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70
1부 070화
– 18 –
“이 겨울에 동래까지 맨발로 걸어가려면 많이 고통스러울 겝니다.”
“다 자기들이 저지른 죗값이 아니겠는가?”
굴비두름처럼 묶인 왜구 14명이 영문(營門) 앞에서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놈들은 모두 잡힐 때 입고 있던 허름한 일본식 옷을 입고, 피투성이가 된 맨발로 얼어붙은 땅바닥 위에 서 있었다. 내게 자백한 그 세 번째 놈 하나만 버선과 짚신을 받아 신고 있었다.
저 왜구들은 우리 백성 11명을 납치하고 재물을 약탈한 자들이다. 처음 잡혔을 때는 상인이라고 주장했지만, 고문을 좀 받고 나서 해적이라고 실토했다. 그리고는 자기들은 조선에 온 게 처음이라고 주장하며 자비를 빌었다. 죽은 두목이 억지로 끌고 왔다면서 말이다.
그 말을 믿으면 내가 바보 천치다. 해남현감의 전투 보고를 보면 저놈들은 매우 격렬하게 저항했고, 구출된 백성들의 진술을 보아도 그 태도가 흉포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처음 해적질에 나선 놈들이 그리 지독할 리 없다. 일부는 처음일지 몰라도 나머지는 절대 아니다.
설사 처음 나선 놈들이라고 해도 봐줄 수가 없다. 근본적으로 노략질을 하러 나섰으면 다 왜구다. 우리 백성을 해치고 재물을 빼앗았으니 주범이건 종범이건 다 처벌을 받아야 한다. 발톱을 뽑는 정도는 아주 약소한 벌이다. 본 형벌에 아무 영향도 없을 만큼.
어제 오후, 우수영은 내 명령에 따라 발톱을 뽑히는 왜구들이 지르는 비명소리로 떠나갈 듯했다. 마침내 그 지겨운 작업이 끝나자 동헌 앞마당에는 왜인 열세 명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뒹굴고 있었다. 그리고 단 한 명만이 두려움에 떨며 그 옆에 웅크리고 있었다.
지금 저들은 왜관으로 가서 일본에 송환되는 줄 알고 있다. 어제 심문이 끝난 후, 저들에게 통변을 시켜 ‘내일 동래로 보내지리라’고만 알려주라고 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왜구를 잡아도 조선에서 처벌하지 않고 왜관 측에 넘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대마도가 스스로 그들을 처벌하게 함으로써, 일종의 결자해지를 달성한 셈이다. 대마도에서 왜구를 단속하겠다고 약속해 놓고서 그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음을 꼬집는 의미도 있었다.
저 왜구들도 과거 사례를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자백하면 벌이 가벼워질 것’이라고 듣기도 했으니 더더욱 목숨을 건질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고 있겠지. 그리고 필사적으로 걸으려고 할 것이다. 어서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안됐다만 호송관이 가지고 있는 봉서(封書)에는 그전에 하던 대로 너희를 기둥 위에 매달아 굶겨죽이라는 명령이 적혀 있다. 너희를 인수받은 경상좌수사는 내 명에 따라 너희를 매달 것이다. 겨울이라 추위 덕에 빨리 죽을 수 있을 테니, 행복한 줄 알아야 할 게다.
“전하, 이만 출발하라 명하겠사옵니다.”
“그렇게 하시오. 다만 호송을 맡은 군관에게 중간에 뒤처지는 자는 매질해도 좋으나, 동래까지는 모두 살려서 데려가야 한다고 강조해 주시오.”
“알겠사옵니다.”
살려서 데려가야 기둥 위에 산 채로 매달지. 정 지쳐서 걷지 못하는 놈이 있으면 수레에 태워서 데려가도 상관없다. 그 정도 융통성이야 현장에서 적당히 발휘하는 거고.
“만의 하나라도 중도에 죽는 놈이 생기면 시체라도 가져가서 매달아야 하오. 적도들이 맞아야 할 마땅한 최후요.”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미 죽은 왜적들의 수급도 모조리 그 옆에 매달 거다. 압송되는 왜구들을 뒤따를 수레에 가는 길에 먹을 양식과 함께 수급이 실려 있다. 전투에서 사살된 왜구들, 그리고 부상이 악화되어 죽은 자들과 어제 처형된 자들의 수급까지 전부 들어 있다.
딱히 소금에 절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여름이었으면 아마 가는 길에 썩어서 지독한 냄새를 풍기겠지만, 지금은 겨울이니까. 신선하게 특급배송으로 잘 들어가리라.
“신은 전하께서 자백하면 벌을 가볍게 해주겠다고 하시기에 살려주시려는 줄 알았습니다.”
“도적놈들 따위에게 관용은 없소. 다른 놈들의 발톱을 뽑으면서 유독 그자 한 명에게만 버선에 신발까지 주었으니 그만하면 특별대우 아니겠소.”
냉소를 지으며 돌아섰다. 내 뒤를 따라 돌아선 이양이 손짓하자 호송대열이 출발하는 모습이 보였다. 음, 겨울이라 항해가 불편한 계절만 아니었으면 동래까지 배로 가라고 했을 텐데. 이런 계절에 전선과 군사들을 출동 상태로 유지한 해남현감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 19 –
“도성에 돌아가면 예조에 명을 내려 대마도주를 엄히 꾸짖으라고 해야겠소. 왜구를 단속함은 엄연히 대마도주가 자청한 일인데, 이토록 도적이 날뛰어서야 되겠소?”
지금 내 호통을 들을 사람은 오직 병조판서 이계동과 이곳 주인인 전라우수사 이양, 두 사람뿐이었다. 순행을 따라온 나머지 신하들은 모두 해남 읍내에 두고 왔으니 말이다.
“전하, 노여움을 가라앉히소서. 현실적으로 대마도주는 대마도를 거점으로 하는 왜적들밖에 단속할 수가 없사옵니다. 왜국 땅은 수많은 영주들이 나누어 다스리고 있으니 대마도 밖에서 활동하는 해적들을 어찌 대마도주가 단속하겠나이까?”
나도 알아요, 병조판서. 하지만 ‘그러니까 할 수 없어’하고 넘겨버리면 아무 것도 못 하잖아요? 어떻게든 트집을 잡을 거리를 만들어야 추후 그쪽에 개입도 하고 영향력도 끼칠 수가 있다고요.
“그 점은 과인도 알고 있소! 허나 대마도주가 왜국 내에서 전혀 영향력이 없는 것은 아니잖소. 자백한 왜적의 말에 따르면 그자는 오도 출신이라 하니, 오도를 다스리는 영주에게 단속을 요구하라 명하겠소.”
“쉬운 문제가 아니옵니다. 그자가 뒤이어 털어놓기를, 패거리 중에는 정말로 살마주에서 온 자도 있고, 심지어 기내 지방에서 온 자도 있다 하지 않았사옵니까? 어느 한 영주에게 단속을 요구해서는 부족합니다. 저런 패들은 이 항구에 기항을 금지하면 저 항구로 갈 뿐이옵니다.”
기내, 기나이(畿內)는 일본 수도인 교토 일대의 관서 지방을 가리키는 말이다. 한국으로 따지면 경기도 일대를 가리키는 셈이다. 이 왜구 패거리는 그만큼 출신지가 다양했다.
“대마도주가 진정으로 전하를 위해 왜구를 퇴치하려 애쓴다 해도, 그 혼자서 구주에 있는 모든 항구를 단속하고 해적을 근절시킬 수는 없사옵니다. 구주 서해안 전체를 제압할 만한 힘을 보이지 않는 한 왜구는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 그거야. 바로 그래서 내가 일본 원정을 하려는 거라고. 병조판서가 여기서 한 마디만 더 하면 병조판서를 내 스터디 모임에 끌어들여도 되겠다는 확신이 섰다. 요즘은 바빠서 오프모임은 못 갖고 편지로만 교류중이지만, 병조판서가 함께한다면 계획 수립이 확 진전되리라.
“그러니 왜국 내 정세가 안정되기까지는 가능한 교류를 줄이고 대비태세를 튼튼히 해야 합니다. 전하께서 대마도주 및 비전주 태수에게 세견선을 허락하는 대신 왜구 단속을 명하셨으니, 그예 진전이 있기를 바랄 뿐이옵니다.”
…왜 결론이 그러니 가만히 있자는 쪽으로 가는데? 기분이 막 좋아지려다가 바람이 확 빠져버렸다. 내 심기가 더 불편해지려는 참에 이양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신의 짧은 소견이긴 하오나, 가능하다면 우리 수군으로 하여금 구주에 가서 무위를 드러내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조선이 강력한 수군을 보유하고 있으며 유사시 저들에게 처절한 응징을 가할 수 있다고 그 힘을 보여주기만 해도 왜구가 줄어들 것입니다.”
이야, 이런 인재가 있었다니! 왜구 문제에 소극적인 병조판서 때문에 다운되었던 기분이 확 좋아졌다. 나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돌면서 이양을 돌아보았다.
“그대의 생각을 더 듣고 싶다. 어찌 무위를 떨치면 좋겠는가?”
“큰 배 수십 척을 준비하여 바다를 건넙니다. 대마도를 거쳐 구주로 가서, 구주 여러 고을을 돌며 우리 조선 수군은 이만한 힘이 있으니 추후 너희가 무도한 짓을 하면 가차 없이 응징하겠다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무력을 과시하자는 말이로군. 미국 해군이 항공모함을 가지고 남중국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중국 정부를 약 올리는 것과 마찬가지 행동을 하자는 건가.
“이번에 전하께서 건조를 명하신 새 전선인 판옥선을 건조하기 위한 도면을 받았사옵니다. 이 배는 실로 육중하고 강력함이 바다 위에 솟아오른 성과 같을 것이옵니다. 지금 우리 수군이 보유한 대맹선도 작은 배는 아니나 이 판옥선에 비하면 그 규모가 심히 초라하옵니다.”
경기수영은 10월 말에야 비로소 판옥선 설계안을 마무리했다. 보고가 올라오자마자 나는 경기수영에 명을 내려 설계안대로 시험건조에 들어가도록 했고, 각 수영에 사본을 돌려 설계상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게 했다.
“이 판옥선과 같은 배를 쉰 척 정도 건조하여 함대를 이루고 그대로 왜국 땅에 간다면, 왜국에 있는 각 영주들과 주민들이 모두 우리 전선의 위용에 놀라 절할 것입니다. 자연히 왜구들도 조선에 노략질하러 오기를 삼가게 될 것이니, 이 어찌 좋은 전략이 아니겠사옵니까?”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강력한 조선 함대가 해적행위에 대한 보복을 하러 올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면 규슈 지역 영주들이 좀 더 조심을 하겠지. 물론 내가 바라는 건 단순한 시위가 아니지만.
“우수사는 우리 전선들이 그저 오가기만 해도 저들이 겁을 먹으리라 보는가?”
“그럴 리가 있겠사옵니까. 판옥선에는 많은 화포를 실을 수 있으니, 저들이 보는 앞에서 포를 쏘아 그 위력을 선보일 필요가 있습니다. 한꺼번에 수많은 포를 쏘아 적을 부수는 광경을 보면 왜인들은 겁에 질려 전하께 덤빌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될 것이옵니다.”
지금 일본에는 화약무기 자체가 없다. 조선이나 명나라를 오가는 극소수 일본인들만이 화약이라는 것에 대해 알고 있다. 일본 본토에서 판옥선 전단이 함포 일제사격 같은 짓을 한다면 분명 현장에서는 대소동이 벌어질 거다. 흠, 괜찮은 무력시위일 수 있겠는데.
“전하, 전라우수사의 제안을 다시 생각해 보옵소서. 도적들을 상대로 무위를 선보인다 함은 분명 마음이 가는 행동이옵니다만, 그만큼 부담도 큰 정책이옵니다.”
병조판서 이계동이 내 상상에 제동을 걸었다. 마땅찮았지만 일단 고개를 돌렸다.
“부담이라니?”
“50척이나 되는 새 전선을 마련하는 비용이야 어차피 전선을 새로 만들기로 하였으니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배들을 끌고 왜국으로 가려면 적어도 1만에 달하는 장수와 군사가 필요하옵니다. 이들을 먹일 군량은 막대하고, 수송할 배도 별도로 필요하옵니다.”
“그야 준비하면 되지 않는가.”
“기해년의 동정처럼 싸움을 하고자 나가는 것도 아니고 그저 갔다가 오기만 하는 거라면 유람이나 다름없습니다. 유람을 위해 수천 군사를 움직이고, 군량을 소모함은 낭비입니다. 행여 우리 전선이 파선해서 군사를 잃기라도 하면 저들에게 비웃음만 살 것입니다.”
이계동이 지적한 바는 분명히 사실이라 반박할 말이 없었다. 이계동이 반론을 계속했다.
“우리 수군은 우리 바다에서만 뱃길을 알고 있사옵니다. 왜인들에게 무위를 떨치자면 왜국 연안에 근접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낯선 바다에서는 자칫하면 난파하기 쉽사옵니다. 대마도인을 징발하여 뱃길안내인으로 쓴다고 해도 무사하기는 어려울 것이옵니다.”
하긴 그렇다. 돈으로 안내인을 고용한다 해도, 그게 가짜가 아니라는 보장은 없다. 돈으로 고용한 자라면 더더욱 믿기 힘들다. 혹시 조선 함대를 모조리 여울에 몰아넣고 한탕 하려는 왜구 패거리일 수도 있으니까.
“게다가, 우리 수군이 대함대를 몰아 왜국으로 나가면 도리어 그 행동이 전쟁을 일으키는 단초가 될 수도 있사옵니다. 우리 수군을 보고 왜국을 침탈하러 왔다고 오해한 어느 영주가 공격을 가해 온다면 어찌하시겠사옵니까?”
“그야 격퇴할 뿐이오. 오해에서 비롯된 공격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겠소? 도리어 전화위복이 되리라 생각하오. 화포를 갖춘 우리 전선들이 얼마나 강력한지, 왜인들에게 직접 보여주는 계기가 될 테니까.”
“일이 잘 풀리면 그렇겠지요. 양 수군이 정면으로 격돌하면 분명 그런 결과가 나올 것이옵니다. 하지만 야간에 우리 선단이 정박하여 잠을 청하고 있을 때, 왜인들이 쪽배를 타고 오거나 물속으로 헤엄쳐 접근하여 일시에 우리 전선에 불을 지르기라도 하면 어쩌시겠사옵니까?”
“그야….”
말문이 막혔다. 경계만 제대로 하면 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계동이 왠지 그 주장을 받아칠 논리도 준비해 놓았을 것 같았다.
“왜국 영주가 겉으로는 환대하여 우리 군사에게 잔치를 베풀고 술을 먹인 다음, 경계가 해이해진 틈을 타 못된 짓을 꾸밀 수도 있사옵니다. 여러 경우를 다 따져 볼 때, 선단을 동원하여 구주 해안에서 전면적인 무력시위를 하는 방안은 단점이 더 많다고 생각되옵니다.”
젠장, 두 손 들었다. 병조판서가 내세운 근거를 깨트릴 수가 없다. 이야기를 돌렸다.
“우수사에게 묻겠다. 그대는 판옥선을 바다 위에 솟은 성이라 하였는데, 이 전선에 만족하는가? 이번에 해남현감도 중맹선으로 적을 쫓아 잡았는데, 작은 전선으로 빠르게 적을 쫓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이번 교전에 대한 정보가 조정에 들어가면, 또 소함주의자들이 반격을 할 우려가 있다. 적을 쫓은 건 중맹선이고 대맹선은 그저 기다리고만 있었다고 말이다. 그 주장을 깨려면 대함을 옹호하는 현장의 목소리가 필요했다.
“아니옵니다. 중맹선은 적을 몰기만 하였고, 총통을 쏘아 적선을 제대로 제압한 건 대맹선이옵니다. 배끼리 싸우는 전투에서 이기고자 하면 총통과 사부(射夫)를 많이 싣는 큰 전선이 이김이 당연하지 않겠사옵니까? 신은 대맹선보다 큰 판옥선 도입이 필요하다 생각하옵니다.”
“소맹선이나 중맹선은 없앰이 가하겠는가?”
“아니옵니다. 싸움의 주력은 새 판옥선이 맞되, 적을 몰거나 주변을 경계함은 여전히 소선이 맡아야 합니다. 소선과 대선은 어느 일방이 군세를 주도할 게 아니라 서로를 보완하며 함대를 구성해야 하니, 양자를 다 적절히 갖추어야 하옵니다.”
“좋다, 알겠도다.”
이쯤이면 우수영 방문의 목적은 거의 이룬 셈이다. 수군 일선 지휘부가 일본에 대한 무력 응징을 고려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았고, 지향하는 전술에 있어서도 나와 가깝다는 사실도 알았다. 게다가 계속되는 왜변 때문에 수군 일반의 분노 게이지가 차오르고 있음도 확인했다.
슬슬 도성으로 돌아갈 채비를 해야겠다. 그리고 이번에 확인한 사항들을 반영한 새 국정계획을 입안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