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69
1부 069화
– 17 –
“적도들을 끌어내어라!”
이양이 호령하자 굴비두름처럼 묶인 왜인 열네 명이 끌려나왔다. 싸울 때 입은 상처 때문인지 팔다리나 어깨에 붕대를 두르고 있는 자들이 많았다. 몇몇은 나올 때도 절름거렸다.
동헌 앞마당에 무릎을 꿇은 왜구들 중에서 누구 하나 제대로 얼굴을 들지 못했다. 지난번 개선식 때 여진족 포로들 중에는 그래도 기개가 있는 자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달랐다. 역시 일족을 대표하는 전사와 그저 도적일 뿐인 자는 태도가 다른 게 아닐까 싶다.
헌데 저들의 초라한 행색을 보고 있으려니 하나 이상한 점이 있었다. 점심을 먹기 전에 이양은 분명히 생존한 포로가 열일곱 명이라고 말했었다. 헌데 지금 내 눈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자들은 열네 명밖에 되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이지?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이양이 급히 설명했다.
“잡아놓은 적도들 중 세 명은 가슴이나 배에 화살을 맞아서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아마 곧 숨이 끊어질 듯하옵니다.”
“그럼 왜관까지 산 채로 끌고 가서 그 앞에 매달지는 못하겠군.”
잠깐 생각했다. 붙잡은 왜구들은 전시효과를 위해 동래 왜관 앞에서 처형하고 있다. 하지만 그 세 놈이 중태라서 동래까지 끌고 갈 수 없다면…답은 간단하다. 그냥 여기서 죽이자. 전시는 목만 잘라서 해도 되니까. 그동안 나머지는 동헌 앞마당에서 무릎 꿇고 기다리게 하지 뭐.
“셋 다 끌어내, 여기서 먼저 처형하시오. 저기 나머지 패거리들이 보는 앞에서.”
“예, 전하.”
잠시 후 인사불성 상태인 왜인 세 사람이 옥에서 끌려나왔다. 신음하는 왜인들을 말 그대로 땅바닥에 질질 끌면서 나온 우수영 옥리들이 그들을 우수영 안마당에 태질쳤다. 줄줄이 묶여 무릎을 꿇고 있던 왜인들이 그들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뭐라는 건…아니, 됐다.”
통변을 불러 저들이 뭐라고 했는지 물으려다 말았다. 어차피 들어봐야 빤할 것 같다.
“전하, 대령하였사옵니다.”
어느새 나타난 회자수들이 목을 벨 준비를 하고 나란히 절을 올렸다. 손에 든 언월도가 육중하게 위세를 자랑했다.
음, 오늘이 내가 직접 참관하는 두 번째 사형 집행이 되겠구나. 이번엔 목만 베는 거니까 작년 무오사화 때처럼 끔찍하지는 않겠지.
“시간 끌 것 없다. 어서 베어라.”
간단히 지시하자 곧 형리들이 움직였다. 귀를 화살로 꿰고 손이 뒤로 묶인 왜인들을 끌어다 거적 위에 엎어놓고 목 밑에 나무토막을 고였다. 참수형을 시행할 준비가 모두 끝나자 회자수들이 일제히 언월도를 치켜들었다.
“쳐라!”
호통 소리와 함께 세 자루 언월도가 일제히 내리쳐졌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머리 세 개가 일제히 땅바닥을 굴렀다. 묶여 있던 한패들이 비통한 울음소리를 내질렀다.
“저 도적놈들의 몸은 가져다 바다에 던져버려라. 머리는 수영 안에 있는 모든 군사들이 볼 수 있도록, 묶어서 장대에 매달아라.”
“예, 전하.”
곧 한 5미터 될 것 같은 장대 한 개가 날라져 왔다. 먼저 한쪽 끝에 돌려가며 큰 못을 세 개 박았다. 그리고 잘라낸 머리들을 머리카락으로 못마다 하나씩 묶었다.
“기둥을 세워라!”
기둥을 세우려면 구덩이를 파서 박는 게 상식이지만 겨울이라 땅을 파기가 어렵다. 하지만 내가 일일이 이런 문제까지 해결할 필요는 없었다. 군사들이 알아서 목재를 가져오더니 뚝딱거리며 뭔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잠시 후 기둥이 쓰러지지 않게 받쳐줄 받침대가 완성되었다.
높이 솟은 기동을 잠시 바라보다 시선을 돌리니 덜덜 떨고 있는 나머지 왜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떠는 이유가 공포 때문인지, 추위 때문일지는 알 수 없었다.
“우수사. 저들이 어디 출신인지는 자백하였소?”
“일본국 살마주(薩摩州) 출신이라 하였습니다. 다만 그 진위는 알 수 없습니다.”
살마주라면 사쓰마, 현대 일본에서는 가고시마다. 그나마 나랑 포경사업을 합작으로 진행할 히젠 출신이 아니라 다행이다. 히젠 출신이었다면 사업 취소하라고 대간들이 난리가 났겠지? 사실 놈들이 히젠 출신이라고 했으면, ‘거짓 진술이 분명하다’고 묻어 버릴 생각이었다(…).
“우두머리는 어느 놈이오?”
“우두머리는 싸움 중에 화살에 맞아 그 자리에서 죽었다 합니다. 남은 자들은 모두 자신이 졸개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전하께서 납시기 전에 신이 두어 차례 좋은 말로 심문해 보았으나 자기들은 살마주 출신 상인이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사옵니다.”
“형신은 가하지 않았는가?”
“전하께서 명을 내려 친국하겠다 하셨기에 손대지 않았사옵니다.”
“알겠소.”
자, 그럼 시작해 볼까. 잔챙이들뿐이라 하니 캐낼 정보도 별로 없겠지 싶긴 하다. 해적질을 했다고 스스로 인정하게 만들기 위한 고문 정도면 충분하겠지. 저놈들을 몽땅 때려죽여 봐야 내가 딱히 즐거울 일도 없으니 말이다.
“오른쪽 끝에 있는 놈 한 명을 끌어내어 앞에 꿇려라.”
군사들이 당장 달려들어 내가 지목한 왜인을 끌어냈다. 잡힐 때 부상을 당한 데다 잡혀 있는 동안 제대로 먹지 못한 탓인지 무척 기운 없이 끌려나왔다. 저항하는 몸짓은 없었다.
“바른대로 이야기해라. 네놈들은 조선에서 도적질을 할 목적으로 바다를 건너왔으렸다!”
통변이 내 말을 왜말로 바꾸어 전했다. 귀를 기울여보았지만 역시 영 알아들을 수 없었다. 현대 일본어였다면 웬만큼 이해했을지도 모르지만 이 시대 일본어는 완전히 다른 말 같았다.
하긴 내가 중세 한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고 있는 것만 해도 치트키인데 중세 일본어까지 알아들을 수 있다면 그건 정도가 지나치다고 할 수 있겠다. 모르는 건 모르는 걸로 남아야지.
“아니라고 하옵니다. 분명 명나라에 장사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라고, 살마주 태수에게 서한을 보내 신분을 확인하면 자기들이 선량한 상인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으리라 하옵니다.”
풋. 명나라에 장사를 하러 가? 야, 명나라는 지금 사실상 쇄국정책을 펴는 중이야. 오닌의 난 때문에 위조문서가 넘쳐나면서 감합무역(勘合貿易)이 쇠퇴하고 있는 거 뻔히 알거든? 그리고 사쓰마는 애초에 감합무역을 할 권리도 없었어.
답은 둘 중 하나다. 사쓰마 출신이라는 자백이 거짓이거나, 장사꾼이라는 자백이 거짓이다. 전자가 답이라고 하면 출신을 숨겨야 할 만큼 뒤가 구리다는 이야기고, 이것 역시 정당한 장사꾼이라면 해당하지 않을 이야기다.
“저놈의 왼쪽 발톱을 하나 뽑아라.”
“예…예?”
형리가 무의식적으로 매를 잡으려다가 멈칫하고 내 쪽을 돌아보았다. 심문이라 하면 당연히 매를 칠 줄 알았는데 발톱을 뽑으라니 놀란 모양이었다. 이양도 놀란 듯 나를 바라보았다.
“전하, 방금 하신 말씀이…?”
“우수사, 매를 치다가는 심문이 끝나기도 전에 죽을 수도 있지 않소? 허나 손톱이나 발톱은 머리카락과 같으니, 좀 뽑는다 해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소. 게다가 시간을 주면 다시 자라니, 매를 때리는 것보다 훨씬 자비롭지 않겠소?”
자비는 개뿔. 내 의도는 간단하다. 저 새끼를 더 아프게 해주고 싶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적어도 지금 내 입장에서 저 왜구는 천 년에 걸쳐 이 땅을 괴롭힌 왜구들의 대표였다.
“무엇하느냐? 전하께서 명하시지 않느냐. 어서 그대로 행하여라!”
내 의도를 알아들었는지, 이양이 소리를 쳤다. 잠시 굳어 있던 형리들이 그제야 쇠로 된 집게를 들어 왜인의 발톱을 집었다. 맨발이라 신고 있는 것을 벗기고 어쩌고 할 필요도 없었다.
조선말을 알아듣지 못하는지 그저 멍하게 있던 왜인은 집게가 발톱에 닫자 그제야 소스라치게 놀랐다. 낯빛이 창백해지면서 뭔가 열심히 주워섬겼지만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별로 동정심이 느껴진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뽑아라.”
“뽑아라!”
이양의 호령 소리와 함께 형리가 힘차게 손을 당겼다. 거의 동시에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소리가 주변 사람들의 귀를 찢었다. 왜인이 발버둥을 쳤지만 건장한 형리들이 붙들고 있어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한 번 더 묻겠다. 도적질을 하러 조선 땅에 왔음을 인정하느냐?”
통변의 말을 들은 왜인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한사코 고개를 내저었다. 내 대응은 간단했다.
“하나 더 뽑아라.”
또 다시 비명이 올랐다. 다른 왜구들에게 겁을 줄 셈으로 일부러 입을 막지 않고 내버려두었는데, 놈이 지르는 비명소리가 어찌나 큰지 나머지 놈들이 겁을 먹기보다 내 귀가 먼저 맛이 갈 것 같았다.
“자백해라. 자백하지 않으면 계속 뽑으리라.”
왜인은 의지가 강했다. 눈물을 줄줄 흘리고 비명을 지르면서도 발톱 열 개가 다 뽑힐 때까지 자백하지 않았다. 끝까지 자신을 포함한 동료들은 모두 살마주 출신 상인이며 명나라에 장사하러 갔다가 다 털리고 돌아오는 길이라는 주장만 반복했다.
“얼마나 굳센지, 자칫했으면 저 말을 그대로 믿고 내가 저 왜인에게 사죄할 뻔했소. 거짓을 꾸며내는 솜씨가 여간이 아니군.”
“그러게 말이옵니다, 전하.”
해남현감이 앞을 막아섰을 때 저 왜인들이 순순히 검문에 응했다면, 그리고 배를 수색할 때 조선인 포로들이 들키지만 않았다면 상인이라는 주장이 먹혀들 수 있었다. 하지만 첫 검문 시도에 응하지 않고 도망친 시점에서 이미 저들은 스스로 왜구라고 인정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다음, 그 옆에 있는 놈을 끌어내라.”
첫 번째 왜인은 발톱을 다 뽑히고 나서 옆에 널브러진 채 엎어져 있었다. 그 옆에 무릎이 꿇려진 두 번째 왜인은 얼굴이 백짓장같이 되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 놈은 일단 뽑고 시작하자. 왼발 발톱을 세 개 뽑아라.”
형리들이 양 팔을 붙들자 비명 소리가 우수영 동헌 앞마당을 채웠다. 왜인이 뭐라고 고함을 질러대자 통변이 나를 돌아보았으나 내가 통역하지 말라는 뜻으로 손바닥을 들어올렸다. 지금 저 왜구가 뭐라고 지껄였건, 난 저놈의 발톱을 뽑을 생각이었다.
발톱 세 개가 피를 튀기며 차례로 옆으로 던져졌다. 왜인이 울부짖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통변, 저들에게 전해라. 열네 명 모두의 발톱을 뽑은 다음에는 손톱을 뽑을 것이고, 그 뒤에는 귀를 자르겠으며, 귀 다음에는 코를 자르겠고, 그때까지 자백을 하지 않으면 이를 뽑게 될 거라고 말이다. 그래도 도적질을 하러 왔다고 인정하지 않으면 마지막으로 혀를 뽑겠다.”
저놈들이 보통 왜구가 아니라 해적왕 일당이라고 해도 그 지경까지 가면 고문하는 쪽이 원하는 대로 자백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게다. 과연 이미 쓰러진 한 놈을 빼고 나머지 열세 명이 새파랗게 질리는 모습이 보였다.
“물론 혀를 뽑았다고 벌이 끝날 리가 없다는 건 너희도 알게다. 곧이곧대로 자백하면 훨씬 벌이 약해질 거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너희에게 달렸다.”
왜구들이 망설이는 태도가 느껴졌다. 저들도 안다. 요즘 조선에서는 왜구라고 하면 잡는 대로 사형에 처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 국왕이 직접 ‘벌이 약해질 거’라고 말했다. 그럼 사형은 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차피 왜구라는 혐의를 벗을 가망성이 없다면….
“저놈의 왼발 발톱 두 개를 마저 뽑아라.”
놈들이 생각할 시간을 길게 줄 의사는 없었다. 바로 불든지, 원하는 대로 고문을 받다가 죽든지, 알아서 택하게 해줄 테다. 곧바로 비명 소리가 또 동헌 앞을 채웠다.
“시간을 길게 줄 필요 없다. 형리는 입으로든, 속으로든 좋으니 수를 세어라. 과인이 따로 지시를 하지 않아도 스물을 셀 때마다 발톱을 하나씩 뽑아라.”
“예, 전하!”
형리들은 신이 난 듯했다. 그 심정이 이해가 갔다. 왜구라고 하면 수백 년 전부터 연안 지역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야차 같은 존재였다. 바로 그 왜구를 잡아서 이렇게 앙갚음할 수 있는 기회가 어디 쉽게 오겠는가.
1분도 지나기 전에 두 번째 왜구도 모든 발톱을 잃었다. 얼어붙은 마당 위를 기면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놈을 놓아두고 형리들은 세 번째 왜구를 끌어냈다. 새파랗게 질린 세 번째 왜구가 뭐라고 고함을 질러댔다.
“전하! 저자가 자신들은 살마주가 아니라 오도(五島)에서 온 해적이라고 인정하였사옵니다.”
“그래? 형리들은 형문을 멈추도록 하라.”
신이 나서 세 번째 해적의 발톱을 뽑으려던 형리들이 실망한 듯 손을 내렸다. 나는 천천히 질문을 던졌다.
“오도 출신이라면 어느 영주 밑에 있는 놈이냐?”
“특정 영주에게 속하지는 않았고, 여기저기 항구에 들를 때 기항세를 낼 뿐이라 합니다.”
몇 가지 더 물었지만 놈은 정말 아는 게 별로 없었다. 김새서 이만 심문을 끝내기로 했다.
“좋다. 그럼 네놈들에 대한 심판을 결정하겠다.”
이양을 비롯한 신하들이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손톱을 뽑는다는, 생각지 못한 형문을 가한 왕이 죄를 인정한 왜구들을 어찌 처벌할지 궁금하기도 하겠지.
“우수사, 이 왜구 열네 명 중에서 아직 발톱을 뽑지 않은 열두 명 중 자백한 놈을 제외한 나머지 열한 명도 모두 발톱을 뽑고, 모두 동래까지 맨발로 걸어가게 하라! 내일 아침 일찍 출발시켜라.”
난 애초에 이놈들을 살려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본보기로 삼기 위해 왜관 앞에 산 채로 매달아 굶겨 죽이는 사형 방법을 바꿀 생각도 없었다. 그러려면 아예 걷지 못하도록 만들어서는 곤란하니 매를 치는 등 다른 고문을 하지 않은 것이다. 다 자기들 죗값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