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682
2부 460화
– 17 –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다. 도원수 상선에서 북소리가 크게 울리고, 전군에 출진을 명하는 신호기가 올랐다.
“출진이다!”
화려한 도원수 갑옷을 입은 이순신 옆에는 상선 소속 장수들이 늘어섰다. 이번에는 예전에 탑승한 적이 없는, 검은 머리에 회색 눈을 한 서반아 군관 한 사람도 타고 있었다. 남만별기 소속으로 이순신 휘하에 있었으며 레판토 해전에도 참전한 로드리고 데 알바레스였다.
“귀관이 참전했던 그 싸움에서, 서양 함대가 선두에 적군이 기어오르기 어려운 대형 범선을 두고 돌궐군을 포화로 제압했다 하였던가?”
“그렇습니다, 대감.”
레판토 해전에서 신성동맹 연합함대는 통상의 전투함인 일반 갤리선보다 훨씬 선체가 크고 화포를 많이 탑재한 갈레아스(Galleass) 6척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 전함들은 모조리 베네치아 함대 소속이었다. 이들은 투르크 함대를 말 그대로 휘저어놓았다.
“물밀 듯이 밀려오던 돌궐 함대는 갈레아스에 탑재한 화포가 높은 위치에서 포격을 퍼붓자 지리멸렬하여 그 대오가 흩어졌습니다. 물 위의 성처럼 당당한 모습으로 버티면서 돌궐군에게 포를 쏘아 흩뜨리는 모습은 실로 장관이었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
갈레아스는 적 함대의 대열만 흩어놓은 게 아니다. 직접 포를 쏘아 부순 배만 해도 수십여 척에 달했다. 다만 갈레아스의 활약은 전투 초반으로 그쳤다.
“배가 빠르게 움직일 수 없어 전투 종반에는 그저 싸움 구경만 했다 하였지?”
“예, 대감. 피아의 갤리선이 뒤섞여 싸우는 와중에 함부로 포를 쏠 수도 없으니까요.”
조선 수군이 쓰는 판옥선이나 일본 수군에서 쓰는 여러 전선도 모두 노를 저어서 움직이니 서양에서 말하는 갤리선이다. 당연히 싸우는 양상도 흡사하다. 다만 양측 전선이 성능상으로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서양과 달리, 동방에서는 그 차이가 극명하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지. 그래서 내가 남만선들을 옆으로 뺀 것이고.”
정발 휘하의 남만선 8척 중에 가장 큰 2척은 각기 대전선 4척에 버금가는 화포를 장비하고 있다. 다른 4척은 대전선 2척에, 가장 작은 2척도 대전선 1척에 상당하는 포를 싣는다.
하지만 수군 전체가 남만선으로 편제되지 않은 이상, 이들은 주력이 아니라 보조전력으로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순신은 전체 대형을 학익진으로 짜고, 4척씩 한 조로 편성한 남만선 편대를 좌우 양익 맨 끝에 배치했다.
“우리는 굳이 남만선이 적진을 파헤칠 필요가 없지. 거북선이 있으니까.”
화력으로는 대형 남만선이 거북선을 능가한다. 하지만 전후좌우로 방향을 바꾸며 기민하게 움직이는 능력에서는 남만선이 조선 전선을 따라오지 못했다. 더구나 남만선이 사용하는 돛도 문제다. 커다란 돛에 불이라도 붙는다면 이동능력을 상실하고 말 위험성이 있다.
“남만선은 먼 거리에서 화포를 쏘아대 왜적들이 측면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면서 우리 본진 정면으로 몬다. 그 정도 역할이면 충분하다.”
적은 사실상 배수진, 아니 배륙진(背陸陣)을 치고 있다. 오사카를 지키려면 저들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이순신 휘하에 있는 조선 수군으로서는 적선을 단 한 척도 남겨두지 않고 모조리 불태울 기회였다.
“우리 전선은 남만선을 빼면 판옥선 82척, 대전선 8척, 거북선 7척이다. 적선은 6백 척을 넘어가니 자칫 실수하면 왜적들에게 포위당해 곤란한 처지에 빠질 수 있다. 각 위장과 선장은 절대 대형을 흐트러트리지 않도록 하고, 욕심을 부려 근접전을 시도하지 마라!”
지금 조선 수군이 보유한 전체 전선은 3백 척이 넘는다. 하지만 본국 해안을 지키지 않을 수 없고, 부산에서 오사카에 이르는 수송로도 지켜야 했다. 당연히 후방에도 충분한 숫자의 전선을 남겨두어야만 한다.
이쪽으로 빼고 저쪽으로 돌리고 나니, 이순신과 함께 싸움에 나설 수 있는 전선 수는 지금 정도가 한계였다. 만약 여기서 더 동쪽으로 나가야 한다면 당연히 그 규모는 더 적어지리라. 이 전투가 마지막 수전이 되어야 할 이유다.
“탐망선에서 보고입니다! 왜적도 전 병력을 동원하여 바다로 나왔습니다. 결전을 벌이기로 마음을 먹은 모양입니다.”
“알겠다.”
고개를 끄덕인 이순신이 장대에 올랐다. 지난 경인년, 숱한 왜병 조총수들에게 표적이 되어 탄환을 맞으면서도 굳건하게 지킨 바로 그 자리다. 조선 수군을 담당한 장수로서 지켜야 하는 위치가 바로 여기였다.
잠시 멈춘 함대는 대열을 정비했다. 장대에 오른 이순신이 잠깐의 여유를 이용해 사후선을 타고 모여든 장수들에게 사자후를 토했다.
“제장들은 들어라! 이 싸움에서 이기면 우리 군사가 왜국 본토에 올라가 적괴 수길의 목을 벨 것이다. 허나 그것은 육군의 싸움, 우리 수군에게는 이번 싸움이 마지막 싸움이 될 것이다! 너희 모두는 실로 전력을 다하여 전하께 충성하는 모습을 보이도록 하라!”
수군이 치르는 마지막 결전이라 하지만 그것도 수졸들한테나 해당하는 이야기다. 도원수인 이순신 본인은 육군과 함께 뭍에 올라 히데요시와의 대결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 이제 싸움을 끝낸 수군은 다른 장수들이 맡아 물자와 병력 수송을 주로 담당하게 되리라.
이번 싸움 이후에 이순신이 전군의 지휘를 맡아 육지에 오르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부원수가 적과 마지막 결전을 치르는데 어찌 도원수가 바다에서 배를 타고 편히 보고나 받고 있을 수 있겠는가? 그 공적과 책임이 다 누구에게 가겠는가?
허나 성공적인 육전을 치르려면 수전도 잘 마무리해야 한다. 돛대 위에 선두무상이 올라가 있지만, 이순신은 직접 천리경을 들어서 오사카가 있는 동북방을 세심히 살폈다. 대열 정비를 마친 조선 수군은 오사카만 입구를 통째로 틀어막다시피 하며 천천히 진격해 들어갔다.
– 18 –
상황이 다급했다. 배를 한 척이라도 더 준비해야 한다는 조급함에 히데요시는 명령을 내려 오사카 시내에 있는 거상들의 저택을 헐어 그 목재로 배를 건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당연히 반발이 일어났지만, 병사들이 휘두르는 창과 칼이 모든 불만을 진압했다.
“노부나가 공 시절에는 배를 만든다며 절을 헐더니, 이젠 집까지 빼앗아가는가!”
조선 침공을 준비하면서 대량으로 배를 건조할 때 이야기다. 잘 건조한 목재가 부족하다는 보고를 받은 노부나가는 서슴없이 각처의 사찰에다가 딱히 필요하지 않은 건물을 헐어 목재를 공출하라는 명령을 내렸었다.
“주군, 아무리 목재가 부족하다지만 그건 좀….”
“닥쳐라. 절간 건물을 지은 재목보다 잘 마른 목재가 어디 있나?”
수십 년, 수백 년이나 서 있던 건물들이다. 당연히 마르기는 아주 잘 말랐다. 사용된 목재도 무척 굵은 거목들이다. 하지만 평범한 건물도 아니고 불당을 헐어서 배를 만들겠다니, 당연히 각 사원에 속하는 승려와 신자들이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노부나가는 그 반발을 무력으로 억눌렀다. 일향종을 진압할 때처럼 절과 승려들을 한꺼번에 불태운다든가 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전국에서 수백 명은 죽어 나갔다.
일향종 탄압에 이어 연달아 벌어진 이 사건으로 ‘마왕’이라는 노부나가의 악명은 한층 깊게 새겨졌다. 사원에 대한 이런 모독 행위 때문에 노부나가가 부처의 저주를 받아서 조선 원정에 실패하고 제 명줄까지 끊겼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았다.
“그래도 노부나가 공은 내 집을 빼앗아가진 않았어!”
차라리 주민들을 피난시킨 뒤에 집을 헐었다면 반발이 덜했으리라. 하지만 히데요시의 명에 따라 피난도 금지하고 있던 상태에서 집을 헐고 목재를 빼앗았으니 불만이 없을 수가 없었다. 구로다 요시타카조차도 이런 조치를 권유하지는 않았다.
“구키에게 한 척이라도 배를 더 마련해 주어야만 할 게 아닌가! 그리고 지금 목재를 조달할 만한 다른 출처가 있는가?”
히데요시는 노부나가의 전철에도 불구하고 이 목재 압수 조치를 밀어붙였다. 여기서 조달한 목재를 파손된 기존 전선 수리에 사용하는 한편, 신규 전선 건조에도 사용했다. 그 결과 634척에 달하는 함대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텟코센같은 건 없었지만 말이다.
“이만하면 이기겠지, 이만하면….”
조선 수군은 1백여 척, 아군 전선 여섯 척이 적선 한 척을 상대하면 된다. 그리고 이순신이 대단하다지만, 구키 요시타카 역시 천하제일이라 일컫는 수군 장수다. 히데요시는 구키가 꼭 이순신을 격파하기를, 그리고 여세를 몰아 아와지시마까지 탈환하기를 빌고 또 빌었다.
“흠, 주군. 약간 이상하지 않습니까?”
“뭐가 말이냐?”
“구키 수군의 위치 말입니다.”
히데요시는 바닷가에 나와서 수전을 직접 보기로 한 참이었다. 논산에서 몸소 전장을 살핀 조선 국왕의 본을 일부러 따려고 한 건 아니고, 지척에서 벌어지는 결전을 차마 외면할 수가 없었던 탓이다.
“육전이건, 수전이건 주력은 중앙에 집중하는 것이 상례입니다. 지금 구키 수군은 중군에는 수전에 서투른 어중이떠중이들을 배치해 놓았고 최정예인 직할 전력을 중앙이 아니라 좌익에 배치하고 있습니다.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한산도에서 겪은 참패 이후로 수군에서 손을 떼고 있지만, 도도 다카토라의 지적은 확실히 옳았다. 구키 요시타카는 자기 휘하에 있는 전선 중에 최정예 전력인 자기 직할 병력 1백여 척을 좌익에 집중시켜 놓았다. 자기도 중앙에 있지 않고 그쪽, 그것도 후미에 있었다.
“음, 내가 보기에는 구키가 보다 약한 적의 좌익을 돌파해서 이순신의 본진을 후방에서 칠 생각인 듯하다. 충분히 가능하지 않으냐?”
“가능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이긴 합니다만….”
보고에 의하면 조선군은 만 입구를 가로막느라 대형을 아주 넓게 펴고 있다. 당연히 대형의 두께는 매우 얇다. 천하제일의 수군 장수인 구키가 전력을 집중한다면 분명히 조선군 전열을 돌파할 수 있으리라.
“우리 배 5백 척을 잃더라도, 조선 전선 1백 척을 불태우고 이순신의 목을 벤다면 우리가 이기는 거다! 조선이 곧바로 다음 함대를 보내지는 못할 테니 그동안 아와지시마부터 되찾고 시코쿠, 규슈를 탈환한다. 그러면 우리가 분명히 이긴다!”
주고쿠를 휩쓰는 북방인 도적놈들은 지금처럼 놓아두면 다 말라죽으리라. 지금도 모리 군 장수들이 악착같이 싸워서 숫자를 줄여나가는 중이다. 그러면 고민은 모두 풀리는 셈이다.
승리를 직접 보기 위해서 몰려나온 오사카 주민들과 휘하 군사들이 모두 자신을 보고 있다. 히데요시는 좌대 위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서 자세를 바로 했다. 여전히 마음은 불안하고 양쪽 손끝이 떨렸지만, 지금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됐다.
– 19 –
왜 수군은 커다란 장방형 대형 3개를 만들었다. 지금 보유한 전선이 워낙 많아서인지 중군에만 병력을 집중하지 않고 좌군, 우군도 중군과 같은 규모였다. 전위 따위는 따로 없었다.
워낙 많은 숫자다 보니 왜선들을 본 군사들도 긴장했다. 조선 수군이 한산도에서 1천 척을 쳐부쉈다지만, 그때도 1천 척을 한꺼번에 상대하지는 않았었다. 별군으로 움직이던 3백 척을 먼저 각개격파했고 남은 배들도 급류가 흐르는 협수로를 통과하느라 분산된 틈을 이용했다.
하지만 이순신은 달랐다. 이런 대군과 정면으로 대결하는 상황에서도 태연했다.
“적을 천천히 포위하여 섬멸한다. 포전(砲戰)을 시작하면 전군은 적진으로 돌입하되 중군은 천천히 물러나고, 좌우군은 대열을 벌려 적을 맞아들인다. 별군인 남만선은 외곽을 지킨다.”
기본적으로는 한산도 해전에서 구루지마 군을 격파할 때와 같은 전법이다. 그때보다 아군이 줄어들었고 적군은 많지만, 전선 크기와 화력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하니만큼 승산은 충분했다.
애초에 적선이 6백 척이라고 하지만, 그중에 판옥선과 크기가 비슷하여 싸워볼 만한 대선은 불과 1백여 척밖에 없다. 절반인 3백여 척은 중선, 2백여 척은 소선이다. 소선 따위는 그대로 판옥선이 들이받아 가라앉혀도 될 정도다.
“왜적이 근접합니다!”
“전군장에게 돌입 명령을 내려라!”
신호기가 나부끼자 나대용이 지휘하는 거북선 일곱 척이 화살처럼 앞으로 튀어 나갔다. 이 순간을 위해 어제 저녁밥과 오늘 아침을 든든히 먹고, 밤에도 푹 자면서 잔뜩 힘을 비축했던 격군들이 가공할 용력을 발휘한 결과다.
거북선들이 일제히 돌격하자 왜선들은 잠시 당황하는 듯했다. 하지만 곧 대열을 쪼개서 각 대열 간에 간격을 벌렸다. 중군은 넷으로, 좌우 양군은 셋으로 열을 나누어 자신들에게 오는 거북선을 그 사이로 흘려보내려고 시도했다.
“저들은 우리 거북선이 코끼리인 줄 아는가.”
서양 고사에서, 전장에서 코끼리를 상대하는 전법으로 저런 게 있었다. 달려오는 코끼리는 덩치 때문에 방향을 쉽게 바꿀 수가 없으므로 대열을 벌려서 그사이 공간으로 지나가게 하면 무력화할 수 있다. 하지만 거북선은 코끼리가 아니다.
“전군장이 적진을 성공적으로 파고들었습니다!”
약간 방향을 트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횡대 대형으로 전진한 거북선들은 간격을 벌리느라고 도리어 더 빽빽하게 붙은 왜선들을 정면으로 들이쳤다. 거북선들이 일제히 포를 쏘면서 전단(戰端)을 열었다.
24근 포가 거센 불길을 토했다. 빽빽하게 밀집해서 몰려오던 왜선들 사이에 구멍이 뚫리고 나뭇조각과 사람 몸뚱이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환호성도 함께 올랐다.
“전군장이 훌륭하게 해주고 있군.”
적진 한가운데 뛰어든 거북선들이 사방으로 지자포를 쏘아댔다. 운 없는 왜 소선은 박살이 나서 그대로 가라앉았다. 철환 2발을 옆구리에 맞은 중선은 그대로 옆으로 쓰러졌다. 뜨겁게 달군 철환을 맞은 대선은 맞은 자리에서 곧바로 시커먼 연기를 토했다. 곧 불길이 솟았다.
거북선 일곱 척은 거침없이 적진을 누볐다. 왜군이 쏴대는 화살이 비처럼 쏟아지고 총탄이 우박처럼 날아들었지만 제대로 된 타격은 거의 입지 않았다. 남만포를 실은 배 몇 척이 포를 쏘아댔으나 날아든 포탄 중 절반은 철판을 씌운 지붕에 맞아 미끄러졌고, 선체 측면에 맞은 포탄도 두꺼운 목판에 철판을 덧입힌 선체를 뚫지 못하고 바닷물 속으로 떨어졌다.
왜군 전열은 삽시간에 혼란에 빠졌다. 분명 저들도 나름대로 대비한 모양이지만, 거북선을 상대할 수 있는 무기가 없는 이상 어떤 준비도 헛수고일 뿐이었다. 단 하나, 유효한 공격법인 화공선을 쓰기에는 왜선들 스스로가 너무 밀집해 있었다.
기회를 포착한 거북선들은 적진을 마음껏 휩쓸었다. 정면을 겨누는 24근 포와 사방을 향해 포문을 연 지자포, 지붕 속에 숨어 있는 자모포와 선방포수들이 손에 든 후장조총이 연달아서 불을 뿜었다. 하지만 겨우 거북선 7척만으로 모조리 쳐부수기에는 왜선이 너무 많았다.
“천천히 전진하라! 적이 혼란을 수습하기 전에 공격한다!”
왜군도 나름대로 각오하고 나온 싸움이다. 거북선에만 싸움을 맡겨 두면 거북선을 지나쳐서 진형을 재편하고 아군 본진에 덤벼들 수도 있다. 적이 거북선 때문에 혼란에 빠져 있는 지금 상황이 적을 몰아치기에는 가장 좋은 시점이다.
그러나 왜군이라고 해서 일방적으로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이미 거북선이 통과한 구역에 있던 왜선들은 서둘러서 대형을 정비했다. 그중에서도 좌군에 속해 있던 왜선 한 무리가 가장 움직임이 빨랐다.
“저건 구귀가륭(구키 요시타카)의 부대가 아닌가.”
“그렇습니다, 도원수 대감.”
“놈들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후방에서 대기하고 있는 후군장에게 왜적이 우군을 돌파하고 우리 후방으로 우회할 경우를 대비하라 이르라.”
“예, 대감.”
구키 수군은 처음부터 거북선의 움직임을 예측했다는 듯이 뒤에 빠져 있었다. 다른 함대가 아직 혼란을 수습하지 못한 사이 옆으로 빠진 구키 함대는 그대로 이억기가 있는 우군 전열을 향해 돌진했다. 정발의 남만선 편대가 이들을 포격했고, 이순신의 명령을 받은 안위도 우군을 돕기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문제는 구키 함대가 노린 지점이 우군 대열에서도 거의 오른쪽 끝이라는 사실이었다. 거의 대열 끝이라 병력이 없고, 여기 대응하기 위해 이억기가 우군 전체를 움직이면 중군과 간격이 크게 벌어져 다른 적이 파고들 틈을 주게 된다. 안위가 도착해서 막기에도 이미 늦었다.
“우군장이 우측열을 후퇴시켰습니다!”
소수의 병력을 적 앞에 내던지기보다 진형을 재편하는 편이 낫다. 이억기는 우익 전선들을 후퇴시켜 적에게 포위되지 않게 하면서 아군 우익 전체를 보호하는 측면 방어를 맡도록 했다. 이제 안위가 도착하면 측면으로 우회한 적과 정면으로 격돌할 참이다.
그런데 여기서 예상치 못한 이변이 일어났다.
“저놈들이 지금 뭘 하는 거지…?”
어처구니가 없어진 이순신이 말을 잇지 못했다. 이억기와 정발의 포격을 받으면서 조선군 대열을 돌파한 구키 함대가, 이순신을 향해 방향을 트는 대신 전력을 다해 남쪽으로 질주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