청 단위로 나간다. 병조를 예로 들어보자면 오위, 오군영, 사복시, 군기시 각 지부, 전설사, 훈련원, 세자익위사에 각 3부씩 나간다.
그 외에는 대감 소리를 듣는 정2품 이상 전직 관리로 도성에서 거주하는 이들에게도 1부씩 준다. 현직 관리는 출근해서 읽으면 되니까 안 준다. 종친들도 종친부에 가서 보든지 아니면 족친위에 출근해서 보면 된다. 그 외에는 다들 베껴서 보는 거다. 말로 듣던지.
다만 손으로 베끼는 건 봐주지만 목판으로 조보 사본을 찍어내는 건 불법이다. 뭐 저작권을 보호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조보 발매가 정보 배포를 통제하는 수단일뿐더러 각 지방관청 및 예조의 수익사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조보 지면 8면 중에 적어도 20%가 광고다.
아, 조보를 찍는 박문국은 여전히 예조 산하에 있지만 사전청은 이제 내 직할로 바뀌었다. 일감이 자꾸 늘어나는 데 따라서 인원도 확충하다 보니 규모가 너무 커졌고, 책임자를 정1품 도제조로 앉혀 놓는 바람에 다른 기구 밑에 두기에는 격이 안 맞게 된 탓이다.
어쨌든 조보와 경쟁할만한 민간신문은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역시 지면을 채울 취재능력이 부족한 탓이 크겠지 싶다. 인쇄야 꼭 서양식 인쇄기와 금속활자를 쓰지 않아도 목판으로 찍을 수 있지만, 독자들이 찾을 만한 기사를 만들 역량은 아직 민간에 없으니까.
다만 이런 물건은 있다. 순 광고로만 채운 한 장짜리 홍보물은 민간에서도 많이 인쇄한다. 광고만 넣으면 사람들이 안 읽을까 봐 그러는지, 소설이나 괴담도 연재하고 있더라. 이런 걸 지칭하는 통칭은 시보(市報)다. 장시(場市)에서 돌아다니는 물건이라고 그리 부르는 모양이다.
시중에서 돌아다니는 걸 몇 개 구해다 읽어보니, 삼국지나 서유기를 풀어서 연재하는 것도 있고, 금오신화처럼 전등신화를 번안한 수준의 창작물도 있었다. 역시 시장이 존재하고 나갈 매체가 있으면 창작력은 발휘되게 마련이다. 아, 그리고 당연히 전부 국문(國文)으로 찍었다.
다만 수호전을 연재하는 시보는 전국에 하나도 없었다. 왜 없냐고 승정원에 물어보니 이런 대답이 올라왔다.
‘반역을 부추기는 무도한 글이라 하여 의금부에서 게재를 금지하였사옵니다.’
젠장, 그러고 보니 수호전 주된 줄거리가 양산박 패거리가 못된 관리 때려잡는 이야기였지. 왕조국가에서 금서 취급을 받아도 무리는 아니다. 뒤늦게 혀를 차며 확인해 보니 역시 단행본 출간도 금지된 상태기에 전부 풀도록 했다. 그깟 소설책 때문에 안 일어날 반란이 일어날까?
이야기가 잠깐 좀 다른 데로 샜다. 어쨌든 유료로 신문을 파는 계획을 이제 처음 구상한 건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에는 조선에서 돈을 내고 사람들이 신문을 볼 만한 상황이 아직 충분히 조성이 안 됐었다. ‘새 소식’이 그렇게까지 급한 사람이 많지 않았으니까 말이지.
하지만 이번 전쟁이 그 계기가 되었다. 조선인들, 특히 식자층은 북방전쟁과 경인왜란 때 조보를 통해 전쟁 소식을 접하는 데 익숙해졌다. 그리고 지난번 두 차례 전쟁 때는 입소문을 통해 전쟁 소식을 들을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 없다. 전쟁터가 바다 건너니까 말이다.
상황이 달라진 만큼 유료 구독자를 분명히 모을 수 있으리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일단 보게 된 이상은 쉽게 끊지 못하는 게 신문 아닌가 말이다.
정기구독 외에 현대식으로 가판에서 파는 경우는 아예 배제했다. 판매량 예측이 안 되니까 자칫 잘못하면 남은 신문이 전부 폐지가 된다. 아무리 아마지?대마지 같은 새 종이가 나와서 종이 생산이 10배쯤 늘고 가격은 반으로 내렸다지만, 헛수고는 덜 하는 편이 좋지 않겠는가.
“도성에서의 조보 배포는 이제부터 한성부가 맡아 담당하게 하라. 1년 동안 계속 보겠다고 약속하고 그 대금을 선납하는 자는 2말을 깎아주어 1섬만 받도록 하라. 환곡에 붙는 이자가 10분지 1이니, 그 정도는 감해주어야 하리라.”
“예, 전하.”
조선에서 춘궁기에 농민들에게 빌려주고 수확기에 돌려받는 환곡은 원래 법으로 이자 1할이 붙는다. 즉, 조보 구독료를 2말 깎아줘도 호조는 별 손해를 보지 않는다. 잘 굴리기만 하면.
음, 조보를 유료로 굴리게 되면 이게 새로운 토색질 수단이 되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고을 수령들이 백성들에게 억지로 신문 보게 하고 신문값 거둬서 지가 챙겨 먹는 거 아닐까?
이건 조보 구독자 명단을 감영에서 관리하게 하고 감영으로 올라오는 구독료와 딱딱 맞춰서 새는 구석이 없도록 관리하는 수밖에 없겠다. 문제 생기면? 그야 사헌부가 떠야지. 이런 일은 금위사가 아니라 사헌부 영역이니까.
믿을 수 있는 장수들에게 모든 걸 맡긴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이번 원정에서는 내가 할 일이 없어서 참 다행이다. 들어오는 승전보를 접수하고, 후방지원에만 차질이 없도록 신경써 주면 된다. 사실 그 일도 나보다는 실무자들이 노력하고 있지만.
– 2 –
동래 일대에 집적해서 쌓아둔 치중은 막대한 양이었다. 지난 4월 이후로 막대한 양을 배에 실어 동쪽으로 보냈지만, 바닷가 여러 고을에 쌓인 물자의 수량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실어내면 실어내는 대로 강과 바다를 통해 다시 보충됐기 때문이다.
“5월 들어서 8일까지 동래에 도착한 곡식만 3만 섬, 장이 2천 독, 술이 2천 독, 건육이 5천 근, 화약이 4만 근입니다. 치중을 왜국으로 운반할 선단에는 혹시 문제가 없겠지요?”
“물론이오. 남도의 전 조운선이 모여서 치중을 나르고 있지 않소? 태풍이 오기 전까지는 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소.”
경상도 초유사 김성일의 질문을 받은 병조판서 김명원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선에서 군사를 지휘하는 건 확실히 좀 벅차지만, 이런 지원업무는 김명원을 따라갈 사람이 없다.
김성일 역시 김명원을 돕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경상도는 이번 원정을 지원하는 배후지로서 물자와 병력을 조달하고, 또한 병력과 물자가 대기하는 장소로서 중요했다.
이곳 동래는 5년 전 왜란으로 완전히 폐허가 되었던 땅이다. 하지만 일본을 향하는 군대와 물자가 모이면서 급속하게 재건되어 지금은 왜란 전보다 더 번성하게 되었다.
“조운선 700척이 대마도, 일기도, 박다를 오가며 물자를 나르고 있소. 그런데 지난달 말에 도성에 올라갔을 때 상감께 보고를 드렸더니 이를 가리켜서 ‘피스톤 수송’이라고 하셨는데, 그 피스톤이란 게 뭔지 모르겠구려.”
“전하께서 설명해 주지는 않으셨습니까?”
“아마 서양 말이 아니었나 싶긴 한데, 내가 서양 말을 잘 몰라서 말이오. 여쭈었더니 잘못 나온 말이니 괘념치 말라고만 하시고 다른 이야기를 하셨소.”
누구나 이항복이나 이덕형, 유성룡처럼 서양 언어를 쉽게 익힐 수는 없다. 김명원도 노력을 전혀 안 해본 건 아니지만, 환갑이 넘은 머리로는 새 말을 익히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두 살 아래인 정철처럼 라틴어 읽고 쓰기만이라도 배워볼까 했으나 그것도 어려웠다.
결국, 김명원은 서양 말 배우기를 포기했다. 꼭 봐야 할 양서(洋書)가 있으면 사전청에서 낼 번역본을 기다리면 될 일이 아닌가. 그리고 주상께서 정 서양 말 잘하는 신하를 원하신다면, 나이도 들었으니 벼슬을 내놓고 물러가면 그만이다.
“아무튼, 이제 부내(후나이)가 함락되었으니 이제부터 보낼 배들은 부내까지 갔다 와야 하니 여정이 더 길어지겠구려. 도원수가 해로를 잘 지켜야 할 텐데.”
지금 하카타로 보내는 물자는 규슈 점령군에서 사용할 물량이다. 오사카로 진공하는 병력이 출발지로 삼을 곳은 후나이니까, 그쪽에서 쓸 물자는 후나이로 직접 보내야 한다. 군사들이야 하카타에서 육로로 후나이까지 걸어간다고 쳐도, 물자를 나르기는 어려우니 말이다.
물자만이 아니다. 이제 배도 규슈로 보내야 한다. 일본은 여러 개의 섬이 모여서 이루어진 나라니까, 히데요시가 있는 오사카로 가려면 배가 필요하다.
“중요한 건 왜국 내해의 제해권이오. 도원수가 잘해줄 거라고 믿긴 하지만, 내해의 수로가 워낙 복잡해야 말이지.”
왜 수군 출신 포로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내해를 지나는 바닷길이 얼마나 복잡한가 하는 문제였다. 그리고 포구마다, 모퉁이마다 해적이 숨어 있다는 말도 함께였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 수군의 힘이 압도적이니, 숨어 있다가 덤비는 왜구 따위가 어찌 해를 끼치겠습니까? 우리는 그저 물자와 병력만 계획대로 보내주면 됩니다.”
규슈 제압은 한 달 만에 끝났다. 하지만 그렇다고 오사카로 바로 진공할 수는 없다. 군사를 넉넉히 두어 규슈를 안정시키면서 오사카 진공을 위한 병력과 물자를 후나이에 모아야 한다.
규슈에서는 아군이 연전연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규슈는 일본에서도 변방에 속한다. 적들의 심장부인 오사카에는 분명 대군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이미 건너간 소병력만 가지고 모험을 시도할 사람은 적어도 지금 조선군 지휘부에는 아무도 없었다.
김명원도 마음 같아서야 규슈 함락의 여세를 몰아 곧바로 오사카를 치라고 하고 싶다. 허나 규슈에서 오사카로 가는 뱃길은 조선에서 규슈로 가는 뱃길보다 거리가 2배다. 조선에서 바로 움직였을 때 보급선이 져야 할 부담을 생각하면, 규슈에 병력과 물자를 비축할 수밖에 없다.
“7월이면 조선해협 일대에 태풍이 부니까, 그전에 되도록 많이 보내도록 해야겠습니다. 참, 대감. 야인들과 천병은 모두 별 탈 없이 건너갔는지요?”
동래에서 규슈로 건너가는 도중의 바다를 조선해협이라고 지칭하는 것도 주상께서 정하신 말이다. 주상께서는 본래 칭하는 말이 없던 개념이나 대상을 가리키는 말을 잘도 만들어내곤 하셨다. 신하들로서는 감탄하면서 받아쓸 뿐이다.
“천병은 귀공이 대구에 간 사이에 다 건너갔소. 칙사 앞에서 오금을 펴지 못하는 이 도독의 꼴이 참 볼만하더구려. 야인들은 아직 건너가는 중이오. 기병은 배가 많이 필요해서 한꺼번에 보낼 수가 없으니.”
이여백이 어떤 인간인지, 김명원도 알 만큼은 알았다. 하지만 만력제가 조선을 지극히 높이 평가하여 이순신에게 명나라 도독 벼슬을 내리는 칙서까지 보낸 판이니 아무리 이여백이라도 멋대로 설칠 수 없다. 만약 마음만 먹으면 이순신에게 처형당할지도 모르게 됐으니까 말이다.
“도원수에게 벼슬도 내리시고, 전량도 보태주시니 천자의 은혜가 실로 무겁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기는 하나, 소관은 천자께서 우리 조선을 이렇게 크게 도와주시는 연유를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대감께서는 혹시 아십니까?”
김성일의 질문을 받은 김명원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명나라에서 보내준 은이 얼마나 되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 중 하나가 그였지만, 그 역시 정확한 동기는 몰랐다.
“나도 모르겠소. 아마 왜적이 대국에까지 쳐들어왔을 때 소요되는 전비보다는 우리가 대신 싸우도록 돕고 돈을 주는 편이 훨씬 비용이 적게 든다고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소.”
“그럴법하군요.”
고개를 끄덕인 김성일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직 배를 타지 않고 남아 있는 야인들이 혹시 우리 백성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단속을 부탁드립니다.”
“물론이오. 염려치 마시오.”
생각 같아서야 경상도 군사들을 야인들의 군영 근처에 배치해서 감시하고 싶지만, 초유사인 김성일에게는 군권이 없었다. 원정을 지원하기 위해서 경상도 일원에서 인력과 물자를 움직일 권한이 있을 뿐이다.
김명원은 김성일의 그런 불안을 이해하고 진정시켰다. 야인들이 본래 거칠다 하나, 어명에 따라 출정하는 처지에 만행을 저지를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다고 말이다.
“그리고 며칠 내로 모두 바다를 건너갈 테니, 그 흉폭함은 왜인들에게 풀게 될 거요. 우리 백성들이 아니고 말이오.”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 3 –
내일은 왜국으로 떠난다. 아무리 경인년 난리 때 싸움을 겪은 군사들이라 해도 바다를 건너 전장으로 간다는데 쉬이 잠이 올 리 없다. 당연히 다른 생각이 난다.
“자, 이건 호주(胡酒)일세. 어렵게 구했다구!”
“커, 좋다!”
여기저기 군막 앞에서 술판이 벌어졌다. 병조판서 김명원은 바다를 건너가는 전날 밤에만은 군사들이 다소 군율에 어긋나는 행동을 해도 눈감아주었다. 전라도 순변사 이일 같은 사람은 이를 가리켜 ‘병조판서가 물러서 군사들을 다잡지 못하는 거’라고 뒤에서 험담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군사들 쪽에서는 실컷 놀아도 뭐라 나무라지 않는 병조판서가 평이 나쁠 리 없다. 불평의 방향은 다른 쪽을 향했다.
“중대원이 150명인데 안주가 겨우 멧돼지 한 마리에 꿩 8마리라니? 이걸 누구 코에 붙여?”
“훈련한다고 사냥하는 군영이 한둘이 아닌데 짐승이 어디 남아나나? 별수 없으니 모자라면 건포나 씹으라고.”
군사들은 투덜거리면서도 연달아 술잔을 들이켰다. 빈 잔은 옆으로 넘어가며 다시 또 술이 채워졌다. 전국 각지에서 모아온 갖가지 술이 군사들의 위장을 뜨겁게 달궜다.
“너무 많이 마시면 내일 배에서 다 토한다네. 적당히들 마시게.”
중대장이 하는 잔소리를 들은 군사들이 예예 하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중대장이 지나가자마자 바로 술잔이 다시 돌았다.
“주동이 자네는 내금위였다고 했지? 전하께 성명까지 하사받았다고 들었는데, 굳이 싸움에 나가겠다고 자원할 필요가 있었나?”
“부형의 원수를 갚아야 하지 않습니까.”
술기운으로 불콰해진 소대장의 질문을 받은 한주동이 굳은 표정으로 답했다.
“아버지도, 형님도 왜군과 싸우다 돌아가셨습니다. 원수를 갚아야지요.”
“자네도 죽으면 대가 끊기는 건 어쩌고?”
“작년에 혼인해서 처가 임신했습니다. 집에 두고 왔으니, 아들을 낳으면 대를 잇겠지요.”
한주동이 팔꿈치를 꺾어 독한 호주를 한방에 들이켰다. 본래는 술을 못 했지만, 내금위에서 지내는 몇 년 동안 술이 꽤 늘었다. 여기 경상도 복수군 군영에서 거친 경상도 사내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전하께서도 흔쾌히 허락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또 궁궐에 가서 전하 앞에서 포달을 부리실 기세였습니다만, 제가 윽박질러서 못하게 했습니다.”
“하긴, 여기 있는 군사들 태반이 원수 갚으러 가는 거지.”
지난 왜란에서 집과 가족을 잃은 사내들이 모인 곳이 여기 복수군이다. 각자 가슴에 품은 한이 다르고 나름의 사정이 있다.
“중대장 양반도 우리 앞에서는 허허 웃지만, 속으로는 피가 마를 거야. 내 그동안은 일부러 말해주지 않았네만, 사실 그 역적 원균이 그 양반 형이거든.”
“그게 정말입니까?!”
소대장의 말을 들은 한주동이 눈을 크게 떴다. 중대장 원연이 그런 배경을 가진 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렇지. 흥양에서 폭사한 동생 덕분에 가문 전체가 역적이 되진 않았다지만, 출세 같은 건 끝난 거나 마찬가지지. 종군해서 역적이 된 형의 목이라도 베어오지 않는 한 말이야.”
술에 만취한 소대장은 비아냥거리는 투로 뇌까렸다. 하지만 한주동으로서는 중대장 원연이 정말 그런 마음을 품고 있다고 해도 비웃을 수가 없었다. 똑같지는 않지만, 그도 역시 비슷한 속사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천주교 신자에게 있어 자유로운 신앙생활은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였다. 그리고 신교를 허락받으려면 천주교 신앙이 나라를 위해서, 임금을 위해서 도움이 된다는 점을 확실히 보여줘야만 했다. 천주교도 의군이 필요하지 않게 되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해 싸워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