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67
1부 06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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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쫓아라! 노를 저어라!”
해남현 소속 중맹선 두 척이 왜선 두 척을 맹렬히 쫓았다. 왜선은 속도를 내기 위해 돛을 올렸지만 간격을 벌리기는 힘들었다. 앞을 가로막은 조선군의 존재를 너무 늦게 깨달았다.
“우리 백성들을 해치고도 도망칠 수 있을 줄 알았더냐! 내 이번에는 꼭 잡고 말겠다!”
해남현감 최홍전이 이를 갈았다. 뱃머리에 우뚝 선 최홍전의 두 눈이 불타고 있었다.
서해와 남해를 연결하는 위치에서 바다로 툭 튀어나와 있는 해남현은 그동안 왜구가 가장 자주 나타나는 고을 중 하나였다. 16년 전인 성종 14년에는 현감 정의운이 왜구 때문에 품계를 깎인 적까지 있었다.
죄목은 왜변이 일어났는데도 제때 대처하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처음에 대간들은 장 4백대를 치고 일개 군사로 신분을 떨어트려 변방에 충군(充軍)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나마 ‘사건이 터진 뒤에야 현감이 알았으니 그 점을 감안’하여 임금이 벌을 감해 준 것이었다.
최홍전은 이제 해남원으로 부임한지 넉 달 되었다. 다행히 그동안은 왜적이 해남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동안 최홍전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언제든 출동할 수 있도록 군사들을 훈련시키고 장비를 점검했다. 망가진 무기는 다시 만들거나 수리하고 화약을 보충했다.
“사또, 왜선이 나타났사옵니다!”
“왜선이라고! 무슨 짓을 저질렀느냐, 어디로 가고 있느냐?”
마침 최홍전이 달량진성을 순시하러 왔을 때 사단이 일어났다. 달량진은 해남과 달도 사이에 있는 수군진으로 대맹선 한 척과 중맹선 두 척, 소맹선 한 척을 운용하고 있었다. 소맹선 세 척을 더 보유하고 있긴 하지만, 이 배들은 탈 인력이 없는 예비선이다.
“방금 도착한 파발이 보고한 바에 따르면, 왜 중선 두 척이 어룡도 방면에서 나타나 흑일도 쪽으로 가는 모습을 목격했다 하옵니다. 굳이 육지 가까이로 스쳐 지나가는 양태를 보건대, 적선(賊船)이 분명하다는 보고였습니다.”
“드디어 왔구나! 당장 모든 전선을 출동시켜라. 내가 직접 지휘하겠다.”
최홍전은 무과에 급제한 무관 출신으로서 해남 현감이 처음 맡은 사또 자리였다. 아직 젊은 임금은 최홍전을 해남현감으로 임명하면서 남변에 있는 백성들을 왜적으로부터 잘 지키라고 신신당부한 바 있었다. 그 기대에 부응할 기회가 마침내 온 것이다.
“하지만 사또, 군선을 몰고 나가 왜적을 쫓음은 원래 제가 할 일입니다만….”
졸지에 자기 일을 빼앗긴 달량진 만호가 주저하면서 항의했다. 그로서는 공을 세울 기회를 가로채이는 셈이니 선뜻 동의하지 않는 태도도 무리는 아니었다.
“물론 달량진 만호의 말이 맞소. 하지만 만호께서는 지금 몸이 좋지 않다고 알고 있소. 가뜩이나 몸이 불편한데 싸움에 나갔다가 혹시 상할지도 모르니, 이곳 달량진성을 지키며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주시오.”
달량진 만호는 본래 지방 토호 출신으로, 약식으로 본 시험에서 통과되어 만호 벼슬을 받았을 뿐이다. 품계로는 종4품으로 종6품인 현감보다 앞서지만, 정식 무과 급제자인데다 임금으로부터 직접 고을 관리를 명령받은 현감과는 애초에 출신에서 차이가 난다.
게다가 달량진 만호는 신임 현감에게 텃세를 부리느라 그동안 몸이 안 좋다며 업무를 거의 하지 않았다. 덕택에 만호진에서 해야 하는 온갖 잡무를 현감이 도맡아 수행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내가 군사를 이끌고 출전하겠다’고 해 봐야 비웃음을 살 뿐이었다.
“말씀해 보시오. 혹시 그동안 아프다 하신 게 혹시 꾀병이셨소?”
“아, 저, 그건 아닙니다만….”
달량진 만호가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우물거렸다. 최홍전이 단호하게 쐐기를 박았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만호께서는 몸이 불편하시니 오늘은 진내에서 푹 쉬도록 하시오. 여기 군사들도 모두 본 고을에 속한 이들이고 군선 또한 본 고을에 속했으며 병기도 본 고을에 속하였으니, 본관이 지휘하는 데 있어서 문제는 전혀 없다고 생각하오.”
달량진 만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만호들이 수령에게 꼼짝할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만호들은 그저 병력을 지휘할 권한이 있을 뿐, 그 휘하에 있는 수졸과 군선은 모두 원래 고을 소속이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들은 본관이 부임 후 처음 맞이하는 왜적이오. 전하께서는 본관에게 이곳 수령을 명하시면서 ‘왜적과 싸워 백성을 지키라’고 친히 명하신 만큼 마땅히 나서지 않을 수가 없소. 게다가 본 고을은 본래 우수영에 속한 고을로서, 적과 싸우러 나서는데 망설일 이유가 없소.”
이쯤 되면 지은 죄가 있는데다 출신도 꿀리는 만호로서는 더 나설 수가 없다. 만호가 입을 다물고 물러나자 최홍전이 소리 높여 호통을 쳤다.
“모든 군사들은 즉시 배에 오르라! 왜적을 잡으러 간다!”
병기와 화약, 화살은 늘 배에 실려 있다. 왜적이 나타나지 않아도 매일 아침 배에 실었다가 저녁에 내려서 창고에 보관하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식량도 사흘 치는 실어두었다. 덕분에 출동에 필요한 시간은 매우 짧았다.
군관들 중 일부는 이런 준비를 반대했다. 군사들을 수고롭게 할 뿐 아니라 겨울이니 왜적이 올 일도 없고, 바닷바람에 전 화약이 행여나 불발이 될까 염려하였던 탓이다.
최홍전은 겨울이라 해도 왜적은 올 수 있고, 적이 나타났을 때 출동이 늦기보다는 화약을 버리는 게 낫다고 하여 반대를 억눌렀다. 지금 벌어진 일을 보니 그가 옳았다.
곧바로 돛을 올린 전선들이 남쪽을 향해 순풍을 타고 미끄러지듯이 움직였다. 최홍전의 머릿속에서는 적선을 놓치지 않고 잡을 계획이 세워지고 있었다.
“노를 더 세게 저어라! 놈들을 잡아야 한다!”
왜선은 최홍전이 예상한 대로 흑일도와 백일도 사이 바다에서 나타났다. 빨리 지나쳐 버렸다면 놓쳤을지도 모르지만, 뭔가 털 만한 표적을 찾느라 늑장을 부린 모양이었다. 물론 이쪽이 북풍을 타고 가능한 빠른 속도로 내려온 덕을 보기도 했다.
“놓치겠다. 어서 더 세게 저어라!”
최홍전이 호령하자 격군들이 맹렬히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구조상 움직임이 빠르지 못한 맹선으로서는 차이를 더 벌어지지 않게 하는 정도가 한계였다. 분명히 같은 역풍을 타고서도 왜선이 더 빨랐다.
“소리를 지르고, 포를 쏘아 경고해라! 놈들이 배를 멈추게 하라!”
아까부터 반복하던 일이다. 왜말을 할 줄 아는 통변(通辯, 통역)을 시켜 배를 세우라고 벌써 십여 차례나 고함을 치고 총통으로 공포도 쏘았으나 저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동화도 남단에 숨어 있다가 뛰어나온 아군과 맞닥뜨리자마자 계속 북으로 도망만 쳤다.
“필시, 동화도를 북으로 돌아 동쪽으로 도망칠 생각일 것입니다.”
“맞다. 예상했던 바다. 이미 대비했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
최홍전이 여유 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출동할 때까지만 해도 약간은 의구심이 있었다. 군관들이 평소 말했듯, 겨울인 지금은 왜구가 주로 활동하는 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망치는 꼴을 보건대 분명 왜구였다. 켕길 게 없는 왜인들이라면 조선 수군이 붙잡는다고 해서 굳이 도망가지 않았다. 자칫 왜구로 오인을 받고 목이 달아날 수도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저들은 분명 겨울이라 경계가 허술해진 틈을 노리고 노략질에 나섰음이 분명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포를 쏘아라!”
지시를 받은 화포장들이 뱃머리에 설치된 총통에다 화약을 넣었다. 물론 정해진 양보다 절반만 넣었다. 공포를 쏠 예정이므로 많이 넣을 필요가 없었다.
“방포!”
포성이 울렸지만 역시나 적선은 멈추지 않았다. 계속 달리던 왜선들이 동화도 북단에 바짝 붙으면서 동쪽으로 돌았다. 저 지점을 돌면 바람은 놈들에게 순풍으로 바뀐다. 놈들이 북풍을 타고 단숨에 동으로 내달리면, 맹선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
“‘따라잡지’ 못하게 된단 말이지.”
최홍전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옆에 있던 군관과 수졸들도 씩 웃었다. 적선이 동화도 북단을 완전히 돌아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순간 섬 너머에서 포성이 연달아 울렸다. 방금 이쪽에서 쏜 것보다 훨씬 큰 포성이었다.
“걸렸다! 모두 힘을 내서 노를 저어라!”
기세가 오른 격군들이 함성을 질렀다. 마침내 중맹선 두 척이 동화도 북단을 돌아 동으로 향했다. 그 사이에도 포성은 계속 울렸다.
“잡았다!”
수졸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올렸다. 도망치던 왜선 두 척은 매복한 대맹선이 쏘아대는 포화를 얻어맞고 걸레짝이 된 돛을 매단 채 표류하고 있었다. 최홍전이 쾌재를 불렀다.
“이놈들이 걸려들 줄 알았지! 이 도적놈들아, 아무려면 이 둔한 맹선을 가지고 네놈들을 무식하게 쫓기만 할 줄 알았냐?”
최홍전은 자신이 진로를 막아서면 필시 왜적이 정면으로 덤비지 않고 피해서 도망하리라 생각했다. 저들은 도적인 만큼, 적과 싸워 이기기보다는 무사히 노략질을 해서 도망가는 데 중점을 둘 것이기 때문이다.
이걸 확실히 잡으려면 모든 바닷길을 완전히 포위해야 하지만 그럴 전력은 없다. 그렇다면 조금 더 많은 전력으로 앞길을 막아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차라리 추격에는 소용이 없는 대맹선을 놈들이 지나갈 길목에 매복시키고, 적을 그쪽으로 몰아가는 편이 가장 확실했다.
“적선이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나리.”
이것 역시 의도한 대로였다. 대맹선에서는 최홍전의 지시에 따라 철환이나 전(箭)이 아니라 조란환을 쏘았다. 표적도 선체나 갑판 위에 탄 사람이 아니라 돛과 아딧줄이었다.
철환이나 전으로 선체를 맞혀 봐야 적선은 일격에 가라앉지 않는다. 그저 선체에 구멍이 하나 뚫릴 뿐이다. 게다가 그 안에 붙잡혀 있을 조선 백성들에게 피해를 입힐 수도 있으니, 선체를 쏘기보다는 돛을 망가뜨려 배를 세우는 게 나았다. 그러면 도망치지 못하니까.
“놈들은 아직 싸울 기세인가?”
“그러한 듯합니다.”
언뜻 보니 왜인들은 저마다 손에 칼을 들고 배 위에 올라 고함을 질러대고 있었다. 몇 놈은 동화도에 올라 육지로 도망칠 생각이었는지 바다에 뛰어들었지만, 대맹선 옆에 붙어 있던 소맹선이 급히 그쪽으로 접근하자 황급히 다시 자기들 배로 헤엄쳤다.
적선의 갑판 위를 살피니 작은 배 한 척이 올라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일본 본토에서 나올 때는 큰 배를 타고, 조선에 도착하면 작은 배로 연안을 돌며 노략질하는 왜구들이 분명했다. 현감이 지시를 내리기를 기다리는지 대맹선에서는 활도 총통도 쏘지 않고 있었다.
“한 번만 더 투항을 권해 보아라. 저들이 스스로 손을 들고 무기를 버린다면 우리 군사들이 상하지 않게 할 수 있다.”
“사로잡은 왜구는 모조리 왜관으로 압송해서 산 채로 책형에 처하게 되어 있지 않사옵니까. 상감께서 어명으로 명하신 바를 사또께서 어찌하시진 못하실 텐데요.”
“혹시 저들이 개전의 정을 크게 보인다면 전하께 구명을 청할 수도 있다. 일단 한번 권해나 보도록 해라.”
주저하던 통변이 왜말로 외치자 상대편에서는 욕설이 돌아왔다. 최홍전은 왜말을 몰랐지만 그 내뱉는 투나 통변이 얼굴을 시뻘겋게 붉히는 모습을 보자 욕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게다가 화살까지 하나 날아와 두 배 사이 수면에 떨어졌다.
“좋다. 쏘아라! 혹시라도 우리 백성을 쏘지 않도록 주의하라! 왜놈들만 노려서 쏘아라!”
“예이!”
호령이 떨어지자 화살 십여 발이 일제히 바람을 갈랐다. 뒤를 따르던 중맹선에서도 같은 숫자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갔다. 곧 대맹선에서도 왜적들을 향해 화살이 쏟아졌다.
대맹선을 향해 활을 겨누던 왜인 하나는 화살 여섯 개를 맞고 고슴도치가 되어 바다에 떨어졌다. 이자 말고도 활을 들고 있던 왜인들은 가장 먼저 표적이 되었다. 그리고도 계속 화살이 쏟아지자 양쪽에서 화살 세례를 받은 왜인들이 연달아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다행히 배 위에는 우리 백성이 없구나.”
왜구들은 싸움에 방해가 될까봐 그랬는지 붙잡은 조선인들을 갑판에 두지 않고 모두 선창에 넣어두었다. 덕분에 마음 편히 활을 쏠 수 있었다.
배 네 척에서 쉴 새 없이 활을 쏘아대자 왜인들은 계속해서 쓰러졌다. 놈들이 바다로 떨어지고, 갑판 위에 나뒹구는 꼬락서니를 보면서도 최홍전은 사격 중지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왜인들이 완전히 전의를 잃기 전에는 위험을 무릅쓸 수 없었다.
“천천히 접근하라! 움직이는 놈은 그대로 쏘아버려라!”
1각(15분) 가까이 화살을 퍼붓자 왜선 두 척 위에는 더 이상 움직이는 자가 없었다. 맹선 네 척은 적들을 포위한 채 천천히 배를 붙였다. 마침내 뱃전이 맞닿았다.
“끼요오옷~!”
선두에 선 최헌종이 막 적선으로 옮겨 타는 순간, 어깨에 화살을 맞은 채 엎드려 있던 왜인 하나가 벌떡 일어나 덤벼들었다. 누구든 보기만 하면 멈칫할만한 사나운 표정을 짓고, 괴성을 지르면서.
하지만 소용없는 발악이었다. 칼이 닿을 만 한 거리까지 오기도 전에 최홍전의 뒤에 서 있던 군관이 잽싸게 활시위를 당겼다가 놓았다. 달려들던 왜인은 두 눈 사이, 미간에 화살을 맞고 그대로 뒤로 자빠졌다.
마지막 반격 시도까지 좌절되자 왜구들은 마침내 손을 들었다. 해남현감 최홍전은 구출한 백성과 나포한 배, 붙잡은 포로, 거둔 수급을 가지고 당당히 달량진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
“훌륭하다. 하루빨리 해남으로 가야 하겠다. 나주목사는 어가가 내일 아침 일찍 떠날 수 있도록 채비를 서둘러 주기를 바라노라.”
“물론이옵니다, 전하.”
내게 고개를 숙이는 나주목사의 얼굴 한편에 슬며시 미소가 흐르는 모습을 본 것 같다. 설마? 내가 잘못 본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