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679
2부 45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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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로도(아와지시마) 제압에는 이틀이 걸렸다. 신기전을 뒤집어쓰고 불바다가 된 슈치 성은 결국 그날 저녁에 성문을 열었고, 스모토 성은 하루 더 버티고 항복했다. 김응서가 지휘하는 1군은 그 외에도 6곳에 있는 작은 성에서 항복을 받았다.
“2군은 성채 3개를 함락했고, 3군은 북쪽 수로에 있는 포대 전부를 손에 넣었습니다. 다만 악독한 왜놈들이 자폭해 버리는 바람에 포대와 화포, 화약을 우리가 쓸 수는 없다 합니다.”
“고얀 놈들 같으니.”
도적놈들 주제에 감히 열사 흉내를 내다니, 괘씸한 놈들이다. 왜놈들은 그저 무기와 갑옷을 팽개치고 도망치기만 하면 되는 것을! 자기가 옛 충신이라도 되는 듯이 자폭을 하다니?
“보고를 계속해 보게.”
“예, 도원수 대감. 현재 삼군이 함락한 성채가 총 11개소, 아직 항복하지 않아 군사를 풀어 포위하고 있는 성채가 4개소이옵니다. 쏘아죽인 왜적은 약 2천 여이옵고, 포로도 대략 2천을 잡았습니다. 해안에 묶어둔 왜선 42척을 나포하였고, 노획한 병기는 아직 세는 중입니다,”
저항은 거의 끝났다. 살아남은 왜병들은 갑옷을 벗어 던지고 흩어져서 산속에 숨어 있거나, 산재한 몇몇 성채에서 버티고 있다. 하지만 그 저항은 희망이 없었다. 아무리 놈들이 질기게 버텨 봐야, 구해주러 올 원군이 없으니까.
정걸, 이억기, 이운룡 등이 이끄는 함대도 모두 스모토 성 아래로 집결했다. 섬 북쪽을 그냥 비워두면 그쪽에서 배를 타고 육지로 도주하는 왜인들이 있으리라 예상하긴 했지만, 그런 걸 막겠다고 함대를 분산시켰다가는 혹시라도 왜 수군에게 기습당할 우려가 있었다.
“주본성(스모토 성)에서 잡은 포로들이 진술하기를, 대판에 남은 적선은 그 수효가 아직 7백 척은 된다고 합니다. 우리 수군을 분산했다가 적이 건너와 기습하면 위험합니다.”
“허나 경계가 허술하면 적이 군사를 싣고 건너와 섬에 뿌려놓을 공산이 있습니다.”
기껏 소탕한 섬에 계속 적이 병력을 투입한다면, 아와지시마는 오사카 공략을 위한 조선군 후방기지로서 운용할 수 없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이순신은 간단한 해결책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
“비승군을 쓰면 되지 않소. 섬 북쪽에 열기구를 띄워 적이 바다를 건너오는지 감시케 하고, 적을 발견하면 신기전으로 알리게 하시오.”
“아, 알겠습니다. 대감.”
열기구가 망가지면 여기에서는 수리가 어렵다. 그래서 일본에 건너온 뒤로 비승군은 아직 한 번도 하늘을 날지 않았다. 수길과 결전을 벌일 때까지 아꼈다가 그때 쓰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순신은 그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어떤 장비든 바로 사용했다. 배에 싣고 온 열기구가 지금 필요하다면 지금 쓰는 것이다.
“사흘 동안은 여기 계속 머무르면서, 군사들을 준비시키고 적세를 살펴 수전을 준비하겠소. 이번에 치르는 싸움이 이번 원정에서 마지막 수전이 될 듯하니, 모두가 준비를 철저히 하라고 이르시오.”
“예, 도원수 대감.”
계속 잡혀 들어온 포로들은 일본 수군에 여태 남은 전력 규모에 대한 소중한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다. 정발이 수전에서 계속 잡아 올린 포로 외에 이억기가 붙잡은 포로들도 있었고, 이 왜병들은 살기 위해서 심문관이 묻지 않은 정보까지 떠들어댔다.
“지금 왜 수군 총대장은 경인년에 부산에 진을 치고 버티던 구귀가륭(구키 요시타카)이라고 합니다. 드디어 놈을 잡아 처단할 기회가 왔습니다.”
이순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경인년 싸움에서 구키는 참으로 질기게도 동래를 사수했었다. 정말 독한 왜놈이었지만, 그것도 이제는 끝이다. 이번 싸움이 끝나면 다시는 수군을 거느리고 조선을 괴롭히지는 못하리라.
몇 가지 사안을 더 확인한 이순신이 지시를 내렸다.
“협판안치를 불러오라. 한번 만나봐야겠다.”
초췌한 얼굴이 된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끌려와 이순신 앞에 무릎을 꿇었다. 포로 신분이니 당연히 칼은 차지 않았다. 갑옷도 벗었고, 머리에도 관을 쓰지 않은 맨머리였다. 두 팔은 뒤로 돌려서 결박해 놓았다.
신원을 확인하는 몇 가지 문답이 통역을 거쳐 오갔다. 기운 없이 대답하는 와키자카를 잠시 주시하던 이순신이 다소 갑작스러운 질문을 던졌다.
“왜 도주하지 않고 투항했느냐?”
와키자카가 마음만 먹었다면 아직 잡히지 않을 수 있었다. 스모토 성 앞에 족친위가 나타난 모습을 보고 바로 도망쳤다면 지금도 산속 어딘가에 있었으리라. 만약 배를 타고 오사카까지 가려고 했다면 바다에서 정발에게 잡혔겠지만 말이다.
“공에게 쫓겨 다니는 데 지쳤소이다.”
만사 체념한 듯한 목소리였다.
“잊을 수 없는 덴쇼 18년 5월 6일…그날 이후 이 공과 몇 번이나 싸웠지만, 매번 패했소. 심지어 후방이라고 생각하고 안심하던 쓰시마에서도 습격당해, 함께 있던 나카가와 히데마사 공이 전사할 정도였소. 하지만 또 도망쳐서 살아남았소.”
한탄 밤, 푸념 반을 섞은 고백이 이어졌다. 매번 싸움에 함께 나간 다른 장수들은 다치거나 죽어 돌아오지 못하는데, 와키자카만 사지 멀쩡히 돌아온다는 이유로 재앙신 취급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덧붙었다.
“태합 전하께는 깊이 감사하고 있소. 연이은 실패 때문에 노부나가 공에게 추방당한 본인을 다시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히젠에 2만 석을 내렸다가 다시 아와지 3만 석을 내리며 우대해 주셨으니까. 하지만 귀공과 계속 싸워야 하는 데서 오는 두려움을 더 이길 수가 없소.”
와키자카는 이억기 함대를 기습하려다 패한 후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비록 이순신에게는 졌어도 다른 장수는 이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패배했기에 그 충격이 더 컸다.
그래서 시코쿠에서 부상을 당했다는 핑계를 대며 구루지마 군에 합류하라는 명령도 따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와지시마를 지키기 위해서 뭔가 제대로 방어 준비를 하지도 못했다.
구루지마 군이 궤멸당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비로소 화들짝 놀라 원병을 청했으나 코앞에 있는 오사카에서는 원병이 오지 않았다. 다급해진 와키자카는 아직 섬에 남아있는 남자들을 나이대 불문하고 몽땅 소집하고, 창고 안에 있는 창과 갑옷을 닥닥 긁어모아 지급했다.
이렇게 모은 병력은 수도 모자랐을뿐더러 당연히 질도 형편없었다. 그러나 와키자카로서는 이런 병력이라도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는 역시나 예상대로였지만 말이다.
“산으로 들어가 섬 남쪽으로 가려면 갈 수 있었지만…육지로 도망갈 수도 없는데 산속에서 헤매며 고생해 봐야 무엇하나 싶었소. 계속 공에게 쫓기면서.”
와키자카의 길고 긴 푸념이 드디어 다 끝났다. 조용히 듣고 있던 이순신이 고개를 돌리더니 간단하게 명령했다.
“박다(하카타)로 돌아가는 배편에 저놈을 압송하여 다른 왜장들과 함께 가두어 두어라.”
“예, 대감.”
와키자카는 체념한 듯 아무 말 없이 두 팔을 잡혀 끌려나갔다. 잠시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이순신이 옆에 있는 이시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참모장. 자네는 왜 전하께서 협판안치를 잡으면 미역과 더덕만 먹이라고 하셨는지, 연유를 혹시 아는가?”
“저도 모르겠습니다, 대감.”
이건 안토니오가 내려올 때 가져온 전언이다. 정식 교서를 통해 내려온 지시는 아니지만, 어명임은 틀림없었다. 도무지 그 배경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고개를 저은 이시언이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덧붙였다.
“왜장이 더덕을 생으로 먹자면 싱거울 것이니, 남만초장을 듬뿍 발라주면 어떨지요. 그러면 저놈도 전하의 은혜에 감동하여 흐르는 눈물을 감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 귀한 것을?”
그 매운맛이 시중에서 인기를 끄는 바람에 남만초 재배가 요 몇 년 사이 많이 늘었다. 허나 남만초장은 남만초 열매를 잘 닦아 말리고 가루를 내어 된장과 섞어야 하는 귀찮은 공정 덕에 아직 공급이 많지 않다.
“더덕을 잘 두드려 으깬 뒤 남만초장을 발라서 간이 충분히 배게 한 후 불에다 구워서 주면 아주 좋을 겁니다. 장을 닦아내지도 못하고 그대로 먹어야 할 테니까요. 놈이 먹는 장이 조금 아깝긴 하지만, 협판안치 하나가 먹어봐야 뭐 얼마나 먹겠습니까?”
일본 현지에서 획득하는 군량이 많은 만큼 본국에서 실어와야 하는 운송 부담은 줄어든다. 조선 원정군은 필요한 군량에서 거의 절반 가까운 분량을 약탈과 하카타 상인들의 제공으로 조달하고 있었다. 손자병법에서 말하듯이, ‘적의 곡식 1섬은 우리의 20섬에 상당’하는 것이다.
덕분에 본국에서는 양곡과 건포 외에 기호품을 수송할 여유가 생겼다. 남만초분(고춧가루), 남만초장(고추장), 후추, 순대(소시지), 건락(치즈), 납육(햄) 같은 것 말이다. 그중에 군사들이 특히 환영한 별식으로는 강정이 있었다.
콩, 땅콩, 깨 따위를 볶아서 물엿으로 굳힌 강정은 상감께서 내탕금을 털어 보내주신 비싼 하사품으로, 일부 양반 출신을 제외하면 군사들이 평소에는 꿈에서나 볼 물건이었다. 단맛을 싫어하는 이는 없는 법이고, 당연히 선풍적인 인기를 끌 수밖에 없다.
다만 강정은 본래 비상식량으로, 식사를 거르고 행군한다든가 할 때 건포와 함께 먹으라고 나온 물건이었다. 그래서 돌처럼 단단한 나머지 조총으로 쏘아도 뚫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궁하면 뭐든지 통하는 법, 군사들은 이 돌덩어리 같은 물건을 밥 짓는 김에 쏘여서 부드럽게 만들어 신나게 즐겼다. 결국, 군사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주상께서 추가로 강정을 보내주셨다.
“그 일은 참모장이 알아서 박다에 서한을 보내 조치하게. 본관은 그놈이 무엇을 먹든 그닥 관심이 없으니.”
“예, 대감.”
이순신은 오사카 일대를 그린 지도를 펼쳐 놓고 경리 양호를 비롯하여 휘하에 거느린 참모, 장수들과 함께 회의에 들어갔다. 싸움을 성공적으로 이끌자면 계획을 다듬고 또 다듬어야만 했다.
– 13 –
조선군이 운용하는 거대한 남만선들이 드디어 오사카 앞바다에 나타났다. 아직 대포가 닿을 만한 거리까지 조선구가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오사카 시내를 혼돈에 빠트리기에는 그 배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나가게 해주시오! 왜 길을 막는 거요?”
오사카를 벗어나는 모든 도로는 무장한 병사들이 막아섰다. 피난민들은 적군에게 죽고 싶지 않으니까 어서 길을 열어 지나가게 해달라고 호소했지만, 다른 지방 출신 병사들은 이들에게 전혀 동정심을 보여주지 않았다. 창을 들이대고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태합 전하의 명령이다. 누구도 오사카를 떠날 수 없다. 모두 돌아가라.”
곧 오사카를 덮칠 전화로부터 몸을 피하고 싶은 남녀노소의 애끓는 호소가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길을 막은 병사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전하, 오사카 백성들을 내보내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가토를 비롯한 몇몇 장수들은 주민들을 붙잡아 둔다는 히데요시의 결정에 이의를 표했다.
“곧 조선군이 공격해올 텐데, 주민들이 그대로 남아있으면 싸움에 방해만 됩니다. 어디든 좋으니 모조리 오사카를 떠나라고 하십시오.”
“아니, 절대로 안 됩니다. 지금 오사카를 비운다면, 전하께서 조선왕에게 패하셔서 더 이상 천하인으로서의 지위를 누릴 수 없게 되었다고 천하에 선포하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구로다 요시타카가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애초에 히데요시에게 주민들을 피난시키면 안 된다고 강권했던 사람이 요시타카였다.
“이 오사카는 도요토미의 수도이면서 천하에서 가장 큰 도시입니다. 30만에 달하는 오사카 백성들이 사방으로 피난한다면, 일본 66주 전체가 전하께서는 이미 오사카를 잃었다고 판단할 겁니다.”
오사카는 그저 인구만 많은 도시가 아니다. 일본 최고의 상업도시로서 막대한 부를 낳고, 그 세금으로 히데요시가 정권을 유지하게 돕고 있다. 대외교역이 대폭 축소된 지난 5년 동안 하카타가 쇠락했어도 오사카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 중요성은 더 커졌다.
“오사카가 무너졌다고 하면 우리는 패하지 않았어도 패한 것이 되고 맙니다. 그러니 최대한 오랫동안 오사카를 지켜야만 합니다.”
오사카를 빼앗겼을 때 전국적으로 히데요시의 위상이 실추되리라는 요시타카의 주장은 분명 옳았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오사카 주민들을 계속 붙들어 놓자는 주장이 중신 모두의 찬성을 얻기는 어려웠다.
“저들이 마루가메를 어떻게 불태웠는지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잖소. 조선 수군이 불화살과 화포를 쏘아대며 공격을 개시하면 오사카도 삽시간에 불바다가 될 거요! 이 도시에 사는 30만 남녀노소를 모조리 화염지옥에 처넣을 생각이오?”
“그럴 리 없소! 조선군은 오사카를 그런 식으로 불태우지는 않을 테니까.”
구로다 요시타카가 호기롭게 주장했다. 다른 장수들은 반신반의하면서 그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 오사카가 천하제일의 상업도시이면서 그 부가 하늘에 닿는 도시라는 사실은 조선인들도 잘 알고 있소. 그럼 저들이 이 도시를 불태우는 것과 약탈하는 것 중에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불을 보듯 빤하지 않겠소?”
백성들을 피난시키자던 장수들이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 틈에 요시타카는 백성들을 도시 밖으로 내보내지 말아야 하는 진짜 이유 몇 가지를 연달아 내놓았다.
먼저 지금 해변에 쌓고 있는 토성을 완성할 노동력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지금 많은 인원을 동원해서 성벽을 쌓고 있는데, 백성들을 빼버리면 남은 구간은 병사들을 시켜 쌓아야 한다. 그러면 병사들이 지쳐서 싸우기 어려워진다.
수십만이나 되는 시민들을 한꺼번에 경외(境外)로 내보내면 극심한 혼란이 빚어질 텐데, 그 틈을 타서 싸움이 두려워진 병사들이 집단으로 탈주할 가능성이 크다.
도시를 빠져나가는 피난민들이 소지한 귀중품을 노리는 도적들이 활개를 칠 것이다. 사방에 널린 빈집을 터는 도둑들도 극성일 게 분명하다.
주인 없는 빈집에 조선 첩자가 숨어들어 은신해도 찾아낼 길이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미 말했듯 천하인으로서 히데요시의 위신이 실추되는 일이다.
“그러니 피난은 불가하오. 적어도 우리 수군이 이순신을 막고 있는 한은 오사카 주민들을 모두 자기 집에 머물러 있게 해야 하오.”
이 주장에 대해서 찬성하는 이는 적었다. 마에다 토시이에까지도 다시 한번 생각하라고, 꼭 필요한 노동력을 뺀 나머지 주민들은 동쪽 내륙으로 대피시키는 게 좋겠다고 권했다. 하지만 이미 결심한 히데요시는 절대 그럴 수 없다고 고집을 부렸다.
“내가 오사카에 머무르는 한 누구도 오사카를 떠날 수 없다! 내가 허락하는 그 순간까지는 모두가 자기 위치를 지켜야 한다!”
심신이 불안한 히데요시의 귀에 착 감기는 제안만 하는 구로다 요시타카를 향해 사방에서 증오에 찬 눈빛이 날아들었다. 아들 나가마사조차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요시타카는 얼굴에 철갑이라도 덮은 듯,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