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689
2부 46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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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계획대로 움직였으면 조선군은 이 강을 한참 하류에서 벌써 한 번 건넜다. 오사카를 공격할 때 요도가와(淀川) 북안에 상륙해서 강 남쪽에 있는 오사카를 공격할 계획이었으니까 말이다. 요도가와 상류가 세타가와이니, 그때 건너지 않은 강을 이번에 건너는 셈이다.
“배를 조달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뻔했군.”
앞으로 나와 직접 적진을 살핀 이순신이 혀를 찼다. 혹시 적의 방어진을 우회하는데 쓸 수 있을까 하여 병사들을 풀어 호숫가에서 배를 찾아보게 했지만, 성과는 전혀 없었다. 히데요시 일당이 먼저 빼돌린 게 분명했다.
임꺽정이 계획한 뗏목을 이용한 우회 상륙은 보고를 받자마자 일단 뒤로 미루게 했다. 앞을 막고 있는 원균 휘하 왜병의 수를 감안하면 적어도 수백 명을 우회시켜야 하는데, 겨우 뗏목 몇 개에 태워서 보내는 군사들을 가지고 그 숫자를 채우기가 어려웠다.
더구나 호수 기슭에서 쏘는 조총과 활을 피하려면 적어도 백 보는 떨어져야 한다. 그만큼 멀리서 움직일 튼튼한 뗏목을 충분한 숫자로 만들 재목도 없었다. 가교 제작을 위해 운반해온 목재는 있지만, 그걸로 뗏목을 만들 수는 없었다.
“아예 전선을 새로 건조하시겠사옵니까? 대판에 대기하고 있는 수군 장졸 중 배를 짓는 데 솜씨가 있는 이들을 불러오면 며칠 안으로 배가 준비될 것이옵니다.”
어차피 한번 쓰고 버릴 배라고 생각하면 생나무를 사용해서 안 될 것도 없다. 아군 전선이 배후로 돌기만 하면 포를 쏘지 않아도 적은 두려워하며 꽁무니를 빼고 물러날 것이다. 하지만 수하 장수들로부터 이런 제안을 받은 이순신은 단박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것도 시간 낭비요. 진격을 서둘러야 할 참에 어찌 배 따위를 짓느라 헛된 시간을 소모한다는 말이오.”
금성탕지(金城湯池)를 돌파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혹 모른다. 하지만 고작해야 원균 따위가 지키는 강을 건너가지 못해서 배나 만들면서 며칠을 허비할 수는 없었다. 뗏목을 만들 목재로 공병이 다리를 만들면 훨씬 쉽고 안전하게 강을 건널 것이다.
“건주 군사에게 전공을 세울 기회를 주겠소. 잠시 후에 우리 진영이 해를 등지게 되면 바로 적진에 포를 쏠 거요. 왜적은 햇빛을 정면으로 보면서 포격을 받아 혼란에 빠질 것이니, 그때 강물에 뛰어들어 적진을 짓밟으라고 하시오.”
조선군 본대는 아직도 산길을 다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여백 군과 별개로 교토에 남겨둔 3천을 빼고도 군사만 거의 9만에 역군이 2만 명이다. 여기에 왜군 7천 명이 추가로 붙었다. 이렇게 인원이 많아지고 보니 후미는 아직 산길에 들어서지도 못한 판이다.
왜군 7천 중 3천은 오사카에서부터 함께 움직인 구로다 군, 4천은 교토에서 추가로 합류한 호소카와 군이다. 다들 어서 공을 세워 인정받겠다면서 난리를 치고 있다.
이 많은 인원을 배나 뗏목이 충분히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면서 산길에 그대로 주저앉혀둘 수는 없다. 그건 히데요시의 본대와 대치할 때나 할 일이고, 지금은 가능한 빠른 방법으로 이 장애를 넘어 전진해야 했다.
“이야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이순신에게 군례를 올린 양호가 급히 자리를 떠났다. 군의 자리에 끼기에는 처지가 난감해, 병사들과 함께 밖에 있는 슈르하치에게 지시를 전하기 위해서다.
“그대들은 이미 만들어놓은 뗏목이 있으니, 건주위가 적진에 뛰어들어 왜적들을 흩어놓으면 그 뒤를 따라 돌입하라. 그대들이 든든한 교두보를 확보하면 승군이 가교를 놓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도원수 대감.”
임꺽정과 서림이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기왕이면 자기들이 선봉으로 뛰어들고 싶었지만, 도원수께서 결정하셨으니 그대로 따른다. 나중에 원균 따위보다 더 큰 놈을 잡으면 된다.
“앞으로 한 시진이면 해가 우리 뒤에 올 것이다. 무종야포 20문만 앞으로 끌어내서 방포할 준비를 하도록 하고, 나머지 병력은 모두 현재 위치에서 다음 명령을 기다리도록 하라. 잠시 물을 마시거나 건량을 씹으며 휴식을 취해도 좋으나, 주변 경계는 게을리하지 마라.”
“예, 대감.”
공격 준비를 하는 사이 뒤쪽에 있던 호소카와 타다오키가 전방으로 나왔다. 이항복이 그를 맞이하자 잠시 잡담을 나누다가 원균을 한껏 비웃었다.
“저놈도 와키자카 못지않은 재앙신이었지. 그나마 와키자카는 싸우다가 패하기라도 했는데, 원균은 싸우기만 하면 중도에 도주하기 일쑤였소. 5년 전 원정 때도 그랬고, 이번 전쟁에서도 한 번도 제대로 싸운 적이 없소.”
원균은 자기 영지인 이키를 버리고 도주했다. 규슈에 있던 우키타 히데이에는 원균이 적과 싸우지 않고 도주한 혐의가 있으니 엄히 벌해달라고 했지만, 히데요시는 그 말을 듣지 않고 원균을 계속 자기 옆에 두었다.
사실 타다오키도 딱히 와키자카를 비웃을 처지는 아니다. 그 역시 조선에서 몇 차례나 군을 이끌고 조선군과 싸웠지만, 매번 패배했었으니까.
“그러면서 정작 원균이 하는 조언 중에 귀담아들은 부분은 또 별로 없었지. 그 원숭이 놈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움직이는지 영문을 모르겠는 부분이 그거요.”
타다오키는 아내가 히데요시에게 강간당한 후 자살한 원한으로 눈이 완전히 뒤집혀 있었다. 그의 입에서는 구로다와 달리 히데요시에 대한 존대라고는 단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귀군과 손을 잡기로 한 거요. 원숭이의 목을 친 다음에는 잘 부탁하겠소.”
부친인 후지타카는 왜황과 함께 어딘가에 숨어 있다. 타다오키는 자신이 왜황을 보호하고 있음은 인정했으나, 그 은신처가 어디인지는 절대로 말하지 않았다.
‘그대들은 모르겠지만, 폐하께서는 애초에 노부나가 공이 조선을 침공하는 데 반대하셨소. 그대들에게 해를 끼치지도 않으신 폐하를 귀군에 넘길 수는 없소.’
무슨 말로 설득을 시도해도 소용이 없었다. 마침내 두 손을 든 이항복은 왜황을 직접 쫓아 잡는 일을 포기했다. 왜황에게 어느 정도 쓸모가 있기는 있다 해도, 호소카와 군과의 동맹을 포기하고 적으로 만들면서까지 손에 넣을 만한 가치는 없었다.
“요시아키 님께서 쇼군으로 복귀하시면 조선과 우리는 다시 평화를 누릴 수 있소. 요시아키 님도 폐하와 마찬가지로 조선 원정에 반대하셨으니까. 원숭이가 조적(朝敵)으로 선포되었음을 알리고 요시아키 님의 복위를 알리면 적진에서 이탈하는 이들이 줄을 이을 거요.”
“그렇게 잘 되면 좋겠소만.”
호소카와 가문은 조선군에 협력하는 조건으로 아시카가 요시아키의 쇼군 복위를 지원하라고 후루타를 통해서 요구했다. 여전히 마음속으로 요시아키에게 충성하고 있던 부친 후지타카의 영향이었다.
이쪽에서 원하던 대로의 해결은 아니다. 하지만 히데요시를 적대하는 건 마찬가지니까, 이 정도만 해도 일단은 받아들일 만했다. 이런 문제에서 중요한 건 겉으로 나타나는 형식보다는 실제적인 본질이 아니겠는가.
문제는 역시 일본의 패권을 노리고 있을 이에야스와 충돌하는 요구라는 점이다. 이에야스가 순순히 요시아키를 쇼군으로 받들 것 같지는 않다. 분명히 양자 간에 갈등이 있으리라.
뭐, 그거야 천천히 상황을 살펴도 될 일이다. 양자가 정말로 충돌하게 되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 일본 정세에서 조선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더 커질 테니까.
– 13 –
강 건너편에는 적어도 1만 명은 족히 되는 조선군 기병과 보병이 모여 우글거렸다. 원균은 그 모습을 보면서 공포에 떨었다.
“사스케, 스케, 너희 모두 내 옆을 떠나서는 안 된다.”
원균은 언제 화살이나 탄환이 자기를 노리고 날아올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건장한 병사들로 주변을 에워쌌다. 어디를 가든 최소한 6명이 자기 주위를 둘러싸게 했다. 눈에 띄어서 표적이 되지 않도록 갑옷도 중급 사무라이가 입는 수수한 것으로 입었다. 호위병들도 똑같이 입혔다.
히데요시가 보낸 군감이 대장으로서 체면을 차리라고 잔소리를 했지만, 원균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내가 대포에 맞아 죽는 꼴을 봐야겠느냐는 악다구니에 군감도 입을 다물었다. 사실 다른 무장들도 대포가 무서워서 갑옷의 장식을 없애고 깃발을 줄이는 판이 아닌가.
생각 같아서야 예전의 자기만큼 살집이 있는 호위병을 두고 싶었지만 그만큼 살이 찐 이를 여러 명이나 구하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체구가 건장한 병사 중에 딱 한 명을 골라서 일부러 잔뜩 먹여서 살을 찌웠다. 그리고 다른 건장한 병사들과 함께 데리고 다니며 방패로 삼았다.
‘이놈은 내가 자기를 예쁘게 보아서 잘 먹여주는 줄 아는 모양이지만…그나저나 이 위기를 어찌 넘겨야 할꼬.’
원균은 초조하게 강 건너를 살폈다. 전부 때려치우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만 굴뚝 같았지만, 이젠 도망갈 수도 없었다. 히데요시가 딸려준 군감은 원균에게서 절대 눈길을 떼지 않고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는 듯했다. 도망치려고 하면 그대로 베어버릴지도 모른다.
“산길 쪽은 괜찮으냐?”
“아직 아무 연락이 없습니다.”
아마 조선군은 빠르게 진격하느라 화포를 놓고 왔을지도 모른다. 그럼 도강을 망설이는 게 당연하다. 무턱대고 강물에 뛰어들었다가 이쪽에서 활과 철포를 쏘아대고 돌팔매를 던져대면 꽤 큰 피해를 볼 테니까. 아무리 이순신이라도 정면으로 덤비기는 망설여질 거다.
호수로 우회하기도 어렵다. 배를 만드느라 벌목을 반복한 덕분에 이 일대 산에는 큰 나무가 별로 없다. 배나 뗏목을 충분히 조달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다만 한 가지 가능성은 있었다. 여기서 남쪽, 하류로 내려가서 여울을 찾아 건넌 적이 아군 진영을 측면에서 공격할 우려가 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좌측에서 공격을 받아 혼란에 빠진 사이 정면에서 조선군 본대가 공격해올 것이다. 원균 군은 호숫가로 밀리면서 무너지리라.
“주의해서 살펴라! 어쩌면 적이 이미 강을 건너와서 산에 숨어들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예 적이 도강하지 못하게 막고는 싶다. 하지만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강을 따라 병력을 죽 배치하기에는 병사가 모자랐다. 겨우 4천 명을 가지고는 호숫가 평지에 진을 치고 지키는 게 한계였다.
“기왕 태합께서 병력을 주실 거라면, 아예 넉넉하게 3만 명쯤 주셨다면….”
군막으로 돌아온 원균이 접의자에 주저앉아 중얼거리는 참이었다. 갑자기 낯빛이 붉게 물든 부하 무사 한 명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저, 적이 화포를 끌어냈습니다!”
“뭣이!”
한나절 동안 화살 하나 날리지 않았던 이유가 후방에서 화포를 끌어오고 있었기 때문인가? 창백해진 원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순간 수십 발이나 되는 포성이 울리더니 연달아서 울리는 폭음이 들렸다. 경인년에 많이 들은 소리, 척탄 터지는 소리였다.
무종야포 20문이 퍼붓는 포화는 18근 포나 12근 포에 비길 만큼은 못 되었다. 18근 포에서 쏘는 폭발탄 한 발 위력이 척탄 10발 어치는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아군이 도강할 때에 대비해서 적이 대열을 갖추고 있었던데다, 크기가 작기는 해도 폭발탄이다 보니 왜군에게 준 타격은 컸다.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는 대열을 뚫고 들어가서 그 가운데서 폭탄이 터지니 한 발에 십여 명은 우습게 쓰러졌다.
야포를 놓은 위치에서 강 건너 적진까지는 고작 150보, 크기가 작은 무종야포를 끌고 와서 쏘아대도 충분한 거리다. 척탄이 적진을 뒤흔들어놓은 사이로 이번에는 조란환이 날아들었다. 포연이 한 번 솟아오를 때마다 왜병 수십 명이 쓰러지는 모습이 손에 잡힐 듯 보였다.
“돌격하라!”
왜군 진영이 반쯤 무너지자 슈르하치가 호령하면서 강물에 뛰어들었다. 선도에 따라 건주위 기병들도 일제히 강물에 뛰어들었다. 이들은 본래 말에게도 마갑을 입히지만, 이번에는 강을 헤엄쳐 건너야 하는 말에게 부담을 덜 주기 위해서 말뿐만 아니라 사람도 갑옷을 벗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이들의 갑옷은 두정갑이다. 천으로 만든 두정갑이 물을 먹으면 그 무게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 무거운 물건을 입고 강을 건너고, 저편 기슭에 올라 적과 싸울 수는 없었다. 다만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투구는 썼다.
이들이 강물 속에 뛰어들자 포격이 멎었다. 하지만 아직 이쪽 기슭은 포연이, 저쪽 기슭은 초연과 흙먼지가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그 혼란 속에서 슈르하치의 거친 목소리가 유독 크게 부하들을 꾸짖었다.
“빨리 건너는 게 더 중요하다! 괜히 강물 위에서 꾸물거리지 마!”
왜군이 방어태세를 멀쩡하게 갖추고 있을 때 이런 시도를 했다면 반대편 기슭에 올라가기도 전에 적어도 2~3백 기 정도는 강물 속으로 사라졌으리라. 하지만 포격 덕분에 왜군의 포진은 완전히 망가졌다. 날아드는 화살과 탄환에 낙마해 강물에 잠긴 기병은 50기도 되지 않았다.
“모조리 베어라! 포로는 필요 없다!”
말이 몸에서 폭포수처럼 물을 흘리며 반대편 기슭에 올랐을 때, 이미 기수들은 활에 화살을 메기고 목표를 겨냥하고 있었다. 다음 순간 날아간 화살이 정신을 못 차리고 어정거리고 있는 왜병들을 잇달아 쓰러트렸다.
“죽여라!”
강을 건너느라 갑옷은 벗었지만 대신 더 날래졌다. 건주위 기병들은 왜군이 장창진을 다시 구성하고 맞설 기회를 주지 않았다. 화살이 날아가 왜적의 투구를, 흉갑을 뚫었다. 건주위에서 쓰는 화살은 조선 화살보다 화살촉이 무거워서 근거리에서 갑옷을 뚫기에는 더 좋았다. 활도 습기에 강해서 강을 건너며 푹 젖었음에도 위력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직 남아있던 조총수와 궁수들이 손에 든 무기로 반격했지만, 어느 쪽도 위력과 발사속도 모두에서 건주 기병이 쏘는 활을 능가하지 못했다. 난사하는 화살에 맞아서 병사와 무사들이 잇달아 쓰러졌다.
마침내 왜군 대열이 무너졌다. 건주 기병들은 도주하는 왜병들 사이를 종횡무진으로 날뛰며 화살을 퍼붓고 환도를 휘둘렀다. 적이 살려달라고 빌건 말건 상관하지 않았다.
“저놈들 아주 신이 났구나. 자, 우리도 가자!”
건주위가 왜군 진영을 파고들자 임꺽정과 서림도 군사들에게 뗏목을 띄우도록 했다. 삿대로 바닥을 밀며 건넌 뗏목이 건너편 기슭에 닿자 등선군 1천 명이 내려 곧바로 기슭을 장악했다.
이미 왜군은 지리멸렬한 상태였다. 두 다리가 성하고 목숨이 붙어 있는 자들은 이미 태반이 도망쳤고, 아직 기슭에 남은 자들은 대부분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었다. 임꺽정이 부하들에게 단호하게 호령했다.
“자기 발로 일어서지 못하는 놈은 다 죽여라! 그런 놈들까지 데려다 돌봐줄 여유는 없다!”
임꺽정은 자신이 내린 지시에 대해 전혀 잔혹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중상을 입어 치유될 전망도 없는 자라면, 그대로 놓아두어 고통 속에서 죽어가게 만드느니 숨통을 끊어 주는 편이 훨씬 자비로운 일이 아닌가 말이다.
“다리를 놓아야 하니 어서 이 주변에 있는 허섭스레기들을 치워라! 왜놈 시체 따위는 전부 강에다 던져버려!”
이쪽은 서림의 지시다. 승군이 작업할 공간을 만들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던 서림이 갑자기 생각난 듯 임꺽정을 불렀다.
“그 돼지 놈, 이번에는 잡혔을까? 경인년에 고성에서 우리랑 마주쳤을 때처럼, 화살만 달랑 하나 맞고 또 도망간 거 아냐?”
“그야 알 수 없는 일이지. 하지만 놈이 죽었다면 시신을 뒤지다 보면 나오겠지. 그리 살이 두둑하게 찐 돼지가 어디 흔한가.”
임꺽정이 살짝 옆을 살피면서 조용히 소곤거렸다. 그쪽에는 눈에 핏발이 선 원연이 환도를 빼 들고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