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671
2부 449화
– 17 –
조선 수군이 나타나자 이 섬에 있던 왜적들은 모두 산으로 도망쳤다. 이제까지 점거한 여러 섬에서 그랬듯, 여기서도 놈들은 산에 숨어서 도적질이나 할 계획인 듯했다.
“생각 같아서야 마지막 한 놈까지 직접 잡아 죽이고 싶지만….”
임꺽정이 투덜거렸다. 오늘은 6월 14일, 이순신이 모리 수군을 대파한 지 벌써 이레다. 그 뒤로 조선 수군은 딱히 제대로 된 싸움은 치르지 않고 순조롭게 전진을 계속하고 있었다.
모리 수군과의 결전에서 한몫했다면 그래도 아쉬움이 덜했으리라. 하지만 늦게 도착한 덕에 히로시마만을 가득 채운 불타는 장작더미들만 보았을 뿐이다.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나리. 하나하나 찾아서 죽이다 보면 싸움이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옆에서 칼을 닦고 있던 서아지가 헤벌쭉 웃었다. 경인년에 대마도에서 나카가와 히데마사를 베었고, 그 뒤로도 임꺽정 밑에서 꾸준히 활약한 든든한 부하다.
“이번이 6번째 섬인가? 빨리 가야 하는 사정 때문에 왜적을 느긋하게 소탕할 수 없는 거야 나도 아네만, 두고두고 귀찮아질 게 싫군.”
뒤늦게 도착한 임꺽정을 비롯한 등선군은 이순신의 지시를 받아서 창교도(구라하시시마)를 제압했다. 그리고 일부 병력은 광도(히로시마) 앞에 있는 강전도(에타지마)에 상륙해서 왜군이 만든 포대를 완전히 파괴하고 전리품을 수거했다. 주로 화포, 왜검 따위였다.
“우리 수군의 위용이 워낙 대단하니, 산속에 틀어박힌 왜적들도 그저 떨고만 있을 겁니다. 별다른 골칫거리가 되기나 하겠습니까?”
모리 씨조차 수전에서 패하고 판옥선들이 히로시마 시가지에 신기전 세례를 퍼붓자 꼼짝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이순신은 해변에 표착한 왜선들을 불태운 뒤, 모리 군이 본토 해안에다 세운 포대를 거북선으로 파괴했다. 그리고 신기전 수천 발을 히로시마 고을에 퍼부었다.
불바다가 된 마을에서 왜인 남녀노소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절규하는 모습은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이순신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가서 히로시마 성을 직접 공격하지는 않았다. 결심만 하면 얼마든지 해치울 수 있지만, 하루빨리 동쪽으로 진격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창교도에 전선 8척과 병사 1천을 남겨 근거지로 삼고 남은 병력은 계속 동쪽으로 진군하게 했다. 그 뒤로 마주친 10여 개 섬에서도 큰 전투는 없었다. 조선 수군은 눈에 띄는 왜선은 쪽배까지 샅샅이 찾아 파괴하고 바닷가에 있는 마을도 모두 불태웠다.
“육지에서랑은 경우가 다르지, 암.”
“바닷가에 사는 왜인들은 죄다 왜구 패거리니까요.”
육지인 구주 내륙에서는 저항하지 않는 마을은 소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바닷가에서 마을을 만들거나 배 위에서 살아가는 해민(海民)의 무리는 저항의 여부와 상관없이 가차 없는 토벌 대상이 되었다.
“그놈들은 해민(海民)이 아니라 해민(害民)일세. 틈만 나면 배를 타고 다니면서 도적질하는 간악한 놈들이니, 싹 쓸어 없애는 게 왜국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지.”
해민(海民)이라고 하면 바다를 터전으로 삼아 사는 이들을 통틀어 부르는 호칭이다. 이제는 사라졌지만, 조선에서도 과거에는 관의 통제를 받지 않고 섬 사이를 돌아다니는 해민이 제법 많이 있었다. 고기를 잡고 농사를 지을 뿐 아니라, 잠상(潛商, 밀무역)과 도적질까지 겸업했다.
2백여 년에 걸친 계도 노력 끝에 조선에서는 바다를 떠도는 유랑민으로서의 해민은 사실상 사라졌다. 하지만 일본에는 아직 수많은 해민이 남아서 새로운 왜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 해민들이 가장 많이 모인 지역이 바로 여기, 세토우치였다.
“모두 내려라! 섬에 있는 왜적을 찾아라!”
그동안 거친 섬들은 바닷가만 뒤지고 지나쳤다. 하지만 이번에 도착한 대도(大島, 오시마)는 창교도에서 그랬듯이 군사들을 상륙시켜 산중에 있는 왜적들도 소탕하라는 명이 떨어졌다. 이 섬에도 전선과 군사를 남겨 중계점을 구축한다는 지시였다.
“섬에 있는 왜놈들이 우리 치중에 불이라도 지르면 곤란하겠지.”
“경인년에 우리가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도왜병을 포함하는 등선군은 지난 왜란에서 왜군의 치중을 습격하여 막대한 손해를 입혔다. 왜군이 견디지 못하고 철수한 이유 중 하나가 이들의 활약에 따른 식량 부족이었다.
여기 대도에서부터 동쪽으로 하룻길은 별다른 방해물이 없지만, 그 뒤에는 사국과 본주가 가장 가까워지는 좁은 물목이 나온다고 했다. 임꺽정이 그동안 수군에 있으면서 배운 풍월에 따르자면, 왜 수군이 거기서 진을 치고 있을 공산이 컸다.
“자, 가세나! 여기서 몸 한번 풀고 가야지. 이번에야말로 대공을 좀 세워 봐야겠으니.”
임꺽정은 한껏 기세가 오른 서아지와 도왜병들을 끌고 배에서 뛰어내렸다. 언제든 이순신을 찾아가 부탁하기만 하면 호위장 자리에 돌아갈 수 있지만, 그럴 생각은 없었다. 이번 생에서 치를 마지막 전쟁, 후회 없이 한껏 칼을 휘두르고 돌아가리라.
“야스케 같은 상대가 또 있으면 좋겠구먼.”
– 18 –
다카마쓰 성 아래에 있는 마을과 항구는 어수선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해변에는 수백 척이나 되는 배가 정박하고, 저녁나절인데도 병사와 인부들이 물자를 싣고 있었다. 코앞으로 다가온 해전을 준비하는 움직임이 확연했다.
다만 정박한 전선 중 상당수는 다카마쓰 영주인 이코마 치카마사(生駒親正)의 깃발이 아닌 다른 영주를 상징하는 문장을 내걸고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돋보인 깃발이 도쿠이 미치유키, 구루지마 해적의 문장이었다.
“조선군은 오늘 아침 오시마(大島)를 공격하기 시작했소. 곧 여기까지 올 게 분명하며, 우리 구루지마 수군은 이에 맞설 준비가 되어 있소.”
도쿠이 미치유키는 씁쓰레한 얼굴로 휘하 무장들을 독려했다. 해적 가문을 벗어나려고 성을 바꾸고 가문에서 벗어났건만, 히데요시의 명령으로 다시 되돌아왔다. 그리고 바라지도 않았던 수군 대장이라는 직책을 얻었다. 하지만 일단 받은 임무에는 최선을 다해야 했다.
지금 미치유키 휘하에 있는 함선은 구루지마 가문의 잔존 전력 외에 가토 요시아키, 이코마 치카마사, 하치스카 이에마사 등 여러 영주가 내놓은 배들의 연합군이다. 요시아키 군과 함께 도망쳐 왔던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자기 영지인 아와지시마까지 가버렸다.
“원군…은 없는 겁니까?”
“없소이다. 지금 가진 전선만으로 싸워야 하오.”
이쪽으로 오고 있는 조선 수군 전선은 80척 정도 되었다. 도중의 여러 섬에 일부러 배치해 둔 병사들을 소탕하면서 오는 중이다.
본래 예정대로 구키 요시타카가 300척을 보내주었다면 이쪽 규모는 800척, 정확히 10배가 된다. 아무리 조선 수군이라고 해도 10배가 되는 병력으로 사방에서 공격하면 승산이 있었다.
하지만 조선구 무리가 나타나는 바람에 구키 휘하 함대는 모조리 오사카 방어에 붙들렸다. 미치유키 휘하에 모인 배만 가지고 싸워야 하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수전을 치를 상황이 아니오. 남쪽에서….”
맨 윗자리에 앉은 이코마 치카마사가 불안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창끝을 돌린 시마즈 군과 초소카베 군이 북쪽으로 올라오는 중이잖소! 가토 요시아키 공의 영지 전역이 이미 시마즈 군에게 함락됐고, 도쿠이 미치유키 공 귀공의 영지도 거의 그자들의 손에 들어갔소. 하치스카 이에마사 공이 떠난 것도 그 때문이오.”
하치스카 이에마사는 히데요시의 절친한 친구인 하치스카 마사카즈의 아들이다. 초소카베를 견제하기 위해 시코쿠 북부에 히데요시가 봉한 여러 영주 중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석고에 비해 과도한 규모인 150척이나 되는 배를 준비해서 나타난 것도 그의 충성심을 보여주었다.
문제는 하치스카의 영지 아와가 수륙 양면으로 적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육지 쪽에서는 초소카베군이 위협을 가해왔고, 바다 쪽에서는 문제의 조선 남만선들이 나타났다. 그 연락을 받은 하치스카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병력 대부분을 이끌고 발길을 돌렸다.
‘귀공들에게는 미안하나, 영주가 된 몸으로서 일단 영지를 지켜야겠소.’
전선 30척과 그에 딸린 병사들은 남겨두고 간다고 했지만 사실상 적전에서 도주한 셈이다. 또한, 가서 영지를 지켜야겠다는 변명은 영지를 적에게 빼앗기고 도망쳐온 가토 요시아키나, 작정하고 병사와 군선만 끌고 온 도쿠이 미치유키의 얼굴에 먹칠하는 말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치스카 공은 그렇게 겸연쩍게 떠나 놓고 나루토 해협 앞에서 길이 막혀 꼼짝도 못 하고 있다지요?”
조선 수군의 공격을 받으면서 120척이나 되는 배들이 한꺼번에 나루토 해협을 통과할 수는 없다. 나루토 해협 옆에 있는 시마다 섬, 오게 섬과 시코쿠 본토 사이에 있는 좁은 수로 역시 마찬가지다. 배 몇 척만 가라앉으면 그대로 뱃길이 막힌다.
“아니, 거기 머물러 있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나루토 해협 이서에 있는 아와 땅에 상륙해서 도보로 도쿠시마 성으로 갔다고 들었습니다.”
도쿠시마 성(?島城)은 히데요시에게 아와 18만 석을 받은 하치스카 이에마사가 직접 세운 거성(居城)이다. 나루토 해협 북쪽에서 하선해도 하루만 걸어가면 도착할 수 있고, 오사카만을 위협하는 남만선들이 방향만 돌리면 바로 공격할 수 있을 만큼 바다에서도 가깝다.
“도쿠이 공, 나도 솔직히 불안하오. 이미 내 영지 서쪽 끝, 귀공의 영지와 맞닿아 있는 쪽에 시마즈 군이 나타나고 있소. 귀공이 영지를 지키면서 내 지원군을 기다렸다면 분명 적은 아직 한참 남쪽에 있었을 거요.”
배반자들은 역할을 나눴다. 시마즈 군은 토다 카츠타카의 영지와 가토 요시아키의 영지를 차례로 무너뜨리면서 동진했다. 초소카베군은 모든 영주의 영지를 남쪽에서 공격했다. 양군은 도쿠이 령에서 합류, 함께 이코마 령으로 진입하려는 참이었다.
“영지를 지키는 게 중요한 게 아니오. 조선군만 격파하고 나면 영지는 태합 전하께서 다시 찾아 주실 거요. 하지만 배반자들을 상대로 싸워 영지를 지킨다 해도, 오사카가 불타고 태합 전하께서 패망하신다면 모두 끝장이오.”
도쿠이 미치유키는 수전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리고 밀려오는 적군을 피해서 모든 병사와 전선을 데리고 이코마 령으로 이동했다. 고정된 근거지에 얽매이지 않는 것, 이것은 구루지마 류(流) 군학의 기본이었다. 해적의 진정한 근거지는 배와 사람이지, 성과 영지가 아니다.
이미 수전에 패한 데다 시마즈, 초소카베 양군에게 양면 공격을 당한 가토 요시아키는 쉽게 미치유키를 따라왔다. 하지만 하치스카 이에마사는 시코쿠에 있는 히데요시 지지세력 중 가장 세력이 강한 자신이 도쿠이 미치유키 밑이라는 데 시종 고까운 태도를 보였고, 결국 떠났다.
“그럼 수전에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거요? 지금 상황이 그게 아니잖소.”
이코마 치카마사도 전장에서 뼈가 굵은 노장이다. 게다가 그는 오다 가문과 혈연으로 얽힌 명문 일족이기도 하다. 노부나가는 치카마사의 고종사촌이고, 노부나가의 첫째?둘째 아들인 노부타다와 노부카츠를 낳은 측실 기츠노(吉乃)가 치카마사의 친동생이다.
노부나가 사후에는 히데요시 휘하로 들어갔지만 대접은 후하게 받았다. 그래서 사누키 17만 석을 받고 초소카베 모토치카를 견제하는 역할도 맡은 것이다. 당연히 발언권도 강했다.
“영지를 모두 적에게 내주면, 우리 병사들이 어떻게 용기를 가지고 싸우겠소? 구루지마 군 병사들이야 본래 해적이니 육지에 있는 영지 따위 잠시 비우고 떠날 수 있는지 모르겠으나, 우리 병사들은 영지를 적에게 내주는 모습을 보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요.”
병사들, 그리고 하급 무사들은 영주가 영지를 지켜 주기 때문에 세금을 내고 병역을 진다. 적군의 침략과 약탈에서 영지와 영민을 지키지 못하는 무능한 영주는 부하들의 충성도 기대할 수 없었다.
“차라리 조선군이 지나가도록 내버려 둡시다. 그리고 적이 지나가면 숨겨두었던 배를 끌고 나가 적의 보급로를 끊는 게 어떻소? 예기가 올라 있는 적군과 정면으로 격돌할 필요도 없고, 실질적인 타격은 더 크게 줄 수 있소. 덴쇼 18년의 고난을 저들에게도 겪게 해주는 거요.”
치카마사가 열변을 토했다. 영지도 다 뺏긴 데다 거느린 병력도 적은 가토 요시아키는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있었고, 도쿠이 미치토시가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그리고 귀공의 병사들은 남쪽에서 오는 적에 맞서서 영지를 지키는데 전력을 다할 수 있고 말이지요?”
“그렇소. 그게 뭐 나쁜 일도 아니잖소.”
“그렇게 한다 칩시다. 귀공의 제안대로 하자면 우리 전선을 전부 분산시켜 이 일대의 섬과 해안에 숨겨야 하오. 만약 이순신이 세토우치를 일직선으로 가로질러서 오사카로 가지 않고, 모든 해안을 샅샅이 뒤져 우리가 은닉한 전선을 불태우고 간다면 어쩌시겠소?”
이미 이순신은 히로시마에서부터 그렇게 전진해오고 있다. 그 보고를 받은 미치유키로서는 함대를 숨겼다가 뒷날을 노린다는 계획이 허무맹랑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세토우치의 복잡한 지형을 이용해서 매복했다가 결전을 벌이는 수밖에 없소. 태합 전하께 임명받은 수군 총대장으로서 명령하니, 군령에 따르시오.”
“…알겠소이다.”
군의는 끝을 맺었다. 구루지마 군을 비롯한 여러 영주들의 연합군 380척으로 쇄도하는 조선 수군 80여 척과 싸우기로. 그때까지 남쪽에서 초소카베 군이 오지 않기만 바랄 뿐이었다.
– 19 –
세키부네 한 척이 히로시마 동쪽, 아키국 동부의 어느 이름 없는 포구에 조용히 들어갔다. 말 세 필과 눈에 띄지 않는 복장을 한 사람 셋이 함께 내렸다. 이곳 역시 조선군이 휩쓸고 간 지역인 데다 이제 어스름이 막 깔리는 참이라, 주변에서 이들을 목격한 사람은 없을 터였다.
“그럼, 나리께 신불의 가호가 있기를.”
“고맙소.”
짧은 인사 뒤에 뱃사람들은 배를 뒤로 물리더니 뱃머리를 돌렸다. 소리 없이 미끄러진 배는 곧 어둠 속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출발지인 구라하시 섬으로 돌아간 것이다.
“주군, 어서 말에 오르시지요.”
“알겠다.”
잠시 한숨을 쉰 후루타 시게나리가 말에 올랐다. 이런 식으로 일본에 돌아오게 되리라고는, 5년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후루타 공, 우리 상감께서 지난 5년 동안 그대를 후대하셨음은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오.”
“물론입니다, 체찰사 대감.”
5년 동안 조선에서 지냈으니, 조선말은 충분히 익혔다. 눈앞에 있는 체찰사 이항복이 지금 무슨 의도를 품고 있는지 알아채기에는 충분했다.
“5년 동안 대접받은 밥값을 하라는 말씀이시겠지요?”
“그렇소. 눈치가 빠르시구먼.”
이항복은 처음에 상감께서 이 후루타라는 왜인을 특별히 우대하시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타치바나 무네시게처럼 뛰어난 용장도 아니고, 엄청난 영지를 가진 대영주도 아니었다. 헌데 무슨 가치가 있어서 저리 좋은 대우를 해주시는 것일까?
헌데 시간이 좀 지나고 왜국 내의 정보를 입수하고 보니 이 후루타라는 왜장이 보통 왜인이 아니었다. 왜장들이 매우 중시하는 예법인 다도(茶道)로 명성을 떨쳤고, 친분이 깊은 왜장들도 무척 많았다. 임금께서 우대하신 이유가 여기 있었구나 싶어 절로 무릎을 탁 치게 되었다.
“그 정도로 눈치가 빠르니 구체적으로 지시를 내릴 필요도 없겠구려. 귀공이 데리고 있던 하인 두 사람과 함께 오사카에 잠입해서 편을 바꾸고 싶은 사람을 모으시오. 말은 내줄 거고, 이 은자면 필요한 비용을 충당할 수 있을 거요.”
“알겠습니다.”
“어서 출발하시지요, 주군.”
후루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 옆구리를 뒤꿈치로 살짝 찼다. 이들 두 사람은 일본에서부터 거느리던 시종들이지만, 조선에서 지내는 동안 알게 모르게 조금 태도가 변한 눈치가 보였다. 분명히 둘 중에서 하나, 어쩌면 두 명 모두 이항복에게 포섭된 끄나풀일 것이다.
이들의 임무에는 자신을 시중드는 것만이 아니라 감시하는 것도 있으리라. 만약에 지시받은 대로 움직이는 대신에 다른 꿍꿍이를 부리면 분명히 제거될 것이다.
아니, 쓸데없는 걱정이다. 다른 꿍꿍이를 부릴 생각은 없었다. 조선 국왕에게 충성심이 생긴 때문은 아니다. 오로지 히데요시의 과욕 탓에 일본 전체가 잿더미가 되는 결과만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을 뿐이었다.
“자, 가자!”
이번에는 한껏 힘을 주어 말 옆구리를 걷어찼다. 북방인들이 아직 이 지역까지 오지 않았다 하니, 자칫 위험해질 요소 하나는 줄었다. 도중에 만날 모리 군 병사들을 피해 가는 재주는 그 자신에게 달렸으니 최대한 노력할 뿐이다.
과연 5년 만에 방문하는 오사카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