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670
2부 448화
– 15 –
위풍당당한 범선 8척이 무리를 지어 바다 위를 미끄러졌다. 순풍을 만난 돛이 잔뜩 부풀어 바람을 받고 있었다.
“이거이거, 남만선은 이게 단점이란 말이지. 바람을 잘못 만나면 이 꼴이 되니.”
정발이 손으로 햇빛을 막아 눈앞에 그늘을 만들며 투덜거렸다. 그렇지 않아도 나가사키에서 서양인들과 툭탁거리다가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는데, 남쪽으로 우회하다가 갑자기 바람이 뚝 끊기는 바람에 한참 남쪽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는 처지가 되어 며칠을 오도 가도 못 했다.
여기에, 수졸 중 거의 전부가 일본으로 오는 길은 처음이라는 점도 안 좋은 영향을 끼쳤다. 아무리 대남도 왕복을 반복하면서 항해술을 익혔다고 해도, 한 번도 와보지 않은 길은 역시 서투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장군, 우리 전선으로 바깥 바다에 나갔다가는 물과 쌀이 떨어져 꼼짝도 못 할 테니 역시 그다지 나을 게 없습니다. 범선이라 사람이 덜 필요하고, 수고도 덜 드는 남만선이 더욱 나은 점도 있습니다.”
“뭐, 남만선이 나쁘다는 건 아닐세.”
정발 자신이 남만선을 타고 유럽에 다녀왔다. 장거리, 장기간 항해에서는 판옥선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남만선이 낫다는 건 잘 안다. 하지만 날씨 때문에 늦어졌다는 불평 정도는 해도 되지 않겠는가.
“어쨌건 이제 제대로 길을 찾아 왜국 본주(혼슈)와 사국(시코쿠) 사이로 들어섰으니 이제 곧 대판(오사카)일세. 싸움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가 되었어.”
남만선대가 부여받은 임무는 오사카 봉쇄다. 오사카에 있는 일본 수군 주력이 세토우치 내로 빠져나와 조선 수군을 영격하지 못하게 하고, 혹시 가능하다면 오사카를 포격해서 적들이 혼란에 빠지게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완전한 봉쇄는 어렵겠군요. 출구가 2개니까요.”
하카타에서 제공한 지도를 보면 오사카는 커다란 섬으로 바깥 바다에서 보호받고 있었다. 담로도(淡路島, 아와지시마)라는, 대마도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큰 섬이다.
“대판에서 배가 나오는 항로는 담로도 북쪽과 남쪽에 2개가 있습니다. 남쪽 길이야 우리가 지금 접근하고 있으니 쉽게 막을 수 있지만, 북쪽 길은 막기가 어렵겠습니다.”
부장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날씨와 바람에 관한 걱정이 끝나고 이제 전투를 생각할 때가 되자 그동안 잊고 있던 고민이 그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간단히 생각하자면 함대를 둘로 나누어 두 입구를 모두 틀어막으면 된다. 하지만 그 방법은 함대 전력을 분산시켜 적에게 각개격파를 시도할 기회를 줄 수 있었다. 아무리 남만선이라고 해도 적이 너무 많으면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도원수께서 너무 무리한 임무를 주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겨우 8척을 가지고 왜추 수길의 본진이 있는 대판을 봉쇄하라니요.”
“부장, 왜 그러나? 이건 별로 어려운 과업이 아니야.”
정발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놀란 부장이 의아한 얼굴로 질문을 던지자 그게 뭐 어려운 문제냐는 답이 돌아왔다.
“우리 목적은 적이 대판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지? 그렇다 해서 굳이 대판에서 나가는 길을 몸으로 틀어막고 버텨야 할 이유는 전혀 없네. 특히 북쪽 수로는 비좁은 데다 파마(播磨, 하리마), 비전(備前, 비젠), 찬기(?岐, 사누키) 등에서 원군이 달려와 포위할 수 있지.”
이 지역들은 모두 히데요시 충성파 영주들의 영역이다. 돌아설 리는 없다.
“그럼 어떡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혹시 남쪽 입구를 통해 들어가서 대판을 정면으로 칠 생각이십니까?”
“반만 맞았네. 일단 여기…담로도와 기이(紀伊, 키이) 땅 사이에 있는 남쪽 수로를 통과해서 대판 앞바다로 나가고, 거기서 포구 내를 한 번 휩쓸어준 다음 배를 돌려 다시 여기로 나오는 거야. 그러면 놈들은 우리가 다시 칠까 두려워 서쪽으로 배를 빼지 못할 걸세.”
“북쪽 수로를 열어두면 적이 드나들며 연락할 수 있지 않습니까? 완전히 막지 못하면….”
“그건 상관 말게. 수로를 다 막아봐야 놈들은 말을 타고 가서 소식을 전할 텐데, 그건 어찌 막으려고 그러나? 남쪽으로 크게 트여 있어서 놈들이 포위할 수 없는 이쪽 수로만 막아놓아도 충분하네.”
부장은 아직도 정발의 계획이 조금 미심쩍은 듯했다.
“우리 접근을 눈치채고 아예 대판만(大阪?)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저지선을 구축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럼 더 잘된 일이지.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대판 코앞까지 들어가지 않아도 적의 주의를 우리에게 끌 수 있으니까. 잊지 말게. 우리 목적은 왜선 한두 척 더 부수는 게 아니고, 왜적이 대판을 나가 도원수 대감의 앞길을 막지 못하게 하는 거야.”
세토우치를 가로질러 동진하는 동정군 주력은 아와지 섬을 공략해서 거점으로 확보한 뒤에 오사카를 칠 것이다. 그 과정에서 걸리적거리는 놈들은 없을수록 좋고, 남은 적선은 오사카만 안으로 몰아넣고 섬멸하면 그만이니까 몇 척이나 남든 상관없다.
“남은 배가 많을수록 좋아. 바다가 불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테니.”
강무관에 걸린, 상감께서 서양 화공을 시켜 그리게 하신 논산전투도 생각이 났다. 오사카 만이 통째로 불타오르는 광경도 논산에서의 혈전 못지않은 장관일 텐데, 그 모습을 그림으로 남기지 못할 게 아쉽다. 화공이 직접 보지 못한 광경을 그리면 아무래도 사실과 달라지겠지.
“장군! 전방에 왜선이 보입니다!”
“또 도망치는 어선인가?”
혼슈 가까운 해역으로 접어들면서 배를 몇 척 만났다. 전쟁이 시작된 뒤라서인지 교역선은 드물고 죄다 작은 고깃배들이었다. 남만선들이 몰려오는 모습을 보고는 ‘조선구’라고 여겼는지 죄다 부리나케 도망쳐 자취를 감추고들 있었지만 말이다.
“아닙니다! 군선입니다! 백여 척이 대판으로 들어가는 뱃길 입구를 막고 있습니다!”
돛대 위에 올라가 있던 망꾼이 외치는 소리에 정발이 반색을 했다.
“조 부장, 자네 말대로 되었군. 잘됐네! 여기서 저들과 일전을 벌여 격파하고, 당장이라도 대판을 들이칠 듯 위협하면 대판에 있는 적 수군은 도원수 대감을 막으러 나가지 못할 거네. 수길이 놈을 지켜야 할 테니까!”
그러려면 제대로 위력을 보여줘야 한다. 정발은 휘하 전선들을 단종진으로 편성하고 현측에 늘어선 포문을 열게 했다. 뱃전 위에 설치한 자모포에 화약과 탄환을 재고, 조총수와 궁수들 역시 뱃전에 늘어서서 전투 준비에 들어갔다. 해협 입구를 막고 있던 왜선들이 달려 나왔다.
“방포하라!”
정발이 호령하자 각 남만선이 탑재한 12근 포, 18근 포, 24근 포들이 일제히 불을 토했다. 수십 개나 되는 물기둥이 피어오르고, 남만선들은 초연에 휩싸여 선체가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곧바로 제2탄이 날아갔다. 물기둥 수십 개가 치솟고 왜선들은 지리멸렬해졌다.
– 16 –
오사카 시내가 발칵 뒤집혔다. 지난 5년, 남만선을 탄 조선구들은 일본 전체 해안의 절반을 휩쓸면서도 오사카까지는 오지 않았다. 키이국, 와카야마 이남의 해안을 덮쳤을 뿐이다. 일본 수군의 매복을 우려해서라고 오사카 주민들은 생각했다.
그러던 참에 전쟁이 발발했다. 하지만 해적질과 전쟁은 다르다. 5년 전에 일본군도 주력을 경상도에 보냈듯이, 조선군도 규슈에 모든 전력을 집중하리라고 생각했다. 전화가 오사카까지 미치려면 한참 걸릴 거라고 말이다. 그런데 날벼락이 떨어졌다.
“구키 공,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조선군이 오사카 코앞까지 오도록 내버려 두다니! 그리고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패하다니!”
모든 비난은 도요토미 수군을 총지휘하고 있는 구키 요시타카를 표적으로 해서 쏟아졌다. 그렇지 않아도 이틀 전인 6월 7일에 모리 수군이 전멸했다는 소식을 받은 직후에 이런 일이 터졌으니, 모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뭐라고 말해 보시오! 수군으로는 천하제일이라던 그 명성은 다 어디로 갔소?”
사누키에 있는 도쿠이 미치토시를 지원하러 갈 준비에 전력을 쏟는 중이었다고는 하지만, 남쪽에서 적이 나타날 가능성에 대한 대비가 소홀했던 건 사실이었다. 구키는 한 마디 항변도 없이 자기에게 쏟아지는 모든 비난을 그대로 받았다.
구키가 반응하지 않자 비난하던 중신들은 마침내 제풀에 지쳐서 입을 다물고 나가떨어졌다. 그제야 히데요시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지나간 일에 대해서는 따지지 않겠다. 솔직히 말해 보아라. 조선구들과 싸울 만하냐?”
“어렵습니다.”
아무리 태합 전하께서 명령한다고 해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다. 육지에서는 용맹하고 기량이 뛰어난 장수가 단신으로 적진을 휩쓸 수도 있다. 하지만 수전에서는 크고 강한 전선을 갖춘 쪽이 십중팔구 이긴다.
“아까 출격한 이케다 모토스케 군이 보여줬듯이, 지금 우리 수군은 조선 남만선을 이길 수 없습니다. 오사카만 내에서 버텨야 합니다.”
이케다 모토스케는 논산에서 전사한 노부나가의 젖형제 이케다 츠네오키의 맏아들이다. 그 지옥 같은 싸움터에서 부친과 함께 싸우다가 혼자서만 간신히 빠져나왔고, 언젠가 복수하고야 말겠다고 원한에 불타고 있다. 하지만 본래 수전에는 익숙지 못했다.
“우리의 강점은 조선 남만선들에 비해 움직임이 빠르고 수가 많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취해야 할 전법은 저들이 오사카만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려 매복했다가 사방에서 들이쳐 적을 포위하고 공격하는 것, 하나뿐입니다.”
대형 남만선은 바람을 타야 할뿐더러 움직임도 느리다. 원양에서 신출귀몰할 때는 대응하는 전력을 미리 배치할 수 없어 꼼짝없이 당했지만, 지금처럼 서로 대치하는 상황이 되면 대처할 방법이 없지는 않다.
“우리 전선 숫자가 많으니까 그대로 치고 나가도 되지 않느냐?”
“아와지시마와 본토를 가르는 기탄 해협은 좁습니다. 우리 함대가 그 좁은 수로에 몰렸을 때 밖에 있는 조선군이 화포를 집중사격하면 피할 도리가 없습니다. 육전이라면 시체를 밟고 돌격할 수라도 있으나, 수로가 막히면 꼼짝도 할 수 없습니다.”
“북쪽 아카시 해협을 통해 함대 일부를 이와지시마 서쪽으로 우회시켜 양면 공격을 하면?”
히데요시는 지금 상황을 차분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서쪽에서도 조선군이 몰려오고 있다. 그것도 이순신이 지휘하는 본대다. 적 별동대 따위에 붙들려 있을 여유가 없는 것이다.
“서쪽으로 도는 데 하루면 충분하다. 함대 절반은 기탄 해협에서 적을 막고, 나머지 절반은 우회해서 적을 배후에서 공격하면 어떠냐?”
구키 요시타카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아와지시마와 시코쿠 사이에 있는 나루토 해협은 기탄 해협보다 더 좁습니다. 천하제일의 급류가 흐르고 있어서 숙련된 수부가 아니면 통과할 수조차 없습니다. 그 길로 적에게 위협이 될 만한 숫자의 배를 보내기는 어렵습니다.”
게다가 나루토 해협의 물길에 익숙한 시코쿠 수부들은 전부 사누키에 있는 도쿠이 미치토시 휘하 구루지마 수군에 들어가 있다. 오사카에 집결해 있는 구키 수군에는 그 급류를 통과한 경험이 있는 인원이 거의 없었다.
“구키 님! 그럼 전선 800척을 우리 스스로 오사카만 안에 가둬놓고 이순신이 눈앞에 오기를 기다려야 한단 말이오?”
격한 항의가 사방에서 들어왔다. 하지만 구키 요시타카는 히데요시 외에 다른 이들이 하는 질문에는 입도 벙끗하지 않았다. 주위의 압력에서 초연한, 아니 거만해 보이기까지 한 태도로 오직 히데요시 쪽만 주시하고 있었다.
“주군.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구루지마 수군에 연락할 길까지 끊긴 건 아니니, 일단 상황을 알려 대비케 하고 저쪽이 가진 힘으로만 이순신에 맞서게 하십시오.”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구로다 요시타카가 끼어들었다. 지금 상황을 일단 유지하자는, 구키 요시타카의 의견에 동조하는 측이었다.
“구루지마 군은 지금 500척을 보유하고 있다. 적이 오사카만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저기서 봉쇄 상태를 유지한다면, 도쿠가와가 보내온 300척을 여기에 두는 대신 구루지마 군에 보내서 합류하게 하면 어떻겠나?”
이에야스는 병력은 보내지 않았어도 배는 보내왔다. 몇 년 전부터 준비해서 잘 마른 목재로 건조했다는 튼튼한 배들이 5월 중에 도착했다.
다만 이에야스가 보낸 배들은 전선이 아니라 수송선이었다. 그래서 병사 없이 수부만 탔고, 방패판도 세워놓지 않았다. 그래서 급히 무장을 갖추고 승선할 병력을 준비하는 동안에 그만 모리 수군이 무너져버렸다.
“우리 병력이 줄어들었음을 알면 적이 밀고 들어와서 오사카를 직접 공격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위험을 무릅쓸 수는 없습니다.”
무서워하고 있기는 하지만, 지금 오사카 주민들은 이케다 군이 조선 함대를 저지하고 기탄 해협을 지켰다고 생각하고 있다. 만약 조선 남만선들이 방어선을 뚫고 들어와서 시내를 포격, 화재라도 일으킨다면 그나마 유지되던 질서도 사라지고 대혼란이 일어날 게 분명하다.
“적이 그럴 의사만 있다면, 매일 키탄 해협을 돌파할 것처럼 행동하면서 우리 전선을 포문 앞으로 끌어내고, 포화를 퍼부어 우리 전선을 소모하는 일을 반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로서는 전선 1척이라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원군 파견은 불가합니다.”
구키 요시타카 역시 구로다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휘하에 둔 가장 뛰어난 수군 장수와 가장 특출난 참모가 입을 모아 반대하니, 히데요시로서도 처음 요구를 계속 밀고 나갈 수는 없었다.
“알겠다…그럼 도쿠이 미치토시에게는 따로 사자를 보내 증원군을 보낼 수 없게 된 사정을 설명하고, 오사카에서는 이미 도착한 적을 막아낼 수 있는 준비를 전력으로 시행하라. 아카시 해협에 설치했던 포대와 화공선을 급히 키탄 해협 쪽으로 옮기고, 해협 폐쇄를 준비하라.”
“알겠습니다, 주군.”
조선군이 쳐들어오자, 히데요시는 최악의 경우가 닥쳤을 때 키탄 해협을 봉쇄할 수 있도록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준비를 맡은 구로다 요시타카는 키탄 해협에 가라앉혀 수로를 막을 돌 실은 배를 준비하고, 양쪽 기슭을 이어 배가 지나지 못하게 할 굵은 쇠사슬을 마련했다.
“태풍이 올 때까지 버티면 적은 규슈로 물러날 거다. 그러면 위기를 넘길 수 있으니, 다들 힘을 내서 견뎌라!”
신하들이 일제히 머리를 숙였다. 이제 적이 점점 오사카로 다가오고 있으니 모두 단결해서 맞서야 했다. 그래야 이 고난을 버티고 적을 몰아낼 수 있었다.
“태합 전하의 패기가 점점 희미해져 가는구나.”
이에야스에게 보낼 편지를 쓰던 차야 시로지로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고작 조선군을 규슈로 밀어내는 정도를 목표로 삼다니? 아무리 지금 상황이 어렵다지만, 이게 천하인이 내세울 만한 지향점인가.”
전선이 모자란다는 이유로 사카이 상인들이 보유한 상선까지 징발해서 군선으로 동원하라고 명령한 사람이 히데요시다. 그렇게 승리를, 항전을 주창하던 사람이 태풍을 기다리다니? 실현 가능성이야 차치하고라도, 신하들 앞에서 할 말이 아니다.
오늘 히데요시는 ‘규슈를 수복하고 적군을 현해탄 너머로 몰아내겠다!’라고 천명해야 했다. 규슈는 빼앗겼어도 혼슈와 시코쿠는 아직 장악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두 땅에 있는 수십만 병력이 아직 남지 않았는가?
물론 히데요시는 지금 시코쿠의 상황이 어찌 되었는지 모르고 있으리라. 혼슈에서도 동쪽 절반이 이미 자기 손을 떠났음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연이은 패배가 어떤 여파를 불러올지는 그 자신도 알고 있을 게 분명하다. 영리한 사람이니까.
“어쩌면, 인질 다수가 저번 화재로 사망해서 영주들에 대한 통제력이 떨어졌기 때문일 수도 있겠군. 그래서 조선 국왕에게 규슈를 내주고서라도 협상할 각오를 하고 계시는지도 모르지. 오늘 했다는 말은 그 내심이 드러난 것이고.”
하늘에서 천황폐하께 내려준 영토를 히데요시가 임의로 양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조선왕을 잠시 달랬다가 절치부심하여 되찾을 작정일 공산이 크다.
다만 차야는 이 부분에 대한 자신의 견해는 더 써넣지 않기로 했다. 명확한 사실만 적어서 보내면 판단은 이에야스가 할 것이다.
다 쓴 편지를 봉인한 차야는 사자를 불러들여 봉투를 건넸다. 사자는 이에야스 휘하에 있는 핫토리 마사나리의 닌자 부대 소속 이가 닌자, 오사카 외곽을 봉쇄하기 시작한 도요토미 군의 통제를 피해서 에도로 가는 것 정도는 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