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be a great soldier RAW novel - Chapter 701
2부 47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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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군이 잡아 온 히데요시를 본 조선군 진영은 큰 함성으로 떠나갈 듯했다. 미꾸라지처럼 도망가던 놈이 부하의 배반으로 잡혔으니 통쾌하게 여길 거리로는 충분했다.
아즈치에서 히데요시를 인수한 이순신은 왜군 측에서 뭔가 수작을 부리기 전에 아와지시마 쪽 진영으로 히데요시를 옮기게 했다. 그리고 이틀 만에 다시 남만선에 태워서 아와지시마를 출발, 사누키를 거쳐 규슈로 보냈다. 날씨만 나쁘지 않다면 곧 조선에 도착할 것이다.
“도성까지 배를 타고 가게 해주다니, 너무 편하게 보내는 것 아니시옵니까, 대감?”
“어쩔 수 없네. 놈이 도성에 도착하기도 전에 백성들에게 맞아 죽어서야 안 되지 않겠는가. 전하께서 수길을 어찌 처결하실지는 알 수 없으나, 일단은 어명에 따라 사지육신을 멀쩡하게 붙여서 보내야 하네.”
이순신 자신이 그 누구보다 히데요시를 증오했다. 하지만 전하께서 놈을 도성으로 보내라고 명하셨다. 놈을 처형하고 그 목을 베어다 동래에서 죽어간 백성들의 영전에 올릴 수만 있다면 처형 장소나 방법 같은 건 아무 상관이 없었다.
“기왕이면 서양식으로 돛대에 목을 매달아 처형하는 방법도 나쁘지 않았을 듯합니다. 저기 매달린 도적놈들처럼 말입니다.”
정발이 웃으면서 자기 좌선을 가리켰다. 정발의 좌선인 대형 남만선, 통영 1선의 돛대에는 활대 양편에 수십 명이나 되는 왜인들이 목에 밧줄을 걸고 줄줄이 매달려 있었다. 밖으로 쑥 내민 혀는 보라색으로 부풀었고, 눈은 개구리 눈처럼 튀어나왔다. 똥오줌 냄새도 풍겼다.
“우리 마음대로 처결할 것 같으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 하지만 그렇게 처분한다면 본국에 있는 백성들에게 보여줄 수가 없지 않은가. 아마 전하께서는 예전 북정 때처럼 개선식을 열어 백성들 앞에 전시하신 후 수길을 처형하실 심사이신 듯하네.”
이항복에게 서양 이야기를 들으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주상께서 벌이시는 개선식은 옛 로마 장수들이 거행하던 개선식과 무척 비슷했다. 로마인들은 붙잡은 적장을 전리품과 함께 동포들 앞에 선보인 뒤 처형하기를 즐겼다고 하는데, 주상께서도 비슷하게 하셨다.
그게 목적이라면 아마 강화조약을 맺고 전군이 정식으로 철수하여 개선식을 치르는 날까지 히데요시가 의금부 뇌옥에 갇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리라. 그것도 나름 괜찮은 결말이라고 생각되었다.
“그건 전하께서 결정하실 문제일세. 정 별장 그대가 데려간 군사들은 이번 싸움에서 얼마나 상했는가? 그리고 전과는? 장계는 다 적었나?”
“여기 있습니다. 죽은 군사가 11명, 부상한 군사가 76명이옵니다. 대신에 왜선 1백여 척을 불태웠고, 2천여 명에 달하는 왜적을 쏘아죽였으며 4백 명을 붙잡아 활대에 매달았습니다.”
적은 히데요시가 조선군에게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이제 조선군이 싸움을 끝내고 조선으로 돌아가리라고 생각했는지 경계를 소홀히 하고 있었다. 정발은 자신이 지휘하는 남만선 함대를 미리 외양으로 우회하게 해서 방심한 놈들을 들이쳤다. 기습은 대성공이었다.
“아무리 수길을 잡아 싸움이 끝난 셈이라 하나, 그놈들이 남아있는 한 우리는 두 발을 뻗고 잠자리에 들 수 없을 것일세. 잘하였네.”
“하나 아쉬운 건 우두머리는 잡지 못하였다는 점입니다. 졸개들만 쓸어 없앴을 뿐, 가장 큰 원흉을 놓쳤으니 부끄러울 뿐입니다.”
“다소 아쉽기는 하나, 배와 부하를 모두 잃고 머리만 남았으니 앞으로 놈이 날뛰지는 못할 걸세. 배 없는 왜구가 어찌 왜구라 하겠는가. 그리고 가강은 우리와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는 기색을 계속 표해온 만큼 놈을 후원하는 바보짓은 하지 않을 걸세.”
지금도 양군 사이에 팽팽한 대치는 계속되고 있다. 다만 조선군은 오사카 시가지 서쪽에, 일본군은 동쪽에 주로 진을 치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오사카성에서는 양쪽 대표단이 회담을 이어가고 있다.
“강화가 맺어진 뒤에 가강이 왜구를 후원한다면 우리 수군이 다시 원정할 명분이 주어지지. 이를 모를 리 없는 가강이 왜구 세력을 재건하지는 않을 것이야. 더구나 다음 동정 때는 가강 앞에 서서 방패가 되어줄 수길도 없을 테니 말일세.”
이번 원정으로 일본 영주들은 조선군이 보여준 쓴맛을 단단히 겪었다. 싸움에는 패배했고 약탈과 파괴가 쓸고 간 영지는 황폐해졌다. 당연히 올해 농사는 치명타를 입었고 인구도 크게 줄었다.
만약에 이에야스가 헛된 수작을 벌이다가 조선군을 또 불러들인다면, 저들은 당장에 창을 거꾸로 돌려 이에야스를 칠 것이다. 그걸 감안하면, 아마 다음 원정에서는 이번만큼 대군을 동원할 필요도 없으리라.
“수고한 군사들에게 술을 내리고, 푹 쉬게 하게. 아직은 귀국하려면 멀었으니 기강이 너무 해이해지지 않도록 유의하고.”
“예, 대감.”
몰래몰래 군영을 빠져나가 오사카의 색주가를 드나드는 군사들이 상당수 있다. 이순신 휘하 군기대가 진영 안팎을 돌면서 잡기만 하면 곤장을 치고 있지만, 이런 망나니는 육군과 수군을 가리지 않고 계속 나왔다.
이미 하카타에서 일본식 색주가 맛을 본 군사들로서는 그보다 더 번화하면 번화했지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 오사카의 색주가를 지나치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하카타와 오사카는 그 상황이 전혀 다르니, 군사들에게 색주가 출입을 자유롭게 풀어줄 수는 없었다.
일단은 강화협상이 진행되는 중이니만큼 오사카 출입을 아예 금지하지는 않고 있다. 문제는 각 군영에 배정된 출입증 숫자 이상으로 나오는 무단출입자들이다. 은근슬쩍 군영 담을 넘다 군기대에 잡히면 곤장 20대를 맞지만, 지난 며칠 사이 적발된 자들만 40명이 넘었다.
“생각 같아서야 모조리 목을 치고 싶지만, 체찰사께서 적극 말리시니.”
도원수에다 임금의 사돈이기까지 한 이순신이 내리는 명령에 반대하고 나설 수 있는 사람은 원정군에서 딱 두 사람뿐이다. 부원수에다 자기도 임금의 사돈인 권율, 그 권율의 사위이면서 임금을 대리하는 체찰사인 이항복이다.
부원수 권율의 반대는 참고만 하고 넘길 수 있다. 하지만 임금을 대리하는 체찰사의 반대를 간단히 무시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직접적인 군무를 제외하고 다른 사안은 대부분 체찰사가 맡고 있으니, 이 문제도 약간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
“강화협상이 끝나면 바로 귀환할 것이니, 그때까지 군사들을 잘 챙기는 데 주력하게. 기껏 적과 싸우며 공적을 쌓았는데, 지금 사고로 죽기라도 하면 얼마나 허무하겠는가.”
“예, 대감.”
정발을 한 번 더 치하한 이순신이 뱃머리 쪽으로 발을 옮겼다. 오늘로 벌써 사흘째 회담이 진행되고 있는 오사카성이 동쪽 멀리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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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쪽 대표 두 사람씩, 그리고 통변과 서기를 각각 대동한 회의는 오늘도 평행선을 달렸다. 근본적으로 강화회담을 시작하려면 필요한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규슈에서 일어난 잇키를 진압하는 거야 그대들이 행사할 수 있는 적법한 권리라고 하겠소. 규슈는 분명 조선군이 점령했고, 점령에 반항하는 주민을 징벌하는 건 승자가 가지는 당연한 권리요. 그 점에 대해서는 우리도 아무 이의가 없소.”
이항복과 이덕형, 두 사람과 회담장에 마주 앉은 일본 측 협상 대표는 호소카와 후지타카와 우에스기 카게카츠였다. 이들은 각기 구 히데요시 세력과 동군 세력을 대표하는 셈이었다.
지금 나서서 항의하는 건 호소카와 후지타카였다. 우에스기 카게카츠는 동료가 하는 항의를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대들이 보낸 남만선단이 구키 수군을 격멸한 것도 양해했소. 구키를 공격한 귀국 함대가 오사카를 출항한 날은 아즈치가 무너지고 하시바 공이 붙잡히기 사흘 전이었고, 전쟁이 거의 끝났음을 전달받지 못한 상태로 저지른 일이었기 때문이오.”
정발이 지휘하는 남만선들은 구키 수군이 정박하고 있는 포구를 새벽에 들이쳐서 박살을 내 버렸다. 구키 요시타카 본인은 귀순 협상을 하러 이에야스를 찾아간 참이었기에 무사했지만, 휘하 함대는 어립선과 호위선 몇 척을 제외하고 전멸하고 말았다.
구키 요시타카가 천하제일의 수군 장수로 명성을 떨칠 수 있었던 바로 그 기반이 사라졌다. 자연히 이에야스가 굳이 구키를 휘하에 받아줄 이유도 없어졌다. 그보다는 구키를 조선 측에 넘겨줌으로써 기대할 수 있는 이득이 더 커졌고, 낌새를 깨달은 구키는 바로 잠적했다.
“하지만 이건 곤란하잖소. 이미 그대들은 하시바 공을 잡아 조선으로 보냄으로써 가장 큰 전쟁 목적을 달성했소. 전투를 중지하자는 의견에 합의했고, 오사카를 중립지대로 삼아 양쪽 군사가 출입할 수 있게 하는 데도 동의했소. 그런데 왜 주고쿠에서는 전투가 계속되는 거요?”
주고쿠에 있는 모리 데루모토가 계속 비명을 지르며 구원 요청을 보내고 있다. 첫째 요인은 조선이 풀어놓은 여진족 약탈부대. 악착같이 싸워서 그 수를 상당히 줄여놓기는 했으나, 아직 남아있는 수가 상당하다. 그놈들은 지금도 모리 령 전체를 종횡무진으로 휩쓸고 있다.
두 번째 요인은 조선군이다. 모리 령의 수도인 히로시마 코앞에 있는 섬에 주둔한 조선군이 수시로 본토에 상륙해서 방화와 파괴를 일삼고 있다. 모리 군이 아무리 해안에 병력을 배치해 놓아도 귀신처럼 틈바구니를 뚫고 올라가서 타격을 입혔다. 자기들은 거의 손실이 없었다.
전쟁이 끝났다고 하는데도 싸움이 계속되니 모리로서는 미칠 지경인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이항복은 어서 전투를 중단하고 병력을 빼달라는 이 요구를 태연하게 거절했다.
“우리가 하시바를 잡은 지는 오늘로 열이틀이 되었으나 정식으로 협상을 시작한 지는 겨우 사흘째요. 귀측은 하시바를 적대하여 우리와 연맹하였기에 서로 협상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으나, 모리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하시바의 수하요. 어찌 우리가 싸움을 멈춰야 하겠소?”
“모리 가는 하시바에게 했던 충성 서약을 철회하고 대신 요시아키 님께 다시 충성하겠다는 전언을 보내왔소. 그만하면 되지 않소?”
처음에 일본 조정에서는 호소카와 측의 요구에 따라 당장이라도 요시아키를 쇼군으로 다시 임명할 태세였다. 하지만 이에야스가 동쪽에서 대군을 거느리고 나타나고, 히데야스가 데리고 있던 오우미 군사 2만까지 손에 넣어 10만 대군을 손에 넣자 태도를 바꾸어 결정을 미루었다.
무리도 아니었다. 지금 오사카에서 요시아키 파는 사실상 호소카와 군 하나뿐이고, 전력을 비교하면 이에야스와는 상대도 되지 않았다. 아무리 지금 호소카와가 조정을 잡고 있다지만, 이에야스와 부딪혔을 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항복 역시 그 사정은 빤히 알고 있다. 그래서 상대의 요구를 단호하게 잘랐다.
“모리가 싸움을 끝내고 싶다면 오사카에 와서 정식으로 항복하라 하시오. 그러지 않고서야 우리도 싸움을 그만둘 수 없소.”
애초에 모리는 원한을 많이 살 수밖에 없었다. 모리 군이 경인년 왜란 때 조선을 휩쓸었던 일본군 주력이었기 때문이다.
히로시마 앞바다에 주둔한 부대는 복수하겠다며 한껏 독이 오른 경상도 복수군 2개 대대다. 그리고 이 병사들을 지휘하는 대장은 바로 곽재우다. 자기가 조련한 군사들을 그대로 데리고 전장에 나온 거다.
적을 속이고 뒤통수를 치는 유격전이라면 도가 튼 사람이, 자기가 맹훈련을 시킨 군사들을 거느리고 전란 중에 자기가 싸웠던 방식 그대로 싸우고 있으니 모리가 당해내지 못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지리를 잘 모른다는 단점은 항왜병과 협조적인 포로를 활용해서 보완했다.
“강화조약이 체결되고, 모리를 포함해서 경인년 난리에 책임이 큰 자들의 처분도 결정하고 나면 우리 군사들이 철군할 테니 자연스럽게 공격도 중단될 거요. 그 상황이 되면 아직 남아 돌아다니는 야인 무리도 우리가 나서서 다 거두어들이리다.”
풀어놓은 야인 무리 중에 비정기적으로라도 연락이 유지되는 자들은 정여립과 함께 다니는 패가 유일하다. 이항복이 한 달 전에 마지막으로 받은 보고에 따르면, 그동안 전투와 이탈이 계속되면서 그 수가 1천 명 이하로 줄었다고 했다. 다른 부대도 비슷하리라 예상됐다.
“그 문제를 붙들고 있어 봐야 협상은 진행이 안 되오. 혹시 시간을 더 끌면 우리가 지쳐서 그냥 돌아가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는 거라면, 일찌감치 포기하라고 권하고 싶소. 그러다 보면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여기서 성을 쌓고 눌러앉을지도 모르니까.”
이항복이 뒤로 기댄 채 배짱을 부리자 후지타카의 얼굴이 잠시 굳어졌다. 이항복의 거만한 태도를 보고 헛기침을 한 이덕형이 다소 온화하게 말을 건넸다.
“어서 협상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고 싶은 거야 우리 군사들도 마찬가지요. 하지만 그러려면 서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만한 조건으로 협상이 맺어져야 하지 않겠소? 가급적 빨리 귀측에서 우리 제안을 고려하여 답을 보내길 바라오.”
저쪽에서도 그동안 조용히 있던 카게카츠가 입을 열었다. 그 역시 후지타카와는 다소 다른 논조였다.
“마땅한 말씀이오. 우리는 공동의 적인 하시바를 함께 물리친 사이가 아니오? 마땅히 서로 화합하여 만사를 해결함이 옳소. 그대들이 내놓은 조건 역시 충분히 요구할만한 조건이오. 단 형식 면에서는 우리 쪽의 체면도 좀 살려주었으면 하는 거요.”
조선 측의 요구는 히데요시의 영지인 4개국을 조선왕에게 준다는 노부나가의 유언에 핵심을 두고 있다. 하지만 죽기 직전의 노부나가가 ‘준다’라는 표현의 의미를 명확히 쓰지 않은 탓에, 그 해석에 있어서 논란의 여지가 좀 있다.
양측은 이 문제를 먼저 규정하기로 했다. 모리 문제는 모든 협상이 타결된 뒤로 미루는 데 동의했다. 다음 회의에서는 대표를 한 사람씩 추가하는 문제도 합의를 보았다. 유감스럽게도 주고쿠에서는 아직 당분간 더 피가 흘러야 하게 되었다.
– 4 –
조선군 진영에서 가장 북쪽, 모서리에는 건주위 진영이 있다. 중도에 속병이 나서 낙오했던 병력이 모두 합류하면서 규모는 1500기로 늘었다. 대략 절반이 남은 셈이다.
가장 북쪽 모서리에 자리를 잡은 이유는 그래야 약탈이 금지된 오사카 반대편 구역을 뒤져 신나게 약탈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화협상이 시작된 이후에 이순신이 약탈을 금지하기는 했지만, 그 전에 며칠 동안은 틈이 있었다.
약탈 금지령이 내린 뒤에도 상당수는 몰래 약탈을 나갔다. 이제 원정을 마치고 일본을 떠나 건주위로 돌아갈 때가 되었는데, 그동안 모아둔 재물이 너무 없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피땀을 흘려가며 모은 재물은 거의 이여백이 갈취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돌아갈 때 임금이 은상을 내려주리라고 이항복이 약속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 양이 얼마나 될지 예상할 수 없을뿐더러, 은상이랍시고 저화나 한 보따리 주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전장에 나가 거둔 전리품이라면 금은과 말, 노예여야 했다. 종잇조각 따위는 아무런 위엄도 없다.
자랑스럽게 가지고 돌아갈 전리품을 손에 넣기 위해 건주위 병사들은 이순신의 눈을 최대한 피해 가면서 약탈에 나섰다. 그리고 수확은 제법 나쁘지 않았다.
이제는 이여백이 없다. 당연히 약탈한 재물 대부분이 건주위 전사들 몫이다. 예전에 9할을 이여백이 먹었다면 지금은 9할을 건주위 스스로가 먹는다. 1할은 경리 양호에게 바쳤다. 양호 쪽에서 대놓고 요구한 건 아니지만, 나중에 편하려면 이 정도 기름칠은 해놔야 하는 법이다.
“그동안 잡은 포로가 너무 많은데, 어쩔까요? 추장?”
이미 언급했지만, 노략질로 거둬들이는 ‘재물’에는 당연히 사람이 포함된다. 과거에 이들의 할아버지들이, 그리고 그 할아버지들이 규슈에서 잡아간 사람만 수천 명이다.
지금 여기에 슈르하치를 따라온 병사 중에도 이때 끌려온 왜인 혈통을 가진 자들이 있다. 하지만 그 병사들은 왜국 땅을 약탈하고 파괴하며 사람을 납치하는데 일말의 망설임도 느끼지 않았다. 전사란 원래 그런 것이다.
“젊고 건강한 놈들만 남겨라. 마르고 약한 놈, 제대로 일도 못 할 애나 늙은이는 버려. 그런 쓸모없는 것들은 조선군 진영에 넘겨줘라.”
요동은 춥다. 건강한 왜인이라 해도 이 따뜻한 나라에서 살았던 자들이 그 추위에 적응해서 겨울을 버티고 살아남을지 직접 데려가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그런 판이니 약한 노인이나 어린애는 데려가는 수고조차 들일 필요가 없었다.
슈르하치의 부하들은 추장의 명에 따라 수레바퀴보다 작은 애들이나 대략 50세가 넘은 포로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몽땅 골라냈다. 그리고 인접한 조선군 진영에 인계했다.
조선군에서는 포로를 받고 그 대가로 저화를 잔뜩 내주었다. 이 종이를 가지고 가면 나중에 평안도에 가서 쌀로 바꿀 수 있다. 뭐, 이건 어차피 부수입이니 저화라고 해도 받을 만하다.
건주위 병사들은 조선인들이 늙은이나 어린애를 대체 어디에 쓸 생각인지 모르겠다고 킬킬 비웃으며 돌아갔다. 자기들이 조선군에 넘겨준 늙은 포로 중 하나가 무척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들은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차피 다른 포로들도 다 죽을상을 짓고 있었다.